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요제프 하이든
(Joseph Haydn, 1732~1809) - 곡명
- 교향곡 제45번 f#단조 ‘고별’, Hob.I:45
(Symphony No. 45 ‘Farewell’) - 작곡 시기
- 1772년, 에스테르하지 궁전
- 악장
- 4악장
I. Allegro assai (f#단조)
II. Adagio (A장조)
III. Menuet: Allegretto (F#장조 / Trio F#장조)
IV. Finale: Presto–Adagio (f#단조 → F#장조) - 편성
- 오보에 2, 바순 1, 호른 2(반음 낮추는 특수 크룩), 현5부
- 초연
- 1772년 가을, 에스테르하지 궁전
하이든 지휘 - 연주 시간
- 약 25분
이 곡은 — 단원들을 집에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하이든이 말 대신 교향곡에 담아 후작에게 전한 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4악장 마지막 6분. 연주자가 한 명씩 무대를 떠나며 소리가 얇아지는 대목입니다.
첫 음반 — 하르농쿠르 ·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 (Teldec), 1772년 방식의 악기로.
교향곡이 한창 연주되는 도중 단원 한 명이 갑자기 연주를 멈추고 악보를 챙겨 무대를 떠납니다. 잠시 뒤 또 한 명. 또 한 명. 마지막엔 바이올린 주자 두 명만 남아 곡을 조용히 마무리합니다.
연주 사고가 아닙니다. 요제프 하이든이 1772년 악보에 직접 적어 넣은 지시죠. 다만 이 유명한 일화의 첫 기록은 사건이 벌어지고 38년이 지나서야 나왔습니다. 그해 가을 에스테르하지 궁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여름 별궁에 갇힌 사람들
무대는 오늘날 헝가리 페르퇴드에 있는 에스테르하지 궁전입니다.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늪지를 메워 지은 여름 별궁으로 오페라 극장과 인형극장 무도회장까지 갖춰 ‘작은 베르사유’라는 별명이 붙었죠. 방이 백 개가 넘었습니다. 다만 화려한 만큼 외진 곳이었고 당시 합스부르크 영토에서도 한적한 구석이었습니다.
후작은 이름난 음악광이었습니다. 돈 쓰는 규모 때문에 ‘호화공’이라 불렸는데 그중 상당액을 음악에 쏟아부었습니다. 특히 아끼던 악기가 바리톤이라는 옛 현악기였고 하이든은 후작이 직접 연주할 수 있도록 이 악기를 위한 곡만 백 곡 넘게 써서 바쳤습니다. 자기 오케스트라를 통째로 데리고 다녔고 그 악단을 지휘한 사람이 하이든이었습니다.
하이든이 이 궁정에 들어온 건 1761년입니다. 처음엔 부악장으로 시작해 1766년에 악단 전체를 맡는 악장이 됐고 1772년이면 후작의 음악을 책임진 지 벌써 11년째였습니다. 신임은 두터웠지만 그의 처지는 어디까지나 월급 받는 고용인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냥 직원인 셈이죠.
문제는 위치였습니다. 별궁은 빈에서 멀었고 단원 대부분은 아내와 아이들을 빈이나 아이젠슈타트에 남겨둔 채 몸만 와서 일하는 처지였습니다. 궁정 숙소는 비좁았고 가족을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은 하이든을 포함해 극소수뿐이었습니다. 후작이 별궁에 머무는 동안은 단원들도 꼼짝없이 붙잡혀 있어야 했다는 뜻입니다.
평소라면 계절이 바뀌면 돌아갔을 겁니다. 그런데 그해에는 후작이 별궁에 유난히 오래 머물렀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는데도 돌아갈 기미가 없었습니다. 단원들 사이에서 새어 나온 말은 하나였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

말로 못 하면 곡으로 — 악장 하이든의 계산
단원들의 불만을 누가 후작에게 전할 것인가 — 시선은 자연스럽게 악단장에게 쏠렸습니다. 단원들은 하이든을 편하게 ‘파파 하이든’이라 부를 만큼 그를 따랐고 그만큼 이 곤란한 심부름도 그의 몫이 됐습니다. 신임받는 자리였지만 앞서 말했듯 그 역시 고용인이었습니다.
