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가 박수를 강요한 가짜 피날레 — 비창이 ‘슬픈 곡’이라는 130년의 오해

박수 트랩과 130년의 오역

작곡가
차이콥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곡명
교향곡 6번 b단조 Op.74 ‘비창’
작곡 시기
1893년 2월~8월
악장
4악장

I. Adagio – Allegro non troppo (b단조)
II. Allegro con grazia (D장조)
III. Allegro molto vivace (G장조)
IV. Finale: Adagio lamentoso (b단조)

1악장. 느리게 – 빠르지 않은 알레그로
2악장. 우아한 알레그로
3악장. 활기찬 알레그로
4악장. 피날레: 비탄에 잠긴 아다지오

편성
플루트 3,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튜바 · 팀파니, 베이스드럼, 심벌즈, 탐탐 · 현 5부
초연
1893년 10월 28일 (구력 10월 1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귀족회관
지휘: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작곡가 본인)
헌정
블라디미르 ‘봅’ 다비도프 (작곡가의 조카, 22세)
연주 시간
약 45~50분

이 곡은 — 3악장이 finale처럼 끝나 박수가 터지지만, 진짜 마지막은 비탄에 잠긴 느린 4악장입니다. 차이콥스키가 130년 전에 짜놓은 박수 함정.

딱 하나만 듣는다면 — 1악장 16분 지점 클라이맥스에 적힌 ‘morendo(죽어가듯)’, 그리고 4악장 마지막 베이스의 ppp가 꺼지는 1~2초.

대표 명반 — 무라빈스키 · 레닌그라드 필 (1960, DG). 콘트라바순을 거부하고 바순으로 부른 정통.

오늘 밤 카네기홀 무대에 ‘비창’이 오릅니다. 그리고 3악장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죠. 거의 매번, 짜기라도 한 것처럼 벌어지는 일입니다.

놀랍게도 이 박수는 차이콥스키가 130년 전에 정확히 의도해서 짜놓은 함정입니다. 비창은 마냥 슬프기만 한 곡이 아니라, 청중을 기막히게 속여 넘기는 곡이거든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초상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 비창은 그가 죽기 9개월 전에 완성한 마지막 교향곡입니다.

박수 트랩의 설계도

비창은 분명 4악장짜리 교향곡인데, 3악장이 마치 피날레(finale)처럼 끝을 맺습니다. 아주 빠른 행진곡으로 몰아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셈여림이 무섭게 커지고, 마지막 30마디에 이르면 모든 악기가 ‘ff’로 맹렬하게 폭발하며 종결되죠. 어느 모로 보나 교향곡 한 곡이 화려하게 막을 내리는 완벽한 모양새입니다.

문제는 방금 끝난 그 웅장한 연주가 4악장이 아니라 3악장이라는 점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진짜 마지막 악장을 ‘비탄에 잠긴 아주 느린 악장’, 즉 아다지오 라멘토소(Adagio lamentoso)로 뚝 떨어뜨려 배치했습니다. 빠르고 화려한 피날레 뒤에 따라오는 느리고 무거운 끝맺음. 19세기 교향곡의 표준 패턴을 그야말로 정반대로 뒤집어버린 파격적인 구조죠.

이 기막힌 엇박자가 다분히 의도된 함정이었다는 증거는 다름 아닌 차이콥스키 본인의 편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는 친구 알렉세이 소프로노프에게 미리 이렇게 쐐기를 박아두었거든요. ‘청중이 박수 칠 줄 알았다.’

Play: 비창 교향곡 — 악보 따라가기 (3악장 마지막 30마디 포함) Play: 비창 3악장 — 박수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라이브

1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정교한 트랩은 여지없이 작동합니다. BBC Proms든, 카네기홀이든, 베를린 필하모니든, 3악장이 끝나는 순간 와르르 박수가 터지는 풍경은 비창 콘서트의 얄궂은 통과의례와도 같습니다. 한 명이 시작하면 옆자리도 따라가고, 결국 절반은 손뼉을 치고 절반은 멈칫하는 그 어색한 장면, 한 번쯤 본 적 있을 겁니다. 이럴 때 지휘자는 보통 양손으로 조용히 해달라는 ‘쉿’ 동작을 취하죠.

