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 곡명
- 마태 수난곡 BWV 244
(Matthäus-Passion / St Matthew Passion) - 작곡 시기
- 1727년, 라이프치히
- 대본
-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헨리치 (필명 피칸더)
- 편성
- 두 개의 합창단 · 두 개의 오케스트라
코랄 정선율을 부르는 소년 합창단
독창: 복음사가(테너), 예수(베이스),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 초연
- 1727년 4월 11일(성금요일)로 보는 게 정설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 악곡 수
- 68곡(신바흐전집 NBA) · 78번(BWV 분류)
- 연주 시간
- 약 2시간 40분 ~ 3시간
서양 음악이 낳은 가장 위대한 종교곡을 한 편만 꼽으라면, 적지 않은 사람이 이 곡을 댑니다. 그런데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1750년에 눈을 감은 뒤로, 이 거대한 곡은 거의 80년 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했거든요. 악보는 라이프치히 어느 찬장 안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었지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음악이, 어쩌다 한 세기 가까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다시 깨운 사람이 스무 살짜리 청년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다시 써야 할까요.
라이프치히의 지친 음악감독
1723년, 서른여덟의 바흐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어 자리에 앉습니다. 말이 좋아 음악감독이지, 실상은 도시의 음악 잡역부에 가까웠더군요. 주요 교회 네 곳의 예배 음악을 책임지고, 기숙학교 소년들에게 라틴어와 노래를 가르치고, 봉급 문제로 시 의회와 끝없이 실랑이를 벌이는 자리. 게다가 거의 매주 새 칸타타를 한 편씩 써서 일요일 예배에 올려야 했거든요.
당대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솜씨 좋은, 조금은 고리타분한 교회 오르가니스트 정도로 여겼지요. 라이프치히 시 의회가 칸토어를 뽑을 때도 바흐는 1순위가 아니었습니다. 더 유명하던 후보들이 줄줄이 자리를 마다하자, 한 의원이 남긴 말이 의사록에 박혀 있거든요. “최고를 구할 수 없으니, 차선이라도 받아들여야겠지요.” 그 ‘차선’이 바로 바흐였습니다.

그가 동원할 수 있던 인원은 늘 빠듯했습니다. 1730년, 바흐는 시 의회에 〈제대로 된 교회 음악을 위한, 짧지만 가장 절실한 제안서〉라는 글을 올려 대놓고 불평했거든요. 합창과 연주를 감당할 만한 학생이 턱없이 모자라다, 이 인원으로는 수준 높은 음악이 불가능하다고요. 그런 형편에서 그는 하필 합창단 둘과 오케스트라 둘을 한꺼번에 요구하는 괴물 같은 곡을 써냈습니다. 가진 자원과 품은 야심 사이가 이토록 벌어진 작곡가도 흔치 않을 겁니다.
바흐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끝없는 잡무와 모자란 인력, 의회와의 신경전 속에서도 매주 새 음악을 토해내던 일꾼. 화려한 궁정의 영예와는 거리가 먼, 그저 묵묵히 자기 책상을 지킨 직업 음악가였지요. 그런 고단한 일상의 한복판에서 서양 음악사 최대의 종교곡이 솟아났다는 사실이야말로, 어쩌면 이 곡을 둘러싼 가장 놀라운 대목일지도 모릅니다. 천재는 번개처럼 내리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매일의 노동 속에서 조용히 쌓여 어느 날 터지는 것이겠지요.
바로 이 빠듯한 일상 한가운데서, 바흐는 1년에 단 한 번 자기 역량을 통째로 쏟아붓는 무대를 준비했습니다. 성금요일 저녁 예배, 곧 수난곡이었지요. 그해의 음악적 정점이자 도시 전체가 숨죽이고 기다리는 행사. 1727년 성금요일, 성 토마스 교회의 양쪽 오르간 자리에 합창단이 둘로 나뉘어 섰을 때, 라이프치히 사람들은 아직 자기들이 무엇을 듣게 될지 몰랐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음악은 아마 그들의 예상을 한참 벗어났을 테지요. 성경 이야기를 이토록 극적으로, 마치 무대 위 연극처럼 쏟아낸 교회 음악은 흔치 않았거든요. 실제로 당대엔 이렇게 생생한 수난 음악을 두고 “이게 예배인가, 오페라인가” 하며 눈살을 찌푸린 신자들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거룩해야 할 성금요일에 극장에서나 들을 법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끌어들였으니, 보수적인 귀에는 불경하게 들렸을 만도 했겠지요. 바흐는 그 경계를 일부러 넘나든 사람이었습니다.
