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교향곡 3번 《라인》 — 작곡가가 끝내 지운 이름

끝내 지운 다섯 개의 표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
(Robert Schumann, 1810–1856)
곡명
교향곡 3번 내림마장조, 작품 97 《라인》
(Symphony No. 3 in E♭ major, Op. 97 “Rhenish”)
작곡 기간
1850년 11월 2일 ~ 12월 9일 (약 5주)
악장
5악장
I. Lebhaft (내림마장조)
II. Scherzo: Sehr mäßig (다장조)
III. Nicht schnell (내림가장조)
IV. Feierlich (내림마단조)
V. Lebhaft (내림마장조)

1악장. 생기 있게
2악장. 스케르초: 매우 절제하여
3악장. 빠르지 않게
4악장. 엄숙하게
5악장. 생기 있게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 현 5부
초연
1851년 2월 6일, 뒤셀도르프
로베르트 슈만 지휘 / 뒤셀도르프 시립 관현악단
연주 시간
약 35분

이 곡은 — 슈만이 라인란트로 이주한 직후, 단 5주 만에 쏟아낸 다섯 악장짜리 교향곡입니다. 강과 대성당, 그리고 막 시작된 새 삶의 들뜸이 한꺼번에 들어 있지요.

딱 하나만 듣는다면 — 4악장. 앞선 세 악장 내내, 20분 넘게 입을 다물고 있던 트롬본 세 대가 마침내 들어오며 대성당의 천장을 머리 위로 끌어올립니다.

처음 들을 음반 — 조지 셀 ·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Sony, 1960).

슈만은 이 곡을 한 번도 ‘라인’이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악보 어디에도 그 단어는 없거든요. 오히려 그는 자기가 적어둔 이름들을 출판 직전에 하나씩 지웠습니다.

우리가 아는 별명은 곡이 세상에 나온 뒤 출판사가 붙인 겁니다. 작곡가가 가장 피하고 싶어 한 바로 그것이, 곡의 영원한 이름이 된 셈이지요. 그가 무엇을 지웠고, 왜 지웠을까요. 그리고 왜 그 노력은 끝내 실패했을까요.

로베르트 슈만 1850년경 초상 사진
1850년 무렵의 슈만. 라인란트로 막 삶의 무대를 옮긴 시기다.
먼저 듣기 — WDR 교향악단 · 페트르 포펠카. 글을 읽는 동안 틀어두세요.

뒤셀도르프행 마차에 오른 마흔 살

1850년 9월, 마흔 살의 슈만은 아내 클라라와 함께 라인강변의 도시 뒤셀도르프로 이사했습니다. 시립 음악감독 자리를 받았거든요. 작곡가에게 안정된 봉급과 자기 손으로 지휘할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생긴 건,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전까지의 몇 해는 답답했습니다. 드레스덴에서 그는 변변한 지휘 자리 하나 잡지 못했고, 우울의 골은 점점 깊어졌지요. 1847년에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던 멘델스존이 서른여덟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음악계의 든든한 기둥 하나가 무너진 셈이었습니다. 슈만에게는 새 출발이 절실했습니다.

뒤셀도르프는 그런 사람에게 다른 공기를 내밀었습니다. 라인강이 도시를 끼고 흘렀고, 거리에는 음악 축제의 전통이 살아 있었지요. 부부는 환영 연주회와 만찬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 도시에서 더 유명한 쪽은 아내 클라라였습니다. 당대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꼽히던 사람이거든요. 결혼 전부터 무대를 휩쓸던 그녀의 이름값이, 남편의 새 부임을 한결 든든하게 받쳐줬지요. 클라라는 일기에 이곳의 따뜻한 분위기를 적어두었습니다.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자, 두 사람은 마차를 빌려 강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목적지는 다름 아닌 쾰른이었지요.

피아노 앞의 클라라 슈만과 로베르트 슈만 부부
피아노 앞의 클라라와 그 곁의 로베르트. 이 도시에서 더 유명한 쪽은 아내였다.

공사 중인 대성당 앞에서

쾰른에 도착한 슈만 부부 앞에 거대한 석조 건물이 서 있었습니다. 쾰른 대성당이지요. 그런데 이 성당은 그때 완성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1248년에 첫 돌을 놓고 무려 600년 동안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그러니까 중세부터 짓다 만 채로 버려졌던 건물이었거든요.

