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상스 – 교향곡 제3번 c단조 ‘오르간’, Op.78

스스로 '마지막'을 선언하고 35년간 지킨 교향곡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
(Camille Saint-Saëns, 1835–1921)
작품명
교향곡 3번 c단조 ‘오르간’ Op.78
작곡 연도
1886년
초연
1886년 5월 19일, 런던 세인트 제임스홀. 작곡가 본인 지휘, 영국 왕립 필하모닉 협회 오케스트라
헌정
프란츠 리스트 추모
편성
현악, 목관, 금관, 타악, 파이프 오르간, 피아노 4손 (2부 구성, 연주는 4악장 형태)
연주 시간
약 35~40분

이 곡의 마지막 음표를 그려 넣은 뒤, 생상스는 이런 말을 남긴 셈입니다.

“나는 이 작품에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었다. 내가 여기서 이룬 것을, 나는 다시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예술가가 자기 입으로 이런 극찬을 남기는 경우는 드물지요. 대개는 허세이거나 낭만적인 과장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생상스는 진심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스스로 내뱉은 이 무거운 선언을 죽을 때까지 지켰습니다. 51세에 이 곡을 완성한 뒤, 그는 두 번 다시 교향곡을 쓰지 않았거든요. 쏟아지는 앙코르 요청도,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계약 조건도 모조리 거절했더군요.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많은 곡을 썼지만, 교향곡의 시계만큼은 이 작품에서 영원히 멈춰 세웠습니다. 마치 ‘이 이상의 교향곡은 내 인생에 없다’고 못을 박아버린 셈입니다.

스스로 ‘내 인생 마지막 교향곡’이라 선언한 작품. 그 엄청난 무게감 때문일까요? 이 곡을 듣다 보면 1초의 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꽉 찬 밀도에 압도당하고 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혼을 갈아 넣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달까요.

도대체 이 곡 안에 무엇을 숨겨두었길래 작곡가 본인조차 그런 확신을 가졌던 걸까요? 그리고 초연된 지 140년이 흐른 지금, 클래식의 ‘클’ 자도 모르는 대중조차 이 음악을 듣고 “아, 이 노래!”라며 무릎을 치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요.

교향곡에 파이프 오르간을? 그 시절 파리를 뒤집어놓은 ‘미친 발상’

1886년 당시 파리 음악계에서 ‘교향곡’이란 사실상 독일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베토벤, 슈만, 브람스가 닦아놓은 거대한 룰 안에서 돌아가는 장르였지요. 파리 청중들도 교향곡을 즐겨 들었지만, 무대에 오르는 건 십중팔구 독일산이었습니다. 프랑스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이 베토벤과 멘델스존으로 채워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프랑스 작곡가들이 아예 손을 놓았던 건 아닙니다. 썼다 해도 무대에 오르질 못했지요. 비제가 스무 살 무렵 쓴 교향곡은 그가 죽고도 58년이 지난 1933년에야 초연되었을 정도니까요. 참으로 처참한 대접이었습니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 바다 건너 영국 왕립 필하모닉 협회가 “프랑스 작품을 하나 써달라”며 의뢰를 해옵니다. 이때 생상스는 보란 듯이 정통 교향곡을 던져버립니다. 그것도 ‘파이프 오르간’을 통째로 집어넣은 괴물 같은 교향곡을 말입니다.

당시 오케스트라 홀에서 오르간은 철저히 ‘교회의 악기’였습니다. 교향곡 한복판에 성스러운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금으로 치면 헤비메탈 록 콘서트 무대에 불국사 범종을 매달아 놓고 치는 격이었습니다. 엄청난 도발이자 파격이었지요. 하지만 단순히 ‘어그로’만 끌었다면 이 곡이 140년을 살아남진 못했을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팩트 하나. 생상스 본인이 당대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였습니다. 1858년부터 무려 19년 동안 파리 마들렌 교회의 수석 오르가니스트로 밥벌이를 했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거든요. 그러니 오르간을 오케스트라와 어떻게 비벼야 할지, 어느 타이밍에 숨죽이고 어느 순간에 폭발시켜야 할지를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었습니다. 파격적인 세팅을 가져왔지만, 그 파격을 통제하는 솜씨는 소름 돋을 만큼 정교했던 까닭입니다.