이것은 결코 작곡가의 단순한 계산 착오가 아닙니다. 차이콥스키가 일부러 파놓은 함정인 데다가, 이 함정의 진짜 목적은 바로 다음 4악장에 숨어 있거든요. 객석에서 박수가 터진 그 순간, 청중의 긴장은 이미 스르르 풀려 있죠. 모두가 이제 다 끝났다고 푹 안심한 바로 그 직후, 차이콥스키는 자신이 작곡한 가장 무거운 음악을 툭 던져 넣습니다.

Pathétique 오역 — 100년짜리 번역 사고

사실 이 곡은 제목 자체부터 거대한 오해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비창(悲愴)’이라는 이름은 한국어 번역인데, 원어를 직접 옮긴 게 아니라 일본어 중역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거든요. 그 험난한 번역의 경로는 러시아어에서 출발해 무려 두 다리를 더 건넌 뒤에야 한국에 도착합니다.

러시아어 원제는 ‘Патетическая(Pateticheskaya)’입니다.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어 ‘πάθος(파토스)’에 닿죠. 본래 뜻은 ‘격정적인’ 혹은 ‘강한 감정에 차 있는’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 안에 슬픔이 한 갈래로 섞여 있을 수는 있어도, 단순히 ‘슬픈 곡’이라고 뭉뚱그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이 단어가 프랑스어 ‘pathétique’로 넘어갈 때까지만 해도 본래의 격정적인 의미는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영어로 넘어가 ‘pathetic’이 되자 상황이 묘해지죠. 영어에서 이 단어는 ‘한심한’, ‘처량한’이라는 뜻으로 변질되어 있거든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영어권 클래식계는 프랑스어 표기를 쏙 뽑아다 그대로 쓴 덕분에 본래의 어원을 무사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어로 넘어가면서 치명적인 분기가 일어납니다. ‘Pathétique’를 ‘悲愴(ひそう, 히소)’로 옮겼는데, 한자 뜻을 곧이곧대로 풀면 그저 ‘슬프고 비통하다’는 의미에 갇혀버리죠. 그리고 한국어는 이 일본어 번역어를 곧장 수입해 ‘비창’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어에서 영어, 다시 일본어를 거쳐 한국어로 넘어온, 기막힌 4단계 번역 사고인 셈입니다.

얄궂게도 똑같은 단어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에도 붙어 있습니다. 베토벤의 ‘Pathétique’ 역시 한국어로는 꼼짝없이 ‘비창’으로 번역되죠. 두 곡 모두 어원은 같은데, 한국어 번역은 이 둘을 약속이라도 한 듯 ‘슬픔’ 쪽으로 강제 이동시켜 버렸습니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이 이 상황을 두고 ‘세기의 오역(mistranslation of the century)’이라고 꼬집어 부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헌정자 봅 다비도프 — 비창이라는 편지

한편, 이 곡의 헌정란을 들여다보면 이런 이름이 조용히 적혀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К Владимиру Давыдову).’ 유독 한국어권의 비창 관련 글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 낯선 이름이죠. 그는 차이콥스키 누나 알렉산드라의 아들, 즉 작곡가의 조카입니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은 그를 친근하게 ‘봅(Bob)’이라고 불렀습니다.

1893년 비창 헌정 당시 봅은 22세, 차이콥스키는 53세였습니다. 작곡가는 말년의 거의 모든 편지를 이 조카에게 보냈고 여행 중에도 가장 자주 찾아가는 상대였죠. 학자들은 이 관계의 성격을 두고 오랜 시간 신중하게 논의해 왔습니다. 알렉산더 포즈난스키 같은 차이콥스키 전기 작가는 수백 통에 달하는 편지와 일기 등 1차 사료를 토대로 작곡가가 봅에게 단순한 가족애 이상의 깊은 감정을 품었다고 정리하거든요.

