이 곡은 — 헨델이 1741년에 24일 만에 완성한 영어 오라토리오입니다. 〈메시아〉는 성경 구절만으로 예수의 탄생·수난·부활을 노래하는 3부 53곡의 합창 대작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2부 마지막 곡인 할렐루야를 권합니다. 4분 남짓한 곡에서 트럼펫과 팀파니, 합창이 한데 어우러져 2부의 절정을 이룹니다.
첫 음반 — 트레버 피노크가 지휘하고 잉글리시 콘서트가 연주한 아르히프 녹음을 권합니다. 시대악기의 가벼운 음색과 또렷한 합창을 함께 들을 수 있어 입문용으로 알맞습니다.
〈메시아〉(Messiah, HWV 56)를 완성한 헨델은 나중에 “온 천국을 봤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반면 성경 구절을 골라 대본을 엮은 찰스 제넨스는 헨델의 곡에 실망해 편지에 “그의 메시아는 나를 실망시켰다”고 적었죠. 24일 만에 완성된 이 곡을 두고 작곡가와 대본가가 보인 반응은 뚜렷하게 엇갈린 셈입니다.
이 곡을 소개하는 글에는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라는 설명이 자주 붙습니다. 하지만 초연은 4월에 열렸고, 헨델 생전의 런던 공연도 대부분 사순절 시즌에 열렸거든요. 첫 공연 역시 예배 목적이 아니라 빚 때문에 더블린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돕기 위한 자선 모금 행사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대본가가 남긴 실망의 기록에서 출발해, 이 작품이 어떻게 오늘날 12월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는지 살펴봅니다.

찰스 제넨스가 헨델에게 보낸 대본
〈메시아〉의 가사에는 새로 창작한 문장이 단 한 줄도 없습니다. 대본을 구성한 찰스 제넨스(1700–1773)가 영어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과 영국 국교회 기도서에 실린 시편에서 구절을 골라 순서를 정했거든요. 결혼하지 않은 레스터셔의 대지주였던 그는 저택 전체를 고대 그리스·로마 건축을 본뜬 팔라디오 양식으로 다시 지을 만큼 부유했습니다. 이웃들이 그를 오스만 제국 황제에 빗대어 ‘술레이만 대제’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제넨스는 이미 오라토리오 〈사울〉과 〈벨사자르〉의 대본을 쓴 헨델의 오랜 협력자였습니다. 1741년 7월 10일에는 친구 에드워드 홀즈워스에게 새 대본에 관해 이렇게 말했죠. “메시아라는 주제가 다른 모든 주제보다 뛰어난 만큼, 헨델이 온 재능과 솜씨를 쏟아 이 곡을 자신의 모든 전작보다 뛰어난 작품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이 말에는 대본의 주제에 대한 제넨스의 강한 확신과 헨델을 향한 기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대본의 구조는 제넨스가 설계했습니다. 1부는 예언과 탄생, 2부는 수난과 부활, 3부는 죽음 뒤의 약속을 다루죠. 이 대본은 등장인물을 앞세우지 않으며 예수의 이름도 거의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인물들이 사건을 연기하는 대신 독창자와 합창단이 예언자와 사도의 말을 차례로 노래합니다. 오라토리오는 본래 무대 장치나 연기 없이 성악과 관현악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음악 형식이거든요. 성경 이야기를 다룬 〈메시아〉는 그중에서도 극적인 줄거리보다 성경 구절이 전하는 의미에 무게를 둡니다. 헨델은 8월 22일 첫 페이지를 쓰기 시작해 24일 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했지만, 정작 제넨스는 그가 작곡에 1년을 들이기를 바랐습니다.
