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 빈에서 반평생 무시당한 늦깎이가 처음으로 박수를 받은 교향곡. 사랑 노래가 아니라 새벽 숲과 중세 기사의 그림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1악장 맨 첫머리. 현악 트레몰로 안개를 뚫고 호른이 부는 두 음. 이 두 마디가 65분 전체를 지배합니다.
첫 음반 — 카를 뵘 · 빈 필하모닉 · Decca(1973).
리허설이 막 끝난 참이었습니다. 쉰여섯 살의 작곡가가 지휘대로 쭈뼛쭈뼛 다가가더니, 지휘자의 손에 동전 한 닢을 슬쩍 쥐여주었죠. “이걸로 맥주 한잔 드시고 제 건강을 위해 축배 들어주십시오.” 동전을 받은 사람은 빈이 자랑하는 당대 최고의 지휘자 한스 리히터였고, 건넨 사람은 빈 음악계의 영원한 동네북, 안톤 브루크너였습니다.
훗날 리히터는 그 동전을 시계줄에 매달아 평생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고 회고했습니다. 그가 건네받은 건 단순한 동전이 아니라, 마흔이 훌쩍 넘도록 단 한 번도 세상의 인정을 받아본 적 없는 남자의 가장 순수하고 묵직한 감사였거든요. 그날 밤 무대에 오른 곡이 바로 교향곡 4번 ‘낭만적’, 브루크너의 인생에 찾아온 첫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별명,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그런 달콤한 낭만이 아닙니다.

빈 음악계가 비웃은 시골 오르가니스트
작곡가 브루크너의 출발선은 남들보다 한참 뒤처져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시골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성 플로리안 수도원과 린츠 대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건드리며 마흔 살까지 살았죠. 즉흥 연주 실력 하나만큼은 유럽을 통틀어 최고로 꼽혔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연주자’로서의 명성에 불과했습니다. 작곡가로서는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첫 교향곡의 마침표를 찍은, 지독할 정도의 늦깎이였으니까요.
1868년, 마흔넷의 나이에 그는 마침내 빈 음악원 교수 자리를 꿰차고 화려한 수도로 입성합니다. 하지만 빈은 시골뜨기에게 결코 호락호락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짙은 사투리를 구사하는 데다 옷차림은 촌티가 줄줄 흘렀고, 사교계의 세련된 화법 따위는 알 턱이 없었죠. 오죽하면 황제 앞에서도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엉뚱한 청을 늘어놓을 정도였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강박까지 안고 살았습니다. 창문 개수를 세고, 가로수 잎사귀를 세고, 성당 첨탑 장식까지 하나하나 헤아려야 직성이 풀렸거든요. 숫자를 세지 않고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일종의 병이었습니다.
그의 순박함을 증명하는 일화는 그야말로 차고 넘칩니다. 연주가 마음에 쏙 들면 지휘자나 연주자에게 덥석 동전을 쥐여주며 시원하게 한잔하라고 권하는 것이 그의 아주 오래된 버릇이었습니다. 도입부에서 말씀드린 그 짠한 동전 사건 역시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돌발 행동이 아니라, 뼛속까지 배인 습관이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에 툭 튀어나온 것에 불과하죠. 콧대 높은 빈의 음악가들 눈에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촌극이었겠지만, 브루크너는 끝까지 자기만의 투박한 방식으로 고마움을 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빈에서 그를 진짜 궁지로 몬 결정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열렬히 숭배하던 우상이었습니다. 브루크너는 리하르트 바그너를 거의 신처럼 떠받들었거든요. 교향곡 3번을 아예 바그너에게 헌정하며 악보에 ‘도달할 수 없는 세계적 거장’이라는 낯뜨거운 찬사까지 적어 넣었을 정도니까요. 교향곡 2번과 3번 악보를 바리바리 싸 들고 가 직접 하나를 골라달라고 청했는데, 이튿날 술이 깬 바그너가 “트럼펫이 주제를 여는 그 d단조 교향곡이 맞느냐”고 편지로 되물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전해집니다. 진짜 문제는 당시 빈이 살벌한 음악 내전을 치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한쪽 진영에는 브람스를 떠받드는 절대음악 파가, 반대쪽에는 바그너를 앞세운 미래음악 파가 대치 중이었고, 그 험악한 전장 한복판에는 비평계의 절대 권력자 에두아르트 한슬릭이 두 눈을 부릅뜨고 버티고 있었죠.

