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펠릭스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1809~1847) - 곡명
-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 - 작곡 기간
- 1838 ~ 1844
- 악장
- 3악장 (끊김 없이 연결)
I. Allegro molto appassionato (e단조)
II. Andante (C장조)
III. Allegretto non troppo – Allegro molto vivace (E장조)
1악장. 매우 빠르고 정열적으로
2악장. 느리게
3악장. 너무 빠르지 않게 – 매우 빠르고 생기있게 - 편성
- 독주 바이올린,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5부
- 초연
- 1845년 3월 13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닐스 가데 지휘 / 페르디난트 다비트 독주 - 연주 시간
- 약 27분
대부분의 협주곡은 독주자를 한참 기다리게 합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만 해도 오케스트라가 3분 가까이 주제를 펼친 다음에야 독주가 입을 엽니다. 그런데 이 곡은 다릅니다. 지휘봉이 떨어지고 단 한 마디 반, 약 4초가 지나면 바이올린이 곧장 첫 음을 노래하거든요. 200년 가까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바이올린 협주곡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이 파격을 설계한 멘델스존 본인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피아니스트가 쓴 바이올린 협주곡
멘델스존의 본업은 피아노와 작곡, 그리고 지휘였습니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만져보긴 했지만 무대에서 켤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죠. 자기 손으로 연주할 수 없는 악기를 위해 곡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입니다. 어느 음이 자연스럽게 울리고 어느 손가락 자리가 무리인지, 활을 어떻게 써야 그 선율이 살아나는지—이건 악보 위의 이론만으로는 알 수 없는 영역이거든요.
그래서 그에게는 사람이 한 명 필요했습니다. 바로 페르디난트 다비트였죠. 두 사람은 묘한 인연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멘델스존은 1809년 함부르크에서, 다비트는 1810년 같은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한 살 터울로 같은 도시에서 난 두 음악가가, 훗날 라이프치히에서 음악감독과 악장으로 다시 만난 거예요.
1835년 멘델스존이 스물여섯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는 곧바로 옛 친구 다비트를 악장(콘서트마스터) 자리에 앉힙니다. 무대 위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제1바이올린 수석이지요. 멘델스존이 머릿속에 품은 바이올린의 소리를 현실로 옮겨줄 가장 믿음직한 파트너가, 매일 같은 무대에 서게 된 겁니다.
피아니스트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쓴다는 게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 된 지점이 여기예요. 멘델스존은 바이올린의 한계를 몸으로 알지 못했기에, 거리낌 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그 요구가 실제로 켜질 수 있는지는 다비트가 무대 감각으로 걸러줬죠. 무모한 상상력과 냉정한 현실 감각이 한 곡 안에서 맞물린 겁니다. 독주 파트가 어렵되 결코 억지스럽지 않은 이유, 화려하되 늘 노래로 들리는 이유가 바로 이 두 사람의 분업에 있습니다.

“첫머리가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네”
이야기는 183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멘델스존은 다비트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냅니다. “자네를 위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고 싶네. e단조로 된 곡이 머릿속을 맴도는데, 첫머리가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네.” 음악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바이올린 협주곡이 이 한 문장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구상에서 완성까지 무려 6년이 걸립니다. 곡이 안 풀려서가 아니라, 멘델스존이 너무 바빴기 때문이에요. 그 사이 그는 라이프치히 음악원(지금의 라이프치히 음대) 설립을 주도했고,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부름을 받아 베를린과 라이프치히를 오가는 이중생활을 했습니다. 영국 순회도 빠질 수 없었죠.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연주하고, 버밍엄 음악제를 지휘하고, 스코틀랜드의 거친 해안을 여행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 협주곡의 악상이 조용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6년이라는 시간이 순전히 일정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멘델스존은 이 곡의 기준을 유난히 높게 잡았거든요. 다비트에게 보낸 편지가 수십 통에 달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두 사람이 어떻게 일했는지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 패시지가 바이올린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직접 켜보고 알려주겠나?” “여기서 음역이 너무 높아지면 톤이 얇아지지 않을까 걱정이네.” “독주 도입부를 여러 가지로 시도해봤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작곡가가 연주자에게 이렇게까지 매달려 의견을 구한 사례는 당시로선 드문 일이었습니다. 다비트는 단순한 자문이 아니라 사실상 공동 창작자에 가까웠어요. 독주 파트의 핑거링과 보잉, 음역 배분에 다비트의 실전 감각이 곳곳에 스며 있으니까요. 이 곡의 독주 파트가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그토록 자연스럽게 노래하게 만드는 비밀이, 바로 이 끈질긴 주고받음에 있습니다.
