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 〈투란도트〉 ‘네순 도르마’ — 목숨을 건 밤의 노래

미완의 오페라와 월드컵이 만든 아리아

축구장 스피커를 타고 흐르던 그 웅장한 멜로디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테너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마지막 “빈체로(이기리라)!”를 시원하게 뽑아낼 때면, 평생 오페라 극장 문턱도 넘어본 적 없는 사람조차 괜스레 가슴이 벅차오르곤 하죠. 승리의 찬가, 사랑의 고백, 혹은 가슴 뭉클한 응원가. 그동안 우리가 이 곡에 붙여온 화려한 이름들입니다.

하지만 막상 무대 위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남자는, 당장 내일 아침 자기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내기 한복판에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제목인 ‘네순 도르마’ 역시 달콤한 사랑 고백이 아니라, 도시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서슬 퍼런 엄명입니다. 게다가 이 명곡을 품은 오페라 〈투란도트〉는 정작 작곡가 본인이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미완성작이기도 하죠. 우리가 굳게 믿어온 ‘승리의 아리아’는, 알고 보면 목숨을 판돈으로 건 도박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밤의 노래인 셈입니다.

말년의 자코모 푸치니 초상 사진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의 푸치니. 목에 종양을 안고도 그는 마지막 오페라의 결말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
곡명
오페라 〈투란도트〉 중 ‘네순 도르마’
(Turandot — Nessun dorma)
작곡 기간
1920 ~ 1924 (미완성, 프랑코 알파노가 결말 완성)
대본
주세페 아다미, 레나토 시모니
위치
3막 · 칼라프(정체를 숨긴 왕자)의 아리아
초연
1926년 4월 25일, 밀라노 라 스칼라
지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연주 시간
약 3분

이 곡은 — 오페라 〈투란도트〉 3막에서, 목숨을 건 수수께끼 승부 뒤에 주인공 칼라프가 새벽의 승리를 확신하며 부르는 테너 아리아입니다.

딱 하나만 듣는다면 — 마지막 “빈체로(이기리라)”에서 목소리가 한 음 위로 솟구쳐 오래 버티는 대목. 이 한순간이 곡의 전율을 가장 선명하게 남깁니다.

먼저 들어볼 음반 — 루치아노 파바로티 · 주빈 메타 지휘 · 데카(Decca, 1972).

죽음 앞에 멈춰 선 오선지

1924년 가을, 푸치니는 심상치 않은 목 통증을 느꼈습니다. 가벼운 인후염이길 바랐으나 그에게 쥐어진 진단명은 후두암이었습니다. 이미 예순다섯을 넘긴 그는 벨기에 브뤼셀의 한 병원으로 향해, 당시로서는 꽤 실험적이었던 방사선 치료를 받기로 합니다. 목에 바늘 모양의 라듐 침을 꽂아야 하는 고통스러운 치료였습니다.

치료 자체는 일단 끝났지만, 며칠 뒤 그의 심장이 끝내 버티지 못했습니다. 1924년 11월 29일, 푸치니는 브뤼셀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병상 곁에는 그가 몇 해째 붙들고 있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악보 뭉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서른여섯 쪽 분량의 스케치 위에는 결말을 향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음악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푸치니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장면은 류(Liù)의 죽음이었습니다. 칼라프를 연모하던 여종 류가 왕자의 이름을 지키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대목입니다. 푸치니는 이 슬픈 희생을 악보로 옮긴 뒤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다만 ‘네순 도르마’는 류의 죽음보다 조금 앞서 등장하는 곡이라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이 아리아는, 미완으로 남은 결말부보다 먼저 작곡가의 손을 떠난 음악이었습니다.

텅 비어버린 결말은 결국 다른 이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후배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가 푸치니의 스케치를 바탕 삼아 이중창과 마지막 장면을 이어 붙였죠. 첫 원고가 알파노 본인의 색깔을 너무 강하게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자, 그는 원작자의 스케치에 한층 더 바짝 엎드린 축약본을 다시 써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오페라 극장에서 듣는 〈투란도트〉의 마지막 몇 분은, 엄밀히 따지면 푸치니 혼자 쓴 음악이 아닌 셈입니다.

