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 - 곡명
- 교향곡 제5번 c♯단조
- 작곡 기간
- 1901–1902년
- 악장
- 5악장 (3부 구성)
I. Trauermarsch (c♯단조)
II. Stürmisch bewegt (a단조)
III. Scherzo (D장조)
IV. Adagietto — Sehr langsam (F장조)
V. Rondo-Finale (D장조)
1악장. 장송 행진곡 (c♯단조)
2악장. 폭풍처럼 — 극도의 맹렬함으로 (a단조)
3악장. 스케르초 (D장조)
4악장. 아다지에토 — 매우 느리게 (F장조)
5악장. 론도 피날레 (D장조) - 편성
- 플루트 4(피콜로 2), 오보에 3(잉글리시 호른 1), 클라리넷 3(E♭클라리넷 1), 바순 3(콘트라바순 1), 호른 6, 트럼펫 4, 트롬본 3, 튜바 1, 팀파니, 큰북, 심벌즈, 소북, 트라이앵글, 탐탐, 글로켄슈필, 하프, 바이올린 I·II,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 초연
- 1904년 10월 18일, 쾰른 귀르체니히홀
구스타프 말러 (지휘) - 연주 시간
- 약 70–75분
1901년 겨울, 구스타프 말러는 빈 궁정 오페라의 총감독으로 유럽 음악계의 정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 무렵 그는 한 장의 악보를 손수 써서 스물두 살의 알마 쉰들러에게 보냈습니다. 편지 대신 악보를 보낸 것이지요. 하프와 현악기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곡, 나중에 ‘아다지에토’라 불리게 될 바로 그 음악 — 그 짧고 내밀한 선율이 구애의 전부였습니다. 알마는 악보를 받아들고 피아노 앞에 앉아 직접 연주했고, 그 안에 담긴 뜻을 곧바로 읽어냈습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02년 3월 9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아다지에토’는 교향곡 5번의 네 번째 악장입니다. 그런데 이 교향곡을 사랑 고백 하나로 요약하면 절반은 놓치게 됩니다. 5번은 말러의 전 생애가 응축된 작품이거든요. 장례 행진곡으로 시작해 D장조의 폭발적 환희로 끝나는 약 75분의 여정 — 그 안에는 죽음과 삶, 상실과 사랑, 절망과 승리가 모두 녹아 있습니다. ‘사랑의 음악’이라는 통념도, ‘죽음의 음악’이라는 통념도, 이 곡 앞에서는 둘 다 너무 작습니다.
작곡 배경 — 사랑, 죽음, 그리고 창작의 폭발
1901년 말러의 삶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빈 궁정 오페라 총감독직은 영광이었지만 그를 소진(消盡)시키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공연 기획, 가수 관리, 재정 조율, 음악계 정치 — 그 모든 것이 그의 시간을 갉아먹었습니다. 그래서 교향곡 창작은 여름 휴가철에만 겨우 가능했지요. 빈에서의 겨울은 오페라를 위한 시간이었고,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작은 작곡 오두막에서 보내는 여름 몇 달 — 바로 그 몇 달만이 그가 온전히 음악에 몰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1901년 2월에는 심각한 출혈로 생사의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의사들은 치질로 생긴 과다 출혈이라고 진단했는데, 한밤중에 응급 처치를 받을 만큼 위급했습니다. 이 사건은 말러가 죽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됐습니다. 마흔 살의 나이에 — 당시로서는 이미 인생의 후반부였던 —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지요. 그리고 바로 그 직후, 그는 죽음으로 문을 여는 교향곡에 착수했습니다.
바로 그해 가을, 그는 알마 쉰들러를 만났습니다. 알마는 화가이자 작곡가 지망생으로, 빈 지성계에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빠르게 깊어졌고, 말러는 편지와 악보로 그녀에게 구애했습니다. 그리고 1902년 3월에 결혼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첫째 딸 마리아가 태어났습니다.
