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 교향곡 7번 E장조 — 예순에 처음 박수받은 남자

예순에 찾아온 첫 박수, 그리고 심벌즈 논쟁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
(Anton Bruckner, 1824–1896)
곡명
교향곡 7번 E장조, WAB 107
(Symphony No. 7 in E major)
작곡 기간
1881년 ~ 1883년 (1885년 개정)
악장
4악장
I. Allegro moderato (E장조)
II. Adagio: Sehr feierlich und sehr langsam (c♯단조)
III. Scherzo: Sehr schnell (a단조) / Trio: Etwas langsamer (F장조)
IV. Finale: Bewegt, doch nicht schnell (E장조)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2악장. 아다지오: 매우 장엄하고 매우 느리게
3악장. 스케르초: 매우 빠르게
4악장. 피날레: 움직임 있게, 그러나 빠르지 않게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바그너 튜바 4(테너 2·베이스 2), 트럼펫 3, 트롬본 3, 콘트라베이스 튜바 1, 팀파니 (2악장 심벌즈·트라이앵글 — 판본에 따라 다름), 현5부
초연
1884년 12월 30일, 라이프치히 시립극장
아르투어 니키슈 지휘 /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연주 시간
약 65분
3줄 요약
  • 평생 빈 음악계의 조롱을 받던 예순 살의 시골 출신 작곡가가, 빈에서 400킬로미터 떨어진 라이프치히에서 스물아홉 살 지휘자의 손을 빌려 생애 첫 진짜 성공을 거둔 교향곡입니다.
  • 2악장 아다지오는 브루크너가 평생 숭배한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하며 쓴 애가로, 교향곡 역사상 처음으로 바그너 튜바 네 대가 등장합니다.
  • 그 아다지오 절정의 심벌즈 한 방을 브루크너가 정말 원했는가를 두고 지금도 지휘자와 학자들이 갈라서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뜨겁게 다투는 심벌즈 한 방이 이 교향곡 안에 있습니다. 2악장 절정, 오케스트라가 C장조로 하늘을 열어젖히는 그 순간에 심벌즈가 쨍 하고 부딪힙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브루크너가 그 한 방을 정말로 원했는지, 지금도 지휘자마다 답이 다릅니다.

어떤 지휘자는 심벌즈를 울리고, 어떤 지휘자는 그 자리를 텅 비워둡니다. 판본이 다르고, 자필 악보에는 누가 썼는지도 불분명한 메모 한 줄이 남아 있습니다. 예순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청중의 박수를 받은 이 남자의 대표작은, 그렇게 시작부터 수수께끼를 품고 있습니다.

안톤 브루크너 초상, 1889년
7번을 완성할 무렵의 브루크너. 평생 자기 곡을 고치고 또 고친 사람의 얼굴입니다.
먼저 듣기 — 귄터 반트가 지휘하는 NDR 교향악단(북독일 방송 교향악단)의 1999년 실황 전곡입니다. 글을 읽는 동안 틀어두시면 좋습니다.

예순이 되도록 박수 한 번 못 받은 남자

먼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짚어야 합니다. 1824년, 오스트리아 안스펠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교사 겸 오르가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브루크너의 젊은 시절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시골 학교 보조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이면 성당 오르간 앞에 앉는 삶. 마흔이 다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교향곡을 쓰기 시작한 늦깎이였던 겁니다.

문제는 그가 오르간 앞을 떠나 빈으로 올라왔을 때부터였습니다.

19세기 후반의 빈은 두 진영으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한쪽엔 절대음악의 수호자 브람스, 다른 한쪽엔 악극으로 세상을 뒤엎으려던 바그너.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평론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가 바그너파를 향해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하필 브루크너는 바그너를 신처럼 떠받들었습니다. 빈 음악계의 권력자에게 찍히기 딱 좋은 위치였던 셈입니다.

1877년, 그가 직접 지휘한 교향곡 3번 초연은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곡이 진행되는 동안 청중이 하나둘 자리를 떴고, 마지막 화음이 울렸을 때 홀에는 스무 명 남짓만 남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브루크너는 자기 교향곡이 제대로 연주되는 것조차 보기 어려웠습니다. 평론은 그를 “바그너의 어설픈 모방자”라 불렀고, 그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이미 완성한 악보를 다시 뜯어고쳤습니다.

