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피자 광고, 웨딩홀, 심지어 핸드폰 통화 연결음까지. 우리가 살면서 이 곡을 단 한 번도 듣지 않았을 확률은 아마 0%에 수렴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뼛속까지 친숙한 ‘국민 클래식’이 무려 200년 동안이나 세상에서 완벽하게 지워져 있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비발디의 사계’는 18세기에 출판된 직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까맣게 잊혔다가, 1920년대 이탈리아의 한 도서관 사서가 먼지 쌓인 악보 더미를 뒤지던 중 기적처럼 발굴해 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역사적 우연이 만들어낸 기적인 셈이지요. 살아생전 잊히고, 죽어서 또 한 번 잊혔다가, 두 번이나 무덤을 박차고 부활한 불굴의 작곡가. 그가 바로 안토니오 비발디입니다.
여기에 소름 돋는 디테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비발디는 이 곡을 작곡할 때 악보 곳곳에 알파벳 A, B, C, D를 꼼꼼하게 적어 두었습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이 부분은 새소리”, “여기는 천둥번개”, “이 선율은 잠든 목동”이라며 친절하게 좌표를 찍어준 것이지요. 18세기에 이미 음악에 ‘뮤직비디오 자막’을 달아놓은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대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던 걸까요? 어떻게 이 곡이 200년의 공백을 깨고 살아남았는지, 우리가 아는 ‘봄’이 왜 그렇게 위대한지, 그리고 ‘겨울’이 어째서 헤비메탈 뺨치게 충격적인지 지금부터 그 비밀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족보부터 잠깐 정리해 볼까요? 비발디 사계의 정식 작품 번호는 ‘Op. 8, Nos. 1-4’입니다. 그런데 곡마다 봄은 RV 269, 여름은 RV 315, 가을은 RV 293, 겨울은 RV 297이라는 복잡한 꼬리표가 하나 더 붙어 있군요. 여기서 ‘RV’는 피터 리옴(Peter Ryom)이라는 학자가 정리한 작품 목록(Ryom-Verzeichnis)의 약자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번호가 탄생한 배경입니다. 비발디가 평생 쏟아낸 작품이 워낙 무지막지하게 많다 보니, 기존 방식으로 악보를 정리하던 학자들이 말 그대로 ‘나가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진 까닭이지요. 결국 20세기에 들어서야 이 방대한 악보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목록이 겨우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워낙 늦게 연구가 시작된 탓에, 지금도 유럽 어딘가의 고서적 틈바구니에서 “비발디의 미발표 악보가 새로 발견됐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곤 합니다.
- 작곡가
-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Vivaldi, 1678–1741) - 곡명
- 사계 Op.8, 1~4번 (RV 269, 315, 293, 297)
- 작곡 기간
- 1716~1717년경
- 악장
- 각 협주곡 3악장 (빠름-느림-빠름)
봄 (E장조) / 여름 (g단조) / 가을 (F장조) / 겨울 (f단조) - 편성
- 바이올린 독주, 현악 합주, 통주저음
- 출판
- 1725년, 암스테르담
200년간 창고에 잠들어 있었다가 기적처럼 돌아온 곡
생전에 오페라 66편, 협주곡 500여 곡을 쏟아낸 천재의 마지막치고는 너무도 초라했습니다. 1741년 빈에서 세상을 떠난 비발디의 장례는 쓸쓸한 빈민 장례로 치러졌지요. 그가 눈을 감자 명성도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18세기 말,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시대가 밝아오며 바로크 음악 전체가 낡은 ‘구식’ 취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을 잃은 악보들은 헐값에 경매로 넘어가 귀족들의 어두운 창고에 처박혔습니다. 그렇게 무려 200년이라는 억겁의 시간이 흘렀던 것입니다.
기막힌 반전은 1927년에야 찾아왔습니다. 이탈리아의 음악학자 알베르토 젠틸리(Alberto Gentili)가 토리노 국립도서관 구석에서 먼지 쌓인 필사본 묶음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지요. 떨리는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자, 그곳엔 비발디의 자필 악보 300여 곡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네, 그 무더기 속에 바로 <사계>가 숨어 있었네요. 오늘날로 치면 비틀즈의 미발표 명곡 400곡이 어느 날 갑자기 쏟아져 나온 셈입니다. 이 엄청난 발굴을 토대로 알프레도 카셀라(Alfredo Casella)가 1939년 시에나에서 ‘비발디 주간 음악제’를 열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창고에서 빛을 본 지 불과 12년 만에, 비발디의 선율은 다시 한번 유럽 전역을 홀리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많은 악보가 한 도서관에 모여 있었을까요? 비발디 사후 뿔뿔이 흩어졌던 악보의 상당수를 거둬들인 은인은 토스카나 귀족 지아코모 두라초(Giacomo Durazzo) 백작이었습니다. 그의 광적인 수집품이 여러 손을 거쳐 기적처럼 토리노 도서관으로 흘러들어간 것이지요. 정작 비발디 본인은 자신의 분신들이 이토록 질긴 생명력을 발휘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잊힌 창고의 악보 더미가 2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마스터피스로 부활하다니, 음악사를 통틀어도 이토록 짜릿한 역주행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비발디는 애초에 누구를 위해 이 혁신적인 곡을 썼던 걸까요? 흥미롭게도 정답은 그의 ‘직장’에 숨어 있습니다. 1703년, 비발디는 베네치아의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Ospedale della Pietà)’라는 고아 소녀들을 위한 자선 음악 학교에 바이올린 교사로 취직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단순한 고아원이 아니었거든요. 베네치아 최고 수준의 음악 교육 기관이었고, 이 학교 여성 앙상블의 신들린 연주를 직관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들 정도였으니까요. 비발디가 작곡한 500여 곡의 협주곡은 바로 이 소녀들을 위한 맞춤형 무기였습니다. 훗날 보헤미아 귀족 벤첼 폰 모르친(Wenzel von Morzin) 백작에게 헌정되긴 했지만, <사계>의 진짜 주인공은 피에타의 소녀들이었던 셈이지요.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는 <사계>는 처음부터 10대 소녀들이 켜는 바이올린을 위해 탄생한 곡입니다. 오늘날 턱시도를 입은 남성 거장들의 연주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그림이지요. 고아원 소녀들이 무대에 오르고, 베네치아를 찾은 외국인들이 열광하며 환호하는 모습. 오늘날로 치면 전 세계 팬들이 티켓팅을 위해 몰려드는 ‘K-POP 아이돌 콘서트장’의 열기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베네치아를 다녀간 유럽인들의 여행기에는 “피에타 소녀들의 연주를 보았다”는 인증글이 필수 코스처럼 등장하곤 했으니까요. 20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우아한 클래식의 뿌리가, 사실은 소녀들의 땀방울이 튀는 뜨거운 아이돌 공연장이었다는 사실. 알면 알수록 묘한 매력이 있는 곡입니다.