한슬릭의 까다로운 귀에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형체도, 논리도 없는 거대한 소음 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끝없이 늘어지다가 덜컥 멈춰서고, 그러다 또다시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이 기괴한 음악을 그는 ‘바그너 병에 걸린 자의 끔찍한 악몽’쯤으로 취급했습니다. 당시 빈에서 한슬릭의 펜끝에 찍힌다는 건 사실상 음악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고 브루크너는 그 매서운 펜끝에 찔려 반평생을 피 흘리며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 가혹한 사형 선고가 보란 듯이 집행된 참담한 밤도 있었습니다. 1877년 12월 16일, 브루크너가 직접 지휘봉을 쥐고 무대에 올랐던 교향곡 3번의 초연 날입니다.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청중은 약속이나 한 듯 한 명씩 자리를 떴습니다. 악장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객석은 썰물 빠지듯 비어갔고, 마침내 마지막 화음이 홀에 울려 퍼졌을 때 자리를 지킨 사람은 고작 스물다섯 명 남짓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심지어 오케스트라 단원들마저 악기를 챙겨 슬그머니 무대를 빠져나가 버렸죠. 쉰을 갓 넘긴 작곡가는 텅 빈 객석과 무대를 향해 홀로 우두커니 서 있어야 했습니다. 이보다 더 처참하고 잔인한 데뷔 무대는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맛본 뼈아픈 실패는, 1874년에 진작 써두었던 4번 교향곡마저 몇 번이고 다시 뜯어고치게 만든 서글픈 배경이 됩니다.
세 번 고쳐 쓴 교향곡, ‘브루크너 문제’의 시작
이토록 살벌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브루크너가 택한 생존법은 다름 아닌 ‘고쳐 쓰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교향곡 4번은 그의 집요한 강박이 가장 선명하게 박혀 있는 작품입니다. 1874년에 일단 첫 판본을 완성하긴 했지만, 그는 영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878년에 악보를 거의 새로 쓰다시피 엎었고, 1880년에 또다시 메스를 댔습니다. 특히 3악장 스케르초는 1878년에 아예 백지에서 통째로 새로 작곡했고, 마지막 4악장은 두 번이나 처음부터 와르르 갈아엎었죠. 우리가 오늘날 연주회장에서 듣는 4번은 사실상 세 번째로 빚어낸 눈물겨운 판본인 셈입니다.
4악장의 사연은 그중에서도 몹시 극적입니다. 1878년에 브루크너는 ‘민중 축제(Volksfest)’라는 부제를 단 피날레 악장을 번듯하게 한 차례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2년 뒤, 그는 그것마저 미련 없이 휴지통에 처넣고 지금 우리가 듣는 피날레를 새로 써 내려갔습니다. 멀쩡하게 완성해 둔 악장을 가차 없이 폐기하고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 무서운 집요함. 바로 이것이 4번을 기어코 ‘세 번 고쳐 쓴 교향곡’으로 만들어버린 강력한 동력입니다. 다 쓴 자기 작품을 미련 없이 버릴 줄 아는 작곡가는 생각보다 훨씬 드물거든요.
