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 교향곡 제1번 D장조 거인

장례 행렬에 동요를 집어넣은 이유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
작품명
교향곡 1번 D장조 “거인”
(Symphony No. 1 in D major “Titan”)
작곡
1884–1888
초연
1889년 11월 20일, 부다페스트
조성
D장조
편성
플루트 4(피콜로), 오보에 3(잉글리시 혼), 클라리넷 4(E♭·베이스), 바순 3(콘트라바순), 호른 7, 트럼펫 5, 트롬본 4, 튜바, 팀파니 2, 타악기 다수, 하프, 현5부
악장 구성
4악장 1악장 느리게, 끌듯이 (D장조) , I. Langsam, schleppend
2악장 힘차게 움직이며 (A장조) , II. Kräftig bewegt
3악장 장엄하고 절도 있게 (d단조) , III. Feierlich und gemessen
4악장 폭풍처럼 거세게 (f단조→D장조) , IV. Stürmisch bewegt
연주 시간
약 55분

공연 도중 관객들이 자리를 뜨더군요. 무려 절반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였거든요. 남은 이들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고, 한 비평가는 이튿날 신문에 “정신이 혼란한 자의 작품”이라는 혹평을 남긴 셈입니다. 작곡가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속 토로. “내 곡이 연주되는 동안 청중 사이로 공포의 물결이 퍼져 나가는 게 눈에 보였다.”

1889년 11월 20일 부다페스트의 그날, 참으로 혹독한 실패였더군요. 하지만 137년이 지난 지금 이 곡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교향곡 중 하나가 되었거든요. 바로 말러 교향곡 1번, 별명 ‘거인’이라는 위대한 작품. 초연에서 청중을 내쫓다시피 한 음악이 어떻게 클래식 무대의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1889년의 부다페스트로 시간 여행을 떠나야 할 겁니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모두 그곳에 있는 까닭입니다.

남의 곡을 지휘하며 밤을 새운 청년

때는 1887년 라이프치히. 스물일곱 살의 구스타프 말러는 라이프치히 오페라 극장의 부지휘자였거든요. 수석 지휘자가 아닌, 부지휘자라는 자리. 그의 위에는 아르투어 니키슈(Arthur Nikisch)라는 당대 최고의 지휘자가 버티고 있었으니, 말러는 그가 자리를 비울 때만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

낮에는 다른 사람의 오페라를 지휘하고, 밤이 되면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써 내려가더군요. 그의 악보 위로는 자꾸만 어린 시절이 아른거렸지요. 바로 보헤미아(지금의 체코) 시골 마을 칼리슈트에서 보낸 기억들. 새벽 숲에서 들리던 뻐꾸기 소리, 마을 광장의 투박한 춤,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던 군악대 행진곡 같은 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으로 빚어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가 유독 이질적인 소리들을 한데 엮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훗날 그는 스스로를 ‘세 번의 이방인’이라 표현하더군요. 오스트리아인들 사이에서는 보헤미아인,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 그리고 전 세계인들 사이에서는 유대인이라는 고백이었죠. 이 복잡한 정체성이 그의 교향곡 안에 그대로 녹아든 셈입니다. 고상한 빈 왈츠와 투박한 시골 춤이 나란히 등장하고, 장엄한 장례 행진곡 사이에 난데없이 선술집 음악이 끼어드는 것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말러가 온몸으로 살아낸 삶의 방식이었거든요.

1888년 3월, 마침내 찾아온 완성의 순간. 불과 여섯 주 만에 끝낸 폭풍 같은 작곡이었지요. 하지만 과연 완성이 끝이었을까요? 무명 작곡가의 기이한 교향곡을 무대에 올려줄 오케스트라를 찾는 데 또 1년 반이 걸렸으니까요. 그렇게 1889년 11월 20일, 부다페스트 비가도 콘서트홀에서 드디어 역사적인 초연이 열리게 된 겁니다.

결과는 이미 이야기한 그대로였지요. 그야말로 참담한 실패.