생상스의 기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더군요. 피아노까지 오케스트라에 끌어들였거든요. 그것도 한 대의 피아노에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치는 ‘4손 연주(Four hands)’ 방식으로요. 피아노가 화려하게 돋보이는 협주곡 방식이 아닙니다. 두 명의 연주자가 미친 듯이 건반을 두드리는데, 그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파도 속에 스며들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냅니다.

악장의 뼈대도 완전히 박살 냈습니다. 전통적인 교향곡은 4악장으로 나뉘고 중간중간 기침도 하고 숨도 고르는 휴식 시간이 있더군요. 하지만 이 곡은 크게 2부로 쪼개놓고, 중간에 끊김 없이 논스톱으로 내달립니다. 바통 터치하듯 이어달리는 이 기법은 그의 정신적 지주였던 프란츠 리스트에게서 배운 필살기였습니다.

여기에 ‘순환 주제’라는 치밀한 복선까지 깔아둡니다. 1악장 초반에 무심코 던져둔 멜로디 씨앗이, 마지막 악장에서 거대한 오르간의 포효와 함께 화려하게 만개하는 구조입니다. 영화로 치면 초반에 스쳐 지나간 사소한 소품이 결말을 뒤집는 엄청난 반전의 열쇠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오르간, 피아노 4손, 이어달리기 구조, 그리고 완벽한 복선 회수. 이 모든 걸 하나의 교향곡 안에 우겨넣고도 삐걱거림 없이 완벽하게 굴러가게 만든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상스가 “다시는 이런 곡을 못 쓸 것”이라 단언했던 진짜 이유입니다.

생상스라는 인간: ‘모차르트의 재림’에서 ‘고집불통 꼰대’가 되기까지

이 미친 교향곡을 제대로 맛보려면, 카미유 생상스라는 인간의 굴곡진 삶을 살짝 들여다볼 필요가 있네요.

카미유 생상스 초상 (1921, 마외르스 사진)
1921년 촬영된 생상스의 마지막 초상 사진. 그는 이 해 12월 알제리 알제에서 별세했다.

1835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하지만 천재성은 감출 수 없었지요. 두 살 반에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다섯 살에 작곡을 했으며, 열 살에 파리 음악원 데뷔 무대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악보도 없이 외워서 쳐버렸습니다. 파리 사교계가 “모차르트가 환생했다!”며 난리가 난 것도 무리가 아니었지요.

하지만 화려한 떡잎과 달리, 청년기의 성적표는 처참했네요. 특히 당시 작곡가들의 최고 출세 코스였던 ‘오페라’에서 번번이 물을 먹었습니다. 콩쿠르에선 떨어지기 일쑤였고, 간신히 무대에 올린 오페라도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더군요. 파리의 콧대 높은 음악계가 이 천재를 온전히 인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인내가 필요했네요.

개인사 역시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린 두 아들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는 참척의 고통을 겪었고, 그 충격으로 아내와는 남남으로 갈라섰습니다. 결국 파리에 정을 떼고 북아프리카,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심지어 스리랑카까지 전 세계를 떠돌며 살아야 했습니다. 훗날 그가 눈을 감은 곳도 파리가 아닌 알제리의 수도 알제였습니다. 프랑스 거장치고는 대단히 이질적인 행보지요.

성격도 만만치 않았더군요. 자신을 비판하는 평론가에게는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었고, 드뷔시라벨 같은 후배들의 새로운 음악(인상주의)을 대놓고 혐오했습니다. 세상이 새로운 트렌드로 열광할 때, 생상스는 홀로 귀를 닫고 고전적인 질서와 명료함을 고집했습니다.

