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조수미 — 카라얀의 마지막 오페라에서 데뷔 40주년까지

연주자
조수미 (소프라노 · 콜로라투라)
출생
1962년
수학
서울대 성악과 ·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카를로 베르곤치 사사)
레이블
데카 · 에라토(현 워너 클래식스) · 도이치 그라모폰 · SM클래식스
주요 이력
1986 트리에스테 오페라 데뷔
1989 카라얀 마지막 오페라 녹음 참여
1993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오페라 음반
2023 금관문화훈장 · 2026 데뷔 40주년
공식 프로필
grammy.com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베르디 극장. 한국에서 온 신인 소프라노가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처음 섰습니다.[1] 객석에는 그날 무대를 지켜본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비서였습니다. 이듬해 초 잘츠부르크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이 신인의 커리어를 통째로 바꿔놓게 됩니다.[2]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2026년, 조수미는 데뷔 40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SM엔터테인먼트 산하 클래식 레이블 ‘SM클래식스’와의 전속 계약을 발표했습니다.[3] 카라얀의 마지막 오페라 녹음에 이름을 올린 성악가가 이제 엑소 수호와 듀엣을 부릅니다.[4] 이 낙차가 황당하게 들린다면, 그 4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따라가 보는 게 순서겠죠.

다가오는 공연

300달러와 로마

조수미는 1962년생으로, 네 살에 피아노를, 여섯 살에 성악 레슨을 시작했습니다.[5] 선화예술중·고교를 거쳐 1981년 서울대 성악과에 수석으로 입학했는데, 그다음 전개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본인 회고에 따르면 연애에 빠져 학업을 놓았고 당시 졸업정원제 아래에서 1년 만에 성적이 꼴찌까지 떨어져 학교에서 제적당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쥐여준 300달러를 들고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죠.[6]

1983년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들어가 명테너 카를로 베르곤치 등에게 배웠고 1985년 졸업했습니다.[7] 그 직후부터 나폴리, 엔나, 바르셀로나, 프레토리아의 국제 성악 콩쿠르를 잇달아 석권했습니다.[8] 정점은 1986년 베로나에서 열린 카를로 알베르토 카펠리 국제 콩쿠르였습니다. 주요 콩쿠르 1위 입상자에게만 출전 자격이 주어지는 대회에서 만장일치 1위를 차지한 겁니다.[9] 같은 해 트리에스테의 질다 데뷔가 이어졌습니다. 서울대에서 제적된 학생이 5년 만에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문을 정면으로 연 셈입니다.

카라얀의 마지막 오페라

트리에스테 데뷔 무대를 카라얀의 비서가 지켜봤다는 이야기는 앞서 했습니다. 조수미의 회고에 따르면 1987년 초 그 비서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잘츠부르크로 와서 카라얀의 오디션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었죠.[10] 오디션에서 〈리골레토〉의 아리아를 부르자 카라얀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지? 수미 조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목소리, 한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신의 선물이야.”[11] 이 표현은 조수미 본인의 회고이지만, LA 필하모닉 공식 프로필도 카라얀이 그녀의 목소리를 “하늘이 내린 목소리(a voice from above)”라 불렀다고 별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12]

카라얀은 그 자리에서 베르디 〈가면무도회〉의 오스카 역을 제안하며 1989년 1월 빈에서 녹음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13]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1989년 초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빈 필하모닉,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진행된 도이치 그라모폰 녹음에서 조수미는 오스카를 불렀고 이 음반은 카라얀 생애 마지막 오페라 스튜디오 녹음이 됐습니다.[14] 그라모폰은 이 녹음의 조수미를 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움 그 자체, 음색에는 미소가, 해석에는 경쾌한 리듬이 있다”고 적었습니다.[15]

카라얀은 이 녹음을 무대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1989년 7월 16일 잘츠부르크 근교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고 그가 지휘하기로 했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가면무도회〉 신규 프로덕션은 게오르그 솔티가 이어받았습니다.[16] 공교롭게도 이 인수인계가 조수미의 다음 챕터를 열었습니다. 솔티와의 작업이 여기서 시작됐거든요. 1991년 솔티·빈 필하모닉의 〈마술피리〉 전곡 녹음에서 밤의 여왕을 맡았고[17] 이듬해 같은 콤비의 R. 슈트라우스 〈그림자 없는 여인〉에서 ‘매의 목소리’ 역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음반이 1993년 제35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오페라 음반상을 받으면서 조수미의 이름은 공식 수상자 명단에 올랐습니다.[18]

극장 데뷔의 이력도 같은 시기에 쌓였습니다. 1988년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요멜리의 〈파에톤〉으로 데뷔했고[19] 1989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 배역이었던 질다로 다시 섰습니다.[20] 1995년 낙소스에서 나온 로시니 〈탄크레디〉 전곡 녹음은 1996년 그래미 최우수 오페라 음반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21] 밤의 여왕, 질다, 그리고 도니체티 벨칸토의 주역들까지 —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의 목록이 곧 그녀의 이력서가 됐습니다.