류의 죽음, 오선지 밖의 진짜 비극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푸치니가 마지막으로 마침표를 찍은 음악이 하필 여종 류의 자살 장면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넘기기엔, 그 죽음의 모양새가 그의 실제 삶에 깊게 패인 상처와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1909년, 푸치니의 저택에는 도리아 만프레디라는 젊은 하녀가 일하고 있었습니다. 푸치니의 아내 엘비라는 남편과 도리아의 관계를 불륜으로 의심했고, 이를 동네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이미 여성 편력으로 숱하게 입길에 오르내렸던 푸치니였기에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습니다. 쏟아지는 손가락질과 수치를 견디지 못한 이십 대 초반의 도리아는, 결국 독을 삼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하지만 이어진 부검 결과가 마을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도리아가 푸치니와 불륜 관계였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고, 무성했던 소문은 끔찍한 거짓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도리아의 유족은 엘비라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푸치니는 합의금을 물어주며 서둘러 사건을 덮어야 했습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젊은 여성이 억울한 누명으로 생을 마감한 이 사건은, 평생 그의 가슴 한구석에 무거운 돌덩이로 남았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남짓 흘러 그가 창조해 낸 인물이 바로 류입니다. 칼라프를 남몰래 연모하며, 그의 이름을 지키고자 끔찍한 고문 앞에서도 끝내 입을 다문 채 스스로 칼을 들어 목숨을 끊는 여종이죠. 많은 이들은 류의 이 희생을, 푸치니가 도리아에게 바치는 뒤늦은 참회록으로 읽곤 합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푸치니가 하필 류의 죽음 앞에서 악보를 멈춘 것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마음속 깊은 죄책감을 음악으로 다시 마주해야 했던 그 자리에서, 그는 더 이상 앞으로 펜을 밀고 나갈 힘을 잃었는지도 모릅니다.

1926년 리코르디사가 제작한 오페라 투란도트 포스터
출판사 리코르디가 만든 초기 〈투란도트〉 포스터. 얼음처럼 차가운 공주가 이 잔혹동화의 중심입니다.

피비린내 나는 잔혹동화, 투란도트

‘네순 도르마’가 대체 왜 그런 살벌한 긴장감 속에서 터져 나오는지 이해하려면, 일단 이 오페라의 줄거리부터 들여다봐야 합니다. 무대는 옛날 옛적의 베이징. 투란도트는 이 제국의 공주로, 눈이 부시게 아름답지만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얼음장 같은 인물입니다.

이 공주님에게는 아주 끔찍한 룰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에게 청혼하려는 남자는 세 개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데, 단 하나라도 삐끗하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목통이 날아간다는 거죠. 여태껏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민 왕자들은 모조리 실패했고, 하나같이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오페라의 막이 오를 때도 운 없는 페르시아 왕자 한 명이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거든요. 달콤한 로맨스라기보다는, 차라리 살벌한 공개 처형이 무한 반복되는 잔혹한 의식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처형식을 구경하던 군중 속에 한 청년이 섞여 있습니다. 이름도 신분도 꽁꽁 숨긴 이방인 왕자, 칼라프입니다. 그는 망나니의 칼날 대신 공주의 차가운 얼굴을 한 번 흘끔 보고는 그만 제정신을 놓고 맙니다. 늙은 아버지 티무르와 곁을 지키던 류가 “제발 목숨만은 버리지 말라”며 바닥을 뒹굴고 매달리는데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기어이 궁전 앞의 징을 세 번 꽝꽝 쳐버리죠. 수수께끼를 풀겠다는 신호이자, 사실상 내 목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미친 선언이나 다름없습니다.