강박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요. 브루크너의 교향곡 대부분이 여러 판본으로 남은 건 이 끝없는 자기 의심 때문입니다. “이번엔 괜찮을까요? 이 부분은 빼야 할까요?” 제자들에게 늘 이렇게 물었다니, 대가의 자신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이 소심함은 그의 성격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브루크너는 무언가를 세지 않고는 못 배기는 버릇이 있어서, 창밖의 나뭇잎이며 성당 첨탑의 장식까지 숫자로 헤아리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지위 높은 사람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졌고, 촌스러운 사투리와 헐렁한 옷차림 때문에 세련된 빈 사교계에서는 늘 겉돌았습니다. 무대 위에서 세상을 호령하던 바그너와는 정반대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소심한 시골 오르가니스트가, 누구보다 거대한 소리의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이게 브루크너의 역설입니다. 평생 오르간 앞에서 손끝으로 우주를 쌓아 올리던 사람만이 상상할 수 있는 규모였습니다.

그의 음악이 뿌리를 내린 곳은 오스트리아의 장크트 플로리안 수도원이었습니다. 소년 성가대원으로 들어갔다가 훗날 이곳의 오르가니스트가 됐습니다. 거대한 바로크 오르간이 울려 퍼지던 그 성당의 공기가,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에 배어 있습니다. 그는 유언으로 바로 그 오르간 아래 지하에 묻혔는데, 지금도 그의 관은 자신이 평생 연주하던 악기 밑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소리의 성당을 짓던 사람이, 끝내 진짜 성당의 오르간 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그가 1881년, 예순을 코앞에 두고 일곱 번째 교향곡의 첫 음을 적기 시작합니다. 이번만큼은 무언가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다름’의 정체는, 바다 건너 바이로이트에서 죽어가던 한 노인과 깊이 얽혀 있었습니다.

바그너가 죽던 겨울

브루크너에게 바그너는 단순한 존경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신앙이었죠. 1873년 바그너를 찾아가 교향곡 3번을 헌정했을 때, 그는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랐다고 합니다. 훗날 사람들이 3번을 아예 “바그너 교향곡”이라 부르게 된 이유입니다.

이 헌정에는 웃지 못할 뒷이야기도 붙어 있습니다. 한참 뒤 브루크너는 자기가 바그너에게 어느 교향곡을 바쳤는지 헷갈려서, “트럼펫이 주제를 시작하는 그 d단조 교향곡이 맞습니까?”라고 편지로 물었다고 전해집니다. 바그너는 “그래, 그래! 진심으로 축하하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신을 앞에 둔 신자의 어리숙함이랄까요. 이런 사람이었으니, 그 신이 죽어간다는 소식이 그에게 얼마나 무겁게 다가왔을지 짐작이 갑니다.

리하르트 바그너 초상화, 카이사르 빌리히 작
브루크너가 평생 신처럼 떠받든 리하르트 바그너. 7번 2악장은 이 사람에게 바치는 애가가 됐습니다.

7번 2악장 아다지오를 쓰던 1883년 초, 바그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브루크너는 훗날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언젠가 대가가 세상을 떠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그때 이 아다지오의 악상이 떠올랐다.” 스승의 죽음을 예감하며 만가(挽歌)를 미리 쓰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1883년 2월 13일, 바그너가 베네치아에서 숨을 거둡니다. 부고를 접한 브루크너는 아다지오의 마지막 코다를 마무리하며 그것을 스승을 위한 ‘장송 음악’이라 불렀습니다. 예감으로 시작된 애가가, 진짜 죽음 앞에서 완성됐습니다.

이 곡이 음악사에 남긴 첫 번째 사건이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브루크너는 이 아다지오에 새로운 악기를 불러들였습니다. 바그너가 자신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를 위해 고안한 악기, 바그너 튜바입니다. 교향곡에 바그너 튜바가 등장한 건 이 7번이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바그너 튜바 실물 사진
호른과 튜바 사이 어딘가에서 울리는 바그너 튜바. 7번 2악장에서 스승을 애도하는 목소리로 처음 입을 엽니다.

