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Bedřich Smetana, 1824–1884) - 곡명
- 블타바 (《나의 조국》 제2곡)
(Vltava, from Má vlast, JB 1:112 No. 2) - 작곡
- 1874년 11월 20일 ~ 12월 8일 (단 18일)
- 초연
- 1875년 4월 4일, 프라하
(아돌프 체흐 지휘) - 편성
- 플루트 2(피콜로 1),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트라이앵글, 심벌즈, 하프, 현 5부
- 조성
- e단조 (종결부에서 블타바 주제가 E장조로 밝아짐)
- 연주 시간
- 약 12~13분
이 곡은 — 두 귀가 완전히 멀어버린 직후, 스메타나가 단 18일 만에 써낸 보헤미아 강 한 줄기의 일생입니다. 13분짜리 교향시지요.
딱 하나만 듣는다면 — 플루트 두 대의 작은 샘물이 합류해 그 유명한 e단조 강물 주제로 부풀어 오르는 도입부를 놓치지 마세요.
첫 음반 — 라파엘 쿠벨리크 · 체코 필하모닉 (Supraphon, 1990). 망명 42년 만의 귀환 실황이거든요.
1874년 10월 20일 저녁, 프라하.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세상은 그날 통째로 짙은 침묵 속에 잠겼습니다. 왼쪽 귀마저 마지막으로 닫혀버린 날이거든요. 오른쪽 청력은 이미 보름 전에 잃은 터였습니다. 체코 오페라의 왕, 프라하 임시극장의 수석 지휘자, 나아가 ‘체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던 남자가 이제 제 손으로 누르는 피아노 건반 소리조차 짐작으로만 더듬어야 하는 처지가 된 겁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이쯤에서 비극으로 막을 내리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스메타나의 생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지요. 청각을 완전히 잃고 나서 정확히 한 달 뒤, 그는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곡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정작 자기 귀로는 영영 듣지 못할 강물의 노래를 말입니다. 완전한 침묵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셈입니다.

양조장 집 아들의 당돌한 일기장
스메타나의 아버지 프란티셰크는 양조장을 운영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에 군복과 식량을 대며 제법 쏠쏠하게 부를 일군 인물이었지요. 그는 어린 아들이 피아노에 푹 빠져 지내는 걸 보면서도 선을 확실히 그었습니다. “그건 취미지, 결코 밥벌이가 될 수는 없다”고 말이죠.
그런데 정작 그 여섯 살짜리 꼬마는 이미 무대 위로 올라갈 채비를 마친 뒤였습니다. 1830년 리토미슐 철학 아카데미에서 열린 콘서트장. 어린 스메타나가 오베르(Daniel Auber)의 오페라 《포르티치의 벙어리 아가씨》 서곡을 피아노로 직접 편곡해 연주하자 객석은 말 그대로 술렁였습니다. 고작 여섯 살입니다. 악보를 겨우 더듬더듬 읽어낼 나이에 웅장한 오페라 서곡을 자기 손맛대로 버무려냈다는 이야기지요.
이후 프라하로 올라와 공부하던 소년은 리스트(Franz Liszt)의 피아노 독주회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신들린 듯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손가락에 완전히 넋을 빼앗긴 열다섯 살 소년은, 몇 해 뒤 자신의 일기장에 당찬 한 줄을 꾹꾹 눌러 적었습니다.
“작곡에서는 모차르트가, 기교에서는 리스트가 되고 싶다.”
겸손이라는 단어와는 한참 거리가 먼 다짐이었지요. 결과만 놓고 보면 이 선언은 절반의 예언이 되었습니다. 피아노 기교로 리스트를 단숨에 넘어서진 못했지만, 적어도 체코 음악사에서만큼은 모차르트보다 훨씬 더 묵직한 이름으로 남게 되었으니까요. 풋내기 시절의 귀여운 허세가 절반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스메타나가 나고 자란 보헤미아는 당시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제국의 그늘 아래 있었거든요. 공식 언어는 당연히 독일어였습니다. 음악계에서 번듯하게 이름 석 자를 알리려면 독일어로 말하고 철저히 독일식으로 곡을 써야만 했지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스메타나 역시 초기에는 독일어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독일어 제목을 단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훗날 ‘체코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될 사내가, 정작 젊은 시절에는 모국어인 체코어보다 독일어를 혀에 더 착 달라붙게 여겼던 겁니다. 그야말로 얄궂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죠.
총 대신 악보를, 바리케이드 위의 작곡가
1848년, 유럽 전역을 휩쓴 혁명의 불길은 프라하에도 옮겨붙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제국에 맞선 시민들이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쌓아 올렸을 때, 스메타나 역시 그 틈에 서 있었지요. 심지어 총을 꽉 쥔 손으로 혁명 행진곡까지 써 내려갔거든요. 얌전히 악보나 봐야 할 음악가가 무기를 들었다는 사실이 퍽 낯설게 들리겠지만, 당시 프라하의 공기 속에서는 그리 유별난 풍경도 아니었습니다.