악보에 자막을 단 18세기 작곡가
사계의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이 작품이 한 편의 ‘영화 음악’처럼 기획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전문 용어로는 ‘표제 음악(program music)’이라고 부르지요. 음악으로 특정 장면이나 스토리를 눈앞에 그리듯 묘사하는 방식입니다. 오직 엄격한 형식과 구조에만 집착하던 바로크 시대에, 이런 시각적이고 서사적인 시도는 그야말로 돌연변이 같은 파격이었습니다.
비발디의 집착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는 악보에 아예 ‘자막’을 달아버렸습니다. 각 협주곡에 14행짜리 소네트(이탈리아 정형시)를 덧붙인 뒤, 악보 곳곳에 A, B, C 같은 알파벳 표식을 새겨 넣었지요. “지금 연주하는 이 부분이 시의 어느 구절인지”를 정확히 지정해 준 겁니다. 비올라가 같은 음을 둥둥 튕기면 “이건 잠든 목동 옆에서 짖는 개야”, 고음부가 빠르게 내달리면 “이건 새들의 노래고”, 하강하는 16분음표는 “쏟아지는 폭우야”라고 친절하게, 혹은 강박적으로 지시해 두었습니다. 악보를 보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얼마나 황당하고 또 신선했을까요? 연주를 하면서 “아, 내가 지금 개 구역을 맡고 있구나”, “나는 지금 빗방울이구나”를 실시간으로 인지해야 했으니까요.
대체 이 절묘한 시를 누가 썼을까요? 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은 ‘비발디 본인’입니다. 시의 흐름이 협주곡의 3악장 구조와 소름 돋게 맞아떨어질 뿐만 아니라, 음악과 텍스트의 밀착도가 작곡가 자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수준인 까닭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원본 악보를 보면, 비발디가 직접 펜을 들어 알파벳을 꼼꼼히 적어 내려간 흔적이 선명합니다. 천재 작곡가인 줄만 알았더니, 스토리텔링에 능한 시인이자 디테일의 끝판왕이었던 셈이지요.
사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음악 교과서의 내용을 조금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19세기 낭만파 음악가 베를리오즈가 ‘환상 교향곡’을 통해 표제 음악을 발명한 선구자로 칭송받곤 합니다. 하지만 비발디는 그보다 무려 100년이나 앞서 똑같은 아이디어를, 그것도 훨씬 더 구체적인 형태로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역사는 늘 진짜 선구자를 한발 늦게 알아보는 법인가 봅니다.
비발디의 천재성은 작곡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비즈니스맨’이기도 했습니다. 1725년, 비발디는 베네치아에서 알음알음 돌던 필사본을 모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르 센느(Le Cène) 출판사에서 정식 악보를 출간합니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유럽 음악 출판의 심장부와도 같았지요. 이곳에서 악보를 냈다는 건, 오늘날로 치면 초대형 글로벌 유통사를 통해 전 세계 동시 발매를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자신의 마스터피스를 세상에 어떻게 터뜨려야 할지, 그 전략까지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던 겁니다.
앨범의 ‘트랙 배치’ 역시 기가 막힙니다. 비발디는 총 12개의 협주곡을 묶어 작품번호 8번(Op. 8)을 발표하면서, 첫 1번부터 4번 트랙에 ‘사계’를 전진 배치했습니다. 이 모음집의 제목은 《조화와 창의의 시험(Il cimento dell’armonia e dell’inventione)》입니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지요. 바로크 음악의 엄격한 규칙(조화)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 내 상상력(창의)이 어디까지 폭발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야심 찬 선언이었습니다. 가장 파격적이고 흡인력 있는 네 곡을 맨 앞에 내세워 청중의 기선을 완벽하게 제압해 버린 비발디. 300년 전의 이 도발적인 ‘시험’은, 결국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흥행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사계 협주곡, 악장별 감상
사계는 단순한 클래식 곡이 아닙니다. 차라리 4부작 넷플릭스 미니시리즈에 가깝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4개의 독립된 협주곡이 각각 3악장(빠름-느림-빠름)으로 쪼개져 총 12개의 에피소드를 구성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정주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40~45분 남짓입니다. 각 계절은 따로 떼어놓고 봐도 훌륭하지만, 연달아 들었을 때 비로소 거대한 드라마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가장 소름 돋는 포인트는 마지막 ‘겨울’의 엔딩입니다. 차가운 눈보라가 몰아치며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 끝자락에 묘하게도 다시 ‘봄’의 기운을 슬쩍 흘려놓기 때문이지요. 4부작의 끝이 사실은 무한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임을 암시하는, 일종의 기막힌 ‘쿠키 영상’인 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지휘자와 연주자들은 이 완벽한 마스터피스를 마치 내 맘대로 섞어 듣는 플레이리스트처럼 다루곤 합니다. 물론 ‘봄’으로 시작해 ‘겨울’로 끝나는 정주행이 클래식계의 오랜 국룰이긴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무대 위에서 아주 발칙한 시도가 벌어지기도 하지요. 쓸쓸한 ‘가을’로 문을 열어 뜨거운 ‘여름’으로 폭발시키거나, 꽁꽁 언 ‘겨울’에서 출발해 희망찬 ‘봄’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식입니다. 이런 과감한 ‘셔플(Shuffle) 재생’이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4곡 각각이 그 자체로 흠잡을 데 없는 기승전결을 품고 있는 까닭입니다. 순서를 어떻게 뒤집고 섞어도 명작의 품격은 결코 무너지지 않네요. 자, 그럼 이제 각 계절의 재생 버튼을 직접 눌러볼 차례입니다.
