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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월광’ Op.27 No.2
달빛이라는 이름은 베토벤이 붙인 게 아닙니다
악보에는 단 한 마디도 달빛이 없습니다. “환상곡 풍으로(Quasi una fantasia)”라고 적혀 있을 뿐이지요. 1832년, 평론가 렐슈타프가 1악장에서 “루체른 호수 위의 달빛”을 들었다고 한 줄 썼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200년이 지난 지금, 작곡가가 붙인 부제목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평론가의 비유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렇다면 베토벤은 이 곡에 무엇을 담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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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상스 – 교향곡 제3번 c단조 ‘오르간’, Op.78
스스로 '마지막'을 선언하고 35년간 지킨 교향곡
마들렌 교회 수석 오르가니스트로 19년을 버텨온 생상스는 오르간의 가능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무기를 교향곡 한복판에 꺼내든 건 51세, 단 7개월 만에 완성한 뒤였습니다. 영국 왕립 필하모닉이 다음 곡을 조르자 단칼에 거절했고,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말 그대로 35년간 교향곡 붓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 무엇을 넣었기에 그런 확신이 생겼는지, 들어보시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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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불면증 처방으로 받은 변주곡이 음악사를 뒤집은 방식
카이저링 백작이 불면증에 시달리다 바흐에게 수면 음악을 주문했다는 이야기는 낭만적입니다. 그런데 초판 악보에는 헌정 문구가 없습니다. 백작 이야기는 바흐 사후 52년 뒤에야 처음 등장한 전설입니다. 정작 이 곡이 세상을 뒤집은 건 1955년, 23세의 글렌 굴드가 데뷔 음반으로 이 “지루한 수면제”를 골랐을 때입니다. 그 선택이 왜 클래식 역사를 바꿨는지 알면, 이 변주곡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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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 교향곡 제9번 C장조 D.944 ‘더 그레이트’
슈베르트가 끝내 못 들은 채 남긴 60분
1826년 가을, 오스트리아 빈의 한 음악협회(게젤샤프트 데어 무지크프로인데)가 프란츠 슈베르트에게 보낸 일종의 ‘입구컷’ 통보입니다. 슈베르트는 갓 완성한 교향곡 악보를 이 협회에 바쳤고 소정의 사례금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연주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협회 산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악보를 몇 번 훑어보더니 “이건 도저히 우리 수준이 아니다”라며 서랍 속에 처박아버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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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 – 교향곡 제8번 G장조 Op.88
두 달 반 만에 쏟아낸 36분짜리 보헤미아
속도가 빠르면 어딘가 허술하기 마련인데, 이 곡은 달랐습니다. 심지어 당대 최고의 ‘완벽주의자’로 불리던 브람스가 이 악보를 처음 보고는 배가 아파서 이렇게 탄식했을 정도지요. “아, 이걸 내가 먼저 썼어야 했는데!” 자신의 작품조차 맘에 안 들면 벽난로에 던져버리던 브람스의 입에서 나온, 최고 수준의 찬사였습니다. 드보르작 교향곡 8번, 보헤미아의 자연이 빚어낸 걸작의 비밀을 파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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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 – 교향곡 제2번 D장조, Op.43
이탈리아 햇살 아래 태어나 핀란드 민족혼의 절규가 된 교향곡
1900년 가을, 시벨리우스는 자금도, 영감도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건 가난한 남작이 보낸 편지 한 통이었죠. “이탈리아로 가시오.” 그렇게 지중해 햇살 아래서 쓴 음악이, 1902년 헬싱키에서 사람들을 울렸습니다. 러시아 압제에 숨죽이던 핀란드인들은 4악장의 거대한 D장조 피날레에서 아직 오지 않은 독립을 미리 들었습니다. 이 음악이 왜 아직도 세계 무대에서 연주되는지, 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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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 – 교향곡 제5번 E♭장조, Op.82
박수 속에서도 4년을 더 뜯어고친 이유
1915년 12월 8일, 핀란드는 한 작곡가의 생일을 국경일로 지정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시벨리우스는 신작 교향곡 5번을 직접 지휘했고, 청중은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벨리우스는 그날로부터 4년 동안 이 곡을 두 번 더 뜯어고쳤습니다. 박수가 기준이 아니었던 겁니다. 세 개의 판본 중 오늘 우리가 듣는 버전, 그리고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여섯 개의 화음이 왜 탄생했는지 — 그 이야기가 이 교향곡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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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 – 사계 Op.8 No.1-4
200년간 창고에 묻혀 있던 국민 클래식
엘리베이터, 피자 광고, 웨딩홀 BGM.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이 멜로디가 무려 200년간 먼지 속에 파묻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1741년 비발디가 쓸쓸히 세상을 떠난 뒤, 악보는 헐값에 귀족의 창고로 팔려 나갔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이 걸작을 세상이 되찾은 건 무려 1927년의 일이었습니다. 두 번 죽었다가 두 번 부활한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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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5번 d단조 Op.47
목숨 걸고 독재자를 속인 교향곡
1937년, 스탈린의 비밀경찰이 쇼스타코비치를 끌려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그의 음악을 혼돈이라고 공개 저격한 지 불과 1년 뒤였지요. 절친했던 친구들은 이미 총살당했고, 장인은 수용소로 끌려간 상태였습니다. 그런 공포 속에서 그가 단 석 달 만에 써낸 교향곡. 겉은 충성 맹세, 속은 독재를 향한 통렬한 조소였지요. 과연 그 안에 어떤 암호를 숨겨 놓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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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0번 e단조, Op.93
독재자가 죽은 해 여름, 자기 이름을 음표로 새긴 결과
1953년 3월 스탈린이 죽었습니다. 17년간 체포를 기다리며 살았던 쇼스타코비치는 그해 여름 교향곡을 꺼냈습니다. 8년 만의 교향곡이었죠. 그런데 이 곡 안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독재자의 “음악적 초상”이라는 논쟁적 주장, 제자 이름을 음표로 숨겨놓은 암호, 그리고 자기 이름을 네 개 음표로 변환해 전체 교향곡에 새겨놓은 서명. 이걸 알고 들으면, 이 50분짜리 음악이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