대본은 시인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헨리치가 맡았습니다. 필명은 피칸더. 평소엔 풍자시와 농담조 운문을 쓰던 사람이, 마태복음 26·27장의 수난 이야기 사이사이에 묵상의 시를 끼워 넣었거든요. 성경 원문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이 장면을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을 덧대는 구조. 바흐는 이 이중 구조를 음악으로 받아, 단순한 예배곡이 아니라 세 시간짜리 거대한 드라마로 키워냈지요.
사실 성금요일에 수난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는 전통 자체는 바흐의 발명품이 아니었습니다. 루터교 독일에서는 오래전부터 해마다 수난곡을 불러왔거든요. 다만 대개는 복음서를 담담하게 읊는 소박한 형식이었지요. 바흐는 그 낡은 그릇에 오페라의 극성과 칸타타의 서정, 회중 찬송의 친밀함을 한꺼번에 들이부었습니다. 전통의 틀은 지키되 그 안을 폭발시킨 셈이지요. 결과물은 더 이상 ‘예배용 음악’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무언가가 되어버렸습니다.

두 개의 합창단이 서로에게 말을 건다
마태 수난곡을 처음 마주한 사람이 가장 먼저 놀라는 건 음악의 규모가 아니라 그 배치입니다. 바흐는 합창단을 하나가 아니라 둘로 갈라놓았거든요. 각 합창단에는 저마다 별도의 오케스트라가 딸려 있고요. 두 덩어리의 소리가 교회 양쪽에서 서로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는 구조. 스테레오 음향이 발명되기 200년도 더 전에, 바흐는 이미 소리를 좌우로 쪼개 던지고 받는 설계를 해버린 셈입니다.
여기에 한 겹이 더 얹힙니다. 곡을 여는 거대한 합창 〈오라, 너희 딸들아(Kommt, ihr Töchter)〉를 들어보면, 두 합창단이 격앙된 문답을 주고받는 와중에 그 위로 맑고 가느다란 선율이 떠오르거든요. 소년 합창단이 부르는 옛 코랄 〈오 하느님의 어린양〉입니다. 슬픔에 잠긴 두 무리의 어른들 머리 위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죄 없는 희생양의 노래를 흘려보내는 장면. 가사 한 줄 모르고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도입부지요.
이게 단순한 과시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두 합창단은 그냥 음량을 키우려고 나뉜 게 아니었거든요. 한쪽은 ‘시온의 딸들’, 곧 사건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무리이고, 다른 쪽은 “누구를? 어떻게? 어디로?” 하고 끼어들어 묻는 무리입니다. 음악이 곧 연극의 두 배역인 셈이죠. 바흐는 신학적 구조를 공간 음향으로 번역해버린 겁니다.
실제 연주 장면을 떠올려 보면 이렇습니다. 성 토마스 교회 서쪽 끝의 큰 오르간 자리에 제1합창단과 제1오케스트라가 서고, 그 맞은편 작은 자리에 제2합창단과 제2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잡습니다. 소리는 공간을 가로질러 오가고, 회중은 그 사이에 앉아 양쪽에서 쏟아지는 음향에 통째로 둘러싸이지요. 건물 그 자체가 거대한 악기가 되는 구조. 사실 녹음으로는 절반밖에 전해지지 않는, 그 공간에 몸을 두어야만 완성되는 음악인 까닭입니다.
여기에 세 번째 무리가 더 얹힙니다. 곡을 여는 거대한 합창에서 두 합창단 위로 코랄 선율을 띄우는 소프라노 그룹이지요. 바흐 시대 라이프치히에서는 이 윗선율을 소년들이 맡았습니다. 두 덩어리의 합창 위로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한 겹 더 쌓이면, 음향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가 됩니다. 오늘날 이 곡을 제대로 올리려면 독창자와 합창단, 두 오케스트라까지 합쳐 100명 안팎이 무대에 서야 하거든요. 인원이 모자란다고 그렇게 하소연하던 바흐가 정작 이런 규모를 밀어붙였다는 게, 다시 봐도 무모하면서 위대하지요.
