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 BWV 1042

악보가 사라졌는데도 살아남은 협주곡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작품명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 BWV 1042
작곡 시기
쾨텐 시기, 약 1717–1723년경
악장 구성
3악장
I. Allegro (E장조)
II. Adagio (c♯단조)
III. Allegro assai (E장조)
편성
독주 바이올린, 현악 합주(제1·2바이올린, 비올라), 통주저음(첼로, 하프시코드)
연주 시간
약 17분

이 곡은 — 바흐가 쾨텐 궁정에서 쓴 두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로, 비발디의 리토르넬로 형식을 더 풍부한 조성 변화로 다시 짠 E장조 협주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1악장 Allegro. 강렬한 리토르넬로 테마가 돌아올 때마다 E장조에서 B장조, c♯단조로 조성이 바뀌어 같은 선율이 매번 다른 색으로 들립니다.

첫 음반 — 힐러리 한 · 도이체 카머필하모니 브레멘 · DG (2003).

평생을 교회 음악에 바친 바흐라지만, 재미있게도 이 곡을 쓸 무렵 그는 정작 교회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1717년, 바흐는 라이프치히의 콧대 높은 칸토르 자리도, 바이마르의 궁정 오르가니스트 자리도 아닌, 쾨텐이라는 작은 도시의 궁정 악장직을 택했습니다. 이 도시에서 그를 고용한 레오폴트 공작은 칼뱅파 개신교 신자였거든요. 화려한 음악을 굳이 찾지 않았던 칼뱅파 교회 덕분에, 바흐는 쉴 새 없이 종교 칸타타를 뽑아내야 하는 굴레에서 간만에 벗어났습니다. 대신 세속 음악과 기악곡, 협주곡을 마음껏 써 내려갈 황금 같은 시간과 환경을 얻어낸 셈이죠.

그 넉넉한 환경이 낳은 결과물 중 하나가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 BWV 1042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꽤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등장합니다. 정작 이 곡의 원본 자필 악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거든요. 연구자들은 바흐가 훗날 이 곡을 하프시코드 협주곡 D장조 BWV 1054로 손수 편곡하며 남겨둔 흔적들을 거슬러 올라가, 지금 우리가 듣는 판본으로 간신히 복원해 냈습니다. 천하의 작곡가가 자기 곡을 직접 뜯어고쳐가며 다시 썼다는 건, 본인 스스로도 이 곡을 꽤나 가치 있게 여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쾨텐의 바흐, 그리고 이 협주곡이 탄생한 환경

당시 유럽 기악 협주곡판을 쥐락펴락하던 곳은 다름 아닌 이탈리아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비발디의 협주곡 양식, 그러니까 독주자와 합주단이 핑퐁 게임처럼 번갈아 주제를 주고받는 ‘리토르넬로(ritornello) 형식’이 절대적인 대세였죠. 리토르넬로란 쉽게 말해 “되풀이되는 짧은 주제”를 뜻합니다. 독주자가 한바탕 활약하고 나면 합주단이 이 메인 주제를 들고 돌아오고, 다시 독주자가 나섰다가 합주단이 되돌아오는 아주 명쾌한 구조거든요.

사실 바흐는 바이마르 궁정 악장 시절, 비발디 협주곡을 하프시코드용으로 땀 흘려 편곡해 본 전력이 있습니다. 비발디의 협주곡 16개를 포함해 다른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협주곡까지 일일이 옮기며, 당대 최첨단 유행이던 협주곡 양식을 손끝으로 훔쳐낸 것이죠. 그저 악보를 눈으로만 훑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손가락으로 옮겨 적어가며, 이탈리아 음악의 논리가 어디서 뻗어 나오는지를 샅샅이 해부해 버린 겁니다. 이렇게 이탈리아 협주곡 양식을 뼛속까지 익힌 바흐는, 쾨텐에 이르러서는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하는 대신 자기만의 논리로 판을 다시 짜기 시작했습니다.

쾨텐 궁성 외부 전경 — 바흐가 1717~1723년 재직했던 궁정
쾨텐 궁성(Schloss Köthen) 전경. 안할트-쾨텐 공국의 수도로, 레오폴트 공작이 바흐를 궁정 악장으로 초빙했던 곳이다.

