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 곡명
- 교향곡 10번 e단조 Op.93
- 작곡 기간
- 1953년 7월~10월 (공식 발표 기준)
- 악장
- 4악장
I. Moderato (e단조)
II. Allegro (e단조)
III. Allegretto (C장조)
IV. Andante – Allegro (E장조) - 편성
- 플루트 3(피콜로 겸함), 오보에 3(잉글리시 호른 겸함), 클라리넷 3, 파곳 3(콘트라파곳 겸함),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큰북, 작은북, 심벌즈, 탐탐, 트라이앵글, 탬버린, 우드블록, 실로폰, 현5부
- 초연
- 1953년 12월 17일, 레닌그라드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지휘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 연주 시간
- 약 50분
1953년 3월, 17년 동안 그를 짓누르던 독재자가 죽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그해 여름 서랍에서 교향곡을 꺼냈습니다. 공식 기록으로는 8년 만의 교향곡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50분짜리 음악에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2악장이 스탈린의 초상이라는 논쟁, 제자의 이름을 호른으로 열두 번 부르는 암호, 자기 이름을 네 개의 음표로 바꿔 전곡에 새긴 서명. 이걸 알고 들으면 같은 음악이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스탈린이 죽은 해 여름, 그가 꺼낸 악보
1953년 3월 5일 밤, 이오시프 스탈린이 죽었습니다. 소련 전역에 공식 애도 방송이 울려 퍼졌고, 수많은 관료와 군인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진심인 사람도 있었고, 살아남으려고 우는 척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슬픔이었는지, 17년 동안 숨겨온 안도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는 끝내 입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해 여름의 악보가 말하게 두었습니다.
스탈린은 1936년과 1948년 두 차례에 걸쳐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첫 비난 이후 그는 악보를 서랍에 숨기는 버릇이 생겼고, 밤에 누가 데리러 올까 봐 짐을 미리 싸 두기까지 했습니다. 체포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17년을 산 것이지요. 한동안은 밤마다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 계단참에서 기다렸다고 전해집니다. 끌려가는 모습을 가족이 보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습니다.
1936년의 첫 비난은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스탈린이 직접 관람한 뒤 소련 공식 신문 《프라우다》에 ‘음악 대신 혼돈’이라는 비판 기사가 실렸습니다.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4번을 리허설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스스로 초연을 취소했습니다. 공개적으로 찍힌 처지에 새 교향곡을 내놓을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대신 1937년에 발표한 5번 교향곡은 당시 소련 언론에 그의 이름으로 실린 글에서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조적 응답”이라 소개됐는데, 그 말이 본인의 진심이었는지조차 분명치 않습니다. 웅장한 피날레가 진심 어린 승리인지 강요된 굴복인지도 지금까지 논쟁거리입니다.
1948년의 두 번째 비난은 훨씬 광범위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뿐 아니라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등 소련 주요 작곡가들이 모두 ‘형식주의’라는 죄목으로 비판받았습니다. 이후 쇼스타코비치는 자기 이름으로 교향곡을 발표하는 일을 멈췄습니다. 그가 만든 음악들은 서랍 안에 쌓여만 갔습니다.
그리고 스탈린이 죽은 그해 여름,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을 썼습니다. 공식적으로 8년 만의 교향곡, 독재자가 사라진 직후 서랍에서 꺼낸 작품. 이것이 교향곡 10번 e단조 Op.93입니다.
이 곡이 그저 ‘해방의 기쁨을 담은 음악’이라면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가 필요 없을 겁니다. 문제는 쇼스타코비치가 이 교향곡 안에 여러 개의 비밀을 숨겨놨다는 점입니다. 그중 하나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 중이고, 다른 하나는 작곡가 본인이 편지로 직접 확인해줬습니다.
2악장은 스탈린의 초상인가

교향곡 10번은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악장은 느리고 어둡고 길며, 3악장과 4악장은 암호처럼 복잡합니다. 그런데 2악장만 다릅니다. 4분 남짓, 폭풍처럼 짧고 격렬하게 지나가는 스케르초(Scherzo, 원래 ‘익살’이라는 뜻의 빠른 악장)입니다.
작곡가 사후에 출판된 회고록 《증언》(Testimony, 솔로몬 볼코프 편집, 1979)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말이라며 볼코프가 옮긴 문장입니다. “나는 10번 교향곡에서 스탈린을 묘사했다. 2악장, 곧 스케르초가 스탈린의 음악적 초상이다. 물론 거기엔 다른 요소도 많지만, 그것이 기본이다.”
