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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교향곡 제38번 D장조 ‘프라하’ K.504
빈에 외면받은 모차르트, 프라하가 불러낸 교향곡
1787년 1월, 모차르트는 빈이 아닌 프라하로 향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이 빈에서는 6회 만에 막을 내렸지만, 프라하에서는 도시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었거든요. 그 환호에 이끌려 방문한 모차르트가 현지 초연을 위해 들고 간 것이 바로 이 교향곡 38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열기가 식기도 전에, 프라하 극장 감독은 새 오페라를 의뢰했습니다. 그 오페라가 《돈 조반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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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 재즈 모음곡 2번 — 왈츠
잘못된 이름표를 달고 세계를 정복한 왈츠
귓가에 나른하게 감기는 색소폰의 선율, 뒤이어 펼쳐지는 현악기의 풍성한 화음.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중 ‘왈츠 2번’은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은 사람은 없을 정도죠. 영화, 광고, 아이스쇼, 심지어는 휴대폰 벨소리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그 관능적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깃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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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 – 현악 사중주 Op.20 No.5 ‘태양’
마흔 살의 하이든이 푸가를 꺼내든 이유
1772년 에스테르하자 궁정. 빈에서 150킬로 떨어진 헝가리 습지, 하이든은 여섯 곡의 현악 사중주를 완성했습니다. 그 중 세 곡은 마지막 악장을 론도도 알레그로도 아닌, 바흐 시대의 푸가로 끝냈습니다. 당시로선 이미 구식이라 여기던 형식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No.5는 처음부터 끝까지 f단조로 마칩니다. ‘태양 사중주’ 세트에서 유일하게 빛이 없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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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 – 어미 거위 모음곡
라벨이 사랑한 두 아이, 정작 무대에 서지 못한 사연
1910년 초연 무대에 선 건 열한 살과 열네 살 소녀였습니다. 라벨이 이 음악을 바친 두 아이, 미미와 장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피아노 이중주로 시작해 오케스트라로 다시 태어나고, 발레로까지 확장된 이 모음곡이 왜 그토록 꿈결 같은 소리를 내는지. 그 출발점은 여섯 살, 일곱 살 아이의 손가락이 닿을 만큼 쉬운 건반 위의 동화 한 편이었습니다. 어른의 귀로 들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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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미사 C장조 Op.86
혹평을 뚫고 완성한 베토벤의 미사 솔레무니스
1807년 9월 13일, 아이젠슈타트 궁정 예배당. 베토벤이 직접 지휘봉을 들고 미사 초연을 마쳤는데, 정작 곡을 주문한 후원자 에스테르하지 공의 반응이 싸늘했습니다. 궁정 악장 후멜이 그 자리에서 웃음을 터뜨렸고, 베토벤은 격분해 그 길로 짐을 싸서 빈으로 돌아갔습니다. 모욕감 속에서도 베토벤은 이 미사곡을 붙들었습니다. 완성까지 15년이 걸렸고, 그 결과가 미사 솔레무니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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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 – 첼로 협주곡 제2번 D장조 Hob.VIIb:2
제자가 훔쳤다고 의심받은 협주곡의 진실
1783년,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수석 첼리스트 안톤 크라프트를 위해 하이든이 이 협주곡을 썼습니다. 크라프트의 필사본만 남고 자필 악보가 사라지면서 150년간 제자의 곡으로 카탈로그에 올랐죠. 음악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폴까지 나서서 크라프트를 진짜 작곡가로 지목했거든요. 1953년 원본 발견으로 논란은 종결됐지만, 이 협주곡이 첼로 레퍼토리의 정상에 오른 이유는 위작 스캔들과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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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 1812년 서곡 E♭장조, Op.49
작곡가가 스스로 쓰레기라 불렀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진 서곡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싫어했습니다. 편지에 직접 남긴 말이거든요. “따뜻함도 사랑도 없이 썼다. 예술적 가치가 없다.” 1880년 6주 만에 완성한 기념 행사용 의무감의 산물이었죠. 그런데 140년 뒤 이 곡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서곡이 됐습니다. 러시아에서 70년간 금지됐던 러시아 애국 음악이 미국 독립기념일의 상징이 된 아이러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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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외탕 – 바이올린 협주곡 제5번 a단조 Op.37
파가니니가 인정한 소년의 마지막 협주곡
브뤼셀 음악원 학생들이 졸업 시험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곡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곡이 하필 ‘콩쿠르 테스트 피스’로 만들어진 곡입니다. 비외탕 협주곡 5번. 1858년, 비외탕의 친구이자 바이올린 교수였던 위베르 레오나르(Hubert Léonard)가 부탁을 하나 합니다. 브뤼셀 음악원 입학 시험 곡으로 쓸 협주곡 하나 써달라고요. 이 부탁으로 탄생한 곡이 비외탕 협주곡 5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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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 – 교향곡 제6번 D장조 Op.60
지휘자가 키스까지 했는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거부한 이유
리히터는 드보르작에게 그 자리에서 키스까지 했습니다. 빈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가 무명 체코 작곡가를 브람스 옆에 앉혀 소개하고, 새 교향곡을 직접 의뢰한 겁니다. 드보르작은 10개월 만에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초연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단원들이 체코 작곡가 작품을 두 시즌 연속 연주하기 싫었던 겁니다. 그 교향곡이 결국 프라하에서 초연됐고, 드보르작을 국제 무대로 밀어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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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 회화적 연습곡 Op.39
러시아 마지막 피아노 소품, 그림은 비밀
1916년, 라흐마니노프는 아홉 편의 ‘회화적 연습곡’을 완성하면서 정작 그 그림이 무엇인지 끝내 밝히지 않았습니다. 레스피기가 집요하게 추궁해서 겨우 얻어낸 힌트 몇 가지뿐이거든요. 바다, 갈매기, 분노의 날, 빨간 모자와 늑대. 나머지는 지금도 비밀입니다. 이 곡들은 Op.39 완성 직후 러시아를 영원히 떠난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피아노 독주 모음집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