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G장조 Op.44

제자가 뜯어고쳐 58년을 잠든 협주곡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
작품명
피아노 협주곡 2번 G장조 Op.44
작곡 시기
1879년 10월–1880년 5월
악장
3악장

I. Allegro brillante e molto vivace (G장조)

II. Andante non troppo (D장조)

III. Allegro con fuoco (G장조)

1악장. 빠르고 활기차게

2악장. 빠르지 않게

3악장. 불꽃처럼 빠르게

편성
독주 피아노,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4, 트럼펫 2, 팀파니, 현악 5부
초연
1881년 11월 12일, 뉴욕 아카데미 오브 뮤직
매들린 실러 (피아노)
시어도어 토머스 (지휘), 뉴욕 필하모닉
헌정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빚을 갚으려고 곡을 썼지만 빚쟁이가 먼저 죽어버린 사연

악보를 쓰레기라 부른 사람에게 새 곡을 바치겠다니.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1875년,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쏘아붙입니다. “연주 불가능하고, 형편없고, 전부 다시 써야 합니다.” 차이콥스키는 한 음표도 고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두 사람 사이에 얼음이 깔리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루빈스타인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직접 1번 협주곡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한 겁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요.

차이콥스키는 감동했습니다. 후원자 나데즈다 폰 메크에게 이런 편지를 씁니다. “루빈스타인이 내 1번 협주곡과 소나타를 그토록 훌륭하게 연주해준 것에 보답하기 위해 이 새 작품을 헌정하겠습니다.”

빚을 갚는 수단이 새 협주곡이었던 셈입니다.

1879년 10월, 차이콥스키는 여동생 집이 있는 우크라이나 카멘카에 도착합니다. 목적은 순전한 휴식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러 간 참이었거든요. 그런데 도착한 지 며칠 만에 폰 메크에게 또 편지를 보냅니다. “달콤한 나태함을 즐기는 중인데,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휴가지에서 터진 영감. 이 협주곡의 출발점입니다.

작곡 속도가 놀랍군요. 카멘카에서 1악장 스케치를 마치고, 11월에 파리로 건너가 3악장을 먼저 완성합니다. 2악장은요? “이미 머릿속에 있으니까” 나중에 적겠다고요. 12월 초면 전체 스케치가 끝납니다. 이때 차이콥스키가 이런 말을 남긴 셈입니다. “특히 안단테 2악장이 마음에 듭니다.” 나중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이 한마디가 꽤 씁쓸해지거든요.

1880년 봄, 관현악 편곡까지 마무리합니다. 완성된 악보가 루빈스타인에게 전달되고, 루빈스타인은 기뻐하며 초연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루빈스타인의 반응이 미묘합니다. 1번 때 “연주 불가능한 쓰레기”라고 쏘아붙이던 그 사람이, 이번에는 한참 조심스럽습니다. “독주 파트가 좀 산만한 것 같기도 하고, 오케스트라와 대화를 너무 많이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 한 번밖에 안 쳐봤으니 내가 틀릴 수도 있지.” 한번 크게 데인 사람의 말투입니다. 자기 의견을 거의 철회 수준으로 소극적으로 내놓고 있으니까요.

차이콥스키도 이번에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루빈스타인의 비평을 담담하게 거절하면서도 감정적 충돌은 없었죠. 폰 메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본심이 드러납니다. “루빈스타인이 또 비판할 생각을 하면 떨리지만, 1번 협주곡 때처럼 비판한 뒤에 결국 훌륭하게 연주해준다면 괜찮겠죠. 다만 이번에는 비판과 연주 사이의 기간이 좀 짧았으면 합니다.”

‘비판과 연주 사이의 기간.’ 1번 때는 그게 몇 년이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그 지독한 기다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현실은 더 잔인합니다. 비판도 연주도 없이, 루빈스타인이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1881년 3월,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은 파리에서 결핵으로 숨집니다. 차이콥스키는 소식을 듣자마자 파리로 달려갔습니다. 이 곡을 헌정받은 사람이, 이 곡을 단 한 번도 무대에서 치지 못한 채 떠난 겁니다.