구스타프 말러 초상 1907년
구스타프 말러. 첫 교향곡을 쓸 당시 그는 이름 없는 부지휘자에 불과했지요. 아무도 그를 작곡가로 인정하지 않았죠. 출처: Wikimedia Commons

‘거인’이라는 별명이 붙고, 그리고 스스로 지운 사연

이 곡의 별명 ‘거인(Titan)’은 사실 말러 본인이 직접 붙인 이름이죠. 독일 소설가 장 파울(Jean Paul)의 소설 《거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거든요. 이 소설은 세상과 맞서 싸우며 자기 길을 찾아가는 한 청년의 이야기. 말러는 바로 그 주인공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던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있더군요. 말러는 이 별명을 딱 두 번만 사용하고는 스스로 철회했답니다. 1893년 함부르크와 1894년 바이마르 공연, 그때가 전부였던 것이죠. “내 음악에 문학적 꼬리표를 붙이지 말라”는 게 그의 입장이었고, 소설의 줄거리와 교향곡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까지 못 박았거든요.

말러는 왜 이토록 강하게 반응했던 걸까요? 이는 당시 교향곡계의 흐름과 깊은 관련이 있는 까닭입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작곡가들이 ‘표제 음악’, 즉 구체적인 이야기나 그림을 묘사하는 음악을 한창 유행시키고 있었거든요. 말러는 자신의 교향곡이 그런 식으로 분류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겁니다. 음악은 오직 음악 그 자체로만 들어야 한다는 굳은 신념.

하지만 한번 붙은 별명이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법이죠. 무려 130년이 넘도록 이 곡은 여전히 ‘거인’으로 불리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4악장 끝까지 들어보면, 그 이름이 전혀 과하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장 파울 초상
장 파울(Jean Paul). 말러가 교향곡 제목을 빌려온 바로 그 소설가랍니다. 하지만 정작 말러 본인은 나중에 이 제목을 무척 후회했다는 사실! 출처: Wikimedia Commons

안개 속에서 세상이 깨어나다 — 1악장

교향곡이라면 으레 웅장한 화음으로 시작하리라 기대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이 곡은 사뭇 다른 출발을 보여주더군요. 현악기 전체가 아주 높고 가느다란 ‘라(A)’ 음 하나를 7옥타브에 걸쳐 끝없이 늘어뜨리는 것으로 시작하거든요. 뭔가 시작된 건지 아닌지조차 모를 만큼 희미한 소리.

이른 새벽, 해가 뜨기 직전 안개 자욱한 들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그 위로 뻐꾸기 울음 같은 4도 하행 음형(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뚝 떨어지는 소리)이 흩뿌려지고, 무대 밖 어딘가에서 트럼펫 세 대가 아련하게 군악대 신호를 불어대지요. 네, 무대 ‘밖’에서 연주하는 까닭입니다. 말러가 악보에 “무대 뒤에서 연주할 것”이라고 직접 써넣었거든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효과를 노린 셈이죠.

비슷한 시도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까요?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낭만적’의 현악기 트레몰로 오프닝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말러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셈입니다. 안개 속에서 수많은 소리가 겹치고 충돌하며 그 틈에서 주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이었거든요. 브루크너가 대성당의 첫 주춧돌을 놓는 건축가 같았다면, 말러는 숲속 안개가 걷히는 풍경을 그리는 화가 같았더군요.

이윽고 활기찬 선율 하나가 터져 나오는데, 그 정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말러가 따로 쓴 가곡집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아침 들판을 걸어가며’에서 통째로 가져온 멜로디거든요. 가곡(Lied)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르는 독일 예술가곡인데, 자기 노래를 교향곡에 심어놓은 셈입니다. 아침 들판을 걷는 젊은이의 벅찬 기쁨, 바로 그것이 이 교향곡 1악장의 문을 여는 주제.

하지만 이 기쁨은 마냥 순수하지만은 않아요. 밝고 활기찬 선율 뒤편으로 뭔가 불안한 음형이 그림자처럼 끝까지 따라붙더군요. 청춘의 기쁨과 그 밑바닥에 깔린 불안, 말러는 첫 악장부터 이 두 감정을 동시에 담아낸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말러 교향곡 세계의 위대한 출발점.