말년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늙은 꼰대’라는 조롱까지 들어야 했지만, 교향곡 3번만큼은 그 지독한 고집이 빚어낸 최고의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유행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오직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무기를 총동원해 정면승부를 건 것이더군요.

오페라 흥행 실패, 자식의 죽음, 후배들의 치고 올라옴. 이 모든 콤플렉스와 울분이 쌓여있던 51세의 생상스는 이 교향곡 한 방으로 모든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그리고 정상의 자리에서 미련 없이 교향곡 은퇴를 선언합니다. “이제 세상에 내 능력을 증명할 필요 따윈 없다.” 일종의 오만이자, 완벽한 승리 선언이었습니다.

작곡의 뒷이야기: 30년의 침묵, 8개월의 폭주

1886년 당시 51세의 생상스는 이미 유럽 톱클래스 작곡가였습니다. ‘동물의 사육제’나 피아노 협주곡 등으로 이름값은 톡톡히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유독 교향곡만큼은 20대 시절 두 곡을 쓴 이후 무려 30년 가까이 손을 대지 않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통적인 4악장짜리 교향곡 폼이 너무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대신 그는 하나의 악장 안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교향시’ 장르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피겨 음악으로도 유명한 ‘죽음의 무도’가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한 명작입니다.

그러던 1885년, 영국 왕립 필하모닉 협회에서 연락이 옵니다. 재밌는 건 생상스가 1순위 후보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협회는 원래 샤를 구노를 원했지만 협상이 틀어지는 바람에 생상스에게 대타를 제안했던 것이네요. 런던으로 건너간 생상스는 “내 옛날 교향곡 2번을 연주해달라”고 찔러봅니다. 그러자 협회가 역제안을 던집니다. “아예 새 교향곡을 하나 뽑아주시는 건 어떨까요?”

생상스는 그 자리에서 “콜!”을 외칩니다. 수락 편지를 보낸 날짜가 1885년 8월 25일, 그리고 악보를 탈고한 게 이듬해 4월. 30년 동안 참아왔던 교향곡의 아이디어를 불과 7~8개월 만에 미친 듯이 쏟아낸 겁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그는 거의 매일 책상에 앉아 곡을 썼다고 합니다. 여백 하나 없이 꽉꽉 들어찬 음표들을 보면, 이미 머릿속에 ‘이것이 나의 마지막 교향곡’이라는 마스터플랜이 서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1886년 5월 19일 런던 세인트 제임스홀 초연. 작곡가 본인이 직접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듬해 파리 초연에서는 아예 홀 전체가 기립박수로 뒤덮였습니다. 신이 난 영국 협회는 “제발 다음 교향곡도 써달라”며 매달렸지만, 생상스는 단칼에 거절합니다.

그리고 런던 초연이 끝난 지 불과 두 달 뒤, 생상스의 음악 인생을 뒤흔든 거대한 부고가 날아듭니다.

리스트의 죽음, 소름 돋는 우연과 헌정

생상스와 프란츠 리스트. 이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했습니다.

프란츠 리스트 초상
생상스의 정신적 지주이자 교향시 장르의 창시자 프란츠 리스트. 교향곡 3번은 리스트 사후 추모 헌정곡이 됐다.

생상스가 갓 학교를 졸업하고 풋내기 오르가니스트로 일할 때, 리스트는 이미 전 유럽을 호령하는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런데 리스트는 생상스의 연주를 듣자마자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오르가니스트”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네요. 생상스가 교향시라는 낯선 장르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교향시의 창시자인 리스트의 든든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상스가 교향곡 3번에 써먹은 ‘순환 주제’나 ‘이어달리기 구조’ 모두 리스트의 전매특허였습니다. 사실상 이 교향곡 전체가 스승이자 멘토였던 리스트를 향한 거대한 오마주였던 셈이더군요.

그런데 초연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886년 7월 31일. 리스트가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폐렴으로 돌연 세상을 떠납니다. 향년 74세. 바그너 오페라를 보러 갔다가 객지에서 쓸쓸히 눈을 감은 것입니다.