같은 해 11월, 세계 초연은 뉴욕에서 열립니다. 독주자는 매들린 실러, 지휘는 시어도어 토머스. 러시아가 아니라 바다 건너 미국에서 첫 무대를 가졌습니다. 러시아 초연은 이듬해 1882년 5월 모스크바에서 이루어지는데, 니콜라이의 형 안톤 루빈스타인이 지휘하고 차이콥스키의 제자 세르게이 타네예프가 피아노를 맡았습니다. 헌정 대상은 세상에 없고, 낯선 대륙에서 초연이 열린 협주곡. 출발부터 꼬여 있었습니다.

차이콥스키 사후, 제자가 멋대로 단축한 악보

차이콥스키에게 알렉산더 실로티라는 제자가 있네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차이콥스키에게 화성학을,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피아노를 배운 인물입니다. 졸업 후에는 바이마르로 건너가 프란츠 리스트 밑에서 수학합니다. 사촌 동생이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인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실력도 인맥도 비범한 인물입니다.

1888년, 출판사 유르겐손이 2번 협주곡을 재판하려 합니다. 이때 실로티가 차이콥스키에게 대대적인 수정을 제안합니다. 핵심은 1악장과 2악장을 크게 잘라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반응은 단호합니다. “당신의 삭제안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소. 특히 1악장에 대해서는… 당신이 카덴차를 끝으로 옮기겠다는 생각을 듣고 나는 쓴맛이 나고, 머리카락이 곤두섰소.”

머리카락이 곤두섰다고요. 스승이 제자에게 이 정도 언어를 내뱉은 겁니다.

실로티는 한 발 물러서는 척합니다. “물론 선생님이 지시하신 대로 연주하겠습니다. 2악장의 긴 바이올린 독주는 완전히 잘라서요!”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차이콥스키는 삭제에 반대한 건데, 실로티의 답장에서는 마치 합의가 끝난 것처럼 ‘완전히 잘라서’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미묘한 줄다리기가 보이는 대목이죠.

1893년, 실로티가 다시 개정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차이콥스키의 동의를 일부 받아냈습니다. 다만 차이콥스키는 선을 분명히 그었습니다. “1악장에서 삭제는 불필요합니다. 당신 뜻대로 하면 형식이 기괴하고 불완전해집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이 불운한 2번 협주곡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소. 사실 나는 이 곡을 1번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오.”

차이콥스키가 1번보다 더 좋아한 곡입니다. 작곡가 본인의 편애를 세상은 완전히 무시한 셈입니다.

그리고 1893년 10월,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납니다. 4년 뒤인 1897년, 실로티가 출판한 개정판에는 차이콥스키가 강하게 거부한 삭제와 전조가 그대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스승이 살아 있을 때 거절당한 수정안을, 스승이 죽은 뒤에 공식 출판본으로 내놓았으니까요.

이 실로티 판본이 무려 58년간 표준 연주본으로 통용됩니다. 원전판이 복원된 건 1955년, 알렉산더 골덴바이저가 차이콥스키의 자필 총보를 바탕으로 학술 전집에 수록하면서입니다. 58년이면 반세기가 넘는 세월입니다. 그 기간 내내 이 협주곡은 잘린 채로 연주되고, 잘린 채로 평가받고, 잘린 채로 ‘1번의 열화판’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가장 큰 피해는 2악장이 입었습니다. 원래 2악장에는 피아노, 바이올린 독주, 첼로 독주가 각자 긴 선율을 전개하는 구조가 있었는데, 실로티가 이 부분을 대폭 잘라버리거든요. 차이콥스키가 “특히 안단테가 마음에 든다”고 했던, 바로 그 핵심부였습니다.