〈메시아〉를 24일 만에 쓴 1741년 여름
1741년 8월 22일, 헨델은 런던 브룩 스트리트 25번지의 자택에서 첫 페이지를 쓰기 시작해 9월 14일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했습니다. 259쪽에 이르는 자필 악보는 지금 대영도서관에 있으며, 마지막 장에는 라틴어로 ‘오직 하느님께 영광을’이라는 뜻의 문구를 줄인 SDG가 적혀 있죠. 작품을 24일 만에 완성했다는 사실과 악보 끝에 남긴 이 문구를 바탕으로, 후대에는 헨델의 작곡 과정을 신비롭게 그린 일화들이 생겨났습니다. 헨델이 할렐루야를 쓰다가 눈물을 흘리며 “온 천국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남긴 기록은 없어 후대에 전해진 일화로 봐야 합니다. 헨델 연구자 도널드 버로스는 작곡 속도 자체도 특별한 영감의 증거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하죠. 헨델은 오페라도 이와 비슷한 속도로 썼거든요. 실제로 〈메시아〉를 끝낸 직후 〈삼손〉 작곡에 들어가 9월 20일에 1막을 마쳤고, 10월 29일에는 전곡 초고까지 끝냈습니다. 결국 24일이라는 기간은 한 번뿐인 기적이라기보다 헨델이 평소 보여 준 빠른 작업 속도에 가까운 셈이었습니다. 이 작업이 이루어진 브룩 스트리트의 집은 그가 36년 동안 살았던 생활 공간이기도 합니다.

빠른 작곡이 가능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존 음악을 재활용한 데 있습니다. 1부의 대표적인 합창 ‘우리를 위해 한 아기가 나셨다(For unto us a Child is born)’는 같은 해 7월에 쓴 이탈리아어 이중창 〈아니, 그대들을 믿지 않으리(No, di voi non vo’ fidarmi)〉에서 선율을 가져온 곡입니다. 사랑을 믿지 못하겠다는 세속적인 내용의 원곡 선율에 헨델이 이사야서의 영어 가사를 붙인 것이죠. 이탈리아어에 맞춰 만든 리듬과 영어 가사의 강세가 조금 어긋나는 대목도 생기지만, 오히려 그 어긋남이 합창에 독특한 활기를 더합니다.
더블린 초연 수익으로 채무자 142명이 풀려난 사연
〈메시아〉는 런던이 아니라 더블린에서 처음 공연됐습니다. 아일랜드 총독이던 데번셔 공작이 지역 병원을 돕는 연주회를 열어 달라며 헨델을 초청했거든요. 헨델은 1741년 11월 더블린에 도착해 겨우내 여러 연주회를 열었고, 그 시즌의 마지막 공연에서 새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선보였습니다. 공연이 열린 곳은 피샴블 스트리트에 막 문을 연 약 600명 규모의 음악당이었습니다.
주최 측은 관객을 한 명이라도 더 받기 위해 신문에 이색적인 공지까지 냈습니다. 1742년 4월 포크너스 더블린 저널에는 숙녀들에게 치마를 부풀리는 후프를 두르지 말고, 신사들에게 허리에 칼을 차지 말고 와 달라는 당부가 실렸죠. 후프와 칼이 차지하는 공간마저 줄여 한 사람이라도 더 입장시키려는 조치였습니다. 입장료 수입을 자선기금으로 쓰는 공연이었으니 관객 수가 곧 모금액이었거든요. 이 궁리 덕분에 수용 인원보다 100명이나 많은 700명이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1742년 4월 13일 화요일에 마침내 첫 공연이 열렸습니다. 합창단은 성 패트릭 대성당과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에서 온 남성 16명과 소년 16명으로 구성됐는데, 오늘날 기준으로는 꽤 소규모였죠. 독창자로는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마리아 아볼리오와 여성의 낮은 음역을 맡는 콘트랄토 수재나 시버가 참여했습니다. 이날 약 400파운드가 모였고 세 자선단체는 127파운드씩 나눠 받았습니다. 채무자 구제에 배정된 돈으로 수감자 142명의 빚을 대신 갚아 준 덕분에 이들은 감옥에서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메시아〉의 더블린 초연은 음악적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실제 채무자 구제에도 톡톡히 기여한 셈입니다.
