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Bedřich Smetana, 1824–1884) - 곡명
- 블타바 (《나의 조국》 제2곡)
(Vltava, from Má vlast, JB 1:112 No. 2) - 작곡
- 1874년 11월 20일 ~ 12월 8일 (단 18일)
- 초연
- 1875년 4월 4일, 프라하
(아돌프 체흐 지휘) - 편성
- 플루트 2(피콜로 1),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트라이앵글, 심벌즈, 하프, 현 5부
- 조성
- e단조 (종결부에서 블타바 주제가 E장조로 밝아짐)
- 연주 시간
- 약 12~13분
이 곡은 — 두 귀가 완전히 멀어버린 직후, 스메타나가 단 18일 만에 써낸 보헤미아 강 한 줄기의 일생입니다. 13분짜리 교향시지요.
딱 하나만 듣는다면 — 플루트 두 대의 작은 샘물이 합류해 그 유명한 e단조 강물 주제로 부풀어 오르는 도입부를 놓치지 마세요.
첫 음반 — 라파엘 쿠벨리크 · 체코 필하모닉 (Supraphon, 1990). 망명 42년 만의 귀환 실황이거든요.
1874년 10월 20일 저녁, 프라하.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세상이 통째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왼쪽 귀가 마지막으로 꺼진 날이거든요. 오른쪽은 이미 보름 전에 잃었고요. 체코 오페라의 왕, 프라하 임시극장 수석 지휘자, ‘체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던 남자가 이제 피아노 건반 하나 울리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게 된 겁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 비극으로 끝나지요. 그런데 스메타나의 이야기는 정반대였습니다. 청각을 완전히 잃은 지 정확히 한 달 뒤, 그는 자기 인생 최고의 곡을 쓰기 시작했거든요. 자기 귀로는 영영 들을 수 없을, 강물의 노래를 말입니다. 침묵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양조장 아들의 일기장
스메타나의 아버지 프란티셰크는 양조장 주인이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군에 군복과 식량을 대고 제법 돈을 모은 사람이었지요. 아들이 피아노에 빠져드는 걸 지켜보면서도 그의 입장은 분명했습니다. “그건 취미지, 직업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여섯 살짜리 아들은 이미 무대 위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1830년, 리토미슐 철학 아카데미의 콘서트. 꼬마 스메타나가 오베르(Daniel Auber)의 오페라 《포르티치의 벙어리 아가씨》 서곡을 피아노로 편곡해 연주하자 객석이 술렁였거든요. 여섯 살입니다. 악보를 겨우 더듬더듬 읽기 시작할 나이에 오페라 서곡을 자기 손으로 편곡했다는 이야기지요.
소년은 프라하로 올라와 공부하던 중 리스트(Franz Liszt)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직접 목격합니다. 손가락이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광경에 넋이 나간 열다섯 살 소년이, 그날 밤 일기장에 한 줄을 적어 넣었습니다.
“작곡에서는 모차르트가, 기교에서는 리스트가 되고 싶다.”
겸손과는 한참 거리가 먼 다짐이었지요.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예언이 되었습니다. 기교로 리스트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체코 음악사에서만큼은 모차르트보다 더 큰 이름이 되었으니까요. 어린 날의 허세가 절반은 맞아떨어진 셈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스메타나가 자란 보헤미아는 당시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거든요. 공식 언어는 독일어. 음악계에서 출세하려면 독일어로 말하고 독일식으로 작곡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스메타나도 처음에는 독일어로 편지를 쓰고 독일어 제목으로 곡을 발표했지요. 훗날 ‘체코 음악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 정작 젊은 시절엔 체코어보다 독일어가 더 편했던 겁니다.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리케이드 위의 작곡가
1848년. 유럽 전역에 혁명의 불길이 번졌습니다. 프라하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합스부르크 제국에 맞서 시민들이 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쌓아 올렸고, 스메타나도 그 위에 서 있었습니다. 총을 쥔 손으로 혁명 행진곡까지 써 내려갔거든요. 음악가가 무기를 들었다는 게 어색하게 들리겠지만, 그 시대 프라하에서는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혁명은 곧 진압됐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은 스메타나 머릿속에 씨앗 하나를 심어 놓았지요. 총이 아니라 음악으로 조국을 이야기하겠다는 결심 말입니다. 이 씨앗이 26년 뒤 《나의 조국》으로 싹을 틔우리라고는, 그때는 본인도 까맣게 몰랐겠지요.