K-클래식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

2000년대 이후의 조수미는 오페라 극장 바깥으로 활동 반경을 계속 넓혔습니다. 유네스코는 그녀를 ‘평화예술인(Artist for Peace)’으로 위촉해 공식 명단에 올렸고[22] 2015년에는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영화 〈유스〉에서 데이비드 랑이 작곡한 ‘Simple Song #3’을 불렀습니다. 이 곡은 제88회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는데, 규정상 공식 후보는 작곡가인 랑이고 조수미는 그 곡을 부른 목소리로 크레딧됐습니다.[23] 오스카 후보곡을 부른 최초의 한국 성악가라는 타이틀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국가가 주는 공인도 이어졌습니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이자 K-클래식의 선구자로, 38년간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공적”으로 조수미에게 문화훈장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하기로 했습니다.[24] 2025년에는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최고 등급인 코망되르를 받았는데, 한국인으로는 2011년 지휘자 정명훈에 이어 두 번째였습니다.[25]

다음 세대를 키우는 일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2024년 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고성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를 창설했는데, 첫 대회에 47개국에서 500명이 지원했습니다. 2026년 7월의 제2회 대회에는 55개국 500여 명이 몰렸고 조수미가 직접 심사위원으로 앉았습니다.[26] KAIST와의 인연도 눈에 띕니다. 2021년 문화기술대학원 초빙석학교수로 임용돼 ‘조수미 공연예술연구센터’를 세우고 AI 기반 음악 기술 연구에 참여했고, 2024년에는 명예과학기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같은 해 KAIST는 교내 다목적 홀에 ‘조수미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27]

그리고 2026년, 데뷔 40주년입니다. 4월에 SM클래식스와 레코딩 전속 계약을 맺고 40주년 기념 앨범 〈CONTINUUM〉을 냈습니다. 신곡 11곡에는 엑소 수호와의 듀엣,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의 참여가 포함돼 있습니다.[28] 5월 창원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전국 20여 개 도시를 도는 투어가 진행 중이고 5월 부천 공연은 티켓 오픈 3분 만에 매진됐습니다.[29] 해외 일정도 빼곡했습니다. 1월 런던 바비칸센터 주최 마스터클래스, 3월 런던 카도건 홀과 뉴욕 카네기홀 쟁켈 홀에서의 40주년 기념 무대가 이어졌죠.[30] 6월에는 삼성호암상 예술상을 받으며 이렇게 소감을 밝혔습니다. “외롭고 치열했던 시간 속에서도 음악과 삶에 대한 신념을 지켜왔고, 클래식과 대중의 경계를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 왔다.”[31] 5월에는 외교부가 그녀를 문화협력대사로 임명했습니다.[32]

앨범 듣는 순서

첫 장은 1991년 솔티·빈 필하모닉의 〈마술피리〉입니다. 조수미의 대명사가 된 밤의 여왕이 담긴 전곡 녹음이라서요.[33] 2막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에 끓어오르고’에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는 성종이 왜 존재하는지가 3분 만에 설명됩니다. 초고음의 스타카토 연타가 곡예가 아니라 캐릭터의 분노로 들리는지 확인하며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모차르트 오페라의 문법 자체가 궁금해졌다면 돈 조반니 해설로 이어가도 좋습니다.

모차르트 〈마술피리〉 2막 밤의 여왕 아리아 — 조수미 (공식 음원)

두 번째는 1989년 카라얀의 〈가면무도회〉입니다. 위에서 따라온 그 녹음, 카라얀의 마지막 오페라 스튜디오 레코딩입니다. 도밍고와 빈 필하모닉 사이에서 스물여섯의 조수미가 부르는 오스카는 이 무거운 기록물 안에서 유일하게 가벼운 존재인데, 그 가벼움이 전체를 살립니다. 카라얀이 왜 무명의 한국인 신인을 여기에 앉혔는지는 음반이 직접 설명합니다.

