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 — 가장 환한 교향곡을 작곡가는 실패작이라 묻었다

밝게 열어 단조로 닫는 교향곡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Bartholdy, 1809–1847)
곡명
교향곡 4번 A장조, 작품번호 90 《이탈리아》
(Symphony No. 4 in A major, Op. 90 “Italian”)
작곡 기간
1830~1833년 (1834년 7월 개정)
악장
4악장
I. Allegro vivace (A장조)
II. Andante con moto (d단조)
III. Con moto moderato (A장조)
IV. Saltarello: Presto (a단조)

1악장. 빠르고 생기 있게
2악장. 걷는 듯한 느린 걸음으로
3악장. 적당히 흐르듯이
4악장. 살타렐로: 아주 빠르게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5부
초연
1833년 5월 13일, 런던
펠릭스 멘델스존 지휘 / 런던 필하모닉 협회 관현악단
연주 시간
약 27분

이 곡은 — 스물한 살 멘델스존이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져온, 클래식에서 가장 환한 교향곡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1악장 첫 마디. 관악기가 8분음표로 바닥을 깔면, 바이올린 주제가 바로 치고 들어옵니다. 서주 없음. 1초 만에 본론입니다.

첫 음반 — 페터 마크 · 런던 심포니 (Decca, 1960) — 이 곡의 매력을 가장 가볍게 풀어낸 고전.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환한 교향곡”을 하나 들려주라고 하면, 적지 않은 지휘자들이 이 곡을 고릅니다. 멘델스존의 《이탈리아》. 첫 마디부터 끝까지 환한 채로 내달리고, 들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곡입니다.

그런데 정작 곡을 쓴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 곡을 실패작이라 믿었습니다. 손을 대고 또 대고, 끝내 마음에 들지 않아 서랍에 넣어뒀습니다. 멘델스존은 이 곡을 살아서 출판하지 않았고, 정식 출판은 그가 죽고 4년 뒤 일입니다. 도대체 이 곡의 어디가 그를 그렇게 괴롭혔는지 — 그 답을 따라가는 게 이 글입니다.

펠릭스 멘델스존, 에두아르트 마그누스가 1833년에 그린 초상
스물네 살의 멘델스존. 이 곡을 초연하던 1833년에 그려진 얼굴이다.

스무 살 청년이 알프스를 넘던 봄

멘델스존은 음악사에서 손꼽히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함부르크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집 응접실에는 작은 오케스트라를 통째로 부를 돈이 있었어요. 열일곱에 이미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써낸 천재가, 스무 살이 되자 부모의 후원으로 유럽 일주를 떠납니다.

이 집안의 환경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베를린의 멘델스존가는 일요일마다 집에서 음악회를 열었는데, 작은 오케스트라를 불러 어린 펠릭스가 직접 지휘봉을 잡곤 했어요. 새 곡을 쓰면 그 자리에서 연주해보고, 가족과 손님 앞에서 곧바로 반응을 확인했습니다. 보통의 작곡가가 평생 한 번 가질까 말까 한 실험실을, 그는 열 살 무렵부터 응접실에 두고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출발 전, 그는 이미 한 가지 큰일을 해치운 뒤였습니다. 1829년, 스무 살의 멘델스존이 베를린에서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지휘했거든요. 바흐가 죽은 뒤 거의 잊혀 있던 이 대곡을 100년 만에 무대에 되살린 사건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 청년은 떠나기도 전에 음악사를 한 번 바꿔놓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의 유럽 여행은 한가한 관광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음 작품의 재료를 찾아 나선 길이었어요.

한 가지 더 짚어둘 사람이 있습니다. 네 살 위 누나 파니입니다. 파니 역시 빼어난 작곡가였고, 펠릭스에게는 평생의 가장 가까운 음악 동료였습니다. 그는 누나를 ‘보스’라 부르며 새 곡을 쓸 때마다 의견을 구했고, 그 판단을 거의 스승처럼 따랐습니다. 훗날 이 교향곡을 두고도 펠릭스는 누나에게 편지로 진행 상황을 알렸어요. 그런데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비평가가 곁에 있었는데도, 정작 이 곡만큼은 끝내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합니다.