이 발언이 공개되자 소련 안팎의 음악계가 들썩였습니다. 평생 눈치를 보며 살아온 작곡가가 독재자를 단 4분짜리 음악으로 압축해 새겼다는 이야기였으니까요. 2악장은 오케스트라가 쉼 없이 몰아치는 구조입니다. 싱코페이션(박자의 강세를 어긋나게 배치해 불안감을 주는 리듬)이 빽빽하게 깔리고, 16분음표가 멈추지 않고 달립니다. 어딘가에서 어떤 힘이 강제로 밀어붙이는 느낌이 듭니다. 이걸 ‘스탈린’이라 부르는 순간, 음악이 완전히 다르게 들립니다.
실제로 2악장을 처음 들으면 많은 사람이 비슷한 반응을 보입니다. 불쾌하다, 숨 막힌다, 어떤 폭력성이 느껴진다는 반응입니다. 음악적으로 따지면 쉼 없는 리듬, 높은 음량, 그리고 어디서도 선율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구조 탓입니다. 멜로디가 없는 음악이 불안하게 질주하다가 갑자기 뚝 멈춥니다. 그 급작스러운 끝맺음도 이 악장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음악학자들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전문가 로렐 페이(Laurel Fay)는 작곡 당시나 초연 무렵에 그런 구체적 의도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썼습니다. 리처드 타루스킨(Richard Taruskin)은 《증언》의 내용 자체가 볼코프의 편집이나 윤색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엘리자베스 윌슨(Elizabeth Wilson)은 좀 더 신중하게 정리했습니다. 교향곡 10번이 스탈린 시대를 향한 논평으로 자주 읽히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예술이 늘 그렇듯 외부 사건의 묘사와 내면의 사적 세계가 서로 맞서고 있다는 뜻입니다.
진실은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알 필요조차 없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논쟁 자체가 곡을 읽는 하나의 틀이 됐습니다. 2악장이 시작되면 듣는 사람은 자연스레 ‘이게 스탈린인가’를 떠올립니다. 작곡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음악은 그 상상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만큼 거칩니다. 이 불확실성 자체가 쇼스타코비치 음악이 작동하는 방식과 닮았습니다.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것. 그렇게 아무도 그를 붙잡을 수 없었어요.
자기 이름을 음표로 새기다: DSCH 모티프

스탈린 논쟁보다 훨씬 분명하게 확인된 비밀이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 교향곡 안에 자기 이름을 음표로 숨겨놨다는 사실입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서양 음악에서 음 이름을 적을 때 독일어 표기를 쓰면, 영어의 B는 독일어로 H가 되고, 영어의 B♭(내림 B)는 독일어로 B가 됩니다. 그리고 E♭(내림 E)는 독일어로 Es라고 적습니다. 쇼스타코비치(Schostakowitsch)를 독일식 약자로 풀면 D. Sch.가 되는데, 여기서 S를 Es로, ch를 H로 바꾸면 D–Es–C–H, 곧 레–미♭–도–시의 네 음이 나옵니다.
이것이 ‘DSCH 모티프’입니다. 네 음으로 이루어진 이 동기(같은 음형이 반복되는 짧은 음악 단위)는 교향곡 10번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1악장에서는 은밀하게 복선처럼 깔리고, 3악장에서 처음으로 또렷이 등장하며, 4악장 클라이맥스에서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이 모티프를 함께 폭발시킵니다.
스탈린 치하에서 17년 동안 자신을 지워야 했던 사람이, 독재자가 사라지자마자 음악 역사에 손꼽히는 큰 캔버스에 자기 이름을 서명으로 새긴 셈입니다. 그것도 단 네 개의 음표로 말입니다. 1악장에서 ‘당신에게 내 이름은 무엇입니까?’라는 푸시킨의 시를 음악으로 넌지시 암시한 뒤, 4악장에서 그 이름을 오케스트라 전체로 외치는 구조는 우연이 아닙니다.