마침 슈만이 도착하기 몇 해 전인 1842년부터, 프로이센이 국가적 사업으로 공사를 다시 시작한 참이었습니다. 중세의 설계도 그대로, 다만 철골 같은 새 기술을 더해서요. 슈만이 본 것은 완성된 성당이 아니라, 수백 년 전 꿈이 눈앞에서 다시 일어서고 있는 현장이었습니다. 비계와 기중기 사이로 첨탑의 윤곽이 자라나고 있었지요. (대성당은 그가 죽고 24년이 지난 1880년에야 완공됩니다.)

그해 11월, 이 대성당에서 큰 행사가 열렸습니다. 쾰른 대주교 요하네스 폰 가이셀이 추기경에 오르는 서임식이었지요. 수백 개의 촛불, 향연기, 라틴어 성가가 미완성의 거대한 공간을 가득 채웠을 겁니다. 의식의 장엄함이 슈만의 머릿속에 깊이 박혔습니다.

흥미로운 건 슈만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거든요. 그러니 그를 사로잡은 건 신앙의 내용이 아니라, 인간이 돌을 쌓아 하늘을 향해 올린 그 거대한 의지 자체였을 겁니다.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책상에서는 펜이 멈추지 않게 됩니다.

5주, 그리고 다섯 악장

작곡은 1850년 11월 2일에 시작해 12월 9일에 끝났습니다. 5주가 조금 넘는 기간이었지요. 그 안에 다섯 개의 악장, 35분짜리 교향곡 전체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스케치가 아니라 완성된 총보까지 말입니다.

이 속도는 슈만에게 익숙한 리듬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한 장르에 빠지면 몇 주 만에 쏟아내고 다음으로 건너뛰는 사람이었거든요. 1840년 한 해에는 가곡만 100곡 넘게 썼습니다. 사람들이 그해를 ‘가곡의 해’라 부를 정도였지요. 이듬해에는 교향곡으로 갈아탔습니다. 클라라와 막 결혼해 행복이 정점에 달했을 때, 음악은 그 안에서 둑을 터뜨리듯 흘러나왔습니다.

《라인》은 그 폭발적 집중이 마지막으로 온전하게 작동한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그의 정신은 빠르게 무너지거든요. 그러니 이 교향곡에 감도는 거침없는 에너지는, 어떤 의미로는 한 작곡가가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했던 마지막 기록이기도 합니다.

다섯 악장이라는 구성부터 평범하지 않습니다. 베토벤 이래 교향곡은 네 악장이 표준이었으니까요. 슈만은 가운데에 악장 하나를 더 끼워 넣었습니다. 그 한 악장이 이 곡의 심장이 됩니다. 다만 거기까지 가려면, 먼저 그가 지운 이름들부터 봐야 합니다.

슈만이 지운 이름들

자필 악보에는 악장마다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2악장에는 ‘라인강의 아침'(Morning on the Rhine), 4악장에는 ‘어느 엄숙한 의식의 반주처럼’이라는 긴 문구가 적혀 있었지요. 음악만으로는 다 전하지 못할까 봐, 슈만이 직접 풍경의 이름표를 달아둔 겁니다.

그런데 출판 직전, 슈만은 이것들을 전부 지우라고 출판사에 지시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는 음악에 표제를 달면 듣는 사람이 거기에만 매달린다고 봤거든요. 그림을 미리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그림밖에 못 듣는다는 겁니다. 4악장의 긴 문구는 그냥 ‘엄숙하게'(Feierlich) 한 단어로 줄었습니다. 풍경은 음악 속에 숨고, 표지판은 사라졌지요.

이건 단순한 변덕이 아니었습니다. 평생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한 슈만이 오래 붙들어온 신념이었지요. 음악은 풍경의 설명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본 강과 성당을 음표 속에 녹여 넣되, 그 이름만은 지웠습니다.

때마침 음악계는 바로 이 문제로 갈라지던 참이었습니다. 한쪽에는 음악에 문학적 줄거리를 입히려던 리스트와 베를리오즈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음악은 음악일 뿐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슈만은 두 세계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 있었습니다. 머릿속엔 분명한 그림이 있는데, 그걸 청중에게 떠먹여 주기는 싫었던 겁니다. 표제를 적었다 지운 흔적은, 그 망설임이 악보에 그대로 화석으로 남은 셈이지요.

