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장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1865–1957)
- 작품명
- 교향곡 5번 E♭장조 Op.82
- 작곡
- 1914–1915년 (1916년·1919년 두 차례 개정)
- 초연
- 1915년 12월 8일,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시벨리우스 지휘
- 악장 수
- 3악장 (초연 버전은 4악장)
- 연주 시간
- 약 31–32분
- 출판
- 에디션 빌헬름 한센, 1921년
살아있는 사람의 50번째 생일을 정부가 나서서 아예 국가 공휴일로 박아버립니다. 역사책에 박제된 죽은 위인도 아닌,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역 작곡가에게 벌어진 일이죠. 게다가 그날 열리는 국가급 축하 행사에서 신작 교향곡을 직접 지휘해 달라는 묵직한 청구서까지 날아옵니다. 이 어마어마한 압박을 온몸으로 받아낸 주인공이 바로 장 시벨리우스였고, 그 숨 막히는 무대에서 초연된 곡이 교향곡 5번입니다.
초연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쏟아지는 찬사와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홀을 가득 채웠거든요. 그런데 정작 무대에서 내려온 시벨리우스의 행보가 기괴합니다. 이듬해 그는 멀쩡한 악보를 통째로 뜯어고치는 기행을 벌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2년을 더 물고 늘어지더니 1919년에 기어코 세 번째 버전을 세상에 던져놓죠. 대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은 곡을 무려 4년에 걸쳐 세 번이나 갈아엎은 셈입니다. 도대체 왜 사서 고생을 했을까요? 이 꼬리를 무는 의문을 집요하게 따라가다 보면, 유난히 고집스럽던 북유럽의 거장이 교향곡이라는 무대 위에 끝내 세우고자 했던 서늘한 진심과 마주하게 됩니다.
혼돈의 한복판에서 기어이 제 갈 길을 간 사내
1914년의 유럽 음악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가 파리 한복판에서 ‘봄의 제전’을 초연하며 관객 폭동이라는 진풍경을 연출한 지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죠. 시대의 최전방이 어디인지 폭력적일 만큼 뚜렷하게 증명된 사건이었습니다. 쇤베르크는 음악의 근간인 ‘조성(장조와 단조 체계)’의 뼈대를 잔인하게 해체하며 폭주 중이었고, 드뷔시와 라벨은 아득하고 몽환적인 색채로 신세계를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너도나도 AI와 블록체인에 뛰어들며 혁신을 부르짖는 광기의 실리콘밸리 한복판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토록 숨 가쁘게 돌아가는 판에서 시벨리우스의 처지는 꽤나 묘했습니다. 조국 핀란드 안에서는 무결점의 영웅으로 추앙받았지만, 콧대 높은 유럽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슬슬 ‘한물간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고 있었거든요. 1911년에 내놓은 교향곡 4번을 향한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직도 도레미파솔라시도 안에서 작곡을 합니까?”라는 멸시 섞인 조롱이 쏟아질 정도였죠. 음악학자 제임스 헤포코스키의 기록을 보면, 시벨리우스 본인조차 “현대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짙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삶 역시 엉망진창으로 곤두박질친 상태였습니다. 목에 자리 잡은 종양 탓에 수술대에 올라야 했고, 지독한 알코올 의존증과도 매일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습니다. 이처럼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최악의 상황에서 ’50세 생일 기념 국가 공식 교향곡’이라는 무자비한 과제가 툭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의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쇤베르크를 필두로 한 무조성이라는 최신 유행의 파도에 올라타 단숨에 세련된 작곡가로 신분 세탁을 하거나, 미련할 만큼 뚝심 있게 자신만의 언어를 밀어붙이거나 둘 중 하나였죠. 핀란드의 지휘자 한누 린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벨리우스가 아주 단호한 결단을 내렸다고 분석합니다. 낭만주의의 낡은 화성 언어는 굳건히 쥐고 가되, 곡의 거대한 뼈대와 음색만큼은 그 누구도 감히 밟아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끌고 가겠다는 날 선 선전포고였습니다. 남들이 혁신을 외치며 스마트폰을 찍어낼 때, 홀로 골방에 앉아 “나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태엽 시계를 만들겠다”고 선언해 버린 격입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지금, 그 미련해 보이던 고집이 완벽히 옳았음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 시절 유행의 최첨단을 좇아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전위 음악 중, 오늘날까지 무대 위에서 살아남아 연주되는 곡이 과연 몇이나 남았을까요? 시벨리우스가 홀로 짊어져야 했던 그 시대의 짓눌릴 듯한 압박감을 떠올려 보면, 교향곡 5번이 뿜어내는 이토록 거대하고 단단한 에너지는 경이로움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낙원의 변방에서 모자이크 조각을 주워 담다
시벨리우스가 남긴 작곡 일기를 들춰보면, 교향곡 5번이 잉태되던 순간을 묘사한 기가 막힌 문장 하나가 불쑥 튀어나옵니다. “마치 하나님이 천국의 가장자리에서 모자이크 조각들을 던지고, 나는 그 패턴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는 것 같았다.”
단언컨대 이 짧은 문장은 교향곡 5번의 굳게 닫힌 문을 여는 가장 완벽한 마스터키입니다. 이 곡은 친절하게 기승전결을 떠먹여 주는 매끄러운 소설책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무의미해 보이던 파편화된 퍼즐 조각들이 허공을 정처 없이 떠돌다, 어느 순간 무서운 흡입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며 거대한 성채로 융기하는 광경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것에 가깝죠.