DSCH 모티프는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작품에도 반복해 등장합니다. 현악 4중주 8번(1960),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첼로 협주곡 등 여러 작품에서 이 네 음의 조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향곡 10번은 그 서명이 가장 널리 알려진 첫 무대였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모티프를 화가의 낙관처럼 썼습니다. 작품 어딘가에 자기 이름을 새겨, 이것이 국가의 요구로 만든 음악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임을 표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서명이 가장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은 1960년 드레스덴에서 단 사흘 만에 쓴 현악 4중주 8번입니다. 공식적으로는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헌정됐지만, 곡 전체가 DSCH로 시작해 DSCH로 닫히고 그 사이에 자신의 옛 작품들이 줄줄이 인용됩니다. 많은 사람이 이 곡을 작곡가가 자신에게 바친 진혼곡으로 읽습니다. 자기 이름을 음표로 새기는 일이 교향곡 10번에서 처음 힘 있게 드러났다면, 8번 4중주에서는 묘비명이 된 셈입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이 교향곡이었습니다.
처음 DSCH 모티프를 알고 교향곡 10번을 들으면, 특히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숨어 있던 이름이 점점 크게 울리다가, 4악장에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 이름을 소리치는 클라이맥스. 모르고 들으면 그냥 힘찬 오케스트라 음악이고, 알고 들으면 17년을 숨어 지낸 작곡가의 외침처럼 들립니다.
호른이 열두 번 부른 이름: 엘미라 나지로바
3악장에는 또 다른 암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쇼스타코비치 본인이 편지로 확인해준 사실입니다.
3악장이 시작되면 호른이 어떤 멜로디를 반복해서 연주합니다. 이 음들을 프랑스어와 독일어 음명을 섞어 읽으면 E–La–Mi–Re–A가 됩니다. 이 음절을 이어 붙이면 El–mi–ra, 엘미라(Elmira)입니다.
엘미라 나지로바(Elmira Nazirova, 1928~2014)는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쇼스타코비치가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가르친 제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1947년 처음 만난 뒤 평생 가까운 사이로 지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모티프를 직접 언급했고, 호른은 이 주제를 3악장에서 정확히 열두 번 반복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멜로디의 출처입니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1악장에 나오는 ‘원숭이 울음’ 모티프와 음형이 거의 같습니다. 말러는 쇼스타코비치가 평생 깊이 연구한 작곡가였는데, 말러 교향곡 5번이나 말러 교향곡 9번을 먼저 들어본 분이라면 이 연결이 더 선명하게 다가올 겁니다. 쇼스타코비치도 그 유사성을 알았고, 나지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연결을 직접 적었습니다. 그런데 말러의 원곡에서 원숭이 울음은 죽음의 상징입니다. 탐탐(tam-tam, 중국식 징과 비슷한 타악기)이 ‘장례 종소리’처럼 울릴 때 엘미라 모티프가 함께 등장합니다. 이 연결이 의도적인지는 쇼스타코비치가 직접 밝히지 않았지만, 말러를 그토록 파고든 사람이 이 유사성을 모른 채 썼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DSCH와 Elmira. 3악장에서 두 주제는 서로 교대하며 점점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악장이 끝날 때도 두 모티프는 완전히 합쳐지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 남습니다.
이 3악장을 암호 해독의 관점에서 처음부터 들어보면 전혀 다른 경험이 됩니다. 쇼스타코비치라는 이름이 음표로 흘러나오고, 바로 옆에서 Elmira라는 이름이 호른으로 대답합니다. 악보를 보지 않아도 두 선율의 성격이 다르다는 건 귀로 들립니다. DSCH는 날카롭고 짧고 단호하고, Elmira는 부드럽고 길고 물음표처럼 맴돕니다. 두 목소리가 한 악장 안에서 대화하다가 끝맺음 없이 멈춥니다. 쇼스타코비치가 3악장에서 그려내는 장면이 바로 이것입니다.
각 악장이 하는 일
교향곡 10번의 네 악장은 저마다 표정이 전혀 다릅니다. 처음 듣는 분이라면 각 악장이 무엇을 하는지 미리 알고 들을 때 훨씬 선명하게 들리거든요.
1악장 Moderato — 17분짜리 무거운 문
가장 길고, 가장 느리고, 가장 어두운 악장입니다. 연주 시간만 17~18분에 이릅니다. e단조의 무게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고, 오케스트라 전체가 낮은 자리에서 출발해 서서히 쌓여 올라갑니다. 소나타 형식(주제를 제시하고 발전시킨 뒤 다시 되돌아오는 구조)을 느슨하게 따르지만, 어떤 해소도 주지 않아요. 악장이 끝나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 느낌. 바로 거기에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방식이 있습니다.