이 모든 격변이 교향곡 5번의 작곡 기간(1901~1902년)과 정확히 겹칩니다. 죽음을 경험하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 그 인생의 밀도가 악보 위에 그대로 녹아들었습니다.
이 곡이 실제로 태어난 곳은 뵈르터제 호숫가 마이어니히에 있던 여름 작곡 오두막이었습니다. 5번은 말러의 작품 세계에서도 하나의 분기점입니다. 곧이어 쓰일 6번·7번과 함께, 가사도 합창도 없이 오직 오케스트라만으로 이야기하는 중기의 기악 교향곡으로 흔히 한데 묶이거든요. 1번부터 4번까지가 노래와 표제에 기대어 세계를 그렸다면, 5번부터의 말러는 순수한 음(音)의 논리만으로 같은 깊이에 닿으려 했습니다.
앞선 교향곡들(1번·2번 등)이 민요 가사나 표제적 요소를 담았던 것과 달리, 5번부터는 순수 기악(純粹器樂)으로 전환했습니다. 성악도, 표제도, 줄거리도 없습니다. 말러 스스로도 이 전환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가사라는 안내판을 떼어 버리고, 오직 음(音)만으로 죽음과 사랑을 말하겠다고 마음먹은 셈입니다.
그래서 5번에는 ‘부활’이나 ‘거인’ 같은 별명이 없습니다. 듣는 이를 안내할 표제가 없으니, 청중은 줄거리에 기대지 않고 음악 그 자체와 맨몸으로 마주해야 하지요. 처음에는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그 점이 5번을 거듭 들을수록 새롭게 만드는 힘이기도 합니다. 들을 때마다 듣는 이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새로 짓게 되거든요.
악장 구조 — 3부작의 여정
교향곡 5번은 5악장 구성이지만, 말러는 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묶었습니다.
- 제1부 (1·2악장): c♯단조와 a단조 — 죽음과 폭풍. 장례 행진곡으로 시작해 맹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로 이어집니다.
- 제2부 (3악장): D장조 — 스케르초. 전체 교향곡의 중심축이며, 70분 중 가장 긴 단일 악장입니다.
- 제3부 (4·5악장): F장조와 D장조 — 아다지에토와 론도 피날레. 내밀한 사랑의 고백에서 환희의 폭발로 마무리됩니다.
이 구조는 단순히 악장을 묶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어두운 c♯단조에서 출발해 D장조에 이르는 장대한 조성의 여정이기도 하지요. 흥미롭게도 1악장의 조성인 c♯단조와 마지막의 D장조는 반음 차이입니다. 75분에 걸쳐 단 반음을 올라가는 것이지요. 그 반음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거리였던 겁니다.
단조의 어둠에서 장조의 빛으로 나아가는 이 설계는 베토벤 이래 교향곡의 오랜 이상(理想)이었습니다. 흔히 ‘고난을 거쳐 별까지’라 부르는 그 길이지요. 다만 말러의 손에서 그 승리는 마냥 깨끗하지만은 않습니다. D장조의 환희가 폭발하는 순간에도 앞서 지나온 죽음과 폭풍의 그림자가 어딘가 어른거리거든요. 빛에 닿았다고 해서 어둠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 그것이 말러식 결말입니다.
1악장: 장송 행진곡 — 죽음이 먼저 여는 문
교향곡은 독주 트럼펫의 팡파르로 문을 엽니다. 관현악 전체가 아닙니다. 오직 트럼펫 하나입니다. 그것도 예식적인 의례의 호출이 아니라, 차갑고 건조하게 공중으로 던져지는 신호와도 같습니다. 셋잇단음표로 된 이 짧은 동기는 어딘가 군대의 신호 나팔을 닮았는데, 실제로 말러는 어린 시절 병영 도시 이흘라바에서 자라며 군악대의 신호 나팔과 행진곡을 귀에 익히고 자랐습니다. 그 신호가 끝나고 나면 비로소 장송 행진곡이 시작됩니다.
c♯단조의 장송 행진곡은 베토벤이나 쇼팽의 소나타 속 장례 행진곡과는 그 결이 사뭇 다릅니다. 말러의 행진곡에는 공식적인 추모의 격식 대신, 살아 있는 사람의 공포와 체념이 서려 있습니다. 현악기들이 낮게 짚는 무거운 리듬 위에서 금관악기들은 마치 유가족처럼 행진합니다.
