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 BWV 1042

악보가 사라졌는데도 살아남은 협주곡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작품명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 BWV 1042
작곡 시기
쾨텐 시기, 약 1717–1723년경
악장 구성
3악장
I. Allegro (E major)
II. Adagio (C-sharp minor)
III. Allegro assai (E major)

1악장 빠르게 (E장조)
2악장 느리게 (c♯단조)
3악장 매우 빠르게 (E장조)

편성
독주 바이올린, 현악 합주(제1·2바이올린, 비올라), 통주저음(첼로, 하프시코드)
연주 시간
약 17분

바흐가 이 곡을 썼을 때 그는 교회에 없었습니다.

1717년 바흐는 라이프치히의 칸토르 자리도, 바이마르의 궁정 오르가니스트 자리도 아닌, 쾨텐이라는 작은 도시의 궁정 악장직을 맡았습니다. 이 도시에서 그를 고용한 레오폴트 공작은 칼뱅파 개신교 신자였거든요. 칼뱅파 교회에서는 화려한 음악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바흐는 종교 칸타타 대신 세속 음악, 기악곡, 협주곡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 BWV 1042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나오죠. 이 곡의 원본 자필 악보는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듣는 판본은 바흐가 이 곡을 나중에 스스로 하프시코드 협주곡 D장조 BWV 1054로 편곡하면서 남긴 흔적을 통해 역추적한 겁니다. 작곡가가 자신의 곡을 직접 편곡했다는 건, 그 곡을 그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쾨텐의 바흐, 그리고 이 협주곡이 탄생한 환경

당시 유럽 기악 협주곡의 주도권은 이탈리아에 있었습니다. 특히 비발디의 협주곡 양식, 즉 독주자와 합주단이 번갈아 주제를 주고받는 ‘리토르넬로(ritornello) 형식’이 대세였습니다. 리토르넬로란 쉽게 말하면 “되풀이되는 짧은 주제”라고 보면 됩니다. 독주자가 활약하다가 합주단이 이 주제를 들고 돌아오고, 다시 독주자가 나가고, 다시 합주단이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바흐는 바이마르 궁정 악장 시절에 비발디 협주곡들을 하프시코드용으로 직접 편곡한 적이 있네요. 비발디의 협주곡 16개를 포함해서 다른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협주곡까지, 바흐는 이 편곡 작업을 통해 당대 최첨단 협주곡 양식을 손으로 익혔습니다. 악보를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손가락으로 옮겨 적으면서 이탈리아 음악의 논리가 어디서 오는지를 해부한 셈이죠.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 협주곡 양식을 철저히 내면화한 바흐는, 쾨텐에서 그 양식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쾨텐 궁성 외부 전경 — 바흐가 1717~1723년 재직했던 궁정
쾨텐 궁성(Schloss Köthen) 전경. 안할트-쾨텐 공국의 수도로, 레오폴트 공작이 바흐를 궁정 악장으로 초빙했던 곳이다.

BWV 1042가 비발디 협주곡과 다르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같은 틀을 씁니다. 그런데 바흐의 리토르넬로는 비발디보다 훨씬 조성 변화가 많고, 독주 파트가 단순한 장식적 역할에 머물지 않습니다. 독주 바이올린은 새로운 테마 요소를 직접 꺼내들고, 합주단은 그걸 받아서 변형하고, 둘 사이의 대화가 연속으로 이어집니다.

레오폴트 공작 역시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올라 다 감바와 하프시코드를 다루는 아마추어 연주자로, 바흐와 함께 직접 실내악을 즐겼습니다. 궁정 악단의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BWV 1042는 아마도 소규모 앙상블이 함께 연주하는 방식으로 초연되었을 겁니다. 바흐가 직접 독주를 맡았는지, 아니면 궁정의 다른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했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레오폴트가 그 자리에 있었을 가능성은 높더군요.

