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 곡명
-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 BWV 1004
(Partita for Solo Violin No. 2 in D minor) — 마지막 악장이 〈샤콘느〉 - 작곡 기간
- 1717~1720년 무렵, 쾨텐
자필 정서본 표지에 ‘1720’ 기재 - 악장
- 5악장
I. Allemanda
II. Corrente
III. Sarabanda
IV. Giga
V. Ciaccona (d단조)
1. 알레만다
2. 코렌테
3. 사라반다
4. 지가
5. 차코나(샤콘느) - 편성
- 바이올린 독주 (무반주)
- 초연
- 당대 공개 연주 기록 없음
19세기 요제프 요아힘 등이 무대로 되살림 - 연주 시간
- 전곡 약 28~32분
(이 중 샤콘느만 약 13~15분)
악보 표지에 바흐가 손수 적은 제목은 이렇습니다. “Sei Solo a Violino senza Basso accompagnato.” 그런데 이탈리아어 문법이 틀렸더군요. ‘여섯 개의 독주곡’이라 쓰려면 ‘Sei Soli’여야 하는데, 바흐는 ‘Sei Solo’라 적었거든요. 그리고 ‘Sei solo’는 이탈리아어로 “너는 혼자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실수였을까요? 하필 그 표지에 ‘1720’이라는 연도가 적혀 있습니다. 바흐가 평생 자기 악보에 거의 적지 않던 날짜를. 그리고 1720년 여름, 그가 집을 비운 사이 아내가 죽어 땅에 묻혔지요.

악보 표지에 적힌, 틀린 이탈리아어
한국어권 클래식 글에서 바흐의 샤콘느는 거의 공식처럼 소개됩니다.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쓴 추모곡.” 깔끔하고, 가슴 아프고, 한 줄로 외우기 좋은 이야기지요. 그런데 원전을 한 칸씩 따라가다 보면 이 매끈한 서사에 균열이 보이더군요.
먼저 사실관계부터. 이 파르티타가 속한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6개의 소나타와 파르티타〉(BWV 1001–1006)는 1717년부터 1720년 사이에 쓰였습니다. 즉 곡 전체가 아내가 죽기 전부터 빚어지고 있었다는 뜻이거든요. 바흐가 “아내가 죽었으니 이제 추모곡을 쓰자”며 백지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는 얘기지요.
그러니 “이 곡은 아내를 위한 묘비명이다”라는 단언은, 엄밀히 말하면 증명된 적이 없습니다. 그건 하나의 가설이에요. 뒤에서 자세히 다룰, 꽤 집요한 가설이지만요.
대신 확실한 건 표지 그 자체입니다. 바흐는 정서본을 깔끔하게 베껴 쓰면서 ‘Sei Solo’라 적었고, 그 옆에 ‘1720’을 박았지요. 이탈리아어가 모국어가 아니었으니 ‘Soli’를 ‘Solo’로 틀렸다고 보는 게 가장 점잖은 해석입니다. 그런데 바흐가 누굽니까. 악보 안에 자기 이름을 음표로 숨기고(B♭-A-C-B♮ = BACH), 숫자로 신학을 암호화하던 사람이거든요. 그런 사람이 하필 자기 인생에서 가장 사적인 악보의 표지에, 가장 외로운 시기에, “너는 혼자다”라고 읽히는 단어를 적었다는 것.
우연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연이라기엔, 그가 그 표지에 굳이 날짜까지 적어 둔 게 마음에 걸립니다. 평소엔 안 하던 짓을. 그 1720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따라가 볼까요.
쾨텐: 바흐가 가장 행복했던 6년
1717년, 서른두 살의 바흐는 쾨텐이라는 작은 공국의 궁정 악장(카펠마이스터)으로 부임합니다. 이곳의 군주 레오폴트 공은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한 청년이었거든요. 직접 비올라 다 감바를 켜고, 바흐를 단순한 고용인이 아니라 동료처럼 대했지요.

중요한 건 이 궁정이 칼뱅파였다는 점입니다. 예배에 화려한 교회음악을 쓰지 않았거든요. 라이프치히 시절의 바흐가 매주 칸타타를 토해내야 했던 것과 정반대지요. 쾨텐에서 그는 교회음악의 의무에서 풀려나, 순수한 기악곡에 마음껏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무반주 첼로 모음곡, 그리고 바로 이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집이 모두 이 시기의 산물이거든요.
“무반주”라는 말을 가볍게 넘기지 마시길. 바이올린은 본래 선율 하나를 켜는 악기예요. 화음을 받쳐 줄 쳄발로도, 베이스를 깔아 줄 첼로도 없이, 네 줄짜리 악기 하나로 멜로디와 화성과 베이스를 동시에 감당하라는 것. 당대의 상식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였지요. 바흐는 그 불가능을 작곡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겁니다.
