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메타나 – 블타바

이스라엘 국가와 뿌리가 같은 멜로디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Bedřich Smetana, 1824–1884)
곡명
블타바 (나의 조국 제2곡)
(Vltava, from Má vlast)
작곡
1874년 11월 20일 – 12월 8일 (18일)
초연
1875년 4월 4일, 프라하
편성
플루트 2(피콜로),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트라이앵글, 심벌즈, 하프, 현5부
연주 시간
약 12–13분

1874년 10월 20일 저녁, 프라하.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세상이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왼쪽 귀가 완전히 멈춘 겁니다. 오른쪽은 이미 보름 전에 잃었고요. 체코 오페라의 왕, 프라하 임시극장의 수석 지휘자, 체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던 남자가 이제 피아노 건반 하나 들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여기서 보통 이야기라면 비극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스메타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Bedřich Smetana (1824–1884) · Vltava (The Moldau), from Má vlast JB 1:112, No. 2 · E단조, 약 13분 (1874)

청각을 잃은 지 정확히 한 달 뒤, 그는 자기 인생 최고의 곡을 쓰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들을 수 없는 강물의 노래를.

스메타나 초상 사진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초상, 1878년경. Public Domain.

양조장 아들의 일기장

스메타나의 아버지 프란티셰크, 직업은 양조장 주인이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군에 군복과 식량을 팔았고, 거기서 꽤 돈을 모았죠. 아들이 피아노에 빠져드는 걸 보면서도 “그건 취미지, 직업이 아니다”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섯 살짜리 아들은 이미 무대 위에 서 있었습니다. 1830년, 리토미슐의 철학 아카데미 콘서트. 꼬마 스메타나가 오베르(Daniel Auber)의 오페라 《포르티치의 벙어리 아가씨》 서곡을 피아노로 편곡해 연주하자, 객석이 들썩였습니다. 여섯 살입니다. 악보를 겨우 읽기 시작할 나이에 오페라 서곡을 편곡했다는 거죠.

소년은 프라하로 올라와 공부하면서 리스트(Franz Liszt)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목격합니다. 충격을 받은 열다섯 살 소년이 일기장에 적은 말이 있습니다.

“작곡에서는 모차르트, 기교에서는 리스트가 되고 싶다.”

겸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반쪽짜리 예언이 되었군요. 기교에서 리스트는 못 됐지만, 체코 음악사에서 모차르트보다 더 큰 이름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스메타나가 자란 리토미슐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당시 체코 땅은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공식 언어는 독일어. 음악계에서 출세하려면 독일어로 말하고, 독일식으로 작곡해야 했습니다. 스메타나도 처음에는 독일어로 편지를 쓰고 독일어 제목으로 곡을 발표했습니다. 체코 음악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 처음에는 체코어보다 독일어가 더 편했던 겁니다.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죠.

바리케이드 위의 작곡가

1848년. 유럽 전역에 혁명의 불길이 번졌습니다. 프라하도 예외가 아니었죠. 합스부르크 제국에 맞서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쌓았고, 스메타나도 거기 서 있었습니다. 총을 쥔 손으로 혁명 행진곡을 쓰기도 했습니다.

혁명은 진압됐습니다. 하지만 스메타나의 머릿속에는 씨앗이 하나 심어졌습니다. 총이 아니라 음악으로 조국을 이야기하겠다는 결심.

그런데 프라하는 녹록지 않았습니다. 음악원을 차렸지만 학생은 모이지 않았고, 네 딸 중 세 명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은 딸 프리데리카는 겨우 네 살이었죠. 그의 《피아노 삼중주 G단조》는 이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태어난 곡입니다.

결국 스메타나는 스웨덴 예테보리로 떠납니다. 체코 음악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 스칸디나비아에서 합창단 지휘와 피아노 교습으로 먹고살게 된 거죠. 5년 동안이나요.

참 야속한 이야기입니다. 조국을 위해 음악을 쓰겠다는 사람이 조국에서 먹고살 길이 없어 떠나야 했다는 게. 그런데 예테보리 시절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리스트의 교향시 방식을 깊이 연구했고, 표제음악의 언어를 자기 것으로 소화한 시기였습니다. 나중에 《나의 조국》을 탄생시킨 기술적 토대가 바로 이 5년에서 나왔습니다.

