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 곡명
- 교향곡 4번 B♭장조, Op.60
(Symphony No. 4 in B-flat major) - 작곡 시기
- 1806년 여름, 헝가리 마르톤바샤르 브룬스비크 영지
- 악장
- 4악장
I. Adagio — Allegro vivace (b♭단조 → B♭장조)
II. Adagio (E♭장조)
III. Allegro vivace · Trio: Un poco meno allegro (B♭장조)
IV. Allegro ma non troppo (B♭장조)
1악장. 느린 서주 — 빠르고 생기 있게
2악장. 느리게 노래하듯
3악장. 빠른 춤과 트리오
4악장. 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 편성
- 플루트,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5부 (1·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 초연
- 1807년 3월, 비엔나 로프코비츠 궁 사적 연주회
지휘: 루트비히 판 베토벤 - 헌정
- 프란츠 폰 오페르스도르프 백작 (Franz von Oppersdorff)
- 연주 시간
- 약 33분
- 베토벤이 5번 교향곡 작업을 잠시 멈추고 1806년 여름 헝가리에서 먼저 완성한 곡으로, 후원자 오페르스도르프 백작과 나눈 묘한 거래 끝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 안갯속을 헤매듯 조성을 감추는 38마디 서주와, 오케스트라 오디션의 단골 관문인 4악장 바순 8마디 솔로가 이 곡의 하이라이트입니다.
- 슈만이 ‘두 거인(3번 영웅·5번 운명) 사이에 선 그리스 처녀’라 부른, 우아함으로 살아남은 교향곡입니다.
1807년 3월, 비엔나 로프코비츠 궁. 슐레지엔에서 마차를 달려온 오페르스도르프 백작은 그날 오직 자신을 위해 쓰인 새 교향곡의 초연을 지켜봅니다. 그런데 웬걸, 무대에 오른 건 그가 내심 애타게 점찍어 두었던 ‘다음 곡’이 아니었거든요. 백작이 베토벤에게 부친 선금의 일부는, 끝내 약속했던 그 곡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날 무대에 울려 퍼진 새 교향곡이, 오늘 우리가 ‘교향곡 4번’이라 부르는 작품입니다. 백작은 내친김에 그다음 교향곡, 그러니까 5번까지 덥석 욕심을 내어 돈을 댔지만 정작 5번은 엉뚱한 귀족들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죠. 두둑한 선금을 치르고도 손에 남은 건 4번 한 장뿐이었습니다. 거칠게 말해 후원자의 뒤통수를 친 사기에 가까운 거래가, 하필 베토벤 교향곡 가운데 가장 우아한 곡을 세상에 남긴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어 해설은 왜 이 기막힌 사건을 ‘오페르스도르프에게 헌정’이라는 점잖은 한 줄로만 슬쩍 덮고 넘어가는 걸까요?

500플로린의 함정 — 오페르스도르프가 산 것은 4번이 아니었다
오페르스도르프는 슐레지엔의 떵떵거리는 영주였습니다. 자기 영지에 아예 전속 오케스트라까지 거느릴 만큼 음악 후원에는 진심인 사람이었죠. 1806년, 그는 새 교향곡 값으로 베토벤에게 500플로린을 보냈습니다. 당시 음악가에게 이 정도면 결코 푼돈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백작은 고작 한 곡으로 만족할 위인이 아니었습니다. 곧이어 “다음 교향곡도 내 것”이라며 5번 선금까지 부쳤습니다. 베토벤은 그 돈도 넙죽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정작 5번을 라주모프스키 백작과 로프코비츠 공후(Prince Lobkowitz)에게 헌정해 버립니다. 받을 돈은 다 받아 챙겨놓고, 정작 물건은 엉뚱한 손님 이름으로 포장해 내준 겁니다.