혁명은 머지않아 무력하게 진압되었습니다. 하지만 흙먼지 날리던 그날의 경험은 스메타나의 머릿속에 질긴 씨앗 하나를 심어 놓았지요. 서툰 총통 대신,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음악으로 조국을 이야기하겠다는 단단한 결심 말입니다. 이 작은 씨앗이 26년이라는 세월을 품고 있다가 교향시 《나의 조국》으로 울창하게 싹을 틔울 줄은, 아마 그 자신조차 까맣게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프라하는 그를 그리 다정하게 품어주지 않았습니다. 야심 차게 음악원을 열었음에도 학생들의 발길은 뜸했고, 무엇보다 네 딸 가운데 셋이 너무도 어린 나이에 차례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어야 했거든요. 특히 맏딸 프리데리카는 겨우 네 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피아노 삼중주 g단조》는 바로 이 첫아이를 가슴에 묻은 깊은 슬픔에서 길어 올린 곡입니다. 켜켜이 쌓인 음표 하나하나가 마치 작은 관을 닮았다는 뼈아픈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지요.
결국 스메타나는 짐을 꾸려 스웨덴 예테보리로 떠나게 됩니다. 훗날 ‘체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게 될 이가 머나먼 스칸디나비아의 차가운 항구도시를 돌며 합창단을 지휘하고 피아노 레슨으로 팍팍한 생계를 이어가게 된 거지요. 그것도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말입니다.
참으로 애석한 사연입니다. 조국을 위해 음표를 그리겠다던 사람이 정작 조국 땅에서는 입에 풀칠조차 막막해 고향을 등져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등 떠밀린 망명 생활이 그저 헛된 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테보리에 머무는 동안 리스트의 교향시 작법을 그 뿌리부터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눈에 보이는 풍경과 서사를 음표로 번역해 내는 표제음악의 언어를 완벽하게 제 것으로 체화했거든요. 훗날 거대한 대작 《나의 조국》을 든든하게 떠받치게 될 기술적 뼈대가 바로 이 5년의 타향살이 속에서 단단히 다져진 셈입니다. 가장 멀리 빙 돌아간 길이 결국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 되어준 겁니다.

화려한 귀환, 그리고 예고 없이 들이닥친 침묵
1861년, 체코 땅에 모처럼 정치적 해빙의 훈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스메타나는 이듬해 주저 없이 짐을 꾸려 프라하로 돌아왔지요. 그리고 4년 만에 두 편의 오페라를 연달아 무대에 올리며 보기 좋게 홈런을 칩니다. 1866년 초연된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인》이 먼저 쏠쏠한 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해에 선보인 《팔려간 신부》는 그야말로 극장을 발칵 뒤집어놓았거든요. 체코어를 입고 체코 농촌의 흙내음을 듬뿍 풍기는 이 유쾌한 희극 오페라는 단숨에 체코인들의 국민 오페라로 굳건히 자리 잡았습니다.
내친김에 같은 해 임시극장 수석 지휘자 타이틀까지 꿰찼으니,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였지요. 하지만 무대의 조명이 밝을수록 등 뒤의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입니다. 프라하 음악계의 깐깐한 보수파들은 그를 향해 “리스트와 바그너(Richard Wagner)의 물을 너무 먹었다”며 날 선 잣대를 들이댔거든요. 체코만의 뼈대 있는 음악을 세워야 할 마당에 서양의 진보적인 기법에 푹 빠져 있다는 쓴소리였습니다.
참으로 얄궂은 노릇 아닙니까. 평생을 바쳐 누구보다 체코다운 음악을 쓰겠다고 덤벼든 사내에게, 정작 고향 사람들이 “당신 음악은 영 체코스럽지 않다”며 찬물을 끼얹었으니 말입니다. 이 지루하고 소모적인 공방전이 그의 속을 얼마나 새까맣게 태웠을지는, 불과 8년 뒤 그의 건강이 무너져 내리는 속도를 보면 어렴풋이 짐작이 갑니다.