요컨대 샤콘느는 슬픔이 아니라 행복의 한복판에서 설계되기 시작했어요. 안정된 직장, 자신을 아끼는 군주, 의무에서 풀려난 창작의 자유.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지요. 그 평온이 한순간에 무너지기 전까지는요.
두 달의 여행, 그리고 사라진 아내
1720년 봄, 레오폴트 공은 보헤미아의 온천 도시 카를스바트로 요양을 떠나면서 바흐를 데려갔습니다. 군주의 음악 시중을 들기 위해서였지요. 바흐가 쾨텐을 떠날 때,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는 멀쩡히 건강했거든요. 두 사람은 사촌 사이로 결혼해 13년을 함께했고, 일곱 아이를 낳았으며, 그중엔 훗날 대작곡가가 되는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도 있었습니다.
두 달쯤 지나 바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리아 바르바라는 없었습니다.
병명도, 정확한 경위도 기록에 남지 않았어요. 다만 그녀가 1720년 7월 7일에 이미 땅에 묻힌 뒤였다는 사실만 남았지요. 바흐가 돌아오기 전에 장례까지 끝나 버린 겁니다. 훗날 그의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이 아버지의 부고문(네크롤로그)에 이 장면을 적어 두었습니다. 집을 나설 때 건강하던 아내가, 돌아와 보니 죽어 묻혀 있더라고. 작별 인사조차 없었던 죽음.
자, 여기서 그 매끈한 통념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래서 바흐가 샤콘느를 썼다.” 시간순으로는 솔깃하지요. 아내가 죽은 해, 바흐가 표지에 적어 둔 그 ‘1720’. 하지만 앞서 말했듯 곡은 그 전부터 진행 중이었고, 그가 “이건 아내를 위한 곡”이라 말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진실은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흐릿해요.
그런데 바로 그 흐릿함이 이 곡을 더 무겁게 만듭니다. 증거가 있는 추모곡은 그냥 추모곡이지요. 증명할 수 없는 침묵은, 듣는 사람이 알아서 채워 넣게 만들거든요. 바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바이올린 악장 하나를, 아내가 묻힌 그 해의 표지 아래 놓아두었을 뿐.
샤콘느에 닿기 전: 네 개의 춤
샤콘느만 따로 떼어 듣는 사람이 많지만, 원래 이 악장은 더 큰 집의 마지막 방입니다.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집은 모두 여섯 곡, 소나타 셋과 파르티타 셋이 번갈아 놓여 있거든요. 소나타들은 교회풍의 진지한 푸가를 품고, 파르티타들은 춤곡을 엮은 모음곡이지요. 그런데 여섯 곡 중 유독 이 파르티타 2번만, 춤이 아닌 것으로 끝납니다. 나머지가 점잖게 춤으로 마무리될 때, 이 곡 하나만 거대한 변주곡을 꼬리에 매단 거예요.
그 꼬리에 닿기 전, 먼저 네 개의 춤을 지나야 하지요. 첫 곡 알레만다는 점잖게 걷는 도입부예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d단조의 색을 차분히 깔아 두지요. 이어지는 코렌테는 이름 그대로 ‘달리는’ 춤입니다. 음표가 종종걸음으로 굴러가며 긴장을 슬쩍 끌어올리거든요.
세 번째 사라반다에서 음악이 처음으로 멈칫합니다. 느리고 무거운 3박자 춤이지요. 박자의 두 번째 박에 체중을 싣는 이 춤은, 본래 장중하고 슬픈 정조를 품거든요. 곡 전체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가라앉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지가가 그 무거움을 다시 흩뜨려요. 경쾌하게 뛰는 춤으로 파르티타를 산뜻하게 닫는 듯하지요. 여기까지는 누가 봐도 모범적인 춤곡 모음입니다.
그런데 끝난 줄 알았던 그 자리에서, 샤콘느가 시작됩니다. 네 개의 춤을 다 합친 것보다 긴 악장이. 점잖은 모음곡 한 편을 다 듣고 났더니, 그 뒤에 곡 전체 길이만 한 심연이 또 한 채 서 있는 셈이지요.
샤콘느라는 건축물: 네 마디의 감옥
이제 곡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파르티타 2번은 다섯 악장입니다. 알레만다, 코렌테, 사라반다, 지가 — 여기까지는 당대의 점잖은 춤곡들이지요. 그런데 마지막 차코나, 곧 샤콘느에 이르면 무게중심이 통째로 무너집니다.