그런데 프라하는 그를 쉽게 품어주지 않았습니다. 야심 차게 음악원을 차렸지만 학생은 모이지 않았고, 네 딸 가운데 셋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거든요. 맏딸 프리데리카는 겨우 네 살이었습니다. 그의 《피아노 삼중주 g단조》는 바로 이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길어 올린 곡이지요. 음표 하나하나가 작은 관을 닮았다는 평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결국 스메타나는 짐을 싸 스웨덴 예테보리로 떠납니다. 장차 ‘체코 음악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 스칸디나비아 항구도시에서 합창단을 지휘하고 피아노 레슨을 하며 생계를 꾸리게 된 거지요. 그것도 무려 5년 동안이나요.
참 야속한 이야기입니다. 조국을 위해 음악을 쓰겠다던 사람이 정작 조국에서는 입에 풀칠할 길이 없어 떠나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망명 아닌 망명이 헛된 시간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테보리에서 리스트의 교향시 작법을 뿌리까지 파고들었고, 풍경과 이야기를 음으로 옮기는 표제음악의 언어를 완전히 제 것으로 삼켰거든요. 훗날 《나의 조국》을 떠받칠 기술적 토대가 바로 이 5년 동안 다져진 셈입니다. 멀리 돌아간 길이 결국 지름길이었던 거지요.

돌아온 사자, 그리고 찾아온 침묵
1861년, 체코 땅에 정치적 해빙의 기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스메타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장 프라하로 돌아왔지요. 그리고 5년 만에 오페라 두 편을 연달아 터뜨립니다. 1866년에 초연한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인》이 먼저 성공을 거뒀고, 같은 해에 나온 《팔려간 신부》는 그냥 성공이 아니라 폭발이었거든요. 체코어로, 체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이 유쾌한 희극 오페라는 단숨에 국민 오페라의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같은 해 임시극장 수석 지휘자 자리까지 거머쥐었으니, 그야말로 승승장구였지요.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입니다. 프라하 음악계의 보수파는 그를 두고 “리스트와 바그너(Richard Wagner)에 물든 자”라며 날을 세웠거든요. 체코 고유의 음악을 세워야 할 사람이 서양의 진보적 기법에 빠져 있다는 비난이었거든요.
참 묘한 상황 아닙니까. 누구보다 체코적인 음악을 쓰겠다고 평생을 건 사람에게 “너는 충분히 체코적이지 않다”는 화살이 날아왔으니 말입니다. 이 소모적인 논쟁이 그를 얼마나 갉아먹었는지는, 불과 8년 뒤 그의 건강이 무너져 내리는 속도를 보면 어렴풋이 짐작이 갑니다.
1874년 여름, 스메타나의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잡음이었지요. 그러다 끊이지 않는 윙윙거림으로 바뀌었고, 곧 개별 음을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10월 초에 오른쪽 귀가 완전히 멈췄고, 10월 20일에는 왼쪽 귀마저 꺼졌습니다. 여름에서 가을, 넉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지요.
그는 극장 총감독에게 사직서를 보냅니다. 의사는 “모든 소리로부터 격리하라”는 처방을 내렸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었을까요. 격리할 소리 자체가 이미 그의 세상에서 사라진 뒤였으니까요. 처방전이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완벽한 정적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귀를 잃기 직전 들었던 그 끈질긴 윙윙거림을 나중에 음악으로 박제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블타바를 쓰고 2년 뒤에 작곡한 현악사중주 1번 〈나의 생애로부터〉, 그 마지막 악장 한복판에서 제1바이올린이 느닷없이 찢어질 듯 높은 음 하나를 길게 내지르거든요. 스메타나 본인이 “재앙을 예고하던 귀울림”이라고 밝힌 바로 그 소리지요. 자신을 침묵으로 밀어 넣은 그 고음을, 그는 도망치는 대신 악보 위에 똑똑히 못 박아 두었던 겁니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도 귀가 먹은 뒤 교향곡을 완성했지요. 스메타나도 그랬습니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베토벤은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청력을 잃어갔지만, 스메타나는 단 넉 달 만에 두 귀를 통째로 잃었다는 것. 그리고 그 직후, 망설임 없이 자기 인생 최고의 작품에 펜을 댔다는 것 말입니다. 절망이 들이닥친 자리에서 곧장 걸작이 솟아난 셈이지요.