행진 사이에 끼어드는 두 차례의 트리오에서는 발걸음이 돌연 무너지며 격렬한 절규가 터져 나옵니다. 무겁게 짓눌린 행진 주제와 달리 이 대비 구간은 한층 격정적이고 서정적이어서, 마치 억눌렀던 울음이 한꺼번에 터지는 듯합니다. 절제된 행진과 통제를 잃은 비명이 번갈아 부딪히는 셈인데, 바로 이 충돌이 1악장의 드라마입니다. 슬픔을 점잖게 다스리는 척하다가도 이내 감정이 둑을 넘는 모습이지요.
이 악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간은 단연 클라이맥스 직전입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압도적인 음량으로 치닫다가 돌연 침묵에 잠깁니다. 그 침묵 다음에 오는 것은 체념도, 위로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행진이 계속될 뿐입니다. 마치 죽음이란 설명 없이 진행되는 법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구조를 하나 더 짚어두겠습니다. 행진곡과 두 차례의 트리오가 번갈아 나오는 이 악장은, 행진곡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 에너지가 조금씩 소진됩니다. 마지막 반복에서 행진곡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습니다. 그저 의례처럼 되풀이될 뿐이지요. 죽음이라는 것이 거대한 충격이 아니라 반복된 일상처럼 찾아온다는 인식이 여기 배어 있습니다. 1901년 응급실에서 밤을 넘긴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악장이었을 겁니다.
2악장: 폭풍 속에서
1악장과 2악장은 하나의 심리적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말러의 지시어는 “Stürmisch bewegt, mit grösster Vehemenz” — “폭풍처럼 움직이며, 극도의 맹렬함으로”입니다. a단조로 시작하는 이 악장은 1악장에서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순간이라 하겠습니다.
현악기들이 쏘아 올리는 격렬한 상승 음형, 금관악기들의 날카로운 외침, 목관악기들의 떠들썩한 대위 선율 — 여기서 말러의 관현악법은 경이로울 정도로 복합적입니다. 수십 개의 성부가 각자의 논리로 움직이면서도 전체는 하나의 감정으로 수렴하는군요.
흥미로운 점은 이 폭풍이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사그라든다는 사실입니다. 분노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에 남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탈진에 가깝지요. 말러는 감정을 정리해 주는 대신, 정리되지 않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려줍니다.
악장 중간에 코랄(chorale) 풍의 금관악기 패시지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D장조의 밝은 빛으로 잠시 폭풍을 가르는 이 주제는, 그러나 곧 다시 a단조의 어둠에 삼켜집니다. 승리가 너무 일찍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요. 기억해 둘 점은, 바로 이 코랄이 75분 뒤 5악장에서 완전히 다른 무게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말러는 폭풍 한가운데에 피날레의 씨앗을 미리 심어 둔 것입니다.
3악장: 스케르초 — 70분의 심장
교향곡 5번에서 가장 길고, 가장 복잡하며, 어쩌면 가장 말러다운 악장이라 하겠습니다. D장조를 중심으로 약 17~18분에 걸쳐 펼쳐지는 이 스케르초는 제2부 전체를 홀로 차지합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숨을 고르는 동안 호른 독주가 홀로 걸어 나오는 장면이 이 악장의 첫인상입니다. 말러는 이 독주 호른을 무대 앞쪽에 따로 세워 거의 협주곡의 독주자처럼 다루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빈 특유의 왈츠 리듬과 렌틀러(Ländler, 오스트리아 민속 무곡)가 교차하며 진행되는 스케르초는 표면적으로는 가볍고 경쾌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깊은 아이러니가 깔려 있지요. 춤곡의 들뜬 표정 뒤에서 무언가가 자꾸 미끄러지고 비틀거리거든요.