완성, 그러나 지휘봉은 다른 손에
1844년 9월 16일, 마침내 곡이 완성됩니다. 그런데 정작 멘델스존의 몸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몇 해에 걸친 과로와 스트레스가 차곡차곡 쌓인 결과였죠. 이듬해 3월 13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린 초연의 지휘봉은, 그가 아니라 닐스 가데에게 넘어갑니다. 덴마크 출신의 가데는 멘델스존이 아끼던 후배이자 게반트하우스의 부지휘자였어요. 멘델스존은 병으로 지휘대에 서지 못한 채 후배에게 무대를 맡겨야 했고, 정작 이 곡을 자기 손으로 처음 지휘한 것은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그해 10월에 이르러서였습니다.
다비트의 독주로 울려 퍼진 첫 연주는 곧장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청중은 열광했고 비평가들도 입을 모아 찬사를 보냈죠. 훗날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은 이 곡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독일에는 네 개의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다. 가장 위대하고 타협 없는 것은 베토벤의 것이다. 브람스의 것이 그 진지함에서 겨룬다. 가장 화려하고 매혹적인 것은 브루흐가 썼다. 그러나 가장 내밀한, 마음의 보석은 멘델스존의 것이다.” 마음의 보석. 이보다 이 곡을 정확히 부른 별명은 없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멘델스존은 이 보석이 누린 긴 영광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초연 2년 반 뒤인 1847년 11월, 서른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그해 봄 누나 파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가져온 충격이 결정적이었다는 게 당대 기록들의 공통된 증언입니다. 이 협주곡은 그가 남긴 마지막 대규모 관현악 걸작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이 곡이 이전의 협주곡과 달랐던 점
멘델스존의 Op.64가 나오기 전, 바이올린 협주곡의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모차르트의 다섯 곡, 베토벤의 기념비적인 D장조, 그리고 파가니니의 현란한 기교 쇼—이런 작품들이 무대를 채우고 있었죠. 특히 파가니니의 열기가 식지 않던 시절이라,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하면 “독주자가 얼마나 초인적인 기교를 보여주느냐”에 무게가 쏠려 있었습니다. 멘델스존은 그 흐름에서 한 발 물러나, 기교보다 음악 자체의 이야기와 구조에 집중하는 협주곡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 야심이 네 가지 파격으로 나타나죠.
독주자의 즉각 등장. 앞서 말했듯, 오케스트라가 딱 한 마디 반만 깔아주면 바이올린이 곧바로 첫 주제를 노래합니다. 긴 서주로 기대를 부풀리는 대신, 주인공을 곧장 무대 한가운데로 밀어 넣은 거예요.
카덴차의 자리를 옮기다. 전통적으로 카덴차는 악장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놓였습니다. 멘델스존은 이 카덴차를 발전부와 재현부 사이로 끌어왔죠. 덕분에 카덴차가 단순한 기교 자랑이 아니라, 곡의 드라마를 다음 장면으로 넘기는 구조적 경첩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악장 사이를 끊지 않다. 1악장에서 2악장으로, 2악장에서 3악장으로 쉼 없이 이어지는 구조를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전면적으로 시도한 건 멘델스존이 사실상 처음이었습니다. 악장 사이에 박수가 끼어들 틈을 아예 없애, 곡 전체를 하나의 긴 호흡으로 듣게 만든 겁니다.
카덴차를 작곡가가 직접 쓰다. 즉흥에 맡기던 카덴차를 멘델스존은 악보에 빈틈없이 적어 넣었습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못 박아둔 이 결정은, 이후 브람스와 차이콥스키가 따르는 선례가 되죠.