수재나 시버는 배우로 활동하다 남편과 관련된 추문을 피해 런던을 떠나 더블린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정규 성악 교육을 충분히 받지는 않았지만, 배우 출신답게 가사의 뜻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만큼은 남달랐거든요. 그녀가 2부의 ‘그는 멸시를 받았다(He was despised)’를 부르자 객석에 있던 성직자 패트릭 딜레이니가 벌떡 일어나 “여인이여, 이로써 그대의 모든 죄가 사하여지리라”라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극적인 일화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화려한 기교보다 가사의 뜻을 전달하는 시버의 표현력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당대의 평가를 엿보기엔 충분합니다.
런던은 왜 〈메시아〉를 ‘새 신성 오라토리오’라고 불렀나
더블린에서 환호를 받은 헨델은 1743년 3월 23일 런던 코벤트 가든 극장에서 이 곡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당시 광고에는 작품명 대신 ‘새 신성 오라토리오’라고만 뭉뚱그려 적었죠. 성서 말씀을 담은 작품을 극장에 올리고 오페라 가수들에게 부르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반발이 일던 시기였거든요. 한 신문에는 “극장이 이런 곡을 공연할 만한 신전인가?”라는 거센 항의도 실렸습니다. 런던 관객의 반응 역시 더블린과 달리 미지근했습니다. 결국 헨델은 예정했던 6회 공연을 3회로 줄였고, 이듬해 1744년 시즌에는 아예 이 곡을 공연하지 않았습니다.
제넨스가 얼마나 실망했는지는 이 무렵 쓴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1743년 1월, 그는 홀즈워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그의 메시아는 나를 실망시켰다. 1년은 걸리겠다고, 자기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겠다고 해 놓고는 너무 급하게 썼다. 이런 식으로 남용될 바에야 다시는 성스러운 말씀을 그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 1745년에는 표현이 다소 누그러졌지만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죠. “훌륭한 볼거리로 만들긴 했지만, 그가 해낼 수 있었고 마땅히 해냈어야 할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가 실망한 이유는 다른 편지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제넨스는 대본을 넘긴 뒤에도 악보를 받아 보며 여러 대목을 고쳐 달라고 요구했지만, 헨델은 그 가운데 일부만 받아들였거든요. 제넨스는 성서 말씀의 의미가 음악에서도 충실히 살아나기를 바랐고, 헨델은 극장 관객을 사로잡는 음악으로 대본을 구현하려 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처럼 작품의 방향을 두고 여러 차례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그럼에도 완성된 이 곡이 300년 가까이 굳건히 무대에서 연주되어 왔다는 사실이 묘한 아이러니를 남깁니다.
1부 — 예언에서 아기의 탄생까지
1부는 21곡으로 이루어지며 다섯 장면으로 나뉩니다. 첫 곡 신포니아는 e단조의 프랑스식 서곡으로, 느린 서주 뒤에 푸가풍의 빠른 부분이 이어지죠. 헨델은 밝은 성탄 이야기를 뜻밖에도 어두운 단조로 시작해, 어둠 속에 위로의 약속이 나타날 순간을 예고합니다. 이어 테너가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노래하면 조성이 E장조로 바뀌어 서곡의 어둠과 뚜렷한 대비를 이룹니다.
1부의 합창 ‘우리를 위해 한 아기가 나셨다’ — 이탈리아 이중창에서 온 선율
합창 “For unto us”에는 앞에서 살펴본 이탈리아 이중창의 선율이 쓰였습니다. 소프라노가 “For unto us”를 가볍게 시작하면 다른 성부가 하나씩 합류하고, 이윽고 전 합창이 “Wonderful, Counsellor”를 세 번 힘차게 강조하죠. 장난스러운 리듬으로 가볍게 움직이던 음악이 전 합창의 외침으로 순식간에 바뀌면서 “놀라우신 분”이라는 말도 한층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소프라노와 테너가 유독 소화하기 어려운 대목은 한 음절을 수십 개의 음으로 길게 이어 부르는 16분음표 멜리스마입니다. 원래 이탈리아어의 모음에 맞춰 쓴 음형이다 보니, 영어 가사의 자음과 강세를 살리면서 또렷하게 부르기가 영 쉽지 않거든요.
🎧 감상 포인트 — 소프라노가 첫 마디를 가볍게 시작하는 연주를 들어 보세요. 다른 성부가 차례로 합류한 뒤, 전 합창이 “Wonderful”을 세 번 힘차게 강조하면서 분위기가 선명하게 달라집니다.
