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 〈레퀴엠 d단조 Op.48〉 — 심판의 날을 지워버린 진혼곡

아무의 죽음도 위하지 않은 죽음의 자장가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
(Gabriel Fauré, 1845–1924)
곡명
레퀴엠 라단조, 작품번호 48
(Requiem in D minor, Op. 48)
작곡 기간
1887~1890년 (개정 및 관현악 편성 확대는 1900년까지)
악장
7악장
I. Introït et Kyrie
II. Offertoire
III. Sanctus
IV. Pie Jesu
V. Agnus Dei
VI. Libera me
VII. In Paradisum

1악장. 입당송과 자비송
2악장. 봉헌송
3악장. 거룩하시도다
4악장. 자비로우신 예수여
5악장. 하느님의 어린양
6악장. 저를 구원하소서
7악장. 천국에서
편성
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바이올린 파트는 없으며, 상투스에는 독주 바이올린이 등장), 바순, 호른·트럼펫, 팀파니, 하프, 오르간, 혼성 합창, 소프라노·바리톤 독창
(1893년 실내판 기준. 1900년 관현악판에는 플루트·클라리넷과 트롬본, 모든 현악 파트가 추가됨)
초연
1888년 1월 16일, 파리 마들렌 교회
포레 지휘 (당시 5악장 판본)
연주 시간
약 35분

이 곡은 최후의 심판을 격렬하게 묘사하는 ‘진노의 날’을 독립된 대규모 악장으로 두지 않고, 죽은 이의 안식과 남겨진 이들의 위로에 무게를 실은 미사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4악장 피에 예수를 권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잦아든 가운데 소프라노 독창이 고요하게 노래하는 악장입니다.

첫 음반 — 입문용으로는 앙드레 클뤼탕스가 지휘한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의 EMI 녹음을 권합니다.

모차르트와 베르디, 그리고 베를리오즈의 진혼곡을 듣다 보면 최후의 심판을 그리는 ‘디에스 이라이(Dies irae)’, 곧 ‘진노의 날’이 그야말로 벼락같은 장면으로 펼쳐집니다. 세 작곡가는 저마다 다른 관현악 편성과 합창을 동원해 심판의 공포를 극적으로 몰아붙이죠. 하지만 포레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그는 이 무시무시한 전례문을 떼어내어 독립된 대규모 악장으로 만들지 않았거든요.

포레는 심판의 공포보다는 죽은 이의 안식과 남겨진 이들을 향한 위로에 조금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흔히 이 곡을 두고 “부모를 잃은 슬픔에서 나온 진혼곡”이라는 설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붙곤 하지만, 정작 포레 자신은 부모의 죽음을 작곡 계기로 밝히지는 않았죠. 그렇다면 이 작품은 도대체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으며, 포레는 어째서 이토록 평온한 진혼곡을 빚어냈는지 그 이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존 싱어 사전트가 그린 가브리엘 포레의 초상화
화가 존 싱어 사전트가 1889년 무렵 그린 포레의 초상화. 포레가 진혼곡을 한창 손보던 시기의 모습이다.

매일 남의 장례식에서 오르간을 치던 사람

포레는 파리 한복판에 자리한 마들렌 교회에서 오랫동안 묵묵히 일했던 교회 음악가였습니다. 이 진혼곡을 펜으로 써 내려갈 무렵에는 그곳의 성가대를 이끌고 있었죠. 마치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기둥으로 유명한 이 교회에서는, 당대 이름난 인사들의 장례미사가 심심치 않게 열리곤 했습니다.