이 한 악장이 앞의 네 악장을 합친 것만큼 깁니다. 악보로는 256마디, 시간으로는 13분에서 15분. 춤곡 모음의 마지막에 붙은 종결부 치고는, 꼬리가 몸통을 통째로 삼켜 버린 셈이지요.
샤콘느의 원리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네 마디짜리 화성 골격이 있어요. 베이스가 레, 도, 시♭, 라 — 네 음을 한 계단씩 밟아 내려가는 d단조의 하강 음형이지요. 이 네 마디가 곡이 끝날 때까지 끈질기게 되돌아옵니다. 바흐는 그 위에 변주를 쌓아 올려요. 네 마디 단위로 묶으면 예순네 번. 같은 화성의 감옥에 갇힌 채, 예순네 번을 다르게 탈출하는 음악인 겁니다.

이 하강 베이스라는 발상이 바흐의 발명품은 아닙니다. 같은 d단조, 같은 내림 음형 위에서 코렐리가 〈라 폴리아〉를 썼고, 17세기 유럽은 이 패턴으로 수백 곡의 변주를 만들어 냈거든요. 바흐가 한 일은 발명이 아니라 극단까지 밀어붙인 것이었어요. 모두가 쓰던 흔한 뼈대를, 바이올린 한 대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의 끝까지 끌고 간 거죠.
그런데 이 한 계단씩 내려가는 베이스에는 당대 사람들이 공유하던 속뜻이 있었습니다. 바로크 음악가들은 슬픔과 비탄을 그릴 때 이렇게 아래로 미끄러지는 베이스를 즐겨 썼거든요. 음악학자들이 ‘탄식의 베이스(라멘토)’라 부르는 음형이지요. 퍼셀이 〈디도와 아이네아스〉에서 버림받은 여왕의 죽음을 그릴 때도, 바흐 자신이 〈b단조 미사〉의 십자가 대목을 쓸 때도 이 내려가는 걸음을 깔았습니다. 그러니 샤콘느의 토대가 하필 이 음형이라는 사실은, 퇴네의 코랄 가설과 무관하게도 의미심장한 셈입니다. 바흐가 무슨 말을 하려 했든, 그가 깐 바닥돌 자체가 이미 ‘탄식’의 언어였으니까요.
1부 d단조: 끝없이 추락하는 베이스
첫 음부터 곡은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그 네 음의 하강이 베이스에서 반복되는 동안, 위쪽 성부는 처음엔 점잖게 화음을 짚다가 점점 격해지지요. 16분음표가 줄을 가로지르고, 분산화음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활이 네 줄을 한꺼번에 긁는 중음주법이 등장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 곡을 “솔로 바이올린의 에베레스트”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왼손은 화음을 짚느라 손가락이 꼬이고, 오른손 활은 네 줄을 동시에 울리려다 팔이 비명을 지르거든요. 그런데 청중에게는 그 고투가 들리면 안 됩니다. 사투를 벌이면서도 노래처럼 들려야 하는 것. 그게 이 악장이 연주자에게 거는 잔인한 요구지요.
2부 D장조: 어둠 속에서 열리는 창
곡의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빛이 듭니다. 조성이 d단조에서 같은 으뜸음의 D장조로 바뀌거든요. 같은 자리, 같은 뿌리인데 색이 통째로 갈리는 순간이지요.
여기서 바흐는 바이올린으로 거의 오르간 소리를 냅니다. 펼침화음이 위로 솟구치고, 두 줄이 나란히 노래하면서 마치 두 사람이 화답하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어떤 이는 이 대목에서 천국의 빛을 듣고, 어떤 이는 잠시 허락된 기억의 평화를 듣지요. 무엇을 듣든, 이 장조 구간이 끝나고 다시 단조로 떨어질 때의 그 낙차가 곡 전체에서 가장 아픈 지점입니다.
3부 d단조: 돌아온 자리, 그러나 같지 않은
장조의 빛이 사그라지고, 처음의 그 하강 베이스가 돌아옵니다. 형식상으로는 1부로의 복귀(A-B-A)지요. 하지만 같은 자리에 돌아왔다고 같은 마음일 리가요. 빛을 한 번 본 뒤에 듣는 어둠은, 처음의 어둠과 다른 무게를 갖거든요.
마지막 변주들에서 바흐는 다시 한번 모든 걸 쏟아붓습니다. 그리고 곡은 가장 단순한 자리로 돌아와 끝나요. 처음 그 네 음. 거대한 건축물을 다 짓고 난 뒤, 결국 출발점의 작은 모티프 위에 마침표를 찍는 겁니다. 떠난 자리로 돌아오는 것 — 어쩌면 이 곡 전체가 그 한 문장을 음악으로 옮긴 것인지도 모르지요.