1부 피파에서 천사들의 합창까지 — 트럼펫은 왜 멀리서 울리나
합창의 열기가 가라앉으면 짧은 기악곡 피파(Pifa)가 흐릅니다. 전원 교향곡이라고도 불리는 이 곡은 C장조, 12/8박자로 쓰였으며, 현악기만으로 목동의 피리를 연상시키는 소리를 내죠. 헨델은 이 1분 남짓한 음악으로 한적한 들판을 그려 낸 다음, 누가복음에서 목동들이 천사를 만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어 갑니다. 뒤따르는 천사들의 합창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에서는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트럼펫이 등장합니다. 헨델은 악보에 ‘다 론타노(da lontano)’, 곧 멀리서 연주하라는 지시를 적어 천사의 나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하게 만들었거든요. 합창과 함께 울리는 트럼펫의 장엄한 음색은 2부 끝에 이르러 한층 더 크게 부각됩니다.
🎧 감상 포인트 — 현악기가 목동의 피리를 닮은 부드러운 리듬을 연주하는 대목에 이어, 트럼펫이 먼 곳에서 울리듯 처음 등장하는 순간을 들을 수 있습니다.
2부 — 수난에서 할렐루야까지
2부는 23곡, 일곱 장면으로 이루어진 가장 긴 부분입니다. 채찍질과 조롱, 죽음과 부활을 거쳐 복음이 세상에 퍼지고 신의 통치가 선포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죠. 아리아보다 합창의 비중이 커서 연주에서도 무게감이 두드러집니다. 1부가 “그의 멍에는 쉽다”라는 가벼운 합창으로 끝났다면, 2부는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을”이라는 무거운 합창으로 시작합니다. 그 뒤에는 작품 전체에서 가장 긴 독창곡이 이어집니다.
2부 ‘그는 멸시를 받았다’ — 《메시아》에서 가장 긴 독창곡
이 곡은 E♭장조의 알토 아리아로, 앞부분과 중간부를 차례로 부른 뒤 처음 부분을 되풀이하는 다카포 형식입니다. 앞부분에서는 “그는 멸시를 받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다”라는 이사야서 구절을 느린 선율과 잦은 쉼으로 노래하거든요. 반주가 거듭 멈추면서 가수가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고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중간부가 다단조로 바뀌면 현악기는 채찍질을 떠올리게 하는 짧고 날카로운 리듬을 연주하고, 가수는 “그는 매질하는 자에게 등을 내주었다”라고 강하게 노래합니다. 격렬한 중간부가 끝나면 다시 앞부분의 느린 선율이 돌아옵니다. 더블린 초연에서는 시버가 이 아리아를 불렀습니다. 그의 노래에 감동한 딜레이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 일화도 전해지죠. 화려한 기교보다는 선율 사이의 쉼과 그때마다 멈추는 반주에 귀를 기울여 들어볼 만합니다.

🎧 감상 포인트 — 이 연주에서는 앞부분과 중간부의 성격이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앞부분에서는 반주가 멈출 때마다 가수가 말을 고르는 듯 노래하고, 다단조로 바뀌는 중간부에서는 현악기가 채찍질을 떠올리게 하는 리듬을 연주합니다.
2부 ‘할렐루야’ — 작품의 끝이 아닌 2부의 절정
할렐루야는 2부의 마지막 곡이며, 그 뒤에는 3부 9곡이 이어집니다. 전체 53곡 가운데 44번째 곡으로, 대략 3분의 2 지점을 훌쩍 지난 자리에 놓여 있죠. D장조로 쓰인 이 곡에서는 트럼펫 2개 파트와 팀파니가 합창과 함께 전면에 나섭니다. 1부에서는 피파가 목가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트럼펫도 일부 대목에서만 등장하지만, 헨델은 여기서 트럼펫의 찬란한 음색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가사는 요한계시록의 세 구절을 이어 붙였습니다. “주 하느님 전능하신 분이 다스리신다”, “이 세상의 나라가 우리 주의 나라가 되었다”, “왕 중의 왕, 주 중의 주”입니다. 헨델은 이 세 문장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펼칩니다. 첫 문장은 전 합창이 한목소리로 부르고, 두 번째 문장에서는 한 성부가 시작한 선율을 다른 성부가 차례로 모방하는 푸가로 전개하거든요. “왕 중의 왕”에서는 소프라노가 한 음씩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나머지 성부가 “영원히, 할렐루야”라고 응답합니다.