포레에게 진혼미사는 어쩌다 한 번 마주하는 비극적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교회에서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이었을 뿐이죠. 누군가 숨을 거두고 유족이 무거운 관을 들여오면, 성가대는 으레 정해진 라틴어 미사곡을 불렀고 오르가니스트는 그 위로 반주를 얹었습니다. 수없이 장례미사 음악을 도맡으면서, 포레는 죽음을 극적인 드라마로 포장하기보다는 직업적인 교회 음악가로서 담담하게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켜켜이 쌓인 경험이 그가 진혼곡에서 죽음의 공포 대신 평온과 위안을 강조하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파리 마들렌 교회 정면 외관
파리 마들렌 교회. 신전을 연상시키는 기둥으로 둘러싸인 이 교회에서 포레는 여러 장례미사의 성가대를 이끌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 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파리의 니데르메예르 음악학교에서 옛 교회음악과 그레고리오 성가를 깊이 파고들었고, 바로 그곳에서 카미유 생상스를 스승으로 만나게 됩니다. 열 살 위였던 생상스는 훗날까지도 제자의 음악 활동을 든든하게 지지해 주었죠. 학창 시절 몸에 밴 성가의 선율과 절제된 표현 방식은 훗날 진혼곡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포레는 화려하고 극적인 오페라풍 멜로디를 내세우는 대신, 성가대석에서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울려 퍼질 법한 담백한 선율과 절제된 음향을 작품의 한가운데에 놓았습니다.

이후 포레는 프랑스 음악을 대표하는 굵직한 작곡가로 당당히 자리 잡게 됩니다. 파리 음악원에서 작곡을 가르치며 모리스 라벨과 같은 걸출한 제자를 길러냈고, 종래에는 이 학교의 원장직까지 올랐거든요. 가곡과 실내악 분야에서는 그 누구보다 섬세하고 정교한 화성을 세공해 낸 작곡가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평생 교회 음악가로서 쌓아 올린 단단한 경험, 그리고 가곡과 실내악을 통해 벼려낸 음악어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진혼곡은 오늘날 포레라는 이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진노의 날’을 덜어낸 진혼곡

전통적인 라틴어 진혼미사에는 최후의 심판을 다룬 부속가 ‘디에스 이라이’, 곧 ‘진노의 날’이 포함됩니다. “그날, 진노의 날에 세상이 재로 화하리라”라는 가사가 보여 주듯, 공포와 심판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목이죠. 베르디는 바로 이 순간 대포처럼 울리는 큰북과 금관악기로 세상의 종말을 그렸고, 베를리오즈는 네 무리의 금관 악단을 사방에 에워싸듯 배치해 최후의 심판을 압도적인 음향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떠올려 보면 그 극명한 차이를 한결 이해하기 쉽습니다. 널리 알려진 ‘라크리모사’나 벼락처럼 내리꽂는 ‘디에스 이라이’는 모두 최후의 심판을 노래하는 같은 부속가 아래 묶여 있거든요. 포레는 이처럼 죽음의 공포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오랜 관습에 등을 돌리고 전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포레의 진혼곡에는 ‘디에스 이라이’가 독립된 악장으로 들어 있지 않습니다. 심판과 지옥의 공포를 거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묘사하는 대신, 6악장 ‘리베라 메(저를 구원하소서)’에서 ‘진노의 날’이라는 구절을 그저 한 차례 짧게 들려주고 맙니다. 애초에 최후의 심판을 작품의 중심에 두지 않은 셈이죠.

파리 마들렌 교회 내부 신랑과 돔 천장
마들렌 교회 내부. 이곳에서 울린 진혼곡은 지옥의 공포보다 평안과 위로에 무게를 두었다.

대신 포레는 진혼곡의 마지막 악장에 ‘인 파라디숨(천국으로)’을 고스란히 얹어 두었습니다. 사실 이 노래는 엄밀히 말해 진혼미사 본문이 아니라, 관을 무덤으로 옮기는 쓸쓸한 행렬에서 부르는 매장 예식의 노래입니다. 천사들이 죽은 이를 곁에서 이끌어 천국으로 인도해 달라고 고요히 기도하는 내용이지요. 이처럼 포레의 진혼곡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심판을 향해 치닫는 대신,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차분하고 조용한 배웅으로 끝을 맺습니다. 무서운 죽음의 공포보다 평안과 위로의 손길을 먼저 내미는 작품의 성격이 이 구성 하나에 뚜렷하게 담겨 있습니다.