혹시 시작이 너무 느리다고 답답하게 느끼셨을까요? 바로 그 느낌 자체가 말러가 의도한 것이거든요. 안개가 걷히기까지의 시간, 세상이 깨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 그 기다림을 견디는 인내심이야말로 이 악장의 핵심인 셈입니다. 잠시 볼륨을 높여 무대 밖에서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처음에는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헷갈릴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

흙먼지 나는 시골 축제 — 2악장

2악장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씩씩하고 투박한 춤곡이 시작되거든요. 렌틀러(Ländler)라 불리는 오스트리아 시골 춤인데, 우아한 빈 왈츠와는 차원이 다른 춤곡이더군요. 흙먼지 이는 마을 광장에서 젊은이들이 어깨동무하고 발을 쿵쿵 구르는, 그야말로 거친 에너지의 향연인 셈입니다.

말러 음악을 처음 듣는다면 이 악장에서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릅니다. ‘이것도 교향곡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드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교향곡이란 응당 품위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일 겁니다. 바로 그 당혹감이야말로 말러가 의도한 진짜 효과.

여기에는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하나 있더군요. 말러는 원래 이 곡에 ‘블루미네(Blumine, 꽃의 악장)’라는 악장을 하나 더 넣었었지요.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트럼펫이 서정적인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아주 부드러운 악장이었거든요. 1884년 다른 작품을 위해 썼던 곡을 재활용했지만, 결국 1896년에 삭제하고 만 겁니다.

잘려나간 블루미네 악보는 그 후 오랫동안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러다 무려 70년이 흐른 1966년에 영국의 음악학자 도널드 미첼(Donald Mitchell)이 극적으로 재발견했더군요. 심지어 다음 해에는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이 직접 지휘하여 부활 초연까지 열렸다는 사실.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서는 이처럼 흥미로운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하거든요.

물론 현재 연주되는 표준 판본에는 블루미네가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궁금하다면 블루미네가 포함된 특별 연주 녹음을 찾아볼 수도 있거든요. 직접 들어보면 말러가 왜 “불필요하다”며 잘라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나치게 달콤하고, 너무나 서정적이며, 홀로 고상한 분위기. 교향곡 전체를 관통하는 투박한 에너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말러 교향곡 1번 2악장 스케르초 악보
2악장 렌틀러 리듬의 악보. 박자의 불균형한 강세가 오스트리아 시골 춤곡의 거친 에너지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출처: IMSLP, Public domain.

동요가 장례 행진곡으로 변하는 순간 — 3악장

이 교향곡에서 가장 기묘하고, 가장 ‘말러다운’ 악장의 등장. 1889년 초연 당시 청중이 가장 당혹스러워했던 부분이 바로 여기거든요. 그만큼 파격적인 악장이었던 셈입니다.

낮고 둔탁한 팀파니 독주가 울리며 장례 행진곡이 시작되더군요. 그런데 선율을 담당하는 악기가 참으로 이상합니다. 바로 콘트라베이스 한 대가 홀로 선율을 연주하는 까닭입니다. 교향곡에서 가장 크고 낮은 소리를 내는 이 악기가 독주를 맡다니, 극히 이례적인 선택이었죠. 그 어둡고 쉰 듯한 소리로 나지막이 노래하는 겁니다.

그 선율을 듣는 순간, 귀에 익숙한 무언가가 뇌리를 스칩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기시감. 그러다 퍼뜩 그 정체를 알아채게 되죠. 바로 ‘프레르 자크(Frère Jacques)’거든요. 한국에서는 제목보다 멜로디가 더 익숙한 프랑스 동요, ‘브루더 마르틴(Bruder Martin)’이란 이름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불리던 그 노래인 셈입니다.

하지만 원래의 밝고 경쾌한 장조는 온데간데없이 어둡고 처연한 단조로 바뀌어 있더군요. 완벽한 장례 행진곡으로의 변신. 아마 이 부분이 교향곡 전체에서 가장 소름 돋는 순간이 아닐까요? 친숙하던 동요가 한순간에 죽음의 노래로 돌변하는, 바로 그 지점인 겁니다.

흥미롭게도 이 단조 선율은 말러의 순수한 창작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오스트리아에는 원래 이 노래를 단조로 부르는 관습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말러는 어린 시절 귀에 익었던 그 버전을 교향곡에 그대로 가져온 까닭입니다. 결국 동요를 의도적으로 비튼 게 아니라, 그가 기억하던 노래가 원래 단조였던 셈이죠.