그런데 정작 곡이 세상에 나오자, 사람들은 라인강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가 곡 전체에 ‘라인’이라는 이름을 붙여버렸지요. 작곡가가 표제를 다 지운 자리에, 더 크고 더 떼어내기 힘든 표제 하나가 통째로 들어선 겁니다. 슈만이 가장 막고 싶어 했던 일이 가장 완벽하게 일어난 셈입니다.

💡 사실은요 — 《라인》이라는 별명은 슈만이 붙인 게 아닙니다. 그는 악보에 적었던 표제를 전부 지웠고, 초연 뒤 출판사가 이 별명을 달았지요(영문 위키피디아·여러 악단 프로그램 노트). 슈만 본인은 음악을 특정 풍경으로 못 박는 일을 평생 경계했습니다.

강이 흐르는 첫 세 악장

1악장 — 박자를 비껴가며 솟구치는 첫 주제

첫 음부터 오케스트라 전체가 위로 도약합니다. 호른과 현이 함께 솟구치는 주제인데, 듣다 보면 묘하게 발이 걸립니다. 3박자 마디 안에서 강세가 2박 단위로 어긋나 있거든요. 음악 용어로는 헤미올라라고 합니다. 박자를 세려던 귀가 자꾸 헛디디게 되지요.

이 어긋남이 강물의 느낌을 만듭니다. 물은 정확한 박자로 흐르지 않으니까요. 멈칫하다 밀려오고, 다시 비껴 흐릅니다. 슈만은 표제를 지웠지만, 음악의 몸짓에는 강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1악장 내내 이 첫 주제가 형태를 바꿔가며 돌아오는데, 그때마다 물줄기가 새 굽이를 도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이 가장 먼저 사로잡히는 게 바로 이 첫 주제예요. 한번 귀에 박히면 좀처럼 안 떠나거든요. 슈만은 영리하게도 가장 기억하기 쉬운 선율을 맨 앞에 던져두었습니다. 그러고는 나머지 악장 곳곳에 그 그림자를 슬쩍슬쩍 드리워, 35분짜리 곡을 하나의 끈으로 묶지요.

🎧 여기서 들으세요 — 곡이 시작하자마자 첫 주제가 위로 솟구치는데, 마디 선을 무시하고 강세가 비껴가는 그 어긋남에 귀를 두세요. 박자를 못 세겠다 싶으면 제대로 듣고 있는 겁니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 · 파보 예르비. 다섯 악장의 흐름을 한 번에 따라가기 좋은 연주다.

2악장 — ‘라인강의 아침’이라 불렸던 춤곡

슈만이 지운 제목 ‘라인강의 아침’이 붙어 있던 악장입니다. 스케르초라고 적혀 있지만 빠르게 몰아치지 않습니다. ‘매우 절제하여'(Sehr mäßig)라는 지시대로, 느긋한 렌틀러 — 독일 시골에서 추던 3박자 춤곡 — 의 걸음으로 움직이지요.

낮은 현과 바순이 둔중하게 깔리는 첫 주제는 강물보다 강변에 가깝습니다. 안개 낀 아침, 물가를 따라 천천히 걷는 사람의 발걸음 같은 음악이거든요. 중간에 목관이 살짝 밝게 끼어들 때면 강 건너로 햇살이 번지는 듯합니다. 슈만이 표제를 지운 건 어쩌면 잘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름 없이 들어도 이미 충분히 그림이 보이니까요.

3악장 — 숨을 고르는 짧은 노래

3악장은 가장 짧고 가장 사적입니다. 클라리넷과 바순이 나직하게 노래를 주고받지요. 지시어는 ‘빠르지 않게'(Nicht schnell), 그게 전부입니다. 격정도 장엄함도 없습니다. 거실에서 흥얼거리는 작은 가곡처럼 들리거든요.

이 악장은 일부러 작게 쓰였습니다. 바로 다음에 올 거대한 4악장을 위해, 슈만은 여기서 청중의 숨을 가라앉혀 둡니다. 가장 조용한 방을 지나야 가장 높은 천장 아래 서게 되니까요. 다섯 악장 구성이 단순한 변칙이 아니라는 게 여기서 드러납니다. 이 짧은 쉼표가 없었다면, 4악장의 충격은 절반으로 줄었을 겁니다.