“즐거움을 위해 썼을 뿐”이라는 대답

그렇다면 포레는 대체 왜 이 곡을 썼을까요. 흔히 거론되는 계기는 부모의 죽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1885년에, 어머니는 1887년 마지막 날에 세상을 떠났거든요. 진혼곡을 쓰던 시기와 맞물려 얼핏 대단히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하지만 정작 포레 본인은 부모의 죽음과 이 작품을 직접 연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내 진혼곡은 무엇을 위해 쓴 게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저 즐거움을 위해서였습니다.”

죽음을 다루는 진혼곡을 두고 “즐거움을 위해 썼다”니, 참으로 엉뚱하고 어울리지 않는 대답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레가 입에 올린 즐거움이란 유족의 슬픔을 가벼이 여겼다는 뜻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저 음악을 엮어내는 창작의 기쁨에 가까웠죠. 덧붙여 그는 자신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꽤나 선명하게 밝혔습니다.

“사람들은 내 진혼곡이 죽음의 공포를 표현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이 곡을 ‘죽음의 자장가’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그렇게 봅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이 아니라, 행복한 해방이자 저 위의 행복을 향한 갈망입니다.”

‘죽음의 자장가.’ 이 짧은 표현에는 죽음을 공포의 순간이 아니라 평온한 안식으로 바라본 포레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는 진혼 미사의 전례문 가운데 최후의 심판을 두렵게 묘사하는 ‘진노의 날’을 대부분 생략했고, 작품 마지막에는 영혼이 천국에 이르는 장면을 조용히 배치했거든요. 잠드는 아이를 달래듯 죽음을 부드럽게 감싸는 음악 역시, 이러한 그의 죽음관과 나란히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이처럼 죽음을 부드럽게 그려낸 방식이 처음부터 한결같이 환영받은 것만은 아닙니다. 일부에서는 이 진혼곡이 종교적인 엄숙함보다는 감미로운 정서를 앞세웠다고 평가하기도 했죠.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에는 오히려 바로 그 부드러움이 작품의 두드러진 매력으로 꼽힙니다. 포레의 진혼곡은 굳이 공포를 강조하지 않고서도 죽음과 위로를 넉넉히 함께 이야기합니다.

💡 사실은요 — 어머니의 죽음과 작곡 시기가 겹친다는 사실만으로 두 사건의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포레는 특정인의 죽음을 계기로 쓴 작품이 아니라고 밝혔으며, 학자들도 작곡 동기를 부모의 죽음과 직접 연결하지 않습니다. 이 곡을 쓰기 시작한 정확한 계기는 지금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세 판본의 변천 — 5악장에서 7악장으로

지금 우리가 귀 기울여 듣는 7악장짜리 진혼곡은 애당초 이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첫선을 보인 뒤로 뼈대에 악장이 덧붙었고, 이후 편성이 덩치를 키우면서 비로소 오늘날 연주되는 어엿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거든요.

1888년 1월 16일, 마들렌 교회에서 처음 울려 퍼진 판본은 단출하게 다섯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입당송과 자비송을 묶어 한 악장으로 치고, 상투스, 피에 예수, 아뉴스 데이, 인 파라디숨을 차례로 세워두었죠. 오케스트라 편성도 성가대석에 쏙 들어갈 만큼 소규모였습니다. 이날의 초연은 건축가 조제프 르수파셰(Joseph Le Soufaché)의 장례미사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는데, 오늘날 7악장 판본에서 4악장에 해당하는 피에 예수는 어린 소년 성가대원이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초연 당시 마들렌 교회의 한 성직자가 이 새로운 진혼곡을 못마땅해했다는 일화도 전해 내려옵니다. 교회에 이미 훌륭한 진혼곡이 차고 넘치는데 왜 굳이 새 곡이 필요하냐고 물었다는 내용이죠. 그 진위야 똑 부러지게 확인하기 어렵지만, 후대에는 심판과 지옥불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포레의 미사곡이 기존의 진혼곡들과 얼마나 달랐는지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곤 했습니다.