남쪽으로 내려가던 1830년 5월, 그는 바이마르에 들러 갓 여든이 된 괴테 곁에서 2주를 머뭅니다. 괴테는 이 스무 살짜리의 피아노가 마음에 들어서, 떠난다는 사람을 며칠 더 붙잡아뒀습니다. 헤어질 때는 《파우스트》 한 부를 건네며 직접 이런 헌사를 적어줬어요. “사랑하는 젊은 벗 F. M. B.에게 — 힘차면서도 섬세한 피아노의 거장, 1830년 행복했던 5월의 기념으로.” 스무 살 청년이 받을 수 있는 추천서로는 사실상 최상급입니다.

멘델스존은 괴테가 쓴 여행기 《이탈리아 기행》을 손에 들고 알프스를 넘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티치아노의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고, 그해 11월 1일에는 마침내 로마에 도착합니다. 가족에게 보낸 편지마다 빛과 색 얘기뿐입니다. 그는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었어요. 수채화를 직접 그릴 만큼 눈이 예민한 사람이었고, 여행에서 본 풍경과 의식과 거리의 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스케치로 모아뒀습니다.

로마의 겨울, 베를리오즈와 마주치다

로마에서 보낸 그 겨울, 멘델스존은 묘한 친구 하나를 만납니다. 당시 로마상을 받고 그곳에 와 있던 프랑스 청년, 엑토르 베를리오즈였습니다. 둘은 음악으로 치면 정반대 극단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정하고 깔끔한 독일 신사 멘델스존에게, 과장된 몸짓과 격정으로 무장한 베를리오즈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로마의 언덕을 함께 거닐며 어색한 우정을 나눴어요.

로마의 겨울은 그저 구경거리만 던져준 게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멘델스존은 이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1831년 2월, 그는 누나 파니에게 “《이탈리아》 교향곡이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고 적어 보냅니다. 마침 도시는 사육제로 들썩이고 있었어요. 그가 남긴 한 장면이 재미있습니다. 무심코 카니발 거리를 걷던 그에게 어느 발코니의 부인들이 사탕을 한 움큼 던졌고, 당황한 그가 모자를 벗어 인사하자 사탕 세례가 본격적으로 쏟아졌다는 겁니다. 마지막 악장의 그 펄쩍이는 춤이, 어쩌면 이 거리의 소란에서 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멘델스존은 부활절 무렵 시스티나 성당에 앉아 교황청 합창단의 노래를 받아 적었고, 나폴리까지 내려가 베수비오 화산 아래 도시의 소란을 눈에 담았습니다. 이 여행에서 쌓인 스케치 더미는 나중에 두 편의 교향곡으로 갈라집니다. 안개 낀 북쪽을 담은 《스코틀랜드》, 그리고 햇볕에 바싹 마른 남쪽을 담은 이 《이탈리아》로요. 같은 여행에서 나온 곡인데도, 두 곡이 풍기는 공기는 이렇게나 다릅니다.

북쪽의 흐린 하늘 아래서 자란 청년에게 이탈리아의 빛은 일종의 충격이었습니다. 그가 편지에서 거듭 “여기서 나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적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교향곡의 거침없는 밝음은 머리로 지어낸 색이 아니라, 한 사람이 몇 달 동안 직접 보고 걸으며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 진짜처럼 들립니다.

에두아르트 아그리콜라가 그린 1835년 나폴리 만의 석양
멘델스존이 걸었던 1830년대의 나폴리 만. 이 빛이 1악장의 첫 음으로 돌아온다.

런던에서 날아온 한 장의 청탁서

여행에서 돌아온 멘델스존에게 런던 필하모닉 협회가 새 교향곡을 부탁합니다. 사실 런던은 그에게 거의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어요. 그는 1829년에 처음 영국을 찾은 이래 평생 열 번이나 그곳을 드나들었고, 첫 방문 때 이미 필하모닉 협회의 명예 회원으로 추대된 사이입니다. 그러니 이 청탁은 낯선 도시의 의뢰가 아니라, 자기를 가장 아껴주는 청중이 넣은 주문이었어요.