네 가지를 따로 보면 사소한 손질 같지만, 합쳐 놓으면 협주곡이라는 장르의 무게중심이 통째로 옮겨갑니다. 독주자를 기다리게 하지 않고, 박수로 흐름을 끊지 않고, 기교의 절정마저 이야기의 한 장면으로 흡수하는 것—이건 “독주자를 자랑하는 무대”였던 협주곡을 “하나의 서사를 들려주는 작품”으로 바꿔놓은 일이었어요. 1845년의 청중이 첫 4초에 놀랐다면, 음악사는 그 뒤에 따라온 이 구조적 발상에 더 오래 놀랐습니다.
한 음 한 음, 실황으로 따라가기
아래 영상은 챗 후프스가 타르모 펠토코스키·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연주한 실황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네 가지 파격이 실제로 어떻게 들리는지, 첫 4초부터 귀를 열고 따라가 보세요.
악장별 감상 가이드
1악장: Allegro molto appassionato — e단조, 약 13분
곡이 시작되면 현악기들이 잔잔한 트레몰로를 깔아줍니다. 그 위로 독주 바이올린이 곧장 노래를 시작하죠. e단조의 서글프면서도 그윽한 색채 위에 긴 호흡의 선율이 그려지는데, 이 첫 주제가 정말 압권입니다. 한번 들으면 평생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종류의 선율이에요. 오래 참아온 이야기를 마침내 꺼내놓은 사람처럼,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깊은 감정이 배어 있습니다.
선율은 처음엔 중음역에서 조용히 시작하지만, 점점 고음역으로 올라가며 감정을 끌어올립니다. 이때 현악 반주의 트레몰로가 마치 가슴이 두근거리는 듯한 긴장을 만들어내거든요. 독주가 한껏 차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순간의 호흡, 그 밀고 당김을 가만히 들어보세요.
첫 주제의 긴장이 이어진 뒤, 갑자기 공기가 바뀝니다. 조성이 G장조로 옮겨가면서 목관—특히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밝고 따뜻한 두 번째 주제를 불러주죠. 첫 주제의 애절함과 정반대로, 포근하고 희망적인 노래입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이 선율을 이어받는 대목이 1악장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온기 어린 순간이에요.
발전부에 접어들면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두 주제의 조각들이 쪼개지고 뒤섞이고 변형되면서 긴장이 치솟죠. 그리고 드디어 카덴차가 옵니다. 오케스트라가 멈추고 바이올린 혼자 남는 순간, 발전부에서 쌓아 올린 긴장이 하나의 거대한 독백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카덴차가 끝나갈 무렵 오케스트라가 아주 조용히 다시 스며들면서 재현부의 첫 주제가 자연스럽게 돌아오는데—기교의 절정과 구조의 전환점이 정확히 포개지는 이 설계는, 알고 들으면 소름이 돋습니다.
코다에서 바이올린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격정적으로 달립니다. 1악장이 끝나는가 싶은 바로 그 순간, 바순 한 대가 홀로 B음을 길게 잡아주죠. 이 소박한 음 하나가 1악장과 2악장을 잇는 다리입니다. 덕분에 두 악장 사이에 박수가 끼어들 수 없고, 감정의 흐름도 끊기지 않습니다.
2악장: Andante — C장조, 약 8분
바순이 건네준 징검다리를 밟고 건너오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C장조의 따뜻한 빛이 은은하게 퍼지고, 바이올린은 이 곡에서 가장 서정적인 노래를 시작하죠. “클래식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안단테 중 하나”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악장입니다.
1악장에서 격정적으로 달리던 독주자가 여기서는 기교를 거의 내려놓습니다. 방 안에서 혼자 읊조리듯 조용한 노래를 이어가죠. 오케스트라도 한 걸음 물러나 독주를 감쌀 뿐, 절대 앞에 나서지 않습니다. 현악 반주가 푹신한 쿠션처럼 독주를 받쳐주는 질감을 느껴보세요.
중반에 들어서면 분위기에 미묘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단조의 색채가 슬쩍 스며들면서,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조각이 지나가는 것 같은 순간이 오거든요. 바이올린 선율에 옅은 불안이 깃들고 화성도 조금 어두워집니다. 하지만 그림자는 오래가지 않아요. 곧 원래의 밝은 노래로 돌아오는데, 그 복귀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잠시 먼 산을 바라보다 다시 눈앞으로 시선을 거두는 것 같습니다. 이 중간부가 있어 2악장은 그저 “예쁜 느린 악장”을 넘어 감정의 깊이를 얻습니다.