피아노가 혼자 달리는 20분 마라톤

차이콥스키가 친구 헤르만 라로슈에게 한 말이 있더군요. “나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연주하는 소리를 참을 수가 없다.” 피아노 협주곡은 아예 안 쓰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결국 피아노 협주곡을 세 개나 남겼으니 말과 행동이 다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불만이 완전한 허풍은 아니었다는 걸, 2번 협주곡 1악장(Allegro brillante e molto vivace, G장조)이 증명합니다.

1악장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거의 번갈아 등장합니다. 피아노가 말하면 오케스트라가 물러나고, 오케스트라가 나서면 피아노가 자리를 비웁니다. 무대에 두 발표자가 올라왔는데 동시에 말하지 않기로 약속한 모양새입니다. ‘함께 연주하는 소리를 참을 수 없다’던 작곡가가 찾아낸 해법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예 둘을 분리해버린 겁니다.

이 분리 전략 때문에 카덴차(오케스트라 없이 독주자가 혼자 연주하는 기교 구간)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더군요. 보통 협주곡에서 카덴차는 악장 끝 무렵에 한 번 나오는 게 정석이거든요. 그런데 이 곡에서는 피아니스트가 혼자 달리는 구간이 악장 전체에 걸쳐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독주 리사이틀 수준의 기교가 협주곡 안에 통째로 들어앉은 셈입니다.

총 668마디. 실로티 판본으로도 20분에 육박하고, 원전판이면 더 길어집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전곡의 연주 시간과 맞먹는 분량이 하나의 악장에 압축되어 있으니까요. 피아니스트에게는 쉴 틈 없는 마라톤이고, 오케스트라 단원에게는 상당 시간 구경하는 입장이 되는 묘한 경험이겠습니다.

1886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찰스 알레가 이 협주곡을 연주한 적이 있는데, 1악장을 통째로 빼고 2악장과 3악장만 무대에 올렸습니다. 독주와 지휘를 동시에 맡은 알레가 1악장 피아노 파트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악장 하나를 통째로 포기할 만큼 극단적인 난이도라는 뜻입니다.

주제 자체는 차이콥스키 특유의 캔타빌레(노래하듯 연주하라는 지시) 선율입니다. 현악이 먼저 제시하고 피아노가 이어받는 전통적인 형식을 따르지만, 이후 전개는 전통과 갈라집니다. 피아노가 오케스트라를 구경꾼으로 두고 혼자 돌진하거든요. 베토벤 협주곡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대등하게 맞서는 구도와는 정반대입니다. 이 독특한 분리 구조 때문에 1악장은 ‘산만하다’는 비판과 ‘독창적이다’는 찬사가 동시에 따라붙습니다. 루빈스타인이 “좀 산만한 것 같다”고 조심스레 지적한 바로 그 지점이기도 하고요.

협주곡 속 실내악 — 2악장의 기이한 편성

이 악장(Andante non troppo, D장조)이야말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다른 모든 협주곡과 갈라놓는 핵심입니다.

시작은 평범해 보입니다. 오케스트라가 느린 서주를 깔고, 피아노가 들어오죠. 그런데 여기서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바이올린 독주자가 긴 선율을 들고 나타납니다. 뒤이어 첼로 독주자가 따릅니다. 세 악기가 각자의 목소리로 대화하기 시작하고, 오케스트라는 이 셋의 배경으로 물러납니다.

잠깐. 이거 피아노 협주곡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피아노 트리오(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와 오케스트라가 공존하는 형태입니다.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으면서 내부에 실내악이 살고 있는 경우는 음악사를 통틀어 이 곡이 거의 유일합니다. 베토벤의 삼중 협주곡은 애초에 세 독주자를 위한 곡으로 설계된 것이니, 비교 대상 자체가 다르죠.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이 악장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차이콥스키 느린 악장 중 최고”라고 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악기가 갑자기 주도권을 잡는 게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고요. 재미있는 건, 차이콥스키의 관현악보다 실내악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 악장에 열광한다는 점이겠습니다. 오케스트라 위에 올라탄 실내악의 친밀함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까닭이지요.