BWV 1042가 비발디의 곡들과 확연히 다르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겉포장은 분명 같은 틀을 썼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바흐의 리토르넬로는 비발디보다 조성 변화가 훨씬 심하게 요동치고, 독주 파트는 그저 예쁘게 꾸미는 장식적 역할에 머물기를 거부하죠. 독주 바이올린이 새로운 테마 요소를 불쑥 꺼내 들면 합주단이 질세라 그걸 낚아채 변형하고, 둘 사이의 팽팽한 대화가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바흐의 고용주였던 레오폴트 공작 역시 가만히 앉아 음악만 듣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비올라 다 감바와 하프시코드를 다루는 아마추어 연주자로서, 바흐와 함께 직접 실내악을 즐겼거든요. 당시 궁정 악단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던 탓에, BWV 1042 역시 소규모 앙상블이 오붓하게 모여 연주하는 방식으로 초연되었을 겁니다. 바흐가 직접 독주 바이올린을 맡았는지, 아니면 궁정의 다른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했는지는 아쉽게도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레오폴트가 그 자리에 함께 있었을 가능성은 꽤 높습니다.

쾨텐 시기에 바흐가 쏟아낸 기악 작품들의 면면을 훑어보면 이 시절이 그에게 얼마나 특별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BWV 1001–1006, 무반주 첼로 모음곡 BWV 1007–1012, 그리고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BWV 1046–1051이 모두 이 시기에 완성되거나 이 시절을 거쳐갔거든요. BWV 1042 역시 당당히 그 목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고작 6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이토록 어마어마한 걸작들이 쏟아진 겁니다.

악장별 감상 가이드

1악장: Allegro ― 리토르넬로가 돌아올 때마다 달라지는 위치

1악장을 처음 듣다 보면 십중팔구 흠칫 놀라며 걸려 넘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시작이 유난히 당당하거든요. 합주단 전체가 한꺼번에 리토르넬로 테마를 냅다 던지는데, 이 테마가 짧고 강렬하며 명확합니다. 머릿속에 “이건 기억하겠다”는 느낌이 단번에 꽂힐 정도로 인상이 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등장해 한참을 화려하게 활약하다가 합주단이 다시 리토르넬로를 들고 돌아왔을 때, 조성이 묘하게 바뀌어 있거든요. 처음엔 E장조였다가, 다음번엔 B장조로, 그다음엔 기어이 c#단조로 이동해 버립니다. 분명 같은 테마인데 매번 다른 색깔의 조명을 받는 듯 들리죠. 처음엔 자신감 넘치던 테마가 c#단조로 등장할 땐 어딘가 모르게 스산하고 불안한 기운마저 풍깁니다.

바로 이 지점이, 바흐가 비발디의 리토르넬로 형식을 훔쳐 와서 다르게 써먹는 방식입니다. 비발디 협주곡에서 리토르넬로는 대체로 같은 조성의 안방으로 편안하게 돌아옵니다. 긴장이 쌓였다가 해소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그 뻔한 예측 가능성이 오히려 안도감과 즐거움을 주거든요. 하지만 바흐는 감상자의 이 얄팍한 예측 가능성을 가차 없이 흔들어버립니다. 리토르넬로가 돌아오긴 돌아오는데, 대체 어디서 불쑥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셈입니다.

독주 바이올린 파트는 기술적으로도 결코 만만한 구석이 없습니다. 화음의 음을 하나씩 차례로 쪼개어 연주하는 빠른 아르페지오(분산화음)와 복잡하게 얽힌 음형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거든요. 하지만 이게 그저 손가락을 뽐내려는 얄팍한 기교 과시가 아닙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정신없이 내달리는 동안, 합주단은 그 흐름이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 화성이라는 든든한 뼈대로 받쳐줍니다. 겉보기에 화려하게 날뛰는 독주 바이올린의 궤적을 쫓다 보면, 그 수면 아래에서 합주단이 얼마나 정밀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지 단박에 알아채게 되죠.

1악장이 끝을 맺을 무렵, 곡의 첫머리를 장식했던 E장조의 리토르넬로가 마침내 “아, 바로 여기였구나” 하는 탄성을 자아내며 돌아옵니다. 마치 먼 길을 떠나온 여행객이 마침내 자기 집 문고리를 돌리는 듯한 기분이죠. 이 귀환이 새삼스레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지겠지만, 약 7~8분 동안 온갖 낯선 조성을 헤매고 온 뒤에야 비로소 본래의 E장조가 얼마나 밝고 명쾌한 빛을 띠는지 뼈저리게 실감하게 됩니다. 곡의 전체 길이는 약 7~8분 남짓으로 세 악장 중 가장 깁니다.

쾨텐 궁성 음악실 — 바흐가 활동했던 궁정의 음악 공간
쾨텐 궁성(Schloss Köthen) 음악실. 바흐는 1717년부터 1723년까지 이곳 레오폴트 공작의 궁정 악장으로 재직하며 BWV 1042를 포함한 다수의 기악 협주곡을 작곡했다.