호른 주자가 악기를 바꿔 잡고 부는 이 악기는, 호른의 부드러움과 트롬본의 무게를 반씩 섞은 듯한 음색을 냅니다. 어둡고, 둥글고, 어딘가 저승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소리입니다. 스승을 떠나보내는 자리에 이보다 어울리는 악기는 없었을 겁니다. 테너 두 대와 베이스 두 대, 모두 네 대가 2악장과 4악장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킵니다.

크리스토프 에센바흐가 지휘하는 hr 교향악단(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전곡 실황. 금관의 층이 또렷하게 들리는 연주입니다.

꿈에서 받아 적은 첫 주제

이제 곡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그런데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드보르작이나 차이콥스키처럼 선율을 콧노래로 따라 부르는 음악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대한 성당 안에 들어선 것에 가깝습니다. 음 하나하나가 벽돌처럼 쌓이고, 침묵마저 건축의 일부가 되는 음악입니다. 그러니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르고 싶은 순간이 와도, 잠시 참고 공간이 부풀어 오르는 걸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오르간 주자의 교향곡: 왜 이렇게 들리나

브루크너를 처음 듣는 사람이 당황하는 지점이 몇 군데 있습니다. 우선 음악이 자주 뚝 멈춥니다. 한 덩어리가 끝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침묵이 흐르고, 전혀 다른 덩어리가 새로 시작됩니다. 이 ‘브루크너의 쉼표’는 실수가 아닙니다. 오르간 주자가 한 음색을 끄고 다른 음색으로 갈아타듯, 소리의 블록과 블록 사이에 일부러 틈을 벌려둔 겁니다.

셈여림도 계단식입니다. 스르르 커졌다 작아지는 대신, 여린 소리와 큰 소리가 층층이 맞붙습니다. 오르간의 스톱을 하나씩 더 열어 음색을 쌓아 올리는 방식 그대로예요. 평생 성당 오르간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그 감각을 통째로 오케스트라에 옮겨놓았습니다.

그러니 브루크너는 ‘선율을 따라가는’ 음악이라기보다 ‘공간을 견디는’ 음악에 가깝습니다. 지루하다 싶은 순간이 오면, 지금 소리의 벽이 한 겹씩 올라가는 중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 벽이 다 쌓였을 때 터지는 금관의 광채가, 브루크너를 듣는 가장 큰 보상입니다.

1악장: 첼로가 그리는 20초짜리 지평선

1악장은 현의 낮은 떨림 위에서 조용히 문을 엽니다. 안개가 깔린 새벽 같다고 할까요. 그 위로 첼로와 비올라가 길게, 아주 길게 선율 하나를 그어 올립니다. 무려 두 옥타브를 훑으며 지평선처럼 뻗어나가는 이 주제가, 7번 전체를 떠받치는 첫 번째 기둥입니다.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브루크너는 이 선율을 꿈에서 얻었다고 말하곤 했죠. 세상을 떠난 친구가 꿈에 나타나 멜로디를 불러주며 “이걸 적어두게, 자네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걸세”라고 했다는 겁니다. 사실 여부야 본인만 알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이 곡이 그에게 생애 첫 행운을 안겨줬으니까요.

첫 주제가 지평선을 그었다면, 뒤이어 나오는 두 번째 선율은 그 지평선 위에 걸린 노래입니다.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주고받는 이 서정적인 부분을 브루크너는 특히 공들여 다듬었습니다. 웅장함과 노래, 두 얼굴이 1악장 안에서 번갈아 밀려옵니다.

선율은 한 번 나왔다 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금관이 받아 부풀리고, 현이 되받아 몰아붙이고, 마침내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 지평선을 향해 밀려 올라갑니다. 브루크너 특유의 ‘크레셴도의 파도’입니다. 조용히 시작해 참을 수 없이 커지다가, 정점에서 금관이 성문을 열어젖히듯 터지는 구조. 이 파도를 처음 제대로 타는 순간이 바로 1악장입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곡이 시작되고 첼로가 낮은 곳에서 길게 솟아오르는 첫 20초. 이 한 줄의 선율이 앞으로 65분을 지배한다는 걸 기억해두시면, 뒤에 이 멜로디가 돌아올 때마다 반갑습니다.