수수께끼가 벌어지는 장면은 이 오페라를 통틀어 가장 숨 막히게 팽팽한 대목입니다. 공주가 높은 단상 위에서 오만하게 첫 번째 문제를 던집니다. “밤마다 태어나 새벽이면 죽는 것이 무엇이냐.” 칼라프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침착하게 받아칩니다. “희망.” 정답입니다. 여유롭던 공주의 얼굴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곧바로 두 번째 문제가 날아옵니다. “불꽃처럼 붉게 타오르지만 불은 아니고, 뜨겁게 끓어오르지만 열은 아닌 것.” 이번엔 칼라프의 이마에도 삐질 진땀이 맺힙니다. 하지만 이내 공주의 차가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하죠. “피.” 또 정답입니다. 숨죽이고 있던 광장의 백성들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대망의 마지막 문제는 다름 아닌 공주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너에게 불을 붙이지만, 네 불길에 오히려 더 차갑게 얼어붙는 얼음은 무엇이냐.” 칼라프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단 한 단어였습니다. “투란도트.” 세 번째 정답마저 꿰뚫은 겁니다. 룰대로라면 공주는 군말 없이 이 불도저 같은 남자와 백년가약을 맺어야 하죠. 하지만 투란도트가 누굽니까. 생면부지의 남자 손에 자기 운명이 통째로 넘어가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말 위인입니다. 승부는 명백히 칼라프의 판정승으로 끝났지만, 이긴 쪽도 진 쪽도 도무지 웃을 수 없는 아주 기막힌 교착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투란도트 공주를 그린 1926년 라 스칼라 초연 포스터
레오폴도 메틀리코비츠가 그린 1926년 라 스칼라 초연 포스터. 리코르디가 초연에 맞춰 내놓은 공식 포스터입니다.

대륙의 멜로디를 품은 얼음 공주의 테마곡

푸치니는 평생 중국 땅을 밟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무대 위에 올려놓은 ‘베이징’은 어디까지나 1920년대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환상 속 동양에 가깝죠. 매캐한 향과 요란한 징소리, 그리고 붉은 등불이 일렁이는 이미지들로 얼기설기 짜맞춘 무대였습니다. 지금 우리의 귀로 듣기에는 오리엔탈리즘의 짙은 향기가 훅 끼쳐오는 대목도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얄팍한 상상 속 중국 한복판에, 놀랍게도 진짜 중국 민요 선율이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莫莉花(모리화)’, 우리말로 ‘재스민 꽃’이라 불리는 강남 지방의 노래입니다. 푸치니는 절친한 파시니 남작이 중국에서 챙겨 온 오르골 덕분에 이 선율을 처음 만났습니다. 중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친구의 조그만 음악 상자 속 멜로디가, 거대한 오페라 무대를 지배하는 공주의 시그니처 사운드로 둔갑한 셈입니다.

푸치니는 이토록 야들야들한 꽃 노래를 투란도트 공주의 메인 테마로 점찍었습니다. 1막에서는 아이들의 맑은 합창이 이 가락을 부르며, 아직 그림자도 보이지 않은 공주의 서늘한 존재감을 무대 가득 흩뿌립니다. 이후에도 투란도트의 서슬 퍼런 기운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마다 어김없이 이 재스민 선율이 스쳐 지나가죠. 숱한 남자들을 저승으로 밀어 넣은 공주의 테마곡이, 알고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꽃을 예찬하는 민요라니요. 이 묘한 엇박자가 투란도트라는 인물의 이중적인 매력을 아주 능청스럽게 떠받치고 있습니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 — 계엄령이 찢어놓은 밤

승부는 끝났지만 여기서 칼라프가 기막힌 승부수를 띄웁니다. 이미 수수께끼를 다 맞혀 투란도트를 아내로 맞이할 당당한 권리를 따냈건만, 도살장에 끌려가듯 질색하는 공주에게 슬쩍 이런 제안을 던진 겁니다. “그렇다면 내 이름을 한 번 맞혀 보시오. 동이 트기 전까지 내 이름을 알아낸다면, 나는 기꺼이 죽어주겠소.” 다 이긴 게임에서 승자가 다시 자기 목통을 판돈으로 밀어 넣은 꼴입니다. 공주에게 얄팍한 퇴로 하나를 열어주는 대신, 자신의 목숨줄을 쥐고 흔드는 지독한 도박을 시작하죠.

발등에 불이 떨어진 투란도트는 지체 없이 온 나라에 피비린내 나는 칙령을 내립니다. “오늘 밤 베이징의 그 누구도 잠들어선 안 된다. 날이 밝기 전까지 저 오만한 이방인의 이름을 무조건 알아내라. 실패하면 백성들 목을 다 쳐버리겠다.” 이 섬뜩한 명령의 첫 두 마디가 바로 “네순 도르마(Nessun dorma)” — 우리말로 곧장 옮기면 “아무도 잠들지 마라”입니다.

