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가
- 가에타노 도니체티
(Gaetano Donizetti, 1797–1848) - 곡명
- 로베르토 데브뢰
(Roberto Devereux) - 작곡
- 1837
- 초연
- 1837년 10월 29일, 나폴리 산카를로 극장
- 장르
- 3막 비극 오페라 (트라게디아 리리카)
- 주요 배역
- 엘리자베타(소프라노)
사라(메조소프라노)
로베르토(테너)
노팅엄 공작(바리톤) - 편성
-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합창, 2관 편성 관현악
- 연주 시간
- 약 2시간 30분
여왕이 사랑한 남자에게 반지 하나를 건넵니다. “위험에 처하면 이걸 보내라. 내가 반드시 살려주마.”
그 반지는 약속인 동시에 목숨이 걸린 부적이었습니다.
데브뢰가 처형 직전 보낸 반지를 누군가 중간에서 가로챘습니다. 여왕은 이 사실을 끝내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데브뢰는 죽음을 맞았습니다.
도니체티 오페라 〈로베르토 데브뢰(Roberto Devereux)〉는 사랑, 질투, 배신, 죽음이라는 원초적 감정을 파고드는 비극입니다. 그래서 영국 역사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인간의 본능만으로도 이야기는 충분히 강렬하게 전개됩니다.
1837년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도니체티의 70여 편 오페라 가운데 가장 강렬한 드라마로 손꼽힙니다. 벨칸토 오페라의 최고봉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금도 전 세계 주요 극장의 무대를 꾸준히 채웁니다.

실화에서 오페라로 – 엘리자베스 1세와 에섹스 백작
〈로베르토 데브뢰〉는 16세기 말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에섹스 백작 로버트 데브뢰 두 실존 인물의 관계를 그린 작품입니다.

에섹스 백작 로버트 데브뢰(1565–1601)는 서른 살 넘게 차이 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독차지한 젊은 귀족이었습니다. 그는 스페인 카디스 항구를 점령해 런던 시민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여왕의 옛 총신 레스터 백작의 의붓아들이라는 배경 덕분에 궁정 내 입지도 막강했습니다.
지나친 야망이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아일랜드 총독으로 파견되었으나 반란군과 독단적으로 휴전하고 무단 귀국해 여왕의 신임을 잃었습니다. 결국 1601년 2월 런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고, 반역죄로 런던탑에서 참수당했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와 에섹스의 관계가 로맨스였는지, 정치적 후원이었는지는 역사학계에서도 단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여왕이 그의 사형 영장에 직접 서명했고, 이후 깊은 슬픔에 잠겼다는 점입니다. 엘리자베스는 에섹스 처형 2년 뒤인 1603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섹스 백작의 반지’는 이 역사적 사건에 얽힌 유명한 설화입니다. 여왕이 위기 때 쓰라며 준 반지를 에섹스가 처형 직전 보냈지만, 전달자의 방해로 끝내 전해지지 못했다는 비극이죠. 사실과 무관하게 여러 창작물에 영감을 준 이 이야기는 도니체티의 오페라에서 핵심 장치로 쓰입니다.
1837년, 도니체티는 이 극적인 실화를 오페라로 만들었습니다. 대본가 살바도레 카마라노는 프랑수아 앙슬로의 희곡 《엘리자베스 데 앵글르테르》(1832)를 원작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에 반지 설화와 사각관계를 엮어 넣어, 한층 강렬한 비극을 탄생시켰습니다.
도니체티의 ‘튜더 3부작’ – 세 명의 여왕
도니체티의 ‘튜더 3부작’은 〈안나 볼레나(1830)〉와 〈마리아 스투아르다(1835)〉를 거쳐 〈로베르토 데브뢰〉로 완성됩니다.
도니체티가 앤 불린, 메리 스튜어트, 엘리자베스 1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연작으로 기획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0년대 소프라노 비벌리 실스가 뉴욕 시티 오페라에서 세 작품을 연이어 무대에 올리면서, 비로소 하나의 시리즈로 묶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플라시도 도밍고가 로베르토 역으로 출연한 1970년 공연은 지금도 전설로 회자됩니다.
2016년, 소프라노 손드라 라드바노프스키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한 시즌에 세 여왕 역을 모두 소화하는 역사적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세 여왕 프로젝트’라 불린 이 기획은 벨칸토 레퍼토리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한 명의 소프라노가 기교와 연기력 모두에서 극한의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 무대였습니다.