1893년 무렵, 포레는 두 개의 악장을 슬쩍 끼워 넣습니다. 바리톤 독창이 돋보이는 2악장 봉헌송과 6악장 리베라 메입니다. 비로소 다섯 악장이 일곱 악장으로 부풀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뼈대가 완성된 셈입니다. 재미있는 건 리베라 메가 이때 뚝딱 새로 쓴 곡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포레가 1877년에 독립된 바리톤 성악곡으로 묵혀 두었던 곡을 무려 16년이 지난 뒤에야 진혼곡에 덧붙인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진혼곡에서 유일하게 진노의 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악장이, 실은 일곱 악장을 통틀어 가장 먼저 태어난 곡이라는 점이 퍽 흥미롭습니다.

1900년에 이르러 편성은 한 차례 더 몸집을 불립니다. 널찍한 연주회장에서도 거뜬히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대규모 관현악 편성의 악보가 마련되었고, 오늘날 대형 홀에서 자주 울려 퍼지는 것이 바로 이 1900년 판본입니다. 세 판본의 덩치와 음색이 제각각이다 보니 “도대체 어느 판본이 포레가 진짜 원했던 소리냐”를 두고 입씨름이 꽤 오래 이어지기도 했죠. 그러다 영국의 작곡가 존 러터가 1893년 판본의 실내 편성에 가까운 악보를 파고들어 복원·편집해 냈습니다. 이 악보는 1984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OUP)를 통해 세상에 나왔고 1985년에도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이 악보가 유행을 타면서, 거대한 관현악 판본과는 묘하게 다른 절제되고 어둑어둑한 음색을 다시금 맛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이올린을 무대에서 치운 오케스트라

이 곡이 유난히 따뜻하고 어둑하게 들리는 데는 악기 편성의 지분이 큽니다. 포레는 오케스트라에서 화사한 고음을 맡는 합주 바이올린을 아예 편성에서 제외했거든요. 일반적인 관현악 편성에서 중심 역할을 도맡는 바이올린 소리를 이 곡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습니다.

합주 바이올린이 훌쩍 빠져나간 빈자리는 비올라와 첼로가 뭉근하게 채워냅니다. 두 악기가 내는 중저음은 사람의 목소리와 기막히게 살을 맞대고 어우러지죠. 그 발치에서는 콘트라베이스가 든든하게 저음을 받쳐주고, 하프가 맑디맑은 화음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며, 오르간이 공간 전체를 은은하게 쓰다듬습니다. 화려하게 쏘아붙이는 고음 대신 중저음에 묵직하게 무게를 둔 덕에, 오케스트라는 성악을 함부로 덮어누르지 않고 낮고 부드러운 음향을 조심스레 빚어냅니다.

마들렌 교회의 대형 파이프오르간
마들렌 교회의 대오르간. 이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한 포레는 진혼곡의 편성에서도 오르간에 중요한 역할을 맡겼다.

그렇다고 바이올린이 무대에서 영영 증발해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3악장 상투스에 이르면 독주 바이올린 한 대가 높은 음역에서 홀로 처연하게 선율을 풀어놓거든요. 앞선 대목 내내 합주 바이올린의 고음을 악착같이 아껴 둔 만큼, 이때 나타나는 가느다란 독주 선율은 짙게 깔린 어둠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드는 듯한 인상을 남기며 한층 더 또렷하게 귀에 꽂힙니다.