3악장: Allegretto non troppo – Allegro molto vivace — E장조, 약 6분
짧은 경과구의 긴장이 풀리는 그 순간, 3악장이 터져 나옵니다. 조성이 E장조로 바뀌면서 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밝고 경쾌한 세계가 열리죠. 멘델스존에게는 늘 “요정의 음악”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습니다. 열일곱에 쓴 《한여름 밤의 꿈》 서곡에서 처음 보여준 가볍고 반짝이는 스케르초 감각—그 매력이 이 악장에서 가장 원숙한 모습으로 폭발합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빠르고 가벼운 스타카토로 날아다니는 모습은 나비가 꽃밭을 누비는 것 같아요. 활이 현 위를 스치듯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반짝이는 음색, 그 질감 자체가 쾌감을 주더군요. 중간에 트럼펫과 팀파니가 가세하며 팡파르 같은 힘찬 주제가 등장하거든요. 이 순간 음악의 무게가 확 달라집니다. 축제의 퍼레이드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듯한 에너지죠.
코다에서 바이올린은 마지막 전력 질주에 돌입합니다. E장조의 찬란한 화음이 홀을 가득 채우며 곡이 닫힐 때, e단조의 애절함으로 시작된 여정이 마침내 E장조의 빛으로 이어지지요. 어둠에서 빛으로. 이 극적인 완결감 때문에, 3악장이 끝나면 객석에서 환호가 터지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추천 음반: 같은 곡, 다른 세계
같은 악보라도 누가 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곡처럼 들립니다. 멘델스존 협주곡은 특히 그래요. 화려한 기교로 가릴 곳이 없으니, 연주자의 성격이 그대로 노출되거든요. 처음 한 음반을 정하기 어렵다면, 성격이 또렷이 갈리는 세 갈래로 접근해 보세요.
불꽃 쪽 — 정경화. 한국 청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명연을 꼽으라면 단연 정경화입니다. 샤를 뒤투아·몬트리올 교향악단과 남긴 녹음은, 단조의 애절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드라마가 일품이에요. 2악장의 노래가 이렇게까지 절절할 수 있나 싶을 만큼, 감정을 숨기지 않더군요. 이 곡을 “예쁜 곡”으로만 알던 사람이라면 생각이 바뀔 연주죠.
기품 쪽 — 나탄 밀스타인. 정반대 편에는 고전적 절제의 레퍼런스가 있습니다. 밀스타인은 감정을 쏟아붓는 대신 한 발 물러서서, 선율의 선과 균형을 또렷하게 빚어냅니다. 빠른 패시지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톤, 군더더기를 걷어낸 프레이징이 특징이에요. “이 곡의 골격이 이렇게 단단했구나”를 깨닫게 해주는 쪽입니다.
투명 쪽 — 현대의 젊은 명인들. 위에 실린 챗 후프스나 상단의 강주미처럼, 요즘 세대의 연주는 맑고 투명한 톤으로 곡의 노래하는 성격을 부각합니다. 녹음 기술의 발전 덕에 디테일이 또렷하게 잡혀, 입문자가 구조를 따라가기에도 가장 친절하죠. 처음 듣는 한 장으로는 이 계열이 무난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셋을 차례로 들어보면, 같은 곡 안에 이렇게 다른 얼굴이 숨어 있었나 새삼 놀라게 될 거예요. 그 발견 자체가 클래식을 오래 듣는 즐거움이기도 하고요.
악보와 함께 듣기
선율의 흐름을 눈으로 따라가면, 귀로만 들을 때 놓쳤던 구조가 보입니다. 독주가 한 마디 반 만에 등장하는 첫 장면, 발전부와 재현부 사이에 놓인 카덴차, 1악장 끝의 바순 한 음—악보 위에서 직접 확인해 보세요.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거든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Op.64 악보 보기 (IMSLP)
이 곡이 남긴 것
180년 넘게 무대에서 살아남은 곡이 그저 “예뻐서” 그런 건 아닙니다. 이 협주곡이 여전히 숨 쉬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협주곡의 문법을 바꿨습니다. 독주자의 즉각 등장, 카덴차의 구조적 재배치, 악장 간 끊김 없는 연결—이 혁신들은 이후 나온 거의 모든 중요한 바이올린 협주곡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브람스가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1878)을 쓸 때도, 차이콥스키가 D장조 협주곡(1878)을 구상할 때도, 멘델스존의 이 곡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죠.