차이콥스키와 조카 봅 다비도프
차이콥스키와 조카 봅 다비도프. 비창은 이 청년 한 사람에게 헌정된 곡입니다.

1893년 2월 11일 차이콥스키가 봅에게 보낸 편지가 결정적입니다. ‘이번 새 교향곡에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비밀에 부치겠다. 알고 싶으면 알아내 보라(let him guess who can).’ 비창을 한창 작업하던 중에 이런 편지를 쓴 겁니다. 이 ‘비밀 프로그램’은 결국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죠. 작곡가가 이 비밀을 오직 봅에게만 들려주려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봅의 끝맺음도 비창과 묘하게 겹칩니다. 차이콥스키 사후 13년인 1906년 봅은 모르핀 과다복용으로 자살했습니다. 35세였죠. 차이콥스키가 남긴 가장 거대한 유산은 물론 음악이지만 비창은 한 사람을 향해 쓰인 기록이기도 합니다. 유독 한국어권의 비창 관련 글에서는 이 사실이 통째로 빠져 있거든요. 한 번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입니다.

초연 폭망 — 죽음이 만든 명곡

비창 신화를 둘러싼 가장 큰 거짓말은 ‘천재의 마지막 명작이 청중에게 단번에 인정받았다’는 극적인 서사입니다. 실제 현실은 완벽하게 정반대였죠.

1893년 10월 28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귀족회관에서 차이콥스키 본인의 지휘로 진행된 비창 초연은 몹시 미지근한 반응으로 끝났습니다. 객석의 박수는 그저 의례적이었고 비평가들조차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였죠. 작곡가 본인이 동생 모데스트에게 ‘청중이 작품의 깊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고 적었을 정도입니다.

9일 뒤 차이콥스키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11월 18일 같은 곡이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작곡가의 추모 연주회였고 에두아르트 나프라브니크로 지휘자도 바뀌어 있었죠. 그제서야 청중의 반응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비평가들 역시 ‘당대 최고의 작품’이라며 태도를 바꿔 격찬을 쏟아냈습니다.

에두아르트 나프라브니크 초상
에두아르트 나프라브니크. 작곡가가 죽은 뒤 열린 11월 18일 추모 연주회에서 비창을 지휘했습니다. 청중이 비로소 뜨겁게 반응한 무대였습니다.

여기서 사건의 인과를 정확히 짚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비창을 대단한 명곡으로 알아보고 차이콥스키를 추모한 게 아닙니다. 차이콥스키가 죽었기 때문에 비창이 비로소 명곡처럼 들리기 시작한 겁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일기에 이렇게 적어두었죠. ‘초연 때는 뭔가 새롭고 이상한, 그런데 무엇인지 모를 것이었다. 며칠 뒤 작곡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이제 알 것 같다.’

‘곡이 죽음을 예언했다’는 흔해 빠진 서사는 인과의 방향이 완전히 뒤집혀 있습니다. 비창이 작곡가의 죽음을 예언한 게 아니라 작곡가의 죽음이 비창에 비장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거든요. 작품의 절대적인 가치가 청중을 단번에 굴복시켰다기보다는 작곡가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이 청중의 손에 일종의 청취 매뉴얼을 쥐여준 셈입니다.

끝날 줄 모르는 죽음 미스터리

차이콥스키의 죽음을 다루는 한국어 글은 으레 ‘미스터리하다, 자살설이 있다, 콜레라설도 있다, 어쨌든 알 수 없다’는 식의 흐릿한 결론에서 멈춰 섭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이 논쟁이 1990년대에 이미 어느 정도 정리됐음에도 한국어 글은 유독 이 대목을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그중 ‘명예 법정설’은 1979년 알렉산드라 오를로바가 미국으로 망명한 뒤 발표한 가설입니다. 차이콥스키와 한 귀족 청년의 관계가 발각되자 옛 법학교 동창들이 비공식 ‘명예 법정’을 열어 그에게 자살을 강요했다는 극적인 시나리오죠. 한국에는 이 가설이 90년대 후반 주류 언론을 타고 들어오면서 한동안 정설처럼 굴러다녔습니다.