클래식사 연구자 루이스 록우드는 《Beethoven: The Music and the Life》(2003)에서 이 낯부끄러운 사건을 ‘이중 헌정’이라는 점잖은 말로 부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사실상 이중 매매에 가깝습니다. 오페르스도르프 손에 끝내 남은 건 5번이 아니라 4번이었으니까요. 5번에 돈을 대고 4번을 받아 쥔 기막힌 거래, 정말이지 그게 진실에 더 가깝습니다.
한국어 클래식 해설은 대개 이 뜨악한 일을 “오페르스도르프 백작에게 헌정”이라는 우아한 한 줄로 마무리해 버립니다. 그런데 이건 결코 단순한 헌정이 아니었죠. 보상금 대신 슬쩍 떠안긴 곡,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베토벤 4번’이라 부르는 작품입니다. 백작 입장에서는 5번 값까지 미리 냈는데 받아 쥔 건 전혀 다른 곡 한 장뿐이었거든요. 후원자를 상대로 한 사기라 불러도 크게 억울할 게 없는, 참으로 뻔뻔한 거래였습니다.
게다가 4번이 1807년 3월 비엔나에서 초연될 때, 같은 무대에 오른 곡들은 코리올란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습니다. 오페르스도르프는 자신이 애타게 점찍었던 5번 대신 4번이 초연되는 그 무대를 객석에 앉아 끝까지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그 기분이 어땠을지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요.
정말 얄궂은 건, 그날 밤 무대를 채운 다른 곡들이 하나같이 한없이 묵직했다는 점입니다. 코리올란 서곡의 비장함, 피아노 협주곡 4번의 깊은 사색 — 그 틈바구니에서 4번 교향곡만 유독 눈치 없이 밝고 가벼웠죠. 5번을 손꼽아 기다리던 백작에게는, 하필 그 해맑은 가벼움이 도리어 약을 올리는 소리로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마르톤바샤르의 여름 — 5번을 멈추고 4번을 먼저 쓰다
1806년 여름, 베토벤은 비엔나가 아니라 헝가리 마르톤바샤르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브룬스비크 백작 가문의 영지였죠. 그곳에서 그가 몰두하던 일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 백작의 누이 요제피네 브룬스비크에게 마음을 통째로 빼앗기는 일. 작곡 일정 따위는 자꾸만 뒤로 미뤄두던, 짝사랑에 푹 빠진 한 사내의 낭만적인 여름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5번 교향곡 1악장을 한창 끈질기게 붙들고 있었습니다. 스케치북 ‘Mendelssohn 15’에는 c단조의 그 유명한 네 음 — ‘따따따단’ — 이 이미 버젓이 적혀 있었거든요. 4번이 채 시작되기도 전의 일입니다. 통념상으로는 당연히 “4번 다음에 5번”이겠거니 싶지만, 실제 착상 순서는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한국어 해설에서는 좀처럼 날카롭게 짚어주지 않는 사실이죠.

베토벤이 요제피네에게 부친 편지 몇 통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끓어오르는 애정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은 구절이 적지 않습니다. 비록 신분의 벽이 끝내 둘을 갈라놓긴 했지만, 그해 여름의 한껏 들뜬 마음이 4번의 환한 표면과 영 무관하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운명을 묵직하게 써 내려가던 손이 잠깐 사랑에 한눈을 판 사이, 전혀 다른 색채의 교향곡이 경쾌하게 흘러나왔으니까요.
그러던 베토벤이 돌연 쓰던 5번을 잠시 밀쳐두고 4번을 먼저 끝내버립니다. 단순한 변덕이었을까요, 오페르스도르프에게 당장 넘겨줄 곡이 급했던 걸까요, 아니면 헝가리의 눈부신 여름이 그를 전혀 다른 색으로 훌쩍 끌고 갔던 걸까요? 그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만은 무섭도록 또렷하죠 — 베토벤이 그때 5번을 멈춰 세우지 않았다면, 4번이라는 교향곡은 끝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말하자면 4번은 5번의 거대한 탄생을 슬쩍 늦춰버린 막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막간극이 무려 33분짜리 교향곡으로 멀쩡히 살아남았죠. 영국 음악학자 배리 쿠퍼가 《Beethoven》(2008)에서 예리하게 짚었듯, ‘따따따단’의 씨앗은 4번이 눈치 없이 끼어들기 전부터 노트 한 페이지에 이미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4번은 그 위대한 운명을 잠깐 옆으로 비켜서게 만든, 참으로 우아한 훼방꾼이었습니다.