즉, 우리가 낭만적이라 굳게 믿었던 이 아리아의 제목은 달콤한 사랑의 밀어가 아니었던 겁니다. 오히려 무고한 도시 전체를 밤새 덜덜 떨게 만든 살벌한 계엄령에 가깝죠. 무대 위에서 아리아를 부르는 칼라프 역시, 저 멀리서 메아리치는 공주의 서늘한 호령을 똑똑히 듣고 있습니다. 온 베이징이 살기 위해 자기 이름 석 자를 뒤지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바로 그 순간, 그는 홀로 고요한 정원에 우뚝 서서 이 기막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1926년 초연에서 칼라프를 부른 테너 미겔 플레타의 초상 사진
초연 무대에서 칼라프를 부른 테너 미겔 플레타. ‘네순 도르마’를 극장에서 처음 부른 목소리입니다.

‘네순 도르마’, 한 소절씩 뜯어보기

이 어마어마한 명곡은 우리 예상과 달리 아주 낮고 은밀하게 막을 올립니다. 칼라프는 조금 전 쩌렁쩌렁 울리던 공주의 엄명을 마치 자기 입안에서 굴리듯 나직하게 되받아치죠. “네순 도르마… 네순 도르마…” 온 도시가 벌벌 떨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이 시간, 유독 그의 목소리만큼은 기이할 정도로 차분합니다. 핏빛 공포가 내려앉은 베이징 한복판에서, 오직 자신만이 승리의 패를 쥐고 있다는 두둑한 배짱이 묻어나는 셈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서두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덩달아 숨을 죽인 채 바닥으로 웅크리고, 그 위로 테너가 읊조리듯 낮은 음성으로 “네순 도르마”를 흘려보냅니다. 뜨겁게 끓어오르기 직전의 이 팽팽한 적막감이, 훗날 터져 나올 폭발력을 기막히게 끌어올려 주거든요.

이윽고 그는 보이지 않는 공주를 향해 툭 말을 건넵니다. “당신 역시, 공주여, 그 차가운 방에서 잠 못 이루고 있겠지.” 슬슬 음악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이 곡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결정적인 대사가 튀어나오죠. “하지만 내 비밀은 내 안에 굳게 잠겨 있으니, 내 이름은 아무도 알지 못하리라.” 온 나라가 불을 켜고 찾아 헤매는 바로 그 이름을, 정작 주인장은 절대로 혀끝에 올리지 않겠다며 단단히 자물쇠를 채워버리는 순간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일 노메 미오 네순 사프라(내 이름은 아무도 모르리라)”를 부르는 찰나, 선율이 발돋움하듯 훌쩍 한 계단 뛰어오릅니다. 나지막이 머금고 있던 자신감이 마침내 터질 듯한 선언으로 옷을 갈아입는 짜릿한 이음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저 멀리서 아스라이 여자들의 합창이 끼어듭니다. 무대 뒤 짙은 어둠 속에서 백성들이 절망 섞인 탄식을 내뱉는 거죠. “그의 이름은 아무도 모를 테고, 우리는 결국 개죽음을 당하겠구나.” 그렇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이름을 캐내지 못해 모가지가 날아가는 건 칼라프 혼자가 아닙니다. 내일은 이길 거라는 한 남자의 굳건한 확신 바로 곁에, 그 지독한 오기 때문에 당장 내일 죽게 생긴 사람들의 서늘한 두려움이 나란히 겹쳐집니다. 이 오페라가 품은 잔혹한 얼굴이 이 짧은 합창 한 소절에 고스란히 번져 있습니다.

그 탄식을 시원하게 뚫고 나오며 칼라프는 마지막 고개를 넘습니다. 이제 그는 허공의 밤을 향해 호령하죠. “물러가라, 밤이여. 스러져라, 별들이여. 날이 밝으면 나는 이기리라.”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던 그 “빈체로(이기리라)!”를 연거푸 세 번 외치며, 마지막 음을 끄집어 올려 한껏 길게 뽑아냅니다. 사실 푸치니가 남긴 원래 악보에는 이 음을 그렇게 숨넘어가게 오래 끌라는 지시가 또박또박 적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테너들이 굳이 여기서 호흡을 극한까지 쥐어짜는 이유는 뻔합니다. 객석에 앉은 우리가 두 손 모아 기다리는 짜릿한 한 방이 바로 그 마지막 음표에 걸려 있으니까요.