실용적인 문제도 무시 못 합니다. 이 악장을 연주하려면 오케스트라의 악장(첫째 바이올린 수석)과 첼로 수석이 독주자 수준의 역할을 해야 하거든요. 하나의 협주곡에 독주자가 사실상 셋이나 필요한 셈이죠. 리허설이 복잡해지고, 섭외도 까다로워집니다. 오케스트라 프로그래밍 담당자 입장에서 이 곡은 같은 시간에 라흐마니노프 2번이나 차이콥스키 1번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번거롭습니다. 이런 현실적 이유가 무대 출현 빈도를 깎아먹는 데 한몫합니다.

원전판의 2악장은 10분이 넘는 세 악기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네요. 협주곡의 한복판에서 갑자기 실내악의 문법으로 전환되는 경험입니다. 처음 듣는 사람은 “아까 그 협주곡 맞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혹감이 지나고 나면, 세 악기가 주고받는 선율의 깊이에 빠져들게 되거든요.

실로티는 바로 이 부분을 “너무 길다”고 잘라냅니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긴 독주 구간이 축약되고 피아노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실로티 판본과 원전판을 나란히 들으면 같은 곡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실로티가 ‘과하다’고 느낀 바로 그 부분이, 오늘날의 귀에는 이 협주곡에서 가장 독창적인 순간으로 들리니까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소리를 못 참겠다’던 차이콥스키의 해법이 여기서 완성됩니다. 함께 연주하는 대신, 각자에게 독주할 공간을 만들어준 셈입니다.

불꽃처럼 끝나는 러시아 춤판

3악장(Allegro con fuoco, G장조). ‘불꽃처럼 빠르게’라는 지시어 그대로입니다.

앞의 두 악장과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1악장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분리하던 전략은 여기서 내려놓습니다. 둘이 함께 달립니다. 러시아 춤곡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신나는 리듬이 악장 전체를 이끌고,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의 그 흙냄새 나는 에너지와 닮아 있더군요.

흥미로운 시각이 하나 있네요. 이 협주곡은 악장을 거듭할수록 점점 통합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1악장에서는 피아노 대 오케스트라로 분리되어 있고, 2악장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피아노를 끌어안아 앙상블을 만들고, 3악장에 이르면 모두가 하나로 합쳐져 질주합니다. 갈라져 있던 것들이 결국 하나로 모이는 서사이지요. 의도된 건지 본능적 선택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3악장이 끝나는 순간 그 흐름이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총 560마디. 독주자에게 이 협주곡은 1악장의 668마디를 달리고, 2악장에서 바이올린·첼로와 함께 대화하고, 3악장에서 다시 전력 질주하는 40분 넘는 마라톤입니다. 한 번도 완전히 손을 내려놓을 수 없는 시간입니다. 이 체력적 부담이 연주자들의 레퍼토리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하겠습니다.

코다(악장이나 곡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속도를 올리며 끝나는 방식은 1번 협주곡의 코다와 닮아 있더군요. 1번과 2번을 나란히 놓으면 그 연결고리가 선명하게 드러나죠. 3악장만 놓고 비교하면 1번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많더군요. “왜 이 곡이 덜 유명한 거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 바로 이 악장이거든요.

교향악이 무대 위로 — 발레로 재탄생한 협주곡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하나.

1941년, 안무가 조지 발란신이 이 협주곡 전곡을 발레 음악으로 씁니다. 작품명은 ‘발레 임페리얼(Ballet Imperial)’. 제2차 세계대전 한복판, 남미 순회공연을 기획하면서 미국인도 클래식 발레를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작품이었습니다.

