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께 음악으로 항의하는 법 — 하이든 고별 교향곡

1772년 에스테르하지, 악보로 쓴 단체교섭

Haydn
Thomas Hardy, 1791, Public Domain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
(Joseph Haydn, 1732~1809)
곡명
교향곡 제45번 f#단조, Hob.I:45 ‘고별’
작곡 시기
1772년, 에스테르하지 궁전
악장
4악장

I. Allegro assai (f#단조)
II. Adagio (A장조)
III. Menuet: Allegretto (F#장조 / Trio f#단조)
IV. Finale: Presto–Adagio (f#단조 → F#장조)
편성
오보에 2, 바순 1, 호른 2 (1st F# / 2nd A), 현5부
초연
1772년 가을 (11월 추정)
에스테르하지 궁전
하이든 지휘
연주 시간
약 25분

먼저 들어볼 연주

Haydn Symphony No 45 F # minor Farewell Abschiedssinfonie Ádám Fischer Haydn Philharmonie

🎬 Haydn Symphony No 45 F # minor Farewell Abschiedssinfonie Ádám Fischer Haydn Philharmonie

Haydn Symphony no. 45 Farewell Symphony – Sinfonia Rotterdam/ Conrad van Alphen

🎬 Haydn Symphony no. 45 Farewell Symphony – Sinfonia Rotterdam/ Conrad van Alphen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
Joseph Haydn, Public Domain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
Prince Nikolaus Esterházy, Public Domain

가족 얼굴이 가물가물해질 만큼 몇 달이 흘렀습니다. 에스테르하지(Esterháza) 궁전의 가을은 예년보다 길었습니다. 단원들은 빈에 두고 온 식구들의 안부를 짐작만 할 뿐이었습니다.

악단장 한 사람이 이 분위기를 알아챘습니다. 후작에게 직접 사정을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대신 펜을 들었습니다.

1772년 가을, 에스테르하지에서 벌어진 일

에스테르하지 궁전은 오늘날 헝가리 페르퇴드, 당시 합스부르크 영토 안에 있던 후작 니콜라우스의 여름 별궁이었습니다. 후작은 이름난 음악 애호가였고, 별궁 안에 오페라 극장과 인형극장, 무도회장까지 갖춘 작은 베르사유를 지어놓고 지냈습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별궁이다 보니 단원들의 가족은 함께 머물 수 없었습니다.

시즌이 짧으면 견딜 만했습니다. 하지만 1772년은 달랐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데도 후작은 “이제 그만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단원들은 빈이나 아이젠슈타트에 두고 온 가족 얼굴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악단장(Kapellmeister) 하이든이 이 분위기를 알아챘습니다. 악단장은 18세기 궁정에서 작곡, 지휘, 단원 관리까지 모두 맡는 자리였습니다. 영어로 옮기면 music director에 가깝습니다. 하이든은 마흔 살, 후작 밑에서 일한 지 11년째였습니다. 사장에게 직접 “단원들이 힘들어합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대신 교향곡을 한 곡 썼습니다. 4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단원들이 한 명씩 무대에서 일어나 퇴장하는 곡이었습니다.

그리스징어(Georg August Griesinger)가 1810년에 출간한 전기에 따르면, 후작은 이 연주를 듣고 다음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 다들 떠나려고 한다면 우리도 떠나야지.”

—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 (Griesinger 1810 전언)

그날 밤 이후 궁정 전체가 짐을 쌌고, 단원들은 아이젠슈타트로 돌아가 가족을 만났습니다. 음악으로 사장의 마음을 움직인 사례로 이 이야기가 200년 넘게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한국어 해설의 99%가 다루는 내용입니다. 보통은 “재밌는 비하인드죠?” 하고 박수치며 마무리합니다. 그런데 이 일화에는 한국어로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디테일이 세 가지 더 있습니다.

f#단조라는 선택 — 호른 주자가 짐을 따로 싸야 했던 이유

하이든은 평생 교향곡을 100곡 넘게 썼습니다. 그중 f#단조 교향곡은 이 한 곡뿐입니다. 18세기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을 다 뒤져봐도 f#단조 교향곡은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단원들의 손에 있었습니다.

