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송어 5중주 — 송어는 4악장에만 헤엄친다

스물두 살의 가장 환했던 여름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
곡명
피아노 5중주 A장조, D.667 《송어》 (Op. posth. 114)
(Piano Quintet in A major, D. 667 “Trout”)
작곡 기간
1819년 여름 (슈타이어에서 착수) ~ 같은 해 가을 (빈에서 완성)
악장
5악장
I. Allegro vivace (A장조)
II. Andante (F장조)
III. Scherzo: Presto (A장조)
IV. Andantino – Allegretto (D장조, 〈송어〉 주제와 변주)
V. Allegro giusto (A장조)

1악장. 빠르고 생기 있게
2악장. 느리게
3악장. 스케르초: 매우 빠르게
4악장. 조금 느리게 – 조금 빠르게
5악장. 정확한 빠르기로
편성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제2바이올린 없이 콘트라베이스를 넣은 변칙 편성)
초연
슈타이어, 질베스터 파움가르트너의 살롱에서 사적으로 연주
(공개 초연·정확한 날짜는 기록이 분명치 않음)
출판
1829년, 빈 (작곡가 사후 1년)
연주 시간
약 38~40분
3줄 요약
  • 스물두 살 슈베르트가 친구와 떠난 시골 휴가에서 한 부자 아마추어 첼리스트에게 주문받아 쓴, 5악장짜리 피아노 5중주입니다.
  • 제목의 ‘송어’는 5악장 중 4악장 한 곳에만 나옵니다. 슈베르트가 2년 전 쓴 가곡 〈송어〉를 주제로 변주를 펼친 악장이지요.
  • 표준 피아노 5중주와 달리 제2바이올린을 빼고 콘트라베이스를 넣어, 실내악에서 보기 드물게 밝고 투명한 소리가 났습니다.

제목은 《송어》인데, 정작 송어가 헤엄치는 건 다섯 악장 가운데 4악장 하나뿐입니다. 그것도 슈베르트가 2년 전에 써둔 가곡 〈송어〉에서 통째로 빌려온 선율이지요. 곡 전체에 붙은 별명이 알고 보면 한 악장, 그것도 재활용한 멜로디에서 왔다는 얘기입니다. 한 가지 더. 우리가 아는 그 천진한 〈송어〉는 원래 천진한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원작 시의 마지막 연은 “젊은 여인들이여, 사내의 꾐을 조심하라”는 서슬 퍼런 경고였는데, 슈베르트가 그 칼날을 잘라내고 물고기만 남겨둔 까닭입니다. 스물두 살의 그는 왜 경고를 지우고 햇빛만 남겼을까요?

빌헬름 아우구스트 리더가 그린 프란츠 슈베르트 수채화 초상
친구 리더가 남긴 슈베르트의 얼굴. 이 곡을 쓸 무렵, 그는 보기 드물게 환한 한 철을 보내고 있었지요.
먼저 듣기 — 마르틴 헬름헨,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와 동료들의 연주. 글을 읽는 동안 가볍게 틀어두세요.

스물두 살, 생애 가장 빛났던 여름

1819년 여름, 스물두 살 청년이 빈을 떠나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행선지는 오스트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슈타이어. 두 강이 만나는 자리에 붉은 지붕이 빼곡한, 그림엽서 같은 곳이었지요. 동행은 요한 미하엘 포글이었습니다. 빈 궁정 오페라에서 이름을 날린 바리톤이자, 슈베르트보다 스물아홉 살이나 많은 대선배였거든요.

오스트리아 슈타이어 구시가지 전경 — 강과 붉은 지붕의 옛 건물들
두 강이 만나는 슈타이어 구시가지. 이 그림엽서 같은 도시에서 송어가 헤엄치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차가 무색하게 둘은 단짝이었습니다. 포글이 슈베르트의 가곡을 노래하면 슈베르트가 피아노를 쳤지요. 빈의 살롱마다 이 콤비를 불렀고, 친구들은 둘이 함께 길을 나서는 모습을 두고 “전투에 나서는 전사들 같다”며 캐리커처까지 그렸답니다. 그러니 이 여행은 그냥 휴가가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또 두 음악가가 함께 떠난 연주 여행에 가까웠어요.

바리톤 가수 요한 미하엘 포글의 19세기 석판화 초상
바리톤 요한 미하엘 포글. 스물아홉 살 위였지만, 둘은 누구보다 가까운 음악 동지였지요.