이 독주 호른은 단순한 솔로가 아닙니다. 말러는 악보에 ‘오블리가토 호른’이라 적어 이 악기를 사실상 협주곡의 독주자처럼 다루었고, 지휘자에 따라서는 연주자를 오케스트라 앞으로 따로 세우기도 합니다. 거대한 합주 한가운데에서 한 명의 목소리가 또렷이 솟아오르는 이 장면이야말로, 각 악기를 독립된 인격처럼 다루는 말러 관현악법의 축소판이라 하겠습니다.
이 악장이 전체 교향곡의 ‘심장’인 이유는 단순히 그 배치 때문만은 아닙니다. 1부의 어두운 세계와 3부의 밝은 세계를 이어 주는 이 악장이 없었다면, 아다지에토로 넘어가는 순간이 너무 갑작스러웠을 겁니다. 죽음과 사랑 사이에 놓인 거대한 환승역 같은 곳이죠.
17분 넘게 이어지는 동안 이 악장은 한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습니다. 우아한 왈츠가 흐르다가 시골 무곡의 투박한 발놀림으로 바뀌고, 현악기들이 활을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는 피치카토 구간이 끼어드는가 하면, 다시 호른이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무도회장과 시골 마당과 알프스의 산자락이 한 악장 안에 포개진 듯하지요. 표면의 흥겨움 아래로 끊임없이 무언가가 미끄러지는 이 불안한 활기가, 스케르초를 단순한 막간이 아니라 교향곡의 무게중심으로 만들어 줍니다.
참고로 이 악장은 지휘자에 따라 연주 방식이 가장 크게 갈리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왈츠의 매끄러운 흐름을 강조할 것인지, 렌틀러 특유의 투박한 발걸음을 살릴 것인지에 따라 악장 전체의 표정이 달라지더군요.
4악장: 아다지에토 — 알마에게 보낸 악보
F장조, 현악기와 하프만으로 연주되며, 지시어는 “Sehr langsam” — “매우 느리게”입니다. 관악기도, 타악기도 쓰지 않습니다. 80명이 넘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에서 말러는 가장 결정적인 고백의 순간에 현과 하프만 남겨 두었습니다.
‘아다지에토’는 교향곡 5번 중 가장 많이 연주되고, 가장 많이 인용되며, 가장 많이 오해받는 악장이기도 합니다.
하프가 짚는 잔잔한 맥박 위로 현악기들이 한없이 길게 이어지는 선율을 그려 갑니다. 단 하나의 멜로디가 숨을 아끼듯 천천히 차오르다가, 절정에서 한 번 크게 숨을 토해 내고는 다시 고요로 내려앉지요. 화려한 기교도, 요란한 절정도 없습니다. 그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건네는 말을, 말 대신 선율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네덜란드 지휘자 빌럼 멩겔베르흐는 자신이 소장한 악보의 여백에 짧은 시 한 편과 함께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이 아다지에토는 말러가 알마에게 보낸 사랑의 고백이었고, 말이 아닌 음악으로 전한 마음이었으며, 알마는 그 뜻을 알아듣고 그에게 응답했다는 내용이었지요. 멩겔베르흐는 말러와 직접 교류하며 그의 작품을 누구보다 많이 연주한 지휘자였으니, 단순한 풍문으로 넘길 기록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통념 하나를 짚어야겠습니다. 멩겔베르흐가 남긴 메모에는 이 악장이 ‘사랑의 노래’라는 점뿐 아니라, 생각보다 빠른 템포로 흘러야 한다는 단서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말러 본인의 지휘를 들었던 사람들의 증언과 멩겔베르흐 계열의 연주는 7~9분 안팎이었지요.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원래 그런 곡’이라 여기는 12분짜리 장송곡 같은 아다지에토는, 어쩌면 말러가 바라던 속도보다 훨씬 느린 편입니다.