〈로베르토 데브뢰〉는 작곡가 도니체티가 1837년 최악의 시기를 보낼 때 탄생했습니다. 전해에 부모를 잃은 데 이어 6월에는 갓 태어난 아이를, 7월에는 스물여덟 살 아내 비르지니아 바셀리마저 떠나보낸 직후였습니다. 그는 아내가 죽은 지 한 달 만에 작곡에 매달렸지만, 나폴리를 덮친 콜레라 유행 탓에 리허설은 기약 없이 미뤄졌습니다.
이 작품의 화려한 기교 아래에는 다른 벨칸토 오페라에 없는 날것의 고통이 흐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작곡가 도니체티의 슬픔이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든 까닭입니다.

등장인물 – 4인의 비극적 사각관계
이 오페라의 핵심은 네 남녀의 사각관계입니다. 로드 세실, 월터 롤리 같은 나머지 인물들은 이들의 갈등에 정치적 배경을 더하는 보조 역할에 그칩니다.
엘리자베타 (소프라노) –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모델로 한 여왕은 로베르토를 깊이 사랑하지만, 군주의 위엄과 한 여인의 질투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그녀는 “위험에 처하면 반지를 보내라, 내 너를 구하리라” 약속하며 징표를 건넵니다. 오페라에서 가장 긴 시간 동안 가장 극적인 아리아를 소화하는 그녀는, 사랑과 통치 사이에서 분열하는 군주의 내면을 온전히 드러냅니다.
로베르토 데브뢰 (테너) – 에섹스 백작
여왕의 총신이었던 전 아일랜드 총독이 반역죄로 재판을 받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이는 여왕이 아닌 사라. 그는 여왕의 사랑을 이용해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사라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침묵합니다.
사라 (메조소프라노) – 노팅엄 공작부인
로베르토가 아일랜드에 간 사이 여왕의 명으로 노팅엄 공작과 결혼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로베르토를 사랑합니다. 남편 몰래 건넨 푸른 스카프는 비극의 방아쇠를 당기고, 제1막에서 그녀는 헨리 2세의 연인 ‘아름다운 로자먼드’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노팅엄 공작 (바리톤) – 로베르토의 친구이자 사라의 남편
그는 로베르토의 결백을 믿고 변호하던 충직한 친구였지만, 아내 사라와 로베르토의 관계를 알게 되자 복수의 화신으로 돌변합니다. 그는 로베르토가 보낸 구명의 반지를 가로채 마지막 희망마저 끊어버립니다. “피를 원했고, 피를 얻었습니다!”라는 그의 마지막 절규는 이 오페라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입니다.
여왕은 로베르토를 사랑하지만, 로베르토의 마음은 노팅엄의 아내인 사라에게 향합니다. 사라 또한 로베르토를 사랑하기에 이들의 관계는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알게 된 노팅엄이 배신감에 불타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줄거리 – 반지, 스카프,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서명
1601년 런던. 아일랜드 총독직을 잃은 에섹스 백작 로베르토 데브뢰가 반란 미수 혐의로 재판을 기다립니다.
제1막: 웨스트민스터 대홀 & 사라의 거처
막이 오르자 사라는 책으로 슬픔을 억누릅니다. 헨리 2세의 사랑을 받았으나 비극적 최후를 맞은 ‘아름다운 로자먼드’의 이야기가 꼭 제 처지 같아 눈물이 흐릅니다. 걱정하는 궁녀들에게 사라는 괜찮다고 말하며 애써 외면할 뿐입니다.
노팅엄의 간청에 따라 엘리자베타는 반역자 로베르토를 다시 만납니다. 의회는 사형을 요구하지만 여왕은 서명을 거부하며 사라에게 은밀히 고백합니다. “그의 사랑은 나에게 축복이었어.” 여왕의 연인이 바로 자신의 연인 로베르토였기에, 사라는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로베르토와 단둘이 남은 엘리자베타는 반지를 건네며 사랑을 고백합니다.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제안이었지만, 로베르토는 여왕이 자신과 사라의 비밀을 안다고 착각해 그만 실언하고 맙니다. 질투에 휩싸인 여왕이 “네가 사랑하는 여자가 누구냐!”고 다그치자, 로베르토는 그런 여자는 없다며 잡아뗍니다.
노팅엄은 로베르토의 처지를 염려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내 때문에 속을 끓입니다. 그녀가 누군가를 위해 푸른 스카프를 수놓는 모습을 목격한 뒤, 마음에 다른 이를 품은 건 아닌지 의심이 싹텄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그저 심증일 뿐, 결정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로베르토는 사라의 거처로 찾아와 자신이 아일랜드에 없는 동안 결혼한 이유를 따져 묻습니다. 사라는 여왕의 명령 때문이었다고 항변하지만, 그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여왕의 사랑이라 오해하고는 자신의 푸른 스카프를 건네며 이별을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로베르토는 그녀를 위해 도주를 결심합니다.