바이올린 독주자 입장에서 1악장이 안겨주는 가장 뼈아픈 난관은, 그 까다로운 기교를 모조리 소화하면서도 촘촘한 리토르넬로 구조 안에서 굳건히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일입니다. 독주자가 흥분해서 너무 앞서나가거나 박자에 뒤처지는 순간 합주단과의 타이밍은 속절없이 어긋나 버리거든요. 1악장에서 뛰어난 독주자와 그저 평범한 독주자의 진짜 격차가 적나라하게 벌어지는 지점도 바로 여깁니다. 혹시 연주 영상을 보게 된다면, 독주자와 합주단이 리토르넬로로 돌아오는 찰나에 어떻게 은밀히 시선을 교환하며 템포의 고삐를 조율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할 겁니다.

2악장: Adagio ― 박자를 세는 합주단, 선율을 늘이는 독주자

2악장으로 넘어가면 조성이 c#단조로 덜컥 바뀝니다. 활기 넘치던 1악장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분위기가 그야말로 싸늘하게 가라앉죠.

합주단의 현악기들은 낮은 음역에 웅크린 채, 짧게 끊어치는 스타카토로 고집스러울 만치 박자를 반복해 댑니다. 그리고 그 위를 유유히 떠다니듯, 독주 바이올린은 한없이 느리고 긴 선율을 노래하죠. 서로 전혀 다른 시공간에 있는 듯한 두 층위가 겹쳐지면서, 이 구조는 듣는 이의 목을 조이는 듯한 묘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합주단이 시계추처럼 무심하게 일정한 박자를 새겨 넣을 때, 독주자는 그 엄격한 박자의 감옥에 갇히지 않겠다는 듯 선율을 끊임없이 늘이고 줄이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입니다.

바로크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통주저음(basso continuo)’이라는 개념의 민낯이 바로 여기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통주저음이란 베이스 라인과 하프시코드, 오르간 같은 화음 악기들이 밑바닥에서 곡 전체의 뼈대를 든든히 지탱하는 방식을 뜻하죠. 2악장 내내 스타카토로 냉정하게 박자를 두드려대는 현악 합주 파트는, 이 통주저음의 역할을 극단적인 형태로 밀어붙인 결과물입니다. 합주단이 묵묵히 내리치는 박자가 독주자를 견고하게 떠받치는 든든한 주춧돌 같으면서도, 동시에 독주자를 꼼짝 못 하게 옭아매는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이 기이한 구조 탓에 2악장의 독주 바이올린 선율은 처절하리만치 외로운 인상을 남깁니다. 광활한 무대 위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듯한 고립감이죠. 레오폴트 공작과 화기애애하게 실내악을 즐기던 그 친밀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지극히 내성적이고 어두운 순간입니다. 바흐가 쾨텐의 소규모 앙상블을 염두에 두고 쓴 곡 안에 이토록 고독한 웅덩이를 파놓았다는 점이 새삼 눈길을 끕니다. 특히 3악장으로 넘어가기 직전, 독주 바이올린이 숨이 넘어갈 듯 가장 높은 음으로 아슬아슬하게 길게 늘어지는 찰나가 있습니다. 그 음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3악장이 벼락같이 시작되는 전환이 유독 극적인데, 그 사이를 채우는 침묵 한 박자가 다음 악장에서 터져 나올 거대한 에너지를 고스란히 응축해 예고합니다.

2악장은 전체 길이가 약 5분 내외에 불과해 세 악장 중 가장 짧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5분이 귀에 가장 오랫동안 맴돌게 되죠. 1악장이 뿜어내던 활기와 3악장이 터뜨릴 에너지 그 한가운데서, 이 짧디짧은 c#단조의 시간이 곡 전체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무게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어떤 선율을 선택하는지 귀 기울여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묘미입니다. 흔히 바로크 음악의 아다지오 악장에서 연주자는 그저 악보에 덩그러니 적힌 음표를 쫓는 데 그치지 않고, 즉흥적인 장식음(오르나멘테이션)을 제멋대로 덧붙이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바흐가 그려놓은 기본 선율 위에 연주자가 트릴이나 모르덴트, 아포지아투라 같은 화려한 장식을 어떻게 입히느냐에 따라 똑같은 2악장이 전혀 다른 얼굴로 둔갑합니다. 바로크 시대의 악보 앞에서는 연주자의 해석 범위가 현대 음악보다 훨씬 넓게 열려 있다는 말이 여기서 증명되는 셈이죠. 힐러리 한처럼 장식음을 단정하게 절제하는 연주자의 2악장과, 시대 악기를 쥐고 당시 연주법에 기대어 즉흥성을 물씬 풍기는 피리오드 연주자의 2악장은 분명 같은 악보에서 출발했지만 기어이 다른 곡처럼 들리고야 맙니다.