‘아다지에토’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결정적 계기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이었습니다.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비스콘티는 아다지에토를 주제음악으로 썼는데, 노교수 아센바흐가 베니스의 석양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는 장면과 함께 이 음악은 ‘죽음의 음악’으로 대중에게 각인됩니다. 사랑의 고백으로 쓴 음악이 죽음의 음악으로 알려지게 된 셈인데, 두 해석이 모두 틀리지 않다는 점이야말로 이 악장의 깊이를 말해 줍니다.
생각해 보면 사랑의 절정과 죽음 앞의 고요는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둘 다 말을 잃고 숨을 멈추게 하는 순간이니까요. 느린 템포로 연주될수록 이 음악은 사랑보다 애도에 가까워지고, 빠르게 흐를수록 다시 떨리는 고백으로 돌아옵니다. 같은 악보가 연주 속도 하나로 사랑과 죽음 사이를 오간다는 사실 — 어쩌면 그것이 아다지에토의 진짜 비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다지에토는 어떻게 추모의 음악이 되었나
비스콘티의 영화가 아다지에토를 ‘죽음의 음악’으로 굳히기 한 해 전, 또 하나의 결정적 장면이 있었습니다. 1968년 6월, 암살당한 로버트 케네디(RFK)의 장례 미사가 뉴욕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에서 열렸을 때, 레너드 번스타인이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해 연주한 곡이 바로 이 아다지에토였습니다. 미국 전역에 중계된 이 장면 덕분에 아다지에토는 추모와 애도의 상징으로 미국인의 기억에 새겨졌지요.
여기서 자주 빚어지는 혼동 하나를 정리해 두겠습니다. 1963년 존 F. 케네디(JFK)가 암살당했을 때, 번스타인이 추모 방송에서 지휘한 말러 곡은 5번이 아니라 교향곡 2번 ‘부활’이었습니다. 아다지에토와 케네디를 잇는 진짜 끈은 1968년 동생 로버트의 장례였던 것입니다. 비스콘티의 영화(1971)와 RFK 장례(1968)가 불과 몇 해 사이에 겹치면서, 한때 사랑의 밀어였던 이 악장은 20세기 후반 가장 널리 쓰이는 추모곡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5악장: 론도 피날레 — D장조의 귀환
아다지에토의 정적인 세계에서 깨어나듯, 5악장은 호른과 바순이 주고받는 활달한 주제로 시작됩니다. 론도 형식과 푸가 기법을 결합한 이 피날레는 말러의 대위법적 기량이 가장 화려하게 발휘되는 악장이라 하겠습니다.
D장조는 이 교향곡 전체가 마침내 다다른 목적지입니다. c♯단조에서 출발했던 1악장을 기억하신다면, 그 c♯은 D♭과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음입니다. 그러니 반음 위의 D장조는 처음 시작점에서 딱 한 걸음 올라선 자리이지요. 75분 동안 단 반음을 올라가기 위해 말러는 죽음과 폭풍과 춤과 사랑을 모두 지나야 했습니다.
5악장에서는 2악장에서 잠깐 떠올랐던 코랄 주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번에는 폭풍 속 섬광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전체의 확신 어린 목소리로 울려 퍼집니다. 교향곡 전체를 이 코랄이 관통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말러의 설계가 얼마나 정밀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더군요.
이 피날레에는 숨은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앞 악장 아다지에토의 그 애틋한 선율이, 여기서는 한결 밝고 활기찬 표정으로 변형되어 단편적으로 다시 비치거든요. 눈물 어린 사랑의 노래가 환한 웃음으로 바뀌는 듯합니다. 같은 선율이 정반대의 감정으로 되돌아오는 이 장면은, 말러가 슬픔과 기쁨을 한 뿌리에서 길어 올렸음을 보여 줍니다. 켜켜이 쌓이는 푸가의 짜임새에서는 바흐를 향한 경의마저 어렴풋이 비치는군요.