선곡이 흥미롭더군요. 발란신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레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차이콥스키와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함께 일하던 그 전통의 직계 후손입니다. 프티파에게, 그리고 차이콥스키에게 바치는 오마주를 만들면서, 전 세계가 아는 1번이 아니라 아무도 안 치는 2번을 골랐습니다. 발란신의 귀에는 2번이 발레에 더 맞는 음악이었던 겁니다. 2악장의 실내악적 구조가 파드되(남녀 무용수의 이중무) 장면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분석도 있고요.

1941년 6월 25일, 리우데자네이루 시립극장에서 초연. 이후 이 발레는 뉴욕 시티 발레단의 핵심 레퍼토리가 됩니다. 1973년 발란신은 제국 러시아의 시각적 장식을 모두 걷어내고 순수하게 음악과 춤만 남긴 버전으로 개정하면서, 제목도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바꾸었습니다.

콘서트홀에서는 거의 잊힌 이 곡이, 발레 무대에서는 80년 넘게 살아 있네요.

트롬본도 튜바도 없는 대편성의 역설

편성표를 다시 보시겠습니까? 빠진 게 있더군요. 트롬본과 튜바.

19세기 후반 관현악 협주곡에서 이 두 악기를 빼는 건 파격입니다. 같은 시기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에는 트롬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1번 협주곡에도 당연히 들어가 있네요. 그런데 2번에서만 이 악기들이 사라지거든요.

차이콥스키가 이유를 직접 남기지는 않았지만, 추론할 근거는 충분합니다. 트롬본과 튜바는 오케스트라 저음역의 무게와 볼륨을 담당하는 악기이지요. 이 악기들이 들어가면 소리가 두꺼워지고, 피아노를 덮어버리기 쉽더군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울리는 소리를 참을 수 없다’던 그 사람이 오케스트라의 무게 자체를 깎아낸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 협주곡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1번보다 가볍고 투명합니다. 피아노의 중음역이 묻히지 않고 또렷하게 살아나지요. 특히 2악장에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세 독주자가 대화할 때 이 투명함이 빛을 발합니다. 세 악기의 색깔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니까요.

오케스트라 사운드만 놓고 비교하면, 1번이 기름진 스테이크라면 2번은 맑은 회입니다. 같은 작곡가, 같은 장르인데 식감이 완전히 다릅니다.

피아노 협주곡 1번 그늘에 묻힌 2번의 사연

이 곡이 묻힌 원인은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 불운이 겹쳤습니다.

첫째, 챔피언의 부재입니다. 헌정 대상인 루빈스타인이 초연도 못 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이 곡을 강력하게 밀어줄 연주자가 사라졌습니다. 차이콥스키 생전에는 피아니스트 바실리 사펠니코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프라하, 모스크바, 런던 등을 돌며 차이콥스키 지휘로 이 곡을 연주합니다만, 1번의 세계적 인기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둘째, 실로티 판본의 독입니다. 58년간 잘린 판본이 표준이었다는 건, 이 협주곡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이 반세기 넘게 무대에서 사라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잘린 상태로 들은 청중이 “1번의 열화판”이라고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진짜 매력이 가려져 있었으니까요.

셋째, 편성과 길이의 벽입니다. 2악장에 바이올린·첼로 독주자가 필요하고, 전체 연주 시간이 40분을 훌쩍 넘기고, 피아노 파트의 기교적 난이도가 상당합니다. 오케스트라 프로그래밍 담당자 입장에서 같은 시간에 라흐마니노프 2번이나 차이콥스키 1번을 올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죠. 표를 파는 쪽에서도 ‘차이콥스키 1번’과 ‘차이콥스키 2번’의 집객력 차이는 압도적이고요.

넷째, 작곡가 자신의 흔들림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최고 수준이라 여겼고, 작곡하는 내내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첫 공연 이후 반응이 시원찮자 상처를 받은 셈입니다. 1880년대 후반, 피아니스트들의 “너무 길다”는 불만에 일부 수정과 삭제에 동의하기 시작합니다. 자기 작품에 대한 확신이 외부 압력에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 실로티가 그 틈을 파고든 까닭입니다.