b♭단조에서 솟구치는 38마디 — 일부러 길을 잃게 만드는 서주
1악장 첫 음이 떨어지는 순간, 청자는 속수무책으로 길을 잃습니다. 베토벤이 아예 작정하고 그렇게 치밀하게 설계해 두었거든요.
시작부터 조성이 심상치 않습니다. 곡 전체는 분명 B♭장조인데, 도입부 38마디는 내내 b♭단조의 짙은 그늘에 잠겨 좀처럼 밝은 쪽으로 빠져나오질 못하죠. 1806년 무렵만 해도, 교향곡 1악장 서주를 단조로 음침하게 여는 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대선배인 하이든도, 모차르트도 섣불리 손대지 않던 수법이었으니까요. 그걸 베토벤이 덜컥 해버렸습니다.
게다가 이 38마디는 얌전히 머물러 있지도 않습니다. 화성이 자꾸만 엉뚱한 길로 미끄러지거든요. 어두운 색에서 기어 나오나 싶으면 어느새 b♭단조로 도로 끌려 들어가고, 그러다 또 생뚱맞은 곳으로 훌쩍 흘러가 버립니다. 청자는 “이 곡, 대체 어느 조에서 시작하는 거지?”라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조차 38마디 내내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마디 39. 갑자기 곡 전체가 B♭장조 알레그로 비바체로 눈부시게 솟구쳐 오릅니다. 그저 ‘어둠에서 빛으로’ 같은 진부한 비유로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지도 모른 채 헤매던 사람이, 별안간 멱살을 잡혀 환한 대낮으로 질질 끌려 나오는 느낌에 훨씬 가깝죠. 베토벤은 청자를 보란 듯이 길 잃게 만들더니, 기어코 마디 39에서 손목을 거칠게 낚아채 빛 한가운데로 끌어냅니다.
영국 음악학자 도널드 토비는 《Essays in Musical Analysis》(1935)에서 이 문제의 38마디를 두고 “음악사상 가장 신비로운 도입부”라 꼽았습니다. 빈말과는 영 거리가 먼 토비의 성정을 생각하면, 이건 사실상 어마어마한 극찬입니다. 그리고 이 서늘한 도입부의 그림자는 17년 뒤, 9번 교향곡 1악장 서주에 다시 한번 길게 드리웁니다. 베토벤은 제 손으로 주조해 낸 기막힌 수법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쓱 다시 꺼내 들었던 셈입니다.
지휘자에게 이 38마디는 곡 전체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문턱입니다. 바로 여기서 해석이 쫙 갈리죠. 어둠을 짙은 어둠인 채로 내버려 둔 뒤 마디 39를 비수처럼 날카롭게 밀어붙이는 지휘자가 있는가 하면, 도입부를 매끈하고 유려하게 쓱 흘려보내는 지휘자도 있습니다. 같은 4번 악보도 대체 누구 손에 잡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생물로 변합니다. 어떤 지휘봉 아래서는 캄캄하게 길 잃은 38마디로 들리고, 어떤 손끝에서는 그저 우아하게 스쳐 가는 서곡으로 흩어져 버립니다.
세계 모든 오케스트라 오디션이 떠는 그 8마디
4악장은 객석에 앉은 관객 입장에선 그저 한없이 가벼운 악장입니다. 16분음표가 쉴 새 없이 질주하는 무궁동(perpetuum mobile) — 그저 빠르고, 즐겁고, 유쾌하게 흘러가죠. 한 번 경쾌하게 시동이 걸리면 마지막 마디에 다다를 때까지 도무지 엔진이 식을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무대 위 바순 주자에게는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마디 184 부근, 발전부 끝자락에서 1바순 솔로가 능청스럽게 슬그머니 치고 들어오거든요. 8마디 동안 오케스트라 반주는 한껏 얇아지고, 오직 바순 혼자 16분음표를 숨 가쁘게 굴려야 합니다. 삐끗해도 숨을 곳 하나 없는, 그야말로 진검승부입니다.