귀족 앞에서 “단원들이 집에 가고 싶어 합니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잘못 꺼냈다가는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거나 최악의 경우 누군가 자리를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이든은 말 대신 자기가 제일 잘하는 걸 씁니다. 새 교향곡 한 곡. 겉으로는 평범한 새 연주곡인데 끝까지 들으면 하려던 말이 저절로 전해지는 곡이었습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마지막 악장에서 단원들이 한 명씩 연주를 멈추고 퇴장하도록 악보에 적어 놓는 것.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다가 끝에는 두 명만 남습니다. 후작이 그 광경에서 뜻을 읽어 주기를 노린 설계였습니다. 말은 한마디도 안 하면서 하고 싶은 말은 전부 하는 방법. 이것이 악장 하이든이 찾은 답이었습니다.

f#단조라는 수상한 선택
이 곡에는 일화 말고도 미심쩍은 구석이 하나 더 있습니다. 조성이 f#단조라는 점이죠. 여기서 조성은 곡의 기준이 되는 ‘키’를 뜻하는데, 우리가 노래방에서 올리고 내리는 그 키가 맞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조는 유독 어둡고 서늘한 기운을 뿜어냅니다. 하이든은 평생 교향곡을 100곡 넘게 썼지만, f#단조를 고른 건 이 곡 딱 하나뿐이거든요. 왜 하필 이 낯선 조를 택했을까요.
그 단서는 호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8세기 호른에는 밸브가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손가락으로 눌러 음을 바꾸는 장치가 없으니, 곡의 조가 바뀔 때마다 아예 금관을 통째로 갈아 끼워야 했죠. 이때 사용하는 보조관을 ‘크룩’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그 시절 호른 주자들은 연주 여행을 나설 때면 가방에 크룩을 대여섯 개씩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녔습니다. 조 하나당 관 하나, 말하자면 상황에 맞춰 렌즈를 갈아 끼우는 카메라와 같았던 셈입니다. 참고로 이 밸브 없는 옛날 호른을 요즘은 ‘자연 호른’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f#은 그 무거운 가방 안에도 없는 조성이었습니다. 워낙 쓰임새가 없어 크룩의 기본 구성품조차 아니었거든요. 실제로 에스테르하지 문서고를 들춰보면, 오직 이 곡을 위해 특수 크룩을 새로 사들인 기록이 떡하니 남아 있습니다. 하이든은 굳이 새 장비까지 주문해 가며 이 기묘한 조성으로 곡을 밀어붙였습니다. 음악이 채 울리기도 전에, 메마른 구매 서류가 먼저 그 속내를 털어놓는 셈이죠. 하이든은 애초부터 무난한 곡을 쓸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잔뜩 화가 난 곡들이 유행하던 시절
이 무렵 독일어권에서는 ‘슈투름 운트 드랑’이라는 문예 사조가 휩쓸고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폭풍과 충동’,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달달 외우던 그 ‘질풍노도’가 바로 이겁니다. 밝고 단정한 이성보다는 어둡고 격렬한 감정을 냅다 쏟아내는 흐름이었는데, 문학에서 불기 시작한 이 거센 바람이 음악 동네까지 고스란히 들이닥쳤습니다. 단조를 두른 거칠고 성급한 곡들이 이 시기에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배경이기도 하죠.
하이든 역시 이 시기에 단조 교향곡을 작정하고 몰아서 썼습니다. 26번, 39번, 44번, 49번, 그리고 우리의 45번까지. 지금이야 밝고 넉넉한 ‘파파 하이든’의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30대의 하이든은 이토록 날이 벼려진 음악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고별’ 교향곡의 어둡고 뾰족한 소리 자체는 당시의 시대적 유행에 얌전히 올라타 있던 셈입니다.
다만 이 곡은 거기서 훌쩍 한 발 더 나갑니다. 캄캄하고 우울한 곡이야 널려 있었지만, 연주자가 무대에서 귀신처럼 하나둘 사라지는 곡은 그 시절에도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려웠거든요. 겉으로는 최신 유행의 문법을 성실히 따르는 척하다가, 정작 마지막 순간에 아무도 안 한 짓을 슬쩍 얹어버린 치밀한 곡인 셈입니다.