복음사가, 예수, 그리고 소리치는 군중
세 시간짜리 곡을 끌고 가는 건 한 명의 테너입니다. 복음사가(에반겔리스트)라 불리는 이 인물은 마태복음의 이야기를 건조한 낭송조로 읊어 나가거든요. 반주는 거의 없습니다. 화음 몇 개만 띄엄띄엄 받쳐줄 뿐. 그래서 오히려 말 하나하나가 또렷이 박힙니다. 그가 “그리고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라고 읊는 순간, 청중은 사건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한 착각에 빠지지요.
예수가 입을 열 때는 분위기가 통째로 바뀝니다. 베이스 성부가 맡은 예수의 말에는 늘 현악기들이 부드러운 후광처럼 깔리거든요. 음악학자들이 ‘현악의 광배(光背)’라 부르는 이 장치 덕분에, 예수가 말할 때마다 그 주위에 빛이 돌듯한 느낌이 생깁니다. 그런데 바흐는 단 한 곳에서 이 후광을 거둬버립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엘리 엘리 라마 아삽타니(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는 그 대목. 후광이 사라지고 목소리만 맨몸으로 남는 순간, 신이 인간으로서 가장 외로운 바닥에 닿았음을 음악이 말없이 그려냅니다.
바흐는 이렇게 말 하나하나를 소리로 옮기는 데 천재였습니다. 예수가 숨을 거두는 순간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자, 현악기들이 똑같이 위에서 아래로 우르르 미끄러져 내리거든요. 곧이어 땅이 흔들렸다는 대목에선 저음 현이 부르르 떨며 지진을 흉내 냅니다. 가사를 한 줄도 못 알아들어도, 음악만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앞에 보이는 거죠. 단어를 소리로 번역하는 일, 그게 바흐가 평생 갈고닦은 기술이었습니다.
군중은 또 어떻고요. “바라바를 풀어달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무리가 소리칠 때마다 두 합창단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날카롭게 몰아붙입니다. 푸가처럼 짜인 이 군중 합창은 듣는 사람을 그 광장 한복판에 세워놓거든요. 그리고 사건이 격해질 때마다, 회중이 부르던 익숙한 찬송가 가락이 끼어들어 잠시 숨을 고르게 합니다. 무대 위 비극과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 그 둘을 음악이 끊임없이 오가는 구조.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오페라라고 불리기를 거부하는 오페라인 셈이죠.
방금 말한 그 찬송가 가락, 곧 코랄이야말로 이 곡의 숨은 병기입니다. 코랄은 바흐 시대 회중이 다 함께 부르던, 누구나 아는 익숙한 멜로디였거든요. 그것이 극의 가장 아픈 길목마다 끼어든다는 건, ‘지켜보는 우리’가 음악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2천 년 전 사건이 갑자기 나의 노래, 나의 고백으로 바뀌는 순간. 바흐는 청중을 구경꾼 자리에 가만두지 않고, 자꾸만 사건의 곁으로, 애도하는 사람의 자리로 끌어당기지요.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야기가 가장 격해지는 순간마다 음악이 오히려 멈춰 선다는 점이에요. 예수가 붙잡히고, 매를 맞고, 십자가를 지는 사건 사이사이에 바흐는 긴 아리아를 끼워 넣어 시간을 정지시키거든요. 사건은 복음사가가 빠르게 전하고, 그 충격을 곱씹는 묵상은 아리아가 느리게 받습니다. 흘러가는 서사와 고이는 감정이 번갈아 교차하는 설계. 덕분에 세 시간이라는 긴 호흡이 지루함이 아니라 깊이로 쌓여 가지요.

열한 번의 “주여, 저입니까”
1부의 한가운데, 예수와 열두 제자가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예수가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고 입을 떼는 순간, 식탁이 술렁이거든요. 제자들은 차례로 “주여, 저입니까(Herr, bin ich’s)?” 하고 묻습니다. 그런데 합창으로 터져 나오는 이 물음이 정확히 열한 번이라는 사실, 알고 들으면 등골이 서늘해지지요. 제자는 열둘인데 왜 열한 번일까요? 그 무리에 끼지 않은 한 사람, 유다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정작 배신자인 그는 “주여”라는 호칭조차 붙이지 않고 따로 묻거든요. 숫자 하나에 죄의 무게를 숨겨놓은 셈이죠.