1874년 여름, 스메타나의 귀에서 이상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미세한 잡음이었지요. 그러다 끊임없이 귓가를 맴도는 윙윙거림으로 변했고, 머지않아 개별적인 음을 전혀 분간할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되었습니다. 10월 초에 접어들며 오른쪽 귀가 완전히 기능을 멈췄고, 10월 20일에는 왼쪽 귀마저 어둠 속에 잠겼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불과 넉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는 극장 총감독에게 사직서를 써 내려갑니다. 주치의는 “모든 소리로부터 철저히 격리하라”는 처방을 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었을까요. 격리해야 할 소리 자체가 이미 그의 세상에서 남김없이 증발해버린 뒤였으니까요. 처방전이 손에 쥐어졌을 때, 그는 이미 완벽한 정적 한가운데 홀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기묘한 것은, 그가 귀를 잃기 직전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그 끈질긴 이명을 훗날 음악 속에 박제해버렸다는 점입니다. 블타바를 내놓고 2년 뒤에 작곡한 현악사중주 1번 〈나의 생애로부터〉, 그 마지막 악장 한복판에서 제1바이올린이 느닷없이 날카로운 고음 하나를 길게 긋고 지나가거든요. 스메타나 본인이 직접 “재앙을 예고하던 귀울림”이라고 밝혔던 바로 그 소리지요. 자신을 영원한 침묵으로 밀어붙인 불길한 고음을, 그는 도망치는 대신 악보 한가운데 보란 듯이 못 박아 둔 겁니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역시 청력을 잃은 뒤에 교향곡을 완성했지요. 스메타나의 행보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두 거장 사이에는 작지 않은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베토벤은 수십 년의 세월에 걸쳐 서서히 소리와 멀어졌지만, 스메타나는 단 넉 달 만에 두 귀를 한꺼번에 잃었다는 것. 그리고 그 가혹한 선고 직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의 인생을 대표할 대작에 펜을 가져다 댔다는 것 말입니다. 짙은 절망이 휩쓸고 간 바로 그 자리에서 곧장 찬란한 걸작이 솟아난 셈이지요.
단 18일, 위대한 물줄기가 태어나다
1874년 11월 20일부터 12월 8일까지. 달력의 날짜로는 단 18일. 그토록 짧은 보름 남짓한 시간 동안, 굽이치는 블타바(Vltava)가 세상에 흘러나왔습니다. 우리에게는 독일식 표기인 ‘몰다우’라는 이름으로 훨씬 친숙한 바로 그 선율이지요.
블타바는 체코 땅을 적시는 가장 긴 강입니다. 보헤미아의 깊은 숲속에서 솟아나 프라하의 심장부를 가로지른 뒤 엘베 강으로 합류하는, 무려 길이 430킬로미터짜리 거대한 물줄기지요. (체코 낭만음악의 또 다른 기둥이라 할 드보르작(Antonín Dvořák)의 신세계 교향곡과 더불어, 이 나라 음악 산맥의 묵직한 두 봉우리를 이룹니다.) e단조의 조성, 연주 시간은 약 13분. 그런데 스메타나가 직접 쓴 프로그램 노트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13분짜리 곡이 단순히 멈춰 있는 풍경화가 아니라 생생히 흘러가는 한 편의 기행문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스메타나가 악보 첫머리에 꼼꼼히 적어둔 안내문은 강의 일대기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두 개의 작은 샘물, 차가운 스투데나와 따뜻한 테플라 블타바에서 시작하여, 두 줄기가 하나의 물길로 합류하고, 숲과 초원을 지나고, 농부의 결혼식이 열리는 풍경을 거치며, 달빛 아래 물요정들이 춤추고, 바위 위에 우뚝 선 성과 궁전과 폐허를 지나, 성 요한 급류에서 소용돌이치다가, 마침내 넓게 펼쳐지며 프라하를 향해 흐르고, 비셰흐라드를 지나, 저 멀리 장엄하게 사라진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세요. 이건 귀가 캄캄하게 닫혀버린 사람이 그려낸 물의 풍경입니다. 세상의 소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남자가, 오직 머릿속의 기억과 상상력만으로 물방울이 튀고 급류가 굽이치는 소리의 결을 짜낸 거지요. 영영 들을 수 없는 강물의 맥박을 오직 음표 하나하나로 고스란히 복원해낸 13분이라니, 상상할수록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대목입니다.
강물을 따라 — 구간별로 귀 기울이기
블타바는 그저 찰랑이는 강물 소리를 대충 흉내 낸 곡이 아닙니다. 스메타나가 음표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깎아 만든 정밀한 여행 일정표가 숨어 있거든요. 위에 띄워둔 전곡 영상을 틀어놓고 아래 일곱 장면을 나란히 짚어가며 들어보세요. 똑같은 13분이 완전히 다른 결로 다가올 겁니다. 어디서 어떤 소리가 튀어나올지 알고 듣는 것과 무작정 소리에 휩쓸려 듣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꽤 크거든요.
