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 – 교향곡 제5번 E♭장조, Op.82

박수 속에서도 4년을 더 뜯어고친 이유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1865–1957)

작품명
교향곡 5번 E♭장조 Op.82

작곡
1914–1915년 (1916년, 1917–1919년 2차례 개정)

초연
1915년 12월 8일,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시벨리우스 지휘

악장 수
3악장 (초연 버전은 4악장)

연주 시간
약 31–32분

출판
에디션 빌헬름 한센, 1921년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의 50번째 생일날, 정부가 그날을 아예 국가 공휴일로 지정해 버립니다. 죽은 위인도 아니고 살아있는 현역 작곡가에게 말이지요. 게다가 그날 열리는 국가적 축하 행사에서 신작 교향곡을 직접 지휘하라고 등 떠밉니다. 이 엄청난 압박감의 주인공이 바로 장 시벨리우스였고, 그날 초연된 곡이 교향곡 5번입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청중은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냈지요. 그런데 시벨리우스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는 이듬해 악보를 몽땅 뜯어고칩니다. 그것도 모자라 2년을 더 매달려 1919년에 세 번째 버전을 내놓습니다. 이미 찬사를 받은 곡을 무려 4년에 걸쳐 세 번이나 갈아엎은 셈입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이 질문을 끝까지 쫓아가다 보면, 이 고집스러운 북유럽 거장이 교향곡이라는 장르에서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 그 서늘한 진심과 마주하게 됩니다.

혼돈의 시대에 자기 길을 고집한 남자

장 시벨리우스 초상 (1904년)
1904년경의 시벨리우스. 이때부터 약 10년 후 교향곡 5번을 쓰게 된다.

1914년 유럽 음악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가 ‘봄의 제전’으로 파리 초연에서 관객 폭동을 일으킨 것이 불과 1년 전이었습니다. 시대의 선봉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증명한 사건이었죠. 쇤베르크는 아예 음악의 뼈대인 ‘조성(장조와 단조 체계)’ 자체를 해체하며 폭주하고 있었고, 드뷔시와 라벨은 몽환적인 색채의 신세계를 열고 있었습니다. 비유하자면 모두가 AI와 블록체인에 뛰어들며 혁신을 외치는 실리콘밸리 한복판 같았달까요.

이런 미친 속도의 흐름 속에서 시벨리우스의 위치는 묘했습니다. 조국 핀란드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콧대 높은 유럽 비평계에서는 슬슬 ‘한물간 작곡가’ 취급을 받기 시작했거든요. 1911년 발표한 교향곡 4번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아직도 도레미파솔라시도 안에서 작곡을 합니까?”라는 조롱 섞인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음악학자 제임스 헤포코스키의 기록에 따르면, 시벨리우스 본인조차 “현대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불안감을 감지했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개인적인 삶도 밑바닥이었죠. 목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았고, 심각한 알코올 의존성과도 피 말리는 싸움을 하고 있었지요. 이 최악의 컨디션 속에서 ’50세 생일 기념 국가 공식 교향곡’이라는 거대한 숙제가 떨어진 셈입니다.

그의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쇤베르크처럼 무조성의 트렌드에 탑승해 ‘힙한’ 작곡가로 거듭나거나, 아니면 뚝심 있게 자기 언어를 밀어붙이거나. 핀란드 지휘자 한누 린투는 시벨리우스가 이때 확실한 결단을 내렸다고 분석합니다. 낭만파의 전통적인 화성 언어를 유지하되, 거대한 구조와 음색에서 아무도 밟지 않은 미지의 영역으로 가겠다는 선전포고. 남들이 스마트폰을 만들 때, “나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기계식 시계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뚝심이 옳았다는 것은 100년이 지난 지금 증명됩니다. 당시 트렌드를 좇아 쏟아졌던 수많은 전위 음악 중 지금도 살아남아 연주되는 곡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시벨리우스가 감내해야 했던 시대의 압박을 생각하면, 교향곡 5번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장한 에너지는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낙원의 가장자리에서 모자이크 조각을 줍는 경험

시벨리우스의 작곡 일기에는 교향곡 5번의 탄생을 묘사한 기가 막힌 문장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천국의 가장자리에서 모자이크 조각들을 던지고, 나는 그 패턴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는 것 같았다.”