이 악장은 모리츠 폰 슈빈트라는 19세기 오스트리아 화가의 목판화 한 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바로 ‘사냥꾼의 장례(Des Jägers Leichenbegängnis)’라는 작품이거든요. 죽은 사냥꾼의 관을 숲속 동물들이 메고 가는 기이한 행렬. 그런데 동물들의 표정이 참으로 묘하더군요. 슬퍼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쾌재를 부르는 듯한 이중적인 얼굴이라니. 사냥당하던 입장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을까요?

말러는 이 악장에 ‘사냥꾼의 장례 행진 , 칼로 풍으로’라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여기서 ‘칼로 풍(im Karikaturenstil)’은 E.T.A. 호프만의 풍자적 환상 소설에서 따온 표현이거든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블랙코미디 같은 분위기를 지칭하는 단어인 셈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뀝니다. 엄숙한 장례 행진 한가운데, 느닷없이 집시풍의 선술집 음악이 끼어드는 겁니다. 흥겹고 통속적인 가락이 장송곡과 기괴하게 뒤엉키는 광경. 1889년 초연 당시 청중에게 이보다 더한 충격이 있었을까요? 장례식에 난데없는 주막 음악이라니, 정말 당황스러웠을 테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의 현실도 그렇지 않던가요? 장례식장 바로 옆 건물에서 결혼 피로연이 열리고, 비극과 희극이 한 공간에서 뒤섞이는 것이 바로 삶이거든요. 말러는 바로 그 삶의 모순을 역사상 처음으로, 아무런 꾸밈 없이 교향곡 안에 담아낸 겁니다. 당대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겠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오히려 가장 ‘진짜 삶’처럼 들리는 부분입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 4악장

말러가 이 악장에 붙인 원래 부제는 “지옥에서 천국으로(Dall’Inferno al Paradiso)”였습니다. 단테의 《신곡》을 의식해서 이탈리아어로 썼던 까닭입니다. 그리고 이 부제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지요.

4악장의 첫 음은 그야말로 폭발. 심벌즈가 작렬하고 관악기 전체가 f단조(F minor, 어둡고 날카로운 단조)의 거대한 불협화음을 쏟아내거든요. 3악장의 기묘한 장례 행진이 끝나자마자 이 충격파가 터지니, 듣는 이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 겁니다. 말러의 원래 프로그램 노트에는 “깊이 상처받은 마음의 갑작스러운 분출”이라고 적혀 있었답니다.

이 악장은 절망에서 시작하여 처절한 몸부림을 거쳐 마침내 환희로 치닫는 악장입니다. f단조로 시작된 음악이 D장조(D major)의 찬란한 빛으로 바뀌는 과정이 약 20분에 걸쳐 펼쳐지는데, 그 밀도가 실로 대단하더군요. 앞선 세 악장의 주제들이 회상처럼 스쳐 지나가고, 마침내 완전히 새로운 승리의 선율이 터져 나오는 셈입니다.

이 악장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구성 자체의 솔직함에 있거든요. 말러는 승리가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클라이맥스에 거의 다다랐다 싶으면 갑자기 음악이 무너지고, 다시 처음부터 올라가야만 하는 구성. 이 과정이 두 번, 세 번이나 반복되더군요. 처음 듣는 분이라면 “이제 끝났나?” 싶은 순간에 또 새로운 전투가 시작되니 당혹스러울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말러의 의도였던 셈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그토록 어렵게 찾아온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피날레의 클라이맥스, 이 순간이야말로 이 곡의 전설적인 장면이죠. 호른 연주자 일곱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서 연주합니다. 말러가 악보에 “일어서서 연주할 것(Schalltrichter auf!, 벨을 위로!)”이라고 직접 써넣었거든요. 보통 오케스트라 연주자는 앉아서 연주하는데, 일곱 명이 동시에 일어서서 호른 벨을 하늘로 치켜들면 소리의 물리적 압력이 달라지는 겁니다. 객석을 향해 소리가 직접 날아오게 되는 까닭입니다.

여기에 트럼펫 5대, 트롬본 4대, 튜바까지 총동원됩니다. 클라리넷은 E플랫 클라리넷(일반 클라리넷보다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소형 클라리넷)을 포함해 전부 포르티시모 구간에서 두 배로 늘리라고 말러가 지시했더군요. 심지어 팀파니도 두 명이 여섯 대를 두드리는 겁니다. 이 정도 편성이면 웬만한 콘서트홀의 벽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랍니다.