론도의 중심 주제는 반복될수록 더 많은 악기를 끌어모으고, 푸가적 진행이 켜켜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오케스트라 전체가 하나로 합쳐지는 클라이맥스에 이릅니다. 2악장에서 너무 일찍 찾아왔다가 어둠에 삼켜졌던 그 코랄이, 여기서는 마침내 온전한 빛으로 돌아와 금관 전체로 승리를 외치지요. 그리고 곡은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환한 D장조의 마침표를 향해 내달립니다. 죽음에서 시작해 삶으로 끝나는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페이지인 셈입니다.
왜 이 교향곡이 특별한가
말러 교향곡 5번은 낭만주의와 현대 음악 사이의 경계선 위에 서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19세기의 유산이 가득합니다. 장송 행진곡, 코랄, 푸가, 론도 — 모두 바흐 이후 수백 년간 쓰여 온 형식들이지요. 현악기와 하프만으로 이루어진 아다지에토는 낭만주의 실내악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교향곡이 쓰는 언어는 당시 기준으로 무척 급진적이었습니다. 조성의 중심이 흔들리고, 여러 조성이 동시에 충돌하며, 단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복수의 감정이 같은 공간에서 공존합니다. 알반 베르크와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말러를 깊이 흠모하며 자신들의 새로운 음악을 빚어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5번의 충돌하는 조성과 켜켜이 쌓인 대위법은, 곧이어 등장할 무조(無調) 음악으로 향하는 다리였던 셈입니다.
생전의 말러는 작곡가보다 지휘자로 훨씬 유명했고, 그의 교향곡들은 너무 길고 난해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내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그가 말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로 그 시대는 사후 반세기가 지나 번스타인을 비롯한 지휘자들의 손에서 활짝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한가운데에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른 곡이 바로 5번이었지요.
또한 이 교향곡은 말러가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방식의 혁신을 잘 보여줍니다. 1악장의 독주 트럼펫, 3악장의 독주 호른, 4악장의 현악과 하프 편성처럼, 말러의 오케스트라에서 각 악기는 거대한 군중 속의 한 명이 아니라 저마다 독립된 목소리를 갖습니다.
말러 이전까지 교향곡은 대체로 단일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갔습니다. 기쁨이면 기쁨, 슬픔이면 슬픔. 하지만 말러의 교향곡 5번에서는 단 하나의 악장 안에서도 상반된 감정이 충돌하고 공존합니다. 3악장 스케르초가 대표적이지요. 경쾌한 왈츠와 무거운 렌틀러가 한 악장 안에서 번갈아 나타나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이기지 못한 채로 끝납니다. 인간의 감정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러는 말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상충하는 것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나란히 존재하는 것 — 그것이 삶이니까요.
교향곡 5번 이후 말러는 6·7·8·9번과 미완성 10번을 더 썼습니다. 그 여정을 되돌아보면 5번은 분명한 전환점입니다. 죽음과 사랑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던 그 힘이, 이후의 교향곡들에서는 점점 무거운 쪽으로 기울었거든요. 곧이어 쓴 6번 ‘비극적’의 가차 없는 결말을 떠올려 보면, 5번이 끝내 붙잡은 D장조의 환희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새삼 와닿습니다. 그렇기에 5번의 마지막 페이지가 말러의 교향곡 전체에서 가장 눈부신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되는 것이겠지요.
끊임없이 고쳐 쓴 교향곡 — 초연과 개정의 역사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말러 교향곡 중 하나지만, 5번의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904년 10월 18일 쾰른 귀르체니히홀에서 말러 자신의 지휘로 초연됐을 때, 청중과 비평가의 반응은 호평 일색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너무 길고 복잡하며, 1악장의 장송곡에서 5악장의 환희에 이르는 감정의 낙차가 당시 귀에는 종잡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정작 가장 만족하지 못한 사람은 말러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이 곡의 관현악법, 특히 악기 사이의 균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죽기 직전까지 악보를 손봤습니다. “나는 이 교향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는 취지의 말을 남길 정도였지요. 워낙 많은 성부를 동시에 울리다 보니, 어떤 선율을 살리고 어떤 소리를 눌러야 할지 끝없이 다시 조정해야 했던 것입니다.