숫자에 의미를 새기는 바흐의 버릇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가 빵과 잔을 나누며 “너희 모두 이것을 마셔라” 하고 말하는 대목, 그 반주의 저음을 세어 보면 정확히 116개라는 분석이 있거든요. 시편 116편 12절이 “내가 구원의 잔을 받으리라”라고 노래하는 바로 그 구절이지요.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악보 안에 박아둔 신학. 바흐는 이런 암호를 곡 곳곳에 숨겨두는 사람이었습니다.
식사 뒤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갑니다. “내 마음이 죽을 만큼 슬프다.” 그렇게 토로하며 제자들에게 깨어 함께 있어 달라 청하지만, 정작 그들은 잠에 빠져버리거든요. 가장 두려운 밤에 홀로 남겨지는 인간 예수의 고독. 곧 유다가 무리를 이끌고 와 입맞춤으로 스승을 가리키고, 병사들이 예수를 붙잡습니다.
1부는 여기서 폭발합니다. 예수가 끌려가자 두 합창단이 한꺼번에 일어나 부르짖거든요. “번개와 천둥은 구름 속에 사라졌는가!” 하늘은 이 불의를 보고도 어찌 잠잠하냐는 분노의 절규. 두 무리가 서로의 외침을 받아 점점 더 거세게 몰아치다가, 곡 전체가 무너지듯 1부가 닫힙니다. 원래 이 자리에서 목사의 설교가 한 시간 남짓 이어졌으니, 청중은 그 격앙된 여운을 안고 한참을 앉아 있어야 했을 테지요.
용서를 구하는 건 목소리가 아니라 바이올린이다
이 거대한 곡의 한복판에, 누구나 한 번은 멈춰 서게 되는 6분이 있습니다. 39번 아리아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장면은 이렇습니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스승이 잡혀가던 밤, 사람들이 “너도 그 일당이지?” 하고 다그치자 세 번이나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고 잡아뗐거든요. 그 순간 닭이 웁니다. 예수가 예언했던 바로 그대로. 복음사가는 “그리고 그는 밖으로 나가 비통하게 울었다”라고 읊고, 음악은 그 ‘비통하게’라는 한 단어 위에서 길게 무너져 내립니다.
그리고 알토가 노래를 시작하지요. 그런데 진짜 주인공은 사람 목소리가 아닙니다. 알토 곁에서 독주 바이올린 하나가 흐느끼듯 선율을 그어 내려가거든요. 베드로가 차마 말로 못 하는 죄책감을, 바흐는 노래가 아니라 바이올린에게 맡겼습니다. 활이 현을 긁으며 토해내는 그 탄식은 어떤 가사보다 정확하게 후회의 모양을 그려냅니다. 이 바이올린 독주를 두고 “바이올린을 위해 쓰인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 평한 말이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그 6분의 무게는 묵직하거든요.
흥미로운 건 이 간절한 용서의 기도가 예수가 아니라 베드로, 곧 가장 인간적으로 무너진 제자의 자리에서 흘러나온다는 점이에요. 신을 향한 거창한 참회가 아니라, 그저 한 번 비겁했던 인간의 떨리는 뉘우침. 그래서 이 노래는 신앙이 있든 없든 곧장 가닿거든요. 누군들 돌이키고 싶은 밤 하나쯤 없을까요.
세 시간 내내 신학과 군중과 코랄이 몰아치다가, 딱 이 한 곡에서 모든 게 멈추고 한 인간의 무너짐만 남습니다. 마태 수난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자신이 없다면, 솔직히 여기 이 6분만 들어도 됩니다. 이 곡이 무엇을 하려는 음악인지, 〈불쌍히 여기소서〉가 통째로 보여주거든요.
반주가 사라지는 단 한 곡
2부에는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순간이 숨어 있습니다. 빌라도가 군중에게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악한 일을 했느냐” 묻는 대목, 그 직후 소프라노가 부르는 아리아 〈사랑으로 나의 구주는 죽으려 하시네(Aus Liebe)〉예요.
