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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교향곡 제6번 F장조, Op.68 ‘전원’
청력을 잃어가면서 숲이 들렸다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쓴 베토벤은 그로부터 6년 뒤 같은 마을에서 이 교향곡을 완성합니다. 귀가 닫혀가던 사람이 남긴, 소리로 쓴 감사의 기록. 5악장 구조와 표제까지 직접 붙인 이 교향곡은 단순한 전원 풍경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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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연주 불가능" 판정받은 협주곡이 세계 4대 명곡이 됐습니다
1878년 스위스 클라랑. 결혼 생활의 참담한 실패를 뒤로하고 도망치듯 떠나온 차이콥스키는 심신이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제자 코테크가 연주한 랄로의 바이올린곡이 불꽃처럼 영감을 던졌고, 단 4주 만에 이 협주곡의 초고가 완성됩니다. 그러나 헌정받은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아우어는 악보를 보자마자 고개를 저었습니다. 3년 뒤 용기 있는 브로드스키가 빈 무대에 올렸을 때, 객석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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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B♭장조, Op.83
브람스 본인은 이 50분짜리 협주곡을 편지에 '아주 작은 협주곡'이라 적었습니다
1859년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이 하노버 초연에서 야유를 받은 뒤 브람스는 22년 동안 이 형식에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1878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다시 펜을 들어 1881년 완성한 이 곡은 연주 시간만 50분에 달하죠. 협주곡이지만 4악장 구조에 첫 음은 피아노가 아닌 호른이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악장에서 독주 피아노는 첼로에게 주인공 자리를 기꺼이 내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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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 –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Op.47
초연에서 혹평받자 악보를 봉인하고 처음부터 다시 썼습니다
1904년 2월 헬싱키. 공연이 끝나자 신문엔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시벨리우스는 곧바로 초판 악보를 봉인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 전혀 다른 곡이 베를린에서 울렸죠. 지금 우리가 듣는 이 협주곡은 그 실패가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 곡엔 더 깊은 사연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꿨지만 포기해야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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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교향곡 제9번 d단조, Op.125 ‘합창’
귀가 먹은 작곡가가 인류 전체에게 노래를 시켰습니다
1824년 빈, 자기 교향곡의 초연조차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은 알토 가수가 소매를 잡아 돌려세워야 기립박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서 죽음을 고민하던 청년이 22년 뒤 성악까지 끌어들인 전무후무한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그리고 그 ‘환희의 송가’가 유럽연합 찬가부터 베를린 장벽 붕괴까지 인류의 결정적 순간에 불려온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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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르작 – 첼로 협주곡 b단조, Op.104
조세피나가 평생 가장 좋아했던 노래를 드보르자크는 죽어가는 그녀를 위해 악보 속에 숨겼습니다
뉴욕에서 체코 귀환을 준비하던 1895년 봄, 드보르자크는 자신이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처제이자 첫사랑이었던 조세피나 체르마코바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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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제5번 E♭장조, Op.73 ‘황제’
피아노가 오케스트라보다 먼저 터졌다
지휘자의 팔이 올라가기도 전에 피아노가 먼저 터집니다. 1809년, 나폴레옹의 포탄이 빈을 덮을 때 베토벤은 지하실에서 쿠션을 귀에 댄 채 이 곡을 쓰고 있었습니다. 청각을 잃어가는 남자가 더 이상 무대에서 직접 칠 수 없으리란 걸 알면서도 피아노를 위한 가장 당당한 곡을 써냈거든요. ‘황제’라는 별명은 정작 베토벤 본인이 붙인 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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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 –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바이올린이 먼저 노래하는 6년의 집착
오케스트라 서주가 없습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첫 마디부터 직접 노래하거든요. 멘델스존은 이 파격적 구조를 6년 동안 다듬었습니다. 친구이자 라이프치히 악장 페르디난트 다비트의 바이올린을 떠올리며 쓴 선율이죠. 세 악장이 쉼 없이 이어지는 구조도 당시엔 전례가 없었습니다. 입문자가 가장 먼저 빠져드는 협주곡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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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 –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16
리스트가 초견으로 쳐버린 무명 청년의 악보
1870년 로마,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 리스트가 이름 모를 노르웨이 청년의 악보를 펼쳤습니다. 초견으로 오케스트라 파트까지 피아노 한 대로 소화하며 끝까지 쳐버렸거든요. 노르웨이라는 나라 자체가 음악 지도에 없던 시절, 스물여섯 살 그리그의 a단조 협주곡은 그렇게 유럽 무대에 올라섰습니다. 1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첫 하강 선율의 위력은 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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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단조, Op.23
처참히 까이고도 한 음도 안 고쳤다
1874년 크리스마스이브, 모스크바 음악원. 차이콥스키가 떨리는 손으로 새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청중은 단 두 명뿐이었고, 그중 하나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이었거든요. 연주가 끝나자 루빈스타인은 곡을 완전히 쓸어버렸습니다. 차이콥스키는 한 음표도 고치지 않겠다 선언했고, 그 협주곡은 대서양을 건너 보스턴에서 세계를 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