봄 (La Primavera) E장조, RV 269
전 세계인이 아는 그 멜로디. 맞습니다, 봄 협주곡은 이 4곡 중 가장 압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지요. 특히 1악장의 첫 8마디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소비된 ‘브금(BGM)’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이 곡을 각 잡고 처음부터 들으면 십중팔구 당황하고 맙니다. “어라, 내가 아는 봄이 이게 다야?” 귀에 꽂히는 그 익숙한 선율은 시작하자마자 단 3초 만에 휙 지나가 버리거든요. 그 뒤로는 생전 처음 듣는 낯선 전개가 펼쳐집니다. “벌써 끝났어?”라는 허탈함, 사실 이게 바로 이 곡이 가진 기막힌 구조적 특징 때문입니다.
1악장 알레그로는 한 편의 짧은 블록버스터 영화 같습니다. 단 3분 남짓한 시간 안에 세 가지 장면이 숨 가쁘게 교차하거든요. 봄이 왔음을 알리는 ‘리토르넬로(ritornello, 반복 주제)’, 세 마리의 새가 지저귀는 3대의 바이올린 솔로, 그리고 갑자기 들이닥쳤다 사라지는 맹렬한 봄 폭풍우입니다. 여기서 ‘리토르넬로’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일종의 후렴구입니다. 독주자가 화려한 개인기를 뽐내는 사이사이에 등장해 음악의 뼈대를 꽉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요. 비발디는 여기서 천재적인 연출력을 발휘합니다. 폭풍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후렴구가 다시 돌아올 때, 음악은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고 활기차게 변해 있습니다. 비에 씻겨 맑아진 봄날의 공기, 그 청량한 질감을 소리만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낸 셈입니다.
이어지는 2악장 라르고는 ‘사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묘하고 재미있는 구간입니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꽃이 만발한 목장, 나른하게 낮잠에 빠진 목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배경에서 비올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음을 ‘멍, 멍’거리듯 반복합니다. 비발디가 남긴 소네트(시)를 보면, 이게 바로 ‘목동 곁을 지키며 짖는 충직한 개’의 소리입니다. 쿨쿨 자는 목동과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보초를 서는 개. 그 묘한 긴장감이 비올라의 단조로운 반복음으로 기가 막히게 표현됩니다. 실제로 비올라 연주자들 사이에서 이 악장은 “가장 지루한 악장”으로 통한다고 하네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박자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텐션을 유지해야 하는 고난도 노동이거든요. 졸음을 꾹 참는 개를 연주하느라, 연주자 본인도 졸음과 사투를 벌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입니다.
마지막 3악장 알레그로의 부제는 ‘목가적 춤(Danza pastorale)’입니다. 쿵짝짝, 3박자의 경쾌한 리듬이 이어지는데, 이는 당시 이탈리아 목동들이 즐겨 추던 민요풍 춤곡 ‘무세트(musette)’를 쏙 빼닮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악장에서 솔리스트(독주자)의 존재감이 그야말로 폭발한다는 점입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마치 무대 위를 날아다니며 춤을 추듯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데요. 이는 18세기 바이올린 연주 기교의 한계를 시험하는 아찔한 수준이었습니다. 비발디 본인이 직접 활을 잡고 이 곡을 연주했을 때, 객석의 청중들은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베네치아 귀족들 사이에서 “비발디의 손가락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을 정도니까요. 오케스트라 앞에서 독주자를 마치 록스타나 영웅처럼 돋보이게 만드는 현대적인 협주곡의 포맷, 그 위대한 원형을 비발디가 바로 여기서 완성해 냈습니다.
여름 (L’Estate) g단조, RV 315
사계 중 가장 드라마틱한 계절을 꼽으라면 단연 ‘여름’입니다. 보통 클래식의 여름이라고 하면 청량하고 밝은 해변을 떠올리시겠지요? 비발디의 여름은 다릅니다. 곡이 시작되자마자 끈적하고 숨 막히는 폭염이 훅 끼쳐오거든요. 1악장의 첫 음표들은 마치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 목동의 무거운 발걸음 같습니다. 봄이 사뿐사뿐 뛰어들어왔다면, 여름은 더위에 지쳐 터덜터덜 걸어오는 셈이지요. 소네트의 “무더운 여름, 양 떼 아래 잔인한 태양이 내리쬔다”는 구절을 비발디는 이토록 정확한 불쾌지수로 번역해 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처지고 짜증스럽게 시작했을까요? 그래야만 곧 들이닥칠 거대한 폭풍우의 카타르시스가 극대화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발디의 소름 돋는 설계인 것이죠.