3악장: Allegro assai ― 시칠리아나 리듬이 멈추지 않는 이유

3악장은 시칠리아나(siciliana)라는 춤곡 리듬을 밑바탕에 깔고 움직입니다. 시칠리아나는 8분의 12박자로 흔들거리는 묘한 리듬감을 지닌 춤곡 형식이라, 바로크 시대엔 주로 느릿한 악장이나 여린 분위기를 연출할 때 단골로 쓰였죠. 그런데 바흐는 여기서 이 리듬을 얌전하게 쓰지 않고 뒤통수를 칩니다. 태생은 분명 시칠리아나인데, 악보에 적힌 빠르기 표시는 ‘Allegro assai(매우 빠르게)’거든요. 위태롭게 흔들리는 리듬이 브레이크 고장 난 마차처럼 빠른 속도로 치달리는 이 조합이 3악장 특유의 독특한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대체 이게 왜 3악장이지” 하고 어리둥절할 정도입니다. 1악장의 에너지가 앞만 보고 달리는 맹렬한 직선이었다면, 3악장의 에너지는 거친 파도처럼 요동치면서도 끊임없이 앞으로 밀려 나아갑니다.

독주 바이올린은 이 요동치는 리듬을 낚아채 끊임없이 변주합니다. 짧은 음형의 연속은 서사가 급박하게 휘몰아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합주단이 리토르넬로를 제시하며 잠시 재정비하는 듯하다가도 독주 바이올린이 다시 전면으로 나서며 즉각 추진력을 되찾습니다.

3악장의 독주 파트는 1악장을 뛰어넘는 속도와 고도의 기교를 요구합니다. BWV 1042의 기술적 난관이 이 악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뛰어난 연주자들이 리듬의 탄력을 잃지 않으면서 기교적 정확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힐러리 한과 빌데 프랑의 연주는 이 지점에서 확연히 다른 접근법을 취합니다.

3악장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멈추는 찰나를 주목해야 합니다. 합주단이 리토르넬로를 연주하는 짧은 틈을 지나 독주자가 다시 개입하는 방식이 악장 전체의 성격을 규정합니다. 단순한 진입처럼 보여도 단 하나의 박자를 낚아채는 감각에 따라 리듬의 탄성이 살아나거나 무너집니다. 이러한 세부는 실황 연주에서 한층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1악장의 리토르넬로 에너지는 3악장에서 형태를 바꾸어 회귀합니다. 두 악장의 유사성은 동일한 동력을 서로 다른 리듬 언어로 풀어낸 결과입니다. 1악장의 에너지가 궤도를 뚫고 나가는 직선형이라면 3악장은 격렬하게 요동치는 형태를 띱니다. 구조를 인지하면 음악의 입체감이 비로소 온전히 다가옵니다.

바흐 바이마르 기념상 — 쾨텐으로 이동 직전 바이마르에서의 바흐
바이마르(Weimar)에 세워진 바흐 기념상. 바흐는 쾨텐으로 이직하기 직전인 1717년 바이마르 궁정에서 한 달간 감금 생활을 한 끝에 쾨텐으로 향했다.

전체 연주 시간은 1악장 약 7~8분 2악장 약 5분 3악장 약 4분입니다. 3악장이 가장 짧지만 밀도는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하프시코드 협주곡으로의 편곡

바흐는 훗날 BWV 1042를 하프시코드 협주곡 D장조 BWV 1054로 편곡했습니다. 독주 파트의 악기가 변경되며 조성 역시 D장조로 하향 조정됩니다. 바이올린은 E장조에서 개방현을 적극 활용해 크고 화사한 음량을 확보하지만 하프시코드에서는 이 물리적 이점이 상실됩니다. 따라서 하프시코드의 특성에 맞게 조성을 낮춘 것입니다.

단건반 하프시코드 (Carl Conrad Fleischer, 1716년) — 바흐 시대의 건반악기
단건반 하프시코드(Carl Conrad Fleischer, 1716년). 바흐는 바이올린 협주곡 BWV 1042를 이와 유사한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BWV 1054로 편곡했다.

두 판본의 비교는 악기 고유의 물성이 음악의 성격을 어떻게 재단하는지 보여줍니다. 바이올린 버전의 선율이 허공을 유려하게 부유한다면 하프시코드 버전의 선율은 화성 체계 안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1악장의 리토르넬로 주제는 하프시코드의 타현 메커니즘을 만나 타격감이 극대화되며 2악장 아다지오는 악기 특유의 건조한 음색이 더해져 서늘한 고립감을 자아냅니다.