숨겨진 코랄: 한 음악학자의 집요한 가설
이제 아까 미뤄 둔 그 “추모곡 가설”의 정체를 밝힐 차례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흐가 아니라, 헬가 퇴네라는 독일 음악학자예요.
1990년대, 뒤셀도르프의 퇴네 교수는 샤콘느를 마디 단위로 해부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주장은 충격적이었어요. 이 악장의 음표들 속에, 루터교 코랄(찬송가)의 선율이 숨어 있다는 것. 그것도 하나같이 죽음과 부활을 노래하는 곡들이었거든요. 〈그리스도는 죽음의 포박에 누우셨네〉, 〈예수, 나의 기쁨〉 같은.
퇴네는 음표를 숫자로 바꾸는 게마트리아(수비학)까지 동원했습니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이 실제로 숫자에 신학적 의미를 담곤 했으니, 아예 근거 없는 접근은 아니었지요. 그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숨은 코랄들을 실제 합창으로 끄집어내 보였어요.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토프 포펜과 힐리어드 앙상블이 함께 만든 음반 〈모리무어(Morimur)〉가 그 결과물입니다. 바이올린이 샤콘느를 켜는 동안, 그 위로 숨어 있던 찬송가가 사람 목소리로 떠오르도록.
섬뜩하리만치 그럴듯하지요. 그래서 이 가설이 위험합니다. 학계의 반응은 둘로 갈렸거든요. 한쪽은 감동했고, 마르틴 게크 같은 학자들은 “사변적”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충분히 긴 악보에서 짧은 선율 조각을 찾으려 들면, 우연히 겹치는 음형은 얼마든지 나오는 법이니까요. 퇴네가 발견한 게 바흐의 의도인지, 듣고 싶은 사람의 귀에만 들리는 무늬인지는 아무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가설을 ‘사실’이 아니라 ‘거울’로 봅니다. 퇴네의 코랄이 정말 거기 있는지보다 더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왜 그토록 거기 있기를 바라는가예요. 그건 우리가 이 음악에서 이미 죽음과 위로를 듣고 있다는 증거거든요. 가설이 맞아서 곡이 슬픈 게 아니라, 곡이 그렇게 들리니까 가설이 태어난 거지요.
19세기가 이 곡을 그냥 두지 못한 이유
바흐 사후, 이 악보는 한동안 잊혔습니다. 그러다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이 다시 펼쳐 들었을 때, 그들은 묘한 곤란에 빠졌어요. 바이올린 한 대가 이런 우주를 감당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멘델스존과 슈만은 친절을 베풀었지요. 무반주 바이올린 옆에 피아노 반주를 덧붙인 겁니다. 혼자 두면 외로워 보였던 모양이에요. 페루초 부조니는 한 술 더 떠, 1893년에 이 곡을 웅장한 피아노 독주곡으로 통째로 옮겼습니다. 오르간처럼 두꺼운 화음을 쌓아 올린 그 편곡은 지금도 피아니스트들의 단골 앙코르지요.

그런데 가장 인상적인 반응은 브람스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부조니처럼 곡을 화려하게 부풀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정반대로 갔지요. 피아노 왼손 하나만으로 치도록 편곡한 겁니다. 바흐가 바이올린 한 대에 건 제약을, 브람스는 손 하나라는 제약으로 옮긴 셈이에요.
사연이 있었습니다. 1877년, 클라라 슈만이 오른손 근육을 다쳐 한동안 한 손으로밖에 칠 수 없었거든요. 브람스는 그녀를 위해 이 왼손 편곡을 보냈고, 클라라는 그걸 “영광스러운 피난처”라 불렀습니다. 다친 손으로도 들어갈 수 있었던, 바흐라는 피난처.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 곡에 대한 가장 유명한 한 줄이 적혀 있어요. “한 줄 보표 위에, 작은 악기 하나를 위해, 이 남자는 가장 깊은 생각과 가장 강렬한 감정으로 이루어진 세계 전체를 써넣었다.” 작곡가가 작곡가를 보고 느낀 경외. 브람스조차 이 한 악장 앞에서는 한낱 독자였던 겁니다.
훗날 예후디 메뉴인은 이 곡을 “솔로 바이올린을 위해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구조물”이라 했고, 조슈아 벨은 “역사상 한 인간이 이뤄 낸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라 불렀습니다. 바이올린 한 대, 한 줄 보표, 15분. 그 작은 그릇에 담긴 것의 크기를, 후대의 거장들은 입을 모아 인정했던 거예요.