① 두 개의 샘물 — 거대한 강의 첫발
곡은 플루트 두 대가 굴러가듯 뱉어내는 빠른 아르페지오로 막을 올립니다. 한 줄기는 서늘한 스투데나 블타바, 다른 한 줄기는 온화한 테플라 블타바를 뜻하지요. 서로 다른 온도의 두 음형이 엇갈리며 일렁이다 슬그머니 손을 맞잡습니다. 그 틈으로 클라리넷이 스며들고, 현악기가 가세하며 물결의 덩치를 차츰 키워 내지요. 바위틈을 졸졸거리던 꼬마 샘물이 제법 번듯한 강으로 몸을 불리는 순간입니다. 귀로 소리를 듣기 전에 눈앞에 물방울이 먼저 튀어 오르는 듯한 생생한 도입부거든요.
🎧 여기서 들으세요 — 맨 처음 플루트 두 대가 서로 다른 결로 흔들리다가, 현악이 끼어들며 얇은 물줄기가 굵직한 한 갈래로 합쳐지는 바로 그 지점. 거대한 강이 첫 박동을 시작하는 1분입니다.
② 블타바 주선율 — 귀에 꽂히는 바로 그 가락
이윽고 바이올린이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유명한 선율을 시원하게 펼쳐냅니다. e단조 특유의 짙은 색채를 띤 채 넓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멜로디지요. 단 한 번만 스쳐 들어도 귓가에 맴도는, 클래식 음악 전체를 통틀어도 손꼽히게 낯익은 가락입니다. 여기서 딱 두 가지만 미리 귀띔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첫째, 이 선율을 듣고 어쩐지 이스라엘 국가와 묘하게 닮았다고 느끼신다면 그건 기분 탓이 아닙니다. 둘째, 이 유려한 멜로디는 정작 스메타나가 자기 머리에서 온전히 짜낸 게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거든요. 두 가지 묵직한 비밀은 뒤에서 차근차근 풀어드릴 테니, 지금은 그저 넓은 평야를 매끄럽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강의 유장한 흐름에 느긋하게 몸을 맡겨 보시지요.
🎧 여기서 들으세요 — 도입부의 잘게 부서지던 물결이 한차례 크게 부풀어 오른 뒤, 바이올린이 그 길고 둥그런 강물의 주제를 처음으로 터뜨리며 노래하는 순간. 틀림없는 이 곡의 얼굴입니다.
③ 숲속 사냥 — 숲을 깨우는 호른의 포효
아름다운 주선율이 슬며시 꼬리를 감추는가 싶더니 뜬금없이 호른이 맹수처럼 포효합니다. 사냥 나팔의 팡파르처럼 짧고 날 선 모티브가 허공을 가르지요. 강둑 너머 깊은 숲속에서 사냥꾼들이 거칠게 말을 몰며 사냥감을 뒤쫓는 풍경입니다. 금관악기 특유의 뻗어나가는 울림이 고요하던 강물 위로 쩌렁쩌렁 메아리치며 번져나가거든요. 스쳐 지나가는 짧은 대목이지만 남기는 잔상은 무척이나 강렬합니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작곡가가 오직 머릿속의 기억만으로 빚어낸 숲의 소란이, 듣는 우리에게 이토록 날것 그대로 꽂힌다니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지요.
🎧 여기서 들으세요 — 유장한 강물 주제가 한풀 꺾여 가라앉은 틈을 타, 호른과 금관악기들이 사냥 나팔처럼 벼락같이 치고 들어오는 대목. 서정적이던 공기가 순식간에 야성적으로 곤두섭니다.
④ 농촌 결혼식 — 흥겹게 달아오르는 춤판
사냥터의 흙먼지와 흥분이 가라앉을 즈음, 이번에는 통통 튀어 오르는 폴카 리듬이 경쾌하게 터져 나옵니다. 발을 구르게 만드는 체코 민속 춤 특유의 쫄깃한 박자지요.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마을 잔치에 어울릴 법한 흥겨운 가락을 주거니 받거니 엮어냅니다. 강변에 자리 잡은 어느 작고 소박한 마을에서 시끌벅적한 결혼식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거든요. 춤판의 열기가 한껏 달아오르다 이내 소리가 차츰 잦아들며 춤곡이 멀어집니다. 강물이 떠들썩한 잔칫집을 등 뒤로 한 채, 다시 묵묵히 자신의 길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거지요.
🎧 여기서 들으세요 — 흥겨운 폴카 리듬이 바짝 달아올라 통통 튀다가, 이내 서서히 잦아들며 아스라이 멀어지는 순간. 마치 영화 카메라가 왁자지껄한 잔치판을 비추다 강줄기를 따라 유유히 빠져나가는 듯한 기법입니다.