세 번째는 에라토 시절의 아리아 녹음들입니다. 에라토 레이블에 남긴 스튜디오 녹음들은 조수미의 목소리가 가장 싱싱하던 시기의 기록으로, 데뷔 배역 질다의 ‘Caro nome’도 여기 담겨 있습니다.[34] 트리에스테의 그 밤에 카라얀의 비서가 들었을 소리를 짐작하게 하는 트랙이죠.

베르디 〈리골레토〉 1막 ‘Gualtier Maldè… Caro nome’ — 조수미, 에라토 스튜디오 녹음 (공식 음원)

마지막은 한국 가곡집 〈향수〉입니다. 조수미의 첫 순수 한국 가곡 앨범으로, ‘그리운 금강산’ 같은 곡에서 세계 무대의 콜로라투라 기교가 우리말 시어와 만납니다.[35] 오페라의 조수미만 알던 분들에게는 이쪽이 오히려 낯설고 신선하게 들릴 겁니다.

‘그리운 금강산’ (한상억 시 · 최영섭 곡) — 조수미, 한국 가곡집 〈향수〉 (공식 음원)

어떤 목소리인가

조수미의 목소리를 다룬 해외 평은 강점의 목록이 일관됩니다. 프랑스 매체 콩세르클라시크는 파리 샤틀레 리사이틀을 두고 “비르투오소적 콜로라투라를 갖춘 매혹적인 경성(輕聲) 소프라노”라 불렀고, 질다와 올랭피아 같은 배역 해석을 “섬세한 인물 조형”으로 평가했습니다.[36] 오페라 뉴스의 리뷰는 “명료함과 정확성”, 그리고 쇼피스에서 빛나는 “밝고 수정 같은 스타카토”를 짚었습니다.[37] 요컨대 가볍고 정확한 악기를 극한까지 다듬은 유형입니다.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3막 광란의 장면 — 조수미, 에라토 ‘Virtuoso Arias’ (공식 음원)

물론 만장일치는 아닙니다. 같은 오페라 뉴스 리뷰는 상행 도약에서 소리가 눌리는 경향과 음색의 단조로움을 함께 지적했습니다.[38] 흥미로운 건 나이가 들며 나온 평가입니다. 뮤직웹 인터내셔널의 벨리니 〈노르마〉 음반 서베이는 쉰을 앞두고 녹음한 조수미의 아달지사를 두고 “은빛이면서도 따뜻한 음색에 마모가 거의 없다”며, 성량으로 밀어붙이는 유형이 아니라 “교활한 유혹자에게 넘어간 순진한 희생자”를 그려내는 인물 해석을 높이 샀고 이탈리아어 딕션에는 “탁월하다(superb)”는 평가를 줬습니다.[39] 기교의 소프라노로 출발해 노래하는 배우로 늙어가는 경로 — 콜로라투라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궤적입니다.

디스코그래피

발매순입니다. 애플 뮤직 링크는 앨범 실물이 확인된 것만 달았고 스포티파이는 검색 링크입니다.

베르디: 가면무도회 앨범 커버

베르디: 가면무도회

도이치 그라모폰 · 1989 녹음 · 카라얀 · 빈 필하모닉

모차르트: 마술피리 앨범 커버

모차르트: 마술피리

데카 · 1991 · 솔티 · 빈 필하모닉

R. 슈트라우스: 그림자 없는 여인 앨범 커버

R. 슈트라우스: 그림자 없는 여인

데카 · 1992 · 솔티 · 빈 필하모닉 · 1993 그래미 수상

Carnaval! 프랑스 콜로라투라 아리아 앨범 커버

Carnaval! 프랑스 콜로라투라 아리아

데카 · 1994 · 보닝 ·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로시니: 탄크레디 앨범 커버

로시니: 탄크레디

낙소스 · 1995 · 제다 · 1996 그래미 노미네이트

Sumi Jo Collection 앨범 커버

Sumi Jo Collection

워너 클래식스 · 2009 · 에라토 시절 녹음 모음

Longing (그리다) 앨범 커버

Longing (그리다)

유니버설 뮤직 · 2015 · 소향 듀엣 ‘꽃밭에서’ 수록

CONTINUUM 데뷔 40주년 스페셜 앨범 커버

CONTINUUM — 데뷔 40주년 스페셜 앨범

SM클래식스 · 2026 · 부천 필하모닉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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