그는 베를린의 책상 앞에 앉아,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스케치 뭉치를 펼쳤습니다. 그 기억들을 어떻게 한 곡으로 엮을지 궁리하면서요. 로마에서 시작한 작업을 이제 매듭지을 차례였습니다.

작업하던 그가 가족에게 보낸 한 문장이 지금까지 자주 인용됩니다. “내가 이제껏 쓴 것 중 가장 유쾌한 곡이 될 거야. 특히 마지막 악장이.” 스물세 살 청년의 자신감이 그대로 묻어나는 말입니다. 그리고 1833년 3월 13일, 베를린에서 총보의 마지막 마디에 마침표가 찍힙니다.

두 달 뒤인 5월 13일, 런던. 멘델스존이 직접 지휘봉을 들고 런던 필하모닉 협회 무대에서 이 곡을 세상에 처음 내놓습니다. 청중은 환호했고, 곡은 단번에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적어도 1833년 봄까지는 운 좋은 천재의 흠 없는 승전보였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 시작되고요.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 지휘,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젊은 에너지를 앞세운 산뜻한 연주다.

서주 없이, 첫 음부터 환하게 — 1악장

1악장 Allegro vivace는 클래식에서 가장 유명한 오프닝 중 하나입니다. 클라리넷과 호른과 바순이 8분음표로 같은 자리를 빠르게 두드리고, 그 위로 바이올린 주제가 바로 치고 들어옵니다.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느린 서주도 없고요. 하이든과 베토벤이 즐겨 쓰던 묵직한 서주를 멘델스존은 통째로 건너뛰었습니다. 첫 마디부터 전속력입니다.

잠시 뒤 등장하는 두 번째 주제는 표정이 꽤 다릅니다. 클라리넷과 바순이 한결 차분한 선율을 주고받는데, 첫 주제의 들뜬 질주 옆에 잠깐 그늘을 만드는 대목이에요. 발전부에 가면 멘델스존이 슬쩍 새 선율 하나를 더 끼워 넣어 푸가처럼 촘촘히 엮습니다. 듣는 사람은 그저 화창하다고 느끼지만, 악보 위에서는 성부들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겁니다.

이 화사함 뒤에는 연주자의 고생이 숨어 있습니다. 빠른 8분음표가 곡 내내 멈추지 않는데, 그 흐름이 끊기지 않게 받쳐야 하는 현악 주자들에게는 사실 만만치 않은 대목입니다. 객석에서 들리는 가벼움과 무대 위에서 느끼는 무게가 이렇게 다른 곡도 드뭅니다. 환한 음악일수록, 그 환함을 유지하는 데 더 큰 힘이 듭니다.

악장이 막바지로 치달으면 발전부에서 새로 끼워 넣었던 그 선율과 첫 주제가 한자리에서 맞물립니다. 따로 달리던 두 재료가 마지막에 합쳐지도록 처음부터 설계해둔 겁니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단숨에 막을 내립니다. 여운을 길게 늘이지도 않아요. 짧고 단호한 마침표입니다.

그런데 첫 악장을 끝까지 들어보면 묘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환한 음악이, 어딘가 쫓기듯 빠릅니다. 멈춰서 풍경을 구경하기보다 계속 앞으로 달립니다. 이 다급함의 정체는 마지막 악장에 가서야 분명해집니다. 일단 지금은 이 밝음을 그냥 즐기면 그만이고요.

🎧 여기서 들으세요 — 위 영상 맨 처음, 1악장 시작 1초입니다. 관악기가 콩콩 뛰는 자리 위로 바이올린이 위로 치고 올라가는 그 순간을 잡아보세요. 곡 전체의 성격이 이 몇 초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행렬이 지나간다 — 2악장

2악장 Andante con moto에서 빛이 처음으로 꺾입니다. 조성이 d단조로 내려앉고, 저음은 걷는 속도로 일정하게 움직입니다. 그 위에서 오보에와 클라리넷과 비올라가 어두운 선율을 함께 노래하는데, 딱 행렬 하나가 좁은 골목을 지나가는 장면이에요. 플루트가 위에서 같은 선율을 조용히 겹칩니다.