하지만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1996년에 펴낸 알렉산더 포즈난스키의 ‘Tchaikovsky’s Last Days’가 이 가설을 1차 사료로 정면에서 반박했습니다. 사망 직전의 진료 기록과 가족의 편지, 심지어 같은 시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콜레라 유행 통계까지 모조리 끌어왔죠. 그의 결론은 확고한 콜레라설입니다. 차이콥스키는 그저 끓이지 않은 물 한 잔을 마셨고 그로부터 4일 만에 사망했다는 겁니다.

가십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모데스트와 글라주노프 두 사람 모두 그 ‘문제의 물 한 잔’을 증언하긴 했지만, 정작 물을 마신 장소는 다르게 적어두었거든요(레이너 식당 대 자택). 이 미묘한 어긋남이 음모론자들에게는 최후의 보루로 쓰이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그 시대 증언이 지닐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여주는 지극히 정상적인 차이일 뿐이죠. 어느 한쪽이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악장마다 다른 얼굴 — 1악장부터 4악장까지

1악장 — B♭1 한 음에서 시작하는 교향곡

막이 오르고 울려 퍼지는 첫 음. 콘트라베이스의 ‘ppp’ 위로 바순이 홀연히 단독으로 등장합니다. 이때 내는 음 하나는 B♭1으로, 프로페셔널 바순이 낼 수 있는 거의 최저 음역에 해당하죠. 차이콥스키는 악보에 ‘ppppp’라고 적어두었습니다. p가 무려 다섯 개. ‘거의 들리지 않게’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 악보 따라가기: 1악장 바순 솔로 (마디 1–19)

오늘날의 연주에서는 대부분 콘트라바순이 이 자리를 대신합니다. 음역대가 워낙 낮은 데다 ‘ppppp’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가 몹시 까다롭기 때문이죠. 하지만 무라빈스키는 평생 이 관행을 거부하고 바순을 고집했습니다. 1960년에 남긴 DG 녹음을 들어보면 그 차이가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콘트라바순의 소리보다 훨씬 더 사람의 호흡에 가깝게 들리거든요.

이 악장에는 유독 러시아인들에게만 꽂히던 은밀한 코드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발전부 후반, 호른이 짧게 스쳐 지나가는 패시지가 등장하는데요. 이것이 바로 러시아 정교회 진혼곡인 ‘Со святыми упокой(성인들과 더불어 안식하소서)’를 살짝 비틀어 인용한 대목입니다. 음악학자 마리나 프롤로바-워커가 이를 학술적으로 입증해 냈죠. 한국의 청취자에게는 그저 구슬픈 호른 소리일 뿐이지만, 모스크바의 청취자에게는 장례식장의 바로 그 익숙한 선율인 셈입니다.

🎼 악보 따라가기: 1악장 발전부 호른 패시지

16분 지점에 다다르면 발전부의 가장 격렬한 클라이맥스가 터져 나옵니다. 그런데 차이콥스키의 자필 악보를 보면 이 대목에 ‘morendo(죽어가듯)’라고 떡하니 적혀 있습니다. 폭발하는 클라이맥스에 ‘morendo’를 지시하는 작곡가는 결코 흔치 않죠. 더 묘한 건 바로 그다음입니다. 재현부로 넘어오면서 1주제가 등장하는데, 처음의 그 한없이 우울하던 자세가 아닙니다. 마치 한 번 죽음의 문턱을 넘어 돌아온 자가 지어 보이는 체념 섞인 미소 같거든요. 음악학자 티모시 잭슨은 이런 독특한 구조를 가리켜 ‘죽음 후 영혼의 회상’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2악장 — 1893년의 스트라빈스키, 5/4박자 절뚝거리는 왈츠

박자 기호는 5/4. 한 마디 안에 4분음표가 다섯 개 들어갑니다. 만약 무용수가 이 곡에 맞춰 춤을 추려 한다면, 스텝을 밟을 때마다 한 박이 어중간하게 남거나 모자라게 되죠. 클래식 역사상 주요 교향곡 가운데 5/4박자로 악장 하나를 통째로 밀어붙인 첫 사례가 바로 이 비창입니다. 1893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이런 과감한 선택은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악보 따라가기: 2악장 첼로 주제 (마디 1–8)

흔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1913)이 서양 음악사에서 박자 혁명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 비창의 5/4박자 왈츠가 그보다 정확히 20년이나 빠릅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호반시치나’에 5/4박자가 쓰인 합창 대목이 등장하긴 했어도, 교향곡의 악장 전체를 이 박자로 채운 것은 비창이 최초로 알려져 있거든요.

