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집은 바흐가 편성이 제각각인 협주곡 여섯 곡을 한데 묶어 변경백에게 보낸 헌정 악보로, 오늘날 바로크 협주곡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5번 1악장에서 반주를 맡던 하프시코드가 독주 악기로 나서 긴 독주를 펼치는 대목을 추천합니다.
추천 음반: 트레버 피노크 · 잉글리시 콘서트 (Archiv, 1982).
1721년 3월 24일, 서른다섯 살의 바흐가 두툼한 악보 묶음을 베를린으로 띄워 보냅니다. 이 묵직한 우편물의 수신인은 다름 아닌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였죠. 겉장에는 공들여 써 내려간 프랑스어 헌사가 번듯하게 붙어 있었고, 그 안에는 저마다 악기 편성이 확연히 다른 협주곡 여섯 곡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정성스러운 여섯 곡이 변경백의 궁정에서 실제로 울려 퍼졌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악보는 그저 조용한 서재 한구석에 얌전히 보관되다가, 1734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은화 24그로셴 남짓으로 값이 매겨졌다고 전해지거든요. 오늘날 바로크 협주곡을 대표하는 거대한 위상에 비견하면, 정말이지 뒷목을 잡을 만큼 초라한 평가액이었죠.

일자리가 필요했던 서른여섯
이 씁쓸한 악보의 사연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 바흐가 도대체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부터 들여다봐야 합니다. 1721년 무렵 바흐의 명함에는 작은 공국 쾨텐의 궁정악장이라는 직함이 박혀 있었습니다. 다행히 주군인 레오폴트 공은 음악을 깊이 사랑했고, 실력파 연주자들을 알뜰히 모아 제법 번듯한 궁정 악단을 꾸려두었죠.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칼뱅파였던 쾨텐 궁정에서는 화려한 예배 음악이 자주 울려 퍼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바흐가 주특기인 교회 칸타타를 쓸 기회가 이전보다 확연히 줄어든 셈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 그는 궁정 악단이 무대에 올릴 기악곡 창작에 온종일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파르티타 등이 대체로 이 시기에 쓰인 것으로 여겨지고, 그 유명한 〈평균율클라비어곡집〉 1권 역시 이 쾨텐 시절에 완성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또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작이 아니라, 바흐가 여러 시기에 걸쳐 틈틈이 만들어두었던 협주곡 가운데 알짜배기만 이 무렵 쏙쏙 선별하고 다듬어 하나의 번듯한 작품집으로 엮어낸 결과물입니다.

바흐와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의 인연은 그보다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흐가 하프시코드를 장만하러 베를린에 들렀을 때 두 사람이 만난 것으로 전해지거든요. 바흐가 헌사에 꾹꾹 눌러 적은 내용에 따르면, 당시 변경백은 그에게 작품을 하나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말이 영혼 없는 의례적인 인사치레였는지, 아니면 진심이 담긴 묵직한 부탁이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뒤, 바흐는 여러 악기를 다채롭게 버무린 협주곡들을 엄선해 한 묶음으로 정성껏 엮은 다음 변경백에게 띄워 보냈습니다.
겉표지를 장식한 프랑스어 헌사를 가만히 뜯어보면, 당시 귀족에게 작품을 바칠 때 따르던 깍듯한 격식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여러 악기를 위한 여섯 개의 협주곡(Six Concerts avec plusieurs instruments)”이라는 제목 아래 이어지는 헌사에서, 바흐는 한없이 자신을 낮추며 변경백의 호의를 구하거든요. 오늘날에는 이 헌사의 내용과 작품집의 구성을 근거로 삼아, 바흐가 새로운 일자리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역량을 한껏 보여 주는 포트폴리오 삼아 이 작품집을 보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헌정 악보를 받은 변경백이 이 곡들을 들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바흐가 그토록 공을 들여 헌정 악보를 보냈건만, 정작 변경백이 답장 한 통을 썼다는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변경백이 바흐에게 그럴듯한 일자리를 제안했다거나 넉넉한 금전으로 보답했다는 기록도 전무하고, 이 여섯 곡이 그의 궁정에서 단 한 번이라도 연주됐다는 증거 역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든요. 철저한 침묵의 메아리뿐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바흐는 이 야심 찬 악보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칸토어로 조용히 자리를 옮겼습니다.