18일, 하나의 강이 태어나다
1874년 11월 20일부터 12월 8일까지. 단 18일. 그 짧은 보름 남짓한 시간 동안, 블타바(Vltava)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우리에게는 독일식 이름 ‘몰다우’로 더 친숙한 바로 그 곡이지요.
블타바는 체코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 보헤미아 깊은 숲에서 발원해 프라하 한복판을 가르고 엘베 강으로 흘러드는, 길이 431킬로미터의 물줄기지요. (체코 낭만음악의 또 다른 기둥인 드보르작(Antonín Dvořák)의 신세계 교향곡과 더불어, 이 나라 음악의 두 봉우리를 이룹니다.) 조성은 e단조, 길이는 약 13분. 그런데 스메타나가 남긴 프로그램 노트를 읽어 보면, 이 곡이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한 편의 여행기라는 걸 단번에 알게 됩니다.
스메타나 본인이 악보 앞머리에 붙여둔 글은 강의 일생을 이렇게 그립니다. “두 개의 작은 샘물, 차가운 스투데나와 따뜻한 테플라 블타바에서 시작하여, 두 줄기가 하나의 물길로 합류하고, 숲과 초원을 지나고, 농부의 결혼식이 열리는 풍경을 거치며, 달빛 아래 물요정들이 춤추고, 바위 위에 우뚝 선 성과 궁전과 폐허를 지나, 성 요한 급류에서 소용돌이치다가, 마침내 넓게 펼쳐지며 프라하를 향해 흐르고, 비셰흐라드를 지나, 저 멀리 장엄하게 사라진다.”
다시 한번 떠올려 보세요. 이건 귀가 완전히 먹은 사람이 써 내려간 풍경 묘사입니다. 소리를 잃은 사람이, 오직 기억과 상상만으로 소리의 그림을 그려낸 거지요. 들리지 않는 강물 소리를 음표 하나하나로 복원해낸 13분이라니, 생각할수록 서늘한 일입니다.
강물을 따라 — 구간별로 따라 듣기
블타바는 그저 강물 소리를 흉내 낸 곡이 아닙니다. 스메타나가 한 칸 한 칸 설계해 둔 정밀한 여행 일정표가 있거든요. 위에 띄워둔 전곡 영상을 틀어놓고 아래 일곱 장면을 짚어가며 들으면, 똑같은 13분이 완전히 다르게 들립니다. 어디서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알고 듣는 것과 모르고 듣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① 두 개의 샘물 — 강의 탄생
곡은 플루트 두 대의 빠른 아르페지오로 열립니다. 한 줄기는 차가운 스투데나 블타바, 다른 한 줄기는 따뜻한 테플라 블타바지요. 두 음형이 번갈아 일렁이다가 슬그머니 손을 맞잡습니다. 거기에 클라리넷이 끼어들고, 현악기가 물결을 점점 키워 올리지요. 졸졸거리던 샘물이 하나의 강으로 몸을 불리는 순간입니다. 귀로 듣기 전에 눈에 먼저 보이는 듯한 도입부거든요.
🎧 여기서 들으세요 — 맨 처음 플루트 두 대가 서로 다른 결로 흔들리다가, 현악이 들어오면서 물줄기가 한 갈래로 굵어지는 그 지점. 강이 태어나는 1분입니다.