악보 출판을 앞두고 있던 생상스는 첫 페이지에 이런 문구를 새겨 넣습니다.

“À la mémoire de Franz Liszt (프란츠 리스트의 추모에).”

애초에 살아있는 리스트에게 바치려 했던 것인지, 죽음 직후에 부랴부랴 추모곡으로 바꾼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터리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거대한 교향곡은 리스트를 떠나보내는 가장 장엄한 장송곡이 되었습니다.

이 배경을 알고 나면 곡이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특히 1부 2악장에서 오르간이 처음으로 스르륵 깔리는 그 고요하고 경건한 화음. 그것이 단순한 악기 소리가 아니라, 자신을 알아봐 준 위대한 스승을 향해 바치는 생상스의 마지막 작별 인사처럼 느껴지거든요.

어떻게 들을 것인가: 40분을 순삭시키는 감상 가이드

클래식이 낯설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 없더군요. 이 곡을 들을 땐 딱 하나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c단조의 어둠에서 시작해, C장조의 눈부신 빛으로 끝난다.”

이 여정의 열쇠는 ‘오르간’이 쥐고 있더군요. 오르간이 처음 등장하는 2악장, 그리고 미친 듯이 폭발하는 4악장. 이 두 순간의 소름 돋는 대비만 쫓아가도 생상스가 설계한 40분짜리 롤러코스터를 완벽하게 즐기실 수 있네요.

1부 제1악장: 폭풍전야의 불안감

느릿한 서론 따위는 없네요. 시작하자마자 현악기들이 신경질적으로 쏟아져 내립니다. 뭔가 해결되지 않은 불안한 감정들이 계속 부딪히고 엉키는 느낌이네요.

여기서 생상스는 아주 영악한 짓을 합니다. 나중에 4악장에서 터뜨릴 ‘핵심 멜로디(씨앗)’를 이 복잡한 현악기 소리 사이에 교묘하게 숨겨놓거든요. 처음 들을 때는 절대 눈치챌 수 없더군요. 그저 빠르고 강렬한 연주처럼 들리지만, 나중에 결말을 알고 다시 들으면 “아! 이게 여기서부터 밑밥을 깐 거였어?” 하고 무릎을 치게 됩니다. 두 번째 들을 때 훨씬 더 재밌는 이유가 바로 이 치밀한 복선 때문입니다.

중간에 폭풍우가 잦아들듯 현악기가 조용해지고 부드러운 선율이 흐르는 구간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고요함은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음 악장으로 스며듭니다. 마치 소설의 챕터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게 몰입해서 읽어 내려가는 기분이더군요. 복잡하게 분석할 것 없이, 그저 불안함과 고요함의 파도를 타기만 하면 됩니다.

1부 제2악장: 공간의 차원이 바뀌는 마법

속도가 뚝 떨어집니다. 현악기들이 손가락으로 줄을 뜯으며(피치카토) 살금살금 반주를 깔고, 그 위로 관악기들이 애절한 노래를 부릅니다. 앞선 격렬함이 씻겨 내려가는 잠깐의 휴식처 같은 곳이네요.

그리고 마침내, 오르간이 등장합니다.

쾅! 하고 터지는 게 아닙니다. 아주 낮고 부드러운 화음이 음악의 밑바닥으로 스르륵 스며듭니다. 이 순간의 체감이 엄청납니다. 마치 좁은 방 안에서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거대한 대성당 한가운데로 텔레포트한 것처럼 공간감이 확 넓어지거든요.

연주회장에서 직접 들으면 귀로 듣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파이프를 뚫고 나오는 공기의 진동이 피부를 어루만지는 경이로운 경험이더군요. 전체 40분 중 고작 8분 남짓한 짧은 악장이지만, 이 첫 등장의 여운은 뇌리에 깊게 박힙니다.