결국 이 헌정 악보는 변경백의 궁정 서재에 남았습니다. 1734년 변경백이 세상을 떠난 뒤 유품의 값을 매기는 과정에서, 바흐의 이 자필본은 다른 악보 수백 점과 함께 아주 낮게 평가됐다고 전해지거든요. 이를 요즘 돈으로 환산해 몇만 원 안팎으로 치는 계산도 있습니다만, 서로 다른 시대의 화폐 가치를 단순히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죠. 당시로서는 이 자필본 역시 궁정 서재에 보관된 여러 악보 가운데 하나로 취급됐을 뿐입니다. 훗날 그 가운데 한 곡이 보이저 우주 탐사선의 금제 음반에 수록됐다는 사실과는 참으로 얄궂을 만큼 큰 대조를 이룹니다.
헐값에 매겨졌던 이 자필본은 이후 기구하게도 여러 소장자의 손을 거쳐야 했습니다. 다행히 바흐의 제자인 키른베르거가 소장하다가 프로이센의 안나 아말리아 공주에게 고이 넘겼고, 시간이 한참 흐른 1849년에는 베를린의 음악학자 지크프리트 데엔이 묵은 문서고를 뒤지다 기적처럼 이를 찾아냈죠. 바로 이듬해인 1850년, 공교롭게도 바흐가 세상을 떠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에 이 불운했던 여섯 곡은 마침내 활자로 말끔히 인쇄되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여섯 곡의 실체를 온전히 전해주는 핵심 자료는, 아이러니하게도 바흐가 변경백에게 보냈던 바로 그 헌정 자필본입니다. 바흐가 만에 하나 따로 보관했을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전곡 사본은 현재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거든요. 차라리 변경백의 서재에서 오랫동안 아무도 펴보지 않은 채 고이 방치된 덕분에 이 헌정본이 이토록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다는 서늘한 설명도 있습니다. 만약 이 유일한 한 부마저 얄궂은 전승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 이 위대한 여섯 곡의 전곡 악보는 오늘날과 같은 눈부신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지기 참으로 어려웠을 겁니다.

💡 사실은요: “변경백의 악단에는 이 어려운 곡들을 연주할 역량이 없었다”는 설명이 오랫동안 통설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바흐 연구자 맬컴 보이드 같은 학자들은 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일자리를 기대하며 악보를 보낸 바흐가 정작 그 궁정에서 연주할 수 없는 곡을 골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입니다. 이 곡들이 궁정에서 실제로 연주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며, 연주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여섯 곡, 여섯 번의 편성 실험
이 여섯 곡이 유독 특별한 이유는 곡마다 편성과 독주 악기의 조합이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바흐는 협주곡이라는 정해진 형식 안에서 악기의 배치와 역할을 끊임없이 뒤섞으며 전혀 다른 음향을 빚어내거든요. 그러니 이 작품은 그저 똑같은 틀을 여섯 번 우려낸 결과물이 아닙니다. 협주곡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한데 긁어모은 묶음이라고 할 수 있죠.
당시 협주곡의 굵직한 모델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식 콘체르토 그로소였습니다. 소수의 독주 그룹과 전체 합주가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이거든요. 한편 비발디는 독주자와 합주가 교대하는 짜임새를 아주 선명하게 다듬었고, 바흐 역시 비발디의 협주곡을 건반용으로 편곡하며 그 구조를 뼛속까지 익혔습니다. 바흐는 이러한 이탈리아 협주곡의 원리를 챙기면서도 곡마다 독주 그룹의 진용을 과감하게 뒤엎습니다. 어떤 곡은 독주 그룹의 덩치를 한껏 키우고, 어떤 곡은 아예 독주자와 합주의 구분을 흐려버리죠. 하나씩 뜯어보면 이렇습니다.
- 2번(BWV 1047) — 트럼펫·리코더·오보에·바이올린이라는, 음색도 음량도 딴판인 네 악기를 덜컥 나란히 세웁니다. 특히 트럼펫은 아주 높은 음역을 맡아 합주 전체를 거침없이 뚫고 올라오죠.