BWV 1042의 구조를 파악했다면 BWV 1054도 함께 감상할 것을 권합니다. 동일한 뼈대를 지닌 작품이 매체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다른 질감으로 변모하는지 증명하는 명확한 사례입니다.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BWV 1054를 연주한 시기는 1720년대 후반에서 1730년대로 추정됩니다. 라이프치히 시대의 바흐는 쾨텐에서 작곡한 세속 기악곡을 교회 칸타타나 하프시코드 협주곡으로 잦은 빈도로 차용했습니다. 이 시기 완성된 교회 음악의 정점은 b단조 미사 BWV 232입니다. 이러한 자기 복제는 악기와 조성을 해체하고 재조립해도 뼈대가 붕괴되지 않는 바흐 음악의 구조적 완결성을 방증합니다. 바이올린을 위해 쓰인 악보가 하프시코드 건반 위로 옮겨가고 다시 칸타타의 성악 선율로 치환되어도 내재된 음악적 논리는 훼손되지 않습니다. 이 절대적인 구조미야말로 바흐를 타 작곡가와 분리하는 핵심입니다.

편곡의 존재는 BWV 1042가 쾨텐에서 실연되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며 라이프치히 이주 후에도 바흐 스스로 해당 작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는 증거입니다. 라이프치히에서 바흐는 다시 교회 음악의 중심부로 회귀했지만 쾨텐 시절 축적한 세속 기악곡의 문법은 이후 작품 전반에 걸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남겼습니다.

쾨텐에서의 창작 배경: 바이마르 억류와 해방

쾨텐으로 이주하기 직전 바흐는 바이마르에서 약 한 달간 억류 상태에 놓였습니다. 바이마르 공작 빌헬름 에른스트가 쾨텐 궁정으로의 이직을 거부하며 바흐를 구금한 사건입니다. 구금이 풀리고 불명예 해고 처분을 받은 뒤에야 바흐는 쾨텐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이 억류 사건은 이후의 창작 폭발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구금에서 풀려난 바흐는 쾨텐 궁정에서 비로소 교회 칸타타의 엄격한 전례나 영주의 강압적 간섭 없이 자율적인 음악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레오폴트 대공은 음악에 조예가 깊었으며 바흐를 예술가로서 존중했습니다. 이러한 독립적이고 지지적인 환경 속에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그리고 BWV 1042가 탄생했습니다.

쾨텐 시절이 바흐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때였을 거라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옵니다. 실제로 바흐가 1723년 라이프치히로 짐을 싼 진짜 이유는 빠듯한 지갑 사정과 자녀 교육 문제였지, 쾨텐이라는 동네가 지긋지긋해서가 아니었거든요. 쾨텐을 뒤로하고 다시 무거운 종교 음악의 굴레로 돌아가면서, 이 시절 쏟아낸 기악 협주곡들은 그의 묵직한 커리어 한가운데서 짧지만 눈부시게 빛나는 막간극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BWV 1041과 BWV 1042, 두 바이올린 협주곡의 차이

바흐가 남긴 단독 바이올린 협주곡은 딱 두 개입니다. a단조 BWV 1041과 E장조 BWV 1042죠. 보통 이 두 곡을 묶어서 나란히 듣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둘의 성격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BWV 1041(a단조)은 꽤나 내향적인 성격을 띱니다. 1악장부터 단조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2악장과 3악장 역시 전체적으로 돌다리를 두드려 건너듯 조심스러운 인상을 풍기죠. 손가락을 꼬이게 만드는 기교의 장벽도 BWV 1042에 비하면 한결 낮아서, 보통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들이 먼저 거쳐 가는 관문이 되기도 합니다. 이 곡에서는 특히 2악장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단조가 뿜어내는 깊고 내밀한 분위기가 바이올린 독주와 찰떡처럼 맞아떨어져 아예 따로 떼어내어 연주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반면, BWV 1042(E장조)는 지극히 외향적입니다. E장조라는 조성 자체가 워낙 쾌활하고 당당한 빛깔을 띠는 데다, 1악장 첫머리부터 리토르넬로 테마가 시원하게 내리꽂히며 처음 듣는 사람의 고막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거든요. 독주자에게 요구하는 기교의 잣대도 훨씬 매서워지고, 합주단과 주고받는 대화의 핑퐁 역시 한층 요란하고 활기찹니다. 이 두 협주곡이 그토록 극과 극으로 들리는 까닭은 비단 조성 차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흐가 독주자와 합주단이 맺는 관계의 판을 아예 곡마다 다르게 짜놓았기 때문이죠.