재미있게도 1900년 대편성 판본으로 넘어가면 이런 짙은 어둠의 색채가 한결 옅어집니다. 플루트와 클라리넷, 그리고 전체 현악군이 가세하면서 소리는 거대한 홀을 거뜬히 채울 만큼 밝고 풍성해지지만, 그 반대급부로 초기 판본 특유의 친밀한 공기는 상대적으로 사그라들고 말죠. 어느 판본이 더 낫다고 단칼에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합주 바이올린을 슬쩍 빼버린 초기 판본과 전체 현악군을 번듯하게 갖춘 대편성 판본은 애초에 서로 전혀 다른 질감의 음향을 들려주니까요.

문을 여는 세 악장 — 입당송에서 상투스까지

1악장 — 입당송과 자비송

첫 문은 무겁게 내리누르는 화음으로 열립니다. 이내 합창이 아주 낮은 음역에서 “레퀴엠 아이테르남(영원한 안식을)”을 입술만 달싹이듯 읊조리기 시작하죠. 테너들이 한 음 위로 슬쩍 올라서며 잠시나마 소리가 밝아지는 듯싶지만, 금세 다시 본래의 낮고 고요한 물결 속으로 스며듭니다. 합창단은 가슴을 치며 절규하듯 감정을 쏟아내는 법이 없습니다. 그저 음량과 음높이를 살얼음판 걷듯 조심스럽게 오르내리며, 곡 전체를 감싸고도는 차분한 공기를 미리 넌지시 건넬 뿐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첫 화음이 무겁게 울린 뒤 합창이 숨죽이듯 들어오는 도입부입니다. 합창이 얼마나 낮은 음역에서 시작하는지 귀를 기울여 보세요.

2악장 — 봉헌송

2악장 봉헌송은 이리저리 다듬어지는 여러 단계를 거친 끝에 1893년에서야 비로소 온전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알토와 테너가 조심스레 선율을 주고받으며 운을 띄우고, 다른 성부들이 하나둘 차례로 끼어들면서 다채로운 선율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얽혀들죠. 그러다 곡 중간에 바리톤 독창이 불쑥 나타나 “호스티아스(제물을 바치나이다)”를 부르기 시작하면, 여태껏 낮게 일렁이던 합창의 숲을 뚫고 한 사람의 또렷한 목소리가 번쩍 고개를 내밉니다. 이렇게 무리 지은 합창 사이에 불현듯 독창을 심어 음색을 비틀고 오롯이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열게 만드는 솜씨는, 뒤이어 등장하는 ‘피에 예수’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3악장 — 상투스

상투스의 첫머리는 호수 위의 잔물결처럼 일렁이는 하프 반주가 엽니다. 여성 성부와 남성 성부가 “거룩하시도다”를 다정하게 주고받는 사이, 앞서 호기심을 돋우었던 바로 그 독주 바이올린이 저 높은 음역에서 홀연히 자기만의 선율을 잣아 올리기 시작하죠. 악장이 끝나갈 무렵 터져 나오는 마지막 “호산나”에서는, 뒤로 물러나 있던 호른이 딱 한 차례 우렁차게 포효하며 음악의 온도를 훅 끌어올립니다. 애당초 곡 전체를 통틀어 큰 소리가 터지는 일이 워낙 드물다 보니, 이 짧은 찰나는 그야말로 번쩍하고 뇌리에 박힙니다. 하지만 들끓던 소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스르르 잦아들고, 하프의 잔물결 위로 “호산나”의 희미한 여운만 남겨둔 채 악장이 숨을 죽입니다.

피에 예수 — 이 곡의 심장

포레 진혼곡에서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는 대목을 꼽자면 단연 4악장 ‘피에 예수’입니다. 합창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앞뒤 악장들과는 달리, 이 악장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잦아들고 독창자의 목소리가 중심에 오롯이 놓입니다. 원래는 소년 성가대원이 부르도록 쓰였지만, 오늘날에는 맑은 음색을 지닌 소프라노가 부르는 경우가 흔합니다.