⑤ 달빛 아래 물요정의 원무 — 서늘하고 투명한 환상
사위가 어두워지고 한밤중이 찾아오면, 음악의 결조차 완전히 다른 색으로 뒤바뀝니다. 여린 현악기들이 허공에 투명한 빛가루를 흩뿌리는 가운데, 플루트와 오보에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선율을 나직하게 주고받지요. 슬라브 전설 속에 등장하는 물요정 루살카들이 창백한 달빛을 밟으며 둥글게 원을 그리고 춤추는 장면입니다. 더없이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 대목이야말로, 고장 난 청각 대신 날 선 상상력 하나만으로 길어 올린 가장 눈부신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실의 둔탁한 소리에 발목 잡히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완벽하고 자유로운 환상의 세계를 빚어낼 수 있었던 셈이지요.
🎧 여기서 들으세요 — 왁자지껄하던 모든 소리가 한 톤 낮게 가라앉고, 약음기를 낀 현악기가 달빛처럼 은은하게 반짝이기 시작하는 곳. 13분의 여정 중 가장 고요하고 신비로운 심연의 구간입니다.
⑥ 성 요한 급류 —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절정
다시 동이 트고 새벽이 밝으면, 밤새 숨을 고르던 강물이 잔뜩 힘을 그러모아 맹렬하게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내 가파른 바위가 버티고 선 성 요한 급류와 정면으로 부딪히지요. (체코에 실제로 있던 험준한 급류인데, 지금은 슬라피 저수지에 잠겨 사라졌습니다.) 음악 구조상으로 보아도 이 지점이 한 치의 의심 없는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입니다. 팀파니가 사정없이 땅을 두들기고, 금관악기 전체가 짐승처럼 울부짖는 사이 바이올린은 아찔한 소용돌이를 팽팽하게 감아 올리거든요. 오케스트라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음량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를 빚어냅니다. 이토록 격동하는 30여 초의 에너지가 폭발해주기에, 앞서 흘러온 고요하고 서정적인 시간들이 비로소 묵직한 설득력을 얻는 겁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숨죽였던 물요정 장면이 끝나기가 무섭게 팀파니와 육중한 금관악기들이 한꺼번에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곳. 소리가 바닥까지 엎드렸던 직후에 가장 거대하게 솟구쳐 오르는, 그 아찔한 낙차에 몸을 맡겨 보세요.
⑦ 프라하 입성, 그리고 찬란하게 포개지는 역사의 시간
포효하던 급류를 간신히 빠져나온 강물은 훌쩍 넓어진 품으로 드디어 프라하에 닿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스메타나는 듣는 이를 무장해제 시킬 깜짝 장치를 하나 꺼내 듭니다. 곡의 시작부터 줄곧 어두운 e단조를 맴돌던 블타바 주선율이, 짙은 구름이 걷히듯 E장조로 환하게 전조되며 뻗어 나가거든요. 거기에 교향시 연작의 첫 번째 곡인 ‘비셰흐라드’의 장엄한 주제가 그 위로 거대한 지붕처럼 덧씌워집니다. 유장한 강물이 체코 옛 왕들이 잠든 위풍당당한 성벽 아래를 굽이쳐 흐르는 풍경이지요. 말 그대로 자연이 흐르는 시간과 인간이 쌓아 올린 역사의 시간이 한 점에 맞물려 폭발하는 경이로운 순간입니다. 이윽고 모든 서사를 품에 안은 강물은 서서히, 그러나 더없이 웅장한 뒷모습을 남기며 시야 밖으로 아스라이 흘러갑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거친 급류가 잦아든 뒤 강물의 주제가 단조의 굴레를 벗고 장조로 눈부시게 색을 갈아입는 찰나. 그리고 그 위로 묵직하고 당당한 ‘비셰흐라드’ 주제가 겹쳐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대목. 장대한 여정의 문을 닫는, 가장 벅차오르는 순간입니다.
이스라엘 국가와 체코 강물이 얽힌 기묘한 인연
앞에서 잠시 뒤로 미뤄두었던 흥미로운 비밀 하나를 마저 풀어볼 차례입니다. 블타바를 찬찬히 듣다 보면 클래식 역사상 가장 유명한 멜로디 중 하나로 꼽히는, 바로 그 유려한 강물 주선율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 귓가에 익숙한 선율 뒤에는 자그마치 400년에 걸친 긴 사연이 똬리를 틀고 있거든요.
애초에 이 가락은 스메타나의 머릿속에서 번쩍하고 탄생한 게 아닙니다. 시간을 거슬러 16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불리던 옛 선율, ‘라 만토바나(La Mantovana)’에서 흘러나온 멜로디지요. 1600년 무렵 처음 악보로 찍혀 나온 이 노래는, 르네상스 시대 유럽 전역을 떠돌며 나라마다 제각기 다른 옷을 덧입었습니다. 플랑드르와 폴란드는 물론이고, 루마니아를 거쳐 저 멀리 스코틀랜드에서까지 동네마다 알맞은 가사를 달고 불렸거든요. 멜로디 하나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숱한 국경을 넘나들며 유랑 생활을 한 셈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의 실타래가 한 번 더 기막히게 꼬여듭니다. 19세기 말, 몰다비아 출신의 유대인 이민자 사무엘 코엔(Samuel Cohen)이 오스만 제국 지배 아래 있던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가 정착하지요. 이때 그가 짐 챙기듯 가져간 루마니아 버전의 ‘라 만토바나’ 가락에, 시인 나프탈리 헤르츠 임베르(Naftali Herz Imber)가 쓴 시 ‘하티크바(희망)’를 슬쩍 얹어 노래를 하나 만듭니다. 바로 그 굽이친 사연을 가진 노래가 오늘날의 이스라엘의 국가입니다.