이 악장은 흔히 ‘순례자의 행진’이라 불립니다. 멘델스존이 나폴리에서 본 종교 행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다만 작곡가 본인이 그렇게 못 박아둔 기록은 분명치 않으니, 단정하기보다 ‘그렇게 들린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편이 정확합니다. 멜로디가 체코나 보헤미아의 옛 노래에 뿌리를 둔다는 설도 있고요. 무엇이 진짜 씨앗이든, 행렬의 이미지는 음악과 놀랄 만큼 잘 맞아떨어집니다.

악장이 흐르는 동안 선율은 좀처럼 환하게 펴지지 않습니다. 잠깐 위로 올라서려다 다시 어두운 자리로 주저앉기를 되풀이합니다. 끝에 가서도 음악은 후련하게 매듭을 짓는 대신 슬그머니 잦아듭니다. 이 미진한 마무리가 오히려 오래 남아요. 너무 깔끔하게 닫지 않은 덕입니다.

중요한 건 위치입니다. 가장 밝다는 교향곡이, 두 번째 악장에서 벌써 그늘을 한 겹 깔아둔 겁니다. 1악장이 거짓이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이 작곡가는 빛만으로 곡을 채우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행렬은 멀어지지만 끝내 환하게 풀리지 않은 채, 음악은 다음 악장으로 넘어갑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2악장 들어가자마자, 저음이 일정하게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하는 걸 들어보세요. 그 걸음 위에 얹히는 어두운 선율이, 첫 악장의 들뜬 빛과 얼마나 다른 공기인지 단번에 느껴집니다.

호른이 부르는 옛 시간 — 3악장

3악장 Con moto moderato는 시간을 거꾸로 돌립니다. 멘델스존은 당대 유행하던 격렬한 스케르초 대신, 모차르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우아한 미뉴에트를 골랐습니다. A장조의 선율이 부드럽게 흐르고, 음악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앞선 두 악장의 밝음과 그늘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예요.

진짜 마법은 가운데 트리오에서 일어납니다. E장조로 옮겨가며 호른 두 대가 조용히 들어오는데, 그 순간 음악의 표정이 확 바뀝니다. 사냥 나팔 같기도 하고, 먼 산에서 들려오는 신호 같기도 합니다. 화려하게 터뜨리는 대신 멀찍이서 부르는 이 호른 소리가, 이 악장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멘델스존은 큰 소리보다 거리감으로 사람 마음을 건드릴 줄 아는 작곡가였습니다. 악장 끝에서 그 호른이 한 번 더 짧게 돌아왔다 사라집니다.

멘델스존이 굳이 옛 미뉴에트를 고른 데는 그의 성향이 묻어 있습니다. 그는 동시대의 누구보다 바흐와 모차르트를 깊이 사랑한 사람이었어요. 새로운 것을 부수며 나아가기보다, 과거의 균형 잡힌 형식 안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쪽을 택했습니다. 베를리오즈가 거대한 관현악으로 폭발하던 바로 그 시절에, 멘델스존은 한 발 물러서서 단정한 옛 춤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이 점이 그를 ‘낭만 시대의 고전주의자’라 부르게 만든 대목입니다.

그늘로 닫는 춤 — 4악장 살타렐로

자, 멘델스존이 “가장 유쾌할 것”이라 자신했던 마지막 악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교향곡 최대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요. A장조로 활짝 열린 곡이, 마지막 악장에서는 a단조로 돌아섭니다. 가장 밝다는 교향곡이, 끝은 단조로 닫는 겁니다. 멘델스존의 다섯 교향곡 가운데, 시작과 끝의 으뜸음 성격이 이렇게 뒤집히는 곡은 이 한 편뿐이고요.