슈타이어에서의 하루는 느긋했습니다. 아침이면 강가를 거닐고, 낮에는 지역 음악 애호가들의 집을 돌며 연주했지요. 저녁이면 누군가의 거실에 모여 슈베르트가 새로 쓴 곡을 함께 펼쳐 보았고요. 청년은 이 도시에 단단히 반했던 모양입니다. 산과 강에 둘러싸인 거리, 음악을 좋아하는 이웃들, 그리고 어딜 가나 환대받는 분위기. 빈에서 늘 돈에 쪼들리고 출셋길이 막혀 있던 그에게, 이곳은 잠시나마 전혀 다른 세상이었던 거죠.

왜 이 여름이 중요할까요? 슈베르트의 인생을 알면 답이 보입니다. 그는 곧 가난과 병에 시달리고, 스물일곱에는 〈죽음과 소녀〉 같은 곡으로 자기 죽음을 응시하게 됩니다.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나거든요. 그런 짧고 고단한 생애에서, 1819년 슈타이어의 여름은 보기 드물게 근심 없이 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햇빛, 강물, 좋은 친구, 그리고 그를 떠받드는 사람들. 송어 5중주의 그 끝없는 명랑함은 거저 나온 게 아니라, 이 짧은 행복에서 길어 올린 물이었던 셈이지요.

그리고 슈타이어에는, 이 청년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첼로 켜는 부자가 건넨 주문

그 남자의 이름은 질베스터 파움가르트너. 슈타이어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광산업자였고, 동시에 음악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애호가였습니다. 자기 집 2층에 음악실과 살롱을 갖춰 두고, 한낮이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연주회를 열었지요. 악보도 어지간한 도서관 부럽지 않게 모아 두었고요. 게다가 본인이 직접 첼로를 켰습니다. 실력은 아마추어였지만 열정만은 프로급이었던 모양이에요.

모리츠 폰 슈빈트가 그린 슈베르티아데 — 살롱에 모여 음악을 듣는 사람들
슈빈트가 그린 ‘슈베르티아데’. 파움가르트너의 살롱도 꼭 이런 풍경이었을 겁니다.

파움가르트너가 청년에게 곡을 하나 부탁합니다. 그런데 주문이 꽤 구체적이었어요. 첫째, 요한 네포무크 후멜이 쓴 어떤 5중주가 있는데 그 편성 그대로 써 달라. 둘째,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인데 그 선율로 변주곡 한 악장을 넣어 달라. 말하자면 ‘맞춤 제작’ 의뢰였던 거죠.

여기서 그 유명한 변칙 편성이 정해집니다. 보통 ‘피아노 5중주’라고 하면 피아노 한 대에 현악 4중주(바이올린 둘, 비올라, 첼로)를 더한 형태예요. 슈만도 브람스도 그렇게 썼지요. 그런데 후멜의 모델은 달랐습니다. 바이올린은 하나뿐이고, 대신 맨 아래에 콘트라베이스가 떡 버티고 있었거든요. 파움가르트너의 살롱에 마침 그 악기들을 다룰 사람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전해집니다.

참고로 후멜은 당대 유럽에서 손꼽히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습니다. 어린 시절 모차르트의 집에 얹혀살며 직접 배운 적도 있고, 한때는 베토벤과 빈 최고 자리를 다투던 인물이었지요. 그런 후멜의 5중주를 본보기로 삼았다는 건, 슈베르트가 만만한 살롱용 소품을 대충 써낸 게 아니라 당대 정상급 모델을 정면으로 마주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슈베르트는 그 틀만 빌렸을 뿐, 안은 자기만의 색으로 가득 채웠어요.

그런데 이 변칙이, 결과적으로 곡의 운명을 바꿔 놓습니다.

제2바이올린을 빼고 콘트라베이스를 앉힌 건 균형을 깨려는 게 아니라, 첼로와 피아노를 물 위로 띄우려는 설계였거든요. 맨 밑바닥을 콘트라베이스가 든든히 깔아 주니, 첼로는 무거운 베이스 노릇에서 풀려나 노래하는 높은 음역으로 올라갑니다. 피아노 오른손도 마음 놓고 제일 반짝이는 고음역에서 찰랑거릴 수 있고요. 그래서 이 곡은 실내악인데도 답답한 구석이 없습니다. 다섯 악기가 위로, 위로 떠오르는 느낌. 송어가 맑은 개울에서 헤엄치는 그 느낌이, 사실은 악기 배치에서 먼저 나온 셈이지요.