1악장 중간에는 뻐꾸기, 산비둘기, 방울새의 울음소리가 세 대의 바이올린 솔로로 차례차례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 새소리들이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봄의 새소리가 아침을 깨우는 상쾌한 알람이었다면, 여름의 새소리는 열대야 속에서 귓가를 맴도는 모기 소리처럼 몹시 성가시고 짜증스럽게 들립니다. 무더위 속에서는 새소리조차 소음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같은 ‘새소리’라는 소재를 두고 계절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완벽하게 다른 감정을 빚어내다니요. 똑같은 악기로 쾌적함과 불쾌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비발디의 천재성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 대목입니다.
2악장 아다지오는 그야말로 ‘폭풍 전야의 숨 막히는 불안’입니다. 느리고 지친 멜로디가 간신히 이어지다가, 갑자기 빠르고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쾅 하고 끼어듭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불길한 천둥 예감이지요. 소네트에는 “파리 떼와 말벌 때문에 목동이 진저리 친다”고 적혀 있는데, 비발디는 이 윙윙거리는 벌레 떼의 소음을 점음표 리듬으로 기가 막히게 살려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잠들고 싶은데 귓가에 왱왱거리는 벌레와 쿠르릉거리는 천둥 때문에 자꾸만 선잠을 깨는 찝찝한 상황. 수백 년 전 이탈리아 목동의 불면증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귓가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피할 수 없는 재난뿐입니다.
3악장 프레스토.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빠른 16분음표가 단 한 순간의 자비도 없이 미친 듯이 몰아칩니다. 우아함이 미덕이던 18세기 클래식 음악계에서 이토록 격렬하고 파괴적인 사운드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현악기 전체가 거대한 비바람이 되어 울부짖고, 독주 바이올린은 번쩍이는 번개처럼 그 사이를 날카롭게 찢어발깁니다. 소네트 속 “하늘이 천둥을 치고 번개가 번쩍이며 이삭을 땅에 때린다”는 묘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소리로 폭발하지요. 현대 스릴러 영화 예고편이나 긴박한 광고 음악에 이 악장이 단골로 쓰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대중들이 “클래식인데 너무 무섭다”며 열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군요. 이 3악장을 숨죽여 듣고 나면, 왜 비발디가 앞선 악장들에서 그토록 끈적하고 불쾌한 밑밥을 깔아두었는지 무릎을 탁 치게 되실 겁니다.
가을 (L’Autunno) F장조, RV 293
가을 협주곡은 첫 소절부터 어딘가 수상합니다. 1악장이 시작되자마자 우아해야 할 음악이 묘하게 삐걱거리지요. 리듬은 엇박자를 타고, 멜로디는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느낌을 줍니다. 연주자가 실수라도 한 걸까요? 아닙니다. 비발디가 아주 치밀하게 의도한 ‘빅 픽처’인 까닭입니다. 그가 남긴 소네트(정형시)를 보면 정답이 나옵니다. 이 부분은 다름 아닌 ‘수확 축제에서 거나하게 술에 취한 농부들의 춤’이거든요. 비올라가 끈질기게 반복하는 불규칙한 리듬은 취객의 꼬인 발걸음 그 자체입니다. 풍년을 축하하다 못해 만취해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오선지 위에 그대로 옮겨놓은 셈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비발디의 능청스러운 유머 감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18세기 베네치아의 청중들도 이 음악을 듣고는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렸을 것입니다. 현대의 청중 역시 “아, 이거 술주정하는 소리구나!” 하고 알아채는 순간 무릎을 치게 되지요. 클래식은 무조건 각 잡고 들어야 하는 진지한 음악이라는 편견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심지어 화려한 기교를 뽐내야 할 독주 바이올린조차 솔로 구간에서 음을 이리저리 흘리며 알딸딸한 취기를 완벽하게 연기해 냅니다.
그렇게 한바탕 광란의 파티가 끝나고, 2악장 아다지오 몰토에 이르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취객들이 마침내 길바닥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버렸군요. 아름답고도 서늘한 고요함이 흐르는 가운데, 낮은 현악기들이 조심조심 움직입니다. 마치 곯아떨어진 사람들을 깨우지 않으려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걷는 모양새입니다. 1악장의 그 시끄러웠던 소동 덕분에 2악장의 적막함은 한층 더 극적으로 다가오지요. 흥미로운 사실은 ‘봄’의 2악장도, ‘가을’의 2악장도 모두 잠드는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시대가 달라도, 밥 먹고 술 마신 뒤에 쏟아지는 낮잠은 누구도 참을 수 없는 법인가 봅니다.
달콤한 숙취의 잠에서 깨어나면, 3악장 알레그로가 한 편의 스릴러 영화처럼 시작됩니다. 부제는 ‘사냥(La caccia)’. 동이 트자마자 사냥꾼들이 뿔나팔을 불며 숲으로 나서는 웅장한 팡파르가 귀를 때립니다. 여기서부터는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이 펼쳐지겠습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겁에 질려 도망치는 짐승을 연기하면, 오케스트라는 무자비하게 뒤를 쫓는 사냥꾼 무리가 되어 압박해 들어옵니다. 결국 상처 입은 사냥감이 지쳐 쓰러지며 음악은 끝을 맺습니다. “짐승이 도망치고 총성이 울린다. 상처 입어 지치고 소란 속에 도주하다 죽는다”는 소네트의 묘사 그대로지요. 구체적인 서사가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덕분에, 사계 전 곡을 통틀어 가장 몰입하기 쉬운 악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눈을 감으면 뿔나팔 소리와 맹렬한 말발굽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하네요.