이 곡이 특별한 이유는 더해진 것이 아니라 빠진 것에 있습니다. 바흐가 여기서 저음 악기를 통째로 들어내 버렸거든요. 곡을 아래에서 받쳐줘야 할 베이스 라인도, 오르간이 깔아주는 통주저음도 없습니다. 소프라노 위로 플루트 하나와 오보에 다 카차 둘만이 가느다랗게 얹힐 뿐. 발밑의 땅이 꺼진 듯, 허공에 떠버린 소리. 세상의 모든 받침대를 내려놓고 오직 사랑 하나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그 마음을, 바흐는 ‘있어야 할 소리를 비우는’ 방식으로 그려냈습니다. 무엇을 더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빼서 의미를 만드는 솜씨. 이게 바흐가 200년을 앞서간 자리지요.
이런 장면 하나하나가 쌓이면서, 마태 수난곡은 종교 의례를 훌쩍 넘어선 인간 드라마가 됩니다. 믿음이 있든 없든, 배신과 후회, 두려움과 사랑, 그리고 상실이라는 누구나 아는 감정들이 음악의 살갗으로 만져지거든요. 2천 년 전 한 사람의 마지막 며칠이, 듣는 이의 가장 사적인 기억과 포개지는 순간. 그게 이 곡이 시대와 종교를 넘어 살아남은 진짜 이유일 겁니다.
한 멜로디가 다섯 번, 점점 더 낮은 곳에서 돌아온다
곡을 듣다 보면 같은 찬송가 가락이 자꾸 되돌아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오 피와 상처로 가득한 머리(O Haupt voll Blut und Wunden)〉. 우리에게는 ‘수난 코랄’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그 선율이지요. 바흐는 이 한 가락을 수난곡 곳곳에 무려 다섯 번이나 박아 넣었거든요.
그런데 이 멜로디의 출신이 좀 의외입니다. 원래는 종교곡이 아니었거든요. 1600년 무렵 한스 레오 하슬러가 쓴 세속 가요 〈내 마음이 어지럽네(Mein G’müt ist mir verwirret)〉, 한 남자가 어떤 아가씨에게 마음을 빼앗겨 끙끙 앓는 사랑 노래였습니다. 그 흔한 짝사랑 타령이 반세기 뒤 시인 파울 게르하르트의 손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머리를 노래하는 성가로 둔갑한 거죠. 연애편지가 기도문이 된 셈입니다.
바흐는 이 한 가락을 다섯 번 등장시키되, 매번 화성을 다르게 입혔습니다. 사건이 비극으로 깊어질수록 화음은 점점 더 어두운 쪽으로 미끄러지고, 조성은 한 단계씩 가라앉거든요. 같은 멜로디인데 들을 때마다 무게가 달라지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가 숨을 거둔 직후에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다섯 번째 코랄은, 화성이 가장 낯설고 불안하게 흔들립니다. 하나의 가락이 곡 전체를 꿰는 실이 되어, 점점 더 깊은 바닥으로 우리를 끌고 내려가는 구조. 200년 뒤 영화음악이 ‘주제 선율 반복’으로 관객을 길들이는 수법을, 바흐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겁니다.
이 가락은 마태 수난곡 바깥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찬송가집에 〈오 거룩하신 주님〉 같은 제목으로 실려 여전히 불리거든요. 한 무명 작곡가의 사랑 노래가 게르하르트의 시를 입고, 다시 바흐의 화성을 거쳐, 400년이 지난 지금도 수난주간이면 어김없이 울려 퍼지는 셈이지요. 멜로디 하나의 수명이 이토록 길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랍지 않나요.

눈물로 자리에 앉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고, 무덤에 묻힙니다. 그리고 마태 수난곡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방식으로 끝나지 않거든요. 부활의 환희도, 승리의 팡파르도 없습니다. 이 곡은 처음부터 ‘수난’까지만 그리기로 한 음악이니까요.
마지막 합창 〈우리는 눈물 흘리며 주저앉습니다(Wir setzen uns mit Tränen nieder)〉. 두 합창단이 비로소 하나로 모여, 무덤가에 둘러앉은 이들의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격정은 가라앉고, 음악은 아이를 재우는 자장가처럼 느리게 흔들리거든요. 분노도 절규도 다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깊은 슬픔과, 그 슬픔을 함께 견디는 사람들의 온기. 세 시간짜리 거대한 드라마가 통곡이 아니라 나직한 작별로 닫히는 이 마무리야말로, 어쩌면 마태 수난곡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머무는 대목일 겁니다.