이 악장에서 귀를 기울일 지점은 현악기들이 서로 밀고 당기며 만드는 긴장입니다. 특히 중반부에서 트롬본과 저음 현이 함께 내리누르는 구간이 있는데, 그 무게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무언가가 짓누르는 느낌입니다. 클라리넷이 높은 음역에서 홀로 노래하는 구간도 있는데, 그 고독이 앞의 두터운 현악 저음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1악장 전체가 해소 없이 끝난다는 걸 알고 들으면, 이 17분이 왜 전혀 지루하지 않은지 알게 됩니다. 문제가 풀리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듣게 되는 구조입니다.
맨 처음을 특히 주의 깊게 들어보세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어둠 속에서 더듬듯 선율을 끌어올리며 악장을 엽니다. 그 위로 클라리넷이 외롭게 첫 주제를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화려한 도입부도, 큰 팡파르도 없습니다.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저음에서 음악이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는 그 첫 몇 분이, 17년을 숨죽여 산 사람의 호흡처럼 들립니다. 이 조심스러운 출발을 기억해두면, 4악장 마지막에 같은 오케스트라가 이름을 터뜨리는 순간이 얼마나 먼 거리를 건너온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2악장 Allegro — 4분짜리 폭풍
전체에서 가장 짧고 가장 강렬한 악장입니다. 4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오케스트라가 총력으로 밀어붙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 번도 쉬지 않습니다. 이 악장이 ‘스탈린의 초상’이라는 주장을 알고 들으면 어떤 존재가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이미지가 떠오르고, 모르고 들어도 무언가 ‘강요하는’ 성격이라는 느낌은 그대로 전해집니다.
3악장 Allegretto — 두 이름의 만남
앞의 두 악장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갑자기 차분해지면서 호른이 Elmira 모티프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 뒤로 DSCH와 Elmira가 번갈아 등장해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되풀이합니다. 중반의 Largo(매우 느리게) 구간에서 음악이 거의 멈추는데, 그 순간의 정적이 오히려 더 무겁게 누릅니다.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 놓아두는 방식은 쇼스타코비치가 즐겨 쓰는 기법입니다.
3악장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건 목관의 역할입니다. 현악과 호른이 대화를 나눌 때 목관은 배경에서 조심스럽게 반응합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폭발하는 2악장을 막 지나온 뒤라, 이 조용한 교환이 더 선명하게 들립니다. 2악장의 폭력성과 3악장의 고요함은 의도된 대비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악장 순서를 어떻게 설계했는지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악장에는 묘한 사적인 온도가 있습니다. 한쪽에는 작곡가 자신의 이름이, 다른 한쪽에는 아끼던 제자의 이름이 음표로 놓여 있습니다. 정치도 검열도 끼어들지 않는, 두 사람만 아는 대화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거대한 역사 한가운데서 가장 작고 개인적인 신호를 슬쩍 끼워 넣는 것. 그것이야말로 쇼스타코비치가 평생 지켜낸 마지막 자유였는지도 모릅니다.
4악장 Andante – Allegro — 이름을 외치다
느린 도입부 이후 Allegro로 전환하면서 DSCH가 다시 강하게 등장합니다. 3악장에서는 암호처럼 숨어 있던 모티프를 여기서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함께 연주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코다에서 조성이 e단조에서 E장조로 바뀝니다. 장조 전환은 보통 해방감이나 밝음을 뜻하는데, 쇼스타코비치는 마지막 순간에도 과하게 기뻐하지 않습니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느낌입니다. 마지막 몇 마디에서 팀파니가 D–Es–C–H를 또박또박 두드릴 때, 이 교향곡 전체가 어디에 도착하는지 비로소 납득이 됩니다.
4악장이 진짜 해방의 외침인지, 아니면 조심스러운 안도인지는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초연을 들은 소련 청중에게는 그 차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또렷했을 것입니다. 아래 영상은 마리스 얀손스가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끈 연주입니다. 위의 스크로바체프스키 실황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같은 악보가 지휘자에 따라 얼마나 다른 표정을 짓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50분을 처음 듣는다면
50분짜리 교향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번에 소화하려고 하면 오히려 길을 잃기 쉽습니다. 이 곡은 입구를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인상이 꽤 달라지거든요. 처음 듣는 분이라면 이런 순서를 권합니다.