그래서 이 악장에는 ‘춤출 수 없는 왈츠’라는 별명이 심심치 않게 따라붙습니다. 차이콥스키는 청중이 마음 편히 박자를 세지 못하게, 발걸음이 자꾸만 미세하게 어긋나도록 판을 짰거든요. ‘아름다운데 어딘가 불편한’ 그 기묘한 감각을 정밀하게 노린 겁니다. 첼로가 연주하는 주제 선율 자체는 따라 부르기 참 좋은데, 박자가 매번 그 흐름을 얄궂게 비틀어버리죠.

3악장 — 박수 트랩의 음악적 정체

3악장은 그 구조 자체가 거대한 박수 트랩의 본체입니다. 첫 주제는 가벼운 스케르초로 시작하지만, 두 번째 주제부터는 본격적인 행진곡 분위기로 돌진하거든요.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이 행진곡이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를 맹렬하게 끌어들이고, 결국 마지막 30마디에 이르러서는 ‘ff’의 폭발적인 에너지로 끝을 맺습니다.

음악적으로 진짜 피날레(finale)의 무거운 질감을 고스란히 의도한 종결부입니다. 그러니 객석의 박수는 청중이 어리숙하게 속아 넘어가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차이콥스키가 정교하게 직조한 음악에 가장 정직하게 반응한 결과라고 봐야 하죠. 박수가 쏟아지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이 악장이 자신의 몫을 완벽하게 다해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니까요.

4악장 — Adagio lamentoso, 교향곡 역사를 바꾼 한 악장

쏟아지던 박수가 스르르 잦아들면, 드디어 4악장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청중은 곧 깨닫게 되죠. 이 곡이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요. 빠른 피날레(finale) 대신 등장하는 느린 피날레. ‘아다지오 라멘토소(Adagio lamentoso)’ — ‘비탄에 잠긴 아주 느리게’입니다.

사실 이 단어는 러시아 정교회 장례 전례에서 음악으로 고스란히 빌려온 표현입니다. 모스크바 청취자에게는 1악장 발전부 호른이 끌어왔던 정교회 진혼곡 인용과 맞물려, 4악장의 표제 자체가 두 번째 죽음의 신호로 들리는 셈이죠. 요컨대 작곡가가 4악장의 음악적 성격을 단순히 ‘슬프게’라고 지시한 게 아니라, 아예 ‘장례 전례처럼’이라고 박아 놓은 겁니다.

🎼 악보 따라가기: 4악장 interlocking 주제 (마디 1–20)

악보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또 하나 기이한 점이 눈에 띕니다. 4악장의 첫 주제가 두 바이올린 파트에 교차로 흩어져 기보되어 있거든요. 1바이올린이 음 하나를 내면, 2바이올린이 다음 음을 받고, 다시 1바이올린이 이어가는 식입니다. 청자는 그저 하나의 매끄러운 멜로디로 듣게 되지만, 실상 그 멜로디는 온전히 누가 부르고 있는 게 아닙니다. 두 파트 사이에 부유하는 유령 같은 선율이죠. 흔히 이걸 가리켜 ‘인터로킹(interlocking) 기보’라 부릅니다.

교향곡 한 곡을 이토록 느린 악장으로 끝맺는 일은 비창이 처음이었습니다. 베토벤도, 브람스도, 브루크너도 모두 빠른 피날레를 썼으니까요. 비창 4악장을 기점으로 교향곡의 역사 자체가 갈라집니다. 말러는 비창 악보를 자신의 교향곡 9번 작곡 직전에 연구했고, 그 9번 역시 느린 피날레로 끝을 맺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4번과 15번도 바로 이 같은 가지에서 뻗어 자란 결과물이거든요. 이 단 하나의 악장이 이후 100년간 교향곡이 끝맺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셈입니다.