특히 1악장은 이 기묘한 조립 공정이 가장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무대입니다. 곡의 첫머리는 호른이 읊조리듯 뱉어내는, 아주 낮고 조용한 짧은 신호음으로 막을 틉니다. 기껏해야 4도 음정(예컨대 도와 파 사이의 간격)으로 이뤄진 지극히 평범하고 심심한 패턴에 불과하거든요. 그런데 이 보잘것없는 조각이 돌연 세포 분열을 하듯 징그럽게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목관악기들이 날렵한 16분음표로 끈질기게 들러붙고, 리듬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게 압축되며 밀도를 높입니다. 그러다 한계점에 다다른 순간, 수문이 박살 나며 격류가 쏟아지듯 음악은 완전히 낯선 차원으로 무자비하게 폭발해 버리죠.
핀란드어에는 ‘시수(sisu)’라는 꽤나 독특한 단어가 존재합니다. 뼈가 시리다 못해 바스러질 듯한 혹독한 추위 앞에서도 기어코 고개를 빳빳이 쳐드는 지독한 의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섣불리 결론을 들이밀지 않은 채, 그저 미약한 조각 하나를 움켜쥐고 끝끝내 거대한 우주를 직조해 내는 이 교향곡의 끈질긴 논리야말로 핀란드인들이 그토록 떠받드는 ‘시수’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름 돋는 지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 곡은 시벨리우스가 평생 남긴 교향곡을 통틀어 유일하게 모든 악장이 ‘장조’로만 도배되어 있습니다. 직전에 세상에 내놓았던 4번 교향곡이 시종일관 잿빛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과 섬뜩할 정도로 대비되는 행보죠. 전작인 4번이 자신의 곪아 터진 내면을 가학적으로 헤집어 놓는 음악이었다면, 5번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서서 눈이 시리도록 밝고 광활하게 탁 트인 소리의 구역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세 번이나 갈아엎은 이유: 지독했던 4년의 기록
초연은 1915년 12월 8일, 정확히 시벨리우스의 50세 생일 당일이었습니다.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떡하니 무대에 올랐고, 시벨리우스 본인이 직접 지휘봉을 쥐었죠. 핀란드 정부가 아예 이 날을 국가 공휴일로 못 박아버렸으니, 홀 안의 열기가 어땠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겁니다. 청중의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때 연주된 초연 버전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듣는 버전과 뼈대 자체가 다릅니다. 초연 당시에는 4악장 구성이었거든요. 지금의 1악장에 해당하는 덩어리가 원래는 두 개의 독립된 악장으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묵직한 오프닝과 스케르초(scherzo, 빠르고 유쾌한 성격의 악장)가 아예 남남처럼 별도의 악장으로 존재했던 것이죠.
정작 시벨리우스 본인의 심기는 영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이 두 덩어리가 기어이 하나로 이어져야만 한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1916년에 내놓은 개정판에서는 이 둘을 하나의 악장으로 우격다짐하듯 꿰매버렸죠. 하지만 이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곡 전체의 균형이나 색채가 여전히 자신의 깐깐한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고 판단한 그는, 1917년부터 1919년까지 악보를 다시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고행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19년 11월 24일, 헬싱키 필하모닉이 다시 한번 무대에 올라 사실상의 두 번째 초연을 치러냅니다. 구질구질한 수정 끝에 탄생한 이 결과물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귀가 닳도록 듣는 그 최종판입니다.
굳이 이 사서 고생을 한 이유에 대해 시벨리우스 본인이 직접 남긴 기록이 있습니다. “이 교향곡에 다른 형태를 주고 싶었습니다. 더 인간적인 형태를. 더 현실적이고, 더 생생한.” 일각의 분석에 따르면, 원래 버전에는 모더니즘 성향이 다분했고 심지어 무조성 구절도 일부 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갈고 다듬은 1919년 최종판은 훨씬 더 웅장하고 고전적인 자태로 정돈되었죠. 한마디로 불필요한 겉멋과 방황을 가차 없이 도려내고 뼈대만을 서늘하게 부각한 결과물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길고 긴 역사에서도 이토록 유난스러운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이미 대중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아낸 곡을, 남들의 평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내면의 잣대 하나만 믿은 채 4년에 걸쳐 물고 늘어진 작곡가라니요. 브람스가 교향곡을 발표하기 두려워 20년 넘게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던 일화와 묘하게 겹치는 구석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완성’이란 대중의 환호가 아니라, 오직 거울 속 자신만이 찍어줄 수 있는 지독한 마침표였던 셈입니다.
정말로 섬뜩한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그는 7번 교향곡을 탈고한 후에도 무려 30년 가까운 세월을 더 살았음에도, 8번 교향곡만큼은 끝끝내 세상에 빛을 보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 초고가 존재했다고는 전해지지만, 시벨리우스 본인이 숨을 거두기 직전 불태웠다는 소문도 돌거든요. 세상에 꺼내놓을 만큼 완성됐다고 느끼지 못했거나, 혹은 얼추 완성했더라도 본인의 그 끔찍하게 높은 기준선에 미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5번 교향곡을 세 번이나 갈아엎게 만들었던 그 지독한 완벽주의가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숨통을 틀어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지루하고 치열했던 4년의 수술 과정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묘한 점이 하나 더 숨어 있습니다. 중간 결과물인 1916년 개정본은 안타깝게도 아주 일부만 찢어진 채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온전한 형태로 보존되지 않은 탓에, 초연 버전에서 1919년 최종판으로 넘어가는 그 은밀한 막간에 도대체 무슨 마법이 벌어졌는지 완벽하게 파악하기란 영영 불가능해졌죠. 시벨리우스가 자신의 초고를 얼마나 병적으로 철저하게 통제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청중의 눈에 띄게 하고 싶지 않은 미완의 찌꺼기는 무덤까지 들고 가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악장별로 뜯어듣기
교향곡 5번은 단출한 3악장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원래 4악장 짜리였던 것을 1악장 안으로 우겨넣어 꿰매버린 기나긴 수술의 결과물이죠. 전체 연주 시간은 대략 31~32분에 달하는데, 고작 3악장으로 짜인 교향곡치고는 꽤나 길게 느껴지는 덩치입니다. 덕분에 각각의 악장이 제 몫의 이야기를 천천히 끌어올릴 충분한 물리적 여백을 확보하고 있다는 묵직한 인상을 남깁니다.
