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 – 교향곡 제2번 D장조, Op.43

이탈리아 햇살 아래 태어나 핀란드 민족혼의 절규가 된 교향곡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1865~1957)
작품명
교향곡 2번 D장조 Op.43
작곡 기간
1901~1902년
초연
1902년 3월 8일, 헬싱키
지휘: 시벨리우스 본인 / 헬싱키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관현악단
편성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현5부
연주 시간
약 42~46분
악장 구성
4악장 (Allegretto / Tempo andante, ma rubato / Vivacissimo / Finale: Allegro moderato)

1902년 3월 8일, 핀란드 헬싱키. 복도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했습니다. 시벨리우스가 직접 지휘봉을 쥔 새 교향곡의 첫 무대였거든요. 흥행 성적표는 어땠을까요? 무려 세 번 연속 매진이었습니다. 청중은 기어코 눈물을 쏟아내며 환호했고, 이 거대한 음악에 다짜고짜 ‘독립 교향곡(Vapautumisen sinfonia)’이라는 피 끓는 별명을 붙여주었죠.

하지만 정작 판을 벌인 작곡가 본인은 입을 굳게 닫았습니다. “이게 민족주의 음악입니까?” 묻는 사람들에게 슬쩍 딴청을 피웠지요. “그냥 내 영혼의 고백일 뿐입니다.”라면서요.

어쩌면 이 얄미운 침묵이야말로 신의 한 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대놓고 정치 구호를 박아 넣었다면, 핀란드가 독립하고 난 뒤에는 그저 박물관에 갇힌 역사적 유물 신세가 되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시벨리우스는 빤한 구호 대신,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투쟁과 해방’의 서사를 음표 사이사이에 정교하게 새겨 넣었습니다. 그 덕에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전 세계 오케스트라가 앞다투어 무대에 올리는 불멸의 곡으로 살아남았죠. 도대체 이 음악에 무엇을 담아냈길래 이런 끈질긴 생명력을 얻은 걸까요?

장 시벨리우스 초상 (1904년)
교향곡 2번 초연 무렵의 시벨리우스. 강철 같은 의지가 눈매에 그대로 박혀 있지요.

가난한 남작이 보낸 편지 한 통

이 위대한 교향곡의 불씨를 당긴 것은, 뜻밖에도 종이 편지 한 통이었습니다.

1900년 가을, 서른다섯의 듬직한 가장이어야 할 시벨리우스는 지독한 자금난에 쪼들리고 있었습니다. ‘핀란디아’로 핀란드 전역에서 이른바 ‘국민적’ 히트를 쳤지만, 드높은 명성이 두둑한 통장 잔고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았거든요. 새 교향곡을 뽑아내고 싶어도 당장 처자식을 먹여 살릴 걱정에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야속하게 빚은 쌓여만 가고, 머릿속을 맴도는 악상은 끝내 종이 위로 내려앉지 못한 채 흩어지기 일쑤였지요.

바로 이때 편지를 들이민 인물이 악셀 카르펠란(Axel Carpelan) 남작입니다. 남작이라는 타이틀만 번지르르할 뿐, 이 사람 역시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였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가난한 예술 후원자의 태평양 같은 오지랖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핀란드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이탈리아로 가시오! 차이콥스키나 슈트라우스에게 이탈리아가 어떤 영감을 줬는지 생각해 보란 말이오. 그곳의 쨍한 햇살 아래서 당신은 선의 조화와 대칭을 배우게 될 것이오.”