원래 〈송어〉는 동요가 아니었다

이쯤에서 정작 주인공인 가곡 〈송어〉(Die Forelle, D.550)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슈베르트가 이 노래를 쓴 건 1819년 여행보다 2년 앞선 1817년, 그러니까 스무 살 무렵이었습니다.

가사는 슈베르트가 직접 쓴 게 아니에요.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다니엘 슈바르트라는 시인의 시였지요. 이 사람의 사연이 만만치 않습니다. 뷔르템베르크의 군주를 비판했다가 미움을 사, 재판도 없이 호엔아스페르크 요새에 10년간 갇혔거든요. 〈송어〉의 시는 바로 그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시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맑은 개울에 송어 한 마리가 즐겁게 헤엄칩니다. 낚시꾼이 노리지만, 물이 맑아 송어가 미끼를 피하지요. 약이 오른 낚시꾼은 일부러 물을 흐려 버립니다. 시야를 잃은 송어는 결국 낚싯바늘에 걸리고요.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안타까운 물고기 이야기 같지만, 슈바르트가 갇힌 몸으로 이 시를 쓴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원작의 마지막 연이 이렇게 경고하거든요. “젊은 처녀들이여, 번지르르한 사내가 물을 흐리거든 정신을 바짝 차려라.” 송어는 순진한 사람, 흐린 물은 달콤한 속임수, 낚시꾼은 유혹하는 자였던 겁니다.

그런데 슈베르트는 노래로 옮기면서 바로 그 마지막 연, 즉 교훈을 통째로 잘라냈습니다. 남은 건 햇빛 받으며 헤엄치다 어이없이 잡히는 송어의 장면뿐. 덕분에 노래는 무겁지 않고 발랄해졌고, 피아노 반주에는 개울물이 찰랑이는 듯한 그 유명한 반주 음형이 깔립니다. 다만 3절, 송어가 잡히는 순간만은 음악이 슬쩍 단조로 그늘지지요. 칼날은 지웠지만, 한 번 베이는 순간의 서늘함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지요.

이 가곡은 발표되자마자 슈베르트의 친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얼마나 사랑받았던지, 슈베르트가 밤늦게 친구에게 줄 악보를 베껴 쓰다 잠결에 잉크병을 모래통인 줄 알고 쏟아 한 장을 망쳤다는 일화까지 전해질 정도지요. 사실 여부를 떠나, 그만큼 너도나도 〈송어〉 악보를 손에 넣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도 이 선율은 영 낯설지 않아요. 음악 교과서에 단골로 실리고 가사를 붙여 합창으로도 부르니까요. “냇물에 한가로이 헤엄치는 송어…” 하는 그 노래를 어디선가 흥얼거려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송어 5중주의 핵심 멜로디를 알고 있던 거랍니다.

💡 사실은요 — “송어 5중주의 〈송어〉가 흥겨운 동요”라는 인상은 절반만 맞습니다. 슈바르트의 원시는 사내의 유혹을 경계하라는 풍자시였고(1782년 옥중 집필), 슈베르트가 1817년 가곡으로 옮기며 그 교훈 연을 덜어낸 것이지요. 출처: Wikipedia 〈Die Forelle〉 항목, 슈바르트 원시 4연 구조.

다섯 악장을 따라 흐르는 물

자, 이제 곡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송어 5중주는 보통의 실내악보다 한 악장이 더 많은 5악장 구성입니다. 악장 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슈베르트가 이 곡에서 마음껏 놀았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아래 전곡 연주를 틀어 두고, 악장마다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 따라가 보세요.

송어 5중주 전곡 실황. 다섯 악기가 어떻게 위로 떠오르는지 눈으로도 확인해 보세요.

1악장 Allegro vivace — 문을 활짝 여는 피아노

피아노가 위로 솟구치는 한 줄기 펼침화음으로 문을 엽니다. 그러면 현악기들이 기다렸다는 듯 노래를 받아 안고요. 앞에서 말한 그 ‘떠오르는’ 음향이 첫 마디부터 귀에 들어옵니다. 콘트라베이스가 바닥을 받치는 동안 첼로와 피아노가 높은 데서 반짝이거든요. 무겁게 시작해 비장하게 끌고 가는 다른 작곡가의 첫 악장과 달리, 이 악장은 처음부터 밝은 데로 손을 뻗습니다. 스물두 살의 자신감이 그대로 소리가 된 듯하지요.