이 곡이 4분 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에는 헨델이 앞의 두 시간 동안 트럼펫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그 음색을 아껴 둔 효과도 큽니다. 앞에서 좀처럼 들리지 않던 트럼펫이 합창과 함께 등장하면서 절정의 느낌이 한층 커지거든요. 따라서 이 곡만 따로 떼어 듣기보다 앞부분부터 이어 들으면 헨델이 마련한 음색의 대비를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헨델의 자필 악보에서 이 합창이 끝나는 페이지, 곧 2부의 마지막 장에는 마지막 화음 아래 1741년 9월 6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습니다. 전곡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9월 14일보다 8일 앞서 2부를 먼저 마친 셈입니다.
🎧 감상 포인트 — 이 연주에서는 악기와 성악이 합류하며 절정으로 향하는 흐름을 들을 수 있습니다. 첫 “할렐루야”를 이루는 네 번의 화음 뒤에 트럼펫과 팀파니가 들어오고, 이어 소프라노가 “왕 중의 왕”을 한 음씩 높여 부릅니다.
3부 — 나팔 소리와 아멘
3부는 9곡, 네 장면으로 이루어져 세 부 가운데 가장 짧습니다. 할렐루야의 열기가 가라앉은 뒤, 음악은 죽은 이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차분히 시선을 돌리죠. 3부의 첫 곡은 소프라노 독창으로 시작합니다.
3부 ‘나는 안다, 나의 구원자가 살아 계심을’ — 웨스트민스터 사원 동상이 들고 있는 악보
욥기 19장을 가사로 삼은 E장조 소프라노 아리아입니다. 첫 두 음은 “I know”에서 4도 위로 도약합니다. 음악학자 루돌프 슈테글리히는 이 음형이 서곡 뒤 첫 아리아 ‘위로하라’의 시작과 닮았으며 곡 전체를 이어 주는 신호라고 해석했습니다. 할렐루야의 뜨거운 흥분이 지나간 뒤 들려오는 이 고요한 확신은 3부의 중심 정서를 이룹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헨델의 기념상도 이 아리아의 악보를 들고 있거든요. 조각가 루이 프랑수아 루비약은 1762년, 53곡 가운데 할렐루야가 아닌 이 곡의 악보를 동상에 쥐여 주었습니다. 헨델을 기념하기 위해 조각가가 어떤 음악을 선택했는지 눈여겨볼 만합니다.
🎧 소프라노의 첫 도약 — 소프라노가 “I know”에서 4도를 뛰어오르면 현악기가 같은 음형을 되풀이하며 뒤를 받칩니다.
3부 ‘나팔 소리가 나매’ — 곡 전체에서 유일한 기악 독주
고린도전서 15장을 가사로 삼은 D장조 베이스 아리아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리라.” 헨델은 가사에 나오는 나팔 소리를 트럼펫 독주로 구현하죠. 2시간이 넘는 작품을 통틀어 한 악기가 독주를 맡는 대목은 여기뿐입니다. 트럼펫이 먼저 선율을 불고 베이스가 이어받아 노래하면서, 나팔 소리에 죽은 이들이 깨어나는 듯한 장면을 만듭니다. 헨델 시대의 트럼펫에는 밸브가 없었으므로 연주자는 오직 입술의 긴장과 호흡만으로 높은 음을 정확히 내야 했거든요. 이 때문에 시대악기로 연주할 때면 특히 긴장감이 큰 대목입니다.
🎧 트럼펫과 베이스의 응답 — 밸브 없는 트럼펫이 높은 선율을 먼저 불면 베이스가 그대로 받아 노래합니다.