입으로만 생색을 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카르펠란은 지인들을 달달 볶아가며, 요즘 식으로 말해 ‘크라우드 펀딩’까지 기어이 성사시켰거든요. 제 주머니는 텅텅 비었으면서 남의 지갑을 열어 후배 예술가의 탄탄대로를 닦아준 셈입니다. 남작이 반쯤 구걸하다시피 끌어모은 쌈짓돈을 손에 쥐고, 시벨리우스는 1901년 이탈리아 리구리아 해안의 작은 마을 라팔로(Rapallo)로 훌쩍 떠납니다. 위대한 예술 뒤에는 늘 이렇게 조용하면서도 무섭도록 집요한 조력자가 숨어 있는 법이죠. 시벨리우스는 훗날 이 곡을 카르펠란에게 헌정하며 그날의 은혜를 제대로 갚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낯선 땅에서 기막힌 아이러니가 피어납니다.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정작 핀란드 북방의 가장 거칠고 서늘한 교향곡의 첫 음표를 스케치하기 시작했거든요. 원래 고향이라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 민낯이 훨씬 선명하게 다가오는 법 아니겠습니까. 훈훈한 남쪽 바닷가에 느긋하게 앉아 있으려니, 오히려 얼어붙은 북방 숲의 기억이 뼛속까지 사무치도록 또렷하게 되살아났던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이탈리아에서의 나날이 한없이 낭만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피렌체와 로마를 쉼 없이 오가며 르네상스 거장들의 그림과 아득한 옛 교회 음악에 깊숙이 빠져들었고, 이때의 강렬한 인상은 곡 곳곳에 진하게 스며들었죠. 특히 꽤 오싹하면서도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2악장의 어느 음산한 주제 옆에, 시벨리우스가 직접 ‘돈 후안’이라고 메모를 적어두었다고 전해진다는 점입니다. 죽은 자의 차가운 석상이 살아 숨 쉬는 죄인을 기어이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그 섬뜩한 전설의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음표를 쏟아냈던 겁니다. 가사 한 줄 없는 교향곡 이면에 이런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니, 이 사실을 알고 나면 2악장 특유의 서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다르게 꽂힐 겁니다.

핀란드의 겨울, 1902년: 왜 이 교향곡이 필요했나

다시 시계를 째깍째깍 돌려 초연 당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도대체 왜 헬싱키 시민들은 가사 한 마디 없는 이 교향곡을 듣고 그토록 펑펑 눈물을 쏟아냈을까요? 그 진짜 해답은 음악이 아니라, 당시 핀란드를 짓누르던 무거운 시대의 공기 속에 흩어져 있습니다.

1899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핀란드의 얄팍한 자치권마저 깡그리 빼앗아 버리는 ‘2월 선언’을 무자비하게 때려버립니다. 핀란드를 통째로 러시아에 집어삼키려는 노골적인 수작이었죠. 당시 핀란드 성인 인구의 절반에 맞먹는 50만 명이 반대 서명에 동참했을 만큼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하지만 오만한 황제는 이 거대한 분노가 담긴 청원서를 그야말로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에드바르드 이스토, 〈공격(Hyökkäys)〉(1899) — 러시아 독수리가 핀란드 처녀의 법전을 빼앗는 장면
에드바르드 이스토의 〈공격〉(1899). 쌍두 독수리(러시아)가 핀란드 처녀의 품에서 법전을 낚아채고 있지요. 당시 핀란드인들이 느낀 위기감이 이 한 장에 다 담겨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 나라 작곡가의 음악조차 마음 편히 연주할 수 없었습니다. 시벨리우스의 전작 ‘핀란디아’만 해도 깐깐한 검열에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당국의 눈초리를 피하고자 ‘즉흥곡(Impromptu)’이라는 허여멀건 가짜 간판을 달고서야 겨우 무대에 오를 수 있었거든요. 내 나라의 언어와 고유한 이름마저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숨 막히는 시대, 1902년의 핀란드는 바로 그런 벼랑 끝에 서 있었습니다.

빛 한 줌 없던 암흑기에 이 정체불명의 교향곡이 툭 하고 떨어진 겁니다. 음악 자체에 대놓고 정치적인 선동 구호를 써 붙인 것은 아니었지만, 핀란드 청중은 단박에 그 속내를 알아챘지요. 특히 4악장의 찬란한 D장조 선율이 콘서트홀 전체를 집어삼키듯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은 그 찬란함 속에서 아직 오지 않은 독립의 환희를 미리 맛보았습니다. “마치 마법의 북을 치는 샤먼 같다”는 어느 평론가의 감탄 섞인 묘사가 당시의 들끓던 열광을 고스란히 증명해 주고 있죠.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한 편의 연주를 통째로 틀어두고 글을 읽어 내려가 보시길 권합니다. 핀란드 출신 지휘자 유카페카 사라스테가 WDR 교향악단을 이끈 실황 연주입니다. 핀란드의 짙은 피가 흐르는 지휘자가 묵직한 독일 오케스트라를 상대로 이 곡을 어떻게 예리하게 벼려내는지, 그 또렷하고 단단한 사운드의 결을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유카페카 사라스테 · WDR 교향악단 (2018, 쾰른 필하모니 실황). 핀란드 지휘자다운 군더더기 없는 추진력이 일품입니다.