감상에 앞서 짚고 넘어갈 실용적인 팁이 하나 있습니다. 이 곡, 도입부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소리가 작습니다. 특히 1악장 첫머리는 속이 터질 만큼 느릿하고 조용하거든요. 무턱대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진짜 이게 전부야?” 하고 허탈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섣불리 끄지 말고 버티셔야 합니다. 이 곡은 진득하게 벽돌을 쌓아 올리는 노동의 음악입니다. 1악장 중반부를 기점으로 서서히 밀도를 높인 에너지가 기어이 3악장의 끄트머리에 닿아서야 무자비하게 터져버리죠. 꾹 참고 끝까지 내달려봐야 비로소 이 곡의 진짜 속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웬만하면 답답한 헤드폰은 집어 던지고 큼지막한 스피커로, 여유가 된다면 아예 공연장에 자리를 잡고 들었을 때 비로소 이 교향곡의 서늘한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특히 3악장 맨 마지막에 때려 박는 여섯 개의 단호한 화음은 공간의 공기를 찢으며 울려 퍼지는 탓에, 헤드폰의 좁은 진동판 따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거든요. 텅 빈 홀에 여섯 개의 화음이 섬뜩하게 울리고 난 뒤 찾아오는 그 무거운 침묵의 무게는, 제아무리 값비싼 녹음 장비로도 완벽하게 모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1악장: 물과 기름이 기어코 섞여 들어가는 과정
교향곡 5번의 1악장은 음악 분석가들 사이에서 오늘날까지도 왈가왈부 뒷말이 무성할 만큼 기형적이고 독특한 뼈대를 지녔습니다. 곡의 문이 열리면 극도로 느리고 명상적인 적막이 맴돕니다. 호른이 슬그머니 기어나와 4도 음정을 밑천 삼은 동기를 읊조리듯 내뱉죠. 사실 이 동기야말로 곡 전체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핵심 재료인데, 정작 첫인상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힘 빠진 기적 소리에 불과해 보입니다.
이 밋밋한 정적이 아주 서서히, 징그러울 정도로 끈덕지게 에너지를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목관악기들이 날 선 16분음표로 가세하고, 리듬 패턴은 쉴 틈 없이 압축되며 속도광처럼 템포를 끌어올리죠. 그러다 기어코 악보의 박자 표시가 12/8에서 3/4으로 슬쩍 간판을 바꿔 다는 바로 그 찰나, 음악은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탈바꿈해 버립니다. 격렬하게 몰아치는 스케르초의 질주가 막을 올리는 것입니다.
악보를 펼쳐놓고 두 눈을 부릅뜨지 않는 한 이 묘한 경계를 잡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저 넋 놓고 듣다 보면 음악이 슬금슬금 빨라지나 싶더니, 어느새 춤추듯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거든요. 두 덩어리 사이의 경계선이 칼로 벤 듯한 단절이 아니라, 소름 돋을 만큼 매끄럽고 연속적인 가속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시벨리우스가 음흉하게 노렸던 대목입니다. 두 개의 전혀 다른 성격이 물 흐르듯 이어지면서도 기어이 대비를 이루고 마는 기괴한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죠.
음악학자들은 이 기형적인 악장의 형식을 두고 지금까지도 핏대를 세우며 싸우고 있습니다. 세실 그레이(1935년), 제럴드 에이브러험(1947년), 로버트 레이턴(1965년), 그리고 제임스 헤포코스키(1993년)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참전했죠. 이 악장을 억지로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에 욱여넣을 것인지, 아니면 헤포코스키가 제안한 ‘회전형(rotational form)’이라는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지를 두고 여전히 난타전을 벌이는 중입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그 어떤 형식의 틀로도 이 악장을 깔끔하게 재단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이 곡이 얼마나 지독하게 독창적인지를 증명해 줍니다.
이 중 헤포코스키의 분석이 유독 흥미를 끕니다. 그는 이 악장을 뼈대가 먼저 있고 살을 붙이는 게 아니라, 음악의 재료 자체가 스스로 형식을 결정지어 버리는 맹렬한 구조로 보았습니다. 18~19세기에 닳고 닳은 교향곡 템플릿을 얌전히 따르는 대신, 재료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 팽창하는 셈이죠. 첫머리의 그 조용한 호른 동기에서 출발해 전체가 한 바퀴 뺑 도는 ‘순환’이 반복되며 점점 덩치를 키워가는 방식입니다. 이 서늘한 관점으로 보면, 악장이 처음에는 숨 막히게 느렸다가 나중에 폭주하듯 빨라지는 현상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발버둥에 가깝습니다.
1악장의 첫머리와 끝자락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그 간극이 꽤나 충격적입니다. 처음에는 고작 호른 4대가 쭈뼛거리며 조용히 막을 엽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눈에 불을 켜고 매섭게 내달리거든요. 이 극단적인 변화가 뜬금없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중간에 징그러울 정도로 촘촘하게 쌓아 올린 빌드업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비탈길을 구르는 눈덩이가 서서히 무서운 덩치로 돌변하는 광경과 비슷하죠. 시벨리우스는 이 지독한 팽창 과정을 무려 15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뻔뻔하게 늘어놓습니다.