쾨텐 시기에 바흐가 남긴 기악 작품들이 이 시절의 특별함을 보여줍니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BWV 1001–1006, 무반주 첼로 모음곡 BWV 1007–1012,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BWV 1046–1051이 모두 이 시기에 완성되거나 이 시기를 거쳤습니다. BWV 1042는 그 목록 안에 있는 곡입니다. 이 목록을 보면 쾨텐이 바흐에게 얼마나 생산적인 환경이었는지 짐작이 가죠. 6년 남짓의 짧은 시간에 이 많은 걸작들이 나왔습니다.

악장별 감상 가이드

1악장: Allegro ― 리토르넬로가 돌아올 때마다 달라지는 위치

1악장을 처음 들을 때 많은 사람이 걸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시작이 너무 당당합니다. 합주단 전체가 한꺼번에 리토르넬로 테마를 내놓는데, 이 테마가 짧고 강렬하고 명확합니다. “이건 기억하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상이 강합니다.

그런데 독주 바이올린이 등장하고 한참 활약하다가, 합주단이 다시 리토르넬로를 들고 돌아왔을 때 조성이 바뀌어 있습니다. 처음엔 E장조였다가, 다음 번엔 B장조로, 그다음엔 c#단조로 이동합니다. 같은 테마인데 매번 다른 색깔로 들립니다. 처음엔 자신감 넘치는 느낌이었던 테마가 c#단조에서 등장할 땐 뭔가 불안한 느낌을 줍니다.

이게 바흐가 비발디의 리토르넬로 형식을 가져다가 다르게 쓰는 방식입니다. 비발디 협주곡에서 리토르넬로는 대체로 같은 조성에서 돌아옵니다. 긴장이 쌓였다가 해소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그 예측 가능성이 오히려 즐거움을 줍니다. 바흐는 이 예측 가능성을 흔듭니다. 리토르넬로가 돌아오긴 하는데, 어디서 돌아올지 모릅니다.

독주 바이올린 파트는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습니다. 빠른 아르페지오(분산화음: 화음의 음을 하나씩 차례로 연주하는 방식)와 복잡한 음형들이 연속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기교 과시가 아닙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빠르게 움직이는 음형들을 연주하는 동안, 그 음형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합주단이 화성으로 받쳐주고 있습니다. 화려하게 뛰는 독주 바이올린을 따라가다 보면, 그 아래에서 합주단이 정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1악장이 끝날 때는 처음 들었던 E장조의 리토르넬로가 “여기였구나” 하는 느낌으로 돌아옵니다. 멀리 여행을 갔다가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귀환이 당연한 것 같지만, 7~8분 동안 여러 조성을 거쳐온 뒤에야 E장조가 얼마나 밝고 명확하게 들리는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전체 길이는 약 7~8분으로 세 악장 중 가장 깁니다.

쾨텐 궁성 음악실 — 바흐가 활동했던 궁정의 음악 공간
쾨텐 궁성(Schloss Köthen) 음악실. 바흐는 1717년부터 1723년까지 이곳 레오폴트 공작의 궁정 악장으로 재직하며 BWV 1042를 포함한 다수의 기악 협주곡을 작곡했다.

바이올린 독주자 입장에서 1악장의 가장 어려운 지점은 기교적인 음형들을 소화하면서도 리토르넬로 구조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는 부분입니다. 독주자가 너무 빠르거나 느리게 치달리면 합주단과의 타이밍이 어긋납니다. 1악장에서 좋은 독주자와 평범한 독주자의 차이가 드러나는 이유입니다. 연주 영상을 보면서 독주자와 합주단이 리토르넬로로 돌아올 때 어떻게 시선을 교환하는지, 어떻게 속도를 맞추는지를 관찰하는 것도 흥미롭더군요.

2악장: Adagio ― 박자를 세는 합주단, 선율을 늘이는 독주자

2악장은 조성이 c#단조로 바뀝니다. 1악장이 끝나고 갑자기 어두워집니다.

합주단의 현악기는 스타카토(짧게 끊어치는 방식)로 낮은 박자를 고집스럽게 반복합니다. 그 위에서 독주 바이올린은 매우 느리고 긴 선율을 노래합니다. 두 레이어가 전혀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이 구조가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합주단은 마치 시계처럼 일정하게 박자를 새기고, 독주자는 그 박자에 갇히지 않으려는 듯 선율을 늘이고 줄입니다.