특히 그를 괴롭힌 것은 1악장과 5악장의 금관, 그리고 빽빽한 대위 성부들이 서로의 소리를 잡아먹는 문제였습니다. 어떤 선율을 전면에 내세우고 어떤 소리를 뒤로 물릴지, 말러는 연주를 거듭할 때마다 다시 저울질했습니다. 작곡가가 직접 지휘대에 서서 자기 악보를 실험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끝없는 다듬기였지요.
이 거듭된 수정 탓에 5번의 악보는 여러 판본으로 남았고, 오늘날 연주되는 표준은 국제 구스타프 말러 협회가 정리한 비평판입니다. 한 작곡가가 완성한 뒤에도 손에서 놓지 못한 작품이라는 점이 오히려 이 곡의 깊이를 말해 줍니다. 죽음과 사랑을 함께 담아낸 그릇이었으니, 쉽게 완성됐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오늘 우리가 듣는 5번의 투명하고도 강렬한 음향은, 작곡가가 마지막 순간까지 귀를 곤두세운 그 집요함의 결실인 셈입니다.
한국 무대 위의 말러 5번
말러 교향곡 5번은 한국 청중에게도 더 이상 낯선 곡이 아닙니다. 거대한 편성과 75분이라는 길이 탓에 한때는 손꼽히는 악단만 무대에 올리던 작품이었지만, 이제는 국내 주요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5번은 오케스트라에게 만만치 않은 시험대입니다. 1악장 첫머리를 홀로 짊어지는 트럼펫, 3악장에서 협주자처럼 노래하는 독주 호른, 그리고 75분 내내 지치지 않아야 하는 금관의 체력까지 —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량이 고스란히 드러나거든요. 그런 곡을 국내 악단이 정면으로 끌어안는다는 건, 그만큼 한국 교향악의 저변이 두터워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위에 소개한 정명훈과 KBS교향악단의 2026년 3월 실황이 좋은 예입니다. 1악장 트럼펫의 첫 신호부터 5악장의 환희까지, 한국 오케스트라가 이 거대한 곡을 어떻게 빚어내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갈 수 있는 영상이지요. 말러의 음악이 빈이나 베를린만의 것이 아니라 서울의 무대에서도 같은 무게로 울린다는 사실을, 이런 실황 한 편이 잘 보여 줍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음반으로만 만나던 곡을, 이제는 우리 연주자들의 손으로 객석에서 직접 듣게 된 셈입니다.
추천 음반
교향곡 5번은 녹음이 매우 풍부한 작품입니다. 같은 악보를 두고도 지휘자마다 전혀 다른 표정을 끌어내는 곡이라, 음반을 고르는 일 자체가 하나의 감상이 되지요. 서로 다른 문을 여는 네 가지 해석을 소개합니다.
- 레너드 번스타인 / 빈 필하모닉 (1987, DG) — 극도로 느린 아다지에토, 충동적인 파동이 살아 있는 1악장. 정확함보다는 격정에 가까운 해석입니다. 처음 말러를 만나는 분께 충격을 주는 연주이기도 하지요.
- 클라우디오 아바도 / 베를린 필하모닉 (1993, DG) — 각 성부가 선명하게 들리고 구조가 잘 드러납니다. 음악의 설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좋은 출발점입니다.
- 존 바르비롤리 /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69, EMI) — 낭만주의적 따뜻함이 가득합니다. 1·2악장의 진한 감정과 아다지에토의 포근한 질감은 이 음반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 사이먼 래틀 / 베를린 필하모닉 (2002, EMI) — 베를린 필 취임 첫해의 화제를 모은 녹음입니다. 3악장 스케르초의 에너지와 5악장 피날레의 대위법적 층위가 더없이 선명하게 들립니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지금, 교향곡 5번은 가장 자주 연주되는 말러 교향곡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초연 당시의 당혹스러운 침묵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군요.