두 곡 앞을 서성이는 초심자라면 주저 없이 BWV 1042의 재생 버튼을 먼저 누르시길 권합니다. 귀에 착 감기는 입문용으로 훨씬 싹싹한 데다, 단번에 뇌리에 꽂히는 타격감도 확실하거든요. 교향곡 입문 가이드와 나란히 두고 들어보셔도 꽤 쏠쏠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바로크 바이올린 — BWV 1042가 연주된 시대의 악기
바로크 바이올린(왼쪽). BWV 1042는 거트현과 짧은 활대를 사용하는 바로크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되었다. 현대 악기와 달리 넥의 기울기가 적고 음량이 작지만, 더 섬세한 음색 표현이 가능하다.

참고로, 음반사들은 십중팔구 BWV 1041과 BWV 1042를 묶어 콤보 메뉴처럼 한 장의 음반에 담아냅니다. 힐러리 한이 2003년 도이체 카머필하모니와 남긴 음반이 그렇고,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1960년대 필립스 명반 역시 두 협주곡을 나란히 구워냈죠. 굳이 따로 찾을 것 없이 이 두 곡을 연달아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바흐가 기악을 다루던 은밀한 언어를 해독하는 아주 훌륭한 지름길이 되어줍니다.

덧붙여, 이 두 바이올린 협주곡은 훗날 나란히 하프시코드 협주곡으로도 옷을 갈아입습니다. BWV 1041은 하프시코드 협주곡 g단조 BWV 1058로, BWV 1042는 앞에서 슬쩍 언급했던 BWV 1054로 변신하죠. 바흐가 쾨텐 시절 빚어낸 이 두 곡의 악보를 굳이 라이프치히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와 하프시코드용으로 뜯어고쳐 다시 무대에 올렸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 작품들이 그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각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 지금 BWV 1042인가

‘바로크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간판을 보면 열에 아홉은 조건반사처럼 비발디의 사계를 머릿속에 띄웁니다. 그러다 바흐의 영토로 넘어오면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죠. “이거, 비발디보다 더 꼬여 있는 거 아니야?”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네, 복잡합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 복잡함이 골치 아프게 들리는 대신 믿을 수 없이 풍성하게 귓가를 채우거든요. 수많은 이들이 굳이 수고를 들여가며 BWV 1042를 반복 재생하는 이유가 바로 이 마법에 있습니다.

BWV 1042는 그 까다로운 질문에 아주 명쾌한 모범 답안을 제시합니다. 비발디와 바흐는 분명 같은 리토르넬로라는 무기를 쥐고도, 그것을 휘두르는 논리 자체가 아예 달랐거든요. 비발디의 협주곡이 매끈하게 닦인 아스팔트 도로를 시원하게 내달리는 기분이라면, 바흐의 BWV 1042는 최종 목적지만 알 뿐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꺾으며 매번 다른 골목을 탐험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곡이 귀에 익을수록, 이 아찔한 차이는 솜털이 설 만큼 선명해지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오늘날까지 이 곡이 연주자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살아남은 데에는, 독주자에게 넘겨진 어마어마한 ‘해석의 백지 수표’ 덕이 큽니다. 바흐가 남긴 악보는 비발디의 그것보다 훨씬 무뚝뚝하고 간결해서, 아티큘레이션(음의 연결 방식)부터 다이내믹(셈여림), 오르나멘테이션(장식음)까지 연주자가 스스로 결재 도장을 찍어야 하는 공란이 수두룩하거든요. 이 미세한 결정들이 하나둘 눈덩이처럼 쌓여, 힐러리 한의 무결점 BWV 1042와 빌데 프랑의 역동적인 BWV 1042를 완전히 딴 세상의 곡으로 갈라놓습니다. 도대체 똑같은 악보를 보고 켰는데 왜 이리 다르게 들리는지, 그 비밀의 열쇠가 바로 이 공백 안에 숨어 있죠.

바흐의 기악 음악이 당대 악기와 연주법을 복원하려는 피리오드 연주 운동 이후, 물 만난 고기처럼 한층 다채롭게 쪼개지고 섞이는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합니다.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헨릭 셰링이나 아르투르 그뤼미오의 모범생 같은 “교과서적” 연주를 지나, 1980년대 이후 무대를 뒤집어놓은 레이첼 포저나 앤드루 맨지 같은 피리오드 연주자들의 파격적인 해석에 이르기까지, BWV 1042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악보의 잉크는 300년 전 그대로인데, 시대의 공기를 마실 때마다 매번 다르게 울려 퍼지는 곡. 바로 이 무서운 유연성이야말로 질긴 생명력의 진짜 비결일 겁니다.