곰곰이 따져보면 꽤 능청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정작 이 노래가 울려 퍼지는 동안 칼라프는 단 하나도 이긴 게 없거든요. 진짜 승부는 ‘내일 아침’에나 판가름 납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 이 곡은 트로피를 거머쥐고 부르는 승전보가 아니라, 이길 게 뻔하다며 미리 샴페인부터 터뜨리는 허세 가득한 노래에 가깝습니다. 이미 손에 쥔 전리품을 뽐내는 게 아니라, 단두대 앞에 선 칠흑 같은 밤 한가운데서 “어차피 내가 이겨!”라며 꿋꿋하게 버티는 배짱의 노래죠. 바로 그 근거 없는 당당함이 이 3분 남짓한 멜로디에 불멸의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당장 내일 목이 잘릴지도 모르는 처지면서 노래 하나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늠름한 남자. 이 기막힌 간극이야말로 듣는 이의 마음을 단숨에 쥐락펴락하는 진짜 비결입니다.

💡 사실은요 — 여전히 ‘네순 도르마’를 달콤한 쟁취의 순간에 부르는 세기의 러브송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극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 칼라프는 사랑을 얻기는커녕 방금 자기 목숨을 또다시 판돈으로 내던진 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긴 노랫말 어디를 뒤져봐도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단어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핏대를 세우며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단어는 오직 “이기리라(Vincerò)” 하나뿐이거든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자코모 푸치니가 함께 있는 사진
푸치니(오른쪽)와 지휘자 토스카니니. 두 사람의 인연은 초연 무대에서 뜻밖의 방식으로 매듭지어집니다.

토스카니니가 허공에 지휘봉을 멈춰 세운 밤

푸치니가 세상을 떠나고 한 해 반쯤 흐른 1926년 4월 25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마침내 〈투란도트〉의 첫 막이 올랐습니다. 지휘봉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쥐었죠. 생전의 푸치니와 툭하면 부딪히면서도 서로의 음악만큼은 고집스럽게 인정했던, 당대 최고의 마에스트로였습니다.

그런데 작곡가 본인이 이 기막힌 상황을 미리 내다봤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곡을 끝내지 못하고 죽게 되면, 초연 날 누군가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와 “여기서 작곡가가 펜을 놓았습니다”라고 관객에게 알리게 될 거라던 씁쓸한 예감 말입니다. 정확한 워딩을 확인하긴 어렵지만, 그 불길한 혼잣말은 초연 밤 토스카니니의 손끝을 통해 거의 그대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주인을 잃은 미완성의 오페라가, 작곡가의 텅 빈 빈자리 그 자체를 짊어지고 무대에 오른 셈입니다.

공연은 무사히 흘러갔습니다. 그러다 류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푸치니가 생의 마지막 음표를 채워 넣은 바로 그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토스카니니는 그곳에서 조용히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무대의 오케스트라도 객석의 관객도 다 함께 숨을 멈췄습니다. 그날의 첫 공연에서는 알파노가 덧붙여 완성한 결말부가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토스카니니가 굳어버린 관객을 향해 돌아서서 남긴 말은 전해지는 기록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여기서 오페라는 끝납니다. 이 지점에서 마에스트로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라는 문장입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가엾은 푸치니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쓰여 있기도 하죠. 토씨 하나까지 정확히 확정할 수는 없어도, 그가 작곡가의 마지막 음표 위에서 칼같이 손을 멈췄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모든 기록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상상해 보시죠. 화려한 기대가 쏟아지던 초연의 밤, 팽팽하던 음악이 돌연 뚝 끊기더니 지휘자가 돌아서서 “여기서 작곡가가 멈췄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광경을 말입니다. 이보다 더 적나라하고 정직한 추모는 찾기 어려울 겁니다. ‘네순 도르마’를 품은 이 거대한 오페라는, 그렇게 펜을 놓아버린 작곡가의 죽음을 무대 한가운데로 다시 불러내며 세상과 처음 만났습니다.

초연에서 투란도트 역을 맡은 소프라노 로자 라이자의 초상 사진
초연에서 투란도트 역을 맡은 소프라노 로자 라이자. 토스카니니가 지휘봉을 내려놓던 그 밤, 무대 위에 서 있던 주역입니다.