요약하자면 체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국민 선율과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국가가, 멀고 먼 16세기 이탈리아의 어느 사랑 노래라는 굵은 뿌리 하나에서 나란히 뻗어 나온 셈이지요. 길고 긴 음악사를 통틀어 뒤져봐도 이토록 얄궂은 우연은 좀처럼 찾기 힘듭니다. 아름다운 강물을 그려낸 곡과 묵직하게 나라를 결속하는 노래가, 알고 보니 한 배에서 나온 핏줄이었으니 말입니다.
💡 사실은요 — 그렇다면 스메타나가 이탈리아의 ‘라 만토바나’를 작정하고 베껴 쓴 것일까요? 그건 확실치 않습니다. 이 생명력 긴 선율은 당시 체코의 촌락을 떠도는 민간 음악 속에도 이미 흠뻑 배어 있었거든요. 그러니 스메타나 역시 그 기원을 뚜렷이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르게 귓가에 남아있던 익숙한 가락을 자연스레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노래 하나가 체코와 이스라엘이라는 두 나라의 정체성을 넉넉히 품어 안게 된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귀먹은 작곡가가 일궈낸 눈부신 5년
블타바는 홀로 뚝 떨어진 단발성 작품이 아닙니다. 장대한 《나의 조국(Má vlast)》이라는 교향시 연작을 구성하는 두 번째 곡이거든요. 눈에 보이는 풍경이나 서사를 음표로 솜씨 좋게 번역해 내는 이른바 표제음악이 유럽 음악계를 쥐락펴락하던 19세기 낭만주의, 바로 그 한복판을 관통하며 태어난 대작이지요. 홀스트의 《행성》이나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표제 관현악의 굵직한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대목은, 스메타나가 1874년부터 1879년 사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된, 두 귀가 완전히 멀어버린 상태에서 이 거대한 여섯 곡을 전부 빚어냈다는 사실입니다.
웅장한 연작의 퍼즐 조각을 한 곡씩 맞추어 볼까요. 문을 여는 첫 곡 ‘비셰흐라드’는 프라하 남쪽 깎아지른 절벽에 자리 잡은 전설 속의 성을 장엄하게 그려냅니다. 음유시인 루미르가 타는 하프 선율이 찰랑이며 등장하고, 옛 왕국의 눈부신 영광이 찬란하게 펼쳐지다 이내 묵직한 슬픔 속으로 스러져 가지요. 재미있는 건 바로 이 곡의 핵심 주제가 앞서 들었던 블타바의 마지막 장면에서 거짓말처럼 다시 솟구쳐 오른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연작을 첫 곡부터 차분히 이어 들으면, 그 기막힌 선율 회수의 쾌감이 한층 진하게 우러나게 마련이지요.
이어지는 세 번째 곡 ‘샤르카’는 사내들을 유혹한 뒤 무자비하게 몰살시킨 입체적인 여전사의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보헤미아의 숲을 떠도는 전설 속 복수의 여신이지요. 엎치락뒤치락하는 극적인 서사가 어찌나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지, 숨죽여 듣다 보면 흑백 무성영화를 한 편 감상한 기분이 들 정도거든요. 네 번째 곡 ‘보헤미아의 숲과 들판에서’는 체코가 품은 대자연을 눈앞에 너르게 펼쳐놓은 웅장한 풍경화입니다. 느릿하고 명상적인 걸음으로 시작했다가 흥겨운 폴카 리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전개가 묘하게도 블타바의 흐름을 쏙 빼닮았지요.
마지막을 장식하는 다섯 번째 ‘타보르’와 여섯 번째 ‘블라니크’는 후스 전쟁을 이끌었던 맹렬한 전사들, 그리고 조국이 벼랑 끝에 몰린 순간 깊은 산속에서 깨어날 거라는 전설 속 기사단을 웅장하게 노래합니다. 수많은 외침에 시달린 체코 민족의 뼈아픈 수난,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서겠다는 뜨거운 열망이 음표 사이사이에 빽빽하게 새겨진 곡들이지요. (《나의 조국》을 이루는 여섯 곡 전체의 더 깊고 내밀한 서사는 별도의 가이드 글에 따로 꼼꼼히 풀어두었습니다.)