이 곡 앞을 처음 서성이는 분들께 딱 한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주저 말고 연주자 두 명의 버전을 나란히 올려두고 재생해 보세요. 힐러리 한과 빌데 프랑도 좋고, 피리오드 연주자 하나와 현대 악기 연주자 하나를 골라잡아도 훌륭합니다. 1악장에서 리토르넬로 테마가 튀어나오는 방식, 독주 바이올린과 합주단이 바통을 터치하는 속도, 2악장 아다지오에서 선율을 주무르는 방식. 딱 이 세 가지만 곁눈질하며 비교해 들어도 “아, 바흐의 기악 협주곡이 이런 맛이구나” 하는 감이 단박에 잡히거든요.

애당초 바흐의 음악 언저리에는 ‘악보를 절대적인 진리로 모시는 태도’보다 ‘도대체 이 악보를 어떻게 요리해 읽어낼 것인가’를 치열하게 묻는 전통이 꽤 오래전부터 뿌리내려 왔습니다. BWV 1042는 바로 그 전통의 정수를 꿰뚫어 보여주는 협주곡이고, 그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쉴 새 없이 새로운 연주가 쏟아져 나오는 중이죠. 아무리 들어도 이 곡이 지루하게 굳어버릴 틈이 없는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체 연주 시간이 고작 17분 내외라 덜컥 듣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3악장의 뼈대도 또렷하고 각 악장의 성격 차이마저 쨍하게 갈리는 덕에, 처음 클래식 기악곡을 접하는 분들의 입문용으로도 이만한 제격이 없죠. 하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거듭 들을수록 처음엔 까맣게 몰랐던 정밀한 구조적 디테일들이 서서히 민낯을 드러내거든요. 처음 귀에 담았을 때와 열 번쯤 돌려 들었을 때의 인상이 딴판으로 뒤집힙니다. 그 짜릿한 변화를 몸소 겪어내는 것 자체가 이 곡이 숨겨둔 진짜 묘미입니다. 1악장의 리토르넬로가 매번 능청스럽게 다른 조성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걸 귀로 낚아채는 순간, 그때부터 이 곡은 걷잡을 수 없이 재미있어집니다.

게다가 이 곡은 지금도 무대 위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현역 레퍼토리입니다. 파릇파릇한 학생들의 연주회는 물론이고, 이름만 대면 아는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의 독주회에서도 BWV 1042는 빠짐없이 얼굴을 내밉니다. 무려 30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쉼 없이 새로운 녹음이 찍혀 나오고, 연주자마다 내놓는 해석의 결도 천차만별이죠. 악보 위 음표들이 여전히 연주자들의 귓가에 무언가를 쉴 새 없이 속삭이고 있다는 얄미운 증거입니다.

바로크 음악을 고악기(피리오드 악기)로 뜯어고쳐 연주하던 흐름이 들불처럼 번진 1970~80년대 이후, BWV 1042가 뛰어놀 수 있는 해석의 운동장은 한층 아득하게 넓어졌습니다. 거친 거트현을 긁어대는 피리오드 스타일과 매끈한 현대 악기가 뿜어내는 스타일이 나란히 공존하면서, 똑같은 곡 하나가 전혀 다른 두 전통 위에서 끊임없이 해체되고 조립되는 중이거든요. 17분 안팎이라는 참으로 만만한 길이 덕에, 이 무궁무진한 해석의 갈래들을 부담 없이 찔러보며 저울질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실험쥐도 없습니다.

추천 녹음

힐러리 한 / 도이체 카머필하모니 브레멘 (2003, DG)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초상화 (엘리아스 고틀로프 하우스만, 1746년)
엘리아스 고틀로프 하우스만(Elias Gottlob Haussmann)이 1746년 그린 바흐의 초상화. 바흐가 쾨텐 시기를 마치고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악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의 모습이다.

힐러리 한이 벼려낸 바흐는 그야말로 서슬 퍼렇게 단호합니다. 번잡한 장식음이나 질척거리는 감정 과잉 따위는 가차 없이 쳐내고 음표 하나하나를 얼음장처럼 정확하게 꽂아 넣는데, 이 지독한 냉정함이 BWV 1042와 기막히게 맞아떨어집니다. 1악장의 복잡다단한 리토르넬로 구조가 이토록 투명하게 속살을 비치는 연주도 흔치 않거든요. 독주와 합주단이 이루는 팽팽한 균형감은 두말할 것도 없고, 현대 악기를 쥐고도 바로크의 옛 향기를 물씬 풍겨냅니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3악장의 서늘한 추진력도 단연 압권입니다.