가사라야 고작 한 줌입니다. “자비로우신 예수여,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독창자는 이 짤막한 한 문장을 이리저리 비틀거나 치장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밀어냅니다. 알량한 기교 따위를 싹 걷어낸 덕분에 노래하는 이의 날것 그대로의 음색과 가사가 품은 뜻이 한층 시리게 다가오죠. 오르간과 저음 현악기들 역시 숨죽인 반주로 독창의 발치만 조심스레 받칠 뿐입니다. 포레는 화려한 허울을 죄다 벗어던진 앙상한 선율 위에 소박한 기도 한 자락을 얹어, 이 진혼곡 특유의 온화하고 평온한 공기를 이 짧은 악장 하나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워낙 존재감이 뚜렷한 덕에 이 악장은 진혼곡의 품을 떠나 독립된 독창곡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심지어는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배경을 적시는 단골 음악으로도 쓰이곤 합니다. 이토록 짧고 단순한 선율이 독창과 깍쟁이처럼 절제된 반주를 거쳐 얼마나 길고 짙은 그림자를 남기는지, 한 번쯤 가만히 귀 기울여 보시길 권합니다.

소프라노 첸 라이스가 노래하고 파보 예르비가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합니다. 절제된 오케스트라 반주 위로 독창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연주입니다.

단 한 번의 공포 — 아뉴스 데이와 리베라 메

5악장 — 아뉴스 데이

5악장은 첼로와 비올라가 마치 사람의 목소리처럼 유려하게 굽이치는 선율로 문을 엽니다. 성악이 입을 떼기도 전부터 이미 한 편의 절절한 노래를 듣는 듯하죠. 이윽고 합창이 “하느님의 어린양”을 부르고 나면, 곡 후반부에는 1악장 첫머리를 장식했던 바로 그 선율이 발소리를 죽인 채 슬며시 되돌아옵니다. 앞서 지나간 선율을 기억해 낸다면 이 절묘한 순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습니다. 포레는 이처럼 1악장과 5악장의 꼬리를 남몰래 맞붙여 놓음으로써, 겉으로 티 내지 않고도 진혼곡의 앞뒤를 아주 단단하게 여며두었습니다.

6악장 — 리베라 메

이 악장에 발을 들이면, 내내 잠잠했던 진혼곡의 긴장감이 벼랑 끝처럼 가파르게 솟구칩니다. 바리톤 독창이 “저를 구원하소서”라며 홀로 쓸쓸히 기도를 올리며 시작되는데, 그 낮고 조심스러운 선율 틈바구니로 어딘지 모를 불안한 기색이 짙게 감돌거든요. 뒤이어 합창단이 심판의 날에 하늘과 땅이 요동칠 것이라는 가사를 사납게 토해내고, 금관악기와 팀파니가 일제히 터져 나오며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쉼 없이 평온한 물결을 타던 진혼곡에, 비로소 날 선 공포가 제 모습을 똑똑히 드러내는 유일한 순간입니다.

하지만 포레는 이 팽팽한 긴장을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사납게 들끓던 음악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숨을 죽이고, 다시 첫머리의 조심스러운 기도로 되돌아오고 맙니다. 앞서 짚었듯 이 악장은 1877년에 아예 별개의 곡으로 쓰였다가 한참 뒤에야 진혼곡에 슬쩍 합류했습니다. 지금이야 작품을 통틀어 가장 맹렬한 순간을 책임지고 있지만, 작곡 시기로 따지고 보면 가장 먼지 묻은 오래된 재료인 셈이죠. 서로 다른 시기에 빚어낸 조각들을 솜씨 좋게 엮어 오늘날의 진혼곡으로 깎아나간 포레의 세공술도 바로 이 대목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바리톤 독창이 잦아든 뒤 합창과 팀파니가 한꺼번에 거세지는 대목입니다. 평온하게 흐르던 곡의 분위기가 위협적으로 바뀌는 순간이에요.