공사 중이던 19세기 쾰른 대성당 전경
슈만이 본 쾰른 대성당. 왼쪽 크레인이 말해주듯, 600년째 짓고 있던 공사 현장이었다.

대성당이 머리 위로 솟는 4악장

여기가 이 교향곡의 심장입니다. 그리고 트롬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트롬본 세 대는 1악장부터 3악장까지, 그러니까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음도 내지 않습니다. 무대에 앉아 악기를 손에 들고만 있지요. 슈만은 가장 무겁고 장엄한 소리를 내는 악기를, 이 한순간을 위해 통째로 아껴두었습니다. 연주자에게는 고역입니다. 차갑게 식은 악기로 20분 넘게 기다렸다가 첫 음을, 그것도 가장 중요한 음을 정확히 내야 하니까요. 지휘자들 사이에서 4악장 트롬본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까닭입니다.

4악장이 시작되면 그 트롬본이 마침내 입을 엽니다. 낮고 느린 코랄 — 교회 합창을 닮은 선율 — 이 금관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음악의 천장이 갑자기 머리 위로 솟아오릅니다. 방금 전까지 작은 방에 있던 청중이, 한 박자 만에 거대한 석조 성당 한가운데로 옮겨지는 겁니다. 여러 성부가 서로를 뒤쫓으며 쌓여 올라가는 짜임새는 바흐의 교회음악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 엄격한 폴리포니가 돌기둥처럼 음악을 떠받칩니다.

이 악장이 바로 슈만이 ‘어느 엄숙한 의식의 반주처럼’이라 적었다 지운 그 음악입니다. 그가 머릿속에 둔 장면은 구체적이었습니다. 몇 주 전 쾰른에서 본, 추기경 서임식의 그 공간이지요. 미완성의 대성당, 600년에 걸쳐 다시 일어서던 그 돌의 꿈이, 35분간 침묵하던 금관을 통해 한순간에 음악으로 세워집니다. 건축과 음악이 같은 일을 하는 셈입니다. 무거운 것을 차곡차곡 쌓아 하늘로 끌어올리는 일 말이지요.

재미있는 건 이 코랄이 한 번에 다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트롬본이 첫 음을 놓으면 호른이 받고, 그 위로 목관이 얹히면서 소리의 탑이 한 층씩 올라가거든요. 듣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게 됩니다. 실제 대성당에 들어섰을 때 시선이 저절로 천장을 좇는 것과 똑같지요. 슈만은 공간의 높이를 시간의 흐름으로 번역해낸 겁니다.

🎧 여기서 들으세요 — 4악장 첫머리, 금관이 낮게 깔리는 코랄을 들어보세요. 그 묵직한 소리가 바로 20분 넘게 침묵하던 트롬본입니다. 소리가 채우는 공간이 갑자기 넓어지는 게 느껴질 겁니다.

다시 햇빛으로: 5악장

성당의 어둠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5악장이 시작되면 음악은 곧장 밝은 야외로 튀어나오지요. 지시어는 ‘생기 있게'(Lebhaft), 1악장과 똑같습니다. 첫 악장의 들뜸으로 돌아온 겁니다. 의식을 마치고 성당 문을 열어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의 활기를 떠올리면 알맞습니다.

다만 그냥 돌아오지 않습니다. 후반부에 4악장의 장엄한 금관 코랄이 슬며시 다시 얼굴을 내밀거든요. 축제의 한가운데에 대성당의 기억이 겹쳐지는 순간입니다. 슈만은 들뜬 피날레가 그저 가볍게 끝나도록 두지 않았습니다. 방금 통과한 거대한 공간의 잔향을 슬쩍 끼워 넣어, 곡 전체를 하나로 묶었지요. 그러고는 환한 합주로 막을 내립니다.

곡을 닫는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슈만은 마지막을 요란한 팡파르 하나로 끝내지 않거든요. 1악장에서 솟구치던 그 도약 주제의 기운을 다시 불러와, 강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강으로 되돌립니다. 35분을 돌아 제자리로 온 셈이지만, 그사이 청중은 성당의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본 뒤지요. 같은 햇빛이어도 처음과 똑같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다섯 악장을 통과한 청중은 강에서 출발해 성당을 거쳐 다시 햇빛 속으로 나온 셈입니다. 표제 하나 없이도 여정의 지도가 또렷하지요. 슈만의 도박은 음악 안에서만은 완벽하게 성공한 겁니다.