씨앗에서 꽃으로: 4악장이 하나의 여정인 이유

이 곡을 감상하실 때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결정적인 관전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1악장부터 4악장까지의 흐름이 거대한 하나의 ‘빌드업’이라는 사실이죠.

시작 자체는 아주 미미합니다. 1악장 첫머리에서 현악기들이 ‘스으윽’ 하고 미끄러지듯 상승하는 짧은 세 음.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씨앗 하나가 무려 45분 내내 싹을 틔우고, 이리저리 모습을 바꾸며 가지를 치다가, 마침내 4악장에 이르러 거대한 꽃으로 찬란하게 만개합니다. 시벨리우스는 멜로디 한 토막을 슬쩍 던져 놓고 그것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과정을 솜씨 좋게 빚어내는 데에는 그야말로 천재였거든요.

베토벤이 청중의 멱살을 틀어쥐고 거침없이 끌고 가는 드라마틱한 전개의 달인이라면, 시벨리우스는 가랑비에 옷 젖듯 은근하고 유기적으로 스며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깎아냈습니다. 복잡한 음악 이론 같은 건 전혀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1악장부터 그저 묵묵히 따라가다 4악장에 도달하는 바로 그 순간, 복잡한 뇌보다 정직한 몸이 먼저 반응할 테니까요. “아, 드디어 터졌구나!” 하고 말입니다. 처음 들을 때보다 두 번, 세 번 곱씹어 들을 때 짜릿한 쾌감이 배가되는 이유도 바로 이 무섭도록 치밀한 설계 덕분이지요.

1악장: Allegretto ― 뭔가를 향해 출발하는 안개

첫인상은 꽤나 낯설게 다가옵니다. 분명 번듯한 D장조 교향곡이라는데, 마냥 밝고 쾌활하기는커녕 짙은 안개가 깔린 새벽 숲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거든요.

이는 철저하게 계산된 헷갈림입니다. 시벨리우스는 애당초 친절하게 정답을 쥐여주며 시작하지 않죠. 앞서 말한 ‘세 음’의 모티프가 목관악기들과 웅얼거리듯 기묘한 대화를 나누며 서서히 제 덩치를 키워나갑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보통의 교향곡 1악장이 그럴싸하게 멋진 주제를 떡하니 던져 놓고 이를 쪼개어 발전시키는 반면, 시벨리우스는 아예 방향을 거꾸로 튼다는 겁니다. 짧은 파편들을 여기저기 흩뿌려 놓고서는 그것들을 감질나게 조금씩 이어 붙여, 악장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한 형태의 주제를 빚어내거든요. 이 안개가 걷히고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어렴풋한 방향성만 피부로 와닿을 뿐이지요.

당시 유럽 전역을 휩쓸던 말러나 슈트라우스의 교향곡이 눈 돌아가게 화려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가깝다면, 시벨리우스는 북유럽 특유의 서늘하고 뼈대만 남은 절제된 독립 영화와 같았습니다. 중반부에 브라스와 팀파니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맹렬하게 밀어붙이다가도, 끝끝내 속 시원한 완벽한 해결은 주지 않은 채 연기처럼 스윽 사라져버리는 지독한 밀당의 고수랄까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짙은 여운만 무대 위에 툭 던져둔 채 1악장의 막이 슬며시 내립니다.

2악장: Tempo andante, ma rubato ― 어두운 내면의 독백

여기서 분위기가 매몰차게 바뀝니다. 쨍한 한낮에서 칠흑 같이 서늘한 밤으로 뚝 떨어지는 기분이랄까요.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현을 손가락으로 툭툭 튕기며(피치카토) 무거운 첫 발걸음을 뗍니다. 장례 행진곡처럼 무겁고 음산한 배경 위로, 바순과 오보에가 나지막하게 슬픈 소식을 주고받죠. 사실 시벨리우스는 이 악장의 한 주제를 스케치하며 ‘죽음의 동상(石像)’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돈 후안 전설에서 저승의 망자가 산 자를 만찬에 초대하는 바로 그 섬뜩하고 기괴한 장면 말이지요. 어쩐지 듣는 내내 등골이 쭈뼛 서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악장의 진짜 백미는 중후반부에 고개를 내미는 바순의 독백입니다. 오케스트라 악기 중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빼닮았다는 바순이, 차갑게 텅 빈 방 안에서 홀로 흐느끼듯 부르는 처연한 노래. 이 처절한 고독의 밀도는 교향곡 45분 전체를 통틀어 단연코 가장 소름 돋는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숨죽인 슬픔에 깊이 잠겨 있다가, 돌연 관악기들이 귀청이 찢어질 듯 분노하며 펄펄 끓어오르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태워버리거든요.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을수록 이 짙고 끈적한 어둠의 구조적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되실 겁니다.