② 블타바 주선율 — 그 유명한 멜로디
이윽고 바이올린이 그 유명한 선율을 활짝 펼칩니다. e단조의 넓고 유려한 멜로디. 한 번만 들어도 귀에 박히는, 클래식 역사상 손꼽히게 친숙한 가락이지요. 여기서 두 가지만 미리 귀띔해 두겠습니다. 첫째, 이 선율이 어쩐지 이스라엘 국가와 닮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착각이 아닙니다. 둘째, 이 멜로디는 스메타나가 직접 빚어낸 게 아닐 가능성이 높지요. 두 비밀 모두 뒤에서 풀어드릴 테니, 지금은 강이 넓은 평야를 미끄러져 가는 그 흐름에만 몸을 맡겨 보세요.
🎧 여기서 들으세요 — 도입부 물결이 한차례 부풀어 오른 뒤, 바이올린이 그 길고 둥근 강물 주제를 처음 노래하는 순간. 이 곡의 얼굴입니다.
③ 숲속 사냥 — 호른의 포효
주선율이 잦아드는가 싶더니 호른이 갑자기 포효합니다. 팡파르처럼 짧고 날카로운 모티브지요. 강변 어딘가 숲속에서 사냥꾼들이 말을 몰아대는 장면입니다. 금관의 거친 울림이 강물 위로 메아리치며 번지거든요. 길이는 아주 짧지만 강렬하기 짝이 없습니다. 들리지 않는 작곡가가 머릿속으로 그려낸 숲의 소리가, 정작 듣는 우리에게는 이토록 생생하다니 묘한 노릇이지요.
🎧 여기서 들으세요 — 강물 주제가 한풀 가라앉은 자리에서 호른과 금관이 사냥 나팔처럼 치고 들어오는 대목. 분위기가 확 거칠어집니다.
④ 농촌 결혼식 — 폴카가 터진다
사냥의 흥분이 가시면 통통 튀는 폴카 리듬이 터져 나옵니다. 체코 민속 춤 특유의 경쾌한 박자지요.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흥겨운 춤곡 가락을 서로 주고받습니다. 강변 어느 마을에서 결혼식 잔치가 한창인 풍경이거든요. 음악이 한껏 달아오르다가, 강물 주제가 슬며시 멀어지듯 사라집니다. 강은 잔치를 등 뒤에 남겨두고 다시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거지요.
🎧 여기서 들으세요 — 폴카 리듬이 통통 튀어 오르다가 점점 작아지며 멀어지는 순간. 카메라가 잔치를 비추다 강을 따라 천천히 빠져나가는 듯합니다.
⑤ 달빛 아래 물요정의 원무
한밤중이 되면 음악의 결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현악기가 투명한 빛을 흩뿌리고, 플루트와 오보에가 어딘가 비현실적인 선율을 주고받지요. 슬라브 전설 속 물요정 루살카들이 달빛 아래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추는 장면입니다.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이 대목이야말로, 청각 대신 상상력만으로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들을 수 없었기에 더 자유롭게 꿈꿀 수 있었던 건 아닐까요. 현실의 소리에 묶이지 않은 환상이니까요.
🎧 여기서 들으세요 — 모든 소리가 한 톤 낮게 가라앉고 현악이 은은하게 반짝이기 시작하는 곳. 곡 전체에서 가장 고요하고 신비로운 구간입니다.
⑥ 성 요한 급류 — 13분의 클라이맥스
새벽이 밝으면 강물은 다시 힘을 그러모아 내달립니다. 그리고 곧장 성 요한 급류에 부딪히지요. (체코에는 지금도 ‘성 요한 급류’라는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이 지점이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거든요. 팀파니가 땅을 울리고, 금관 전체가 울부짖고, 바이올린이 소용돌이를 그려냅니다. 오케스트라가 가진 모든 음량을 쏟아부어 물보라를 빚어내지요. 바로 이 격렬한 30여 초가 있기에, 앞서 흘러온 잔잔한 시간들이 비로소 의미를 얻는 겁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고요하던 물요정 장면이 끝나자마자 팀파니와 금관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곳. 소리가 가장 작아진 직후에 가장 커지는 그 낙차를 느껴보세요.