3부 ‘죽임당하신 어린양은 합당하시다’ — 아멘 한 단어로 4분
마지막 합창에서는 트럼펫과 팀파니가 다시 등장하고, 합창단은 요한계시록의 찬양을 느린 화음으로 노래합니다. 이 찬양이 끝나면 ‘아멘’ 한 단어로 이루어진 푸가가 이어지죠. 베이스가 선율을 시작하면 테너, 알토, 소프라노가 차례로 받아 노래하고, 나중에는 악기까지 같은 선율에 가담합니다. 가사가 단 한 단어뿐이어서 듣는 사람은 여러 성부가 차례로 들어와 포개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거든요. 할렐루야가 웅장한 울림으로 절정을 이루었다면, 아멘은 여러 성부를 촘촘하게 엮으며 곡을 차분히 마무리합니다.
🎧 성부가 겹쳐지는 마지막 4분 — 느린 화음의 찬양이 끝나면 베이스가 ‘아멘’ 선율을 혼자 시작하고 다른 성부가 하나씩 합류합니다.
| 구분 | 내용 | 조성 | 대략 길이 | 한 줄 포인트 |
|---|---|---|---|---|
| 1부 (21곡) | 예언 · 탄생 · 목동의 들판 | e단조 서곡으로 시작 | 약 55분 | 트럼펫은 ‘멀리서’ 한 번만 |
| 2부 (23곡) | 수난 · 부활 · 복음 전파 · 할렐루야 | D장조 할렐루야로 마침 | 약 50분 | 가장 긴 아리아와 가장 큰 합창이 함께 |
| 3부 (9곡) | 부활의 약속 · 나팔 · 아멘 | D장조 아멘으로 마침 | 약 30분 | 유일한 기악 독주(트럼펫)와 아멘 푸가 |
할렐루야 기립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영국과 미국의 연주회에서는 할렐루야가 시작되면 관객이 일어서곤 합니다. 이 관습의 유래를 설명할 때면 으레 따라붙는 이야기가 하나 있죠. 1743년 런던 초연에서 국왕 조지 2세가 감동한 나머지 벌떡 일어섰고, 왕이 서자 온 객석도 따라 일어섰다는 겁니다. 그러나 정작 조지 2세가 〈메시아〉 공연에 참석했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당시 신문과 편지, 헨델 주변 사람들의 회고를 살펴봐도 관련 내용은 남아 있지 않거든요.
관객이 할렐루야에서 일어섰다는 언급이 처음 등장하는 문서는 1756년의 편지입니다. 런던 초연에서 13년이 지난 뒤이자 헨델이 죽기 3년 전이지만, 그 편지에도 왕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왕이 일어섰다는 이야기는 그 뒤에 덧붙은 것으로 보입니다. 기립 관습이 먼저 생겼고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왕에 관한 이야기가 더해졌다고 보는 편이 남아 있는 기록과 잘 맞거든요. 이 이야기가 널리 퍼진 까닭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왕 중의 왕”이라는 가사가 울려 퍼질 때 실제 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는 장면이 관습의 유래를 인상적으로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 사실은요 — 조지 2세가 〈메시아〉 공연에서 일어서면서 관습이 시작됐다는 일화는 문서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기립 관습을 언급한 1756년 편지에도 왕은 등장하지 않으며, 헨델 연구자 도널드 버로스 역시 이 일화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고 봅니다.
한국 연주회에서는 이 관습이 뚜렷하게 자리 잡지 않아, 일어서는 관객과 앉아 있는 관객 사이에서 오히려 미묘한 눈치 게임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잘못은 아닙니다. 할렐루야 기립은 애초에 헨델이 정한 규칙이 아니기 때문이죠.
파운들링 병원과 헨델의 마지막 봄
런던에서 미지근한 반응을 얻었던 〈메시아〉가 정작 자리를 잡은 곳은 극장이 아니라 뜻밖에도 병원이었습니다. 파운들링 병원은 뱃사람 출신 토머스 코램이 1739년에 세운 아동 보호 시설로, 버려지거나 가정에서 기르기 어려운 영아를 맡아 길렀습니다. 이름에 병원이 들어가지만 오늘날의 의료기관과는 성격이 달랐죠. 헨델은 1749년 이곳을 위한 자선 연주회를 열었고, 이때 쓴 〈파운들링 병원 앤섬〉의 끝에 〈메시아〉의 할렐루야를 붙였습니다. 이듬해인 1750년 5월 1일에는 병원 예배당에 새로 설치한 오르간의 봉헌식에서 〈메시아〉 전곡을 지휘했습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발길을 돌릴 만큼 관객이 몰렸고, 병원은 이튿날 헨델을 아예 이사로 선출했습니다.