빠른 바순 솔로 자체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두 가지인데요. 첫째, 바순은 애초에 이런 쏜살같은 패시지와 그리 친한 악기가 아니거든요. 둘째, 이 솔로는 “여기 솔로 나갑니다” 하고 드러내놓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그저 슬쩍 모습을 비춥니다. 관객은 그저 가벼운 4악장이 기분 좋게 흘러가는 줄로만 알죠.
그래서 이 요망한 8마디는 훗날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 바순 오디션의 지독한 단골 발췌곡이 되어버렸습니다. 빈 필, 베를린 필, 보스턴 심포니, LA 필 — 내로라하는 이름난 악단의 바순 자리에 이력서를 내려면 마디 184부터 191까지를 아예 손가락에 새기듯 통째로 외워 들어가야만 합니다. 관객은 평생을 들어도 까맣게 모르고 지나칠 8마디가, 연주자에겐 숨통을 조이며 평생을 따라붙는 얄궂은 관문이 된 겁니다.
물론 정작 객석에서는 이런 사정을 알 턱이 없습니다. 4악장이 모두 끝나고 박수갈채가 터질 때, 무대 구석에서 1바순 주자가 슬쩍 굳은 어깨를 푸는 작은 동작을 목격한 적이 있다면 — 그 진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디션장마다 모두가 파르르 떨며 굴려대던 바로 그 악명 높은 8마디를, 오늘도 무사히 넘겼다는 처절한 안도였던 셈입니다.
베토벤이 왜 굳이 바순에게 이 가혹한 자리를 떠넘겼는지를 두고는 두 가지 설이 오갑니다. 하나는 바순 특유의 굵직한 음색이 무궁동 한가운데서 유난히 돋보이는 색을 낸다는 제법 학구적인 설명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저 베토벤이 바순 주자를 골탕 먹이려 짓궂은 장난을 걸었다는 심증 짙은 추측이죠. 어느 쪽이 진실이든 참담한 결과는 똑같습니다 — 지난 200년 동안 전 세계 바순 주자들은 4번 4악장 악보를 펼치는 순간 어김없이 손이 싸늘하게 굳어버리거든요.
네 악장이 짓는 네 표정
1악장 — 어둠을 등에 업은 우아함
그 지독한 도입부 38마디는 앞에서 실컷 다뤘으니, 이제 마디 39 이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1주제는 제법 가벼운 도약으로 출발하거든요. 슈만이 훗날 ‘그리스 처녀’를 떠올리게 되는 바로 그 기막힌 우아함입니다 — 이 얄궂은 이야기는 아래에서 따로 풀겠습니다.
진짜 재미있는 대목은 발전부 한가운데입니다. 베토벤이 그 음침했던 도입부의 b♭단조를 슬쩍 다시 끌고 오거든요. 마치 “시작이 어느 조였는지 벌써 잊으셨나요?”라고 묻듯 짧게 어둠을 한 번 더 들이밀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재현부에서 다시 B♭장조로 뻔뻔하게 돌아옵니다. 곡을 끝낼 때도 그저 우아함만 곱게 남겨두는 법이 없죠. 코다에서 화성을 한 번 더 비틀어대고서야 비로소 마침표를 찍습니다. 마냥 가벼워 보이는 1악장 이면에는 이렇듯 도입부의 서늘한 어둠이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습니다.
2악장 — 박동 위에서 숨 쉬는 노래
첼로의 규칙적인 박동 위로 1바이올린이 기나긴 노래를 펼칩니다. 겉보기엔 구조가 제법 단순하게 들리지만, 베토벤이 아래에서 그 박동을 한결같이 묵묵히 붙들고 있는 동안 그 위의 선율은 아주 자유롭게 숨을 쉽니다. 밑에서 단단하게 받쳐주는 손이 흔들리지 않으니, 그제야 노래가 마음껏 늘어지며 유영할 수 있는 셈이죠.