스메타나의 편지
스메타나가 쓴 자필 편지.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돌아온 사자, 그리고 침묵

1861년, 체코에 정치적 해빙의 기운이 돌았습니다. 스메타나는 곧장 프라하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5년 만에 오페라 두 편을 연달아 터뜨립니다. 1866년 초연된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인》은 성공적이었고, 같은 해 나온 《팔려간 신부》는 그냥 성공이 아니라 폭발이었습니다. 체코어로 된, 체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유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 희극 오페라는 단숨에 국민 오페라의 자리에 올랐거든요.

같은 해 임시극장 수석 지휘자까지 됩니다. 승승장구. 하지만 프라하 음악계의 보수파는 그를 “리스트와 바그너(Richard Wagner)에 물든 자”라고 공격했습니다. 체코 고유의 음악을 만들어야 할 사람이 서양의 진보적 기법에 빠져 있다는 비난이었죠.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체코적인 음악을 쓰겠다는 사람에게 “너는 체코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날아온 거니까요. 이 논쟁이 그를 얼마나 지치게 했는지는, 8년 뒤 건강이 무너지는 속도를 보면 짐작열람 가능합니다.

1874년 여름, 스메타나의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잡음이었고, 곧 끊이지 않는 윙윙거림으로 바뀌었습니다. 개별 음을 구분할 수 없게 됐고, 10월 초에 오른쪽 귀가 완전히 멈췄습니다. 10월 20일, 왼쪽 귀까지.

그는 극장 총감독 안토닌 치제크에게 사직서를 보냅니다. 의사는 “모든 소리로부터 격리하라”고 처방했지만, 소용없었죠. 이미 격리할 소리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귀가 먹은 뒤에도 교향곡을 완성했습니다. 스메타나도 그랬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베토벤은 점진적으로 귀를 잃었고 스메타나는 넉 달 만에 완전히 잃었다는 것. 그리고 스메타나는 귀를 잃자마자 자기 인생 최고의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18일, 하나의 강

1874년 11월 20일부터 12월 8일까지. 단 18일.

블타바(Vltava). 우리에게는 독일식 이름 ‘몰다우’로 더 친숙한 이 곡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체코에서 가장 긴 강, 보헤미아의 숲에서 발원해 프라하를 관통하며 엘베 강으로 흘러가는 431킬로미터의 물줄기. (체코 음악의 또 다른 거장 드보르작(Antonín Dvořák)의 신세계 교향곡과 함께 체코 낭만음악의 두 축을 이룹니다.) E단조, 약 13분. 스메타나 자신이 남긴 프로그램 노트를 보면 이 곡의 여정이 한 편의 여행기처럼 펼쳐집니다.

“두 개의 작은 샘물, 스투데나와 테플라 블타바에서 시작하여 두 줄기가 하나의 물줄기로 합류하고, 숲과 초원을 지나고, 농부의 결혼식이 열리는 풍경을 거치며, 달빛 아래 물요정들이 춤추고, 바위 위에 우뚝 선 성과 궁전과 폐허를 지나, 성 요한 급류에서 소용돌이치다가, 넓게 펼쳐지며 프라하를 향해 흐르고, 비셰흐라드를 지나, 저 멀리 장엄하게 사라진다.”

, 스메타나의 프로그램 노트

귀가 먹은 사람이 쓴 풍경 묘사입니다. 소리를 잃은 사람이 소리로 그린 그림이군요.

귀가 먹은 작곡가가 기억 속 강물 소리를 음표로 복원한 13분. 플루트 두 대의 작은 물줄기에서 시작해 오케스트라 전체의 장엄한 포효로 끝납니다. 스메타나가 직접 남긴 프로그램 노트를 따라가며 들으면 강물 여행을 함께하는 느낌이 납니다.

강물을 따라 — 구간별 감상 포인트

이 곡은 단순히 강물 소리를 흉내 낸 게 아닙니다. 스메타나가 설계한 정밀한 여행 일정표가 있습니다. 구간별로 따라가면 13분이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① 두 개의 샘물 (0:00–1:20)
플루트 두 대가 빠른 아르페지오로 열립니다. 한 줄기는 차갑습니다. 스투데나 블타바. 다른 한 줄기는 따뜻합니다. 테플라 블타바. 두 음형이 번갈아 나오다가 서서히 합쳐지죠. 클라리넷이 끼어들고, 현악기가 물결을 키웁니다. 강이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② 블타바 주선율 (1:20–3:30)
바이올린이 그 유명한 선율을 터뜨립니다. E단조의 넓고 유려한 멜로디. 여기서 두 가지를 주목하십시오. 첫째, 이 선율이 이스라엘 국가와 비슷하게 들린다면 착각이 아닙니다(뒤에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둘째, 이 선율을 스메타나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는 점도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주선율이 흐르는 동안 강은 넓은 평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③ 숲속 사냥 (3:30–4:30)
주선율이 멈추고 호른이 포효합니다. 팡파르 같은 짧은 모티브. 숲 어딘가에서 사냥꾼들이 말을 달리는 장면입니다. 금관악기의 거친 울림이 강물 위로 퍼지죠. 이 장면은 아주 짧지만 강렬합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작곡가가 상상한 숲속의 소리.