틀어 놓고 따라가는 네 악장
악장은 교향곡이라는 큰 덩어리를 쪼개놓은 단위입니다. 책으로 치면 챕터와 같은데, 이 곡은 그런 덩어리가 모두 넷입니다. 전체 길이는 25분 남짓이고, 숨은 배경 이야기를 알고 들으면 마지막 악장의 울림이 한결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 페이지 맨 위 플레이어에 전곡 연주를 걸어 두었으니, 음악을 틀어 놓고 각 악장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느긋하게 눈으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1악장 — 인사 없이 치고 들어오는 본론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음악이 매섭게 치고 나옵니다. 분위기를 잡는 느릿한 도입부도, 예열하는 시간도 없습니다. 첫 마디부터 f#단조의 주제가 가차 없이 내리꽂히고, 현악기들은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고 몰아붙입니다. 가벼운 눈인사조차 생략한 채 곧바로 본론부터 들이미는 무자비한 시작이죠.
여기서 당시 교향곡의 관행을 슬쩍 짚고 넘어가면 좋습니다. 18세기 교향곡의 1악장은 대개 빤한 순서를 밟았습니다. 먼저 성격이 딴판인 멜로디 두 개를 차례로 띄워줍니다. 하나가 힘차게 뻗대면, 다른 하나는 부드럽게 감싸는 식이죠. 그다음 중간 구간에서 이 두 멜로디를 잘게 쪼개고 마구 뒤섞으며 긴장감을 바짝 끌어올린 뒤, 마지막엔 거짓말처럼 처음의 멜로디로 돌아와 무난하게 문을 닫습니다. 노래 두 개를 소개하고, 지지고 볶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구조. 객석에 앉은 사람들에게 “아는 노래가 돌아왔다”는 푸근한 안도감을 안겨주며 끝맺는 철저한 설계입니다.
이 곡의 1악장 역시 큰 뼈대는 그 순서를 충실히 따릅니다. 다만 품고 있는 온도가 영 딴판입니다. 부드러워야 할 자리에서도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고, 느긋하게 쉬어 가야 할 타이밍에도 계속해서 목줄을 조입니다. 25분짜리 대장정의 첫인상부터가 대놓고 “지금 화났다”인 셈입니다. 게다가 하이든은 여기서 뻔뻔하게 규칙 하나를 어겨버립니다. 멜로디를 요리조리 뒤섞기만 해야 할 중간 구간에 다다라, 뜬금없이 생전 처음 듣는 낯선 멜로디(D장조)를 툭 던져놓거든요. 당시 얌전한 청중들에게는 명백한 약속 위반이었습니다. 요컨대 마지막 악장의 기행이 벌어지기 한참 전부터, 하이든은 이 곡이 결코 순순히 흘러가지 않으리라는 징후를 촘촘히 심어 두었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첫 1분. 서주도 인사도 없이 f#단조 주제가 곧장 내리꽂히는 서늘한 첫인상이 이 곡의 뾰족한 온도를 결정짓습니다.
2악장 — 살얼음판 위에서의 숨 고르기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찾아온 고요입니다. 조성이 밝은 쪽(A장조)으로 건너가면서 조용하고 느릿한 흐름이 이어지죠. 현악기들이 목소리를 한껏 낮춰 노래하며 앞 악장의 가빴던 호흡을 가만히 달래줍니다. 바이올린에 굳이 약음기를 끼워 소리를 한 겹 더 조심스럽게 눌러둔 대목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배치 자체는 그 시절 단조 교향곡들이 약속처럼 따르던 문법이었습니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악장 뒤에 평온한 악장을 바짝 붙여 어둠과 빛을 교대로 들이미는 방식이죠. 다만 이 곡이 건네는 평온은 왠지 모르게 살얼음판 같습니다. 두 다리 뻗고 편히 쉰다기보다, 입술을 꾹 다물고 잠시 말을 아끼는 쪽에 가깝거든요.
🎧 여기서 들으세요 — 현악기에 약음기가 걸리며 소리가 한 겹 낮게 깔리는 순간. 앞 악장의 날 선 긴장이 여기서 어떻게 눌리는지가 귓가에 고스란히 들어옵니다.