베를리오즈는 《A Travers Chants》(1862)에서 이 악장을 두고 천상의 천사가 켜는 노래에 빗댔습니다. 19세기 프랑스 평론가가 고작 베토벤의 한 악장 앞에서 거창하게 종교적 비유까지 꺼내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이 음악에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사로잡혔는지를 말해주거든요. 물론 듣는 사람마다 평은 엇갈립니다. 누군가에겐 4번에서 가장 하품 나는 따분한 악장이고, 누군가에겐 베토벤의 모든 교향곡을 통틀어 가장 깊고 처연한 노래로 꽂힙니다. 재밌게도 둘 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 묵묵한 박동 위에서 선율이 대체 어디로 흐르는지를 끝까지 쫓아가느냐, 아니면 도중에 그 끈을 놓쳐버리느냐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3악장 — 메뉴엣의 탈을 쓴 스케르초
악보에 버젓이 적힌 이름은 메뉴엣이지만, 정작 귓가를 때리는 건 스케르초에 훨씬 가깝습니다. 메뉴엣 특유의 고상하고 점잖은 박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음악이 다짜고짜 빠르게 몰아붙이거든요. 궁정 무도회의 우아한 춤사위를 기대하고 발을 들였다간 그야말로 멱살을 잡히고 맙니다.
메뉴엣 사이에 불쑥 끼어드는 대조 단락(트리오)에서는 목관이 제 색채를 한꺼번에 와락 풀어놓습니다. 오보에·클라리넷·바순이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데,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뒤통수를 칠 4악장 마디 184 바순 솔로의 예고편처럼 들리기도 하죠. 베토벤은 바순에게 건넬 짓궂은 농담을 이 트리오에서 미리 한 번 툭 흘려둔 셈입니다. 게다가 메뉴엣과 트리오를 두 번씩 반복하는 구조 자체도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빤한 표준에서 한 발 훌쩍 비켜난 형태인데, 베토벤은 슬쩍 형식을 늘려놓고는 시치미를 뚝 떼며 늘렸다는 티조차 내지 않습니다.
4악장 — 멈추지 않는 엔진과 마지막 숨
16분음표 무궁동이 끝을 볼 때까지 도무지 멈추지 않습니다. 그 악명 높은 마디 184 바순 솔로는 앞에서 실컷 다뤘으니 여기선 코다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마지막 18마디 직전, 베토벤은 갑자기 쌩쌩하던 박자를 흐트러뜨립니다. 줄곧 숨 가쁘게 달려오던 무궁동이 그제야 잠깐 멈칫하거든요.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대열을 쫙 맞추고는 얄밉게 마침표를 찍어버립니다. “이렇게 달려왔으니 한 번쯤 숨 고르고 가자”는 듯한, 참 베토벤다운 농담입니다.
막상 4악장이 끝나는 순간, 청자는 33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조차 잘 체감하지 못합니다. 바로 그게 4번의 가장 큰 매력이면서, 동시에 한국에서 5번이나 3번의 그늘에 줄곧 묻혀 지내야 했던 억울한 이유이기도 하죠. 첫인상으로 뇌리에 콱 박히기엔 꼬리도 안 밟히게 너무 가뿐하게 지나가 버리는 곡이거든요. 그런데 속는 셈 치고 한 번 더 듣고 나면, 두 번째에 비로소 그 가벼움 속에 감춰진 무궁동의 옹골찬 단단함이 귀에 꽂히기 시작합니다.