⑦ 프라하 통과, 그리고 비셰흐라드
급류를 빠져나온 강물은 드디어 프라하에 닿습니다. 여기서 스메타나는 깜짝 놀랄 장치를 하나 꺼내 들지요. 줄곧 e단조였던 블타바 주선율이 E장조로 환하게 전조되면서, 연작 첫 곡 ‘비셰흐라드’의 주제가 그 위에 웅장하게 포개지는 겁니다. 강물이 체코 옛 왕들의 성 아래를 흐르는 장면이거든요. 자연의 시간과 역사의 시간이 한 점에서 만나는 순간이지요. 그리고 강물은 서서히, 그러나 더없이 장엄하게, 시야 밖으로 사라져 갑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급류가 잦아든 뒤 강물 주제가 단조에서 장조로 환하게 바뀌고, 그 위로 묵직한 ‘비셰흐라드’ 주제가 겹쳐 울리는 대목. 곡의 마지막을 닫는 가장 벅찬 순간입니다.
이스라엘 국가와 체코 강물의 기묘한 인연
앞에서 잠깐 미뤄둔 비밀 하나를 이제 풀어볼 차례입니다. 블타바를 듣다 보면 클래식에서 가장 유명한 멜로디 중 하나, 그 강물 주선율과 마주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 익숙한 선율에는 400년에 걸친 사연이 숨어 있거든요.
원래 이 가락은 스메타나가 처음 지어낸 게 아닙니다. 16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옛 선율 ‘라 만토바나(La Mantovana)’에서 흘러나온 가락이지요. 1600년 무렵 악보로 처음 출판된 이 노래는, 르네상스 유럽 곳곳에서 나라마다 다른 옷을 갈아입으며 불렸습니다. 플랑드르에서도, 폴란드에서도, 루마니아에서도, 멀리 스코틀랜드에서도 제각각의 가사로 울려 퍼졌거든요. 하나의 멜로디가 수백 년 동안 국경을 넘나들며 떠돈 셈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가 한 번 더 꼬입니다. 19세기 말, 몰다비아 출신의 유대인 이민자 사무엘 코엔(Samuel Cohen)이 오스만 제국 치하의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지요. 그는 루마니아 버전의 ‘라 만토바나’를 가져다가, 시인 나프탈리 헤르츠 임베르(Naftali Herz Imber)가 쓴 시 ‘하티크바(희망)’에 곡을 붙였습니다. 바로 그 노래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국가입니다.
그러니까 체코의 국민 선율과 이스라엘의 국가가, 16세기 이탈리아의 한 사랑 노래라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거지요. 음악사를 통틀어 이만큼 기묘한 우연도 흔치 않습니다. 강을 노래한 곡과 나라를 노래한 곡이, 알고 보면 한 핏줄이었던 셈이니까요.
💡 사실은요 — 스메타나가 ‘라 만토바나’를 일부러 갖다 쓴 것이냐 하면, 그건 확실치 않습니다. 이 선율은 당시 체코 민간 음악에도 이미 깊이 스며 있었거든요. 그래서 스메타나가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레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하나의 르네상스 가락이 두 나라의 정체성을 동시에 품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지요.

귀먹은 작곡가의 가장 위대한 5년
블타바는 혼자 떨어진 곡이 아닙니다. 《나의 조국(Má vlast)》이라는 교향시 연작의 두 번째 곡이거든요. 이야기나 풍경을 음으로 그려내는 표제음악이 음악계를 주름잡던 19세기 낭만주의, 그 한복판에서 태어난 작품이지요. 홀스트의 《행성》,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더불어 표제 관현악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놀라운 건, 스메타나가 1874년부터 1879년까지 두 귀가 완전히 멀어버린 상태로 이 여섯 곡 전부를 써냈다는 사실입니다.