입가에 감기는 멜로디의 장인이 마지막에 꺾은 핸들

원래 푸치니는 귓가에 착 감기는 선율을 뽑아내는 데 도가 튼 장인이었습니다. 〈라 보엠〉, 〈토스카〉, 〈나비 부인〉을 떠올려 보시죠. 한 번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그 애틋한 가락으로 온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인생의 마지막 오페라에서는 아주 과감하게 음악의 핸들을 꺾어버렸습니다.

〈투란도트〉의 음악은 그의 예전 히트작들보다 체급이 훨씬 크고 거칠며, 귀에 서걱거리는 낯선 불협화음도 심심찮게 끼어듭니다. 대규모 합창단과 타악기를 가차 없이 밀어붙이는 통에, 때로는 무대 전체가 거대한 돌벽처럼 쿵쿵 다가오죠. 예순을 훌쩍 넘긴 대가가 뻔히 아는 ‘안전한 흥행 공식’에 안주하지 않고, 이질적이고 날 선 소리마저 기꺼이 품어 안은 겁니다. 특유의 따라 부르기 좋은 멜로디의 매력은 여전하지만, 그 주변으로는 훨씬 차갑고 묵직한 음악 세계가 겹겹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순 도르마’의 그 환한 선율이 유독 특별하게 들리는 걸지도 모릅니다. 온통 무겁고 각진 음악들이 득실거리는 한가운데서, 이 아리아 하나만 둥실하고 또렷하게 솟아오르거든요. 육중하게 짓누르는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장벽 위로 테너의 짱짱한 목소리가 홀로 뻗어 나갈 때, 그 짜릿한 대비는 몇 배로 팽창합니다. 비록 작곡가 본인은 끝맺음을 보지 못했지만, 이 오페라가 그의 음악 인생을 통틀어 가장 거창하고 야심 찬 도전장으로 남은 이유입니다.

어떻게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 100년째 풀지 못한 숙제

후배 알파노가 진땀을 빼며 이어 붙인 결말은 지금도 100퍼센트 환영받지는 못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던 얼음 공주가 갑자기 사랑을 깨닫고 사르르 무너져 내리는 마지막 심경 변화가 아무래도 억지스럽고 뜬금없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이 찜찜한 불만은 무려 100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애당초 주인이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미완의 캔버스에, 다른 누군가가 대신 붓을 들어 완벽한 정답을 칠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미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예 푸치니가 멈춰 선 바로 그곳, 류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그대로 막을 내리는 공연도 적지 않습니다. 초연 밤 악보를 덮고 작곡가의 부재를 알렸던 토스카니니의 단호한 결정을 기꺼이 따르는 방식입니다. 한편 2001년에는 출판사 리코르디의 의뢰를 받은 현대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가 푸치니의 낡은 스케치를 다시 샅샅이 파고들어 아예 새로운 결말을 하나 더 써냈습니다. 이 버전은 2002년 1월 24일 라스팔마스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죠. 대규모 합창으로 웅장하게 밀어붙이는 알파노 판본과 달리, 베리오의 결말은 얼어붙었던 공주의 마음이 녹아내리는 과정을 아주 여린 소리 속에서 찬찬히 설득해 냅니다.

과연 어느 쪽 마침표가 정답인지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죠. ‘네순 도르마’를 품은 이 오페라는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지나도록, 마지막 장면을 두고 수많은 이들이 묻고 따지며 상상력을 보태는 전무후무한 미완의 걸작으로 남았습니다. 푸치니의 죽음은 그저 무대 밖의 슬픈 역사로 휘발되지 않고, 작품 한가운데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서늘한 여백으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화려한 색채의 투란도트 의상 디자인 수채화
자크 드레사가 1928년 파리 오페라 공연을 위해 그린 투란도트 의상 디자인화. 초연 두 해 만에 파리로 건너간 작품의 화려함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오페라 극장의 문턱을 넘어 축구장 한복판으로

여기까지가 1920년대의 묵직한 비하인드 스토리라면, 이 아리아가 진짜 온 지구촌의 콧노래가 된 결정적 계기는 그로부터 60여 년이 흐른 왁자지껄한 축구장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오페라 팬들의 전유물 같던 이 노래가, 텔레비전 중계방송을 타고 전 세계 거실에 모여 앉은 대중의 귓가에 그야말로 무차별 폭격을 가한 겁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영국 BBC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네순 도르마’를 대회 공식 중계 오프닝 곡으로 덜컥 골라잡았습니다. 한 달 내내 경기 앞뒤로 이 웅장한 테너의 목소리가 안방극장을 쩌렁쩌렁 울렸고, 급기야 파바로티의 싱글 앨범은 영국 대중음악 차트 2위까지 치고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고상한 오페라 아리아가 당대의 쟁쟁한 팝송들을 제치고 팝 차트 최상위권을 점령하는, 말 그대로 전무후무한 대이변이 벌어진 겁니다.