18세기 호른에는 밸브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손가락으로 음을 바꾸는 장치가 발명되기 전이었습니다. 대신 조성마다 다른 ‘크룩(crook)’이라는 곡관을 끼워 악기 길이 자체를 바꿨습니다. F장조 곡이면 F용 크룩, D장조 곡이면 D용 크룩을 쓰는 식입니다. 호른 주자는 자기 악기 가방에 크룩 여러 개를 넣고 다녔습니다.

문제는 f#용 크룩입니다. 이건 표준 비품이 아니었습니다. 1772년 호른 주자가 가방을 열면 F용, D용, G용, E♭용은 있어도 f#용은 없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즉 하이든이 이 곡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호른 두 명은 “이번 곡을 위해 특수 크룩을 따로 챙겨오거나 빌려오십시오”라는 통보를 받은 셈입니다.

작곡가가 첫 음표를 쓰기 전부터 이 곡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단원들의 짜증이 작곡 단계부터 악보 머리에 새겨진 셈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 곡은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시기의 정점에 놓여 있습니다. 18세기 후반 독일어권에서 격정, 단조, 충돌, 어두움을 미덕으로 삼았던 짧은 미학 운동인데, 하이든의 26·39·44·45·49번 교향곡이 모두 이 시기 작품입니다. 그중에서도 45번은 가장 멀리 나갑니다. 단조 교향곡을 동명 장조, 그러니까 같은 음에서 시작하는 장조로 끝내는 형식 실험까지 들어 있습니다. f#단조의 동명 장조가 F#장조입니다. 음 자체는 바꾸지 않고 분위기만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뒤집는 방식입니다.

요컨대 작곡가는 단원들의 항의를 음악에 담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항의를 명분으로 삼아 자신이 오래 해보고 싶었던 형식 실험까지 함께 밀어 넣었습니다. 일거양득이었습니다. 11년 차 직원이 어떻게 사장의 동의를 얻어내는지 보여주는 정치적 한 수이기도 했습니다.

1악장부터 4악장까지 — 실황 중계

1악장 Allegro assai — 분노의 등장

첫 마디부터 인사가 없습니다. f#단조 3/4박, 격앙된 단조 주제가 곧장 치고 들어옵니다. 슈투름 운트 드랑 단조 교향곡의 전형적인 시작입니다. 말 그대로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1악장입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가운데, 그러니까 ‘발전부’라고 부르는 구간입니다. 18세기 교향곡 1악장에는 일종의 정해진 게임 규칙이 있었습니다. 앞쪽에서 주제 두 개를 던지고, 가운데 구간에서는 그 두 주제만 이리저리 쪼개고 다시 붙이며 전개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이든은 그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D장조의 새 주제를 꺼냅니다. 단원들의 항의가 그만큼 셌던 걸까요.

4악장의 규칙 위반을 1악장이 먼저 예고합니다. “이번 곡은 이런 식으로 갑니다”라는 신호가 첫 악장에 박혀 있는 셈입니다.

2악장 Adagio — 잠깐 찾아온 평정심

A장조 3/8박. 1악장의 격분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습니다. “사장님, 화내지 마세요”라는 말을 음악으로 옮긴 듯 들립니다.

물론 이렇게 듣는 건 항의극이라는 틀 안에서일 때 그렇습니다. 음악 분석으로 보면 슈투름 운트 드랑 단조 교향곡의 전형적인 느린 악장 패턴, 곧 격정과 평온을 교차시키는 18세기 후반의 작곡술입니다. 어느 쪽으로 들어도 괜찮습니다. 두 해석이 동시에 성립한다는 점이 이 곡의 매력입니다.

3악장 Menuet: Allegretto — 겉으로만 우아한 춤

F#장조 미뉴에트, f#단조 트리오. 장조와 단조가 한 악장 안에서 두 번 자리를 바꿉니다.