- 3번(BWV 1048) — 바이올린 셋, 비올라 셋, 첼로 셋과 통주저음으로 짜여 있으며, 독주자와 합주단을 칼같이 가르지 않습니다. 아홉 대의 현악기가 저마다 선율을 팽팽하게 주고받으며 곡을 밀고 가거든요.
- 4번(BWV 1049) — 바이올린 하나와 리코더 둘을 독주 악기로 내세웁니다. 날렵하게 움직이는 바이올린 선율과 부드럽게 흐르는 리코더의 음색이 묘한 대비를 이루죠.
- 5번(BWV 1050) — 플루트·바이올린과 함께 하프시코드가 독주 그룹에 끼어듭니다. 급기야 1악장 후반에는 하프시코드가 긴 독주를 시원하게 뿜어내며 아예 음악의 중심에 섭니다.
- 6번(BWV 1051) — 높은 음역에서 밝은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을 미련 없이 다 빼버리고, 비올라와 옛 현악기인 비올라 다 감바를 중심에 둡니다. 그래서 여섯 곡 가운데 유독 낮은 음역과 어두운 음색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이 기상천외한 조합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2번에서 유독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트럼펫·리코더·오보에·바이올린을 한 독주 그룹에 나란히 세우면 음량과 음색의 균형을 맞추기가 여간 깐깐한 일이 아니거든요. 밸브가 없던 시절의 트럼펫은 높은 음역에서 낼 수 있는 음이 제한적이었고, 소리마저 워낙 커서 여린 리코더쯤은 단숨에 덮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흐는 바로 이 트럼펫에 높고 화려한 선율을 떡하니 길게 맡겨버렸죠. 오늘날에도 이 파트가 트럼펫 주자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까다로운 대목으로 꼽힐 정도입니다. 서로 결이 다른 네 악기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트럼펫이 합주 위로 찬란하게 솟아오르기 때문에, 이 곡은 여섯 곡 가운데서도 귀를 번쩍 뜨이게 할 만큼 화려하게 들립니다.
특히 3번에는 바로크 협주곡에서도 꽤나 드문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빠른 1악장과 빠른 3악장 사이에 놓인 3번의 2악장 악보에는 단 한 마디와 화음 두 개만 적혀 있거든요. 굽이굽이 이어지는 느린 악장을 따로 써두는 대신,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는 짧은 연결부만 툭 던져놓은 셈입니다. 연주자들은 적힌 화음만 연주하기도 하고, 그 틈새에 짧은 장식이나 즉흥적인 카덴차를 슬쩍 덧붙이기도 합니다. 똑같은 3번인데도 2악장이 연주마다 유독 다르게 들릴 수 있는 이유죠. 바흐가 남겨둔 이 짧은 여백을 어떻게 채울지는 오롯이 연주자의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여섯 조합은 하나도 겹치지 않습니다. 이 점을 알고 들으면, 이 묶음은 단순히 협주곡 여섯 곡을 모은 작품이 아니라 독주자와 합주단의 관계를 여러 방식으로 시험한 치열한 실험장처럼 다가옵니다. 독주부와 합주부가 교대하는 비발디식 협주곡의 짜임새를 떠올려 보면, 바흐가 곡마다 악기의 조합과 역할을 얼마나 과감하게 바꿨는지도 짐작할 수 있죠. 그 거침없는 실험의 첫 장을 여는 곡이 바로 1번입니다.
1번: 사냥터에서 온 협주곡 (BWV 1046)
1번에는 여섯 곡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음악적 재료가 쓰였습니다. 첫 악장의 바탕이 된 음악은 바흐가 1721년보다 훨씬 앞선 1713년 무렵 바이마르에서 작곡한 세속 칸타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오직 즐거운 사냥뿐(BWV 208)〉과 관련이 있거든요. 사냥을 주제로 삼은 음악답게, 곡은 사냥터의 신호나팔을 연상시키는 호른 소리로 호기롭게 시작합니다.