먼저 2악장부터 들어보세요. 4분이 채 안 되니 부담이 없고, 이 교향곡이 어떤 폭력성을 품고 있는지 단번에 알게 됩니다. ‘스탈린의 초상’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들으면 그 4분이 더 또렷해집니다. 그다음 3악장으로 넘어가, 호른이 부르는 Elmira와 그에 답하는 DSCH를 찾아보세요. 두 이름이 대화하는 장면이 들리기 시작하면 절반은 들어온 겁니다.
그렇게 짧은 두 악장으로 곡의 언어에 익숙해진 뒤, 마지막으로 1악장의 긴 어둠을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들어봅니다. 17분이 왜 필요한지, 왜 해소를 미루는지 그제야 납득이 되거든요. 그리고 4악장 후반, 오케스트라 전체가 D–Es–C–H를 외치는 순간에 귀를 모아 보세요. 이름 하나가 50분의 여정 끝에 도착하는 그 장면이, 이 교향곡이 말하고 싶었던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DSCH 모티프나 Elmira 주제는 글로만 읽으면 잘 와닿지 않습니다. 악보가 함께 흐르는 영상을 보면 네 음의 서명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눈으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특히 3악장 호른이 Elmira를 부르는 대목, 4악장에서 DSCH가 오케스트라 전체로 번지는 순간을 악보로 확인하면 훨씬 또렷합니다.
원본 총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악보 보기 (IMSLP)
작곡 시점의 미스터리
교향곡 10번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사실 관계가 하나 있습니다. 언제 작곡됐느냐는 문제입니다.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1953년 7월부터 10월 사이에 썼다고 밝혔습니다. 스탈린이 3월에 죽고 넉 달 뒤 작업을 시작해 완성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Tatiana Nikolayeva)는 1951년에 이미 완성돼 있었다고 증언했고, 일부 스케치는 1946년 자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만약 스탈린 생전에 이미 완성돼 있었다면 곡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독재자가 살아 있는 동안 서랍 속에 숨겨둔 채 기다리다가, 사후에 조심스럽게 꺼낸 작품이 됩니다. 그 경우 곡을 쓰는 일 자체가 일종의 저항이 됩니다. 당신이 있는 동안 나는 이걸 서랍에 가둬두겠지만, 언젠가는 꺼내겠다는 뜻과 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초연은 1953년 12월 17일이었습니다. 스탈린이 죽고 아홉 달 뒤입니다.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이끄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이 연주했습니다. 므라빈스키는 쇼스타코비치의 오랜 동료이자 그의 교향곡 여러 편을 초연한 지휘자였습니다. 소련 청중에게 이 초연이 어떻게 들렸을지는 기록에 자세히 남아 있지 않지만, 스탈린의 이름이 아직 모든 공공장소에 붙어 있던 그해 12월의 레닌그라드에서 이 음악이 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상이 자극됩니다.
초연 이후 소련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의 의미를 두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일부는 이 곡이 과거를 비판한 것이냐고 물었고, 다른 일부는 아직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습니다. 그의 방식은 늘 그랬습니다. 음악으로 말하되 말로는 아무것도 확인해주지 않는 방식.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흘에 걸친 논쟁: 비관인가, 새로운 한 걸음인가
초연이 일으킨 동요는 곧 공식 석상으로 옮겨갔습니다. 1954년 봄, 소련 작곡가 동맹이 교향곡 10번을 놓고 사흘에 걸쳐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 토론회가 열렸다는 사실 자체가 시대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몇 해 전이라면 이런 자리에서 작곡가는 그저 비판을 받아들이는 위치였을 텐데, 이제는 작품을 두고 찬반이 오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의견은 갈렸습니다. 한쪽에서는 이 곡이 “어둡고 비관적이며, 고독한 개인의 비극”이라 비판했습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요구하는 밝고 긍정적인 결말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아람 하차투리안이 나서서, 이 작품이 “소비에트 교향악에서 리얼리즘의 높은 원칙을 향한 새로운 한 걸음”이라고 옹호했습니다. 1948년에 함께 형식주의로 몰렸던 동료가 이번에는 변호인으로 나선 것입니다.
정작 쇼스타코비치는 인간의 감정과 격정을 담고 싶었을 뿐이라며, 나머지는 듣는 사람이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이 한마디가 그의 평생 전략을 압축합니다. 의미를 확정해주지 않음으로써, 어떤 해석도 막지 않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방식. 비관이든 승리든, 결정은 늘 청중의 몫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권력과 예술, 그리고 이 음악이 지금도 연주되는 이유
교향곡 10번이 지금도 중요하게 연주되는 이유는 단지 역사적 배경 때문만이 아닙니다.