한 줄로 먼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8세기 미뉴에트 악장은 보통 ‘미뉴에트 → 트리오 → 다시 미뉴에트’의 3부 구조로 갑니다. 트리오는 미뉴에트 사이에 끼는, 분위기가 다른 가운데 토막입니다. 셋이 연주한다는 뜻이 아니라 가운데 부분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이름의 유래는 옛날에 그 부분을 악기 셋으로만 연주하던 관습에서 왔습니다.

미뉴에트는 원래 궁정 무도회 음악입니다. “사장님께 충성을 다하는 우아한 춤” 같은 음악 형식입니다. 하이든은 그 가운데 부분인 트리오를 f#단조로 박아 넣었습니다. 우아하게 절을 하다가 갑자기 어두운 눈빛을 던지는 순간 같습니다. 그리고 트리오에서 호른 솔로가 등장합니다. f#용 크룩이 빛나는 6초입니다. 시즌 내내 특수 크룩을 챙겨 다닌 두 사람이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짧은 보상 구간입니다.

4악장 Finale: Presto–Adagio — 퇴장극

이 악장이 200년 넘게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4악장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쪽 Presto는 f#단조의 격렬한 종결처럼 보입니다. “아, 이제 끝나는구나” 싶은 순간, 음악이 멈춥니다. 그리고 Adagio가 시작됩니다. 단조 교향곡이 빠른 단조로 끝나는 표준 공식을 깨버린 것입니다.

Adagio부터 단원들이 한 명씩, 또는 짝을 지어 일어납니다. 오보에와 호른이 번갈아 빠지고, f#용 크룩으로 시즌 내내 고생한 호른 주자들도 일찍 짐을 쌉니다. 그다음 바순, 콘트라베이스, 첼로, 비올라가 따라 나가고 마지막에 바이올린들이 한 줄씩 사라집니다. 단계별 정확한 마디 표시는 SCORE 캡션에 맡기겠습니다.

종결은 F#장조입니다. f#단조로 시작한 곡이 같은 음 위에서 시작하는 장조, 즉 동명 장조 F#장조로 끝납니다. 음 자체는 바꾸지 않고 빛깔만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갈아끼우는 방식입니다. 18세기 후반에 가장 드문 형식 실험 가운데 하나로, 피카르디 종지(picardy third, 단조 곡의 마지막 화음만 살짝 장조로 비틀어주는 옛 어법)를 극단적으로 확장한 경우입니다. 어둠 끝에 빛이 오는 식이 아닙니다. 빛만 두 명 남아서 마무리하는 구도입니다.

마지막에 남는 두 사람은 1바이올린 두 명입니다. 한 명은 콘서트마스터 루이지 토마시니(Luigi Tomasini), 다른 한 명은 작곡가 본인, 하이든 자신입니다. 이 디테일은 따로 한 장을 줘도 될 만큼 중요합니다. 잠시 뒤에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정말 사실일까

여기서 한국어 해설 99%가 끝납니다. “재밌는 일화죠? 사장님께 음악으로 항의한 작곡가!” 하고 박수치며 마무리합니다. 다른 글은 더 읽지 않아도 될 것처럼 끝나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이 일화의 1차 사료가 38년 뒤의 회고라는 점입니다.

1772년 당시 에스테르하지 궁정 일지에는 이 일화 기록이 한 줄도 없습니다. 다음날 짐을 쌌다는 이동 명령서, 단원들 항의 청원서, 후작의 결재 흔적도 없습니다. 일화가 처음 글로 등장하는 시점은 1810년, 그리스징어가 일흔여덟 살이 된 노년의 하이든을 인터뷰해 낸 전기에서였습니다. 같은 해 알베르트 크리스토프 디스(Albert Christoph Dies)도 비슷한 일화를 적었는데, 출처는 역시 만년의 하이든 본인이었습니다.