2악장 Andante — 세 번 자리를 옮기는 노래

2악장은 느긋하게 노래하는 안단테입니다. 슈베르트는 여기서 가곡 작곡가의 본색을 드러내요. 선율이 흐르다가 슬쩍 다른 조성으로 자리를 옮기고, 또 한 번 옮기고, 그러다 처음 자리로 돌아옵니다. 같은 노래를 빛이 다른 세 방으로 데리고 다니는 느낌이랄까요. 화려한 기교는 없습니다. 대신 가만히 듣다 보면 마음이 풀어지는, 슈베르트 특유의 그 따뜻함이 가득합니다.

이 악장을 듣다 보면 슈베르트가 왜 ‘가곡의 왕’이라 불리는지 알게 됩니다. 그는 600곡이 넘는 가곡을 쓰며 짧은 선율 하나로 감정을 통째로 담는 법을 익힌 사람이었어요. 그 솜씨가 기악곡에도 그대로 배어 나옵니다. 악기들이 마치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안단테가 끝날 무렵이면, 화려한 1악장과 흥겨운 3악장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을 적시는, 이 곡의 고요한 심장 같은 악장임을 느끼게 됩니다.

3악장 Scherzo: Presto — 발을 구르는 시골 춤

3악장은 빠른 스케르초입니다. 악센트가 거칠게 튀고, 다 함께 발을 구르며 몰아붙이지요. 슈타이어 시골 마을의 흥겨운 춤판을 옮겨 놓은 듯합니다. 그러다 가운데 트리오 부분에서 갑자기 숨을 고르며 한결 부드러워지고요. 거칠게 치고 들어왔다가 살며시 비켜서는, 이 대비가 듣는 재미입니다. 짧지만 곡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악장이에요.

그리고 송어가 나타난다 — 4악장

드디어 제목값을 하는 악장입니다. 파움가르트너가 콕 집어 주문한 바로 그 변주곡 악장이지요. 구조는 단순명료합니다. 먼저 현악기들이 가곡 〈송어〉의 그 친숙한 선율을 깨끗하게 제시합니다. 그다음 다섯 번의 변주가 이어지고요.

변주가 거듭될 때마다 선율은 악기들 사이를 옮겨 다닙니다. 처음엔 피아노가 화려하게 받아 가고, 다음엔 비올라와 첼로가 노래를 넘겨받지요. 콘트라베이스까지 잠깐 주인공이 되는 대목도 있고요. 한 마리 송어가 악기에서 악기로 헤엄쳐 다니는 듯한 광경입니다. 변주 도중에는 슬쩍 단조로 그늘이 지기도 해요. 원곡에서 송어가 잡히던 그 서늘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입니다.

변주마다 표정이 다릅니다. 어떤 변주에서는 피아노가 주제 위로 잔물결 같은 음표를 흩뿌리며 화려하게 치장하고, 어떤 변주에서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낮은 데서 묵직하게 선율을 받아 노래합니다. 한 대목에서는 분위기가 단조로 가라앉으며 잠깐 그늘이 드리워지고요. 듣는 사람은 같은 멜로디를 계속 듣는데도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익숙한 얼굴이 옷을 갈아입고 자꾸 다른 방에서 나타나는 격이니까요. 변주곡이라는 형식이 왜 재미있는지, 이 악장 하나가 또렷하게 보여 줍니다.

백미는 마지막입니다. 모든 변주가 끝나고 코다에 이르면, 슈베르트는 원곡 가곡에 있던 그 찰랑이는 피아노 반주를 그대로 불러옵니다. 변주 내내 모습을 감추고 있던 ‘개울물’이 마지막에야 돌아오는 거죠. 그 순간, 잠깐 잊고 있던 노래의 원래 풍경 ― 햇빛, 맑은 물, 헤엄치는 송어 ― 이 한꺼번에 되살아납니다. 변주곡이 단순한 기교 자랑이 아니라 한 편의 짧은 이야기가 되는 지점이지요.

슈베르트 앙상블의 전곡 연주. 4악장에서 선율이 악기 사이를 헤엄치는 모습을 귀로 좇아 보세요.

🎧 여기서 들으세요 — 4악장 첫머리, 현악기들이 〈송어〉 선율을 꾸밈없이 제시하는 대목입니다. 이 깨끗한 주제가 머리에 박혀 있어야, 뒤따르는 변주가 얼마나 영리하게 모습을 바꾸는지 들립니다.