바로크 음악의 ‘통주저음(basso continuo)’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통주저음이란 베이스 라인과 화음 악기(하프시코드, 오르간 등)가 밑에서 전체 구조를 지탱하는 방식입니다. 2악장에서 스타카토로 박자를 두드리는 현악 합주 파트는 이 통주저음의 역할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겁니다. 합주단이 두드리는 박자가 독주자를 떠받치는 동시에, 독주자를 가두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구조 때문에 2악장의 독주 바이올린 선율은 외로운 느낌을 줍니다. 어딘가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레오폴트 공작과 함께하던 친밀한 실내악의 분위기와는 다른, 다소 내성적인 순간입니다. 바흐가 쾨텐의 소규모 앙상블을 위해 쓴 음악 안에 이런 고독한 순간을 배치했다는 점이 흥미롭죠. 3악장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독주 바이올린이 가장 높은 음으로 길게 늘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음이 사라지고 3악장이 시작되는 전환이 꽤 극적이거든요.

2악장은 전체 길이가 약 5분 내외로 세 악장 중 가장 짧더군요. 하지만 이 5분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1악장의 활기와 3악장의 에너지 사이에서, 이 짧은 c#단조의 시간이 전체 곡의 무게중심 역할을 합니다.

독주 바이올린의 선율 선택도 주목할 만합니다. 바로크 음악의 아다지오 악장에서 연주자는 악보에 적힌 음표에 즉흥적인 장식음(오르나멘테이션)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더군요. 바흐가 악보에 적어놓은 기본 선율이 있고, 거기에 연주자가 트릴, 모르덴트, 아포지아투라 같은 장식을 어떻게 입히느냐에 따라 같은 2악장이 매우 다르게 들립니다. 이것이 바로크 연주에서 연주자의 해석 범위가 현대 음악보다 훨씬 넓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힐러리 한처럼 절제된 장식을 선택하는 연주자와, 풍부한 즉흥성을 넣는 피리오드 연주자의 2악장은 같은 악보에서 출발했음에도 다른 곡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3악장: Allegro assai ― 시칠리아나 리듬이 멈추지 않는 이유

3악장은 시칠리아나(siciliana)라는 춤곡 리듬을 기반으로 합니다. 시칠리아나는 8분의 12박자의 흔들리는 느낌을 가진 춤곡 형식으로, 바로크 시대에 느린 악장이나 여린 분위기를 표현할 때 자주 쓰였습니다. 그런데 바흐는 여기서 이 리듬을 느리게 쓰지 않습니다. 이름은 시칠리아나 리듬이지만, 빠르기 표시는 ‘Allegro assai(매우 빠르게)’입니다. 흔들리는 리듬이 빠른 속도로 치달리는 이 조합이 3악장의 독특한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처음 들으면 “이게 왜 3악장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악장의 에너지가 직선적이었다면 3악장의 에너지는 파도처럼 흔들리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독주 바이올린은 이 흔들리는 리듬을 가져와서 계속 변주합니다. 짧은 음형들이 연속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마치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는 것처럼 들립니다. 합주단이 리토르넬로를 들고 나오면 잠깐 호흡을 고르는 것 같지만, 독주 바이올린이 다시 뛰어나오면서 추진력이 회복됩니다.

3악장의 독주 파트는 1악장보다도 더 빠르고 기술적 요구가 높네요. BWV 1042 전체에서 가장 기교적인 도전이 3악장에 몰려 있습니다. 좋은 연주자들이 이 악장에서 어떻게 리듬 탄력을 유지하면서 기교적 정확성을 지키는지를 비교해서 들으면 재미있습니다. 힐러리 한의 연주와 빌데 프랑의 연주가 여기서 특히 다른 접근을 보여줍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3악장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잠깐 멈추는 순간들입니다. 합주단이 리토르넬로를 들고 나오는 그 짧은 순간들. 이때 독주자가 어떻게 다시 진입하는지에 따라 전체 3악장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그냥 들어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박자 하나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리듬 탄력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이런 세부적인 부분이 라이브 연주에서는 더 분명하게 들립니다.