장 시벨리우스, 작곡 일기

이 문장은 교향곡 5번을 이해하는 완벽한 마스터키입니다. 이 곡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소설책을 읽는 느낌이 아닙니다. 오히려 파편화된 퍼즐 조각들이 허공을 떠돌다가, 서서히 결합하며 거대한 성채로 솟아오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특히 1악장에서 이 신비로운 조립 과정이 빛을 발합니다. 곡은 호른이 아주 낮고 조용하게 부는 짧은 신호음으로 시작합니다. 4도 음정(예컨대 도와 파 사이의 간격)으로 이루어진 평범한 패턴이지요. 그런데 이 작은 조각이 마치 세포 분열을 하듯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목관악기들이 빠른 16분음표로 들러붙고, 리듬이 팽팽하게 압축되며 에너지를 모읍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음악이 댐을 부수고 터져 나오듯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폭발해 버립니다.

핀란드어에는 ‘시수(sisu)’라는 특별한 단어가 있습니다. 뼈를 깎는 추위와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절대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뜻하지요.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아주 작은 조각 하나에서 출발해 기어코 거대한 우주를 빚어내는 이 교향곡의 논리야말로 ‘시수’ 그 자체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또 있습니다. 이 곡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중 유일하게 모든 악장이 ‘장조’로만 쓰였습니다. 직전에 발표한 4번 교향곡이 심연으로 침잠하는 극도의 우울함을 보여준 것과 완벽한 대비를 이룹니다. 4번이 내면의 상처를 헤집는 음악이었다면, 5번은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핀란드의 찬란한 햇살을 닮아 있습니다.

세 번 고친 이유: 4년의 이야기

아이놀라 — 시벨리우스의 자택 (1915년)
핀란드 야르벤패의 시벨리우스 자택 아이놀라(1915년). 교향곡 5번이 여기서 작곡됐다.

초연은 1915년 12월 8일이었습니다. 시벨리우스의 50세 생일.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올랐고, 시벨리우스가 직접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핀란드 정부가 이 날을 국가 공휴일로 선포했으니, 분위기가 어땠을지 짐작이 가겠죠. 청중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초연 버전과 오늘날 연주되는 버전은 구조적으로 다릅니다. 초연 때는 4악장 구성이었습니다. 지금의 1악장에 해당하는 부분이 두 개의 독립된 악장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오프닝과 스케르초(scherzo, 빠르고 유쾌한 성격의 악장)가 각각 별도의 악장으로 존재했죠.

시벨리우스는 이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두 부분이 연결되어야 한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1916년 개정 버전에서 두 부분을 하나의 악장으로 합쳤습니다. 그런데 이 버전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곡의 전체적인 균형과 색채가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1917년부터 1919년까지 다시 대대적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1919년 11월 24일, 헬싱키 필하모닉과의 두 번째 초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듣는 최종판입니다.

개정 이유에 대해 시벨리우스는 직접 설명을 남겼습니다. “이 교향곡에 다른 형태를 주고 싶었습니다. 더 인간적인 형태를. 더 현실적이고, 더 생생한.” 원래 버전은 모더니즘 성향이 있었고 무조성 구절도 일부 있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1919년 최종판은 더 웅장하고 고전적인 느낌으로 정리됐습니다. 불필요한 방황을 덜어내고, 핵심을 더 명확하게 만든 결과물이었거든요.

클래식 음악 역사에서 이런 경우는 흔치 않죠. 이미 박수를 받은 곡을, 청중의 평가가 아니라 자기 내면의 기준에 따라 4년에 걸쳐 손보는 작곡가. 브람스가 교향곡을 발표하지 않고 20년 이상을 묵혀뒀던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이 있습니다. ‘완성’의 기준이 청중의 반응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것.