그런데요. 이 모든 불운에도 이 곡은 사라지지 않았더군요. 발란신이 발레로 살려놓았고, 에밀 길렐스가 명연을 녹음으로 남겼고, 원전판이 복원된 이후 새로운 세대의 피아니스트들이 이 곡을 레퍼토리에 올리기 시작하지요. 스티븐 허프, 미하일 플레트네프, 콘스탄틴 셰르바코프 같은 피아니스트들이 원전판을 무대에 가져오면서, 반세기 넘게 가려졌던 이 곡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고 있더군요.

차이콥스키 스스로 더 사랑한 협주곡

2번 협주곡이 작곡된 1879년, 차이콥스키의 머릿속은 온갖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페라 ‘오를레앙의 처녀’ 교정지를 마무리하고 이 협주곡에 착수한 뒤, 완성 직후에는 교향곡 2번 개정과 이탈리아 기상곡 작곡에 돌입합니다. 오페라의 서사적 스케일, 협주곡의 구조적 실험, 관현악곡의 색채감을 동시에 다루던 시기입니다.

1번이 대중적 호소력에 집중한 곡이라면, 2번은 형식적 실험에 더 많은 무게를 실은 곡입니다. 1번의 성공을 재현하는 쉬운 길이 있었는데도, 완전히 다른 방향을 택한 겁니다.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장르의 역사에서 이 작품의 위치는 독특합니다. 19세기 후반, 프란츠 리스트의 영향으로 피아노 협주곡은 독주자의 기교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차이콥스키 1번도 어느 정도 그 흐름에 올라타 있네요. 그런데 2번에서는 완전히 다른 실험을 합니다. 독주자의 기교는 유지하면서, 오케스트라와의 관계를 재구성합니다. 분리하고, 실내악으로 전환하고, 편성을 가볍게 만들고. 당대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 실험이, 지금 시점에서는 오히려 이 협주곡을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만드는 요소이지요.

차이콥스키가 왜 이 곡을 1번보다 더 좋아한다고 했는지, 원전판을 온전히 들어보면 납득이 갑니다. 1번이 ‘들려주는’ 곡이라면, 2번은 ‘찾아내는’ 곡이거든요. 한 번 듣고 환호하기보다, 여러 번 듣고 구석구석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종류의 음악이니까요.

처음이라면 3악장부터 거꾸로

이 협주곡을 처음 접하신다면, 순서를 뒤집어 보시기 바랍니다.

3악장부터. 러시아 춤곡 느낌의 빠르고 화려한 악장입니다. 1번 협주곡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비슷한 에너지를 느끼실 수 있더군요. 차이콥스키 특유의 추진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악장이라 입문 순서로 적합합니다.

그다음 2악장. 이 협주곡의 심장이자 가장 독특한 악장입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세 악기의 대화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원전판 녹음을 권합니다. 실로티 판본의 2악장과 원전판은 분량과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거든요.

마지막으로 1악장. 20분에 가까운 긴 악장입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번갈아 등장하는 분리 구조에 주목하시면, 다른 협주곡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독특한 청취 경험을 하시게 됩니다.

판본 선택은 중요합니다. 실로티 판본과 원전판은 특히 2악장에서 큰 차이가 나거든요. 처음이라면 원전판부터 권합니다. 잘리지 않은 상태를 먼저 경험한 뒤에 실로티 판본과 비교해보시면, 58년간 무엇이 가려져 있었는지 바로 체감하실 수 있네요.