이윽고 마지막 마디. 콘트라베이스의 ‘ppp’가 아득히 사라집니다. 단호하게 끝난다기보다는 스르르 불씨가 꺼지는 식에 가깝죠. 이 ‘ppp’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1~2초의 찰나야말로, 비창에서 가장 깊고 서늘한 자리입니다.

모데스트가 만든 차이콥스키

사실 비창이 획득한 그 절대적인 권위를 차이콥스키 본인 혼자 다 쌓아 올린 것은 아닙니다. 동생 모데스트 차이콥스키의 손길이 곡 곳곳에 짙게 묻어 있거든요.

동생 모데스트 차이콥스키
동생 모데스트 차이콥스키. ‘비창’이라는 이름도, 형의 공식 전기도 그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우선 곡 제목인 ‘Патетическая(파테티체스카야)’부터가 모데스트가 초연 다음 날인 1893년 10월 29일에 슬쩍 제안한 이름입니다. 차이콥스키 본인은 처음에 거절했다가 나중에야 이를 받아들였죠. 즉 우리가 오늘날 ‘비창’이라 부르는 이 거대한 곡은, 실은 형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동생이 새로 붙여준 이름표를 단 채 우리에게 남겨진 것입니다.

차이콥스키 사후에 공식 전기를 쓴 사람도 다름 아닌 모데스트였습니다. 1900년부터 1902년 사이 출간된 ‘The Life and Letters of Peter Ilich Tchaikovsky’ 두 권이 그것이죠. 모데스트는 이 과정에서 형의 동성애와 관련된 자료를 철저하게 검열했습니다. 본인 역시 동성애자였던 데다 형이 가장 마음을 터놓고 의지하던 상대였기에, 역설적으로 누구보다 그 자료들의 정체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심지어 림스키-코르사코프 자서전의 1923년 소비에트 출판본에서는 차이콥스키의 죽음을 언급한 부분이 아예 통째로 검열되어 날아가 있습니다. 이 대목은 1981년에야 비로소 러시아 원본으로 완전하게 복원되었죠. 요컨대 오롯한 ‘작곡가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동생이 후처리하고, 나아가 100년 동안 검열관들이 깎고 다듬어 온 작품’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비창의 다음 100년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도였던 비창

‘비창은 차이콥스키가 애초부터 마지막 교향곡으로 작정하고 쓴 비장한 작품이다.’ 이 또한 사람들이 쉽게 믿는 흔한 신화 중 하나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한 번 처참하게 실패한 뒤 덤벼든 두 번째 도전이었거든요.

차이콥스키는 1892년부터 ‘E♭장조 교향곡’을 쓰고 있었습니다. 원래라면 지금의 교향곡 6번 자리에 떡하니 들어갈 예정이던 그 곡을, 그는 작곡 도중에 매몰차게 폐기해 버렸습니다. 만족스럽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죠. 다행히 폐기된 자료의 일부가 사후에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전혀 다른 작품으로 부활하긴 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3번’ Op.75와 ‘Andante and Finale’ Op.79가 바로 그 예상치 못한 결과물입니다.

1893년 2월 차이콥스키는 새 교향곡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6개월 만에 완성한 곡이 비창이고, 9개월 만에 본인이 세상을 떠났죠. 즉 비창은 운명적으로 안배된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 한 번 실패를 맛본 작곡가가 다시 책상에 앉아 6개월 만에 치열하게 빚어낸 두 번째 시도일 뿐입니다.

이 곡을 들어야 할 이유

‘슬프니까 한 번 들어보세요’라는 말은 명백히 잘못된 권유입니다. 앞서 보았듯 비창은 단순히 슬픈 곡이 아니거든요. 이 곡을 들어야 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첫째, 작곡가가 청중을 향해 파놓은 함정이 130년이 지난 후에도 고스란히 작동하는 걸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악장이 끝날 때 옆자리 사람이 박수를 치는지 안 치는지 가만히 살펴보는 겁니다. 만약 박수를 친다면 차이콥스키가 정교하게 짠 트랩에 또 한 명이 걸려든 셈이죠.