더 놀라운 것은, 시벨리우스 교향곡 연구의 흥미로운 사실인데요. 그가 7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나서 거의 30년을 더 살았는데 8번은 끝내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는 겁니다. 초고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시벨리우스 본인이 사망 전에 불태워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에 낼 만큼 완성됐다고 느끼지 못했거나, 아니면 완성됐더라도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거나. 5번을 세 번 개정했던 그 기준이 마지막까지 그를 붙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4년의 개정 과정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거든요. 1916년 개정본은 일부만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것이 아니라서, 초연 버전과 1919년 최종판 사이에 정확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완전히 알기 어렵습니다. 시벨리우스가 자기 초고를 얼마나 철저하게 관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청중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중간 단계는 남기지 않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악장별로 들어보기

피아노를 치는 장 시벨리우스
피아노 앞의 시벨리우스. 그는 작곡 과정에서 피아노로 아이디어를 탐색했다.

교향곡 5번은 3악장으로 구성됩니다. 원래 4악장이었다가 1악장 안에 두 부분을 합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전체 연주 시간은 약 31~32분인데, 3악장 교향곡치고는 상당히 긴 편입니다. 각 악장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발전한다는 느낌이에요.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팁이 있습니다. 이 곡은 처음에는 작게 들립니다. 특히 1악장 시작부분은 조용하고 느릿합니다. 그래서 처음 들을 때 “이게 다야?”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곡은 천천히 축적되거든요. 1악장 중반부터 에너지가 쌓이기 시작해서, 3악장 마지막에서 절정에 달하죠.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봐야 이 곡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헤드폰보다는 스피커로, 가능하다면 공연장에서 들었을 때 이 교향곡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특히 3악장 마지막의 여섯 개 화음은 공간 안에서 울려퍼지는 방식이 헤드폰으로는 완전히 재현되지 않습니다. 실제 공연장에서 그 여섯 개의 화음이 울리고 침묵이 흐를 때의 경험은 어떤 녹음으로도 완전히 흉내내기 어렵거든요.

1악장: 두 개의 성격이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

교향곡 5번의 1악장은 분석가들이 지금도 의견이 갈리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느리고 명상적인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호른이 조용하게 4도 음정을 기반으로 한 동기를 제시하죠. 이 동기는 곡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재료인데, 처음에는 그냥 조용한 신호처럼 들립니다.

이 분위기가 서서히 에너지를 축적합니다. 목관악기들이 빠른 16분음표로 가세하고, 리듬 패턴이 압축되며 점점 빨라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박자 표시가 12/8에서 3/4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음악이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변합니다. 폭발적인 스케르초가 시작되는 겁니다.

악보를 보지 않으면 이 경계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냥 듣다 보면 음악이 점점 빨라지다가 어느새 춤추듯 달리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두 성격 사이의 경계가 불연속점이 아니라 연속적인 가속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시벨리우스가 노렸던 지점이에요. 두 성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도 대비를 이루는 구조.

음악학자들은 이 악장의 형식을 두고 지금도 논쟁합니다. 세실 그레이(1935년), 제럴드 에이브러험(1947년), 로버트 레이턴(1965년), 제임스 헤포코스키(1993년). 이 악장이 소나타 형식인지, 아니면 헤포코스키가 제안한 ‘회전형(rotational form)’이라는 독자 분석 틀로 봐야 하는지 의견이 엇갈립니다. 기존의 어떤 형식 분류도 이 악장을 깔끔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악장이 얼마나 독창적인지를 보여줍니다.

헤포코스키의 분석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그는 이 악장을 음악 재료 자체가 형식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봤습니다. 18~19세기 교향곡 템플릿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필요에 따라 발전하는 구조. 첫 번째 호른 동기에서 출발해서 전체가 한 바퀴 돌아오는 ‘순환’이 반복되면서 점점 더 발전하는 방식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악장이 처음에는 느리고 나중에 빨라지는 건 단순한 속도 변화가 아니라 필연적인 발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1악장의 처음과 마지막을 비교해보면 재미있죠. 처음에는 4대의 호른이 조용하게 시작하거든요. 마지막에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빠르게 달립니다. 이 변화가 갑작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중간의 축적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눈덩이가 굴러내려오면서 점점 커지는 것처럼. 시벨리우스는 이 과정을 약 15분에 걸쳐 펼쳐놓습니다.