2악장: 스승을 묻는 소리

7번의 심장은 2악장 아다지오입니다. 앞서 말한 그 애가입니다. 바그너 튜바 네 대가 낮은 화음을 깔면, 그 위로 c♯단조의 무거운 주제가 장례 행렬처럼 걸어 나옵니다. 서두르지 않습니다. 슬픔에는 원래 속도가 없으니까요.

이 악장은 두 개의 감정 사이를 오갑니다. 하나는 튜바가 이끄는 어두운 애도, 다른 하나는 현이 노래하는 위로의 선율. 두 세계가 번갈아 나타나며 조금씩 몸집을 불려갑니다. 그러다 마침내 음악이 참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치솟습니다. C장조, 가장 밝은 조성으로 전환하는 그 순간이 이 곡 전체의 절정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 문제의 심벌즈가 놓여 있습니다. 어떤 연주에서는 이 정점에서 심벌즈와 트라이앵글, 팀파니가 한꺼번에 터지며 소리가 확 부풀어 오르고, 어떤 연주에서는 그 자리가 오케스트라의 순수한 화음만으로 채워집니다. 같은 악보인데 왜 이렇게 다른지는 잠시 뒤에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절정이 지나면 음악은 다시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바그너의 부고를 받은 뒤 쓴 그 코다가 조용히 흐릅니다. 튜바들이 마지막으로 낮게 읊조리며 스승을 땅에 내려놓습니다. 이 몇 분을 듣고 나면, 브루크너가 왜 이 악장을 세상에서 가장 아꼈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2악장 들어가자마자 현의 낮은 화음 위로 바그너 튜바 네 대가 처음 입을 여는 순간. 호른도 트롬본도 아닌, 처음 듣는 어두운 목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귀를 기울여보세요.

마리스 얀손스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2악장 아다지오. 튜바의 어둠을 듣고 싶다면 이 한 악장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3악장: 트럼펫이 부르는 사냥 나팔

2악장의 무게에 짓눌렸던 공기를, 3악장 스케르초가 단숨에 걷어냅니다. 현이 잰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그 위로 트럼펫이 날카로운 신호를 쏘아 올립니다. 숲속에서 울리는 사냥 나팔 같기도 하고, 멀리서 다가오는 행렬 같기도 합니다. 브루크너의 스케르초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힘이 넘치는 악장입니다.

그러다 중간의 트리오에서 음악이 문득 걸음을 늦춥니다. F장조로 바뀌며 목가적인 선율이 펼쳐집니다. 앞의 사냥이 대지를 구르는 소리였다면, 트리오는 그 대지 위에 잠시 눕는 시간입니다. 격렬함과 고요함, 두 얼굴을 한 악장 안에 담아뒀습니다.

4악장: 다시 지평선으로

피날레는 의외로 가볍게 출발합니다. 1악장의 그 지평선 주제를 닮은 선율이 경쾌하게 튀어 오릅니다. 브루크너치고는 발걸음이 날렵합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이 악장은 곧 무거운 코랄과 격렬한 리듬 사이를 오가며 덩치를 불려갑니다.

곳곳에서 금관이 코랄을 세웁니다. 예배당의 성가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듯, 트롬본과 튜바가 장중한 화음을 층층이 포갠 뒤 다시 흩어집니다. 브루크너의 신앙심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이 코랄들이 피날레의 기둥 노릇을 하며, 가벼웠던 첫 발걸음을 점점 거대한 행진으로 바꿔놓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건 마지막입니다. 오케스트라가 다시 한번 크레셴도의 파도를 타고 올라가는데, 그 정점에서 1악장을 열었던 바로 그 첫 주제가 금관으로 당당하게 돌아옵니다. 꿈에서 받아 적었다던 그 선율이, 65분을 돌아 마침내 E장조의 승리로 못 박히는 순간입니다. 처음 안개 속에서 웅얼거리던 주제가, 이제는 태양처럼 홀 전체를 채웁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두고 흔히 “끝이 어떻게 오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이 나오지만, 7번만큼은 다릅니다. 시작과 끝이 같은 선율로 맞물리니, 65분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완결감이 뚜렷합니다.