이 어마어마한 열기가 정점을 찍은 건 결승전을 하루 앞둔 밤이었습니다. 1990년 7월 7일 로마에서,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라는 세 명의 전설이 한 무대에 올랐습니다. 훗날 클래식 역사를 바꾼 ‘쓰리 테너’ 콘서트의 화려한 신호탄이었죠. 파바로티가 단독으로 ‘네순 도르마’의 포문을 열었고, 하이라이트에 이르러 세 거장이 함께 목청을 모아 화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날의 뜨거운 실황을 고스란히 담아낸 데카 음반은 클래식 역사상 손에 꼽히는 전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빈체로!”의 그 찌릿한 마지막 고음은 이렇듯 오페라 극장의 굳게 닫힌 문을 훌쩍 넘어, 온 동네 사람들이 떼창으로 부르는 거대한 후렴구로 퍼져나갔습니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 고전적인 곡이 땀 냄새 짙은 스포츠 현장과 찰떡처럼 맞아떨어지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앞뒤 꽉 막힌 오페라 줄거리를 몰라도, 심장을 쥐어짜는 이 곡의 핵심 감정만큼은 피부에 직구로 꽂히거든요. 노래 말미에 터져 나오는 세 번의 “빈체로”는 말 그대로 “내가 기필코 이기리라!”라는 펄떡이는 선언입니다. 치열한 승부가 벌어지는 그라운드에서 이보다 더 노골적이고 확실한 출사표가 또 있을까요. 칼라프가 목숨을 걸고 나선 핏빛 사연은 까맣게 모를지언정, 무조건 이기고 싶다는 저 절박한 갈망만큼은 만국 공통어처럼 전 세계의 핏줄을 끓게 만듭니다. 달랑 3분짜리 이 아리아가 언어와 국경을 단숨에 뛰어넘어 전 세계를 호령하게 된 진짜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990년 로마의 파바로티. 그의 목소리를 통해 오페라는 축구장 관중에게도 닿았습니다.

악보와 함께 짚어보는 상승의 궤적

바닥에 바짝 엎드려 출발한 선율이 한 계단씩 꾸역꾸역 밀고 올라가, 마침내 마지막 “빈체로”에서 짜릿한 정점을 찍는 쾌감은 악보를 나란히 펼쳐놓고 볼 때 훨씬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아래에 준비된 영상은 테너의 목소리를 졸졸 따라가며, 노래의 가락이 허공으로 확 꺾여 올라가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눈앞에 생생하게 짚어줍니다.

테너 성부와 피아노를 함께 따라가는 악보 영상. 선율이 오르내리는 지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원본 오페라 악보는 무료 악보 도서관 IMSLP에 공개돼 있으며, 〈투란도트〉 악보 보기 (IMSLP)에서 전체 악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구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일까

워낙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한 명곡이다 보니, ‘네순 도르마’가 담긴 녹음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두룩합니다. 그중에서 개성과 맷집이 확연히 다른 전곡 음반 딱 세 장만 추려봤습니다. 달랑 아리아 한 곡만 떼어 들어도 물론 훌륭하지만, 대체 왜 이 벅찬 노래가 그 살벌한 밤 한복판에 터져 나와야 했는지 제대로 맛보려면 역시 오페라 전체의 묵직한 파도 속에서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 첫 감상 추천

루치아노 파바로티 · 조안 서덜랜드 · 몬트세라트 카바예

주빈 메타 지휘 · 런던 필하모닉 · Decca · 1972

먼저 파바로티 특유의 툭 트인 쩌렁쩌렁하고 눈부신 소리로 이 곡을 즐기고 싶다면 무조건 이 녹음이 0순위입니다. 오페라 초심자라면 주저 없이 여기서 출발 버튼을 누르셔도 좋습니다. 다만 호흡을 맞춘 조안 서덜랜드의 투란도트는 서늘하게 베이는 얼음장 같은 독기보다는 기품 있는 우아함이 한발 앞서는 편입니다. 머리칼이 쭈뼛 서는 매서운 얼음 공주를 기대하셨다면 맛이 조금 순둥하게 느껴질 여지는 있습니다.