연작의 구성을 한 곡씩 짚어볼까요. 첫 곡 ‘비셰흐라드’는 프라하 남쪽 고지대에 앉은 전설의 성을 그립니다. 음유시인 루미르의 하프 선율이 등장하고, 왕국의 영광이 찬란하게 펼쳐지다가 이내 슬픔 속으로 잦아들지요. 이 곡의 주제가 블타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솟아오르기 때문에, 연작을 처음부터 들으면 그 회수의 맛이 한층 진해집니다.
세 번째 ‘샤르카’는 남자들을 유혹한 뒤 몰살시킨 여전사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보헤미아 전설 속 복수의 여신이지요. 극적인 서사가 어찌나 팽팽한지, 듣다 보면 한 편의 무성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거든요. 네 번째 ‘보헤미아의 숲과 들판에서’는 체코 자연을 장대하게 펼친 풍경화입니다. 느리고 명상적으로 시작했다가 폴카로 폭발하는 흐름이 블타바와 빼닮았지요.
다섯째 ‘타보르’와 여섯째 ‘블라니크’는 후스 전쟁의 전사들, 그리고 위기의 순간 산속에서 깨어날 전설의 기사단을 노래합니다. 체코 민족의 수난과 재건을 향한 열망이 빼곡히 새겨진 곡들이지요. (《나의 조국》 여섯 곡 전체의 이야기는 별도의 가이드 글에서 더 깊이 풀어두었습니다.)
여섯 곡 모두 보헤미아의 자연이고 역사고 전설입니다. 그런데 그중 오직 블타바만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의 귀에 가닿았지요. 어째서일까요. 민족의 감정이 너무 구체적으로 박히면, 다른 문화권 청중에게는 좀처럼 닿기 어려운 법입니다. 블타바는 체코 이야기를 하면서도 ‘강’이라는 누구나 아는 보편적 이미지를 앞세웠거든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을 알고, 강물의 흐름이 결국 어딘가를 향해 간다는 것도 알지요. 그 보편성이 이 곡을 국경 밖으로 실어 나른 겁니다.

1882년, 강 위의 궁전에서
1882년 11월 5일, 프라하 조피나 궁전(Žofín Palace). 블타바 강 위 작은 섬에 자리한 이 궁전에서, 마침내 《나의 조국》 여섯 곡 전체가 한 무대에 올랐습니다. 지휘봉을 잡은 사람은 아돌프 체흐(Adolf Čech)였지요.
스메타나는 객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단 한 음도 들을 수 없었지요. 그래도 오케스트라가 블타바 주선율을 풀어낼 때, 객석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목이 꺾이는 기척을, 곡이 끝나고 터져 나온 박수의 진동을 온몸의 살갗으로 받아냈을 겁니다. 소리는 닿지 못해도 떨림은 닿았을 테니까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같은 질문이 자꾸 머릿속에 걸립니다.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듣고 우는 장면이라니. 청각이 떠나간 그 자리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차 있었던 걸까요. 그 답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이 곡은 이후 체코의 비공식 국가나 다름없는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1946년에 출범한 프라하의 봄 국제음악제는 1952년부터 해마다 5월 12일, 스메타나의 기일에 맞춰 반드시 《나의 조국》으로 첫 무대를 엽니다. 그 뒤로 70여 년간 단 한 해도 거른 적이 없지요. 한 작곡가의 곡이 한 나라의 봄을 여는 의식이 된 셈입니다.
그중에서도 1990년의 그 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공산 정권이 무너지고 처음 열린 프라하의 봄 음악제였거든요. 그날 지휘대에 오른 사람은 망명 지휘자 라파엘 쿠벨리크(Rafael Kubelík)였습니다. 그는 1948년 공산당이 권력을 쥐자 체코를 떠나, 무려 42년 동안 고국 땅을 밟지 못했던 인물이지요. 그 쿠벨리크가 다시 프라하 무대에 서서 《나의 조국》 첫 음을 울린 순간, 블타바 주선율이 흘러나오자 객석을 메운 체코인들이 하나둘 눈물을 쏟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침묵 속에서 태어난 곡이, 42년의 이별과 귀환을 고스란히 담아낸 거지요.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블타바는 워낙 유명한 곡이라 녹음이 넘쳐납니다. 그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성격이 뚜렷이 갈리는 세 장만 기준점으로 골라봤습니다. 어디서 시작하든 첫 한 장은 후회가 없을 겁니다.