바로 이 지점에서 음악학자들을 100년 넘게 들볶아 온 골칫거리, 이른바 ‘브루크너 문제’가 싹을 틉니다. 분명 같은 교향곡인데 굴러다니는 판본이 너무 많았던 겁니다. 초판이 있고, 개정판이 있고, 제자들이 “스승님, 이렇게 줄여야 악보가 훨씬 잘 팔릴 텐데요”라며 슬쩍 손을 댄 출판본까지 그야말로 난장판으로 뒤섞여 버렸죠. 게다가 브루크너 본인의 귀가 얇아도 너무 얇았던 탓에, 주변에서 한마디씩 훈수를 두면 또 순순히 고쳐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덕분에 후대 학자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 브루크너의 오리지널 의도인지를 두고 지금까지도 멱살을 잡고 다툽니다. 당장 이 교향곡 4번만 해도 편집자의 이름을 딴 하스 판과 노바크 판으로 쫙 갈라져 버리거든요.
천만다행히도 이제 막 브루크너에 발을 들인 입문자가 이 복잡한 미로 속을 헤맬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날 연주회장이나 음반에서 거의 예외 없이 흘러나오는 것은 1878/80년 개정판이거든요. 그냥 “저 4번 들을래요” 하면 열에 아홉은 이 판본이 자동으로 튀어나옵니다. 1874년 초판의 경우 스케르초와 피날레가 아예 다른 곡 수준이라, 이른바 브루크너 골수 애호가들이 “이 곡이 원래는 이랬다니까” 하며 신나게 비교 감상하는 별미 정도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처음 듣는 분이라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깔끔하게 개정판 하나만 단단히 붙들면 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서 고생하며 고쳐 썼을까요. 브루크너의 음악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그가 평생 오르가니스트로 살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는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달기 전부터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앞에 앉아, 압도적인 음향이 성당 천장을 빈틈없이 채우는 순간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사람이었거든요. 그의 교향곡이 마치 거대한 건축물처럼 벽돌을 한 블록씩 툭툭 쌓아 올리듯 전개되는 것도, 유독 침묵의 순간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도 전부 오르간의 어법에서 온 것입니다. 빈 사람들의 귀에는 그저 뚝 끊기는 것처럼 어색하게 들렸던 그 ‘단절’이, 실은 쏟아지던 음향이 잦아든 뒤 텅 빈 성당에 남는 아득한 잔향이었습니다. 오르간의 생리를 모르면 브루크너식 침묵을 견디기 힘들지만, 오르간을 이해하고 나면 그 낯선 침묵마저 완벽한 음악의 일부로 들리게 되죠.
‘낭만적’은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제 그 의미심장한 별명을 짚어볼 차례입니다. 으레 클래식 곡의 별명이라는 건 출판사나 후대 사람들이 팔기 좋게 멋대로 붙이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런데 이 ‘낭만적(Romantische)’이라는 타이틀은 다릅니다. 놀랍게도 브루크너 본인이 직접 붙였거든요. 평생 자기 음악에 구구절절 문학적인 설명을 달아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기에, 이 부제는 더욱 이례적이고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분명히 해두건대, 여기서 말하는 ‘낭만’은 핑크빛 연애 감정이 아닙니다. 19세기 낭만주의가 지독하게 사랑했던 바로 그 풍경, 안개 낀 중세의 기사와 웅장한 성과 울창한 숲을 가리키죠. 브루크너는 1악장을 두고 주변에 이런 구체적인 장면을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중세 도시의 짙은 새벽, 굳건한 성탑에서 울려 퍼지는 아침의 뿔피리 소리, 마침내 활짝 열리는 성문, 준마에 올라타 숲을 향해 맹렬히 달려 나가는 기사들, 그리고 그들을 신비롭게 감싸는 숲의 속삭임과 새들의 노래. 요즘 나오는 게임이나 장엄한 판타지 영화의 오프닝 시네마틱 영상을 떠올리시면 거의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다만 그 장대한 그림이 1880년에 음악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이 다를 뿐이죠.