두 거인 사이의 그리스 처녀 — 슈만 인용을 뒤집어 옮긴 한국어 해설
뻔한 한국어 클래식 해설에서 베토벤 4번 항목을 짚을 때 슈만 인용이 빠진 글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습니다. “두 북유럽 거인 사이에 낀 가냘픈 그리스 처녀” — 어김없이 십중팔구는 이 문장을 고상하게 끌어오거든요. 그리고 참으로 민망하게도, 그중 상당수가 이 문장의 진짜 뜻을 완전히 거꾸로 옮겨 적습니다.

슈만이 이 유명한 문장을 쓴 건 1835년, 라이프치히의 《Neue Zeitschrift für Musik》에 실린 어느 짧은 비평에서였습니다. 원문은 독일어로 “eine schlanke griechische Maid zwischen zwei Nordlandriesen”이라고 적혀 있죠. 여기서 덩치 큰 두 북유럽 거인은 누가 봐도 명백히 3번 ‘영웅’과 5번 ‘운명’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한국어 해설에서 흔히 보이는 풀이는 “4번이 3번·5번에 비해 약하다는 슈만의 평”입니다. 뜻이 기묘하게도 정반대로 뒤집혀 버렸죠. 슈만의 의도는 오히려 “두 거인 사이에 끼어 있어 그 우아함이 더 도드라진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평론가로서 베토벤을 누구보다 열렬히 옹호하던 슈만이, 4번을 굳이 ‘약한 곡’으로 깎아내릴 이유도 없었거든요.
한 줄짜리 인용이 한국어로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 대체 어디서 의미가 훌쩍 뒤집혔는지, 그 경로까지 샅샅이 추적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딱 하나 남죠. 베토벤 4번을 “약한 곡, 그래도 들을 만한 곡”으로 소개하는 시중의 한국어 해설은, 결국 슈만을 완전히 거꾸로 읽어낸 촌극이라는 것. 단언컨대 슈만은 4번을 약하다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거인 사이에 낀 처녀가 대체 어느 쪽보다 아름다운가 — 그건 오롯이 듣는 사람의 취향일 뿐이지, 슈만이 함부로 정해준 답이 아니었거든요.
3번과 5번 사이에서 4번이 끝내 살아남은 법
3번 ‘영웅’은 무려 50분이 넘습니다. 5번 ‘운명’은 35분이고, 도입부 네 음부터 다짜고짜 청자의 멱살을 움켜쥐죠. 그 틈바구니에 낀 4번은 33분입니다. 도입부에서 사납게 밀어붙이는 대신 그저 조용히 손목을 잡아끄는 곡이거든요.
이 묘한 차이는 의외로 결정적입니다. 베토벤 교향곡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9번 ‘합창’부터 덜컥 들려주면 대개는 무거워하며 뒷걸음질 치거든요. 5번을 권하면 그 첫 네 음에 지레 압도되거나 괜스레 어깨를 굳히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4번은 도입부 38마디의 얄궂은 신비를 한 번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한결 가뿐하게 흘러갑니다. 처음 만나는 베토벤 교향곡으로 사실 이만한 곡도 흔치 않죠.
바그너는 《Über das Dirigieren》(1869)에서 유독 4번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웅장한 영웅 서사가 없으니 자신의 미학과 영 맞아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반대로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에서 4번을 유난히 즐겨 지휘했습니다. 영웅 서사 따위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던 쪽이 오히려 4번을 각별히 아꼈다는 게 제법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그래서 4번은 꽤 오랫동안 묘한 악순환에 단단히 갇혀 있기도 했습니다. 불타오르는 영웅 서사가 없으니 화제가 덜 되고, 화제가 덜 되니 굳이 무대에 덜 오르고, 덜 오르니 또 그만큼 잊혀가는 — 그 얄궂은 쳇바퀴 한가운데 4번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거든요. 한국에서 5번·3번의 거대한 그늘에 가려 좀처럼 들리지 않던 억울한 사정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비롯됩니다.