1악장에서 처음 들었던 리토르넬로의 에너지가 3악장에서 다른 방식으로 돌아옵니다. 처음 이 곡을 들으면 “1악장이랑 3악장이 왜 비슷하게 느껴지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악장은 같은 에너지를 다른 리듬 언어로 표현한 겁니다. 1악장의 에너지가 직선적이라면, 3악장의 에너지는 흔들리는 느낌입니다. 알고 들으면 다르게 들립니다.

바흐 바이마르 기념상 — 쾨텐으로 이동 직전 바이마르에서의 바흐
바이마르(Weimar)에 세워진 바흐 기념상. 바흐는 쾨텐으로 이직하기 직전인 1717년 바이마르 궁정에서 한 달간 감금 생활을 한 끝에 쾨텐으로 향했다.

전체 연주 시간은 1악장 약 7~8분, 2악장 약 5분, 3악장 약 4분으로, 3악장이 가장 짧지만 밀도는 가장 높더군요.

이 곡이 하프시코드로도 존재한다는 것

앞서 말했듯 바흐는 BWV 1042를 나중에 하프시코드 협주곡 D장조 BWV 1054로 편곡했습니다. 바이올린 독주 파트가 하프시코드 독주 파트로 바뀌고, 조성이 D장조로 내려갑니다. 왜 E장조에서 D장조로 내려갔냐면, 바이올린은 E장조에서 개방현을 많이 쓸 수 있어서 음량이 크고 밝게 들립니다. 하프시코드로 편곡할 때는 이 이점이 사라지므로, 하프시코드에 더 자연스러운 D장조로 내려간 겁니다.

단건반 하프시코드 (Carl Conrad Fleischer, 1716년) — 바흐 시대의 건반악기
단건반 하프시코드(Carl Conrad Fleischer, 1716년). 바흐는 바이올린 협주곡 BWV 1042를 이와 유사한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BWV 1054로 편곡했다.

두 버전을 나란히 들어보면 흥미롭네요. 같은 음악인데 악기의 음색 차이로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바이올린 버전은 선율이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고, 하프시코드 버전은 선율이 화성 안에 더 깊이 박혀 있는 느낌입니다. 1악장의 리토르넬로 테마가 하프시코드로 연주될 때는 더 타격감이 있고, 2악장의 아다지오는 하프시코드의 건조한 음색 때문에 더 고독하게 들립니다.

BWV 1042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BWV 1054도 꼭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같은 작품이 악기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들릴 수 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BWV 1054를 연주한 건 1720년대 후반에서 1730년대로 추정됩니다. 라이프치히 시기의 바흐는 쾨텐에서 쓴 세속 기악곡들을 교회 칸타타나 하프시코드 협주곡 형태로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시기 그가 남긴 교회 음악의 정점은 b단조 미사 BWV 232입니다. 이 재활용 패턴이 바흐의 음악이 조성과 악기를 넘어서 얼마나 보편적인 구조적 논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바이올린으로 썼어도 하프시코드로 쓸 수 있고, 나중에 칸타타 편곡으로도 쓸 수 있는 음악. 악기를 교체해도 음악의 논리가 살아 있다는 것, 이것이 바흐를 독특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 편곡 사실은 BWV 1042가 쾨텐에서 실제로 연주되었으며, 바흐가 이 음악의 가치를 라이프치히 시절까지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쾨텐에서 라이프치히로 이동한 후 바흐는 다시 교회 음악의 세계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쾨텐에서 쌓은 기악 음악의 경험은 그 이후의 작품들에도 계속 영향을 미쳤습니다.