권력이 예술가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예술가가 그 압박 아래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묻게 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협력하는 척하면서 저항했고, 굴복하는 척하면서 서명을 남겼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음악이 언어보다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음표도 “이것이 스탈린을 뜻한다”고 못 박지 않습니다. 언제든 부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중성은 이 교향곡 안에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악보를 분석하는 사람은 DSCH와 Elmira를 찾아내고, 역사적 맥락을 아는 사람은 2악장을 스탈린의 초상으로 읽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모르는 채로 들어도, 이 음악이 무언가 무겁고 복잡한 것을 품고 있다는 느낌은 그대로 전해집니다. 설명 없이도 전달되는 것. 그게 좋은 음악의 가장 오래가는 힘입니다.
재미있는 건 같은 곡을 동과 서가 다르게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소련에서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틀 안에서 ‘인간 정신의 승리’로 설명됐고, 서방에서는 《증언》이 출판된 1979년 이후 독재에 맞선 비밀 저항의 기록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느 쪽도 완전히 맞다고도, 틀렸다고도 하기 어렵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처음부터 양쪽 해석이 모두 가능하도록 곡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호함은 약점이 아니라 이 음악이 70년을 살아남은 힘이었어요.
지금도 교향곡 10번은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에 정기적으로 오릅니다. 20세기 교향곡 가운데 손꼽히게 자주 연주되는 작품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스탈린 사후 서랍에서 꺼낸 이 악보가 70년이 지나도 콘서트홀에서 계속 울린다는 사실 자체가 이 작품의 위치를 말해줍니다. 예술가가 국가의 요구와 자신의 내면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선택이 작품에 어떻게 새겨지는지를 묻게 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그 문제를 가장 극한의 조건에서 겪은 작곡가였고, 교향곡 10번은 그 경험의 결산이라 할 만합니다.
쇼스타코비치는 197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교향곡은 15번이었고, 그 안에도 여러 암호와 인용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음악가가 10번을 그의 가장 개인적인 교향곡으로 꼽습니다. 국가의 요구도 외부의 기대도 아닌, 자기 이름을 음표로 새기고 싶었던 사람의 작품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 D–Es–C–H는 지금도 3악장 호른에서, 4악장 오케스트라 전체에서 울립니다.
어떤 연주로 들을까
교향곡 10번은 지휘자에 따라 정말 다른 곡처럼 들리는 작품입니다. 같은 악보인데도 1악장의 무게, 2악장의 속도, 4악장 코다의 표정이 제각각입니다.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세 가지를 꼽아봤습니다.

므라빈스키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초연을 맡은 지휘자의 연주입니다. 음질은 오래됐지만, 곡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의 해석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해줍니다. 화려하게 연출하지 않고 음악이 스스로 말하게 두는 쪽이라, 1악장이 다른 지휘자보다 더 무겁고 직선적입니다.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1966, DG). 서방에 이 교향곡을 알린 녹음입니다. 베를린 필의 풍부한 음향으로 더 크고 화려한 10번을 들려줍니다. 소련 작곡가의 음악을 지나치게 서구 취향으로 다듬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음악적 완성도가 높아 처음 접하는 분께 권하기 좋습니다.
얀손스 / 콘세르트헤바우. 비교적 최근의 해석으로, 3악장에서 DSCH와 Elmira 모티프를 매우 선명하게 들려줍니다. 암호 읽기에 관심 있는 분께 특히 잘 맞습니다. 위 본문 영상의 베를린 필 실황과 함께 들어보면 좋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은 정말 스탈린을 묘사한 곡인가요?
DSCH 모티프란 무엇이고, 교향곡 10번 어디에 나오나요?
엘미라 나지로바는 누구이며, 왜 3악장에 이름이 숨겨졌나요?
교향곡 10번은 스탈린 사후에 작곡됐나요, 생전에 이미 시작됐나요?
교향곡 10번에서 가장 귀에 들어오는 부분은 어느 악장인가요?
교향곡 10번은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교향곡과 어떻게 다른가요?
서랍 속에서 꺼낸 다른 이야기들
같은 작곡가의 다른 교향곡, 그리고 권력과 예술의 긴장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곡들을 함께 들어보면 교향곡 10번이 어디에 서 있는지 더 또렷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