3악장: Vivacissimo ― 긴장의 다리, 폭풍 전야

꽉 막힌 복도를 지나 마침내 문을 벌컥 열어젖힌 기분입니다! 혼이 쏙 빠질 만큼 빠르고 경쾌한 춤곡이 거세게 몰아치거든요. 현악기들이 숨 쉴 틈조차 없이 내달리는 한가운데, 돌연 분위기가 뚝 꺾이더니 오보에가 같은 음 하나를 무려 아홉 번이나 되뇌는 애잔한 가락(트리오)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그야말로 광기와 서정이 손바닥 뒤집히듯 맹렬하게 교차하는 순간이지요.

하지만 진짜 마법은 이 악장의 끝자락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폭풍처럼 사납게 몰아치던 음악이 뜬금없이 느려지며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나 싶더니, 쉬는 시간 1초조차 허락하지 않고 곧장 4악장으로 청중의 멱살을 잡고 끌고 들어가 버리거든요. 클래식 동네에서는 이걸 고상하게 ‘아타카(attacca)’라고 부르지요.

콘서트홀 한가운데서 이 아슬아슬한 경첩 같은 찰나를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읍니다.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요. 3악장이 유독 가장 짧은 덴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숨 돌릴 틈조차 내어주지 않고 4악장의 거대한 클라이맥스로 맹렬히 돌진해버리기 위한, 그야말로 완벽한 도약대였기 때문이죠.

4악장: Finale, Allegro moderato ― 드디어 도착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3악장에서 조금의 끊김도 없이 곧장 넘어온 직후, 현악기들이 그 어느 때보다 넓고 장엄한 D장조 선율을 폭포수처럼 쫙 펼쳐내거든요.

1악장 첫머리에 툭 던져두었던 그 보잘것없는 씨앗 하나가, 마침내 아름드리가 되어 찬란하게 꽃을 피우는 결정적 순간입니다. 기나긴 방황 끝에 마침내 약속된 땅에 닿았다는 이 벅차오르는 해방감. 1902년 헬싱키의 청중들이 체면 따위 다 내팽개치고 어째서 펑펑 울어버렸는지 굳이 먼지 쌓인 역사책을 뒤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귀로 듣는 순간 단박에 납득이 가거든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뜨거운 감정을 이 음악이 대신 활짝 터뜨려주니까요.

특히 이 피날레에는 영원히 뇌리에 박힐 만한 짜릿한 명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묵직한 베이스 악기들이 음계를 한 계단씩 진득하게 밟고 올라가는 동안, 그 위로 시퍼런 금관악기들이 승리의 찬가를 켜켜이 쌓아 올리는 대목이죠. 마치 등짐을 가득 진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오르다, 마침내 툭 트인 정상에서 두 팔을 활짝 펴고 포효하는 것만 같습니다. 피날레가 남기는 여운은 지독하게 길고 묵직합니다. 승리의 기쁨을 감질나게 찔끔 맛 보여주고 치우는 게 아니라, 아주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 뜨거운 환희를 꾹꾹 눌러 담거든요. 마지막 코다에서 트롬본과 트럼펫이 미친 듯이 포효하고 팀파니가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처럼 내리꽂힐 때, 비로소 이 곡이 왜 ‘독립 교향곡’으로 불렸는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율하며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멜로디가 안 외워진다고요? 그게 정상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분이 한 번쯤은 좌절의 쓴맛을 봅니다. “분명 좋다는데, 다 듣고 나면 흥얼거릴 멜로디가 하나도 안 남아.” 라면서요. 베토벤의 운명이나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처럼 한 번 들으면 귀에 콱 박혀버리는 클래식계의 ‘후크송’을 기대했다가 꽤나 당황하시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다행히도 그게 지극히 정상입니다. 애초에 시벨리우스는 따라 부르라고 멜로디를 깎아낸 게 아니었거든요.