레퍼런스

프랑코 코렐리 · 비르기트 닐손 · 레나타 스코토

몰리나리-프라델리 지휘 · 로마 오페라 · EMI · 1965

칼라프의 두둑한 배짱과 짐승 같은 육체미를 소리로 확인하고 싶다면 단연 프랑코 코렐리의 몫입니다. 여기에 맞서는 비르기트 닐손의 투란도트는 진짜 곁에만 가도 꽁꽁 얼어붙을 듯한 무시무시한 냉기를 뿜어내죠. 두 거인의 불꽃 튀는 기싸움이 압권이지만, 소리의 결 자체가 다소 억세게 벼려져 있어서 매끄럽고 뽀송하게 다듬어진 음향에 익숙한 귀에는 꽤나 투박하게 긁힐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유시 비욜링 · 비르기트 닐손 · 레나타 테발디

에리히 라인스도르프 지휘 · 로마 오페라 · RCA · 1959

파바로티처럼 대포알을 쏘아 올리듯 터뜨리는 장대한 절창에 익숙해졌다면, 스웨덴 출신의 테너 유시 비욜링은 아예 결이 다른 샛길을 열어줍니다. 근육질의 뱃심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대신, 멜로디의 고운 선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며 이어가는 아주 귀한 ‘네순 도르마’거든요. 다만 오래전에 만들어진 녹음이다 보니 요즘 음반처럼 사운드가 쨍하고 화려하게 뻗어나가지는 않습니다. 그 특유의 묵은 음질은 어느 정도 감안하고 귀를 열어야 합니다.

‘네순 도르마’는 무슨 뜻인가요?

이탈리아어로 “아무도 잠들지 마라”는 뜻입니다. 극 중에서는 투란도트 공주가 온 도시에 내린 밤샘 명령을 칼라프가 되받아 부릅니다. 사랑 고백에서 출발한 노래가 아니라, 날이 밝기 전에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라는 협박에 가까운 칙령에서 시작된 노래입니다.

푸치니가 이 오페라를 끝내지 못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푸치니는 후두암을 앓다 1924년에 세상을 떠났고, 3막 결말부를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여종 류가 죽는 장면까지만 작곡을 마쳤으며, 그 뒤의 이중창과 대미는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가 푸치니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완성했습니다. 다만 ‘네순 도르마’ 자체는 푸치니가 생전에 완성해 둔 곡입니다.

마지막 “빈체로” 고음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사실 음 자체가 초인적으로 높은 건 아닙니다. 진짜 어려움은 곡 전체에서 힘을 아껴 두었다가 마지막 한 음에 감정과 성량을 몰아넣고, 관객이 만족할 만큼 길게 버텨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원래 악보에 이 음을 길게 끌라는 지시가 명확히 적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테너가 여기서 승부를 겁니다.

왜 축구 하면 이 노래가 떠오르나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영국 BBC가 중계 주제가로 파바로티의 ‘네순 도르마’를 쓰면서부터입니다. 대회 내내 경기 앞뒤로 흘러나왔고, 결승 전날 열린 ‘쓰리 테너’ 콘서트까지 더해지며 대중적 인상이 굳어졌습니다. 이후 이 곡은 스포츠 이벤트의 단골 배경음악이 됐습니다.

칼라프는 결국 이기나요?

그는 새벽에 승리합니다. 공주는 끝내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지 못하고, 칼라프는 스스로 자기 이름을 알려 준 뒤 마지막 선택을 공주에게 맡깁니다. 다만 그 마지막 화해 장면은 푸치니가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뒤, 알파노가 이어 완성한 부분입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죽음과 무대가 겹쳐지는 곡들

‘네순 도르마’가 마음에 남았다면, 아래 다섯 곡도 이어서 듣기 좋습니다. 작곡가의 죽음, 무대 위의 드라마, 이탈리아 성악의 힘 — 이 아리아를 이루는 재료들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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