1악장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악장이 진행될수록 음악 재료가 점점 더 조밀해집니다. 처음의 호른 동기는 단순한 4도 음정 기반 패턴이었는데, 악장이 진행되면서 이 패턴이 다른 악기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됩니다. 빠르게 뒤집혀 나타나기도 하고, 리듬이 바뀌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1악장의 스케르초 부분에서 폭발하는 에너지의 근원이죠. 처음 들을 때는 잘 들리지 않지만, 여러 번 듣다 보면 이 변형의 과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악장 마지막에 목관악기들이 빠르게 쏟아지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거기서 1악장이 끝납니다. 공연장에서 이 지점에서 박수를 치려다가 타이밍을 헛짚는 사람들이 종종 나옵니다.

2악장: 폭풍 사이의 고요

2악장은 교향곡 5번에서 가장 서정적인 부분입니다. G장조로 쓰였는데, 전체 교향곡을 통틀어 E♭장조가 아닌 유일한 악장입니다. 1악장의 강렬한 추진력과 3악장의 웅장한 결말 사이에서 호흡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피치카토(pizzicato), 즉 활 대신 손가락으로 현을 뜯는 주법으로 조용한 배경이 깔립니다. 그 위로 목관악기들이 느긋한 주제를 제시합니다. 이 주제는 단번에 완성된 형태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조각조각 제시되다가, 모이고, 흩어집니다. 그 과정이 마치 오래된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악장 지시어는 ‘안단테 모소, 콰지 알레그레토(Andante mosso, quasi allegretto)’입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안단테, 알레그레토에 가까운 속도로’라는 뜻입니다. 느리되 활기 있게. 이 지시가 악장의 성격을 잘 표현하는 편이에요. 느린 것 같지만 멈춰 있지 않고, 조용한 것 같지만 에너지가 없지 않습니다.

중간 부분에서 분위기가 한 번 고조됩니다. 현악기들이 리듬을 쌓고, 목관악기들이 열기를 더하거든요. 그러다 다시 처음 분위기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완전히 같은 상태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악기 조합이 달라지고, 질감이 바뀌어 있습니다. 마치 같은 풍경을 오전과 오후에 두 번 봤을 때의 차이처럼.

이 악장에서 들어볼 만한 특이한 점이 있어요. 교향곡 5번 전체를 통틀어 모든 악장이 장조로 쓰였습니다. 시벨리우스의 다악장 교향곡 중 유일하게 단조 악장이 하나도 없는 작품입니다. 이게 결코 우연은 아닙니다. 단조가 없다는 것이 “밝기만 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두운 감정도 장조 안에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2악장이 가장 잘 보여줍니다.

2악장에서 시벨리우스가 다루는 변주 방식도 흥미롭죠. 처음 제시된 주제가 돌아올 때마다 색깔이 바뀝니다. 같은 선율이지만 배경이 달라지고, 다른 악기가 맡습니다. 이 방식은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변주곡과는 다릅니다. 시벨리우스의 변주는 선율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선율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방식입니다. 마치 같은 인물이 다른 조명 아래 보이는 것과 같은 느낌.

2악장의 마지막은 소리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조용해집니다. 이 고요함이 3악장의 폭발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3악장: 백조가 날아오른 날, 그리고 역사상 가장 독특한 마지막

교향곡 5번의 3악장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붙어 있죠. 시벨리우스는 1915년 봄, 자신의 집 위를 날아가는 백조 16마리를 봤습니다. 시벨리우스는 이 장면을 일기에 직접 적었거든요. 백조들이 낮게 울부짖으며 원을 그리다 사라지는 모습. 그 울음소리와 움직임이 너무 강렬해서 이 경험이 3악장의 핵심 장면이 됐다고 합니다.