그러니 ‘낭만적’이라는 이름표만 철석같이 믿고 달달한 선율을 기대하셨다면 조금 곤란합니다. 이 곡이 치밀하게 그려내는 것은 안개가 짙게 깔린 새벽 숲의 장엄함이지, 연인들의 은밀한 속삭임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신비로운 안개와 호기로운 뿔피리 덕분에, 이 교향곡은 브루크너의 험난한 세계로 진입하는 가장 훌륭한 입문의 정석으로 꼽힙니다.
💡 사실은요 — 클래식 음악의 “별명은 죄다 후대가 붙인 것”이라는 흔한 통념과 달리, ‘낭만적’은 브루크너 본인이 확고하게 붙인 부제입니다. 그의 자필 악보와 편지 곳곳에 직접 ‘romantisch’라고 꾹꾹 눌러 적은 흔적이 남아 있고, 1악장의 기사·성·숲 장면 역시 그가 지인들에게 직접 남긴 설명에서 고스란히 끌어온 것입니다. 다만 이 거창한 프로그램은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안내하는 거대한 이미지 보드일 뿐, 특정한 서사를 음표 하나하나로 치밀하게 옮겨 낸 표제음악은 아닙니다. (근거: Wikipedia ‘Symphony No. 4 (Bruckner)’)
악장마다 다른 얼굴 — 1악장부터 4악장까지
1악장 — 안개를 뚫고 솟아오르는 뿔피리
현악기가 파르르 잘게 떠는 트레몰로로 텅 빈 무대를 채우기 시작합니다. 짙은 새벽안개가 낮게 깔리는 소리죠. 이윽고 그 안개를 뚫고 호른이 홀로 E♭장조의 5도 음정을 고요하게 불어 올립니다. 오직 단 두 개의 음.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두 음짜리 동기가 교향곡 65분 전체를 끈질기게 지배합니다. 처음 들으면 그저 분위기 잡는 예쁜 도입부 같지만, 이 호른 소리는 유령처럼 끝까지 따라다니다가 마침내 4악장 마지막에 이르러 거대하게 폭발하고 마는 무시무시한 씨앗입니다.
브루크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세 묶음의 주제를 묵직하게 차례로 꺼내 놓습니다. 첫째는 웅크렸던 호른에서 자라난 힘찬 합주이고, 둘째는 비올라와 첼로가 진득하게 이끄는 노래입니다. 셋째 묶음에 이르면 마침내 그 유명한 ‘브루크너 리듬’이 등장합니다. 한 박을 둘로 쪼갠 것과 셋으로 쪼갠 것이 톱니바퀴처럼 동시에 부딪히는 묘한 리듬인데, 자칫 어긋나는 듯하면서도 기묘하게 음악을 앞으로 맹렬히 떠미는 강력한 추진력이 됩니다. 발전부에서 이 세 주제가 치열하게 충돌하고 뒤엉키다가, 재현부에 접어들면 맨 처음의 호른 동기가 찬란한 트럼펫 팡파르로 거대하게 확대되어 돌아옵니다. 자욱했던 안개가 일제히 걷히고, 압도적인 풍경 전체가 한눈에 쫙 펼쳐지는 짜릿한 순간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곡을 켜자마자 귓가를 맴도는 현악의 사각거림이 바로 그 안개입니다. 곧이어 그 위로 호른이 유유히 두 음을 불어 올리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마세요. 그 작은 소리가 4악장 끝에서 얼마나 엄청난 모습으로 돌아오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이 곡을 듣는 가장 확실한 첫 번째 재미입니다.
2악장 — 시간이 멈추는 첼로의 행진
c단조로 무겁게 가라앉는 느린 악장입니다. 첼로가 침착하게 풀어놓는 첫 선율은 언뜻 장송 행진의 처연한 걸음걸이를 쏙 빼닮았는데, 짙은 슬픔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깊은 명상에 가깝습니다. 한 차례 쓸쓸한 노래가 흐르고 나면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조심스레 번갈아 말을 건네옵니다. 현악기가 줄을 튕겨내는 피치카토 위로 관악기들의 나직한 대화가 오가고, 그 앙상블은 거대한 교향곡이 무색하게 거의 실내악처럼 친밀하게 다가옵니다. 장장 65분짜리 웅장한 대작 한복판에 브루크너가 몰래 숨겨둔 가장 사적이고 고요한 방 하나를 마련해 둔 셈이죠.