그때부터 〈메시아〉는 해마다 이 예배당에서 연주됐습니다. 기록이 남아 있는 1754년 공연에는 바이올린 15, 비올라 5, 첼로 3, 콘트라베이스 2, 바순 4, 오보에 4, 트럼펫 2, 호른 2와 팀파니가 동원됐죠. 합창단은 19명이었고, 그 가운데 6명은 왕실 예배당의 소년 가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대형 합창단이 흔히 부르지만 헨델 당시의 합창단은 20명 남짓이었습니다. 극장에서 공연될 때는 종교 작품을 세속적인 공간에 올린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파운들링 병원의 자선 공연이 해마다 열리면서 〈메시아〉는 런던 시민이 표를 사서 듣는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헨델은 1751년부터 시력이 나빠져 1752년에는 거의 앞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이후 제자 존 크리스토퍼 스미스가 지휘를 대신했고, 헨델은 오르간 앞에 앉아 연주에 참여했죠. 1759년 4월 6일 코벤트 가든에서 열린 〈메시아〉 공연은 그가 참석한 마지막 공연이었습니다. 8일 뒤인 4월 14일, 헨델은 브룩 스트리트의 집에서 74세로 세상을 떠납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3,0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유언장에 깨끗이 베껴 쓴 〈메시아〉 총보 한 부를 파운들링 병원에 남긴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525명에서 2,000명으로, 〈메시아〉가 거대해진 100년
헨델이 죽고 25년 뒤인 1784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헨델 기념 대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사원에 남은 명판에는 “성악과 기악을 합쳐 525명”이 조아 베이츠의 지휘로 연주했다고 새겨져 있죠. 1787년 광고에는 출연진 800명이 예고됐습니다. 〈메시아〉가 헨델을 기리는 국가적 행사의 중심에 놓이자, 아예 많은 연주자를 동원하는 것 자체가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진 셈입니다.

빈에서는 연주 인원을 늘리는 대신 악기 편성을 바꾸는 방식으로 작품을 손질했습니다. 1789년 음악 후원자 고트프리트 판 슈비텐 남작은 모차르트에게 〈메시아〉의 편곡을 맡겼거든요. 모차르트는 독일어 가사에 맞춰 플루트, 클라리넷, 호른, 트롬본을 더했고 이 편곡판은 3월 6일 에스테르하지 백작의 저택에서 독창 4명과 합창 12명이 참여한 가운데 초연됐습니다. 훗날 작곡가 모리츠 하웁트만은 이 편곡을 “대리석 신전에 붙인 스투코 장식”이라고 불렀습니다. 대리석 벽에 회반죽 장식을 덧바른 격이라는 비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세기 내내 독일어권에서는 이 모차르트판이 〈메시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규모 경쟁은 19세기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1853년 뉴욕 공연에는 합창단 300명이 참여했고, 1857년 런던의 대형 유리 전시관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열린 헨델 축제에는 합창 2,000명과 오케스트라 약 396명(자료에 따라 386명)이 동원됐거든요. 1865년 보스턴 공연에서도 600명이 넘는 합창단원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런 유행에 염증을 느껴, 거대 합창이 매번 불러일으키는 “진부한 경탄”은 이미 바닥났으니 “유능한 스무 명의 합창단”이 제대로 연습한 공연을 보고 싶다고 썼습니다. 막상 쇼가 바라던 소규모 공연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90년 가까이 걸렸죠. 1979년에는 지휘자 크리스토퍼 호그우드가, 1982년에는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가 시대악기와 소규모 합창을 활용해 헨델 시대의 연주 관행에 접근했습니다. 그 뒤 당시의 악기와 연주 방식을 따르는 시대연주는 〈메시아〉 음반의 한 축으로 단단히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왜 12월에 〈메시아〉를 듣나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메시아〉 초연은 4월에 열렸고 런던에서는 주로 사순절에 공연됐지만, 오늘날에는 12월에도 자주 연주되거든요. 1부가 예언과 탄생, 곧 성탄 이야기를 다루는 데다, 2시간 반짜리 전곡을 매번 무대에 올리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영어권에서는 성탄 시즌에 1부의 주요 곡을 연주하고 2부의 할렐루야를 마지막에 덧붙이는 방식이 자리 잡았고, 이러한 연주 관행이 한국에도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그 결과 부활절 무렵 초연된 작품이 한국에서도 성탄절 음악으로 널리 기억되기 시작한 셈입니다.