쾨텐에서 바흐가 놓인 상황: 바이마르 감옥에서의 탈출

쾨텐으로 이동하기 직전, 바흐는 바이마르에서 한 달간 감금 생활을 했습니다. 바이마르 공작 빌헬름 에른스트가 바흐의 쾨텐 이적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그를 강제 억류한 겁니다. 한 달 뒤 강제로 해고 처리되어서야 바흐는 쾨텐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재미있는 맥락을 만듭니다. 거의 감금에 가까운 상태에서 탈출해 온 바흐가 쾨텐에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된 겁니다. 교회 칸타타의 엄격한 형식도 없고, 공작의 간섭도 적었거든요. 레오폴트는 음악을 사랑했고 바흐를 진심으로 존중했습니다. 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나온 것들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고,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들이고, BWV 1042입니다.

쾨텐 시기가 바흐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을 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실제로 바흐가 1723년 라이프치히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경제적 사정과 자녀 교육 문제였지, 쾨텐이 싫어서가 아니었거든요. 쾨텐을 떠난 후 바흐가 종교 음악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이 시기의 기악 협주곡들은 그의 커리어에서 짧지만 강렬한 막간으로 남았습니다.

BWV 1041과 BWV 1042, 두 바이올린 협주곡의 차이

바흐에게는 두 개의 단독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습니다. a단조 BWV 1041과 E장조 BWV 1042입니다. 두 곡을 함께 듣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격이 상당히 다릅니다.

BWV 1041(a단조)은 더 내향적입니다. 1악장부터 단조의 긴장감이 있고, 2악장과 3악장도 전반적으로 조심스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기교적으로도 BWV 1042보다 까다롭지 않아서, 학생들이 먼저 배우는 경우가 많네요. BWV 1041의 2악장은 특히 유명한 편인데, 단조 특유의 내면적 분위기가 바이올린 독주와 잘 맞아서 독립 연주로도 자주 등장합니다.

BWV 1042(E장조)는 더 외향적입니다. E장조라는 조성 자체가 밝고 당당하게 들리는 데다, 1악장의 리토르넬로 테마가 강렬하게 시작해서 처음 접하는 사람도 바로 인상이 남습니다. 독주 파트의 기교적 요구도 더 높고, 합주단과의 대화도 더 활발합니다. 이 두 협주곡의 성격 차이가 단순히 조성의 차이만이 아니라, 바흐가 각 곡에서 독주자와 합주단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온다는 점이 흥미롭더군요.

두 곡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BWV 1042를 먼저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입문하기에 더 친절하고, 처음 들었을 때 인상이 강합니다. 교향곡 입문 가이드와 함께 들어보셔도 좋습니다.

바로크 바이올린 — BWV 1042가 연주된 시대의 악기
바로크 바이올린(왼쪽). BWV 1042는 거트현과 짧은 활대를 사용하는 바로크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되었다. 현대 악기와 달리 넥의 기울기가 적고 음량이 작지만, 더 섬세한 음색 표현이 가능하다.

참고로, BWV 1041과 BWV 1042는 종종 두 개를 묶어 한 장의 음반에 넣는 경우가 많더군요. 힐러리 한의 2003년 도이체 카머필하모니 음반도 그렇고,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1960년대 필립스 음반도 두 협주곡을 함께 수록했습니다. 두 곡을 한번에 들어보는 것도 바흐의 기악 언어를 이해하는 데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두 협주곡 모두 하프시코드 편곡이 존재합니다. BWV 1041은 하프시코드 협주곡 g단조 BWV 1058로, BWV 1042는 앞서 언급한 BWV 1054로 편곡됐습니다. 바흐가 쾨텐 시절 쓴 두 바이올린 협주곡을 라이프치히에서 모두 다시 하프시코드로 편곡해서 사용했다는 사실은, 이 두 곡이 그에게 특별한 위치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왜 지금 BWV 1042인가

바로크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비발디의 사계를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다 바흐 쪽으로 넘어오면 “이게 비발디보다 더 복잡한가?” 하는 질문을 갖게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복잡합니다. 그런데 그 복잡함이 어렵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들립니다. 이게 BWV 1042가 계속 들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BWV 1042는 그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이 됩니다. 비발디와 바흐는 같은 리토르넬로 형식을 쓰면서도 음악이 전개되는 논리가 다릅니다. 비발디의 협주곡이 계획된 도로를 달리는 느낌이라면, 바흐의 BWV 1042는 목적지를 알고 있지만 경로가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익숙해지면 그 차이가 점점 분명해집니다.