심벌즈 한 방의 미스터리

이제 아까 미뤄둔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2악장 절정의 그 심벌즈, 결국 브루크너는 원했을까요, 아닐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초연과 초판 악보에는 절정에 심벌즈·트라이앵글·팀파니가 함께 울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브루크너를 아끼던 제자들이 “이 대목은 타악기로 확 열어주는 게 좋다”고 권했고, 브루크너도 한동안 그 편을 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자필 악보의 그 대목에는 누군가 “gilt nicht”, 즉 ‘이건 유효하지 않다’는 메모를 남겨두었습니다.

💡 사실은요 — “브루크너가 심벌즈를 빼라고 했다”고 단정하는 글이 많지만, 사실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20세기에 로베르트 하스가 편집한 판본(1944)은 이 타악기들을 제자들이 끼워 넣은 것으로 보고 삭제했고, 레오폴트 노바크의 판본(1954)은 그대로 살려두었습니다. 그 “gilt nicht” 메모를 브루크너 본인이 썼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아, 학자 벤저민 코르스트베트는 하스의 삭제 근거를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지휘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 정답이 정해진 게 아니라요.

그러니 여러 연주를 들으며 이 대목을 비교해보는 건 7번을 즐기는 특별한 방법입니다. 심벌즈가 있는 연주는 절정이 쾅 하고 터지며 화려해지고, 없는 연주는 오히려 더 순수하고 성스럽게 들리거든요.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지휘자가 이 곡을 ‘축제’로 보느냐 ‘기도’로 보느냐의 문제라고 할까요.

사실 이 심벌즈 논쟁은 브루크너라는 사람 전체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한쪽엔 자기 확신 없이 늘 남의 조언을 구하던 소심한 작곡가, 다른 한쪽엔 그를 어떻게든 세상에 내보이려 악보에 손을 대던 제자들. 브루크너 교향곡이 판본의 미로가 된 것도 결국 이 구도 탓입니다. 어디까지가 브루크너의 뜻이고 어디부터가 주변의 호의였는지, 우리는 100년이 넘도록 깔끔하게 가려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벌즈 한 방이 이토록 무거운 질문이 될 줄, 정작 본인은 짐작이나 했을까요.

라이프치히의 밤, 예순의 첫 박수

1884년, 이 곡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 등장합니다. 라이프치히의 젊은 지휘자, 아르투어 니키슈. 당시 겨우 스물아홉 살이었습니다. 그는 7번의 악보를 보고 단번에 그 가치를 알아봤습니다. 빈이 브루크너를 조롱하는 동안, 400킬로미터 떨어진 라이프치히의 젊은이가 이 노인의 편에 선 겁니다.

지휘자 아르투어 니키슈 초상
스물아홉의 아르투어 니키슈. 빈이 등 돌린 노인을 라이프치히에서 일으켜 세운 사람입니다.

1884년 12월 30일 저녁, 라이프치히 시립극장. 니키슈가 지휘봉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화음이 울린 뒤, 브루크너가 평생 기다려온 소리가 홀을 가득 채웠죠. 우레와 같은 박수. 청중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예순 살의 작곡가는 몇 번이고 인사하기 위해 불려 나와야 했습니다.

평생 “언젠간 알아주겠지”만 되뇌던 사람에게, 그 밤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성공은 빈이 아니라 빈 바깥에서 왔습니다. 이후 뮌헨을 비롯한 독일 도시들이 앞다투어 7번을 연주했고, 소식은 결국 빈으로 역류했습니다. 한슬리크는 여전히 못마땅해했지만, 이미 대세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7번은 브루크너가 살아서 성공을 맛본 유일한 교향곡이 됐습니다.

특히 이듬해 뮌헨에서 헤르만 레비가 이끈 연주가 열광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불길은 더 크게 번졌습니다. 바그너의 《파르지팔》 초연을 지휘했던 바로 그 레비가 브루크너의 편에 섰으니, 바그너파에게 7번의 성공은 곧 자기 진영의 승리이기도 했습니다. 진영 싸움과는 별개로, 청중은 이미 이 음악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은 성공이었지만, 그래서 더 값졌는지도 모릅니다. 예순까지 고쳐 쓰기만 하던 사람이 마침내 세상의 인정을 받았으니까요.