천국으로 데려가 주소서 — 인 파라디숨

7악장 인 파라디숨은 왜 이 진혼곡에 유독 ‘위로의 음악’이라는 꼬리표가 자주 붙는지를 마지막까지 선명하게 증명해 냅니다. 잔물결처럼 밀려오는 오르간 반주 위로 높고 투명한 소프라노 성부가 사뿐히 떠오르죠. “천사들이 그대를 천국으로 인도하기를.” 이 짤막한 가사 하나만 보아도, 죽은 이의 뒷모습을 한없이 부드럽게 배웅하는 노래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 노래는 본래 관을 묻는 매장 예식의 쓸쓸한 길목에서 부르던 곡입니다. 포레는 정규 미사 통상문에조차 속하지 않는 이 노래를 기어이 작품의 맨 끝자락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덕분에 곡은 매서운 심판의 두려움 대신, 천사들의 따뜻한 인도와 영원한 안식을 그리며 끝을 맺게 됩니다. 음악은 마지막 화음에 다다라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법 없이 그저 공기 중으로 스르르 흩어지듯 사라집니다. 포레의 진혼곡은 이렇듯 죽음을 무서운 단죄의 순간으로 몰아세우는 대신, 평온한 안식의 자리로 가만히 내어줍니다.

필리프 헤레베헤 지휘, 라 샤펠 루아얄. 옛 프랑스식 라틴어 발음으로 부른 마지막 악장이다.

오늘날 이 진혼곡은 세상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합창곡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엄숙한 장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연주회장의 무대에도 단골손님처럼 오르거든요. 죽음이라는 무거운 돌덩이로 청중을 짓누르기보다, 홀로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가만히 다독여 주는 음악이라는 점 역시 이 작품이 질기도록 오래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눈길을 잡아끄는 화려한 효과 하나 없이 그토록 절제된 음악에, 청중은 1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흐르도록 묵묵히 귀를 기울여 왔습니다.

포레는 마들렌 교회에서 꽤 오랜 세월을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며 수많은 이들의 장례 예식을 위해 건반을 눌렀습니다. 얄궂게도 그가 1924년에 숨을 거둔 뒤 장례미사가 열린 곳 역시 평생을 바친 이 마들렌 교회였고, 그날 울려 퍼진 음악 또한 그가 쓴 진혼곡이었습니다. 평생 남들의 마지막 길을 음악으로 배웅했던 포레는, 결국 자신이 손수 빚어낸 진혼곡의 배웅을 받으며 머나먼 길을 떠났습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음악에 맞춰 총보가 화면에 흐르는 영상입니다. 바이올린 성부의 오선이 비어 있는 부분에서 비올라와 첼로가 선율을 맡는 것을 악보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료 악보 도서관인 IMSLP에는 포레 레퀴엠 Op.48의 총보가 고스란히 공개되어 있습니다(IMSLP의 포레 레퀴엠 Op.48 총보).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포레 레퀴엠은 이름난 명반이 워낙 차고 넘쳐서 딱 한 장만 집어내기가 영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격이 유독 뚜렷한 세 장을 추려 보았습니다. 처음 듣는 분에게 주저 없이 권할 만한 든든한 표준 연주, 옛 프랑스식 발음의 뉘앙스까지 깐깐하게 살려낸 정통파 연주, 그리고 포레의 초기 실내 편성이 품고 있던 그 어둑어둑한 음색을 고스란히 되살린 연주입니다.