악장의 재료는 이탈리아의 민속춤입니다. 로마의 살타렐로와 나폴리의 타란텔라. 살타렐로는 이름부터 ‘뛴다’는 뜻이고, 타란텔라는 독거미에 물린 사람이 미친 듯이 춤춰 독을 푼다는 옛 전설에서 온 춤입니다. 둘 다 펄쩍펄쩍 뛰며 점점 빨라지는 격렬한 춤입니다. 멘델스존은 그 광기 어린 에너지를 그대로 오케스트라에 옮겨놓았어요.

이 대목을 들을 때마다, 사탕이 쏟아지던 로마의 거리가 떠오릅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육제의 군중, 발을 구르며 빙빙 도는 춤꾼들. 멘델스존이 눈에 담아둔 그 소란이 음악 속에서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다만 그는 이 흥겨운 춤을 끝내 밝은 조성으로 풀어주지 않습니다. 축제의 한복판인데 어딘가 쫓기고, 즐거운데 멈출 수가 없어요. 빛과 어둠이 같은 박자 위에서 동시에 도는 겁니다.

현악기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쉬지 않고 음을 쏟아냅니다. 듣기엔 신나지만 연주자에겐 악명 높은 대목입니다. 오케스트라 입단 오디션에서 이 마지막 악장이 단골 과제로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활이 한 번 엉키면 따라잡을 틈이 없거든요. 게다가 이 곡의 편성에는 트롬본도, 두툼한 금관도 없습니다. 모차르트 시절 크기의 단출한 악단이라, 한 사람의 작은 실수도 숨을 데가 없습니다. 들리는 화사함 뒤에서 주자들은 식은땀을 흘립니다.

이 악장에는 숨 돌릴 틈도 거의 없습니다. 한 번 굴러가기 시작한 춤은 중간에 멈추는 법이 없어요. 주제가 돌아오고 또 돌아오는 동안 긴장은 풀리는 대신 차곡차곡 더 조여듭니다. 듣는 사람은 신나서 발을 구르다가도, 어느 순간 이 흥겨움이 어딘가 절박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즐거움과 다급함이 끝까지 한 몸으로 붙어 달리는 겁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몰아붙이다, 곡은 단조의 마지막 화음을 쾅 내려치며 끝납니다. 당당하게 닫지 않습니다. 전속력 그대로 뚝 끊깁니다. 밝게 열고, 어둡게 닫는 곡. 이 마지막 한 수가, 단순한 ‘밝은 곡’을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곡으로 바꿔놓고요.

🎧 여기서 들으세요 — 4악장이 시작되면 현악기가 쉬지 않고 굴러가는 그 질감에 먼저 귀를 맡겨보세요. 그리고 곡의 마지막 화음. 장조로 시작한 교향곡이 단조로 내려앉으며 끝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마세요.

💡 사실은요 — ‘4번’이라는 번호 때문에 이 곡을 멘델스존의 후기작으로 아는 분이 많습니다. 사실은 정반대예요. 이 곡은 1833년, 그러니까 그가 스물네 살이던 해에 초연된 비교적 이른 작품입니다. 번호는 작곡 순서가 아니라 출판 순서를 따른 것이라, ‘3번’ 《스코틀랜드》(1842년 출판)보다 먼저 작곡됐는데도 번호는 더 뒤에 붙었습니다. (출처: Wikipedia, IMSLP)

정작 그는 이 곡을 서랍에 묻었다

초연이 성공했는데도, 멘델스존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훗날 이 곡이 자신에게 “가장 쓰라린 순간들”을 안겨줬다고 털어놓았지요. 1833년의 환호가 무색하게도, 그는 1834년 7월에 뒤의 세 악장을 대폭 손봐 개정판을 만듭니다. 그러고도 끝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 교향곡을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출판하지 않았어요.