한국에서도 〈메시아〉는 연말 공연에서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국립합창단은 2025년 12월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4년 만에 연말 정기연주회로 〈메시아〉 전곡을 연주했거든요. 서울뿐 아니라 여수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시립합창단도 이 곡을 송년 무대에 올립니다. 전곡 2시간 반을 한 번에 듣는 일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작품의 흐름을 미리 알아 두면 12월마다 친숙하게 들리는 할렐루야가 전곡의 마지막 곡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뒤에는 9곡이 더 이어지며, 그 가운데 ‘나팔 소리가 나매’와 마지막 합창 ‘아멘’도 함께 들어볼 만하죠.
악보와 함께 듣기
〈메시아〉 악보는 무료로 공개돼 있습니다.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서는 총보와 파트보 등 여러 판본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메시아〉는 음반마다 편성과 해석이 다릅니다. 시대악기 연주 두 장과 대편성 연주 한 장을 골라봤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참고 자료
- Wikipedia — Messiah (Handel): 작곡 경위·더블린 초연·런던 논란·파운들링 병원·기립 전설·연주사
- Wikipedia — Structure of Handel’s Messiah: 3부 53곡 구성과 각 곡의 조성
- Wikipedia — Messiah Part II: ‘그는 멸시를 받았다’와 할렐루야의 구조
- Wikipedia — Charles Jennens: 대본가의 생애와 헨델과의 관계
- Wikipedia — Foundling Hospital: 1750년 〈메시아〉 공연과 헨델의 유증
- The Irish Times — Bickering at the birth of Messiah: 제넨스의 1743년 편지
- IMSLP — Messiah, HWV 56: 총보·성악보 원본
- 가톨릭신문 — 대림·연말 무대의 〈메시아〉: 국립합창단 2025년 12월 공연
이어서 듣기 — 합창이 극장 밖에서 살아남은 곡들
〈메시아〉가 좋았다면 아래 다섯 글도 이어서 읽어볼 만합니다. 같은 작곡가의 왕실 음악부터 같은 시대의 수난곡과 미사곡, 죽음을 노래한 진혼곡까지 네 작품을 소개하고 마지막에는 객석 예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살펴봅니다.
- 〈메시아〉보다 24년 앞서 템스강 위에서 연주된 헨델의 〈수상음악〉에는 화가 난 왕을 달랬다는 전설이 따라붙지만, 실제 기록은 이 이야기와 다릅니다.
- 헨델이 〈메시아〉를 성경 구절을 이어 붙인 명상적인 작품으로 구성했다면, 바흐 마태 수난곡 BWV 244는 복음사가의 해설과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예수의 수난을 극적으로 들려줍니다.
- 헨델과 같은 해에 태어난 바흐는 여러 시기에 쓴 음악을 말년에 한 작품으로 엮어 대규모 합창곡 바흐 B단조 미사 BWV 232를 완성했습니다.
- 모차르트 레퀴엠 d단조 K.626은 모차르트가 〈메시아〉를 편곡한 지 2년 뒤인 말년에 쓰기 시작했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한 합창곡입니다.
- 마지막으로 할렐루야 기립 전통처럼 오래되어 보이는 공연장 관습도 생겨난 시점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악장 사이 박수를 삼가는 예절은 겨우 100년 전부터 공연장 규범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