👑 첫 감상 추천

앙드레 클뤼탕스 ·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

EMI · 1962년 녹음

소프라노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와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독창을 맡은 음반으로, 오랫동안 이 곡의 표준적인 연주로 꼽혀 왔습니다.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의 부드러운 음색이 포레의 차분한 음악과 자연스럽게 어울립니다. 다만 요즘의 투명하고 날렵한 연주에 익숙하다면 소리가 조금 두툼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필리프 헤레베헤 · 라 샤펠 루아얄 / 콜레기움 보칼레 헨트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

마들렌 교회에 남아 있던 옛 악보 자료를 참고하고 당시의 프랑스식 라틴어 발음까지 되살린 연주입니다. 각 성부가 또렷이 구분되어 합창의 짜임새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묵직하고 극적인 연주를 좋아한다면 다소 담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존 러터 · 케임브리지 싱어스 / 시티 오브 런던 신포니아

콜레기움(Collegium) · 1984년 녹음

러터가 직접 복원한 1893년 실내 편성 판본을 사용한 연주입니다. 큰 오케스트라 대신 저음 현악기와 오르간이 음악을 이끌어, 포레의 초기 판본이 지닌 어둑한 음색을 살려 냅니다. 다만 웅장한 대편성의 소리를 원한다면 다소 소박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포레 레퀴엠은 왜 ‘죽음의 자장가’라고 불리나요?

다른 진혼곡보다 죽음의 공포와 최후의 심판을 덜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포레는 최후의 심판을 묘사하는 ‘진노의 날’을 독립된 악장으로 넣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천국으로 떠나는 영혼을 노래하는 ‘인 파라디숨’을 배치했습니다. 포레 자신도 죽음을 “고통이 아니라 행복한 해방”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죽음을 평온한 안식으로 그려 낸 까닭에 이 곡은 ‘죽음의 자장가’라고 불립니다.

포레가 부모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 곡을 썼나요?

흔히 부모의 죽음을 계기로 썼다고 소개되지만, 포레 본인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아버지가 1885년, 어머니가 1887년에 세상을 떠나 작곡 시기와 겹치기는 합니다. 그러나 포레는 특정인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쓴 곡이 아니라 “그저 즐거움을 위해” 썼다고 밝혔습니다. 정확한 작곡 계기는 지금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포레 레퀴엠은 악장이 몇 개인가요?

최종 형태는 7악장입니다. 1888년 초연에서는 5악장만 연주됐지만, 봉헌송과 리베라 메가 더해진 7악장 구성이 1893년 공연에서 연주됐습니다. 연주 시간은 판본과 지휘자에 따라 다르며 대체로 35분 안팎입니다.

이 곡에는 왜 바이올린 소리가 거의 안 들리나요?

포레가 초기 편성에 합주 바이올린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비올라와 첼로가 선율을 이끌고 하프와 오르간이 색채를 더합니다. 높은 음역의 현악기 소리를 줄여 성악과 잘 어우러지는 어둑하고 따뜻한 음색을 만든 것입니다. 예외적으로 3악장 상투스에서는 독주 바이올린 한 대가 연주합니다. 1900년 대편성 판본에는 합주 바이올린이 더해져 이러한 어두운 색채가 조금 옅어집니다.

포레 레퀴엠은 어떤 판본으로 들어야 하나요?

오늘날에는 크게 1893년의 실내 편성 판본과 1900년의 대편성 관현악 판본을 들을 수 있습니다. 큰 홀에 어울리는 웅장한 소리를 원한다면 1900년판이, 초기 구상에 가까운 어둑하고 친밀한 음색을 원한다면 1893년판(존 러터 복원본 등)이 잘 맞습니다. 처음 듣는다면 성악과 관현악의 균형을 또렷하게 들려주는 클뤼탕스의 녹음부터 들어 보길 권합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죽음을 다르게 노래한 곡들

포레의 온화한 진혼곡이 좋았다면 아래 다섯 곡도 이어서 들어볼 만합니다. 포레와 정반대의 진혼곡을 듣고 싶다면 첫 곡을, 그의 스승과 제자의 음악이 궁금하다면 가운데 두 곡을 골라 보세요. 마지막 두 곡에서는 종교 합창과 가사 없는 성악이 죽음과 위로를 표현하는 서로 다른 방식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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