2부 제3악장: 피아노와 함께 다시 달리는 에너지

잠시 쉬었던 음악이 2부 시작과 함께 돌변합니다. 앞의 무게감을 훌훌 털어버리고 굉장히 빠르고 익살스럽게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시각적으로도 재밌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덩치 큰 피아노 한 대에 두 명의 연주자가 다닥다닥 붙어 앉아 미친 듯이 건반을 두드리는 ‘4손 연주’가 시작되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피아노 소리가 튀지 않고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소리에 찰떡같이 녹아들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냅니다.

빠르게 달리다 잠시 멈춰 서서 목관악기와 대화도 나누고, 다시 속도를 내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킵니다. 그리고 3악장의 끝자락. 미친 듯이 질주하던 음악이 돌연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섭니다. 숨 막히는 정적.

그 정적을 깨고 이 곡의 진짜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입니다.

2부 제4악장: 마침내 터지는 빛의 폭발

이 교향곡의 존재 이유이자, 이 곡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바로 그 악장입니다.

어둡고 불안했던 c단조가 마침내 밝고 찬란한 C장조로 뒤집힙니다. 그 극적인 반전의 스위치를 누르는 건 단연 오르간입니다. 거대한 오르간의 첫 화음이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순간, 억눌려있던 모든 것이 해방되는 카타르시스가 터집니다. 뒤이어 금관악기와 팀파니가 가세하며 축제의 팡파르를 울리지요.

1악장에서 몰래 심어두었던 불안한 멜로디 씨앗은, 이곳에서 찬란하고 웅장한 승리의 찬가로 모습을 바꿉니다. 모든 복선이 완벽하게 회수되는 짜릿한 순간입니다.

어쩌면 이 멜로디, 굉장히 익숙하게 들리실 겁니다. 1995년 개봉한 가족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를 기억하십니까? 감독 크리스 누넌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이 악장의 코다(마무리 선율)를 편곡해 넣으면서, 대중들에게는 ‘베이브 주제곡’으로 더 유명해졌지요. 예능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뭔가 웅장한 결말을 맞이할 때 단골로 깔리는 바로 그 음악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스피커나 TV로 듣는 것과, 실제 연주회장에서 수백 명의 오케스트라와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뿜어내는 ‘음압’을 온몸으로 맞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곡의 맨 마지막, 미친 듯이 포효하던 오르간과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딱! 하고 멈추는 순간. 홀 전체를 감도는 몇 초간의 아찔한 정적은 오직 현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마약 같은 경험입니다.

51세의 생상스가 “다시는 이런 곡을 못 쓴다”고 했던 이유를, 이 4악장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40분간의 숨 막히는 빌드업 끝에 도달한 완벽한 마침표.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는 완결이었습니다.

프랑스 교향곡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작품

생상스가 이 곡을 발표한 1886년 무렵, 프랑스 음악계는 독일의 리하르트 바그너 열풍에 휩쓸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그너의 압도적인 스타일에 잡아먹히느냐, 저항하느냐의 기로였지요. 생상스는 바그너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후배들을 혐오하면서도, 독일 교향곡의 단단한 뼈대만큼은 쿨하게 가져왔습니다. 대신 그 안에 프랑스 특유의 색채와 파이프 오르간, 피아노라는 파격적인 재료를 채워 넣었지요.

생상스 죽음의 무도 악보 초판 (1875)
생상스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 Op.40 초판 악보. 교향곡 3번과 함께 그의 교향시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공은 프랑스 음악계의 막힌 혈을 뚫어버렸습니다.

생상스의 교향곡이 런던과 파리를 휩쓸자, 눈치만 보던 프랑스 작곡가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앞다투어 교향곡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뱅상 당디를 시작으로, 이듬해 세자르 프랑크, 그리고 쇼송, 뒤카에 이르기까지. 죽어있던 ‘프랑스 교향곡’의 계보가 생상스 3번을 기점으로 폭발하듯 이어졌습니다.