38년 전 일을 일흔여덟 살이 되어 회고한 내용입니다. 음악사학자 제임스 웹스터(James Webster)가 1991년에 케임브리지대에서 낸 모노그래프 한 권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룹니다. 책 제목은 Haydn’s Farewell Symphony and the Idea of Classical Style입니다. 웹스터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웹스터는 일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단원들이 지쳤고, 하이든이 음악으로 사정을 전달했고, 후작이 알아들었다는 큰 줄거리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다만 세부는 38년의 세월 속에서 윤색됐을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촛불을 끄고 퇴장했다”는 시각 연출, “후작이 다음날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는 인용, “이동 명령이 즉시 떨어졌다”는 진행은 1772년 사료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후대의 연주 관행과 노년의 회고가 섞인 결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웹스터의 진짜 무게중심은 다른 데 있습니다. 작품 자체가 4악장 전체에 걸친 하나의 거대한 단일 형식으로 설계됐다는 분석입니다. 1악장 가운데에서 D장조 새 주제가 튀어나온 것, 2악장의 평정심, 3악장 가운데 부분의 f#단조 회귀, 4악장 Presto의 거짓 종결과 Adagio의 등장. 이 모든 요소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해석입니다. “단원 항의 일화”라는 바깥 이야기가 없어도 이 곡은 음악 안에서 이미 완결된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결론이 갈립니다. 일화를 100% 사실로 믿고 들을 수도 있고, 일화는 일화로 두고 음악 내부의 구조만 따라 들을 수도 있으며, 둘 다 받아들이며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만 분명히 하자면 이렇습니다. 모르고 믿는 것과, 알고 믿는 것은 다릅니다. 이 일화의 사료적 한계를 알고 들어야 작품이 더 크게 들립니다. 38년의 시차까지 함께 들리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한국어 인터넷에서 웹스터의 회의적 견해를 정리한 글은, 적어도 제가 찾은 범위에서는, 한 편도 없었습니다. 이 단락이 한국어로는 처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도 일화를 사실처럼만 다룹니다. 그러니 이 점은 알고 들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마지막 두 자리 — 하이든이 끝까지 남은 이유

이제 디테일 하나만 더 보겠습니다. 한국어 해설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부분입니다.

4악장 마지막에 남는 두 사람은 1바이올린 1·2 듀엣입니다. 1772년 에스테르하지 악단 명부, H.C. 로빈스 랜던의 Haydn at Eszterháza(1978)와 헝가리 국립문서고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1바이올린 수석은 콘서트마스터 토마시니였고 그 옆에는 악단장 하이든 본인이 앉았습니다. 즉 악보가 비워둔 마지막 두 자리는 콘서트마스터와 작곡가 본인의 자리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하이든이 자기 곡을 쓰면서 “단원들의 항의를 전달합니다만, 저는 끝까지 남아 있겠습니다”라는 뜻을 악보에 박아 넣은 셈입니다. 유머만은 아닙니다. 자기 위치를 음악으로 분명히 한 행위입니다. 단원들 편에 서 있지만 떠나지는 않습니다. 후작을 자극하지만 충성을 거두지는 않습니다. 11년 차 직원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보여주는 디테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박수 한 번 더 쳐도 됩니다.

작곡가가 연주 행위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만든 18세기의 거의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와 리처드 타루스킨(Richard Taruskin)은 이 곡을 케이지, 카겔, 슈톡하우젠 같은 20세기 행위 음악(theatrical music)의 직계 조상으로 자주 언급합니다. 200년 차이 나는 두 시대의 미학을 잇는 다리가 1772년 가을 어느 밤에 놓인 셈입니다.

찰스 로젠(Charles Rosen)도 1971년 The Classical Style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베토벤 8번 4악장이 코믹한 페이크 종결을 반복하는 끝맺음, 말러 9번이 한없이 옅어지며 사라지는 종결은 결말의 관습을 비트는 서로 다른 두 갈래지만, 모두 하이든의 이 4악장이 먼저 열어놓은 어법의 후예라는 것입니다. 종결을 뜻밖의 방식으로 만든다는 발상에서 이 곡은 원조입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이든은 한 곡으로 (1) 단원들의 노동 문제를 사장에게 전달했고, (2) 평생 단 한 번뿐인 f#단조라는 특수 조성을 시험했고, (3) 단조를 동명 장조로 끝내는 종결법을 18세기 후반에 작품으로 밀어붙였고, (4) 연주 행위 자체를 작품 일부로 만드는, 200년 뒤 현대음악의 어법을 앞질러 보여줬고, (5) 자기 자리를 무대 맨 끝에 배치해 작곡가의 위치를 음악으로 분명히 했습니다. 25분짜리 한 곡이 해낸 일이 이 정도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일을 잘하나 싶습니다.