힐러리 한 · 도이체 카머필하모니 브레멘 (2003, DG). 리토르넬로 구조가 가장 명료하게 들리는 연주.

빌데 프랑 / hr-교향악단 프랑크푸르트 · 필리프 헤레베헤 (hr-Sinfonieorchester)

필리프 헤레베헤라면 바로크 음악 판에서는 두말하면 입 아픈 해석의 권위자입니다. 그의 지휘 아래 빌데 프랑이 활을 얹은 독주는 한결 자유롭게 유영하며 호흡을 길게 늘어뜨리죠. 힐러리 한의 칼날 같은 단호함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걷는데, 특히 2악장 Adagio에서 독주와 합주단이 서로를 옭아매는 관계성이 참으로 숨 막히게 다가옵니다. 다행히도 이 전곡 실황은 이 글 상단에 걸린 영상 버튼 하나로 처음부터 끝까지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습니다.

라르스 울리크 모르텐센 / 콘체르토 코펜하겐 (2006, dacapo)

만약 고악기(피리오드 악기) 연주에 발을 들이고 싶다면, 이 음반이 아주 근사한 출발선이 되어줍니다. 거트현 특유의 질감과 작은 편성이 빚어내는 투명한 음향은, BWV 1042가 원래 어떤 음향 환경에서 연주되었는지를 무척이나 생생하게 상상하도록 돕거든요. 쾨텐 궁정의 소규모 앙상블 느낌이 제법 물씬 풍겨납니다. 특히 2악장 아다지오에서 뚝뚝 끊어 치는 스타카토 합주 라인이 매끈한 현대 악기 연주와 비교해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 결로 들리는지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묘미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가 화면에 흐르는 스크롤링 영상. 1악장 리토르넬로가 어디서 돌아오는지 눈으로 짚으며 들을 수 있다.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BWV 1042의 악보는 고맙게도 IMSLP에서 무료로 들춰볼 수 있습니다. 1악장을 재생해 두고 눈으로 악보를 좇다 보면, 그 얄미운 리토르넬로 테마가 얼마나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며 교묘하게 몸집을 비트는지를 똑똑히 목격하게 되거든요. 겉보기엔 그저 화려했던 독주 파트의 음형이 실제로는 얼마나 악랄하게 꼬여 있는지도 악보를 펼치는 순간 잔인하게 드러납니다. 특히 3악장의 숨 가쁜 독주 파트를 악보로 쫓다 보면,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왜 이 대목에서 진땀을 빼는지 단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겁니다.

바흐 BWV 1042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BWV 1042는 언제 작곡되었나요?

쾨텐 시기(1717~1723년경)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본 자필 악보는 지금 남아 있지 않으며, 지금은 나중에 바흐 자신이 편곡한 하프시코드 협주곡 BWV 1054를 거꾸로 추적해 복원한 판본을 사용합니다.

BWV 1042의 악장 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3악장 구성입니다. 1악장 Allegro(E장조), 2악장 Adagio(c#단조), 3악장 Allegro assai(E장조). 바로크 협주곡의 전형적인 빠름-느림-빠름 구조를 따릅니다. 전체 연주 시간은 약 17분입니다.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BWV 1042를 하프시코드 협주곡으로도 들을 수 있나요?

네. 바흐가 직접 이 곡을 D장조 하프시코드 협주곡 BWV 1054로 편곡했습니다. 조성이 E장조에서 D장조로 내려간 이유는, 바이올린 편성에서 E장조가 개방현 활용에 유리한 반면 하프시코드는 D장조가 더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같은 음악이지만 악기의 음색 차이로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BWV 1042를 처음 듣는다면 어떤 악장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1악장 전체를 처음부터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리토르넬로 테마가 어떻게 등장하고 변형되는지를 1악장에서 파악하면 나머지 악장들도 훨씬 수월하게 들립니다. 처음엔 그냥 흘러가는 것 같아도, 두세 번 들으면 구조가 보입니다.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BWV 1042 추천 음반은 무엇인가요?

현대 악기 연주로는 힐러리 한/도이체 카머필하모니 브레멘(2003, DG)이 구조적 명료함 면에서 탁월합니다. 고악기(피리오드) 연주로는 라르스 울리크 모르텐센/콘체르토 코펜하겐(2006, dacapo)이 바로크 원음에 가장 가깝습니다.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연주로는 hr-Sinfonieorchester의 빌데 프랑 연주(YouTube)가 있습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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