5악장 Allegro giusto — 헝가리 향기가 도는 마무리

피날레는 다시 활기를 끌어올립니다. 이 악장에는 헝가리·동유럽 민속 음악의 색채가 슬쩍 비쳐요. 당시 빈 사람들이 즐기던 이국적인 리듬이지요. 큰 단락 하나를 통째로 되풀이하는 구성이라, 같은 흥이 두 번 밀려오는 기분입니다. 거창한 비극도, 장엄한 승리의 선언도 없습니다. 그냥 끝까지 명랑하게, 송어처럼 가볍게 헤엄쳐 빠져나가지요. 어떤 곡은 끝에서 인생을 설교하지만, 이 곡은 끝까지 그저 즐겁습니다. 그게 송어 5중주의 미덕이고요.

정작 슈베르트는 듣지 못한 채

이렇게 사랑스러운 곡인데, 한 가지 서글픈 사실이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이 곡이 세상에 정식으로 나오는 걸 끝내 보지 못했어요. 송어 5중주는 살아생전 출판되지 않았거든요. 파움가르트너의 살롱에서, 또 친구들 모임에서 사적으로 연주되었을 뿐입니다. 악보가 인쇄되어 서점에 깔린 건 1829년, 슈베르트가 서른한 살로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지난 뒤였지요.

출판이 늦어진 데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슈베르트는 평생 출판사와의 관계에서 운이 없었거든요. 가곡은 더러 팔렸지만, 규모가 큰 기악곡은 출판사들이 선뜻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무명에 가까운 젊은 작곡가의 5중주를, 그것도 콘트라베이스가 들어가는 별난 편성의 곡을 인쇄해 팔겠다고 나설 출판사가 당시엔 드물었던 거죠. 결국 이 곡은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음악을 아끼던 사람들의 손을 거쳐서야 빛을 봤습니다.

생각하면 묘합니다. 오늘날 송어 5중주는 슈베르트 실내악의 얼굴 같은 곡이 되었습니다. 입문자에게 가장 먼저 권하는 실내악이자, 음악 교과서와 라디오에 단골로 등장하는 멜로디고요. 가곡 〈송어〉의 그 선율을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본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이미 이 곡의 일부를 알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정작 작곡가 본인은 자기 곡이 이렇게 사랑받는 미래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떠났던 거예요.

어쩌면 그래서 이 곡이 더 귀합니다. 슈베르트가 행복을 의심하지 않던 짧은 한 철, 그 빛을 통째로 박제해 둔 음악이니까요. 스물일곱의 슈베르트는 〈죽음과 소녀〉로 자기 부고를 썼지만, 스물둘의 슈베르트는 송어처럼 햇빛 속에서 헤엄쳤습니다. 우리는 그 여름을 영영 들을 수 있게 된 거고요.

전설이 된, 어느 여름의 다섯 친구

송어 5중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1969년 여름, 런던에서 벌어진 일이지요.

당시 클래식계의 젊은 스타 다섯이 모였습니다. 피아노에 다니엘 바렌보임, 바이올린에 이츠하크 펄먼, 비올라에 핀커스 주커만, 첼로에 자클린 뒤 프레, 그리고 콘트라베이스에는 놀랍게도 지휘자 주빈 메타가 앉았어요. 다들 이십 대였고, 막역한 친구 사이였지요. 다큐멘터리 감독 크리스토퍼 누펜이 이들이 리허설하고 농담하고 연주하는 일주일을 카메라 다섯 대로 담았습니다. 그렇게 나온 영상 〈The Trout〉은 클래식 음악 영화 역사상 가장 자주 방송된 작품 중 하나가 됐고요.

이 영상이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화면 속 다섯 젊은이가 진짜로 즐거워 보이거든요. 200년 전 슈타이어에서 슈베르트와 친구들이 그랬듯이요. 송어 5중주는 원래 그렇게, 재능 있는 친구들이 모여 신나게 연주하라고 태어난 곡입니다. 콘서트홀의 엄숙함보다 살롱의 웃음에 더 어울리는 음악. 어쩌면 그게 이 곡을 200년 동안 닳지 않게 만든 비결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실내악이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첫 곡으로 송어 5중주만 한 게 없습니다. 교향곡처럼 거대한 편성도 아니고, 현악 사중주처럼 잔뜩 긴장하며 귀를 곤두세울 필요도 없거든요. 그저 다섯 악기가 사이좋게 주고받는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4악장에서 그 익숙한 송어 선율이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클래식의 문턱이 이렇게 낮아도 되나 싶을 만큼 친절한 곡이에요. 애초에 슈베르트가 친구들과 즐기려고 쓴 음악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악보와 함께 듣기

제목값을 하는 4악장(〈송어〉 주제와 변주)을 악보가 흐르는 영상으로. 선율이 악기 사이를 옮겨 다니는 게 눈에 보입니다.