왜 그랬는지, 정확한 속내는 본인만 알 겁니다. 분명한 건 이 사람이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다는 점입니다. 청중이 환호하고 동료가 감탄해도, 자기 귀에 거슬리는 한 줄이 있으면 그는 곡 전체를 미완성으로 취급했습니다. 우리가 듣기엔 흠잡을 데 없는 곡이, 작곡가 본인에게는 끝내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았던 셈입니다. 멘델스존이 이런 식으로 서랍에 넣어둔 곡은 한둘이 아니었고요.

같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구상한 〈종교 개혁〉 교향곡도 비슷한 운명을 맞았습니다. 그 곡 역시 멘델스존이 마뜩잖아하며 묻어두었다가, 그가 죽고 한참 뒤에야 세상에 나왔어요. 천재이자 완벽주의자였던 그에게는, 남들의 박수보다 자기 귀에 남은 한 점의 미진함이 늘 더 크게 들렸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그 까다로운 귀가 있었기에 이만한 곡이 나왔겠지만, 같은 귀 때문에 그는 끝내 이 곡과 화해하지 못했어요.

멘델스존은 1847년, 서른여덟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 교향곡이 정식으로 출판된 건 그로부터 4년 뒤인 1851년입니다. 그것도 그가 못마땅해하며 고쳐둔 개정판이 아닌, 1833년 초연 때의 원래 버전으로요. 작곡가가 끝까지 부족하다 여긴 그 첫 모습 그대로, 곡은 세상에 남았어요. 정작 그가 공들여 다듬은 개정판은 한참 뒤에야 세상에 나옵니다.

멘델스존이 직접 지휘한 런던 하노버 스퀘어 룸스의 콘서트 장면
19세기 런던의 하노버 스퀘어 룸스. 멘델스존이 활동하던 시절 런던 필하모닉 협회의 콘서트가 열리던 무대다.

버린 곡이 세계의 애창곡이 되기까지

작곡가가 서랍에 넣어둔 곡은, 그의 손을 떠나자마자 정반대의 대접을 받습니다. 1851년 출판 이후 《이탈리아》는 빠르게 연주 목록에 자리 잡았고, 오늘날에는 가장 자주 연주되고 녹음되는 교향곡의 하나로 꼽힙니다. 클래식에 처음 발을 들이는 사람에게 권하는 단골 입문곡이기도 하고요.

길이도 한몫합니다. 27분이면 교향곡치고 짧은 편이라 부담이 없고, 첫 악장의 그 환한 도입은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히지 않습니다. 광고나 영상에서 “밝고 활기찬 클래식”이 필요할 때 단골로 깔리는 배경음악이 바로 이 곡일 때가 많습니다. 작곡가가 끝내 미완성이라 여긴 음악이, 정작 세상에서는 ‘완벽하게 행복한 음악’의 대명사가 된 셈입니다.

여기엔 작은 아이러니가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듣는 건 멘델스존이 끝내 손보고 싶어 했던 그 1833년 판본입니다. 정작 그가 공들여 다듬은 1834년 개정판은 오랫동안 무대에 거의 오르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은 작곡가의 마지막 뜻보다, 그가 “아직 멀었다”며 밀어둔 첫 모습을 더 사랑한 겁니다. 예술가의 자기 검열과 세상의 취향이 이렇게 정면으로 어긋나는 경우도 드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랑하는 건, 작곡가 본인이 끝까지 실패라고 판정한 결과물입니다. 멘델스존이 부족하다며 서랍에 넣어둔 그 미완성을, 18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가 그의 대표 명작이라 부르고 있어요. 가장 환한 곡 뒤에 가장 어두운 자기 의심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 어쩌면 이 곡이 그토록 오래 사랑받는 진짜 이유가, 바로 그 빛과 그늘이 한 사람 안에 같이 들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지휘,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노장의 균형 잡힌 해석으로 전곡을 한 번 더 들어볼 차례다.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리에서 들어보면 27분 안에 큰 흐름 하나가 잡힙니다. A장조의 거침없는 밝음으로 출발해, 2악장의 어두운 행진과 3악장의 호른을 지나, a단조의 격렬한 춤으로 닫히는 구조예요. 밝게 시작해 밝게 끝나는 흔한 교향곡과는 결이 다릅니다. 이 흐름을 의식하며 들으면, 단순히 ‘기분 좋은 곡’ 이상이 들려와요.