베토벤을 그저 ‘영웅·운명·환희’ 세 글자로만 뻣뻣하게 외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4번은 그 뻔한 도식을 산산이 깨주는 근사한 입구가 됩니다. 베토벤에게는 이토록 가벼운 베토벤도 있었거든요. 시종일관 무겁고 찌푸리기만 한 게 베토벤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가볍다고 얄팍하게 단순한 게 아니라, 경쾌한 표면 아래 38마디짜리 서늘한 어둠을 교묘하게 숨겨둔 베토벤이죠. 백작이 5번 값을 치르고 엉겁결에 손에 쥔 그 한 장이, 알고 보면 베토벤의 가장 영리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이었던 셈입니다.
추천 연주 — 한 장만 고른다면
4번을 딱 한 장만 고르라면 카를로스 클라이버 + 바이에른 슈타츠카펠레, 1982년 라이브(Orfeo)입니다. 다른 후보를 아무리 저울질해 보아도 이 선택은 좀처럼 바뀌지 않죠. 클라이버가 평생 정식으로 녹음한 교향곡은 정말이지 손에 꼽을 만큼 적은데, 그 유난히 짧은 목록 안에 4번이 들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설명은 절반쯤 끝납니다. 도입부 38마디의 어둠을 섣불리 걷어내지 않고 끝까지 어둠으로 남겨두다 마디 39를 칼처럼 베어 들어가는, 거의 유일한 녹음이거든요.
다만 이 매서운 해석이 누구의 귀에나 다정하게 맞는 건 아닙니다. 4번을 그저 “우아하고 가벼운 교향곡”으로 산뜻하게 즐기고 싶은 분이라면 클라이버의 그 시퍼런 단단함이 도리어 거슬릴 수도 있거든요. 그런 분께는 카라얀 1962년 베를린 필 사이클(DG)이 훨씬 편안하게 잘 맞습니다. 그야말로 매끈하고, 기가 막히게 균형 잡혀 있고, 모든 마디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정렬되죠. 옛 거장의 4번이 정 궁금하다면 푸르트벵글러가 1952년 빈 필과 남긴 묵직한 라이브도 있습니다 — 단, 1952년 특유의 열악한 음질을 너끈히 감수할 각오는 필요합니다. 첫 한 장은 클라이버로 뚫고, 카라얀의 매끈함과 푸르트벵글러의 굵직함은 그다음 천천히 들어도 절대 늦지 않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1악장 도입부 38마디와 4악장 마디 184~191 바순 솔로, 딱 이 두 군데를 악보와 함께 짚어가며 들으면 베토벤이 무대 위에서 대체 무슨 얄궂은 짓을 벌이고 있었는지가 가장 또렷하게 보입니다. 도입부에서는 캄캄한 흐름을 따라가다 마디 39에서 돌연 B♭장조 알레그로 비바체로 튕겨 나가는 지점을 쓱 표시해두고 들으면, 어둠과 빛의 경계가 섬뜩할 만큼 마디 단위로 적나라하게 드러나죠. 바순 솔로는 패시지 자체가 아주 짧으니 마디 184부터 191까지 악보 위를 손가락으로 한 번 꾹꾹 따라가 보세요 — 편안한 객석에서는 좀처럼 짐작조차 가지 않던 그 8마디의 지독한 노출감이 단번에 확 잡힐 겁니다. 귀로만 듣던 곡을 직접 눈으로 쫓아보면 체감하는 온도가 또 완전히 다를 거예요.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4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베토벤 교향곡 4번은 33분이라는데 짧은 편인가요?
4번을 한 장만 고른다면 어느 녹음을 들어야 하나요?
슈만이 “그리스 처녀”라고 한 게 4번을 깎아내린 건가요?
4번이 5번보다 먼저 작곡됐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오페르스도르프 백작은 결국 어떻게 됐나요?
이어서 듣기 — 베토벤이라는 숲을 더 걷고 싶다면
클래식은 한 곡만 떼어 들을 때보다, 서로 이어진 이야기를 함께 알 때 훨씬 크게 울립니다. 4번이 ‘영웅’과 ‘운명’ 사이에 끼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보았으니, 이제 그 양옆의 거인들과 4번 이후의 베토벤까지 차례로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