3번인데, 사실은 마지막에 쓴 교향곡

이 곡의 번호에는 작은 함정이 있습니다. ‘3번’이라고 적혀 있지만, 슈만이 작곡한 교향곡 중 마지막에 완성한 곡이거든요.

순서를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슈만은 1841년에 1번을 쓰고, 같은 해 d단조 교향곡 하나를 더 썼습니다. 그런데 그 d단조는 초연 반응이 신통치 않아 슈만이 슬그머니 거둬들였지요. 이후 1846년에 또 한 곡(지금의 2번)을, 1850년에 이 《라인》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51년, 오랫동안 묵혀뒀던 그 d단조를 손봐서 비로소 출판했습니다.

번호는 작곡 순서가 아니라 출판 순서로 매겨졌지요. 그래서 1850년의 《라인》이 3번, 1851년에 개정 출판된 d단조가 4번이 됐습니다. 실제로는 4번이 3번보다 9년이나 먼저 태어난 곡인 셈이지요. 슈만 교향곡 번호를 작곡 시기로 곧이곧대로 읽으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3번’은 데뷔작이 아니라, 한 작곡가가 비교적 평온한 시기에 완성한 마지막 교향곡이라는 무게로 들어야 맞거든요.

초연, 그리고 4년 뒤의 라인강

초연은 1851년 2월 6일, 뒤셀도르프에서 슈만이 직접 지휘봉을 들고 이루어졌습니다. 자기 오케스트라, 자기가 사랑하게 된 도시, 그곳에서 단숨에 써낸 곡. 그 무렵의 슈만은 인생에서 가장 안정된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좋은 일도 찾아왔습니다. 1853년 10월, 스무 살의 무명 청년 하나가 요아힘의 소개장을 들고 슈만의 집 문을 두드렸지요. 요하네스 브람스였습니다. 슈만은 청년의 연주를 듣고 깊이 감동해, 곧장 평론지에 ‘새로운 길'(Neue Bahnen)이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브람스를 시대를 표현할 운명의 음악가로 세상에 선언한 겁니다. 슈만의 마지막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그러나 뒤셀도르프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슈만은 지휘자로서는 서툴렀고, 단원들과의 관계가 틀어지며 자리에서 밀려났지요. 환청과 우울이 다시 그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1854년 2월 27일, 슈만은 잠옷 차림에 슬리퍼만 신고 빗속을 걸어 라인강의 다리로 향했습니다. 그대로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지요. 강에서 일하던 한 사람이 그를 끌어올렸습니다.

며칠 뒤 슈만은 본 인근 엔데니히의 요양원에 들어갔고, 2년 뒤 그곳에서 마흔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라인강의 아침을 음표로 옮겼던 손이, 4년 뒤 같은 강물을 향해 뻗었던 겁니다. 작곡가가 끝내 지우려 했던 그 이름이,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곡에 들러붙은 셈이지요. 우리가 《라인》을 마냥 밝게만 들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요양원에 있는 동안 클라라는 남편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이 면회를 막았거든요. 그 빈자리를 채운 사람이 바로 1년 전 문을 두드렸던 청년, 브람스였습니다. 그는 스승의 가족 곁을 지키며 클라라와 평생의 우정을 나누게 되지요. ‘새로운 길’에서 선언한 후계자가, 스승이 무너진 자리를 실제로 떠받친 셈입니다.

1853년경 젊은 요하네스 브람스 초상
스무 살의 브람스. 슈만이 “새로운 길”이라며 세상에 알린 청년이다.

지운 이름이 끝내 남은 이유

슈만은 졌습니다. 표제를 지워 음악을 풍경에서 떼어내려 했지만, 세상은 끝내 이 곡을 《라인》이라 불렀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패배가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라인’이라는 이름은 강 하나만 가리키지 않게 됐거든요. 슈만이 새 삶을 꿈꾸며 거슬러 올라간 물길이자, 미완성의 대성당이 서 있던 도시로 가는 길이고, 끝내 그가 몸을 던진 강이기도 합니다. 한 단어 안에 한 사람의 가장 빛나던 시절과 가장 어두운 마지막이 함께 흐르는 셈입니다. 출판사가 무심코 붙인 이름이, 작곡가의 의도보다 더 깊은 진실을 담아버린 거지요.