1악장에서 귀를 기울여야 할 기묘한 특징이 하나 더 있습니다. 곡이 진행될수록 헐거웠던 음악의 조직이 숨 막힐 정도로 촘촘해진다는 겁니다. 첫머리에 던져진 호른 동기는 그저 평범한 4도 음정 기반의 심심한 패턴에 불과했지만, 악장이 굴러가면서 온갖 악기들이 달려들어 이 패턴을 제멋대로 난도질하기 시작합니다. 속도를 높여 앞뒤로 뒤집어 버리기도 하고, 리듬을 억지로 비틀어 연주하기도 하죠. 바로 이것이 1악장 스케르초 부분에서 무자비하게 터져 나오는 에너지의 진짜 근원입니다. 멍하니 한 번 들을 때는 그저 시끄러울 뿐이지만, 악착같이 여러 번 듣다 보면 이 치밀한 변이 과정이 섬뜩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악장 끄트머리에 이르면 목관악기들이 맹렬하게 쏟아지다가 돌연 찬물을 끼얹은 듯 소리가 뚝 끊기는 찰나가 찾아옵니다. 네, 바로 거기서 1악장이 허무하게 막을 내립니다. 실제 공연장에서는 이 기가 막힌 끊어 치기에 속아 넘어가, 어설프게 박수를 치려다 민망하게 손을 거두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2악장: 폭풍 사이의 고요
2악장은 이 험악한 교향곡 5번 안에서 그나마 가장 서정적인 숨통이 트이는 구역입니다. 조성은 G장조로 쓰였는데, 곡 전체를 통틀어 주조성인 E♭장조를 벗어난 유일한 악장이라는 점이 꽤나 노골적입니다. 1악장의 멱살을 쥐고 흔들던 강렬한 추진력과, 3악장의 웅장한 결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숨을 고르며 완충 지대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셈이죠.
피치카토(pizzicato), 즉 현악기의 활을 팽개치고 손가락으로 얄밉게 현을 뜯어대는 주법으로 극도로 조용한 밑그림이 깔립니다. 그 위로 목관악기들이 능청스럽게 느릿한 주제를 툭 던져놓죠. 그런데 이 주제는 애초부터 온전한 덩어리로 등장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파편처럼 조각조각 제시되다가, 엉성하게 뭉치고, 이내 다시 흩어져 버리기를 반복하거든요.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낡은 기억을 안간힘을 쓰며 더듬어 맞추는 광경에 가깝습니다.
악장 꼭대기에 적힌 지시어는 ‘안단테 모소, 콰지 알레그레토(Andante mosso, quasi allegretto)’입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빠르게 움직이는 안단테, 알레그레토에 가까운 속도로’라는, 참으로 모순된 뜻입니다. 쉽게 말해 느릿하게 가되 텐션은 잃지 말라는 뻔뻔한 주문이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지시어는 악장의 기묘한 성격을 정확히 관통합니다. 분명 느릿하게 흘러가지만 결코 제자리에 고여 있지 않고, 숨죽인 듯 조용하지만 그 안의 에너지는 시퍼렇게 살아 꿈틀대고 있거든요.
악장 한가운데 즈음 이르면 미지근하던 분위기가 한번 훅 달아오릅니다. 현악기들이 악착같이 리듬을 겹쳐 올리고, 목관악기들이 그 위에 열기를 부채질하죠. 그러다 슬그머니 처음의 그 정적으로 꼬리를 내리고 돌아옵니다. 하지만 착각하면 안 됩니다. 겉보기엔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도, 악기들의 조합이 교묘하게 틀어져 있고 소리의 질감마저 서늘하게 변질되어 있거든요. 똑같은 풍경을 햇살 쨍한 오전과 해 질 녘 오후에 두 번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묘한 차이와 아주 흡사합니다.
사실 이 악장에는 귀를 의심케 하는 독특한 이면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교향곡 5번은 곡 전체를 통틀어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든 악장이 장조로만 도배되어 있습니다. 시벨리우스가 남긴 다악장 교향곡 중 단조 악장이 씨가 마른 유일한 작품이죠. 이건 결코 작곡가의 실수나 우연이 아닙니다. 단조가 빠졌으니 마냥 해맑기만 하냐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굳이 단조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장조의 뼈대 안에서 얼마든지 짓눌린 감정과 어두운 그늘을 빚어낼 수 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니까요. 이 2악장이 바로 그 지독한 진실을 가장 소름 돋게 까발려 줍니다.
2악장에서 시벨리우스가 구사하는 변주의 방식 역시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처음에 툭 던져졌던 주제 선율이 다시 고개를 내밀 때마다 묘하게도 소리의 색깔이 계속 뒤바뀌거든요. 뼈대가 되는 선율 자체는 뻔뻔할 정도로 그대로인데, 뒤에 깔리는 배경이 슬그머니 교체되고 바통을 넘겨받는 악기가 달라집니다. 이건 과거 베토벤이나 브람스가 멜로디의 뼈대마저 이리저리 찢고 붙이던 고전적인 변주 방식과는 궤를 완전히 달리합니다. 시벨리우스식 변주는 선율이라는 본질은 가만히 놔둔 채, 오로지 그 선율을 포위하고 있는 외부 환경만 교묘하게 갈아치우는 식입니다. 똑같은 사람이 완전히 다른 조명 아래 섰을 때 뿜어내는 낯선 이질감이라고 하면 정확하겠네요.
2악장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소리는 숨이 끊어지듯 스르르 사그라집니다. 이 숨 막히는 고요함은 다가올 3악장의 거대한 시작을 벼르고 있는 팽팽한 활시위 같은 역할을 하죠.