차이콥스키가 화려하고 탐스러운 주제를 한 다발의 꽃으로 예쁘게 포장해 품에 안겨주는 스타일이라면, 시벨리우스는 거친 흙바닥에 무심하게 씨앗 하나와 바람 한 점을 툭 던져 놓고선 그게 숲으로 자라나는 아득한 풍경을 관망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이 곡은 ‘멜로디를 쫓아가는’ 방식으로 들으면 십중팔구 길을 잃습니다. 그저 ‘분위기에 몸을 푹 담그는’ 식으로 다가가야 비로소 진짜 맛이 우러나거든요. 희뿌연 안개가 끼고, 살갗에 추위가 스며들다, 마침내 저 멀리서 한 줄기 빛이 내리쬐는 그 섬세한 온도와 공기의 변화에만 온전히 감각을 열어보십시오. 가사 한 줄, 줄거리 한 줄 없는데도 기어이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게 먹먹해지는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올 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시벨리우스는 고작 한두 번 스치듯 듣고 서둘러 판단을 내릴 만한 호락호락한 작곡가가 아닙니다. 처음엔 이렇다 할 인상 없이 밋밋하게 흘려보냈던 찰나의 대목이, 세 번쯤 반복해서 들을 즈음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압도적인 명장면으로 탈바꿈해 있거든요. 이 기묘한 교향곡이 100년이 넘도록 오케스트라의 심장부에서 펄펄 살아 숨 쉬는 진짜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감상할 때마다 매번 다른 온도와 질감의 결이 만져지니까요.

비평가와 청중 사이에서

아이놀라 — 시벨리우스의 자택 (1915년)
핀란드 야르벤패 근교의 시벨리우스 자택 아이놀라(1915년 촬영). 그는 이 숲속 집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냈습니다.

물론 대중이 쌍수를 들고 환호한다고 해서, 깐깐한 평론가들까지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 주는 건 아니지요.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역시 이 잔인한 엇갈림에서 결코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콧대 높은 유명 비평가 버질 톰슨은 뉴욕 헤럴드 트리뷴을 통해 시벨리우스의 음악 전반을 싸잡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속물적이고, 자기 탐닉적이며, 촌스럽다”고 아주 날카롭게 쏘아붙였습니다. 교향곡 2번 역시 이 무자비한 혹평의 융단폭격에서 한 치도 피할 수 없었죠. 그야말로 뼈를 때리는 격렬한 비난이었습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그저 단순하기 짝이 없고 시대의 흐름에 한참 뒤떨어졌다는 비아냥은, 당시 잘나가던 일부 모더니스트 비평가들의 입맛을 돋우는 단골 레퍼토리나 다름없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참 기막히게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토록 서슬 퍼렇던 비평가 버질 톰슨의 이름은 역사책의 구석진 먼지 속으로 희미하게 사라져버렸지만, 그가 그토록 촌스럽다며 깎아내렸던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오케스트라의 콧대 높은 정규 시즌을 꽉꽉 채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종이 위에서 춤추던 평론가의 날 선 펜대보다, 직접 음악에 몸을 던지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청중의 날것 그대로의 직감이 백 번 천 번 정확하고 강인했던 셈이지요. 영국의 명지휘자 콜린 데이비스 경이 이 곡을 두고 건조한 분석의 언어를 들이미는 대신 한 편의 ‘시(詩)’에 빗대어 설명하려 했던 것도, 아마 같은 깨달음에서 나온 한숨 섞인 찬사였을 겁니다.

30년의 침묵, 그리고 불타버린 8번

교향곡 2번이 써 내려간 벅찬 성공 신화를 짚어보다 보면, 한 가지 서늘한 뒷이야기를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로 시벨리우스라는 인물의 뼛속 깊은 완벽주의입니다.

그는 2번 초연 직후 어마어마한 찬사를 한몸에 받았음에도 끝내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이듬해까지 1년이 넘도록 곡을 물고 늘어지며 집요하게 뜯어고쳤거든요. 쏟아지는 청중의 환호에 취하기보다는, 음악 자체의 무결함을 좇는 쪽을 기꺼이 택했던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넋을 잃고 감상하는 완성본은 바로 이 뼈를 깎는 듯한 고된 수정 작업이 낳은 결과물이지요.

이 지독한 완벽주의는 노년에 이르러 무겁고도 서늘한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시벨리우스는 교향곡 7번(1924)을 끝으로 사실상 작곡의 펜을 꺾었습니다. 그 뒤로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30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신작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지요. 이른바 ‘야르벤패의 침묵’으로 불리는 고독한 시기입니다. 그렇다고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온전히 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나오지 못한 교향곡 8번을 부여잡고 1920년대 말부터 끈질기게 매달렸거든요.