④ 농촌 결혼식 (4:30–6:00)
폴카 리듬이 터집니다. 체코 민속 춤인 폴카의 통통 튀는 3박자.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흥겨운 춤곡 선율을 주고받습니다. 강변 어딘가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음악이 점점 활기차다가 강물의 주선율이 멀어지듯 사라집니다. 강은 축제를 뒤로하고 계속 흘러가거든요.

⑤ 달빛 아래 물요정의 원무 (6:00–7:30)
한밤중. 음악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현악기가 투명한 빛을 내고, 플루트와 오보에가 환상적인 선율을 주고받습니다. 슬라브 전설의 물요정 루살카들이 달빛 아래 원형으로 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서정적이면서도 어딘가 비현실적인 이 대목은 스메타나가 청각 대신 상상력으로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들을 수 없기에 오히려 더 자유롭게 상상했을까요.

⑥ 성 요한 급류 (7:30–9:30)
새벽이 밝으면 강물은 다시 힘차게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 성 요한 급류에 부딪힙니다. 현재 체코에는 ‘성 요한 급류’라는 지명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이 곡의 클라이맥스입니다. 팀파니가 포효하고, 금관악기 전체가 울부짖습니다. 바이올린이 소용돌이를 그립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최강음으로 물보라를 흉내 냅니다. 이 30초가 있기 때문에 앞의 15분이 더 의미 있는 겁니다.

⑦ 프라하 통과와 비셰흐라드 (9:30–13:00)
급류를 빠져나온 강물은 드디어 프라하에 도달합니다. 여기서 스메타나는 놀라운 장치를 씁니다. 블타바의 선율이 E장조로 전조되면서, 연작 첫 곡 ‘비셰흐라드’의 주제가 웅장하게 겹쳐 울리는 겁니다. 강물이 체코 왕들의 옛 성 아래를 흐르는 장면. 자연의 시간과 역사의 시간이 하나로 만나는 순간이죠. 그리고 강물은 서서히, 그러나 장엄하게,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스메타나 블타바 전곡 연주 영상.

이스라엘 국가와 체코 강물의 기묘한 인연

곡을 듣다 보면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유명한 멜로디 중 하나가 등장합니다. 듣는 순간 “아, 이 곡!” 하게 되는 그 선율.

이 멜로디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원래 이 선율은 스메타나가 만든 게 아닙니다. 16세기 이탈리아 테너 주세페 첸치(혹은 주세피노 델 비아도)가 부른 ‘라 만토바나’라는 마드리갈에서 온 멜로디입니다. 1600년 처음 악보로 출판된 이 노래는 르네상스 유럽 전역에서 각 나라의 옷을 입고 불렸습니다. 플랑드르에서는 “익 자흐 세실리아 코멘”, 폴란드에서는 “포트 크라코벰”, 루마니아에서는 “카룰 쿠 보이”, 스코틀랜드에서는 “마이 미스트리스 이즈 프리티”. 하나의 선율이 400년에 걸쳐 유럽을 떠돈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가 한 번 더 꼬입니다.

19세기 말, 몰다비아 출신의 유대인 이민자 사무엘 코엔(Samuel Cohen)이 오스만 제국 치하의 팔레스타인에 정착합니다. 그는 루마니아 버전의 ‘라 만토바나’를 가져다가, 시인 나프탈리 헤르츠 임베르(Naftali Herz Imber)의 시 ‘하티크바(희망)’에 붙였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오늘날 이스라엘의 국가입니다.

체코의 국민 선율과 이스라엘의 국가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한 사랑 노래에서요. 음악사에서 이보다 기묘한 우연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스메타나가 ‘라 만토바나’를 의도적으로 인용한 건지는 불확실합니다. 이 선율이 당시 체코 민간 음악에도 이미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에, 스메타나가 의식하지 못한 채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하나의 르네상스 선율이 두 나라의 정체성을 동시에 담게 된 건 사실이죠.