3악장 — 우아한 척 스텝을 밟는 춤곡
3악장은 미뉴에트입니다. 궁정 무도회장에서 점잖게 스텝을 밟던 3박자 춤곡인데, 교향곡의 세 번째 자리에 으레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던 장르입니다. 고상하게 절을 하고 빙그르르 도는 춤에 찰떡처럼 붙는 음악이죠. 조성 역시 F#장조로 환하게 밝아집니다.
곡 중간(트리오)에 다다르더라도 이 환한 F#장조는 꺾임 없이 이어집니다. 우아하게 춤을 추는 궁정 음악의 결이 한결같이 유지되는 가운데 바로 이 대목에서 호른 솔로가 불쑥 튀어나오죠. 오직 이 곡 하나 때문에 특수 크룩까지 사들여야 했던 그 두 사람이 비로소 무대의 떳떳한 주인공으로 나서는 순간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밝은 춤곡의 결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트리오 구간. 여기서 흘러나오는 호른 소리가 바로 특수 크룩을 새로 사들여야 했던 그 소리입니다.
4악장 — 한 명씩 비워지는 무대
대망의 마지막 악장은 프레스토, 그러니까 앞뒤 안 보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음악으로 막을 엽니다. 다시 f#단조로 돌아와 끝을 향해 매섭게 질주하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대로 쿵쾅거리며 끝이 나겠거니 짐작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정작 웅장하게 마침표를 찍어야 할 자리에서 음악이 뚝 끊기더니, 아주 느린 아다지오가 뜬금없이 꼬리를 뭅니다. 당시 객석에 앉은 이들에게는 이 대목부터가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교향곡이란 무릇 빠르고 시원하게 털어버리며 끝나는 게 불문율이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리고 느릿하게 끌고 가는 이 선율 위에서, 마침내 그 유명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단원들이 자기 몫의 연주를 마치는 족족 미련 없이 악기를 내려놓고 무대를 떠나버리는 겁니다.
오보에와 호른이 주섬주섬 자리를 뜨고, 이어서 바순이, 콘트라베이스가, 첼로가, 비올라가 차례차례 무대를 뒤로합니다. 켜켜이 쌓였던 소리가 점점 얇아지고, 빈자리가 늘어날수록 남은 악기들의 소리는 도리어 더 선명하게 귀에 꽂히죠. 마지막에 남은 건 바이올린 두 대. 출발할 때와 같은 음이지만 이번엔 밝은 조, F#장조의 가냘픈 화음 위에서 곡은 끝을 맺는다기보다 허공으로 아스라히 흩어집니다. 곡의 문을 열어젖혔던 그 서늘한 f#단조가, 마지막 닫는 문에서는 한 뿌리에서 나온 밝은 조로 스르르 풀린다는 점도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한껏 독을 품고 몰아붙이던 곡이 끝에 가서는 한결 누그러진 톤으로 작별을 고하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빠른 음악이 뚝 멈추고 느릿한 아다지오가 새로 시작되는 지점. 이 순간부터 악기들이 하나둘 사라지니, 소리의 결이 점차 얇아지는 과정을 끝까지 귀 기울여 따라가면 됩니다.
무대에 끝까지 남은 두 자리
그 마지막 두 대의 바이올린. 그저 운이 없어 늦게까지 남은 게 아닙니다. 하이든이 악보상에 끝까지 남겨 둔 의자는 딱 두 개였습니다. 제1바이올린 수석인 루이지 토마시니, 그리고 그 옆에서 나란히 활을 긋던 하이든 자신이죠. 하이든의 회고를 받아 적은 그리스징어와 디스의 전기가 정확히 이 두 사람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토마시니는 하이든이 각별히 아끼던 연주자였는데, 두 사람 사이의 끈끈한 신뢰가 이 마지막 무대 배치에도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객석 상석에 앉은 후작의 시선으로 이 배치를 뜯어보면 그 행간은 몹시 선명해집니다. “단원들은 제발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희 둘이 남아서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거친 항의라기보다는 차라리 간곡한 부탁에 가깝고, 부탁치고는 얄미울 만큼 정중하죠.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대신, 오히려 스스로 입을 닫고 소리를 지우는 방식을 택한 겁니다. 책임자인 자신과 수석은 끝까지 자리를 버티고 서 있을 테니, 부디 나머지 식구들은 돌려보내 달라는 속내였습니다.