그러나 1940년대 중반의 어느 날, 그는 아내 아이노가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 원고 한 무더기를 벽난로에 던져 넣고 모조리 태워버렸습니다. 8번 교향곡으로 추정되는 악보였지요. 그의 나이 일흔아홉 살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아이노는 훗날 “그 일이 있고 나서 남편이 한결 차분하고 밝아졌다”고 담담히 회고했습니다. 제 손으로 제 피 같은 작품에 사형을 선고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니, 예술가의 꼿꼿한 자존심이란 참으로 무섭고도 애처로운 노릇입니다. 교향곡 2번이 들려주는 그 뜨거운 완성도 이면에는, 이토록 무서운 결벽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왜 지금도 이 교향곡이 연주되는가

핀란드는 이 곡이 초연된 지 15년 뒤인 1917년, 마침내 그토록 목말라 염원하던 독립을 이뤄냈습니다. 그렇다면 ‘독립’이라는 뚜렷한 유통기한이 끝나버린 이 곡은 어째서 오늘날까지도 펄펄 살아남았을까요?

그 해답은 싱거울 만치 뻔하고 간단합니다. 그저 음악 자체가 기가 막히게 훌륭하기 때문이죠. 러시아의 억압이니 뭐니 하는 무거운 역사적 배경지식을 머릿속에서 싹 다 지워버린다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어둠과 혼돈을 기어코 뚫어내고 마침내 찬란한 빛으로 나아가는 그 압도적인 카타르시스는, 국적과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뼛속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감정이니까요. 윗선에 시달리다 지쳐 돌아온 퇴근길에 들어도, 인생의 큰일을 앞두고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을 때 들어도 이상하리만치 묵직한 위로가 되어주거든요.

여기서 아주 강력한 감상 팁을 하나 드리자면, 이 곡은 무조건 ‘직관(라이브)’이 정답입니다. 훌륭하게 녹음된 명음반도 차고 넘치지만, 이 교향곡이 품은 진짜 에너지는 오직 탁 트인 콘서트홀 현장에서만 제대로 경험할 수 있거든요. 4악장 피날레에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최강음(fff)으로 사정없이 뿜어내는 물리적인 타격감, 소리가 피부에 직접 와닿는 그 짜릿한 진동은 조그만 이어폰으로는 절대 담아낼 재간이 없습니다. 어느 날 콘서트홀 프로그램에 이 곡이 떴다면 주저하지 말고 예매 버튼을 누르시길 권합니다. 빈말이 아닙니다. 다른 그 어떤 클래식 공연보다도 유독 이 곡에서 라이브와 녹음본의 격차가 무섭도록 크게 벌어지거든요.

시벨리우스와 핀란드: 한 작곡가가 한 나라의 영혼이 된 이야기

1904년 신문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초연 리뷰
당시 신문에 실린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관련 기사. 한 작곡가의 음악이 곧 신문 1면의 사건이던 시절입니다.

작곡가 본인의 뒷이야기도 꽤나 흥미진진합니다. 핀란드에서는 그야말로 국민 영웅 대접을 받는 시벨리우스입니다만, 정작 그는 어릴 적 상류층의 언어였던 스웨덴어를 유창하게 쓰며 자란 온실 속 ‘도련님’이었거든요. 핀란드어는 오히려 나중에 학교에 들어가서야 익힌 제2언어에 훨씬 가까웠지요. 그런 그가 핀란드어 서사시 ‘칼레발라’에 속절없이 푹 빠져들면서, 마침내 핍박받는 민족의 묵직한 대변인으로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타고난 핏줄보다 굳건한 자기 의지로 정체성을 통째로 갈아 끼운 셈이지요.