이렇게 들어보세요
처음부터 75분을 통째로 듣는 일이 부담스럽다면,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문 하나로 들어가 차차 방을 넓혀 가면 되거든요. 다음 순서를 권합니다.
- 첫 만남 — 4악장 아다지에토부터: 10분 안팎의 이 악장 하나만으로도 5번의 정서적 핵심에 닿을 수 있습니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떠올리며 들어도 좋습니다.
- 두 번째 — 1악장 장송 행진곡: 첫 트럼펫 신호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 한 음에서 75분 전체가 시작됩니다.
- 세 번째 — 처음부터 끝까지: 위 정명훈/KBS 실황이나 아바도 음반으로 전곡을 통과해 보세요. c♯단조의 어둠이 D장조의 빛으로 건너가는 그 반음의 여정을, 한 번은 끝까지 따라가 볼 가치가 있습니다. 가능하면 악장 사이에 멈추지 말고 75분을 한 호흡으로 들어 보시길 권합니다. 죽음으로 문을 열어 환희로 닫히는 이 곡은, 끊지 않고 통째로 지나갈 때 비로소 그 설계가 온전히 드러나거든요.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는 IMSLP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교향곡 5번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유명해진 이유는?
두 가지 계기가 큽니다. 하나는 1971년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주제음악으로 쓰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68년 로버트 케네디(RFK)의 장례 미사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 악장을 지휘한 일입니다. 두 사건이 몇 해 사이에 겹치면서 추모곡의 상징이 되었지요.
말러 교향곡 5번은 알마에 대한 사랑 고백이라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적어도 4악장 아다지에토에 관해서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빌럼 멩겔베르흐가 자신의 악보 여백에 남긴 기록 — 말러가 알마에게 악보로 사랑을 고백했고 알마가 그 뜻을 알아들어 응답했다는 내용 — 은 말러와 직접 교류한 사람의 증언이거든요. 다만 곡 전체를 사랑 고백으로 좁혀 보면 죽음과 환희까지 아우르는 5번의 폭을 놓치게 됩니다.
말러 교향곡 5번 전체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지휘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70분에서 75분 사이입니다. 번스타인처럼 느리게 가는 지휘자는 80분 가까이 걸리기도 하고, 아바도나 래틀처럼 흐름을 살리는 지휘자는 68~70분 안에 마치기도 하지요.
아다지에토는 원래 느린 곡인가요, 빠른 곡인가요?
오늘날에는 12분에 가까운 느린 연주가 익숙하지만, 말러와 직접 교류한 멩겔베르흐 계열의 연주는 7~9분 안팎이었습니다. 본래 의도는 지금 우리가 듣는 것보다 더 빠르고 흐르는 사랑의 노래에 가까웠다는 견해가 유력합니다.
말러 교향곡 5번 추천 음반은?
처음 접한다면 레너드 번스타인 / 빈 필하모닉 (1987, DG). 음악의 구조를 파악하고 싶다면 클라우디오 아바도 / 베를린 필하모닉 (1993, DG). 낭만적 해석을 원한다면 존 바르비롤리 /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69, EMI). 현대적이고 선명한 소리를 원한다면 사이먼 래틀 / 베를린 필하모닉 (2002, EMI)을 권합니다.
말러 교향곡 5번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나요?
5악장이지만 말러가 직접 세 부분으로 묶었습니다. 부활 교향곡(2번)과 달리 성악을 배제한 순수 기악 작품입니다. 제1부는 1악장(장송 행진곡, c♯단조)과 2악장(폭풍처럼, a단조), 제2부는 3악장 스케르초(D장조), 제3부는 4악장 아다지에토(F장조)와 5악장 론도 피날레(D장조)로, 내밀한 사랑의 고백에서 빛나는 환희로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