브루크너의 느린 악장은 묘하게도 듣는 이의 시간 감각을 툭툭 흐트러뜨려 놓곤 합니다. 5분이 지난 건지 15분이 훌쩍 흘러버린 건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거든요. 이 기이한 마법의 비결은 바로 화음이 움직이는 독특한 방식에 있습니다. 차가운 c단조에서 닻을 올린 음악이 따뜻한 A♭장조 쪽으로 서서히 기울었다가, 이내 썰물처럼 다시 어두워지는 순환을 끝없이 반복합니다. 곡의 정점은 숨죽이던 현악 전체가 첼로의 첫 주제를 터질 듯 아주 큰 소리로 부르짖는 순간에 기습적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강렬한 절정은 결코 오래 머물지 않죠. 음악은 언제 그랬냐는 듯 처음의 적막한 고요로 돌아가고, 멀어지는 호른의 아스라한 잔향 속으로 스르르 자취를 감춥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2악장 도입부, 첼로가 무겁게 떼는 첫걸음을 가만히 따라가 보세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는 그 묵직한 속도가 사실상 이 악장의 전부거든요. 자꾸만 시계를 힐끗거리려는 조급함을 버리고 그저 걷는 행위 자체에 몸을 툭 맡겨버리면, 비로소 브루크너만의 낯선 시간이 스르르 열립니다.
3악장 — 숲을 가로지르는 사냥 나팔
1878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새로 써 내려간 악장입니다. 초판의 3악장과는 아예 딴 곡이라고 우겨도 좋을 만큼 뼛속까지 성격이 바뀌었죠. 호른이 기세 좋게 뿜어내는 사냥 신호가 악장 전체의 멱살을 쥐고 질주합니다. 거친 2박자의 리듬 위에서 호른 넷이 마치 깊은 숲속의 메아리처럼 핑퐁 신호를 주고받는데, 골치 아픈 분석 따위는 집어치우고 귓바퀴만 열어두어도 말을 타고 숲을 시원하게 내달리는 장면이 눈앞에 떡하니 그려집니다. 교향곡 4번을 통틀어 가장 직관적이고 피가 끓어오르는 대목이죠. 혹시라도 ‘브루크너는 지루하고 어렵다’는 퀴퀴한 편견을 품고 계신다면, 이 악장이 그 단단한 벽을 가장 통쾌하게 깨부숴줄 겁니다.
작곡가 본인이 이 악장을 두고 “사냥, 그리고 한낮 트리오에서는 사냥꾼들의 식사에 곁들이는 춤곡”이라고 콕 집어 친절하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과연 그 말대로 한가운데 낀 트리오 부분은 거칠게 몰아치던 앞뒤 구간과 너무나도 확연하게 대비를 이룹니다. 팽팽했던 템포가 슬며시 느슨해지더니, 현악기들이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렌틀러풍 춤곡을 흥얼거리기 시작하거든요. 영락없는 오스트리아 시골 마을 무도회의 훈훈한 온기가 피어오르는 대목입니다. 꿀맛 같은 휴식인 트리오가 끝나면 어느새 사냥 나팔이 기세등등하게 돌아와 악장을 사납게 닫아버리죠. 맹렬한 격렬함과 시골뜨기의 소박함이 한 악장 안에서 묘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구성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3악장이 문을 여는 순간, 가차 없이 호른의 사냥 신호가 뻥 터집니다. 그 맹렬한 활력에 정신없이 몸을 싣고 달리다 보면, 중간에 돌연 템포가 늘어지며 음악이 한없이 보드라워지는 지점이 슬그머니 찾아올 겁니다. 살벌한 사냥터 한복판에 뜬금없이 차려진, 아주 소박하고 정겨운 시골 무도회장 풍경이죠.