👑 첫 감상 추천
라파엘 쿠벨리크 · 체코 필하모닉
앞서 이야기한 그 귀환 공연입니다. 기교의 완벽함보다 감정의 진정성으로 듣는 한 장이지요. 블타바를 제대로 처음 만나고 싶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레퍼런스
조지 셀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정밀한 앙상블과 선명한 대위법이 강점입니다. 각 악기가 어떻게 얽히는지 분석적으로 뜯어 듣고 싶은 분께. 다만 감정의 두께를 원한다면 조금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지요.
와일드카드
바츨라프 탈리히 · 체코 필하모닉
체코 필하모닉의 음향 전통을 빚어낸 거장의 역사적 명연입니다. 블타바를 ‘원전의 무게’로 만나고 싶은 분께 권하지요. 다만 1954년 모노 녹음이라, 최신 음질의 선명함을 기대했다면 시대의 한계가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세 장이 제각각 다른 길을 가지만, 한 가지는 어느 연주에서나 똑같습니다. 물요정 대목에서 음량이 뚝 떨어졌다가 성 요한 급류에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폭발하는 그 낙차 말입니다. 이 대비만큼은 어떤 지휘자로 들어도 효과가 변하지 않거든요. 귀가 들리지 않는 작곡가가 설계해 둔, 절대 빗나가지 않는 음향의 함정인 셈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거든요. 도입부 플루트 두 대가 어떻게 엇갈려 적혀 있는지, 마지막 비셰흐라드 주제가 어느 마디에서 겹쳐 들어오는지 직접 짚어보면 또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블타바 (《나의 조국》 중) 악보 보기 (IMSLP)
멈추지 않는 흐름
블타바를 써낸 뒤로도 스메타나의 시간은 야속하게 흘렀습니다. 1884년 초, 그의 정신이 끝내 무너지기 시작했지요. 정신병원에 수용되었고, 같은 해 5월 12일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순 살이었습니다. 두 귀를 잃고도 10년을 더 작곡했던 사람치고는 너무 이른 작별이었지요.
흔히 세계 무대에서는 드보르작이 더 많은 레퍼토리로 연주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연주 횟수가 한 사람의 유산을 결정하지는 않지요. 스메타나가 남긴 건 단순히 악보 한 뭉치가 아니라 하나의 장면이거든요. 소리를 잃은 사람이 강물의 소리를 한 음 한 음 받아 적던, 그 서늘하고도 뜨거운 장면 말입니다.
클래식 입문서는 블타바를 흔히 ‘아름다운 풍경화’라고 소개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그건 절반짜리 설명입니다. 이 곡은 들을 수 없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남긴 소리거든요. 그 역설을 놓치는 순간 블타바의 절반은 영영 모르고 지나치는 거지요.
블타바 강은 오늘도 변함없이 프라하를 가르며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1874년 겨울, 완벽한 침묵 속에서 태어난 그 멜로디 또한 여전히,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지요. 강은 한 번도 그 흐름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됐지만, 그래서 더 오래 우리 곁을 흐를 까닭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몰다우와 블타바는 같은 곡인가요?
블타바 선율이 이스라엘 국가와 비슷하다는 게 사실인가요?
블타바는 몇 분짜리 곡이고, 어떤 구성인가요?
스메타나가 귀가 먹은 상태에서 블타바를 작곡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나의 조국》은 총 몇 곡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참고 자료
- Wikipedia — Vltava (Smetana)
- IMSLP — Má vlast, JB 1:112 (Smetana)
- Wikipedia — Bedřich Smetana
- Wikipedia — Hatikvah (라 만토바나 선율의 갈래)
이어서 듣기 — 보헤미아의 강을 따라
클래식은 곡과 곡이 서로 손을 잡고 있을 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거든요. 블타바의 강물을 다 따라왔다면, 같은 보헤미아의 핏줄이거나 같은 표제음악의 결을 가진 이 곡들로 여정을 이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