그 첫 박수로부터 140년이 흘렀습니다. 오늘날 7번은 브루크너의 아홉 교향곡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곡의 하나이자, 그의 세계로 들어서는 관문으로 꼽힙니다. 광고나 영화 삽입곡으로 소비되는 일은 드뭅니다. 대신 콘서트홀에서, 예순다섯 분 동안 소리의 성당이 천천히 세워지는 걸 지켜보려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사랑받습니다. 소심한 시골 오르가니스트가 예순에 지은 그 성당은, 지금도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셈입니다.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따라가며 들으면 브루크너가 벽돌을 쌓듯 소리를 쌓는 방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 브루크너 교향곡 7번 E장조 WAB 107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7번은 지휘자에 따라 표정이 크게 달라지는 곡입니다. 처음이라면 흐름이 자연스러운 연주부터 잡는 게 좋고, 그다음 구조가 또렷한 연주와 극단적으로 느린 연주로 넓혀가면 이 곡의 폭이 보입니다.

👑 첫 감상 추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빈 필하모닉

Deutsche Grammophon · 1989

카라얀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남긴 마지막 녹음. 빈 필 특유의 따뜻하고 둥근 소리로 곡이 물 흐르듯 이어져 입문에 가장 편합니다. 대신 날 선 긴장이나 분석적 명료함을 원하는 사람에겐 너무 매끄럽게 들릴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귄터 반트 · 베를린 필하모닉

RCA · 1999 (실황)

브루크너의 구조를 성당 설계도처럼 또렷하게 세우는 노장의 실황입니다. 각 성부가 어디로 향하는지 훤히 들립니다. 감각적인 광채보다 냉철한 건축을 택한 연주라, 화려함을 기대하면 담백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 뮌헨 필하모닉

EMI · 실황

표준보다 한참 느린 템포로, 시간이 멈춘 듯한 명상적 연주. 아다지오에서 이 방식의 위력이 극에 달합니다. 다만 인내심이 필요하고, 표준 속도를 기대하면 당황할 수 있으니 첫 음반으로는 권하지 않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은 연주 시간이 얼마나 되나요?

지휘자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보통 60분에서 70분 사이입니다. 가장 긴 2악장 아다지오만 20분 안팎을 차지합니다. 첼리비다케처럼 극단적으로 느린 지휘자는 전곡이 80분에 육박하기도 하니, 처음 들을 때는 흐름이 자연스러운 연주부터 고르는 편이 낫습니다.

2악장 아다지오가 바그너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브루크너는 바그너의 건강이 나빠지자 그의 죽음을 예감하며 아다지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고, 1883년 2월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악장의 코다를 ‘장송 음악’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교향곡 역사상 처음으로 바그너 튜바 네 대를 쓴 것도 이 애도의 정서와 맞닿아 있습니다.

2악장의 심벌즈는 왜 연주마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요?

판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로베르트 하스의 판본(1944)은 절정의 심벌즈·트라이앵글·팀파니를 제자들이 덧붙인 것으로 보고 삭제했고, 레오폴트 노바크의 판본(1954)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자필 악보의 “gilt nicht” 메모를 누가 남겼는지조차 논쟁 중이라, 지휘자마다 어느 판본을 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브루크너 7번은 브루크너의 첫 성공작인가요?

사실상 그렇습니다. 브루크너는 예순이 되도록 빈 음악계의 냉대를 받았지만, 1884년 12월 라이프치히에서 스물아홉 살의 아르투어 니키슈가 지휘한 초연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처음으로 폭넓은 인정을 받았습니다. 7번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확실한 성공을 맛본 유일한 교향곡으로 꼽힙니다.

브루크너 교향곡이 처음이라 지루할까 걱정됩니다. 7번이 입문으로 괜찮나요?

브루크너 입문곡으로 가장 많이 추천되는 곡이 바로 7번입니다. 선율이 또렷하고, 1악장의 첫 주제가 4악장 마지막에 다시 돌아오며 완결감을 줍니다. 처음에는 2악장 아다지오만 따로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바그너 튜바의 어두운 음색만으로도 이 곡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충분하니까요.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거장들이 쌓아 올린 소리의 성당

브루크너의 7번이 마음에 남았다면, 그 곁에 놓고 들으면 좋은 교향곡들이 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며 서로를 의식했던 라이벌, 브루크너가 신처럼 우러른 선배, 그리고 비슷한 향수를 품은 이웃들의 음악입니다. 클래식은 이렇게 서로 이어진 이야기를 알수록 더 크게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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