그리고, 한 세기 가까이 찬장 속에 잠들다
이쯤 되면 이 곡이 초연 즉시 불멸의 명작으로 떠받들어졌을 것 같지요.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바흐는 살아 있는 동안 이 수난곡을 라이프치히에서 몇 차례 더 올렸을 뿐입니다. 그가 1750년에 세상을 떠나자, 음악의 유행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 있었거든요. 사람들은 가볍고 우아한 새 양식을 원했고, 곧이어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시대가 열립니다. 바흐의 빽빽한 대위법은 ‘낡고 어려운 옛날 음악’ 취급을 받았지요. 한때 라이프치히를 떠받치던 거장의 이름은, 음악사의 각주로 밀려나기 시작합니다.
마태 수난곡의 운명도 그랬습니다. 인쇄된 적도 없이 몇 부의 필사본으로만 남아, 베를린의 한 음악 단체와 몇몇 수집가의 서가에서 잠들었거든요. 악보를 가진 이들조차 “이건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곡이 아니다”라고 여겼습니다. 너무 길고, 너무 어렵고, 너무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는 음악은 그렇게,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종이 뭉치가 되어 80년을 흘려보냅니다.
심지어 한동안 음악계에서 ‘바흐’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를 비롯한 그의 아들들이 당대엔 훨씬 유명했거든요. 사람들은 아버지 바흐를 ‘늙은 가발’, 곧 시대에 뒤떨어진 옛 양식의 표상쯤으로 떠올렸지요. 모차르트와 베토벤조차 그의 악보를 어렵사리 구해 몰래 공부했을 만큼, 바흐의 진짜 깊이는 소수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전해지던 비밀에 가까웠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곡이 우리 손에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슬아슬한 행운이에요. 바흐의 적잖은 작품이 사후에 흩어지고 영영 사라졌거든요. 마태 수난곡 역시 자칫 누구도 펼치지 않는 악보 더미에 묻혀 끝났을 수 있었습니다. 그 종이 뭉치가 하필 한 음악 가문의 서가에 살아남았고, 하필 그 집안의 손자가 음악 신동이었다는 우연이 겹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이 곡의 존재조차 몰랐을지 모르지요.
스무 살이 일으킨 부활
여기서 한 소년이 등장합니다. 펠릭스 멘델스존. 유대 계몽주의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의 손자로, 어릴 때 개신교 세례를 받고 자란 부유한 베를린 집안의 음악 신동이었지요.
10대 시절, 멘델스존은 할머니 벨라 살로몬에게서 뜻밖의 선물을 받습니다. 마태 수난곡의 필사본 악보였거든요. 소년은 그 종이 뭉치에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친구이자 배우였던 에두아르트 데브리엔트와 함께, 무모한 계획을 세우지요. 80년 동안 아무도 무대에 올리지 못한 이 괴물 같은 곡을, 직접 되살려 보겠다는 것.

두 사람은 멘델스존의 스승이자 베를린 징아카데미를 이끌던 카를 프리드리히 첼터를 끈질기게 졸랐습니다. 첼터는 그 곡의 악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무대에 올릴 엄두를 못 내던 사람이었거든요. 처음엔 손사래를 쳤지요. 너무 어렵다, 청중이 견디지 못한다며. 하지만 젊은이들의 집요함에 결국 징아카데미의 합창단과 연주회장을 내어줍니다.
1829년 3월 11일, 베를린 징아카데미. 스무 살의 멘델스존이 지휘봉을 들었습니다. 아리아 일부와 합창을 덜어낸 축약본이었지만, 그래도 한 세기 가까이 침묵하던 곡이 마침내 다시 울린 겁니다. 표는 매진됐고, 객석은 압도당했으며, 공연은 곧바로 재연됐지요. 잊혔던 바흐라는 이름이 그 밤을 기점으로 되살아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게 된 출발점이, 바로 이 스무 살 청년의 무대였던 까닭입니다.
그날 밤의 공기는 어땠을까요. 표는 일찌감치 동났고, 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길을 돌린 사람만 천 명이 넘었다고 전해집니다. 객석에는 베를린의 내로라하는 지식인과 명사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지요. 한 세기 동안 묻혀 있던 음악이 처음으로 다시 울리는 순간을, 그들은 자기들이 역사의 한가운데 앉아 있다는 걸 직감하며 들었을 겁니다. 공연이 끝나자 반응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며칠 뒤 같은 곡을 한 번 더 무대에 올려야 했거든요.