한 가지 더. 이 곡이 오늘날 연주 레퍼토리에 살아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독주자에게 해석 여지를 많이 주기 때문입니다. 바흐의 악보는 비발디보다 훨씬 간결하게 표기되어 있어서, 연주자가 아티큘레이션(음의 연결 방식), 다이내믹(셈여림), 오르나멘테이션(장식음)을 직접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많네요. 그 결정들이 쌓여서 힐러리 한의 BWV 1042와 빌데 프랑의 BWV 1042가 달라지는 겁니다. 같은 악보인데 왜 다르게 들리는지, 여기서 보입니다.

이것이 바흐의 기악 음악이 피리오드 운동 이후 더 다양하게 재해석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960~70년대 헨릭 셰링이나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교과서적” 연주부터, 1980년대 이후 레이첼 포저나 앤드루 맨지 같은 피리오드 연주자들의 해석까지, BWV 1042는 계속 새롭게 발견됩니다. 악보는 같은데 시대마다 다르게 들리는 곡. 이 유연성이 300년 이상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입니다.

처음 이 곡을 접하는 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드린다면, 연주자 두 명의 버전을 나란히 들어보시라는 겁니다. 힐러리 한과 빌데 프랑, 또는 피리오드 연주자 하나와 현대 악기 연주자 하나를 골라서요. 같은 1악장의 리토르넬로 테마가 등장하는 방식, 독주 바이올린이 합주단과 교대하는 속도, 2악장 아다지오에서의 선율 처리. 이 세 가지만 비교해서 들어도 “아, 바흐 기악 협주곡이 이런 거구나”가 훨씬 빨리 잡힙니다.

바흐의 음악은 ‘이 악보가 진리다’라는 태도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악보를 내가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하는 전통이 오래됐습니다. BWV 1042는 그 전통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협주곡 중 하나이고, 덕분에 지금도 계속 새로운 연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곡이 지루해질 틈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죠.

연주 시간이 17분 내외로 짧아서 부담이 없습니다. 3악장 구성이 명확하고, 각 악장의 성격 차이가 뚜렷해서 처음 클래식 기악곡을 접하는 분들에게 입문 곡으로도 적합합니다. 다만 여러 번 들을수록 처음엔 들리지 않던 구조적 세부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곡입니다. 처음 들었을 때와 열 번 들었을 때의 인상이 달라집니다. 그 변화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이 곡이 주는 묘미입니다. 1악장 리토르넬로가 매번 다른 조성에서 돌아온다는 걸 귀로 느끼는 순간이 오면, 그때부터 이 곡이 진짜 재미있어집니다.

그리고 이 곡은 여전히 연주 레퍼토리에서 활발하게 쓰입니다. 학생 연주회에서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의 독주회에서도 BWV 1042는 꾸준히 등장합니다. 3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새로 녹음이 나오고, 연주자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이 곡이 아직도 연주자들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크 음악의 고악기(피리오드 악기) 연주가 확산된 1970~80년대 이후 BWV 1042의 해석 범위는 더욱 넓어졌습니다. 거트현으로 연주하는 피리오드 스타일과, 현대 악기로 연주하는 스타일이 공존하면서 같은 곡이 두 가지 전통 위에서 계속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비교적 짧은 17분짜리 곡이라는 점이 이 다양한 해석들을 탐색하기에 오히려 유리합니다. 부담 없이 여러 연주를 들어볼 수 있거든요.

추천 녹음

힐러리 한 / 도이체 카머필하모니 브레멘 (2003, DG)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초상화 (엘리아스 고틀로프 하우스만, 1746년)
엘리아스 고틀로프 하우스만(Elias Gottlob Haussmann)이 1746년 그린 바흐의 초상화. 바흐가 쾨텐 시기를 마치고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악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의 모습이다.