핀란드에서 백조는 단순한 새가 아니거든요. 핀란드의 국조(國鳥)이자, 핀란드 고전 서사시 ‘칼레발라’에서 저승으로 가는 강을 지키는 신성한 존재입니다. 이 문화적 배경을 알고 나서 3악장 중간의 신비로운 구절을 들으면 다르게 들립니다.

3악장은 ‘Allegro molto(매우 빠르게)’로 시작합니다. 역동적인 추진력이 있습니다. 빠르게 달리다가, 중간 즈음에 ‘Misterioso(신비롭게)’라는 지시어가 붙은 구절이 나옵니다. 현악기들이 낮게 떨리는 소리를 만들고, 그 위로 목관악기들이 조용하게 무언가를 속삭입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숨을 참는 것 같은 순간이에요. 이것이 이른바 ‘백조 찬가’로 불리는 구절이에요.

‘백조 찬가’라는 이름은 시벨리우스가 직접 붙인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을 들은 청중과 음악학자들이 시벨리우스의 일기 속 백조 이야기를 연결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이 연결이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구절은 실제로 날개짓처럼 가볍게 오르내리는 목관악기의 선율을 가지고 있고, 현악기의 트레몰로(tremolo, 빠르게 같은 음을 반복하는 주법)가 만드는 배경은 호수 수면처럼 조용히 떨립니다. 백조가 날아오르는 순간을 음악으로 그린다면, 이런 소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구절입니다.

그리고 이 교향곡의 가장 유명한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통의 교향곡 피날레는 빠르게 달려서 힘차게 끝납니다. 베토벤의 교향곡들, 브람스의 교향곡들이 그렇습니다. 청중이 “이제 끝이다”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시벨리우스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다가, 갑자기 여섯 개의 화음이 간격을 두고 하나씩 울립니다. 화음 하나가 울리고, 잠깐의 침묵. 또 화음, 또 침묵. 이 방식이 여섯 번 반복되거든요. 마치 거대한 종이 여섯 번 울리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그 마지막 화음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곡이 끝납니다.

이 여섯 개의 화음 사이 침묵의 길이가 중요합니다. 지휘자마다 이 침묵의 길이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짧게 처리하는 지휘자와 길게 늘이는 지휘자의 결과물이 꽤 다른 인상을 주거든요. 에사-페카 살로넨은 이 침묵을 최대한 길게 늘이는 방식으로 유명하고, 파보 예르비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처리합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다기보다는, 같은 악보가 얼마나 다른 해석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이 마지막 여섯 개 화음을 악보로 보면 한 가지가 더 눈에 띕니다. 각 화음 사이에 악보상 쉼표가 명시되어 있죠. 시벨리우스가 이 침묵을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설계했다는 증거입니다. 음악에서 쉼표는 단순한 비어있음이 아닙니다. 울리는 소리와 같은 무게를 가진 음악의 일부입니다. 시벨리우스는 마지막을 화음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화음과 침묵의 교차로 구성했습니다.

처음 이 곡을 공연장에서 듣는 청중은 어디서 박수를 쳐야 할지 모릅니다. 끝난 것 같은데 또 화음이 나오고, 이제 정말 끝난 것 같은데 잠깐 기다려야 할 것 같고. 실제로 연주회장에서 이 끝맺음 때문에 박수 타이밍이 어색하게 엇갈리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3악장 전체 구조를 보면, 시벨리우스가 교향곡 5번에서 달성하려 했던 것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빠르게 시작해서 신비로운 중간 구절을 거쳐, 여섯 개의 화음으로 천천히 마무리됩니다. 처음과 끝의 템포가 역전되는 구조. 1악장이 느리게 시작해서 빠르게 끝난다면, 3악장은 빠르게 시작해서 느리게 끝납니다. 이 대칭이 교향곡 전체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시벨리우스가 의도했든 아니든, 이 마지막 방식은 클래식 교향곡 역사에서 거의 유례가 없는 독창적인 형태입니다. 완전히 열려있지도, 완전히 닫혀있지도 않은 결말이에요. 선명한 여운.