짚어본 대로 여섯 곡 모두 뼛속까지 보헤미아의 흙내음을 품은 자연이자 역사이고 전설입니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지요. 어째서 유독 블타바 단 한 곡만이 국경의 높은 문턱을 거뜬히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귀에까지 가닿았을까요. 원래 펄펄 끓는 민족의 감정이 지나치게 구체적인 서사로 묘사되면, 피부색이 다른 문화권 청중의 마음까지는 좀처럼 파고들기 어려운 법입니다. 하지만 블타바는 영락없는 체코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강’이라는 누구에게나 낯익고 보편적인 얼굴을 영리하게 앞세웠거든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이 흐르는 풍경을 알고, 그 물줄기가 결국 바다라는 어딘가를 향해 묵묵히 나아간다는 이치를 아니까요. 바로 그 넉넉한 보편성이 블타바를 체코의 좁은 계곡에서 건져 올려 국경 밖 더 넓은 세상으로 실어 나른 셈입니다.

1882년, 강물 위에 뜬 궁전에서
1882년 11월 5일, 프라하의 조피나 궁전(Žofín Palace). 블타바 강물 위 작은 섬에 다소곳이 자리 잡은 이 궁전에서, 마침내 거대한 《나의 조국》 여섯 곡 전체가 하나의 무대 위로 불려 나왔습니다. 이날 지휘봉을 쥔 사람은 아돌프 체흐(Adolf Čech)였지요.
스메타나는 그날 객석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단 한 음표조차 그의 귀에 닿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블타바의 주선율을 유려하게 굽이쳐 낼 때, 객석 곳곳에서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기척을 바꾸는 공기를, 그리고 연주가 끝난 뒤 우레처럼 터져 나온 박수의 진동을 온몸의 살갗으로 고스란히 받아냈을 겁니다. 비록 소리는 차단되었을지언정, 벅차오르는 떨림만큼은 닿았을 테니까요.
이 대목을 떠올릴 때면 으레 묵직한 질문 하나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습니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토해낸 음악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숨죽여 듣고 눈물짓는 풍경이라니요. 청각이 영영 떠나버린 그 캄캄한 빈자리에는 과연 무엇이 그토록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던 걸까요. 그 뭉클한 미스터리의 답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 곡은 체코 사람들에게 비공식 국가나 다름없는 굳건한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1946년에 닻을 올린 프라하의 봄 국제음악제는 1952년부터 해마다 5월 12일, 즉 스메타나가 눈을 감은 기일에 맞춰 한 치의 어김도 없이 《나의 조국》으로 음악제의 첫 문을 엽니다. 그 뒤로 70여 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단단한 전통이지요. 한 작곡가가 그려낸 악보 뭉치가, 한 나라의 진짜 봄을 알리는 경건한 의식으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그 수많은 봄 중에서도 1990년의 봄날만큼은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억압적인 공산 정권이 무너져 내린 뒤 처음으로 자유의 공기 속에서 열린 프라하의 봄 음악제였거든요. 그 벅찬 날, 지휘대에 오른 인물은 오랜 망명 생활을 견뎌낸 지휘자 라파엘 쿠벨리크(Rafael Kubelík)였습니다. 그는 1948년 공산당이 권력을 틀어쥐자 쓸쓸히 고국을 떠났고, 무려 42년이라는 억겁의 시간 동안 체코 땅을 밟지 못한 채 떠돌아야 했지요. 그 쿠벨리크가 다시 프라하의 무대에 서서 《나의 조국》의 첫 음을 빚어낸 순간, 그리고 유장한 블타바의 주선율이 극장을 채우자 객석을 가득 메운 체코인들이 하나둘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캄캄한 침묵 속에서 길어 올린 물줄기가, 42년에 걸친 생이별과 뜨거운 귀환의 서사를 고스란히 보듬어 안은 겁니다.
어떤 연주로 첫발을 뗄까
워낙 이름난 명곡이다 보니 블타바가 녹음된 음반은 그야말로 별처럼 쏟아집니다. 그 아득한 음반의 바다에서 행여나 길을 잃지 않도록, 저마다의 색깔이 뚜렷하게 갈리는 세 장만 콕 집어 나침반 삼아 골라보았습니다. 이 중 어느 음반의 재생 버튼을 먼저 누르든, 첫걸음으로는 결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겁니다.
👑 첫 감상 추천
라파엘 쿠벨리크 · 체코 필하모닉
앞서 이야기한 그 귀환 공연입니다. 기교의 완벽함보다 감정의 진정성으로 듣는 한 장이지요. 블타바를 제대로 처음 만나고 싶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레퍼런스
조지 셀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정밀한 앙상블과 선명한 대위법이 강점입니다. 각 악기가 어떻게 얽히는지 분석적으로 뜯어 듣고 싶은 분께. 다만 감정의 두께를 원한다면 조금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지요.