사냥 칸타타라는 배경을 알고 들으면 1번에서 호른이 왜 그토록 눈에 띄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여섯 곡 가운데 호른이 당당하게 주역으로 나서는 곡은 오직 1번뿐이거든요. 밸브가 없던 시절의 자연 호른은 사냥터에서 멀리 신호를 보낼 때 쓰이던 악기인지라, 그 툭툭 불거지는 울림만으로도 탁 트인 야외의 분위기를 단숨에 불러옵니다. 바흐는 이 거칠고 투박한 나팔 소리와 오보에·현악이 빚어내는 정교한 궁정풍 음색을 한데 엮어, 사냥터의 힘찬 뜀박질과 궁정의 세련된 공기를 아주 선명하게 대비시키죠.
바흐는 이 곡의 편성과 구성을 한 차례 훌쩍 키워냈습니다. 1713년 무렵의 초기 판본을 들여다보면 바이올리노 피콜로와 빠른 3악장, 그리고 마지막 춤곡 악장에 나오는 폴란드풍 춤 폴라카가 아예 빠져 있었거든요. 다만 미뉴에트로 끝맺는 춤곡 악장만큼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8년 뒤 헌정본을 만들 때 바흐는 바이올리노 피콜로를 얹고 3악장과 폴라카를 새로 끼워 넣어, 사냥 나팔로 문을 여는 서곡풍 음악을 제법 규모 있는 협주곡으로 훌륭히 발전시켰습니다. 두 판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바흐가 손에 쥔 음악적 재료를 어떻게 넓혀갔는지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른을 협주곡의 전면에 이토록 떡하니 내세운 것은 당대에도 꽤나 낯선 선택이었습니다. 자연 호른은 밸브가 없어 오로지 입술과 오른손만으로 음을 골라내야 했고, 그만큼 정확한 음정을 짚어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사냥터에서나 쩌렁쩌렁 울리던 이 야외 악기를 실내 협주곡의 어엿한 주역으로 앉히려면, 그야말로 기가 막힌 기교를 갖춘 연주자가 필수적이었습니다. 바흐가 1번에 심어둔 까다로운 호른 성부를 보면, 그가 이미 수준 높은 연주를 머릿속에 그리고 곡을 키웠음을 짐작할 수 있죠.
1악장 — 나팔과 오보에가 자리를 다툽니다
뜸 들이는 서주 따위는 없습니다. 첫마디부터 호른 둘이 사냥 신호를 불어 젖히듯 훅 치고 들어오고, 오보에와 현악이 그 틈새를 기민하게 파고들죠. 재미있게도 호른과 나머지 악기군은 서로 딴판으로 박을 쪼갭니다. 호른이 셋씩 묶이는 리듬을 뿜어내면 오보에와 현악은 둘씩 나뉘는 리듬으로 맞받아치거든요. 같은 마디 안에서 이 엇갈리는 두 리듬이 묘하게 겹치면서, 음악에는 쉴 새 없이 밀고 당기는 긴장이 팽팽하게 감돕니다. 그래서 첫 악장은 줄 맞춰 걷는 정돈된 행진이라기보다, 여러 악기군이 한꺼번에 목청을 돋우는 활기찬 소란처럼 들립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위의 네덜란드 바흐 협회 연주에서 첫 30초에 귀를 기울이면, 호른이 셋씩 묶어 연주하는 리듬과 오보에가 둘씩 나누어 연주하는 리듬이 겹치며 1번 특유의 활기찬 긴장을 빚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2악장 — 잠깐 숨을 고르는 단조
그토록 소란스러웠던 1악장이 끝나면 2악장은 분위기가 돌변해 갑자기 어두워집니다. 조성은 쨍한 F장조에서 그와 짝을 이루는 라단조로 미끄러지듯 바뀌고, 오보에 하나와 바이올리노 피콜로가 서로의 선율을 아련하게 이어받으며 느릿하게 노래하죠. 바로 이 대목에서 바이올리노 피콜로의 존재감이 처음으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보통 바이올린보다 조금 작고 3도 높게 조율한 악기인지라, 같은 현악기라도 한결 밝고 날렵한 소리를 내거든요. 바흐는 호른이 방방 띄워놓았던 사냥의 분위기를 잠시 차분히 가라앉힌 뒤 오보에와 바이올리노 피콜로를 앞세워, 한 곡 안에서 1악장의 왁자지껄한 소란과 2악장의 짙은 그늘을 아주 또렷하게 대비시킵니다.