이 교향곡이 말하는 것

교향곡 5번은 거창한 선언이 없죠. 운명과 싸우겠다는 베토벤 식의 드라마도 없고, 영웅의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 대신 작은 조각에서 거대한 구조가 자라나는 과정이 있습니다. 핀란드의 자연, 백조, 호수, 침묵. 구체적인 이미지이지만 설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냥 거기 있어요.

이 교향곡의 세 악장 전체를 한 번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흥미로운 구조가 보입니다. 1악장은 느리게 시작해서 빠르게 끝납니다. 2악장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조용하게 흘러갑니다. 3악장은 빠르게 시작해서 느리게 끝납니다. 이 속도의 대칭이 교향곡 전체에 독특한 균형을 만들어냅니다. 처음과 끝이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하되, 정확히 같지는 않습니다. 1악장 처음의 조용함과 3악장 마지막의 조용함은 느낌이 다릅니다. 시작의 조용함은 잠재된 에너지이고, 마지막의 조용함은 완성된 에너지입니다.

시벨리우스가 활동하던 시대와 지금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전통적인 형식이 흔들리고, ‘어디로 가야 하나’를 묻는 시대. 시벨리우스가 선택한 답은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형식”이 아니라 “같은 언어로 더 깊은 곳”이었습니다.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는, 이 교향곡이 지금도 연주되고 있다는 사실이 답을 대신합니다.

교향곡 5번은 오늘날 클래식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도 꾸준히 들립니다. 특히 3악장의 여섯 개 화음 마지막은 ‘장엄하고 독창적인 마무리’가 필요한 영화, 광고, 게임 OST 제작자들이 레퍼런스로 찾는 구간입니다. 지금 봐도 신선한 방식이기 때문이죠.

이 교향곡이 지금도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음악에서 ‘완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시벨리우스는 청중이 만족했는데도 더 손을 봤습니다. 박수가 기준이 아니었던 셈이에요. 그리고 그 결과물이 지금 우리가 듣는 교향곡 5번입니다. 결과론적으로는 그가 옳았습니다. 1919년 최종판이 초연 버전보다 낫다는 것은 음악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결론이거든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시벨리우스는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따랐습니다. 그것이 이 교향곡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죠.

흥미로운 비교 지점이 하나 더 있어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가 이민자의 시선으로 새로운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음악이라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5번은 고향에서 그 고향을 지키는 음악입니다. 드보르자크가 뉴욕에서 보헤미아를 바라봤다면, 시벨리우스는 헬싱키에서 핀란드의 하늘과 백조와 호수를 직접 보고 있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19세기 후반부터 강하게 등장했습니다. 각 나라의 작곡가들이 자국의 민요와 설화를 소재로 음악을 썼죠. 드보르자크, 스메타나(체코), 그리그(노르웨이), 차이코프스키(러시아), 바르토크(헝가리). 그리고 핀란드에는 시벨리우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벨리우스는 다른 민족주의 작곡가들과 달리, 교향곡에서는 직접적인 민요 인용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민요를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핀란드의 자연과 공기와 빛을 음악 언어로 옮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게 교향곡 5번에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또 하나 기억할 점은, 교향곡 5번이 완성된 1919년은 핀란드가 독립(1917년)한 직후였다는 겁니다.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불과 2년 된 나라. 핀란드 사람들에게 이 교향곡이 어떻게 들렸을지는 상상이 어렵지 않습니다. 핀란드의 자연을 그대로 담아낸 음악, 그것도 자국 영웅이 4년에 걸쳐 완성한 음악. 단순한 교향곡 이상의 의미가 있었겠죠.