비셰흐라드 성과 블타바 강
프라하의 비셰흐라드 성과 그 아래를 흐르는 블타바 강.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귀먹은 작곡가의 가장 위대한 5년

블타바는 나의 조국(Má vlast)이라는 교향시 연작의 두 번째 곡입니다. 프로그램 음악(표제음악, 즉 이야기나 풍경을 묘사하는 관현악 장르)이 음악계를 주도하던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홀스트의 《행성》,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함께 대표적인 표제 관현악 작품으로 꼽힙니다. 스메타나는 1874년부터 1879년까지 완전히 귀가 먹은 상태로 여섯 곡 전체를 완성했습니다.

연작의 구성은 이렇습니다.

첫 곡 ‘비셰흐라드’는 프라하 남쪽 고지대에 자리한 전설의 성입니다. 전설의 음유시인 루미르의 하프 선율이 등장하고, 왕국의 영광이 찬란하게 펼쳐지다가 슬픔으로 사라집니다. 이 곡의 주제가 나중에 블타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나오기 때문에 연작 전체를 처음부터 들으면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샤르카’는 남자들을 유혹한 뒤 학살한 여전사의 이야기. 보헤미아 전설에 나오는 복수의 여신입니다. 극적인 이야기 구조가 인상적인 곡이죠.

네 번째 ‘보헤미아의 숲과 들판에서’는 체코 자연의 장대한 풍경화. 느리고 명상적인 시작에서 폴카로 폭발하는 구조가 블타바와도 닮아 있습니다.

다섯째 ‘타보르’와 여섯째 ‘블라니크’는 후스 전쟁의 전사들과, 위기의 순간 산속에서 깨어날 전설의 기사단을 그립니다. 체코 민족의 수난과 재건에 대한 열망이 담긴 곡들이죠. (나의 조국 6곡 전체 이야기는 별도 글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여섯 곡 모두 보헤미아의 자연과 역사와 전설입니다. 하지만 그중 블타바만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의 귀에 닿았습니다. 왜일까요. 민족의 감정이 너무 구체적이면 타문화권 청중에게 닿기 어렵습니다. 블타바는 체코 이야기를 하면서도 강이라는 보편적 이미지를 쓴 게 주효했습니다. 누구나 강을 알고, 강의 흐름이 어딘가를 향한다는 것도 알거든요.

나의 조국 초연 포스터
1882년 《나의 조국》 전곡 초연 포스터. Public Domain.

1882년, 강 위의 궁전에서

1882년 11월 5일, 프라하 조피나 궁전(Žofín Palace). 블타바 강 위의 작은 섬에 자리한 이 궁전에서 《나의 조국》 전곡이 처음으로 한 무대에 올랐습니다. 지휘는 아돌프 체흐(Adolf Čech).

스메타나는 객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 음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블타바의 주선율을 연주할 때, 객석 여기저기서 목이 꺾이는 것을, 곡이 끝나고 터져 나오는 박수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꼈을 겁니다.

이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같은 질문이 머릿속에 걸립니다. 들을 수 없는 사람이 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듣고 우는 장면. 청각이 사라진 자리에 대체 무엇이 채워졌던 걸까요.

프라하 조피나 궁전
프라하 조피나 궁전(Žofín Palace). 1882년 《나의 조국》 전곡 초연이 열린 곳. CC BY-SA, Wikimedia Commons.

이 곡은 이후 체코의 비공식 국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1946년부터 매년 5월 12일, 스메타나의 기일에 시작되는 프라하의 봄 국제음악제는 반드시 《나의 조국》으로 문을 엽니다. 80년 가까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요.

1990년에는 역사적인 순간이 있었습니다. 공산 정권 붕괴 직후 첫 프라하의 봄 음악제. 지휘봉을 잡은 건 망명 지휘자 라파엘 쿠벨리크(Rafael Kubelík)였습니다. 그는 1948년 공산당이 정권을 잡자 체코를 떠나 42년 동안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그 쿠벨리크가 다시 프라하에 서서 《나의 조국》 첫 음을 울린 순간. 블타바 주선율이 흘러나오자 객석의 체코인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스메타나가 침묵 속에서 쓴 곡이 42년의 이별과 귀환의 감정을 담아냈습니다.

스메타나 , 블타바(몰다우), 프라하 시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어떤 연주로 들을까 — 추천 레코딩

블타바는 워낙 유명한 곡이라 녹음이 넘쳐납니다. 그중 몇 가지 기준점을 제시합니다.