3·4악장 — 미뉴에트가 세 번이나 돌아옵니다
1번의 튀는 성격은 악장 구성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나머지 다섯 곡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빠름-느림-빠름 3악장인데, 유독 1번만 악장이 넷이거든요. 3악장에서 바이올리노 피콜로가 앞장서서 신나게 몰아친 다음, 4악장은 아예 작정한 듯 춤곡 모음으로 이어집니다. 우아한 궁정 춤 미뉴에트가 중심축을 잡고, 그 틈틈이 성격이 판이한 짧은 춤들이 능청스럽게 끼어들죠. 목관만 옹기종기 모인 대목, 폴란드풍 춤 폴라카, 호른과 오보에가 다시 힘차게 나서는 대목이 차례로 지나가고, 그때마다 거짓말처럼 처음의 미뉴에트가 돌아와 전체를 단단히 묶어줍니다. 마치 협주곡 한 편이 화려한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며 막을 내리는 듯한 묘한 마무리입니다.
하프시코드가 주인공으로 나서는 순간
1번이 여섯 곡의 웅장한 문을 여는 곡이라면, 5번은 이 묶음에서 하프시코드의 위상이 가장 극적으로 달라지는 곡입니다. 바로크 시대의 하프시코드는 대개 뒤에서 화음을 묵묵히 채우고 박자와 화성의 기준을 잡아주며 합주를 떠받치는 살림꾼이었죠. 그런데 5번 1악장 끝머리에서는 다른 악기들이 돌연 연주를 멈추고, 얌전히 반주나 하던 하프시코드가 홀로 긴 독주를 거침없이 펼쳐냅니다.

5번 1악장에서 하프시코드는 고분고분한 반주 역할을 훌훌 벗어던지고 어엿한 독주 악기로 전면에 나서며 곡의 절정을 힘차게 이끕니다. 이처럼 건반악기에 두드러진 독주를 맡겼다는 점에서, 5번은 건반 협주곡의 기나긴 역사에서 꽤나 중요한 초기 사례로 심심찮게 호명되거든요. 이후 여러 작곡가는 건반악기와 관현악단이 대등하게 선율을 주고받는 협주곡을 빚어냈고, 이러한 흥미로운 구성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에 이르러 한층 선명한 모습으로 만개하게 됩니다.
이 독주 대목은 처음부터 지금처럼 길지 않았습니다. 바흐는 5번을 두 번이나 고쳤고, 초기 판본의 독주는 지금 우리가 듣는 형태보다 훨씬 짧았거든요. 나중에는 아예 이 부분을 훌쩍 늘려 하프시코드가 빠른 음형과 화음을 쉴 새 없이 펼치는 긴 독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당시 협주곡에서 얌전히 반주나 맡던 건반악기에 이만한 독주 무대를 내어주는 일은 퍽 드물었기에, 이 대목은 5번의 역사적 의미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요즘은 이 하프시코드 파트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경우도 흔하지만, 바흐 당대의 소리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듣고 싶다면 역시 하프시코드 녹음을 고르는 편이 낫죠.
5번은 편성에서도 제법 눈에 띕니다. 하프시코드와 나란히 독주를 맡는 관악기인 트라베르소는 가로로 부는 바로크 시대의 플루트인데, 오늘날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하는 가로 플루트로 고스란히 이어진 악기거든요. 당시 독일 궁정에서는 세로로 부는 리코더도 여전히 널리 쓰였으므로, 비교적 새로운 가로 플루트를 독주 악기로 떡하니 내세운 편성은 꽤나 신선하게 들렸을 겁니다. 하프시코드는 화려한 음형을 막힘없이 펼치고 플루트는 유려하게 노래하듯 선율을 이어 가며, 바이올린은 이 두 악기와 번갈아 선율을 주고받습니다. 세 악기의 음색과 역할이 워낙 뚜렷해 5번은 입문자도 음악의 굽이치는 흐름을 비교적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죠.