전해지는 후일담에 따르면, 다행히 후작은 그 무언의 메시지를 단박에 알아챘다고 합니다. “그래, 다들 떠나려 한다면 우리도 떠나야지.” 그리하여 바로 그날 밤 궁정 전체가 부산하게 짐을 꾸렸고, 단원들은 그토록 그리던 아이젠슈타트의 가족 품으로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월급쟁이 직원이 사장 욕은 입도 뻥긋 안 하고 사장의 마음을 통째로 돌려놓은 셈입니다. 이 기막힌 일화가 25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질리지 않고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입니다.
생각보다 한참 늦게 도착한 첫 기록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유명한 일화입니다. 하지만 이 기막힌 사연이 활자로 묶여 세상에 처음 나온 건 사건이 벌어지고 무려 38년이나 흐른 1810년의 일입니다. 전기 작가 게오르크 아우구스트 그리스징어가 노년에 접어든 하이든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에서 비로소 등장하거든요. 비슷한 무렵 알베르트 크리스토프 디스라는 또 다른 전기 작가 역시 똑같은 이야기를 펜으로 남겼습니다.
기록 자체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니 다행이지만, 맹점은 남아 있는 문헌들이 전부 사건 직후가 아니라 38년이 지나서야 꺼내놓은 빛바랜 회고라는 데 있습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40년 가까운 세월의 풍파를 맞다 보면 적당히 깎이고 다듬어지기 마련이고, 듣기 좋은 이야기일수록 이 입 저 입을 건너며 그럴싸하게 매만져지는 법이니까요. 후작의 입에서 정확히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저런 허락이 떨어졌는지, 짐을 싸던 단원들의 속마음이 정말 저렇게 애틋했는지는 이제 와서 확인할 도리가 없습니다.
💡 사실은요 — 요즘 클래식 공연장을 찾으면 단원들이 촛불을 하나씩 끄고 퇴장하는 극적인 연출을 심심찮게 봅니다. 이 촛불 디테일은 후대의 연출만은 아닙니다. 그리스징어의 1810년 전기는 연주자가 제 몫을 마치면 촛불을 끄고 악기를 챙겨 퇴장했다고 그 장면을 그대로 전합니다. 다만 1772년 초연 당시에 적힌 기록이 아니라 38년 뒤의 회고라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이 찜찜한 구석을 집요하게 파고든 학자가 있습니다. 음악학자 제임스 웹스터는 1991년에 오직 이 교향곡 하나만 샅샅이 해부한 연구서를 냈는데, 그렇다고 일화 전체를 가짜라며 매몰차게 내치지는 않습니다. 다만 뼈대까지 덥석 믿어버리기엔 그 근거가 너무 늦고 앙상하니, 어느 정도 미심쩍은 거리를 두자는 입장이죠. 재밌는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씹고 뜯고 즐기되, 음악이 지닌 진짜 가치는 그 일화의 그림자에서 떼어놓고 보자는 선 긋기입니다.
이야기를 덜어내도 여전히 기이한 곡
웹스터가 굳이 이야기와 음악을 갈라놓자고 목소리를 높인 데는 다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퇴장이라는 한바탕 소동을 다 걷어내고 악보만 덩그러니 둬도, 이 곡은 음악 그 자체로 차고 넘치게 이상하거든요. 웹스터의 분석을 빌리자면 이 곡은 첫 마디부터 마지막 음표까지 아주 치밀한 하나의 청사진 아래 묶여 있습니다. 1악장 한복판에 불쑥 난입한 낯선 멜로디, 2악장의 서늘한 평온, 3악장의 F#장조 춤곡과 호른 솔로, 그리고 4악장의 속임수 같은 종결과 퇴장까지. 뿔뿔이 흩어진 조각들이 아니라 굵은 실로 단단히 꿰어진 하나의 서사입니다. 굳이 단원들의 집단 항의라는 외부 핑계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이 곡은 닫힌 악보 안에서 진작에 스스로 완결성을 뽐내고 있다는 뜻입니다.