4악장 — 대성당 꼭대기에 얹어 놓는 마지막 돌
이 교향곡에서 가장 길고, 동시에 가장 말이 많은 덩치 큰 악장입니다. 브루크너가 무려 두 번이나 바닥부터 새로 썼는데도 불구하고, 냉정히 말해 구조적인 균형이 칼같이 완벽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바로 그 삐걱거리는 불완전함 속에 이 악장을 묵직하게 밀고 나가는 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악장 초입에서 1악장을 열었던 그 호른 동기가 짙은 안개를 뚫고 다시 한번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냅니다. 분명 똑같은 재료를 썼는데도 맥락은 완전히 달라졌죠. 이제는 숲을 향한 호기로운 출발 신호가 아니라, 기나긴 여정 끝에 무사 귀환을 알리는 장엄한 종소리거든요.
바로 이 지점부터 숨 막히는 거대한 클라이맥스가 닻을 올립니다. 다만 속 시원하게 한 방에 빵 터져주진 않습니다. 묵직한 주제가 벽돌처럼 겹겹이 쌓여가고, 금관악기들이 경건한 찬송가 같은 화음을 엮어내며 끈질기게 솟구쳐 오르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해일처럼 덮쳐옵니다. 그러다 훅 가라앉고, 이내 방금 전보다 더 집요하고 덩치 큰 파도가 밀어닥치기를 반복하죠. 마침내 세 번째 파도가 아득한 정점에 닿는 순간, 코다에서 찬란한 E♭장조가 오케스트라 전체를 뚫고 나와 한꺼번에 폭발합니다. 마치 평생을 바쳐 지어 올린 웅장한 대성당 꼭대기에, 마침내 마지막 돌 한 덩이를 턱 얹어 첨탑을 완성해 냈을 때의 엄청난 완결감입니다. 1악장의 뽀얀 안개 속에서 갓 태어났던 그 조그만 호른 소리가, 장장 65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돌고 돌아 바로 여기에서 쩌렁쩌렁한 승리의 함성으로 터져 나오는 겁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4악장 맨 끝자락, 터질 듯하던 음악이 스르르 가라앉았다가 기어코 다시 맹렬하게 부풀어 오르기를 징글징글하게 반복하는 그 구간을 꾹 참고 견뎌보세요. 섣불리 ‘아, 여기서 끝이구나’ 하고 손을 떼버리는 순간 진짜 어마어마한 절정을 허무하게 날려버리게 됩니다. 최후의 순간, 금관악기들이 E♭장조로 눈부시게 터져 오르는 그 찰나가 바로 65분짜리 험난한 여정의 찐 목적지거든요.
1881년 2월 20일, 동전 한 닢의 밤
자, 이제 글의 도입부에서 슬쩍 미뤄두었던 그 짠한 동전 이야기로 다시 돌아갈 차례입니다. 1881년 2월 20일, 화려하기 그지없는 빈 무지크페라인의 황금홀. 지휘대에 올라 지휘봉을 거머쥔 사람은 다름 아닌 빈 필하모닉을 쥐락펴락하던 당대 최고의 마에스트로, 한스 리히터였습니다. 무려 바그너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 초연을 이끌었던 바로 그 인물이죠. 그가 이름조차 희미했던 브루크너의 4번을 직접 맡아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불운한 늦깎이 작곡가에게는 두 번 다시 없을 천금 같은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리허설 도중, 울려 퍼지는 자신의 음악에 왈칵 압도되어 버린 브루크너가 차오르는 감정을 도저히 주체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는 홀린 듯 지휘대로 뚜벅뚜벅 다가가더니, 대지휘자 리히터의 손에 낡은 동전 한 닢을 꼭 쥐여주며 맥주값에나 보태어 자기 건강을 위해 축배를 들어달라고 엉뚱한 청을 하고 맙니다.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쥔 거물급 지휘자에게 촌티 나는 무명 작곡가가 쥐여준 고작 동전 한 닢이라니요. 자칫 턱없이 무례한 돌발 행동으로 여겨 불같이 화를 낼 법도 한데, 리히터는 그 투박한 동전에 담긴 순진무구한 진심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읽어냈습니다. 훗날 그는 그 동전을 시계줄에 대롱대롱 매달아 평생 기념물처럼 애지중지 간직했다고 회고했죠. 두 사람 사이에 쩍 갈라진 신분 차이를 떠올려 본다면, 이 촌극은 다음 날 빈 사교계의 훌륭한 조롱거리로 질겅질겅 씹히기 딱 좋은 먹잇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마에스트로였던 리히터는 가벼운 조롱 대신, 묵직한 존중을 택했습니다.