3악장: 백조 떼가 비상한 날, 그리고 역사상 가장 기괴한 마침표
교향곡 5번의 3악장 뒤에는 꽤나 극적인 비화가 숨어 있습니다. 1915년 4월 21일 아침, 시벨리우스는 자신의 집 지붕 위를 맴도는 백조 열여섯 마리를 목격합니다. 그는 이 압도적인 광경을 일기장에 고스란히 박아 넣었죠. “오늘 아침, 백조 열여섯 마리를 보았다. 내 생애 가장 큰 체험 중 하나다.” 무겁게 울어대며 허공에 원을 그리다 홀연히 사라지는 백조 떼의 궤적과 소리가 어찌나 소름 끼치게 강렬했던지, 이 짧은 찰나의 목격담이 그대로 3악장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핵심 모티프가 되어버렸습니다.
핀란드 사람들에게 백조는 호숫가에 떠다니는 흔해 빠진 조류 따위가 아닙니다. 엄연한 국조(國鳥)인 데다, 핀란드의 핏줄 같은 고전 서사시 ‘칼레발라’에서는 저승으로 흘러가는 강목을 섬뜩하게 지키는 신성한 파수꾼으로 등장하거든요. 이 무거운 배경지식을 머리에 넣고 3악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신비로운 구절을 마주하면, 그 소리가 전혀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3악장은 곧장 ‘알레그로 몰토(Allegro molto, 매우 빠르게)’의 채찍질로 문을 엽니다. 무자비한 추진력으로 맹렬하게 질주하죠. 그러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중간 즈음, 돌연 ‘미스테리오소(Misterioso, 신비롭게)’라는 지시어와 함께 급브레이크가 걸립니다. 현악기들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파르르 떨리는 음향을 직조해 내고, 그 위로 목관악기들이 은밀하게 무언가를 주술처럼 속삭입니다. 펄펄 끓던 오케스트라 전체가 극도로 여린 소리의 심연으로 속수무책 가라앉는 바로 이 찰나, 이것이 훗날 호사가들 사이에서 이른바 ‘백조 찬가’라 불리게 된 문제의 구절입니다.
사실 ‘백조 찬가’라는 낭만적인 타이틀을 시벨리우스 본인이 직접 가져다 붙인 건 아닙니다. 이 기묘한 구절에 압도당한 청중과 음악학자들이 그의 일기장 속 백조 일화를 끄집어내 멋대로 호적을 파준 격이죠. 하지만 이를 억지스러운 과대해석이라며 깎아내리기도 뭣합니다. 여기서는 목관악기의 선율이 시퍼런 날갯짓처럼 묵직하게 오르내리고, 징그럽게 같은 음을 비벼대는 현악기의 트레몰로(tremolo)는 꼭 서늘한 호수 수면의 떨림을 그대로 건져 올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거든요. 백조 떼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그 압도적인 순간을 소리로 빚어낸다면 필시 이런 질감일 수밖에 없겠다는 묘한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교향곡의 악명 높은 피날레가 기괴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원래 교향곡의 피날레란, 목에 핏대를 세우고 미친 듯이 내달리다 쾅! 하고 통쾌하게 박살 내며 끝나는 것이 국룰입니다. 베토벤이 그랬고, 브람스의 뚝심 있는 교향곡들이 그래왔죠. 객석에 앉은 청중에게 “자, 이제 집에 가십쇼!” 하고 친절하게 종료 선언을 때려주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시벨리우스는 이 뻔한 공식에 가차 없이 찬물을 끼얹는 기형적인 선택을 감행합니다.
폭주하며 막바지를 향해 돌진하던 음악은 별안간 브레이크를 밟더니, 무자비하게 덩그러니 놓인 여섯 개의 화음을 드문드문 허공에 내리꽂습니다. 화음 하나가 공간을 찢고, 숨 막히는 침묵. 다시 화음, 그리고 또 침묵. 이 끔찍하게 단호한 의식이 무려 여섯 번이나 반복됩니다.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는 거대한 종이 여섯 번 울리는 광경과 다를 바 없죠. 그 마지막 화음의 잔향마저 서늘하게 증발하고 나서야, 곡은 비로소 질긴 숨통을 끊어냅니다.
여기서 진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이 여섯 개의 화음 사이에 도사린 침묵의 길이입니다. 포디움에 선 지휘자들은 이 공백을 얼마나 고문하듯 길게 끌고 갈지를 두고 제각기 다른 도박을 벌이거든요. 이 침묵을 야멸치게 짧게 쳐내는 자와 숨이 넘어갈 듯 길게 늘어뜨리는 자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릴 정도입니다. 에사-페카 살로넨은 이 침묵을 극한까지 늘려 관객의 피를 말리는 지독한 방식으로 명성이 자자하고, 반대로 파보 예르비는 비교적 단호하고 빠르게 쳐내며 군더더기를 없앱니다. 어느 쪽이 정답이냐 따지는 건 무의미합니다. 그저 똑같은 악보 한 장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다른 괴물을 낳을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까발려 주는 대목일 뿐이죠.