기교와 음악의 균형이 절묘합니다. 독주 파트는 분명 어렵습니다. 그런데 기교가 음악을 압도하는 대목이 단 한 곳도 없어요. 모든 기교적 요소가 감정 표현에 봉사하도록 짜여 있거든요. 바이올리니스트들 사이에 “기술은 전제일 뿐, 이 곡은 노래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도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감정의 폭이 넓습니다. 27분 남짓한 시간 안에 애절함, 따뜻함, 환희, 고독, 축제의 에너지까지 담겨 있거든요. 짧은 곡인데도 감정이 단조롭지 않아서, 듣는 사람의 그날 기분에 따라 매번 다른 악장, 다른 대목에서 마음이 멈춥니다.
고전과 낭만의 이상적인 접점에 서 있습니다. 멘델스존은 잊혀 가던 바흐를 무대로 되살린 사람이기도 했죠. 그런 고전적 구조 감각과 낭만의 감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곡이 바로 이 협주곡입니다. 소나타 형식의 뼈대는 견고하되 그 안을 흐르는 피는 뜨거운 낭만의 것—이 균형이 시대를 넘어서는 내구력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알아두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
“쉬운 곡”이라는 오해. 이 곡을 두고 “기교적으로 무난한 편”이라는 말이 종종 따라붙습니다. 큰 오해예요. 화려한 기교로 약점을 가릴 구석이 없기 때문에, 톤의 질감과 프레이징의 호흡, 감정의 진정성이 그대로 드러나거든요. 음대 입시와 졸업 리사이틀, 국제 콩쿠르 1차에 단골로 오르는 이유가 그겁니다. 쉬워 보이는데 제대로 하기는 가장 어려운 곡, 그게 이 협주곡의 진짜 얼굴입니다.
다비트가 키운 또 한 명의 거장. 페르디난트 다비트는 라이프치히 음악원의 초대 바이올린 교수로서 19세기 후반 독일 바이올린 학파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그가 가르친 제자 중 한 명이 바로 요제프 요아힘이에요. 그리고 그 요아힘이 훗날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초연자가 됩니다. 멘델스존의 곡을 함께 빚은 손이, 한 세대를 건너 브람스의 명곡으로 이어진 셈이죠.
잇달아 나온 또 하나의 걸작. 이 협주곡을 완성한 직후인 1845년, 멘델스존은 피아노 트리오 2번 c단조 Op.66도 세상에 내놓습니다. 협주곡의 빛나는 서정과는 또 다른, 어둡고 격정적인 실내악 걸작이었죠.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작품을 짧은 시차로 완성한다는 건 보통의 집중력과 체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3월 13일을 기억하는 법. 이 곡의 초연일은 1845년 3월 13일입니다. 매년 그날이 오면 이 협주곡을 한 번 꺼내 듣는, 작은 의식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180년 전 게반트하우스에서 이 선율이 처음 울려 퍼진 날을 떠올리면서요.
자주 묻는 질문 (FAQ)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어떤 곡인가요?
왜 “3대 바이올린 협주곡”에 들어가나요?
클래식 입문자가 듣기에 어렵지 않을까요?
왜 e단조로 시작해서 E장조로 끝나나요?
카덴차가 정말 작곡가가 직접 쓴 건가요?
비슷한 분위기의 곡을 더 듣고 싶다면?
바이올린의 노래를 더 따라가고 싶다면
멘델스존의 협주곡에서 시작한 마음이라면, 같은 악기가 그려낸 다른 풍경들도 분명 반갑게 들릴 거예요. 바이올린 협주곡의 큰 지도를 먼저 펼쳐본 뒤, 멘델스존과 가까운 곡들로 한 걸음씩 옮겨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