직접 공연장에서 이 순간을 경험하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가 끝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절망의 바닥에서 시작해 천국까지 내달리는 이 20분. 이것이야말로 스물아홉 살 말러가 세상에 던진 첫 번째 외침이었던 셈입니다.

왜 청중이 도망쳤는가 — 1889년과 지금의 차이

1889년 부다페스트 청중이 왜 그토록 경악하며 달아났는지 이해하려면, 당시 교향곡에 대한 ‘상식’을 먼저 알아야 할 필요.

19세기 말 교향곡이란 베토벤이 확립한 형식을 따르는 게 정설이었거든요. 장엄하고 논리적이며, 감정은 통제된 범위 안에 머물러야 했지요. 브람스가 그 전통을 이어받아 엄격하게 발전시켰고, 청중 역시 그 틀에 완전히 익숙해져 있던 셈입니다.

그런데 말러는 이 모든 상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더군요. 교향곡에 뻐꾸기 소리, 시골 춤, 심지어 어린이 동요를 변주한 장례 행진곡이 등장하고 그 와중에 선술집 음악까지 끼어들었죠. 지극히 개인적이고, 잡다하며, 통제 불능처럼 보였으니 당시 비평가들의 눈에 그저 ‘질서 없는 혼돈’으로 비친 게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흥미롭게도, 오늘날 우리가 이 곡을 처음 들을 때 위화감을 느끼는 지점도 바로 그 대목들. 3악장의 동요 장례곡을 마주했을 때 “이게 뭐지?” 하는 반응이 나오는 건 현대의 청중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만 지금의 우리는 그 위화감을 ‘의도된 파격’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만, 1889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던 까닭입니다.

이런 점에서 말러는 시대를 무려 70년이나 앞서간 셈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그의 음악을 편안하게 느끼는 건, 그사이 팝 음악이 장르 혼합을 일상으로 만들고 영화 음악이 감정의 극단적 낙차를 익숙하게 만들어 주었거든요. 말러는 그 모든 것을 130여 년 전 교향곡 안에서 이미 시도했던 위대한 선구자.

반세기 뒤에 찾아온 부활 — 말러 르네상스

1889년 초연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자, 말러는 이 곡에 계속해서 손을 댈 수밖에 없었거든요. 1893년 함부르크, 1894년 바이마르, 1896년 베를린 공연에 이르기까지 악보를 쉼 없이 수정하더군요. 블루미네 악장을 덜어내고 표제도 삭제했으며, 오케스트라 편성은 오히려 확대하면서 5악장의 교향시를 지금의 4악장 교향곡 형태로 완성시킨 것.

흥미롭게도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 중 유독 1번을 가장 많이 지휘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을까요? 가장 초기에 쓴 작품이자 혹평에 시달렸던 곡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애착을 거두지 않은 겁니다. 아버지가 맏이를 가장 오래 품에 안고 있으려는 마음과도 같았을 셈이죠.

하지만 말러가 살아있는 동안 그의 교향곡들은 합당한 인정을 받지 못했거든요. 1911년, 고작 쉰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 그리고 진정한 변화의 바람은 그로부터 50년이라는 세월이 더 흐른 뒤에야 불어오기 시작했더군요.

미국의 지휘자이자 작곡가, 타고난 쇼맨이었던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라는 인물이 말러에게 그야말로 푹 빠져버린 겁니다. 1960년대, 번스타인은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말러의 교향곡을 열정적으로 알렸고,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교향곡 전곡 녹음까지 마쳤으니까요.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된 ‘말러 르네상스’.

왜 하필 1960년대였을까요? 초연 당시 청중이 외면했던 장르의 혼합, 아이러니, 극단적인 감정의 낙차, 고상함과 저속함의 뒤섞임 같은 요소들이 20세기 후반 사람들의 감수성과 정확히 맞아떨어졌기 까닭입니다. 록 음악이 등장하고 반문화가 꽃을 피우며, 하나의 고정된 미적 기준이 무너져 내리던 시대였거든요. 시대가 마침내 말러를 소환해낸 셈입니다.

말러 자신도 이를 예감했던 듯하더군요.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Meine Zeit wird kommen).”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던 그의 예언.

오늘날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은 베토벤이나 브람스보다도 말러의 교향곡을 더 자주 연주하기도 하는 겁니다. 말러 1번은 그 위대한 여정의 출발점이자, 말러 교향곡 2번 ‘부활’로 이어지는 거대한 교향곡 세계의 첫 문이니까요.