이 끄트머리의 여섯 화음을 악보로 뜯어보면 소름 돋는 사실이 하나 더 튀어나옵니다. 오선지 위에는 화음과 화음 사이에 정확한 길이의 쉼표들이 징그럽게 박혀 있습니다. 시벨리우스가 이 기괴한 침묵을 어쩌다 툭 튀어나온 여백이 아니라, 뼛속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넣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입니다. 음악에서 쉼표란 그저 소리가 빈 죽은 공간이 아닙니다. 포효하는 음표와 똑같은 짓눌린 무게를 지닌 시퍼런 생물이죠. 시벨리우스는 교향곡의 종착역을 시끄러운 음표로 떡칠하는 대신, 날 선 화음과 숨 막히는 침묵의 얄미운 교차 폭격으로 엮어버린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곡을 공연장에서 처음 마주한 불쌍한 청중들은 도대체 언제 손뼉을 마주쳐야 할지 몰라 눈치 게임을 벌이기 일쑤입니다. “끝났나?” 싶으면 쾅! 하고 화음이 터지고, “아, 진짜 끝이구나” 안도하면 징그러운 침묵이 다시 멱살을 잡거든요. 실제로 세계 어느 연주회장을 가든 이 얄궂은 결말 탓에 박수 타이밍이 처참하게 꼬여버리는 참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3악장의 뼈대를 가만히 물러서서 조망해 보면, 시벨리우스가 이 5번 교향곡을 쥐어짜며 도달하려 했던 그 징글징글한 목표가 가장 섬뜩하게 드러납니다. 미친 듯이 채찍질하며 시작해서 주술 같은 중간 지대를 통과한 뒤, 거대한 여섯 개의 종소리로 숨이 멎듯 사그라지죠. 시작과 끝의 템포가 완전히 거꾸로 뒤집히는 구조입니다. 1악장이 굼벵이처럼 시작해 폭주 기관차처럼 끝났다면, 3악장은 폭주하다가 기어이 멈춰 서는 길을 택합니다. 이 기가 막힌 거울 같은 대칭이, 흔들리던 교향곡 전체의 육중한 무게 중심을 틀어쥐는 원리입니다.
본인이 철저히 계산한 짓이든 우연의 산물이든, 이 유난스러운 마침표는 콧대 높은 클래식 교향곡의 역사 전체를 뒤져봐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돌연변이입니다. 완전히 문을 열어젖힌 것도, 그렇다고 쾅 닫아버린 것도 아닌 기괴한 결말. 허공에 덩그러니 남겨진 그 짙고 선명한 잔향뿐이죠.
기어이 이 교향곡이 토해내는 것들
까놓고 말해 교향곡 5번에는 세상을 뒤집어엎겠다는 거창한 선언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혹한 운명의 멱살을 잡고 싸우겠다는 베토벤 특유의 피 끓는 치기도 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영웅의 무용담도 없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한 줌의 미약한 먼지 조각들이 엉겨 붙어 기어코 뚫을 수 없는 거대한 성벽으로 자라나는 묵직한 노동의 과정이 버티고 섰습니다. 핀란드의 차가운 자연, 비상하는 백조 떼, 서늘한 호수, 그리고 숨 막히는 침묵. 너무나도 구체적인 형상들이지만, 시벨리우스는 결코 혓바닥을 길게 빼고 구차하게 설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묵묵히, 그저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내버려 둘 뿐입니다.
이 교향곡의 뼈대를 멀찌감치 물러서서 다시 굽어보면 꽤나 기막힌 구조가 눈에 들어옵니다. 1악장은 굼벵이처럼 기어가다 폭주 기관차처럼 막을 내립니다. 2악장은 그 틈바구니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죠. 그리고 3악장은 미친 듯이 내달리다 숨이 멎듯 느려지며 끝이 납니다. 이 노골적인 속도의 뒤집기가 교향곡 전체에 서늘한 균형감을 빚어냅니다. 처음과 끝이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있지만, 정작 그 속내는 완전히 다릅니다. 1악장 첫머리의 정적과 3악장 끄트머리의 정적은 질감 자체가 다르거든요. 시작의 고요함이 폭발을 벼르는 팽팽한 활시위라면, 마지막의 고요함은 잿더미만 남기고 연소해 버린 완성된 에너지입니다.
시벨리우스가 버텨내야 했던 시대와 오늘날의 풍경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뒤집히고, 굳건하던 전통의 뼈대가 속절없이 흔들리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팍팍한 시대죠. 이 아수라장 속에서 시벨리우스가 내놓은 답은 “새로운 언어로 빚은 새로운 형식” 따위의 얄팍한 혁신이 아니라, “쓰던 언어로 끝을 알 수 없는 더 깊은 바닥까지 파고들겠다”는 지독한 뚝심이었습니다. 그 고집스러운 선택이 정답이었는지 오답이었는지 굳이 핏대를 세우며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 교향곡이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서 무대 위를 배회하며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미 묵직한 대답이 되거든요.
교향곡 5번은 오늘날에도 클래식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귓가를 맴돕니다. 특히 3악장의 끄트머리에 내리꽂히는 그 섬뜩한 여섯 개의 화음은 ‘장엄하고 기괴한 마무리가 필요한’ 영화나 광고, 게임 OST 제작자들이 눈독을 들이며 레퍼런스로 찾는 구간입니다. 지금 들어도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낯설고 신선한 방식이기 때문이죠.
이 교향곡이 오늘날까지도 묵직한 의미를 던지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과연 예술에서 ‘완성’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뼈아프게 묻고 있거든요. 대중이 그토록 열광하며 박수갈채를 쏟아냈는데도, 시벨리우스는 기어코 악보를 다시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에게 완성의 잣대는 타인의 찬사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 지독한 개정의 결과물이 바로 지금 우리가 닳도록 듣고 있는 교향곡 5번입니다. 결과론적으로 따지자면 그의 똥고집이 옳았습니다. 1919년 최종판이 초연 버전보다 낫다는 데에는 음악학자들도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거든요. 하지만 이 기나긴 과정에서 시벨리우스는 세상의 얄팍한 평가를 비웃듯 오직 자신의 내면 깊숙한 목소리만을 악착같이 좇았습니다. 이 교향곡이 그토록 질긴 생명력으로 더 오래 우리 기억에 남는 진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겁니다.