원본 총보는 IMSLP에 무료로 공개돼 있습니다. 1악장의 그 8분음표 관악 반주가 악보 위에서 어떻게 쌓여 있는지, 직접 눈으로 따라가 보세요. 들으면서 보면, 그저 화창하게만 들리던 음악 뒤의 설계가 눈에 들어옵니다.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이 곡은 무거운 곡이 아닙니다. 그래서 연주마다 성격 차이가 더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가볍게 날리느냐, 묵직하게 다듬느냐, 옛 악기의 결을 살리느냐. 방향이 또렷한 세 장을 골랐습니다.

👑 첫 감상 추천

페터 마크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Decca · 1960

60년이 지나도 이 곡의 ‘경쾌함’ 하면 가장 먼저 불리는 녹음입니다. 무게를 덜어내고 속도감을 살린 해석이라 처음 듣기에 더없이 좋아요. 다만 묵직하고 장대한 사운드를 기대한다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Deutsche Grammophon · 1971

반대편 극단입니다. 베를린 필의 두툼하고 윤기 나는 사운드로 2악장이 특히 깊게 노래합니다. 다만 이 곡의 발랄함보다 아름다움 쪽으로 무게가 기울어, 너무 매끈하다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존 엘리엇 가디너 · 빈 필하모닉

Deutsche Grammophon · 1990년대

시대 연주의 감각으로 템포를 바짝 당겨 춤의 성격을 되살린 연주입니다. 빠르고 날카로운 살타렐로를 듣고 싶다면 제격입니다. 느긋하게 음미하는 걸 좋아한다면 다소 숨 가쁠 수 있습니다.

멘델스존 《이탈리아》 교향곡의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대략 27분 안팎입니다. 네 악장 모두 비교적 짧고 빠른 편이라, 교향곡치고 부담 없이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어요. 지휘자에 따라 25분에서 30분 사이를 오갑니다.

‘4번’이면 멘델스존의 후기 교향곡인가요?

아닙니다. 1833년에 초연된 비교적 이른 작품이에요. 번호는 작곡한 순서가 아닌 출판된 순서를 따랐기 때문이에요. 실제로는 ‘3번’ 《스코틀랜드》보다 먼저 작곡됐는데도 번호가 더 뒤에 붙었습니다.

왜 멘델스존은 이 곡을 살아생전 출판하지 않았나요?

초연은 성공했지만 멘델스존 본인이 끝내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1834년에 뒤 세 악장을 개정하고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출판을 보류했어요. 곡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인 1851년에야 정식으로 출판됐고, 그것도 개정판이 아닌 1833년 원래 버전이었습니다.

밝은 곡인데 왜 마지막이 단조로 끝나나요?

4악장이 이탈리아 민속춤 살타렐로를 a단조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A장조로 시작한 교향곡이 단조로 끝나는 건 당시로선 흔치 않은 선택이었어요. 덕분에 ‘그냥 밝기만 한 곡’이라는 인상과 달리, 빛과 그늘이 함께 있는 곡이 됐습니다.

처음 듣는다면 어떤 녹음으로 시작하면 좋을까요?

페터 마크와 런던 심포니의 1960년 Decca 녹음을 권합니다. 이 곡의 경쾌함을 가장 잘 살린 고전으로 꼽혀요. 더 묵직한 사운드를 원하면 카라얀과 베를린 필(DG, 1971), 빠르고 날카로운 춤을 원하면 가디너와 빈 필(DG)을 들어보세요.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빛과 그늘을 함께 지나는 교향곡들

한 곡이 좋아지면, 그 곡과 이야기로 이어진 다른 곡들이 더 깊게 들립니다. 멘델스존이 여행에서 이 곡을 얻었듯, 아래 교향곡들도 저마다의 장소와 마음을 음악으로 옮긴 작품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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