재밌는 건 생상스와 세자르 프랑크의 관계입니다. 두 사람은 파리 음악계에서 물과 기름 같은 앙숙이었거든요. 그런데 앙숙이었던 생상스의 대성공이, 역설적으로 프랑크가 역사에 남을 명 교향곡(d단조)을 쓰게 만드는 판을 깔아준 셈이 되었습니다. 음악사의 얄궂은 아이러니지요.

정작 불씨를 지핀 생상스 본인은 교향곡 판을 미련 없이 떠났지만, 그가 열어젖힌 문을 통해 수많은 후배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생상스 개인에게는 ‘마지막’ 교향곡이었지만, 프랑스 음악사 전체로 보면 거대한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이 극적인 이중성이 이 곡을 평범한 명곡 이상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오늘날 이 곡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가장 탐내는 레퍼토리 중 하나입니다. 특히 멋진 파이프 오르간을 보유한 콘서트홀(한국의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롯데콘서트홀처럼)이라면, 홀의 스펙을 과시하기 위해 반드시 무대에 올리는 치트키 같은 곡이네요.

한때 트렌드를 거부한 ‘보수적인 꼰대’ 취급을 받았던 생상스. 하지만 유행을 좇지 않고 자신만의 무기를 극한으로 벼려낸 이 작품은, 140년이 지난 지금도 낭만주의 음악의 거대한 산맥으로 굳건히 버티고 있더군요.

클래식 공연장에 한 번쯤 가보고 싶은데 지루할까 봐 망설여지시나요? 그렇다면 프로그램에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이 적힌 날을 노려보십시오. 이유는, 4악장이 터지는 순간 바닥에서부터 전해지는 짜릿한 진동으로 온몸이 먼저 알게 되실 겁니다.

에디터의 추천 녹음

음반을 고를 땐 딱 하나만 명심하십시오. ‘오르간 소리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녹음되었는가.’ 음질과 홀의 울림이 곡의 감동을 8할 이상 좌우하는 곡이기 때문입니다.

샤를 뒤투아 /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1982, Decca)

이 곡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교과서’ 같은 명반입니다. 1982년 녹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Decca 레이블 특유의 투명하고 압도적인 음질을 자랑합니다. 특히 1부 2악장에서 오르간이 스르륵 밀려 들어오는 순간의 공간감은 소름이 돋을 정도지요. 오케스트라와 오르간의 밸런스가 기가 막히게 잡혀 있어, 처음 이 곡에 입문하시는 분들께 1순위로 권해드립니다.

다니엘 바렌보임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1976, DG)

‘압도적인 쾌감’을 원한다면 이 음반이 정답입니다. 바렌보임은 4악장 코다에서 템포를 묵직하게 잡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입니다. 여기에 시카고 심포니 특유의 짱짱하고 두꺼운 금관악기 소리가 더해져, 그야말로 음표로 두들겨 맞는 듯한 타격감을 선사합니다. 뒤투아의 연주가 세련된 프랑스 요리 같다면, 바렌보임은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거대한 미국산 스테이크 같은 맛이 납니다.

마리스 얀손스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13, BR Klassik)

비교적 최근의 훌륭한 녹음을 찾으신다면 얀손스의 연주가 제격입니다. 오르간 소리가 너무 튀어서 오케스트라를 잡아먹지 않도록, 아주 세련되고 절묘하게 밸런스를 맞췄습니다. 세계 최강 베를린 필하모닉의 흠잡을 데 없는 앙상블 덕분에, 1악장의 숨 막히는 긴장감이 4악장의 거대한 해방감으로 터지는 40분간의 서사가 한 편의 영화처럼 매끄럽게 흘러갑니다. 현대적인 음향의 진수를 맛볼 수 있네요.