흥미로운 대조군도 하나 짚고 넘어가 볼 만합니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가 낯선 땅에 뚝 떨어진 이방인의 서글픈 향수를 쥐어짜 낸 음악이라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5번은 제집 안방에 두 발을 꼿꼿이 박고 서서 그 터전을 악착같이 지켜내는 뚝심의 음악입니다. 드보르자크가 삭막한 뉴욕 한복판에서 아득한 보헤미아를 눈물겹게 그리워할 때, 시벨리우스는 헬싱키의 하늘과 서늘한 호수, 그리고 날아오르는 백조 떼를 두 눈으로 똑똑히 노려보고 있었죠.
19세기 후반부터 클래식 음악판에는 ‘민족주의’라는 거창한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했습니다. 작곡가들이 앞다투어 자기 나라의 촌스러운 민요나 케케묵은 전설을 끌고 들어와 곡을 쓰기 바빴죠. 체코의 드보르자크와 스메타나, 노르웨이의 그리그,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헝가리의 바르토크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그리고 핀란드에는 당연히 시벨리우스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북유럽 거장의 행보는 여타 민족주의 작곡가들과는 궤를 완전히 달리했습니다. 교향곡 안에서는 뻔한 민요를 노골적으로 베껴 쓰는 촌극을 거의 벌이지 않았거든요. 대신 그는 핀란드의 살을 에이는 공기와 날 선 빛, 황량한 자연 그 자체를 멱살 잡듯 끌어와 고스란히 음악의 언어로 치환해 버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서늘한 작법이 가장 완벽하게 만개한 작품이 다름 아닌 교향곡 5번입니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시대적 배경이 또 하나 버티고 있습니다. 교향곡 5번이 마침내 피투성이 수술을 끝낸 1919년은, 핀란드가 독립(1917년)을 쟁취한 지 고작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지긋지긋한 러시아 제국의 압제에서 벗어나 갓 걸음마를 뗀 신생국이었죠. 이 피 끓는 핀란드 사람들의 귓가에 이 교향곡이 도대체 어떤 소리로 꽂혔을지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자기네 땅의 풍경을 날것 그대로 담아낸 음악, 그것도 국가적 영웅이 무려 4년에 걸쳐 뼈를 깎아 완성한 대작이라니요. 그들에게 이 곡은 이미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껍데기를 훌쩍 뛰어넘은 묵직한 상징 그 자체였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막힌 반전이 하나 튀어나옵니다. 정작 시벨리우스 본인은 그 흔한 정치적 선동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는 겁니다. 훗날 그의 ‘핀란디아’가 러시아 검열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건 대중이 그 곡을 맘대로 독립의 상징으로 떠받들었기 때문이지, 작곡가가 대놓고 불온한 정치적 메시지를 심어놓아서가 아니었거든요. 교향곡 5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곡 어디를 뒤져봐도 핀란드의 독립 만세를 외치는 노골적인 선동 구호 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묵직하게 호른이 울고, 백조가 날아오르고, 오케스트라가 미친 듯이 내달릴 뿐이죠. 그럼에도 핀란드인들은 이 뻣뻣한 음악 안에서 기어코 자신들의 핏줄을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음악이 그 알량한 정치 구호보다 아득히 깊은 곳에서 사람의 심장을 후벼 팔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 징그러운 교향곡 5번을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청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구경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입니다. 유독 영국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영국의 콧대 높은 비평계는 시벨리우스를 극진히 치켜세웠고, 그의 교향곡들은 20세기 전반 영국 오케스트라들의 필수 레퍼토리로 떡하니 자리 잡았죠. 반면, 당시 한창 전위 음악에 미쳐 돌아가던 독일과 프랑스 본토에서는 그를 철 지난 구닥다리 취급하며 대놓고 깔아뭉개기도 했습니다. 똑같은 음표 뭉치를 두고 이토록 처참하게 평가가 두 동강 났다는 건, 역설적으로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얄팍한 기교가 아니라 훨씬 더 묵직하고 원초적인 무언가를 끈질기게 건드리고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 피 튀기는 시대 한복판에서 시벨리우스가 차지한 위치는 참으로 기형적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나 쇤베르크 같은 전위주의의 불도저들과 뻔질나게 교류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유행은 콧방귀를 뀌며 철저히 무시했거든요. 동시대의 거장 말러와 벌였던 그 유명한 설전은 그의 똥고집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말러가 “교향곡이란 세계처럼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자, 시벨리우스는 덤덤하게 “나는 교향곡에서 모든 것들 사이의 심오한 연결, 그리고 안쪽으로 향하는 논리를 원한다”고 받아쳤다고 하죠. 교향곡 5번은 이 두 번째 선언, 즉 한 치의 군더더기도 없이 안으로 악착같이 파고드는 시벨리우스식 뚝심이 가장 섬뜩하게 구현된 작품입니다.