둘째, 1악장 16분 지점의 ‘morendo’ 표시와 4악장 마지막 ppp 베이스가 아득히 사라지는 그 1~2초 때문입니다. 작곡가가 자기 죽음 9개월 전에 던진 마지막 패의 정확한 좌표가 바로 이 두 지점에 찍혀 있거든요. 다른 어떤 곡에서도 결코 들을 수 없는 서늘한 단독 좌표입니다.

추천 연주 영상

흥미롭게도 비창은 4악장의 연주 시간이 지휘자마다 극단적으로 널뛰는 드문 곡입니다. 똑같은 악보를 보고 똑같은 마디 수를 연주하는데 누구는 8분 30초, 누구는 11분, 누구는 18분에 끝맺거든요. 결국 한 곡 안에서 완전히 결이 다른 죽음을 세 번 듣는다는 뜻입니다.

Mravinsky / 레닌그라드 필 / 1960 (DG)

4악장 약 11분. 무라빈스키 앞에서는 어쩐 일인지 그 흔한 박수 트랩이 잘 터지지 않습니다. 해석은 정통 그 자체죠. 1악장 도입부에서 콘트라바순 대체를 거부한 바순 소리와 발전부의 정교회 진혼곡 인용이 가장 또렷하고 무겁게 들리는 녹음입니다. 소비에트 시대 특유의 육중한 무게가 곡 전체를 짓누르는데, 이 짓눌림을 비창의 유일한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도 이 음반이 가장 강하게 자기 해석을 주장하는 한 장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Play: 무라빈스키 / 레닌그라드 필 (1960)

Bernstein / 뉴욕필 / 1986 (DG)

4악장 약 18분. 역대 최장 기록이며 지휘자 본인이 사망하기 4년 전에 남긴 녹음입니다. 클래식 잡지 ‘Gramophone’ 1987년 1월호에 두 명의 평론가가 정반대의 평을 나란히 실은 것으로도 유명하죠. 한쪽은 ‘자기 죽음을 미리 우는 자기 연민’이라 깎아내렸고 다른 쪽은 ‘비창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자리’라고 평했습니다. 양쪽의 말이 다 옳다는 게 이 음반의 진짜 무서움입니다. 비창을 평생 딱 한 번만 듣는다면 이 18분짜리가 훨씬 오래 남습니다.

Play: 번스타인 / 뉴욕 필 (1986, DG)

Currentzis / MusicAeterna / 2017 (Sony)

4악장 8분 30초. 그야말로 21세기의 도발입니다. 시대악기의 영향으로 템포는 바짝 빨라졌고 셈여림의 격차는 극단적으로 벌어졌습니다. 노먼 르브레흐트는 이를 두고 ‘비창 신성모독’이라 칭했고 알렉스 로스는 ‘New Yorker’에서 ’21세기의 비창 표준’이라고 선언했거든요. 똑같은 한 곡을 두고 비평가들의 잣대가 신성모독과 표준 사이를 동시에 오가는 일은 결코 흔치 않은 풍경입니다.

Play: 쿠렌치스 / 무지카에테르나 (2017, Sony)

4악장 시간으로 깔끔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Currentzis 8분 30초, Mravinsky 11분, Bernstein 18분. 분명 같은 마디 수에 같은 음표를 연주하는데도 가장 짧은 연주와 가장 긴 연주가 두 배 넘게 차이가 나죠. 이 셋을 한 번씩 찬찬히 들어보고 그중 다시 듣고 싶은 한 장을 본인만의 정답으로 삼으면 그만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비창은 악보를 직접 따라가며 듣는 보람이 꽤 쏠쏠한 곡입니다. 1악장 첫 19마디 바순 솔로의 ‘ppppp’가 악보에 정확히 어떻게 적혀 있는지, 2악장의 5/4박자가 한 마디 안에 어떻게 다섯 박을 욱여넣는지, 4악장 첫 20마디의 두 바이올린 파트 interlocking 기보가 종이 위에서 얼마나 기이해 보이는지. 눈으로 직접 짚어가며 보면 귀에 꽂히는 소리 자체가 확 달라지거든요.