겨울 (L’Inverno) f단조, RV 297
대중의 픽이 ‘봄’이라면, 전문가와 음악학자들의 픽은 단연 ‘겨울’입니다. 클래식계에는 “봄의 인기가 마케팅의 승리라면, 겨울의 명성은 진짜”라는 말이 있을 정도지요. 4곡 중 음악적 완성도가 가장 압도적인 까닭입니다. 특히 2악장이 그렇습니다. 클래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조차 듣는 순간 “어, 이거?” 하며 귀를 기울이게 될 테니까요. 그만큼 선율이 심장을 곧장 파고듭니다. 사계 최고의 멜로디가 봄이 아닌 겨울에 숨어있었다는 사실, 꽤 흥미롭지 않습니까?
1악장 ‘알레그로 논 몰토’는 첫 음부터 뼛속까지 시립니다. 소네트에는 “얼음장 같은 눈 속에 덜덜 떨며, 이를 딱딱 부딪힌다”고 적혀 있지요. 바이올린의 짧고 날카로운 음들이 반복되는데, 한겨울 칼바람에 오들오들 떠는 인간의 몸짓을 그대로 ‘음악화’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막힌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정작 비발디가 평생을 보낸 베네치아는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는 온화한 동네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독한 추위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요? 오직 천재 작곡가의 머릿속 상상력이 빚어낸 ‘가상의 혹한’이었던 겁니다.
그러다 2악장 ‘라르고’에 접어들면, 문이 닫히며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밖에는 매서운 겨울비가 내리지만, 나는 따뜻한 실내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완벽한 대비. 솔로 바이올린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뒤에서는 오케스트라가 현을 손가락으로 뜯는 ‘피치카토(pizzicato)’ 주법으로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를 톡톡 냅니다. 눈을 감으면 창밖의 빗소리와 실내의 온기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지요. 복잡한 소나타 형식 따위는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이 악장은 순전한 ‘이미지’로 우리를 압도하니까요. 사계의 12개 악장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꼽히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이 2악장을 듣다 왈칵 눈물을 쏟았다는 감상평이 줄을 잇는 걸 보면, 비발디는 소리만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마법사였던 것 같습니다.
3악장 ‘알레그로’는 빙판길 코미디입니다. 얼음 위를 조심조심 걷다가 쭈욱 미끄러지고, 결국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의 당황스러운 모습이 음악에 유쾌하게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소름 돋는 설계는 맨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곡이 끝나갈 무렵, 꽁꽁 얼어붙은 겨울의 선율 사이로 저 멀리 ‘봄’의 첫 주제가 슬쩍 고개를 내밀거든요. 마치 마블 영화가 끝난 뒤 나오는 쿠키 영상처럼 말입니다. 비발디는 이 4개의 협주곡이 결국 돌고 도는 하나의 ‘순환 세계’임을 마지막 악장 끝자락에 비밀스럽게 새겨 넣었습니다. 4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서 들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이스터에그인 셈이지요. 마지막 음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순간, 참지 못하고 다시 ‘봄’의 1악장을 재생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300년 전 비발디가 짜놓은 완벽한 플레이리스트의 비밀입니다.
왜 이 곡은 지금 이토록 많이 쓰이는가
비발디의 ‘사계’는 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톱 5에 어김없이 이름을 올립니다. 음반 판매량 역시 압도적인 최상위권이지요. 그저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이 곡이 수백 년의 시간을 뚫고 살아남아 ‘클래식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데에는 아주 치밀하고 구조적인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첫째, 믿을 수 없을 만큼 ‘요즘 폼’에 딱 맞습니다. 각 협주곡의 길이가 고작 10분 남짓이거든요. 한 시간 내내 각 잡고 들어야 하는 베토벤 교향곡은 클래식 초보자에게 꽤나 가혹한 고역이지요. 하지만 사계는 다릅니다. 유튜브 쇼츠를 넘겨 보듯 어느 악장에서 쓱 끼어들어도 좋고, 마음에 드는 딱 하나만 골라 들어도 완벽합니다. 굳이 전체를 정주행하지 않아도 각각의 에피소드가 완결성을 지닌 옴니버스 드라마인 셈입니다.
둘째, 무엇을 말하는지 너무나도 선명합니다. “자, 지금부터 폭풍우가 몰아친다!”, “여기는 쿨쿨 잠든 목동이야.” 비발디가 악보 곳곳에 소네트(정형시)와 표식을 달아 친절한 ‘감상용 가이드북’을 떠먹여 준 까닭입니다. 복잡한 음악 이론 따위는 몰라도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기만 하면 그만이지요. 여기에 시각적인 쾌감까지 더해졌습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홀로 무대를 장악하며 미친 듯한 기교를 뿜어내는 구간에서는, 라이브 공연을 보는 청중의 손에 땀이 쥐어지고 기어코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이 완벽한 구조 덕분에 현대 대중문화는 사계를 뼛속까지 발라먹고 있습니다. 영화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에서 희대의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가 잔혹하게 탈출하는 그 끔찍한 순간. 이때 배경에 깔린 음악이 바로 가장 화사한 봄 1악장이었습니다. 핏빛 공포와 경쾌한 봄의 선율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섬뜩함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탄생시켰지요. 드라마 ‘왕좌의 게임’ 홍보 영상은 물론이고, 수십 편의 공포 영화가 이 선율을 탐냈습니다. 특히 여름 3악장은 현대 미디어에서 ‘위험 상황 발생’을 알리는 국가 공인 알람음이나 다름없습니다. 뉴스 속보가 터질 때 방송사들이 다급하게 까는 바로 그 BGM 말입니다.