처음 듣는다면 — 이것만 알고 들으세요

전체 25분짜리 곡입니다. 길지 않습니다.

시간이 모자라면 4악장 마지막 6분만 보셔도 일화의 핵심은 잡힙니다. 영상으로 보면 더 확실합니다. 단원들이 정말로 한 명씩 일어나 무대 밖으로 사라집니다. 음악은 점점 얇아지다가 바이올린 두 줄만 남고, 그 두 줄이 F#장조로 마무리합니다. 25분짜리 음악이 갑자기 한 편의 영화 엔딩처럼 바뀝니다.

여유가 있으면 1악장부터 차근차근 들으세요. 1악장의 격분과 4악장의 침묵은 한 쌍입니다. 1악장부터 들으면 항의로 시작했다가 4악장에서 잔잔하게 마무리되는 흐름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직장 다니는 사람이라면 1악장 첫 1분만 들어도 1772년 단원들 심정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들으면서 두 가지를 함께 떠올려 보세요. 첫째, 이 곡은 1772년 에스테르하지 단원들의 항의서입니다. 둘째, 이 곡은 18세기 후반 형식 실험이 가장 멀리 간 지점입니다. 두 해석을 함께 들어야 작품이 온전히 보입니다. 어느 한쪽만 알고 들으면 이 곡의 절반만 듣고 가는 셈입니다.

이 다섯 장만 들으세요

하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 /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 / Teldec 1990 — 시대악기 연주의 표준입니다. f#용 자연 호른이 거칠게 갈라지는 음색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18세기 에스테르하지의 음향에 가장 가까운 녹음입니다. 제가 이 음반을 고른 이유: 호른 크룩 디테일을 소리로 체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녹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모던 오케스트라의 매끈한 호른 소리에 익숙한 분에게는 처음 몇 분이 거칠게 들릴 수 있습니다. 시대악기 음색에 적응 시간이 필요한 분이라면 두 번째 선택을 권합니다.

아담 피셔(Adam Fischer) / 오스트로-헝가리언 하이든 오케스트라 / Nimbus 1987, 아이젠슈타트 녹음 — 일화의 지리적 본거지인 아이젠슈타트에서 헝가리·오스트리아 연합 단원들이 녹음했습니다. 시대악기는 아니지만 맥락 복원이라는 점에서는 강력한 선택입니다. 제가 이 음반을 고른 이유: 18세기 분위기는 원하지만 청각적 적응 시간 없이 듣고 싶을 때 가장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시대악기 호른의 거친 매력 자체를 원하는 분에게는 다소 부드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번스타인 / 빈 필하모닉 / DG 1985 (실연 영상 존재) — 현대악기, 낭만적 해석입니다. 음악만 놓고 보면 하르농쿠르가 앞선다면, 영상으로는 번스타인이 강합니다. 단원들이 무대에서 한 명씩 일어나 나가는 장면이 1985년 빈에서 카메라에 잡혔기 때문입니다. 단원 퇴장 연출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분이라면 다른 영상을 더 찾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4악장 Adagio가 지나치게 비창적으로 무거워져서 18세기 특유의 위트가 조금 줄어듭니다. 음악적 해석을 더 중시하는 분에게는 하르농쿠르가 더 잘 맞습니다.

도라티(Antal Doráti) / 필하르모니아 헝가리카 / Decca 1972 — 하이든 교향곡 전곡 녹음의 고전입니다. 한 곡만 놓고 보면 위 세 가지보다 한 발 물러서지만, 하이든 교향곡 전체를 통째로 듣고 싶다면 도라티 전곡 박스셋이 답입니다. 슈투름 운트 드랑 시기 단조 4부작(26·39·44·45)을 묶어서 듣고 싶다면 핑녹(Trevor Pinnock) / 디 잉글리시 콘서트의 DG Archiv 1992 모음 음반도 함께 추천합니다. 1악장의 격정과 4악장 종결의 대비가 가장 선명하게 잡히는 녹음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따라가며 들으면 두 곳에서 작품이 다르게 보입니다. 첫째, 4악장 Adagio 진입부(m.121 부근)에서 단원들이 한 명씩 빠지는 순서가 악보 위에 시각적으로 드러납니다. 어느 마디에서 누가 일어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 마지막 두 줄, 1바이올린 1·2 듀엣이 F#장조 종지로 마무리하는 부분입니다. 악보에서 보면 정말 두 줄밖에 남지 않습니다. 200년 동안 무대 위에서 콘서트마스터와 작곡가가 앉았던 바로 그 두 자리입니다.