악보와 함께 듣기

무료 악보 사이트 IMSLP에 가시면 생상스 교향곡 3번 악보를 공짜로 열람하실 수 있더군요. “까만 건 음표요, 하얀 건 종이”라며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네요. 음악 이론을 전혀 몰라도 괜찮거든요. 수많은 악기가 빼곡하게 적힌 총보(풀 스코어)를 멍하니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오르간(Orgue)’ 파트가 떡하니 등장하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네요. 소리로만 듣던 압도적인 스케일이 시각적으로 밀려오는 쾌감, 꽤 쏠쏠하실 겁니다.

생상스 교향곡 3번 악보 보기 (IMSLP)

영국 왕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교향곡 3번 초연을 의뢰한 영국 왕립 필하모닉 협회 산하 오케스트라. 카네기홀 공연 모습.

자주 묻는 질문

왜 생상스 교향곡 3번을 ‘오르간 교향곡’이라고 부르나요?

전체 4악장 중 절반인 2개 악장에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등판하기 때문입니다. 낭만주의 시대에 오케스트라와 오르간을 한 무대에 세우는 건, 지금으로 치면 클래식 공연에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를 난입시킨 것만큼이나 파격적인 시도였지요. 생상스 본인조차 악보 표지에 대놓고 ‘오르간 포함(avec orgue)’이라 적어두었을 정도니, 이 별명이 찰떡같이 굳어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교향곡 3번은 몇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나요?

겉보기엔 평범한 4악장 같지만, 사실은 정교한 페이크(?)가 숨어있네요. 공식적인 뼈대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고, 그 안에서 다시 두 파트씩 쪼개지는 구조거든요. 가장 큰 특징은 악장과 악장 사이에 쉬는 틈이 없다는 점입니다. 35분에서 4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마치 쉼 없이 이어지는 DJ의 믹스셋처럼 숨 막히게 질주하는 셈입니다.

교향곡 3번은 누구에게 헌정되었나요?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이자 생상스의 영원한 멘토, 프란츠 리스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곡이 완성된 직후인 1886년 7월 31일,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결국 이 웅장한 교향곡은 위대한 스승을 기리는 진혼곡이 되어버렸지요. 악보 첫머리에 새겨진 ‘프란츠 리스트의 추모에(À la mémoire de Franz Liszt)’라는 문장이 유독 묵직하게 다가오는 까닭입니다.

이 곡이 생상스의 마지막 교향곡인가요?

네, 맞습니다. 생상스는 이 곡을 끝으로 교향곡이라는 장르에서 영영 손을 뗐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곡에 쏟아부었다. 두 번 다시 이런 성취를 이룰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남긴 말에서 엄청난 자부심과 탈진이 동시에 느껴지지 않나요? 말 그대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완성한 마스터피스였던 것입니다.

영화 ‘베이브’에 이 곡이 나왔다고요?

정확합니다! 1995년을 강타했던 꼬마 돼지의 명연기, 영화 ‘베이브(Babe)’를 기억하시나요? 영화 클라이맥스에 울려 퍼지던 그 벅차오르는 멜로디가 바로 이 교향곡 4악장의 피날레(코다)를 편곡한 버전입니다. 워낙 영화가 히트 친 덕분에 한동안 ‘돼지 브금’으로 불리는 굴욕(?)을 겪기도 했지만, 원곡이 품은 압도적인 환희만큼은 결코 숨길 수 없었지요.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35분에서 40분 사이를 오갑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중간에 기침할 타이밍조차 없이 논스톱으로 내달리는 곡입니다. 연주자들의 체력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에, 실제 공연장에서는 아예 1부나 2부 전체를 통째로 차지하는 메인 요리로 대접받곤 합니다.

생상스는 왜 교향곡 4번을 쓰지 않았나요?

초연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영국 왕립 필하모닉 협회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제발 다음 교향곡을 써달라”며 백지수표를 내밀었지요. 하지만 생상스는 단호했습니다. “내 모든 걸 쏟아부었다”는 선언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거든요. 놀랍게도 그는 1921년 눈을 감을 때까지 무려 35년 동안 단 한 곡의 교향곡도 쓰지 않았더군요. 박수칠 때 떠나는 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던, 천재의 미련 없는 퇴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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