1989년, 클래식계에 폭탄 같은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나이젤 케네디(Nigel Kennedy)가 녹음한 사계 음반이 무려 200만 장이나 팔려나간 것입니다. 대중음악도 아닌 클래식 음반이 200만 장이라니, 당시에도 지금도 믿기 힘든 기적 같은 수치입니다. 비결은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삐쭉 솟은 모히칸 머리를 한 케네디가 펑크록의 광기로 바이올린을 찢어버릴 듯 연주하자, 지루해하던 젊은 세대가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클래식도 이렇게 힙할 수 있구나!”라는 문화적 충격. 전문가들은 이 앨범 이전과 이후로 사계를 대하는 인류의 태도 자체가 바뀌었다고 평가할 정도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곡의 미친 ‘생존력’입니다. 본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피아노, 통기타, 심지어 클럽에서 나오는 전자 음악 버전으로까지 무한 복제되고 있거든요. 주말 웨딩홀에서는 우아한 피아노로, 힙한 성수동 카페에서는 나른한 기타로, 세련된 TV 광고에서는 강렬한 전자음악으로 매번 얼굴을 바꾼 채 우리 곁에 살아 숨 쉽니다. 이렇게 찰흙처럼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꾸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클래식은 역사상 거의 없습니다. 이 유연성이야말로 사계가 가진 진짜 무기겠지요.
그렇다면 이토록 오랜 세월, 사계가 절대적인 생명력을 유지하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답은 뜻밖에도 매우 단순합니다. 비발디가 음표를 물감 삼아 ‘날씨’를 그렸기 때문입니다. 봄비의 간지러움, 여름 폭풍의 두려움, 가을 수확의 풍요로움, 겨울 눈보라의 매서움. 18세기 베네치아 사람이나 21세기 서울 한복판을 걷는 우리나 날씨 앞에서는 똑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계절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봄이 오면 왠지 마음이 들뜨고, 여름 장마철엔 묘한 긴장감이 돌며, 겨울 추위에 절로 어깨가 움츠러드는 인간의 보편적인 DNA. 그것이 음악 안에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습니다. 300년의 세월이 흘러도 이 곡이 단 1밀리미터도 낡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도 하나 짚고 넘어가 볼까요. 콧대 높은 일부 클래식 순수주의자들은 사계를 가리켜 ‘너무 흔해빠진 곡’이라며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백화점 엘리베이터, 치과 대기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하도 틀어대니, 진지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한낱 ‘배경 소음(BGM)’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불만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엘리베이터부터 장엄한 콘서트홀까지, 세상 그 어떤 공간과 맥락에 던져놓아도 완벽하게 작동하는 음악. 언제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 곡이 얼마나 위대한 마스터피스인지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일 것입니다.
저명한 음악학자 마이클 탈봇(Michael Talbot)은 비발디를 향해 “협주곡이라는 형식을 마침내 완성해 낸 작곡가”라는 찬사를 바쳤습니다.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쫄깃하게 밀당을 주고받는 대화법, 빠르고-느리고-빠른 3악장의 황금 비율, 그리고 리토르넬로 형식의 탁월한 활용. 비발디가 정립한 이 완벽한 공식은 곧바로 바흐에게, 모차르트에게, 그리고 베토벤에게로 고스란히 이식되었습니다. 만약 비발디가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바흐의 위대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전혀 다른 모양새였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바흐는 비발디의 악보를 밤낮으로 연구하며 직접 편곡까지 할 정도로 열렬한 ‘성덕(성공한 덕후)’이기도 했지요. 서양 음악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놓은 그 혁명적 흐름. ‘사계’는 바로 그 눈부신 정점에 꽂혀 있는 깃발입니다.
비발디 사계를 이해하는 세 가지 열쇠
솔직해져 볼까요. 비발디의 ‘사계’를 듣다 보면 십중팔구 이런 상황에 부닥칩니다. “어라, ‘봄’ 1악장 말고는 아는 게 없네?” 지극히 정상입니다. 워낙 압도적인 국민 BGM이니까요. 하지만 이대로 덮어두기엔 나머지 곡들이 너무나 아깝습니다. 이 40분짜리 마스터피스를 200% 즐기기 위해서는, 딱 세 가지만 머릿속에 담아두시면 됩니다.
첫 번째 열쇠는 ‘소네트(14행시)’입니다. 비발디는 각 협주곡 악보 곳곳에 직접 쓴 시를 달아두었습니다. 일종의 ‘이스터 에그’인 셈이지요. 번역된 시를 읽으며 음악을 들어보십시오. 예컨대 ‘봄’ 2악장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비올라의 둔탁한 소리. 이게 주인의 곁에서 짖어대는 ‘개 소리’였다는 걸 알고 나면, 음악이 갑자기 한 편의 영화처럼 입체적으로 변합니다. 소네트의 존재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감상평은 완전히 다른 우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번째 열쇠는 ‘정주행’입니다. 한 곡씩 따로 떼어 들어도 훌륭하지만, ‘봄’부터 ‘겨울’까지 끊지 않고 연달아 들을 때 비로소 계절이 순환하는 거대한 서사가 완성됩니다. 봄의 경쾌한 새소리로 출발해 여름의 맹렬한 폭풍우를 뚫고, 가을 추수기의 거나한 취기를 지나 겨울의 살인적인 혹한으로. 그리고 마침내 얼어붙은 땅에서 다시 봄의 냄새가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마지막 구절까지. 40분간의 연속 감상은 그 자체로 숨 막히는 몰입감을 선사할 것입니다.