헨레 우어텍스트 Hob.I:45 기준 악보가 가장 권위 있습니다. IMSLP에 공개된 초판본도 함께 보면 1772년 작곡가가 보면대 위에 어떻게 적어놓았는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이 곡 25분이나 되는데 다 들어야 하나요?

4악장 마지막 6분만 보셔도 일화의 핵심은 잡힙니다. 단원들이 한 명씩 무대에서 일어나 사라지는 부분이 거기 모여 있어요. 다만 1악장이 4악장과 한 쌍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같이 들으면 임팩트가 두 배입니다. 1악장의 격분이 4악장의 침묵으로 어떻게 풀려나가는지가 들리거든요. 직장 다니는 분이면 1악장 첫 1분과 4악장 마지막 6분, 이렇게 7분 정도만 들어도 이 곡의 핵심을 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악사들이 정말 무대에서 촛불 끄고 나갔나요?

현대 연주 관행에서는 흔히 그렇게 연출합니다. 다만 1772년 초연이 실제로 그렇게 진행됐다는 1차 사료는 없습니다. 그리스징어의 1810년 전기에도 촛불 디테일은 명시되어 있지 않아요. 후대 연주자들이 일화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덧붙인 연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1772년 무대 분위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촛불을 껐다”는 부분은 후대 해석으로 보시면 안전합니다.

고별 교향곡 일화, 100% 사실인가요?

정확히 말하면 큰 줄거리는 신뢰할 만하고, 세부는 거리를 두는 게 안전합니다. 일화의 1차 사료는 그리스징어(1810)와 디스(1810) 두 사람의 전기뿐이고, 둘 다 일흔여덟 살이 된 노년 하이든의 회고에 의존합니다. 38년 전 사건을 만년에 떠올린 기록이죠. 1991년 케임브리지대에서 나온 제임스 웹스터의 모노그래프가 이 점을 진지하게 분석했는데, 한국어권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학설입니다. 단원들 항의와 후작의 눈치챔이라는 큰 줄거리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정확한 대사·날짜·연출은 38년 세월 속에서 윤색됐을 수 있습니다.

하이든은 왜 하필 f#단조라는 희한한 조성을 골랐나요?

18세기 호른은 밸브가 없어서 조성마다 다른 크룩(곡관)을 끼워 음역을 바꿨는데, f#용 크룩은 표준 비품이 아니라 별도 제작이나 소지가 필요한 특수 장비였습니다. 즉 작곡가가 f#단조를 고른 순간 호른 두 명은 평소 가방에 없는 크룩을 따로 챙겨와야 했어요. 작곡 단계부터 이미 평범한 곡이 아니었다는 얘기죠. 하이든은 평생 교향곡을 100곡 넘게 썼지만 f#단조 교향곡은 이 한 곡뿐입니다.

마지막에 남은 두 명은 누구였나요?

악보상 마지막까지 남는 두 자리는 1바이올린 1·2 듀엣 자리입니다. 1772년 에스테르하지 악단 명부를 기준으로 보면 그 두 자리에는 콘서트마스터 루이지 토마시니와 악단장 하이든 본인이 앉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하이든이 자기 곡에서 “단원들은 다 떠나도 저는 끝까지 남겠습니다”라는 뜻을 악보에 박아 넣은 거죠.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작곡가가 자기 위치를 음악으로 분명히 한 행위로 읽힙니다. 11년 차 직원이 어떻게 사장과 단원 사이에서 살아남았는지 보여주는 디테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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