처음 듣는다면 — 악장별 감상 포인트

이 곡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악장별로 주목할 만한 지점들을 짚어보는 시간.

1악장: 처음 몇 분간은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거든요. 현악기의 희미한 고음이 시작되면 볼륨을 높여, 무대 밖에서 울리는 트럼펫 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죠. 처음에는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헷갈리기 마련인데, 그게 바로 정상적인 반응이랍니다.

2악장: 시골 축제의 투박한 춤곡 한 마당. 어느새 발로 박자를 맞추고 있다면 성공인 셈입니다. 여기서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더군요. 오히려 촌스러울수록 말러의 의도에 더 가까워지는 까닭입니다.

3악장: 드디어 이 교향곡의 심장부. 콘트라베이스의 기묘한 독주가 시작되면 온 신경을 집중해 보시길. 어느새 동요 ‘프레르 자크’가 장송곡으로 뒤바뀐 것을 알아채는 순간이 찾아올 겁니다. 그리고 장엄한 장례 행렬 사이로 불쑥 끼어드는 선술집 음악, 그 순간을 놓치지 마시길. 바로 그 기이한 충돌이야말로 말러 음악의 정수거든요.

4악장: 거대한 폭풍의 끝에 마침내 광명이 찾아오는 법. 첫 폭발음에 너무 놀라지는 마시라.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싶으면 허물어지고, 다시 솟구치는 과정이 반복되더군요. 마침내 호른 주자들이 모두 일어서는 순간, 왜 이 곡의 이름이 ‘거인’인지 온몸으로 깨닫게 될 겁니다.

스물아홉 청년 말러는 이 곡으로 세상에 포효했지요. 세상이 그 외침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반세기가 넘게 걸렸다면 믿어지실까요? 지금 처음 이 곡을 듣는 당신은 137년 전 청중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는 셈입니다. 이 음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미 알고 있는 까닭이지요. 4악장 마지막, 호른이 일어서는 그 순간을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137년 전 부다페스트의 청중을 경악게 한 그 소리가, 지금 당신에게는 어떻게 다가올지 정말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추천 음반 — 입문부터 심화까지

말러 교향곡 1번은 녹음이 워낙 많아 고르는 것 자체가 큰일이지요. 그래서 용도에 따라 세 가지를 꼽아 보았답니다.

첫 번째 도전이라면: 레너드 번스타인/뉴욕 필하모닉(1966, 소니). 이 음반은 말러 르네상스의 출발점이 된 역사적인 녹음. 번스타인 특유의 열정이 느껴지는 빠른 템포와 극적인 감정 표현이 일품이거든요. 그 덕에 처음 듣는 사람도 단번에 ‘빠져들기’ 가장 좋은 연주인 셈입니다.

균형 잡힌 해석을 원한다면: 클라우디오 아바도/베를린 필하모닉(1993, 도이치 그라모폰). 번스타인의 뜨거움 대신 차분함을 택했지만, 악보를 꼼꼼하게 읽어내는 섬세함이 돋보이더군요. 처음보다 여러 번 들을수록 그 진가가 드러나는, 그야말로 명반의 조건을 갖춘 연주가 아닐까요?

실황의 에너지를 원한다면: 사이먼 래틀/버밍엄 시립 교향악단(1991, EMI). 세계 정상에 오르기 전, 젊은 래틀의 패기가 고스란히 담긴 연주인데 의외로 열성 팬이 정말 많더군요. 젊은 말러가 품었던 날것의 에너지를 가장 잘 살려낸 녹음이라는 평을 듣는 까닭입니다.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좋아하시나요? 그렇다면 말러 1번 역시 같은 시대(1890년대 초연)에 나온 교향곡이라는 점이 무척 흥미로울 겁니다. 두 작품을 나란히 감상해 보세요. 같은 시대에 교향곡의 길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개척했던 두 거장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보면서 전 악장을 따라가고 싶다면, 아래 악보 동기화 영상을 추천드립니다. 콘트라베이스 독주로 시작하는 3악장, 호른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4악장 피날레 장면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거든요.

악보를 따라가며 전 악장을 감상할 수 있는 영상이랍니다. 3악장에서 콘트라베이스 독주가 등장하는 지점을 직접 확인해볼 수 있더군요.