이 한 번의 무대가 일으킨 파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베를린의 성공 소식이 독일 전역으로 번지면서, 곳곳에서 잊혔던 바흐의 악보를 다시 꺼내 들기 시작했거든요. 그로부터 20여 년 뒤인 1850년에는 바흐의 작품을 모두 모아 출판하려는 바흐 협회가 결성되기에 이릅니다. 한 청년이 할머니의 선물에서 시작한 일이, 결국 음악사를 거슬러 올라가 바흐라는 거인을 통째로 끌어올린 셈이지요.
멘델스존이 무대에 올린 건 원곡 그대로가 아니었습니다. 세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할 19세기 청중을 위해, 아리아의 3분의 1쯤과 합창의 절반가량을 과감히 덜어냈거든요. 어떤 학자들은 이 가위질을 두고 아쉬워하지만, 달리 보면 그 영리한 타협이 없었다면 부활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복원을 고집하는 대신, 일단 다시 들리게 만드는 쪽을 택한 스무 살의 현실 감각. 저는 그 판단이 꽤 어른스러웠다고 봅니다.
훗날 멘델스존은 친구 데브리엔트에게 자기 출신을 빗댄 농담 한마디를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배우 한 명과 유대인의 아들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기독교 음악을 되돌려주다니.” 평생 자신의 뿌리를 거의 입에 올리지 않던 그가 남긴 드문 한마디였지요.
저는 이 대목에서 늘 묘한 기분이 듭니다. 마태 수난곡은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를 그린 곡인데, 정작 그 곡 자신이 똑같은 일을 두 번 겪었거든요. 한 번은 악보 안에서, 십자가 위의 죽음으로. 또 한 번은 음악사 안에서, 80년의 침묵을 깨고 스무 살의 손끝에서 되살아나며. 오늘 밤 굳이 이 긴 곡을 틀어야 할 이유를 묻는다면, 저는 그 이중의 부활을 듣기 위해서라고 답하겠습니다.
오늘날 마태 수난곡은 해마다 수난주간이 돌아오면 전 세계 콘서트홀과 교회에서 어김없이 울려 퍼집니다. 신앙이 있든 없든, 한 해의 어느 한 시기를 이 음악과 함께 통과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지요. 한때 찬장 속에서 잊혔던 종이 뭉치가, 이제는 봄마다 돌아오는 하나의 의식이 된 셈입니다. 80년의 침묵을 떠올리면, 이 꾸준한 부활이야말로 작은 기적처럼 느껴지거든요.
어떤 연주로 들을까
세 시간짜리 곡인 만큼, 어떤 연주를 고르느냐가 첫인상을 거의 결정하지요. 성향이 분명한 세 가지를 추려봤습니다.
카를 리히터 / 뮌헨 바흐 관현악단 (1958, Archiv) — 거대하고 엄숙한 옛 스타일의 정본입니다. 무겁고 진지한 바흐를 원한다면 여기서 시작하세요. 다만 가볍고 빠른 시대악기 연주에 익숙한 귀엔 다소 둔하게 느껴질지도 몰라요.
존 엘리엇 가디너 /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1988, Archiv) — 시대악기 연주의 기준점으로 꼽힙니다. 투명하고 날렵하며 극의 흐름이 또렷하지요. 대신 리히터식의 묵직한 종교적 압도감을 그리워하는 분께는 그 산뜻함이 외려 아쉬울지도 모르고요.
필리프 헤레베헤 / 콜레기움 보칼레 헨트 — 가장 내밀하고 기도에 가까운 해석입니다. 소리를 키우기보다 안으로 모으는 쪽이라, 늦은 밤 혼자 듣기에 더없이 좋거든요. 단, 드라마의 폭발을 기대한다면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거든요. 마태 수난곡 BWV 244 악보 보기 (IMSLP)
마태 수난곡은 연주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수난곡’이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멘델스존이 100년 만에 되살렸다는 게 사실인가요?
〈Erbarme dich〉가 그렇게 유명한 이유가 뭔가요?
처음 듣는데 3시간은 부담돼요. 어디부터 들으면 될까요?
수난과 부활, 그 곁에 둘 만한 음악
한 곡을 깊이 듣고 나면, 그 곡이 손을 내미는 이웃들이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바흐가 같은 시기에 빚은 또 다른 거대한 종교음악부터, 죽음과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한 합창 명작들까지. 아래 목록을 마태 수난곡 다음 정거장으로 삼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