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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반지와 야유 — 브람스가 한 달 만에 전부 잃은 협주곡
약혼반지와 야유, 25세의 한 달
1859년 1월, 약혼반지를 낀 채 무대에 오른 브람스는 한 달 만에 반지도 박수도 사랑도 잃었습니다. 다섯 해를 장르를 세 번 갈아입으며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 1번, 그 천둥과 추모와 빛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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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전주곡 1·2권 — 인상주의 라벨이 가린 24곡의 진짜 정체
인상주의 라벨이 가린 24개의 진실
드뷔시는 1908년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서 ‘인상주의’라는 말을 격하게 거부했다. 그가 24개 전주곡 제목을 어디에 숨겼는지, 본인 피아노롤이 어떻게 인쇄 악보를 부정했는지 알게 되면 한국 음악교과서 100년의 통념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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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현악 사중주 14번 d단조, D.810 ‘죽음과 소녀’ — 27세가 쓴 자기 부고
소녀가 사라진 자리의 d단조 사중주
슈베르트 현악 사중주 14번 d단조 D.810. 1817년 가곡에서 죽음의 응답만 인용해 4악장 전부 단조로 묶은 1824년 3월의 자기 부고. 가곡 D.531과의 인용 구조, Kupelwieser 편지, 베토벤 9번 초연과 같은 봄, 말러 편곡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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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교향곡 5번 B♭장조 D.485 — 19세 보조교사가 모차르트에게 부친 편지
거실에서 태어난 모차르트 헌정
1816년, 19세 슈베르트가 빈의 한 거실에서 처음 들려준 곡. 클라리넷도 트럼펫도 팀파니도 없는 편성으로 모차르트 어법에 부친 4악장짜리 편지다. 출판은 작곡가 사후 57년이 지난 1885년에야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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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교향곡 제41번 다장조 ‘주피터’ K.551 — 본인이 한 번도 못 들었을 마지막 교향곡
잘로몬이 30년 뒤 붙인 이름
베를린 국립도서관에 보존된 자필 악보 마지막 페이지 어디에도 ‘주피터’는 없다. 이 이름은 모차르트 사망 30년 뒤 런던 흥행사 잘로몬이 붙였고, 1821년 에든버러 프로그램북에 처음 활자로 남았다. 1788년 6주 동안 39·40·41번을 쓰면서 모차르트는 딸을 잃고 차용 편지 8통을 보냈으며, 평생의 마지막 교향곡 세 편을 한 번도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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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8번 — 작곡가가 “이게 더 좋다”고 말했지만 200년째 둘째 취급받는 자식
베토벤이 편애한 26분짜리 농담
1814년 빈 레두텐잘, 7번에 박수가 쏟아지고 8번은 미지근하게 끝났다. 백스테이지의 베토벤은 한마디 했다. ‘이게 훨씬 더 좋아.’ 멜첼 메트로놈 전설의 시간 모순, 4악장 C# 폭탄, 1812년 베토벤의 가장 시끄러운 여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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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4번 — 5번 값 받고 떠넘긴 곡
오페르스도르프 사기 사건과 바순의 8마디
1807년 3월 비엔나 로프코비츠 궁. 5번 교향곡 값까지 미리 낸 오페르스도르프 백작은 그날 자기가 산 5번이 다른 후원자 이름으로 연주되는 걸 봤다. 베토벤이 5번 대신 끼워준 위로곡이 우리가 지금 4번이라고 부르는 그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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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종〉 Op.35 — 익명 편지 한 통과 장조로 끝난 장송
익명 편지 한 통과 장조로 끝난 장송
라흐마니노프가 가장 아낀 합창 교향곡 〈종〉 Op.35. 발신인을 끝내 몰랐던 익명 편지에서 시작해, 장송 악장이 장조로 끝나는 음악사의 드문 모순까지. 실황·악보 영상과 플레트네프·스베틀라노프·아쉬케나지 음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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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Op.34 No.14 — 가사를 거절한 6분, 그리고 우리는 왜 첼로로만 들을까
1915년, 네즈다노바에게 바친 가사 없는 마지막 노래
유튜브에 ‘보칼리제’를 치면 첫 화면이 온통 첼로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을 첼로로 쓴 적이 없다. 가사도 없고 첼로도 없던 1915년 소프라노 원곡으로 돌아가, 6분 14마디에 담긴 작곡가의 마지막 가곡을 다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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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낸 자기 협주곡으로 맞은 융단폭격 —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4번 g단조, Op.40
세 번 다시 쓰고도 매장당한 협주곡
1927년 필라델피아, 스토코프스키와 함께 직접 건반에 앉았지만 평론가의 반응은 ‘long-winded, tiresome’이었다. 9년 침묵을 깬 신작은 두 차례 고쳐도 생전의 평판을 뒤집지 못했다. 사후에야 다시 들리기 시작한 협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