1919년 피 말리는 최종판을 세상에 던져놓은 뒤 시벨리우스의 음악 세계가 어떻게 굴러갔는지 추적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6번(1923년)과 7번(1924년) 교향곡을 연달아 뽑아낸 뒤, 그는 작곡의 셔터를 쾅 닫아버리다시피 했거든요. 이른바 ‘야르벤패의 침묵(Järvenpää Silence)’이라 불리는, 30년 넘는 기괴한 창작 공백기의 시작이었습니다. 호사가들 사이에서 그 이유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지만, 꽤나 공통된 해석이 하나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 더 이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쥐어짜 낼 수 없다고 체념했거나, 자신의 그 끔찍하게 높은 기준에 못 미치는 찌꺼기 따위를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교향곡 5번을 기어이 세 번이나 갈아엎게 만들었던 그 지독한 완벽주의의 잣대가, 결국 자기 자신마저도 기나긴 침묵 속으로 끌고 들어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다섯 번째 교향곡이 그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무시무시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시벨리우스가 남긴 교향곡 중 현재 무대에서 가장 질리도록 연주되는 투톱이 바로 2번과 5번이거든요. 2번이 낭만주의 특유의 끈적한 서사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면, 5번은 그 기형적인 뼈대와 얄궂은 결말 탓에 지휘자들이 기어코 한 번쯤 도전하고 싶어 하는 문제작입니다. 특히 그 악명 높은 마지막 여섯 개의 화음을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지휘자의 밑천과 해석을 가장 소름 돋게 까발려 주는 지점이라, 갓 데뷔해 피 끓는 젊은 지휘자가 자신의 실력을 뽐내려 이 곡을 고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오케스트라 편성표를 들여다봐도 헛웃음이 나옵니다. 교향곡 5번의 진용은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팀파니, 그리고 현악기가 전부입니다. 그 거대한 음향을 뿜어내면서 타악기라고는 달랑 팀파니 하나뿐이죠. 아예 진짜 대포까지 끌고 와 쏴대던 차이코프스키의 스펙터클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이토록 쪼잔하게 덜어낸 편성으로 그토록 무자비하고 웅장한 소리를 쥐어짜 낸다는 것, 바로 이것이 시벨리우스식 오케스트레이션의 섬뜩한 마법입니다. 무턱대고 악기를 때려 박아 소리를 불리는 게 아니라, 가진 패를 얼마나 얄밉고 치밀하게 배치하느냐의 싸움인 것이죠.
어떤 의미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은 지독하게 ‘비워내는’ 노동의 산물입니다. 19세기 낭만주의의 거장들이 오케스트라 위에 꾸역꾸역 더 많은 악기와 장식을 쌓아 올리며 배를 불릴 때, 시벨리우스는 뻔뻔하게 그 반대 차선으로 역주행을 감행했습니다. 앙상한 핵심 뼈대만 남기고 자잘한 군더더기는 가차 없이 발라내 버렸죠. 그 피도 눈물도 없는 뺄셈의 결과로 빚어진 소리는, 핀란드의 시린 하늘처럼 아득하게 넓고 투명합니다. 처음 이 곡을 마주할 때는 뼈만 남은 듯한 그 휑한 앙상함에 어리둥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악착같이 귀를 열어두다 보면, 그 텅 빈 공간이 얼마나 소름 끼치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여백인지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추천 녹음
아래는 텍스트로만 슬쩍 짚고 넘어가는 추천 음반 세 가지입니다. 눈으로 보는 실황 영상과는 또 다른 서늘한 결을 귓가에 들이밀어 줄 것입니다.
파보 예르비 지휘, 파리 오케스트라 (2014년)
지긋지긋한 군더더기를 싹둑 잘라낸 듯 명료하고, 숨 막히는 속도감으로 내달립니다. 1악장의 굼뜬 서정적 도입부가 어느새 미친 스케르초로 둔갑해 버리는 기막힌 변곡점을 기름칠한 듯 매끄럽게 빠져나갑니다. 3악장에서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자비가 없죠. 시벨리우스 5번이 선사하는 서늘한 쾌감을 처음 맛보려는 분들께 일말의 망설임 없이 1순위로 들이미는 명반입니다.
콜린 데이비스 경 지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1976년, 필립스)
콧대 높은 영국 비평계가 왜 그토록 시벨리우스 앞에 엎드렸는지 멱살 잡고 증명해 내는 클래식 중의 클래식입니다. 2악장에서 뚝뚝 묻어나는 짙은 서정성과, 3악장 피날레가 안면을 강타하듯 뿜어내는 묵직한 돌직구는 수십 년의 먼지가 앉은 지금도 감히 쳐다볼 엄두조차 안 날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 기형적인 교향곡의 ‘정석’을 확인하고 싶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 앨범을 집어 들어야 합니다.
에사-페카 살로넨 지휘,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핀란드 핏줄의 지휘자가 자국 영웅의 유산을 얼마나 잔인하게 해부해 내는지 적나라하게 까발려 줍니다. 아예 현미경이라도 들이댄 양, 악장의 미세한 뼈대와 악기들이 징그럽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결합을 섬뜩할 정도로 투명하게 들여다보게 해 주죠. 이 곡을 멍하니 몇 번 듣다가 “도대체 이 구조가 어떻게 굴러가는 거야?” 하고 골머리를 앓게 될 무렵 찾아 들으면, 절로 무릎을 내리치며 탄식하게 될 판본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오선지에 박힌 콩나물 대가리를 전혀 읽을 줄 모른다 해도 알 바 아닙니다. 그저 화면 속 시커먼 음표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어지럽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궤적을 가벼운 마음으로 좇아가기만 하십시오. 귓바퀴만 치고 스쳐 지나가던 시벨리우스의 그 무자비한 음향 덩어리들이, 돌연 눈앞에서 거대하고 기괴한 입체 건축물로 솟아오르는 섬뜩한 경험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방구석 지휘자에 빙의해 진짜 악보를 한 장씩 펄럭이며 넘겨보고 싶다면, 클래식계의 공공재라 불리는 IMSLP에서 닳고 닳은 원본 악보를 공짜로 훔쳐볼 수 있습니다. 주저할 것 없이 아래 링크를 당장 눌러보십시오. →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 악보 보기 (IMS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