쿠벨리크 / 체코 필하모닉 (1990): 앞서 언급한 바로 그 역사적인 공연 실황입니다. 음악적 완성도와 역사적 무게가 동시에 담긴 녹음으로, 블타바를 처음 제대로 듣고 싶다면 이 버전을 권합니다. 기술적 완벽함보다 감정의 진정성 면에서 다른 어떤 녹음도 따라올 수 없는 버전이거든요.

카를로스 클라이버 / 바이에른 국립 오케스트라: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블타바는 속도감과 투명함이 돋보입니다. 강물의 흐름이 빠르고 상쾌한 느낌. 전통적인 무거운 해석보다 가볍고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조지 셀 /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1970): 정밀한 앙상블과 선명한 대위법이 특징입니다. 각 악기 파트가 어떻게 얽히는지 분석적으로 듣고 싶다면 셀 버전이 맞습니다.

어떤 버전이든 한 가지는 공통적입니다. 성 요한 급류 직전 물요정 대목에서 음량이 갑자기 잦아드는 순간, 그리고 급류에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폭발하는 순간의 대비. 이 부분은 어떤 연주로 들어도 효과가 똑같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작곡가가 설계한 음향적 함정이거든요.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따라가며 들을 수 있는 영상.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블타바 (나의 조국 중) 악보 보기 (IMSLP)

멈추지 않는 흐름

1884년 초, 스메타나의 정신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병원에 수용되었고, 같은 해 5월 12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순 살이었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안토닌 드보르작이 더 많은 레퍼토리로 연주되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숫자가 유산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스메타나가 남긴 건 곡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이니까요. 소리를 잃은 사람이 강물의 소리를 써 내려가는 장면.

클래식 입문서는 블타바를 흔히 ‘아름다운 풍경화’라고 소개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절반짜리 설명이죠. 이 곡은 들을 수 없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남긴 소리입니다. 그 역설이 없으면 블타바의 절반을 모르는 겁니다.

블타바 강은 오늘도 프라하를 관통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1874년 겨울, 침묵 속에서 태어난 그 멜로디도 여전히 흐르고 있습니다.

🎼 악보 보러 가기IMSLP에서 무료 악보 다운로드

자주 묻는 질문

몰다우와 블타바는 같은 곡인가요?

네, 같은 곡입니다. ‘블타바’는 체코어 원제이고, ‘몰다우(Moldau)’는 독일어 표기입니다. 체코에서는 블타바로, 국제적으로는 몰다우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원제인 블타바를 사용합니다.

블타바 선율이 이스라엘 국가와 비슷하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두 곡 모두 16세기 이탈리아 마드리갈 ‘라 만토바나’에서 유래한 선율을 공유합니다. 하나의 르네상스 선율이 400년에 걸쳐 체코 강물의 노래와 이스라엘 국가로 각각 변형된 겁니다.

블타바는 몇 분짜리 곡이고, 어떤 구성인가요?

약 12–13분 분량의 교향시입니다. 두 개의 샘물 → 강의 합류 및 주선율 → 숲속 사냥 → 농촌 결혼식 → 달빛 아래 물요정 → 성 요한 급류 → 프라하 통과 → 비셰흐라드 앞에서 장엄하게 사라짐 순서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스메타나가 귀가 먹은 상태에서 블타바를 작곡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스메타나는 1874년 10월 양쪽 귀를 모두 잃었고, 블타바는 같은 해 11월 20일부터 12월 8일까지 단 18일 만에 완성했습니다. 즉 완전히 귀가 먹은 상태에서 작곡한 곡입니다. 베토벤이 귀를 잃으며 점진적으로 청각 장애를 겪은 것과 달리, 스메타나는 넉 달 만에 완전한 청각 상실을 경험했습니다.

‘나의 조국’은 총 몇 곡으로 이루어져 있나요?

‘나의 조국’은 총 6개의 독립된 교향시로 이루어진 연작입니다. 1. 비셰흐라드, 2. 블타바, 3. 샤르카, 4. 보헤미아의 숲과 평원에서, 5. 타보르, 6. 블라니크 순으로 구성되어 체코의 자연, 역사, 전설을 노래합니다. 스메타나는 1874년부터 1879년까지 완전히 청각을 잃은 상태에서 6곡 전체를 완성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저작권 안내 · 클래식노트의 모든 글은 무단 전재, 복제, 재배포, 무단 번역을 금지합니다. 짧은 인용은 출처 표기와 원문 링크를 포함한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협업·재사용 문의는 별도로 연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