Play: 비창 교향곡 — 악보 따라가기 (전체)

오케스트라 풀스코어와 피아노 네 손 편곡 악보 모두 IMSLP에 무료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1894년 P. Jurgenson 모스크바 초판 팩시밀리도 통째로 내려받아 볼 수 있고, 차이콥스키 본인이 제자인 세르게이 타네예프와 함께 엮은 피아노 네 손 편곡 악보도 그곳에 나란히 올라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비창은 정말 차이콥스키의 자살 유서인가요?

학계 다수설은 콜레라설입니다. 1979년 알렉산드라 오를로바의 ‘명예 법정설’이 한국에 90년대 후반 강하게 들어와 정설처럼 통용됐지만, 1996년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펴낸 알렉산더 포즈난스키의 ‘Tchaikovsky’s Last Days’가 1차 사료를 토대로 이 가설을 정면 반박했습니다. 비창을 자살 유서가 아니라 조카 봅 다비도프에게 헌정된 작품으로 보는 쪽이 학계 근거에 더 맞습니다. 다만 작곡가의 죽음이 작품의 청취 매뉴얼을 다시 짠 사실 자체는 부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3악장 끝나고 박수 쳐도 되나요?

차이콥스키는 박수를 예상하고 3악장을 finale처럼 설계했습니다. 다만 이 곡은 박수를 유도하면서도, 그 박수에 안심하지 못하게 만든 곡이기도 합니다. 4악장의 무게가 박수의 분위기와 정면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콘서트홀의 매너는 4악장이 시작되기까지 침묵을 권합니다. 단, 옆자리에서 박수가 터졌다고 그 사람이 무지한 게 아니라 차이콥스키의 함정에 의도된 대로 빠진 것뿐이니, 너그럽게 봐주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베토벤 비창 소나타와 차이콥스키 비창은 같은 단어인가요?

같은 단어이고, 같은 어원입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의 ‘Pathétique’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의 ‘Pateticheskaya’ 모두 그리스어 πάθος(파토스)에서 나왔습니다. 본 의미는 ‘격정적인, 강한 감정에 차 있는’에 가깝지 ‘슬픈’이 아닙니다. 한국어 번역 ‘비창’은 일본어 중역(悲愴)을 거쳐 의미가 슬픔 쪽으로 강제 이동된 결과입니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이걸 ‘세기의 오역(mistranslation of the century)’이라 부른 바 있습니다.

비창 첫 음반으로 어떤 녹음을 들어야 할까요?

입문은 무라빈스키 1960년 DG 녹음(레닌그라드 필)이 정통의 무게를 가장 똑바로 보여줍니다. 깊이 들어가고 싶다면 번스타인 1986년 DG 녹음(뉴욕필) 4악장 18분이 자기 죽음의 예감을 듣는 보람이 큽니다. 21세기 도발이 궁금하다면 쿠렌치스 2017년 Sony 녹음(MusicAeterna)의 4악장 8분 30초가 정반대 좌표를 잡아줍니다. 셋을 한 번씩 듣고, 다시 듣고 싶은 한 장을 본인의 정답으로 삼아도 됩니다.

왜 4악장이 빠르지 않고 느리게 끝나나요?

19세기 교향곡은 대개 빠른 finale로 끝맺었습니다. 베토벤, 슈만, 브람스 모두 이 틀 안에 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비창에서 일부러 이 틀을 깼고, 4악장에 ‘Adagio lamentoso(비탄에 잠긴 아주 느리게)’를 배치했습니다. 이 구조가 후에 말러 9번(1909), 쇼스타코비치 4번과 15번에 직접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향곡 역사가 비창 4악장 이후로 갈라진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차이콥스키와 비창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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