교향곡 2번은 그의 기나긴 음악 인생에서도 무척이나 결정적인 분기점으로 작용합니다. 이전까지는 핀란드의 서늘한 자연 풍경이나 신화를 직접적으로 그려내는 표제음악에 머물렀다면, 이 곡을 기점으로 구체적인 ‘썰’에 기대지 않은 채 오직 순수한 음표의 치밀한 배열만으로 청중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경지에 성큼 올라섰거든요. 이후 그가 써 내려간 교향곡들은 점점 더 자질구레한 군더더기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한층 추상적이고 현대적인 방향으로 뻗어 나갑니다. 그 눈부신 정점 중 하나가 바로 교향곡 5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핀란드 정부가 이 걸출한 천재에게 얼마나 벅찬 감동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오로지 작곡에만 온전히 매달릴 수 있도록, 무려 1897년, 그의 나이 아직 삼십 대 초반이던 새파랗게 젊은 시절에 일찌감치 든든한 국가 보조금을 쥐여주었습니다. 처음에는 해마다 지급되던 이 알토란 같은 지원금은 훗날 사실상 종신 연금으로 굳어져, 그가 눈을 감을 때까지 장장 60년 가까이 끊임없이 이어졌지요. 국가가 재능 있는 예술가에게 제대로 된 투자를 감행하면 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아웃풋이 쏟아져 나오는지, 시벨리우스가 온몸으로 완벽하게 증명해 낸 겁니다. 만약 그 선제적인 투자가 없었다면 이 위대한 교향곡 역시 끝내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처음 들을 때 어디에서 멈추게 되는가

이제 막 재생 버튼을 누르실 분들을 위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심쿵 포인트’ 세 가지를 짚어드립니다. 처음 들을 때부터 이 지점들을 바짝 의식하고 따라가면 감상의 밀도가 확연히 달라지거든요.

첫째, 2악장 초반입니다. 지친 발걸음을 연상케 하는 낮은 현악기들의 튕김 위로 오보에와 바순이 처연하게 노래를 얹을 때, 마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듯 절로 숨을 죽이게 되죠. 그토록 아름다운 선율 뒤편에 웅크리고 있는 서늘한 정적을 가만히 음미해 보십시오.

둘째, 3악장에서 4악장으로 쉴 틈 없이 넘어가는 ‘아타카’의 순간입니다. 좁고 답답한 터널을 간신히 빠져나와 끝없이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는 듯한 벅찬 공간감의 확장을 흠뻑 만끽해 보시지요. 지휘자마다 이 숨 막히는 찰나의 긴장감을 어떻게 쥐락펴락하는지 음반별로 비교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랍니다.

마지막으로 4악장 피날레의 코다입니다. 트롬본이 묵직하고 웅장한 화음을 사정없이 뿜어내고 현악기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솟구칠 때, 템포가 살짝 느려지며 극강의 웅장함을 선사하지요. 예상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는 그 정상에서의 쾌감 속에서 잠시나마 숨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 클래식 감상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알짜배기 꿀팁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악장 사이에 언제 박수를 쳐야 할지 몰라 눈치가 보이시나요? 3악장과 4악장은 쉴 틈 없이 그대로 이어지니 절대 손뼉을 부딪치시면 안 됩니다. 마지막 4악장이 남기는 거대한 여운이 완전히 사그라진 뒤, 지휘자가 마침내 팽팽했던 지휘봉을 툭 내려놓을 때 미친 듯이 환호하시면 그것으로 완벽합니다.

추천 녹음

워낙 뼈대 굵은 명곡이다 보니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지휘자들은 다 한 번씩 거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도, 처음 들을 때 절대 실패할 일 없는 세 가지 버전을 조심스레 권해드립니다.

파보 베르글룬드 /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Finlandia)
핀란드 출신 지휘자와 핀란드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이른바 ‘근본’ 조합입니다. 이 음악이 도대체 어떤 땅의 흙과 서늘한 공기를 먹고 자랐는지 뼛속까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연주거든요. 억지로 힘주어 쥐어짜지 않아도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자연스레 끓어오르는, 특히 4악장의 저돌적인 추진력이 기가 막힙니다. 딱 한 장만 골라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이쪽을 짚으시지요.

콜린 데이비스 경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LSO Live / Philips)
영국 지휘자가 평생을 끈질기게 바쳐 파고든 시벨리우스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템포를 아주 묵직하게 절제하는 와중에도 각 악장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을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낚아챘지요. 특히 2악장이 뿜어내는 짙은 어둠과 그 서늘한 무게감이 유독 설득력 있게 심장을 두드립니다. 데이비스는 평생토록 이 곡을 여러 차례 녹음실에 들이밀 만큼 아끼고 또 아꼈습니다.

수산나 말키 / hr-신포니에오르케스터 (실황)
핀란드 출신 지휘자 수산나 말키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가 뭉친 꽤나 현대적인 조합입니다. 무겁고 낡은 전통에 얽매이기를 거부하고, 한층 선명하고 투명하게 정제된 사운드로 시벨리우스를 섬세하게 직조해 내거든요. 이 글 맨 위에 놓인 영상 플레이어에서 곧바로 감상하실 수 있으니, 앞서 짚어드린 악장별 포인트를 머릿속에 띄워둔 채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따라가 보시지요.