힐러리 한의 바흐는 단호합니다. 장식음이나 감정 과잉 없이 음표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처리하는데, 이것이 BWV 1042에서는 특히 잘 맞습니다. 1악장의 리토르넬로 구조가 이렇게 명료하게 들리는 연주도 드뭅니다. 독주와 합주단의 균형이 좋고, 현대 악기 연주임에도 바로크적 양식감이 충분합니다. 3악장의 추진력도 인상적입니다.

빌데 프랑 / hr-교향악단 프랑크푸르트 · 필리프 헤레베헤 (2016, hr-Sinfonieorchester)

필리프 헤레베헤는 바로크 음악 해석의 권위자입니다. 이 연주에서 빌데 프랑의 독주는 약간 더 자유롭고 호흡이 깁니다. 힐러리 한의 단호함과는 다른 방향을 보여주며, 2악장 Adagio에서 독주와 합주단의 관계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hr-Sinfonieorchester의 공식 채널에 전곡이 공개되어 있습니다.

라르스 울리크 모르텐센 / 콘체르토 코펜하겐 (2006, dacapo)

고악기(피리오드 악기) 연주를 원한다면 이 음반이 좋은 출발점입니다. 거트현의 질감, 작은 편성에서 오는 투명한 음향. BWV 1042가 원래 어떤 음향 환경에서 연주되었는지를 가장 잘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녹음입니다. 쾨텐 궁정의 소규모 앙상블 느낌이 납니다. 2악장 아다지오의 스타카토 합주 라인이 현대 악기 연주와 얼마나 다르게 들리는지도 확인해볼 만합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BWV 1042의 악보는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합니다. 1악장을 들으면서 악보를 따라가면, 리토르넬로 테마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고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독주 파트의 음형이 얼마나 복잡한지도 악보를 보면 더 잘 보입니다. 특히 3악장의 독주 파트를 악보로 따라가다 보면 연주자들이 왜 이 악장을 어려워하는지 이해됩니다.

바흐 BWV 1042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BWV 1042는 언제 작곡되었나요?

쾨텐 시기(1717~1723년경)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본 자필 악보는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나중에 바흐 자신이 편곡한 하프시코드 협주곡 BWV 1054를 통해 역추적된 판본이 현재 사용됩니다.

BWV 1042의 악장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3악장 구성입니다. 1악장 Allegro(E장조), 2악장 Adagio(c#단조), 3악장 Allegro assai(E장조). 바로크 협주곡의 전형적인 빠름-느림-빠름 구조를 따릅니다. 전체 연주 시간은 약 17분입니다.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BWV 1042를 하프시코드 협주곡으로도 들을 수 있나요?

네. 바흐가 직접 이 곡을 D장조 하프시코드 협주곡 BWV 1054로 편곡했습니다. 조성이 E장조에서 D장조로 내려간 이유는, 바이올린 편성에서 E장조가 개방현 활용에 유리한 반면 하프시코드는 D장조가 더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같은 음악이지만 악기의 음색 차이로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BWV 1042를 처음 듣는다면 어떤 악장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1악장 전체를 처음부터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리토르넬로 테마가 어떻게 등장하고 변형되는지를 1악장에서 파악하면 나머지 악장들도 훨씬 수월하게 들립니다. 처음엔 그냥 흘러가는 것 같아도, 두세 번 들으면 구조가 보입니다.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BWV 1042 추천 음반은 무엇인가요?

현대 악기 연주로는 힐러리 한/도이체 카머필하모니 브레멘(2003, DG)이 구조적 명료함 면에서 탁월합니다. 고악기(피리오드) 연주로는 라르스 울리크 모르텐센/콘체르토 코펜하겐(2006, dacapo)이 바로크 원음에 가장 가깝습니다.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연주로는 hr-Sinfonieorchester의 빌데 프랑 연주(YouTube)가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저작권 안내 · 클래식노트의 모든 글은 무단 전재, 복제, 재배포, 무단 번역을 금지합니다. 짧은 인용은 출처 표기와 원문 링크를 포함한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협업·재사용 문의는 별도로 연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