추천 녹음

에밀 길렐스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로린 마젤 지휘 (1972, EMI)

길렐스는 이 협주곡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해석자 중 한 명입니다. 1악장 카덴차에서 정확성과 표현을 동시에 잡는 솜씨가 놀랍고, 2악장에서 바이올린·첼로 독주자와의 균형 감각이 일품이죠. 실로티 판본 기반이지만, 이 협주곡이 어떻게 울려야 하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연주입니다. 많은 애호가들이 이 곡의 ‘입문 녹음’으로 길렐스를 꼽는 데는 이유가 있더군요.

Play: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2 in G major, Op. 44 – Emil Gilels, Lorin Maazel, Philharmonia

미하일 플레트네프 (1998, 영상 연주)

플레트네프는 기교 과시보다 구조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피아니스트입니다. 이 협주곡에서는 특히 1악장의 피아노·오케스트라 분리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들려주지요. 기교가 투명해서 음악의 골격이 그대로 보이는 연주거든요. “이 곡이 왜 이런 구조인지”를 머리로 이해하고 싶으신 분에게 최적입니다.

Play: Mikhail Pletnev Plays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 2 in G major, Op.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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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2 Op.44 G major 柴可夫斯基 鋼琴 協奏曲 第2號 Score Sheet 譜 谱 Partitura 楽譜付き 【K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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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협주곡 2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왜 1번보다 덜 알려져 있나요?

여러 불운이 겹쳤습니다. 헌정 대상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초연 전에 세상을 떠나 이 곡의 챔피언이 사라졌고, 이후 제자 실로티가 편집한 축약판이 58년간 표준으로 통용되면서 원전판의 독특한 매력이 가려졌습니다. 2악장에 바이올린·첼로 독주자가 추가로 필요한 편성 부담, 40분 넘는 연주 시간, 극단적인 피아노 난이도도 무대 출현 빈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입니다.

실로티 편집판과 원전판은 뭐가 다른가요?

가장 큰 차이는 2악장입니다. 원전판에서 2악장은 피아노, 바이올린 독주, 첼로 독주가 함께 긴 대화를 나누는 확장된 구조로, 사실상 트리플 협주곡에 가깝습니다. 실로티는 이 부분을 대폭 축약하고 피아노 중심으로 재편했습니다. 차이콥스키가 생전에 반대한 삭제와 전조가 포함된 판본이지만, 1897년부터 1955년까지 58년간 표준 판본으로 통용됩니다.

2악장에 바이올린과 첼로 독주가 나오는 이유가 있나요?

차이콥스키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연주하는 소리를 참을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네요. 2악장에서 그 해결책으로 택한 것이 악기들을 번갈아 독주하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각자의 순서를 가지고 대화하면서, 협주곡 안에 실내악의 친밀함을 만들어냈습니다.

초연은 언제, 어디서 이루어졌나요?

1881년 11월 12일 뉴욕 아카데미 오브 뮤직에서 열렸습니다. 독주는 피아니스트 매들린 실러, 지휘는 시어도어 토머스였으며 뉴욕 필하모닉이 반주했습니다. 러시아 초연은 1882년 5월 모스크바에서 안톤 루빈스타인 지휘, 세르게이 타네예프 피아노로 이루어졌습니다.

차이콥스키 본인은 이 협주곡을 어떻게 평가했나요?

차이콥스키는 제자 실로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불운한 2번 협주곡을 나는 1번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고 밝혔습니다. 작곡 과정에서도 폰 메크에게 “특히 안단테 2악장이 마음에 든다”고 쓰는 등 이 곡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습니다. 다만 초연 후 시원찮은 반응에 상처를 받았고, 이후 피아니스트들의 요청에 따라 일부 수정에 동의하기도 했습니다.

이 곡이 발레 음악으로 쓰인 적이 있나요?

1941년 안무가 조지 발란신이 이 협주곡 전곡을 발레 ‘발레 임페리얼’의 음악으로 사용했습니다. 1973년에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개명되었으며, 뉴욕 시티 발레단을 비롯한 여러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80년 넘게 공연되고 있더군요. 콘서트홀보다 발레 무대에서 더 오래 살아남은 독특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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