마침내 초연 당일 밤, 객석을 감돈 공기는 4년 전 그 끔찍했던 밤과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팽팽했던 연주가 끝나는 순간 빈의 청중들이 일제히 뜨거운 환호를 터뜨렸거든요. 불과 4년 전, 교향곡 3번 초연 당시 도망치듯 서둘러 홀을 빠져나가던 쌀쌀맞은 바로 그 도시의 청중들이 말입니다. 악장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갈채가 쏟아졌고, 브루크너는 벅찬 얼굴로 여러 차례 무대로 불려 나와야 했습니다. 오십대 후반에 접어든 늙수그레한 작곡가가 생애 처음으로 맛본 짜릿한 진짜 승리였습니다. 얼음장 같던 빈이, 기어코 이 고집스러운 시골 오르가니스트에게 제 곁을 조금 내어준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하죠.
다행히 이 승리는 어쩌다 한 번 찾아온 얄팍한 행운으로 증발하지 않았습니다. 4번 교향곡이 단단히 닦아놓은 길을 따라, 1884년에는 교향곡 7번이 라이프치히에서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었거든요. 브루크너는 그렇게 칠십을 바라보는 환갑이 지나서야, 비로소 전 유럽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하는 거물급 작곡가의 반열에 오릅니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콧대 높은 빈의 정서에 끝내 완전히 동화되지는 못했던 이방인이었습니다. 1896년 눈을 감으며 마지막 교향곡 9번을 끝내 미완성으로 남겨둔 그는, 유언에 따라 자신의 음악적 영혼이 태어난 고향, 성 플로리안 수도원으로 홀연히 돌아갔습니다. 그가 묻힌 곳은 다름 아닌, 젊은 시절 매일같이 매달려 연주했던 바로 그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아래의 캄캄한 지하였습니다. 시골 구석의 촌스러운 오르가니스트로 시작해, 결국 웅장한 오르간의 진동 아래서 영원한 잠에 빠져든 사람. 그 뭉클한 여정 한가운데에 ‘4번 교향곡’이라는 가장 찬란한 첫 박수가 훈장처럼 놓여 있습니다.