그러니 이 교향곡을 들을 때는 두 가지를 동시에 기억하면 좋습니다. 음표 속에 숨은 강과 성당, 그리고 그 이름표를 떼어내려 했던 작곡가의 고집. 둘 다 이 곡의 일부거든요.

악보와 함께 듣기

다비드 레이란트 · 도쿄 메트로폴리탄 교향악단. 악보를 짚으며 다시 들어보기 좋다.

원본 악보는 IMSLP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거든요. 1악장 첫 주제의 어긋난 강세, 그리고 4악장에서 트롬본이 처음 등장하는 지점을 직접 눈으로 짚어 보면 훨씬 또렷하게 들립니다. 슈만 교향곡 3번 《라인》 악보 보기 (IMSLP)

어떤 연주로 시작할까

표제를 지운 곡인 만큼, 연주마다 ‘무엇을 들려줄지’가 갈립니다. 강을 그릴지, 성당을 세울지, 아니면 음악의 골격만 깔끔하게 보여줄지. 세 장을 골랐습니다.

👑 첫 감상 추천

조지 셀 ·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Sony · 1960

군더더기 없이 곡의 뼈대가 또렷하게 들립니다. 처음 듣는 사람이 구조를 잡기에 가장 좋지요. 다만 강물 같은 낭만적 출렁임을 기대하면 다소 차갑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볼프강 자발리슈 ·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EMI · 1972

독일 정통의 따뜻하고 두툼한 음색으로, 4악장 금관이 특히 묵직합니다. 슈만 교향곡 전집의 표준으로 꼽히지요. 셀의 칼끝 같은 선명함을 원한다면 조금 푸근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와일드카드

존 엘리엇 가디너 · 혁명과 낭만 관현악단

DG Archiv · 원전악기

슈만 시대의 악기로 연주해 음향이 가볍고 투명합니다. 1악장 헤미올라의 어긋남이 또렷하게 드러나지요. 현대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울림에 익숙하다면 처음엔 낯설 수 있습니다.

‘라인’이라는 별명은 슈만이 붙인 건가요?

아닙니다. 슈만은 악보에 적었던 표제들을 출판 직전에 모두 지웠고, 곡이 나온 뒤 출판사가 《라인》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슈만 본인은 음악을 특정 풍경으로 못 박는 것을 평생 경계했지요.

교향곡인데 왜 악장이 다섯 개인가요?

베토벤 이후 교향곡은 네 악장이 표준이었지만, 슈만은 가운데에 짧고 사적인 악장(3악장)을 하나 더 끼워 넣었습니다. 덕분에 거대한 4악장 ‘대성당’ 앞에서 청중이 숨을 고를 수 있게 됩니다.

4악장이 쾰른 대성당을 그린 게 맞나요?

슈만이 자필 악보에 ‘엄숙한 의식의 동반처럼’이라는 문구를 적었다가 지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1850년 쾰른 대성당에서 열린 폰 가이셀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분 넘게 침묵하던 트롬본이 이 악장에서 처음 등장하지요.

3번인데 마지막에 작곡했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슈만 교향곡의 번호는 작곡 순서가 아니라 출판 순서를 따릅니다. 《라인》은 1850년에 완성된, 슈만이 마지막으로 쓴 교향곡입니다. 4번 d단조는 1841년에 먼저 작곡됐지만 개정을 거쳐 1851년에 출판되는 바람에 더 뒤 번호를 받았습니다.

처음 듣는다면 어떤 음반이 좋을까요?

곡의 구조를 또렷하게 잡고 싶다면 조지 셀과 클리블랜드 관현악단(Sony, 1960)을 추천합니다. 독일 정통의 두툼한 음색을 원하면 자발리슈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EMI, 1972), 슈만 시대 악기의 투명한 소리가 궁금하면 가디너의 원전 연주(DG Archiv)가 좋습니다.

참고 자료

이어서 듣기 — 라인강이 흘러드는 다음 물길

클래식은 곡과 곡 사이의 이야기를 알면 훨씬 깊게 울리거든요. 슈만이 발굴한 후배, 그가 직접 악보를 찾아낸 선배, 그리고 같은 내림마장조로 쓰인 또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까지 — 《라인》 옆에 두고 들으면 좋은 곡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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