그런데 시벨리우스는 정치적인 음악가가 아니었습니다. ‘핀란디아’가 러시아 검열에 걸렸던 것은 그 음악이 핀란드 독립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었지, 시벨리우스가 명시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교향곡 5번도 마찬가지이죠. 이 곡에는 핀란드 독립에 대한 직접적인 메시지가 없습니다. 그냥 백조가 날고, 호른이 울리고, 오케스트라가 달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사람들은 이 음악에서 자신들의 것을 발견했죠. 음악이 정치보다 더 깊은 곳에서 사람을 건드릴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을 다른 나라 청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도 흥미롭습니다. 영국에서는 특히 열렬한 반응이 있었죠. 영국 음악 비평계는 시벨리우스를 매우 높이 평가했고, 그의 교향곡들은 20세기 전반 영국 오케스트라 레퍼토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당시 전위 음악의 중심이었던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시벨리우스를 낡은 음악가로 보는 시각도 있었죠. 같은 음악을 두고 이렇게 다른 평가가 나왔다는 것은, 시벨리우스 음악이 단순히 기교적인 측면이 아니라 무언가 더 깊은 것에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인 셈입니다.

이 시기 시벨리우스는 동시대 작곡가들과의 관계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있었죠.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와 같은 전위적 작곡가들과 교류하면서도, 그들의 방향을 따르지 않았거든요. 말러는 시벨리우스와 유명한 토론을 나눴는데, 말러는 “교향곡이란 세계처럼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고 했고, 시벨리우스는 “나는 교향곡에서 모든 것들 사이의 심오한 연결, 그리고 안쪽으로 향하는 논리를 원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교향곡 5번은 이 두 번째 견해를 가장 잘 구현한 작품 중 하나인 셈입니다.

또한, 1919년 최종판 완성 이후 시벨리우스의 음악 세계가 어떻게 전개됐는지도 흥미롭습니다. 6번(1923년)과 7번(1924년)을 쓴 뒤, 그는 작곡을 거의 중단했거든요. 이른바 ‘야르벤패 침묵(Järvenpää Silence)’이라 불리는 30년 이상의 창작 공백.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한 가지 공통된 해석이 있습니다. 시벨리우스는 자신이 더 이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쓸 수 없다고 느꼈거나,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수준에 달하지 못하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교향곡 5번을 세 번 고친 그 기준이 결국 그 자신을 침묵으로 이끈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섯 번째 교향곡이 그의 작품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말해주는 또 다른 지표가 있어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중 현재 가장 많이 연주되는 것이 2번과 5번입니다. 2번이 낭만주의적 서사의 매력으로 사랑받는다면, 5번은 그 독특한 구조와 마지막 때문에 지휘자들이 도전하고 싶어하는 레퍼토리입니다. 특히 여섯 개의 마지막 화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지휘자의 해석을 가장 잘 드러내는 지점이기 때문에, 새로운 지휘자가 데뷔할 때 이 곡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케스트라 편성도 한 번 볼 만해요. 교향곡 5번은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팀파니, 현악기로 구성됩니다. 타악기는 팀파니 하나뿐이에요. 대포가 등장하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과는 다릅니다. 이 절제된 편성에서 이렇게 웅장한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 시벨리우스 오케스트레이션의 특징입니다. 소리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소리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문제이죠.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은 어떤 의미에서 ‘비워내는’ 음악입니다. 19세기 낭만주의가 오케스트라에 점점 더 많은 것을 쌓아 올렸다면, 시벨리우스는 반대 방향을 택했습니다.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를 걷어낸 겁니다. 그 결과로 나온 소리가, 핀란드의 하늘처럼 넓고 투명합니다. 이 교향곡을 처음 들을 때는 그 소박함에 의아한 기분이 들기도 하죠. 그러나 계속 듣다 보면, 그 비움이 얼마나 의도적이고 치밀한 것인지 느끼게 됩니다.

추천 녹음

파보 예르비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파보 예르비 지휘, 파리 오케스트라 (2014년)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속도감이 넘칩니다. 1악장에서 서정적인 도입부가 폭발적인 스케르초로 변속하는 구간을 소름 돋게 매끄럽게 처리했습니다. 3악장의 추진력도 압도적이죠. 시벨리우스 5번의 쾌감을 처음 맛보려는 분들께 주저 없이 1순위로 권하는 명반이죠.