전곡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거든요. 피아노 5중주 D.667 《송어》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송어 5중주는 명반이 워낙 많아 고르기가 즐거운 곡입니다. 성격이 뚜렷이 다른 세 장을 골랐어요. 입문용, 정통 레퍼런스, 그리고 색다른 도전 한 장입니다.

👑 첫 감상 추천

클리퍼드 커즌 (피아노) · 빈 옥텟 단원

Decca · 1958

따뜻하고 균형 잡힌, 두고두고 회자되는 표준 연주입니다. 처음 듣는다면 군더더기 없이 곡의 매력을 알려주는 이 음반이 안전하지요. 다만 1950년대 녹음이라 최신 초고해상도 음향을 기대하면 다소 아쉬울 수 있어요.

레퍼런스

에밀 길렐스 (피아노) · 아마데우스 4중주단 단원 · 라이너 체페리츠

Deutsche Grammophon · 1976

길렐스의 묵직하고 낭만적인 피아노가 곡에 무게중심을 잡아 줍니다. 송어를 진지한 걸작으로 듣고 싶을 때 제격이지요. 대신 경쾌하고 빠른 템포를 좋아하는 분에겐 다소 느긋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라르키부델리 & 요스 판 임메르셀 (포르테피아노)

Sony (Vivarte)

슈베르트 시대의 악기로 연주한 원전 연주입니다. 포르테피아노 특유의 가볍고 투명한 소리가 ‘떠오르는’ 음향과 잘 맞아요. 다만 현대 피아노의 풍성한 울림에 익숙하다면 처음엔 소박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왜 ‘송어 5중주’라고 부르나요?

4악장이 슈베르트 자신의 가곡 〈송어〉(Die Forelle, D.550)의 선율을 주제로 한 변주곡이기 때문입니다. 다섯 악장 전체에 송어가 등장하는 게 아니라, 이 한 악장 때문에 곡 전체에 별명이 붙었지요. 슈타이어의 후원자 질베스터 파움가르트너가 그 가곡으로 변주곡을 넣어 달라고 직접 주문한 결과입니다.

송어 5중주는 어떤 악기로 연주하나요?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다섯 악기입니다. 보통의 피아노 5중주가 피아노에 현악 4중주(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를 더하는 것과 달리, 이 곡은 제2바이올린을 빼고 콘트라베이스를 넣은 변칙 편성이지요. 후멜의 5중주 편성을 본뜬 것으로, 덕분에 첼로와 피아노가 높은 음역에서 노래할 수 있어 유난히 밝고 투명한 소리가 납니다.

악장은 몇 개이고,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총 5악장으로, 보통의 실내악보다 한 악장이 더 많습니다. 1악장 Allegro vivace, 2악장 Andante, 3악장 Scherzo: Presto, 4악장 변주곡(Andantino), 5악장 Allegro giusto 순서지요. 전곡 연주 시간은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38~40분 안팎입니다.

슈베르트가 몇 살에 썼고, 언제 출판됐나요?

1819년 여름, 슈베르트가 스물두 살 때 친구 요한 미하엘 포글과 함께 슈타이어로 떠난 휴가에서 쓰기 시작해 그해 가을 빈에서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만 살아생전에는 출판되지 않았고, 1829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뒤에야 정식으로 출판되었지요(Op. posth. 114).

가곡 〈송어〉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가곡 〈송어〉가 먼저입니다. 슈베르트는 1817년 슈바르트의 시에 곡을 붙여 이 가곡을 썼고, 2년 뒤 그 선율을 5중주 4악장의 변주 주제로 다시 가져왔지요. 흥미롭게도 원작 시에는 ‘젊은 여인은 유혹을 조심하라’는 교훈 연이 있었는데, 슈베르트는 가곡으로 옮기면서 그 부분을 덜어내 한결 밝은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참고자료

이어서 듣기 — 같은 손이 빚은 다른 물결

송어의 그 환한 여름을 들었다면, 같은 슈베르트가 다른 계절에 쓴 음악도 궁금해지지 않나요? 클래식은 한 곡만 떼어 듣기보다 작곡가의 인생을 따라 이어 들을 때 훨씬 깊어지거든요. 송어와 나란히 들으면 좋은 곡들을 골라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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