와일드카드
바츨라프 탈리히 · 체코 필하모닉
체코 필하모닉의 음향 전통을 빚어낸 거장의 역사적 명연입니다. 블타바를 ‘원전의 무게’로 만나고 싶은 분께 권하지요. 다만 1954년 모노 녹음이라, 최신 음질의 선명함을 기대했다면 시대의 한계가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세 장의 음반이 굽이쳐 가는 길은 제각기 다르지만, 단 한 가지 대목만큼은 어떤 연주에서나 똑같이 작동합니다. 달빛 머금은 물요정 장면에서 숨죽이듯 음량이 뚝 떨어졌다가, 험준한 성 요한 급류에 부딪히며 오케스트라 전체가 짐승처럼 폭발하는 그 아찔한 낙차 말입니다. 극과 극을 오가는 이 짜릿한 대비만큼은 아무리 성향이 다른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둘러도 그 타격감이 조금도 바래지 않거든요. 귀가 꽉 막힌 작곡가가 악보 위에 치밀하게 파놓은, 백발백중으로 걸려들 수밖에 없는 음향의 덫인 셈이지요.
악보의 길을 눈으로 따라가며 듣기
이 곡의 낡은 악보 원본은 IMSLP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그것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두 대의 플루트가 과연 어떤 궤적으로 엇갈리며 물결을 그려내는지, 마지막 장면의 장엄한 비셰흐라드 주제가 정확히 어느 마디에서 어깨를 걸고 들어오는지 눈으로 직접 짚어가며 듣다 보면, 귀로만 좇을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쏠쏠한 재미가 스며 나옵니다. 블타바 (《나의 조국》 중) 악보 보기 (IMSLP)
영원히 멈추지 않는 물줄기
블타바를 완성한 뒤로도 스메타나의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습니다. 1884년 초입에 접어들며, 끝내 그의 정신마저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지요. 결국 정신병원에 수용된 그는 같은 해 5월 12일, 길고 고단했던 생을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향년 예순 살. 두 귀의 청력을 완전히 잃고도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악보와 씨름했던 이의 결말치고는, 너무도 이르고 쓸쓸한 작별이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유수의 공연장들을 둘러보면 후배인 드보르작의 작품이 훨씬 폭넓은 레퍼토리로 연주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는 횟수가 한 예술가의 유산이 지닌 무게를 온전히 재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스메타나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그저 잘 짜인 악보 한 뭉텅이가 아니라, 결코 지워지지 않는 거대한 장면 하나거든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빼앗긴 사내가 영영 듣지 못할 강물의 고동을 한 음 한 음 처절하게 받아 적어 내려가던, 그 서늘하면서도 펄펄 끓는 장면 말입니다.
시중의 클래식 입문서들은 흔히 블타바를 두고 ‘자연을 그려낸 아름다운 풍경화’라며 점잖게 소개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얄팍한 절반짜리 설명에 불과하지요. 이 곡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묵묵히 띄워 보낸 투명한 편지거든요. 그 아득한 역설을 놓치고 듣는다면, 우리는 블타바가 품은 진짜 깊이의 절반을 영영 놓쳐버리고 마는 셈입니다.
블타바 강물은 오늘도 변함없이 프라하의 심장부를 유유히 가르며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1874년의 시린 겨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침묵 속에서 길어 올린 그 선율 또한 멈추지 않고 전 세계의 콘서트홀을 적시며 흐르고 있지요. 비록 이 거대한 강물은 제 소리를 단 한 번도 직접 들어보지 못한 가엾은 이의 손끝에서 솟아났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우리 곁을 마르지 않고 흐를 테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몰다우와 블타바는 같은 곡인가요?
블타바 선율이 이스라엘 국가와 비슷하다는 게 사실인가요?
블타바는 몇 분짜리 곡이고, 어떤 구성인가요?
스메타나가 귀가 먹은 상태에서 블타바를 작곡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나의 조국》은 총 몇 곡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참고 자료
- Wikipedia — Vltava (Smetana)
- IMSLP — Má vlast, JB 1:112 (Smetana)
- Wikipedia — Bedřich Smetana
- Wikipedia — Hatikvah (라 만토바나 선율의 갈래)
이어서 듣기 — 보헤미아의 강물을 따라서
클래식 음악은 곡과 곡이 서로 보이지 않는 손을 꽉 맞잡고 있을 때 한층 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오게 마련입니다. 블타바의 긴 물길을 끝까지 따라왔다면, 내친김에 같은 보헤미아의 핏줄을 나누어 가졌거나 비슷한 표제음악의 결을 품은 다음 곡들로 여정을 이어가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