훗날 사람들의 평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어느 쪽이든 이 곡을 유별난 별종으로 대우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독특한 끝맺음의 족보입니다. 훗날의 평자들은 이 4악장을 새로운 계보를 여는 신호탄으로 짚습니다. 교향곡의 종결부를 짓궂은 농담으로 비틀어버린 베토벤 교향곡 8번도, 스러지듯 소리가 증발해 버리는 말러 교향곡 9번도 결국은 이 곡이 먼저 터놓은 오솔길 위를 걷고 있다는 거죠. 시원하게 빵 터뜨리며 막을 내리는 대신 스르르 지워지듯 끝나는 방식. 바로 그 족보의 맨 꼭대기 윗목에 이 곡이 앉아 있습니다.
다른 한 갈래의 시선은 덩치가 훨씬 큽니다. 연주자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몸짓 그 자체가 악보의 지시 사항으로 박혀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하이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음표를 넘어 사람의 행동까지 통째로 작곡해 버렸다는 점입니다. 귀에 꽂히는 소리만 주무른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시각적 풍경까지 연출가의 시선으로 다루었다는 뜻이죠. 훗날 사람들이 이 곡을 아예 무대 행위 자체를 음악의 일부로 끌어들인 20세기 실험 음악의 까마득한 조상님으로 떠받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저 팍팍한 직원들 휴가 좀 보내달라고 궁리하다가, 한참 뒷시대의 후배들이 진땀 빼며 걸어갈 아방가르드한 길 하나를 덜컥 먼저 개척해 버린 셈입니다.
여유가 없다면 이렇게만 들으세요
전곡을 다 들으려면 25분 남짓 걸립니다. 만약 그마저도 짬을 내기 벅차다면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4악장의 마지막 6분이 바로 이 모든 사단이 벌어지는 사건 현장이거든요. 악기가 한 겹씩 허물을 벗듯 떨어져 나가고 마침내 바이올린 두 대만 덩그러니 남겨지는 그 기막힌 과정을 두 귀로 낱낱이 확인하는 것이 이 곡을 감상하는 최고의 알짜배기입니다.
혹시 1분 정도 숨 돌릴 여유가 더 있다면, 4악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1악장의 첫 1분을 먼저 재생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곡이 애초에 얼마나 잔뜩 독이 오른 채로 출발하는지 딱 60초면 뼛속까지 전해지거든요. 시작을 알리는 1분과 꼬리를 감추는 6분, 합쳐서 단 7분. 복잡한 출퇴근길 오가는 길목 한 번이면 파파 하이든이 던진 우아한 항의 서한의 무게가 어떤 것이었는지 충분히 감을 잡고도 남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 악보 보기: 하이든 교향곡 45번 ‘고별’ (IMSLP)
IMSLP는 저작권이 풀린 악보를 모아 둔 무료 악보 도서관입니다. 헨레 우어텍스트 판본이 가장 권위 있는 악보이고, IMSLP의 공개 판본과 나란히 펼쳐 보면 이 곡의 악보가 어떻게 전해졌는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4악장 마지막 페이지에서 성부가 하나씩 사라지는 걸 종이 위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고르는 기준을 하나만 잡았습니다. 이 곡의 핵심인 ‘사라지는 소리’를 각자 다른 방식으로 들려주는 세 장입니다.
참고 자료
- James Webster — Haydn’s “Farewell” Symphony and the Idea of Classical Sty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1)
- Georg August Griesinger — Biographische Notizen über Joseph Haydn (1810)
- Albert Christoph Dies — Biographische Nachrichten von Joseph Haydn (1810)
- H. C. Robbins Landon — Haydn at Eszterháza (1978)
- Charles Rosen — The Classical Style (1971)
- IMSLP — Symphony No. 45 in F-sharp minor, Hob.I:45 (악보 공개 자료)
이어서 듣기 — 사라지듯 끝나는 음악들
이 곡이 마음에 들었다면 아래 다섯 편이 자연스러운 다음 순서입니다. 같은 시기의 하이든 한 곡, 그리고 ‘곡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저마다 다르게 푼 곡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