그 후의 바흐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고 싶어요. 이 곡을 ‘슬픔에 무너진 남자의 유서’처럼 읽으면, 정작 바흐라는 사람을 놓치게 되거든요. 그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잃은 지 열일곱 달 뒤인 1721년 12월, 바흐는 다시 결혼합니다. 상대는 쾨텐 궁정의 젊은 소프라노 안나 막달레나 빌케였어요. 그녀는 바흐보다 열여섯 살 아래였고, 음악을 깊이 이해했으며, 훗날 남편의 악보를 손수 베껴 쓰는 동반자가 되지요. 두 사람은 또 열셋의 아이를 낳습니다. 슬픔 위에 삶이 그대로 이어진 거예요.
그러니 샤콘느는 절망의 기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요. 가장 단순한 네 마디의 화성 위에서, 한 인간이 가능한 모든 것을 길어 올리는 음악. 슬픔도 거기 있고, 빛도 거기 있고, 끝내 다시 일어서는 의지도 거기 있거든요. 표지에 적힌 “너는 혼자다”라는 말이 사실이었다 해도, 이 곡은 그 고독에 잡아먹히지 않습니다. 혼자인 채로, 바이올린 한 대로, 세계 전체를 지어 올렸으니까요.
악보와 함께 듣기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어 볼 수 있어요.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 BWV 1004 악보 보기 (IMSLP)
15분을 건너는 일
솔직히 말하면, 이 곡은 듣는 사람에게도 만만치 않은 요구를 합니다. 흥얼거릴 후렴도 없고, 당신을 떠받쳐 줄 오케스트라도 없거든요. 바이올린 한 대, 15분, 그리고 끝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네 마디의 패턴뿐이지요. 배경음악으로 틀어 놓으면 그저 단조로운 바이올린 소리로 흘러가 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한 번만 작정하고 귀를 열어 보시길. 같은 베이스가 돌아올 때마다 그 위의 풍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한가운데서 어떻게 빛이 들었다가 다시 닫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15분이 통째로 사라져 있을 거예요. 이 곡이 무서운 건 화려해서가 아닙니다. 가장 적은 재료로 가장 멀리까지 데려가기 때문이지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 곡을 평생 아껴 두었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이 곡이 자주 울리는 것도요. 화려한 기교곡은 박수를 받지만, 샤콘느는 침묵을 받거든요. 연주가 끝난 뒤 객석이 숨을 멈추는 그 짧은 정적 — 어쩌면 그게 이 곡이 진짜로 노리는 마지막 음표일지도 모르지요. 한 번쯤은 다른 일 다 멈추고, 이 15분에 온전히 자리를 내어 줄 가치가 있습니다.
어떤 샤콘느를 들을 것인가
같은 15분인데, 연주자마다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리는 게 이 악장의 무서운 점입니다. 입문용으로 셋만 골랐어요.
나탄 밀스타인 (DG, 1973) — 구조가 귀에 보이는 연주입니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곡의 설계도를 또렷이 그려 내거든요. 다만 따뜻한 위로를 기대하면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 있어요. 정본으로 한 장만 꼽으라면 이쪽입니다.
이차크 펄만 (EMI) — 노래하는 샤콘느예요. 한 음 한 음을 사람 목소리처럼 둥글게 굴려, 가장 듣기 편한 입구를 내어 줍니다. 대신 바흐의 엄격한 건축미를 원하는 사람에겐 너무 달게 들릴 수도 있지요.
힐러리 한 (Sony) — 투명하고 정밀합니다. 흐트러짐 없이 빛나는 선이 매력이지요. 다만 거친 인간적 투쟁의 흔적을 듣고 싶다면 지나치게 매끈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깨끗한 첫인상을 원한다면 제격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샤콘느는 정말 바흐가 죽은 아내를 추모하며 쓴 곡인가요?
‘샤콘느’와 ‘차코나’는 다른 곡인가요?
바이올린 한 대로 어떻게 여러 성부를 동시에 연주하나요?
피아노 샤콘느도 있던데, 원곡은 무엇인가요?
입문자가 듣기엔 너무 길고 어렵지 않나요?
혼자 걷는 음악들
클래식은 한 곡만 따로 들을 때보다, 곁에 둘 만한 다른 곡과 함께 들을 때 더 깊어지거든요. 샤콘느가 건드린 고독과 애도, 그리고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다른 각도에서 비춰 줄 글들을 모았습니다. 바흐의 더 큰 세계에서 시작해, 같은 줄을 켜는 명곡들로 이어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