콜린 데이비스 경 지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1976년, 필립스)

영국이 왜 그토록 시벨리우스에 열광했는지 증명하는 클래식 중의 클래식입니다. 2악장의 짙은 서정성과 3악장 피날레가 뿜어내는 묵직한 돌직구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이 곡의 ‘교과서’를 원한다면 이 앨범이에요.

에사-페카 살로넨 지휘,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핀란드 태생 지휘자가 자국 영웅의 음악을 어떻게 해부하는지 보여줍니다. 현미경을 들이댄 듯 악장의 미세한 구조와 악기들의 톱니바퀴 결합을 투명하게 들려줍니다. 이 곡을 몇 번 들어보고 “대체 구조가 어떻게 된 거야?”라는 지적 호기심이 생겼을 때 들으면 무릎을 탁 치게 될 판본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읽을 줄 모르신다고요?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저 화면 속 음표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궤적을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가 보시지요. 귀로만 스쳐 지나가던 시벨리우스의 웅장한 음향이 눈앞에서 입체적인 건축물로 솟아오르는 짜릿한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혹시 방구석 지휘자처럼 진짜 악보를 한 장씩 펄럭이며 넘겨보고 싶은 분도 계신가요? 클래식계의 위키피디아로 불리는 IMSLP에서 원본 악보를 무료로 개방하고 있네요. 주저하지 말고 아래 링크를 눌러보십시오. →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은 왜 세 번이나 개정됐나요?

원래 이 곡은 4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벨리우스는 뭔가 단단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1악장의 두 부분을 아예 하나로 합쳐 3악장으로 줄이는 대공사를 감행하지요. 1915년 초연 이후에도 그의 ‘수정 지옥’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916년에 한 번, 1917년부터 1919년까지 또 한 번 악보를 뜯어고쳤으니까요. 매번 ‘더 인간적이고 생생한 형태’를 찾기 위한 지독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듣는 완벽한 연주는 바로 이 1919년의 최종 피땀 눈물 버전인 셈입니다.

3악장의 ‘백조 찬가’ 장면은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나요?

1915년 시벨리우스의 일기장을 들여다볼까요. 어느 날 그의 집 위로 무려 16마리의 백조 떼가 날아갑니다. 낮게 울부짖으며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는 백조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습니다. 핀란드에서 백조는 단순한 새가 아니거든요. 국조(國鳥)이자 건국 서사시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신성한 존재지요. 이 강렬한 시각적, 청각적 충격은 그대로 악보에 옮겨졌습니다. 3악장 중간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미스테리오소(Misterioso)’ 구절이 바로 그 경이로운 순간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교향곡 5번의 마지막 여섯 개 화음은 왜 그런 형태인가요?

보통 교향곡의 피날레는 미친 듯이 질주하다가 쾅! 하고 화려하게 끝납니다. 하지만 시벨리우스는 완전히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묵직한 화음이 한 번 울리고, 숨 막히는 침묵. 다시 화음, 그리고 침묵. 이렇게 총 여섯 번의 화음을 징검다리 건너듯 뚝뚝 끊어서 배치했지요. 당시로서는 파격 그 자체였고, 지금 들어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발한 연출입니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처음 이 곡을 듣는 청중들이 십중팔구 박수 타이밍을 놓치고 눈치 게임을 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기막힌 ‘밀당’ 때문입니다.

핀란드 정부가 시벨리우스 생일을 국가 공휴일로 선언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살아있는 음악가의 생일이 아예 ‘빨간 날’이 된 겁니다. 러시아 제국의 억압을 받던 시절, 시벨리우스는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핀란드의 꺾이지 않는 민족 정신 그 자체였습니다. 그가 만든 ‘핀란디아’ 같은 곡은 핀란드인들의 피를 끓게 하는 독립 운동의 상징이 되었지요. 이에 핀란드 정부는 1915년, 그의 50세 생일을 아예 국가 공휴일로 지정해버립니다. 한 나라가 예술가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공식적인 존경의 표시였고, 교향곡 5번은 바로 이 역사적인 생일 파티를 위해 세상에 처음 울려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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