악보와 함께 듣기

악보를 전혀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어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아래 영상을 일단 한 번 틀어보시지요. 음악이 일으키는 격렬한 파도에 발맞춰 악보가 휙휙 넘어가는 꼴을 멍하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리만치 묘한 쾌감이 밀려옵니다. 여기저기 복잡하게 흩어져 있던 멜로디 조각들이 대체 어떤 방식으로 맞물려 거대한 건축물로 조립되는지, 그 짜릿한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거든요. 특히 1악장에 툭 던져졌던 그 보잘것없는 ‘세 음’이 4악장에서 어떻게 화려하게 부활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좇아 보시길 권합니다.

악보를 따라가며 듣기 — 흩어진 동기들이 4악장에서 한데 모이는 설계가 한눈에 보입니다.

악보 원본은 클래식 악보의 드넓은 바다, IMSLP에서 무료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교향곡 2번 D장조 Op.43 악보 보기 (IMSLP)

자주 묻는 질문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이 ‘독립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1902년 초연 당시 핀란드는 러시아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숨죽여 살던 핀란드인들이 이 곡의 4악장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웅장한 D장조 피날레가 터져 나오는 순간, 청중은 가슴속에 억눌려 있던 ‘독립’이라는 두 글자를 단박에 떠올렸습니다. 작곡가 본인은 이것이 민족주의 음악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민심을 막을 수는 없었지요. 소름 돋는 우연일까요? 이 곡이 초연되고 정확히 15년 뒤인 1917년, 핀란드는 마침내 진짜 독립을 쟁취하게 됩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은 총 몇 악장이고, 연주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총 4개의 악장으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42분에서 46분 정도가 걸리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중 가장 덩치가 큰 대작이지요. 1악장(Allegretto)부터 2악장(Tempo andante ma rubato)을 거쳐 3악장(Vivacissimo)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음악은, 4악장(Finale: Allegro moderato)으로 넘어갈 때 단 1초도 쉬지 않습니다. 이른바 ‘아타카(attacca)’ 기법입니다. 마치 드라마가 절정에서 다음 화로 자동 재생되듯, 3악장의 긴장감이 폭발하며 4악장의 환희로 직행하는 구조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시벨리우스는 왜 이탈리아에서 이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나요?

예술가에겐 가끔 안목 좋은 ‘물주’가 필요한 법이지요. 핀란드의 악셀 카르펠란 남작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벨리우스에게 여행 경비를 모아 쥐여주며 등을 떠밀었습니다. 차이콥스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이탈리아에서 엄청난 영감을 얻어온 것처럼, 시벨리우스도 각성하길 바랐던 까닭입니다. 그렇게 1901년, 시벨리우스는 따뜻한 이탈리아 라팔로 근처에 틀어박혀 이 곡의 첫 음표를 그렸습니다.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 아래서 역사상 가장 차갑고 핀란드스러운 북유럽의 걸작이 탄생했다니, 참으로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네요.

처음 이 곡을 들을 때 어느 악장을 집중해서 들으면 좋을까요?

시간이 없다면 무조건 4악장 피날레부터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D장조의 거대한 주선율이 쏟아지는 순간, 왜 이 곡이 당시 핀란드인들의 피를 끓게 했는지 단박에 납득이 가실 겁니다. 그 쾌감을 맛보셨다면, 다음은 2악장으로 넘어가 보시지요. 마치 장례 행진곡처럼 무겁게 튕기는 저음 현악기의 피치카토가 점차 거대한 내면의 폭풍으로 번져가는 과정이 몹시 스릴 넘칩니다. 결국 나중에는 1악장부터 정주행하며, 흩어져 있던 복선들이 4악장에서 어떻게 완벽하게 회수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지실 것입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들은 뒤엔 어떤 곡으로 넘어가면 좋나요?

2번의 뜨거운 서사에 빠지셨다면, 다음은 같은 작곡가의 교향곡 5번을 권합니다. 한결 단단하고 응축된 시벨리우스 후기 양식을 만날 수 있고, 특히 마지막 악장의 ‘백조 테마’는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거든요. 화려한 기교의 향연을 원하신다면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가 제격입니다. 같은 시기 북유럽의 정서를 더 깊이 느끼고 싶다면, 비탄과 위안이 공존하는 고레츠키 교향곡 3번으로 시야를 넓혀 보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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