🎧 여기서 들으세요 — 5번 1악장이 끝나갈 무렵, 현악과 플루트가 하나씩 연주를 멈추면서 하프시코드의 빠른 음형이 전면으로 드러납니다. 혼자 남은 하프시코드가 화음과 선율을 쉼 없이 펼치는 긴 독주가 이 악장의 핵심 대목입니다.
24그로셴에서 우주까지
헐값에 팔렸던 이 악보는 훗날 한 번 더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베를린 도서관은 쏟아지는 폭격을 피해 귀중한 자필본들을 부랴부랴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거든요. 브란덴부르크 자필본을 실은 기차가 이동 중 그만 공습을 받자, 이 악보를 맡은 사서가 원고를 외투 안에 깊숙이 감추고 기차에서 뛰어내려 숲에 숨었다고 전해집니다. 천만다행으로 그 기지 덕분에 원고는 전쟁의 무자비한 마지막 고비를 간신히 넘겼죠.
1977년, 인류는 훗날 태양계 밖으로 향하게 될 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에 지구의 소리를 담은 금도금 음반을 각각 실어 쏘아 올렸습니다. 외계의 누군가가 언젠가 우연히 들을지도 모를 이 음반에는 바흐의 음악 세 곡이 당당히 수록됐거든요. 그 첫 곡이 바로 카를 리히터가 지휘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1악장입니다. 작곡된 지 250여 년 뒤, 고작 은화 24그로셴에 처분됐던 악보의 음악은 어엿하게 지구를 대표하는 소리 가운데 하나가 되어 우주로 뻗어 나갔습니다. 정작 헌정을 받은 변경백은 끝내 듣지 못했지만, 한때 제값을 받지 못하고 헐값에 팔렸던 여섯 곡 가운데 한 악장을 담은 음반은 오늘날 탐사선과 함께 태양권 밖의 고요한 성간 공간을 묵묵히 지나고 있죠.
악보와 함께 듣기
이 여섯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 듣고 싶다면 아래 전곡 연주가 편합니다. 1번의 호기로운 사냥 나팔부터 6번의 짙고 어두운 저음까지, 곡마다 악기 조합이 마법처럼 어떻게 바뀌는지 귀로 찬찬히 따라가 보세요.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1번의 악보 자료가 훤히 공개되어 있습니다. 악보를 쓱 펼쳐 각 악기가 맡은 성부와 전체 편성을 한 번 살펴보세요.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녹음이 워낙 산더미처럼 많아 오히려 콕 집어 하나를 고르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는 성격이 아주 뚜렷하게 엇갈리는 세 가지 연주를 골랐거든요. 시대악기에 입문하기 제격인 연주와 현대악기 대편성의 묵직하고 오랜 표준으로 꼽히는 연주, 요즘 감각을 과감하게 드러낸 도전적인 해석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참고 자료
- Wikipedia — Brandenburg Concertos (헌정·편성·재발견 개요)
- IMSLP — Brandenburg Concerto No.1, BWV 1046 (원본 악보)
- Wikipedia — Was mir behagt (사냥 칸타타, BWV 208)
- Netherlands Bach Society — Brandenburg Concerto No.5, BWV 1050
이어서 듣기 — 협주곡이라는 형식이 걸어온 길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협주곡이라는 것이 기필코 한 명의 독주자만 앞세우는 형식이 아니라는 점을 통쾌하게 보여 줍니다. 여러 독주자가 나란히 서서 함께 연주하거나, 주로 반주만 맡던 악기가 버젓이 독주 악기로 나서는 발칙한 방식은 그 뒤 200년 동안 참으로 다채로운 모습으로 이어졌거든요. 다음 다섯 곡을 찬찬히 들으며 여러 시대에 걸쳐 협주곡이 과연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 베토벤 삼중 협주곡 —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로 이루어진 독주 악기군이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작품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긴장감 있게 주고받으며 극적인 흐름을 만드는 작품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 바이올린 독주와 오케스트라가 긴밀하게 주고받는 낭만주의 협주곡
-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 독주 바이올린이 노래하듯 긴 선율을 펼치는 낭만주의 협주곡
- 엘가 첼로 협주곡 — 첼로 독주가 절제된 선율로 내밀한 정서를 들려주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