세 번째 열쇠는 ‘연주자의 해석’입니다. 비발디의 악보는 꽤 불친절합니다. 빠르기나 강약, 즉흥적인 꾸밈음 등 연주자가 재량껏 채워 넣어야 할 여백이 태반이지요. 덕분에 나이젤 케네디가 연주한 ‘봄’과 파비오 비온디가 연주한 ‘봄’은 같은 악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음악이 됩니다. 클래식이라기보단 차라리 재즈의 즉흥 연주에 가깝달까요. 똑같은 곡을 여러 연주자의 버전으로 핑퐁하듯 비교하며 듣는 짜릿함. 사계만큼 이 재미가 쏠쏠한 곡도 드물 것입니다.
곡 자체의 매력도 엄청나지만, 이 곡이 품고 있는 역사 또한 기막힌 반전입니다. 비발디는 이 곡을 피에타 고아원의 소녀들을 위해 썼고, 귀족에게 헌정했으며, 암스테르담에서 출판해 유럽 전역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곧바로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 무려 200년 동안이나 창고에 처박혀 있었지요. 먼지를 털고 세상에 다시 나온 지 이제 고작 90년. 그런데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이 된 것입니다. 사계는 이 압도적인 ‘역주행’의 역사만으로도 이미 전설이 된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단번에 체감할 수 있는 궁극의 팁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바로 ‘라이브 공연’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사계는 독주 바이올린과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라, 주로 아담한 실내악 공연장에서 연주되곤 합니다. 거대한 교향악단 공연과 달리, 솔리스트의 일그러진 표정, 활이 끊어질 듯한 마찰, 단원들끼리 주고받는 팽팽한 눈빛 교환까지 코앞에서 직관할 수 있지요. ‘봄’ 1악장의 새소리 독주 구간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어떤 표정으로 활을 켜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장담컨대, 앞으로 평생 클래식을 듣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추천 음반
비발디의 ‘사계’는 전 세계에 발매된 음반 수만 해도 셀 수가 없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뭘 볼지 스크롤만 내리다 지치는 것처럼, ‘대체 어떤 걸 들어야 하나’ 막막해지기 십상이지요. 실패 확률 제로에 수렴하는 딱 세 장만 골라드리겠습니다.
나이젤 케네디 &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1989, EMI Classics): 클래식계의 펑크록커가 제대로 사고를 친 음반입니다. 처음 사계를 각 잡고 들으신다면 이 버전을 가장 먼저 추천합니다. “클래식은 수면제”라는 고정관념, 이 연주 앞에서는 산산조각 나고 말 것입니다. 템포는 미친 듯이 빠르고, 활을 긋는 손길은 대담하며, 리듬감은 록 음악 뺨치게 폭발적이거든요. 역대 클래식 음반 판매 상위권에 늘 박혀 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파비오 비온디 & 에우로파 갈란테 (1991, Opus 111): 18세기 당시의 악기와 주법을 고증한 이른바 ‘역사적 연주법(HIP)’의 끝판왕입니다. 고증이라니까 왠지 학구적이고 지루할 것 같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히려 음악의 해상도를 4K로 확 끌어올린 느낌이랄까요. 봄 2악장에서 컹컹 짖어대는 비올라의 개 소리, 여름 2악장에서 귓가를 맴도는 파리의 윙윙거림이 케네디 버전보다 훨씬 소름 돋게 선명합니다. 한 편의 짐승 같은 오디오 드라마를 경험해 보시지요.
자니네 얀센 & 솔로이스츠 (2004, Decca): 오케스트라의 웅장함 대신, 소수 정예 멤버만 뭉친 ‘언플러그드 라이브’ 같은 특별한 버전입니다. 빵빵한 반주 파트를 싹 걷어내고 오직 솔리스트 그룹 단 몇 명만으로 사계를 연주했지요. 그 결과가 어땠을까요? 2004년 영국 BBC 프롬스 무대를 말 그대로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연주자들끼리 숨소리를 교환하며 치고받는 쫄깃한 긴장감이, 실내악이라는 친밀한 규모 덕분에 한층 더 선명한 서사로 꽂히는 명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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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와 함께 듣기
아래 영상은 단순한 감상용이 아닙니다. 비발디가 직접 악보 곳곳에 숨겨둔 ‘이스터에그’를 찾아보는 플레이 영상에 가깝지요. 악보에 적힌 알파벳 표식(A, B, C…)을 따라가 보십시오. “아, 여기가 진짜 새소리구나”, “이게 폭풍우가 몰아치는 타이밍이구나” 하며 작곡가의 연출 의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음악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마법 같은 경험일 것입니다.
원본 악보가 궁금하신가요? 저작권이 만료된 악보들의 성지,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비발디 사계 악보 보기 (IMSLP)
비발디 사계는 총 몇 악장인가요?
총 12악장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4개의 챕터가 각각 ‘빠름-느림-빠름’의 3부작으로 쪼개져 있는 셈이지요. 다 듣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40~45분. 넷플릭스 드라마 한 편 볼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참고로 사계는 비발디의 작품집 《조화와 창의의 시험》(Op. 8)에 수록된 12개의 협주곡 중 첫 4곡(Nos. 1-4)만 쏙 뽑아낸 ‘알짜배기 플레이리스트’랍니다.
비발디 사계의 소네트는 누가 썼나요?