악보 원본은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답니다. 교향곡 제1번 ‘거인’ D장조 악보 보기 (IMSLP)

더 깊은 감상의 세계로

클래식 음악은 알면 알수록 그 매력이 배가 되거든요. 아래 추천 글들을 통해 지식의 즐거움을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각 작품이 품은 저마다의 이야기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말러 교향곡 1번은 왜 ‘거인’이라고 불리나요?

독일 소설가 장 파울(Jean Paul)의 소설 《거인(Titan)》에서 따온 별명이랍니다. 말러가 1893년 함부르크와 1894년 바이마르 공연에서 직접 이 제목을 사용했거든요. 이후 말러 본인이 철회했고 소설 내용과 교향곡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밝혔지만, 한번 붙은 별명은 130년이 넘도록 그대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3악장에서 어린이 동요 ‘프레르 자크’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말러는 모리츠 폰 슈빈트의 목판화 ‘사냥꾼의 장례’에서 영감을 받아 그로테스크한 장례 행진곡을 구상했더군요. ‘프레르 자크(Frère Jacques)’를 단조로 바꿔 사용한 것은 어린 시절 보헤미아에서 이 노래를 단조로 부르던 관습에서 온 겁니다. 이처럼 친숙한 동요가 죽음의 분위기와 충돌하면서 기묘하고 블랙코미디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까닭입니다.

말러 교향곡 1번의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지휘자와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50~60분 사이. 4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4악장이 약 20분으로 가장 길고 드라마틱하답니다. 번스타인/뉴욕 필(1966)은 약 52분, 아바도/베를린 필(1993)은 약 58분으로 해석 차이가 상당한 걸 보면 정말 그렇지 않았을까요?

4악장에서 호른 주자들이 일어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말러가 악보에 “일어서서 연주할 것(Schalltrichter auf!)”이라고 직접 지시한 까닭입니다. 호른 주자 7명이 동시에 일어서서 벨을 위로 치켜들면 소리가 연주자 몸에 흡수되지 않고 객석을 향해 직접 날아오거든요. 음량과 압박감이 물리적으로 달라지는 거죠. 피날레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말러의 극적인 장치인 셈입니다.

말러 교향곡 1번 초연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1889년 당시 청중은 베토벤·브람스로 대표되는 엄격한 교향곡 형식에 익숙해 있었거든요. 반면 말러의 1번은 뻐꾸기 울음, 시골 춤, 어린이 동요, 선술집 음악 등 ‘저속한’ 소재를 교향곡 안에 뒤섞어 너무 개인적이고 잡다해 보였던 겁니다. 관객 절반이 공연 중간에 자리를 뜨고 비평가들은 ‘혼란한 정신의 작품’이라고 혹평했더군요. 이 곡이 제대로 평가받기까지는 말러 사후 50년이 더 걸렸다는 사실.

말러 교향곡 1번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음반은 무엇인가요?

처음이라면 레너드 번스타인/뉴욕 필하모닉(1966, 소니)이 좋답니다. 말러 르네상스를 연 역사적 녹음으로, 번스타인의 뜨거운 해석이 처음 듣는 분에게 가장 잘 ‘꽂히거든요’. 균형 잡힌 해석을 원하면 클라우디오 아바도/베를린 필하모닉(1993, DG), 실황의 날것 에너지를 원한다면 사이먼 래틀/버밍엄 시립 교향악단(1991, EMI)이 좋은 선택이 될 겁니다.

블루미네 악장이란 무엇인가요?

말러가 교향곡 1번 초기 버전에 포함시켰던 다섯 번째 악장으로, 트럼펫이 서정적인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부드러운 악장. 1884년에 다른 작품을 위해 쓴 음악을 재활용한 것이었는데, 말러는 1896년에 “불필요하다”며 잘라냈더군요. 이 악보는 70년간 실종되었다가 1966년 영국 음악학자 도널드 미첼이 재발견했고, 1967년 벤저민 브리튼이 지휘하여 부활 초연을 한 겁니다.

저작권 안내 · 클래식노트의 모든 글은 무단 전재, 복제, 재배포, 무단 번역을 금지합니다. 짧은 인용은 출처 표기와 원문 링크를 포함한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협업·재사용 문의는 별도로 연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