브루크너가 남긴 아홉 교향곡 가운데 유독 이 4번이 연주회장 단골 메뉴로 자주 오르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8번이나 9번이 뿜어내는 그 숨 막히고 육중한 무게감은 이제 막 입문한 사람에겐 거대한 철벽처럼 느껴지기 십상이죠. 하지만 다행히도 4번에는 아주 친절하고 튼튼한 손잡이가 떡하니 달려 있거든요. 한 번 들으면 누구나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호른 동기, 골치 아픈 분석일랑 싹 비우고 신나게 즐기면 그만인 사냥 스케르초, 게다가 깐깐한 작곡가 본인이 직접 붙여준 ‘낭만적’이라는 다정한 별명까지 얹혀 있으니까요. 요컨대 브루크너라는 답도 없이 거대한 세계로 진입할 수 있도록 활짝 터놓은, 가장 넓고 환한 정문이 바로 이 4번 교향곡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곡을 듣다 보면, 천지가 진동하는 4악장의 마지막 코다보다 오히려 1악장을 여는 첫 호른 소리에서 훨씬 더 묵직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무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세상의 모진 무시와 조롱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자기가 믿는 음악의 돌덩이를 다듬던 한 고집스러운 늦깎이가 마침내 자욱한 안개를 뚫고 조심스레 첫 음을 불어 올리는 떨리는 순간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요란한 승리의 함성보다는, 그 벅찬 함성에 닿기까지 묵묵히 버텨낸 미련한 인내가 바로 이 곡의 진짜 주인공이거든요. 촌뜨기 작곡가가 불쑥 쥐여준 동전 한 닢을 시계줄에 매달아 평생 부적처럼 간직했던 대지휘자 리히터의 마음도, 아마 이 첫 호른 소리를 듣는 우리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처음 듣는다면 — 이 세 가지만 알고 들으세요
혹시라도 브루크너가 난생처음이시라면, 으레 짊어지게 되는 묵직한 부담감일랑 잠시 훌훌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65분이라는 어마어마한 길이에 지레 겁먹고 도망칠 필요도 없고요. 앞서 말씀드렸듯 4번은 그의 아홉 교향곡을 통틀어 가장 문턱이 낮고 친절하게 설계된 입구니까요. 복잡한 이론 대신 딱 세 가지만 가방에 챙겨 넣으시면, 이 긴 여정을 거뜬히 즐기기에 충분합니다.
- 1악장 첫 호른 동기를 기억하세요. 안개 속에서 솟는 그 두 음이 곡 전체의 씨앗입니다. 4악장 끝에서 어떻게 자라나는지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65분이 한 편의 이야기로 묶입니다.
- 3악장은 머리를 비우고 즐기세요. 사냥 나팔이 울리는 가장 신나는 악장입니다. 어렵게 분석할 것 없이 숲을 달린다는 기분으로 들으면 됩니다.
- 클라이맥스는 파도처럼 온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브루크너는 절정을 한 번에 터뜨리지 않습니다.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다 마지막에 폭발합니다. 중간에 가라앉는다고 끝난 것이 아니니, 더 큰 파도를 기다리면 됩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교향곡 4번 ‘낭만적’ E♭장조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재밌는 건 똑같은 4번 악보를 올려두고도,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숲에 깔리는 안개의 농도가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겁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볼 처음 한 장, 곡의 굵직한 뼈대를 짚어내며 이해할 한 장, 그리고 기어코 브루크너 음악의 끝까지 가보고 싶을 때 꺼내 들 독한 한 장으로 골라봤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참고 자료
- Wikipedia — Symphony No. 4 (Bruckner): 판본·별명·초연 개요
- IMSLP — Symphony No. 4, WAB 104: 총보·판본 정보
- Wikipedia — Anton Bruckner: 생애·성 플로리안·빈 시기
- Wikipedia — Hans Richter: 1881년 초연 지휘자
이어서 듣기 — 안개 걷힌 뒤 이어지는 봉우리들
브루크너의 세계가 마음에 들었다면, 그의 발자취 앞뒤로 이어지는 교향곡들을 같이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를 키운 거인과, 그가 키운 다음 세대, 그리고 빈에서 맞붙은 라이벌까지 한 줄로 이어집니다.
-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 브루크너가 평생 우러러본 교향곡의 원형
- 브람스 교향곡 제1번 — 같은 시기 빈에서 브루크너와 대립한 절대음악 진영의 답
-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 — 브루크너의 영향을 받은 다음 세대의 첫 교향곡
- 슈베르트 교향곡 제9번 ‘그레이트’ — 브루크너 이전, 천국적 길이를 먼저 실험한 선배
- 교향곡 입문 가이드 — 교향곡이라는 형식 자체가 처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