십중팔구 비발디 본인입니다. 악보에 ‘작사: 비발디’라고 적혀 있지는 않지만, 학자들은 그가 직접 썼다고 확신하고 있지요. 시의 구조가 각 협주곡의 3악장 뼈대와 소름 돋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악보 곳곳에 알파벳 기호를 달아 음악과 시 구절을 기가 막히게 매칭해 놓았습니다. 작곡부터 스토리텔링까지 혼자 다 해낸, 18세기판 ‘싱어송라이터’였던 셈입니다.
비발디 사계에서 가장 유명한 악장은 어느 것인가요?
대중성 끝판왕은 단연 ‘봄 1악장(Allegro)’입니다. TV만 틀면 광고, 드라마, 심지어 예식장 BGM으로 흘러나오는 바로 그 멜로디군요. 하지만 숨 막히는 긴장감이 필요할 때는 ‘여름 3악장(Presto, 폭풍우)’이 현대 영화와 광고를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반면 깐깐한 음악 평론가들이 최고로 꼽는 구간은 의외로 ‘겨울 2악장(Largo)’입니다. 밖에는 툭툭 빗방울(피치카토)이 떨어지고, 따뜻한 난롯가에서 홀로 바이올린을 켜는 듯한 아늑한 정경 묘사가 그야말로 예술이거든요.
비발디 사계가 200년간 잊혀졌다는 게 사실인가요?
믿기 힘들겠지만, 100% 팩트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이 곡이 무려 200년 동안이나 먼지 구덩이에 처박혀 있었지요. 1741년 비발디가 쓸쓸히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악보들은 헐값에 뿔뿔이 흩어져 어느 귀족 가문의 어두운 창고에 방치되었습니다. 이 엄청난 걸작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본 건 1927년의 일입니다. 음악학자 알베르토 젠틸리가 토리노 국립도서관에서 300여 곡의 필사본 무더기를 기적적으로 찾아냈거든요. 클래식 역사상 가장 극적인 ‘역주행 신화’라 부를 만합니다.
비발디 사계를 처음 들을 때 어떤 음반을 추천하나요?
클래식은 수면제라는 편견을 박살 내고 싶다면, 나이젤 케네디와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1989년(EMI Classics) 앨범을 강력히 권합니다. 미친 듯한 템포와 록 음악 뺨치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듣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으실 겁니다. 만약 작곡 당시의 거칠고 날것 같은 소리를 ‘고화질 4K’처럼 선명하게 느끼고 싶으시다면,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1991년 시대악기 버전을 선택해 보십시오. 활로 현을 끊어버릴 듯한 강렬한 연주에 푹 빠지게 되실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비발디 사계는 총 몇 악장인가요?
총 12악장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4개의 챕터가 각각 ‘빠름-느림-빠름’의 3부작으로 쪼개져 있는 셈이지요. 다 듣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40~45분. 넷플릭스 드라마 한 편 볼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참고로 사계는 비발디의 작품집 《조화와 창의의 시험》(Op. 8)에 수록된 12개의 협주곡 중 첫 4곡(Nos. 1-4)만 쏙 뽑아낸 ‘알짜배기 플레이리스트’랍니다.
비발디 사계의 소네트는 누가 썼나요?
십중팔구 비발디 본인입니다. 악보에 ‘작사: 비발디’라고 적혀 있지는 않지만, 학자들은 그가 직접 썼다고 확신하고 있지요. 시의 구조가 각 협주곡의 3악장 뼈대와 소름 돋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악보 곳곳에 알파벳 기호를 달아 음악과 시 구절을 기가 막히게 매칭해 놓았습니다. 작곡부터 스토리텔링까지 혼자 다 해낸, 18세기판 ‘싱어송라이터’였던 셈입니다.
비발디 사계에서 가장 유명한 악장은 어느 것인가요?
대중성 끝판왕은 단연 ‘봄 1악장(Allegro)’입니다. TV만 틀면 광고, 드라마, 심지어 예식장 BGM으로 흘러나오는 바로 그 멜로디군요. 하지만 숨 막히는 긴장감이 필요할 때는 ‘여름 3악장(Presto, 폭풍우)’이 현대 영화와 광고를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반면 깐깐한 음악 평론가들이 최고로 꼽는 구간은 의외로 ‘겨울 2악장(Largo)’입니다. 밖에는 툭툭 빗방울(피치카토)이 떨어지고, 따뜻한 난롯가에서 홀로 바이올린을 켜는 듯한 아늑한 정경 묘사가 그야말로 예술이거든요.
비발디 사계가 200년간 잊혀졌다는 게 사실인가요?
믿기 힘들겠지만, 100% 팩트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이 곡이 무려 200년 동안이나 먼지 구덩이에 처박혀 있었지요. 1741년 비발디가 쓸쓸히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악보들은 헐값에 뿔뿔이 흩어져 어느 귀족 가문의 어두운 창고에 방치되었습니다. 이 엄청난 걸작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본 건 1927년의 일입니다. 음악학자 알베르토 젠틸리가 토리노 국립도서관에서 300여 곡의 필사본 무더기를 기적적으로 찾아냈거든요. 클래식 역사상 가장 극적인 ‘역주행 신화’라 부를 만합니다.
비발디 사계를 처음 들을 때 어떤 음반을 추천하나요?
클래식은 수면제라는 편견을 박살 내고 싶다면, 나이젤 케네디와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1989년(EMI Classics) 앨범을 강력히 권합니다. 미친 듯한 템포와 록 음악 뺨치는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듣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으실 겁니다. 만약 작곡 당시의 거칠고 날것 같은 소리를 ‘고화질 4K’처럼 선명하게 느끼고 싶으시다면,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1991년 시대악기 버전을 선택해 보십시오. 활로 현을 끊어버릴 듯한 강렬한 연주에 푹 빠지게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