제2막: 사형 선고 – 오페라에서 가장 긴장감 높은 장면
의회가 로베르토의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여왕의 서명뿐입니다.
월터 롤리는 여왕의 심문에 답하며, 로베르토가 체포 당시 끝까지 품었던 푸른 스카프를 건넵니다. 노팅엄이 로베르토의 무죄를 호소하며 나서지만 여왕은 스카프를 들어 보이며 선언합니다. “이것이 그의 배신의 증거입니다.”
노팅엄이 아내가 수놓던 스카프를 알아보는 순간, 오페라의 모든 판이 뒤집힙니다. 아내의 눈물과 비밀, 친구의 수상한 행동까지 모든 조각이 들어맞습니다. 친구에서 적으로 돌아선 그는 외칩니다. “도끼로는 부족하다!”
여왕은 끌려온 로베르토에게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대면 살려주겠다며 마지막 기회를 주지만, 그는 사라를 지키기 위해 거부합니다. 분노한 여왕은 “대포 소리가 울리면, 도끼가 떨어진 것입니다”라고 선언하며 사형 영장에 서명합니다. 바로 이 순간, 여왕의 분노와 노팅엄의 복수심, 로베르토의 비장한 결의가 뒤섞인 3중창이 터져 나오며 도니체티 오페라의 절정을 이룹니다.
제3막: 반지의 비극 – 되돌릴 수 없는 결말

감옥에 갇힌 로베르토가 여왕에게 자비를 구해달라며 사라에게 반지와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사라가 막 떠나려던 순간 남편 노팅엄이 나타나 편지를 읽고는 그녀를 방에 가두어 버립니다. 이윽고 로베르토의 장송 행진곡이 울려 퍼지자 복수심에 불타는 노팅엄은 떠나고, 홀로 남은 사라는 충격에 기절합니다.
런던탑 감방. 여왕의 답신은 없지만 로베르토는 사라의 이름을 끝까지 지키기로 맹세합니다. 그는 천사 같은 사라를 떠올리며 마지막 아리아를 토해냅니다. 이윽고 세실이 문을 열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구명이 아닌 처형장입니다.
장면 3: 웨스트민스터.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엘리자베타는 번민합니다. 그녀는 “배은망덕한 자여, 그녀 곁에서 살아라”고 저주를 퍼붓지만, 실은 그를 살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때 세실이 로베르토가 처형장으로 향한다고 알립니다.
사라가 허겁지겁 달려와 자신이 여왕의 연적이라 고백하며 반지를 내밀자 여왕은 경악했습니다. 급히 처형을 멈추려 했지만 대포 소리가 울렸고, 로베르토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노팅엄이 나타나자 여왕이 추궁했습니다. “왜 반지를 막았느냐?” 그의 대답은 섬뜩했습니다. “피를 원했고, 피를 얻었습니다(Sangue volli, e sangue ottenni)!”
엘리자베타는 머리 없는 로베르토의 환영에 사로잡혀 정신이 무너집니다.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메리 스튜어트의 아들)를 다음 왕으로 선언한 뒤, 홀로 로베르토의 반지에 입을 맞춥니다. 그대로 스러지는 여왕 위로 막이 내립니다.
감상 포인트 – 벨칸토의 극한을 보여주는 작품
벨칸토란 무엇인가
벨칸토(bel canto)는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으로, 19세기 초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창법입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선율과 화려한 성악 기교를 앞세우며, 빠르게 음을 오르내리는 콜로라투라와 선율을 매끄럽게 잇는 레가토, 고음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기술을 구사합니다. 도니체티, 벨리니, 로시니가 바로 이 벨칸토의 3대 거장입니다.
〈로베르토 데브뢰〉는 벨칸토 기교가 극적 표현으로 승화된 도니체티 후기 오페라의 정점입니다. 화려한 콜로라투라는 단순한 기교 과시를 넘어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하며, 특히 엘리자베타의 마지막 아리아에서 쏟아지는 고음은 무너지는 그녀의 정신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이 작품만의 드라마틱 구조
오페라 전문가들이 제2막을 “superb(최상급)”이라 평가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전체 3막 중 가장 짧지만, 압축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스카프 발각, 노팅엄의 돌변, 사형 영장 서명으로 이어지는 연쇄 반전이 한 장면에서 폭발하며 관객의 숨을 멎게 만듭니다.
2막 후반 3중창에서 여왕 엘리자베타의 분노, 노팅엄의 배신감, 로베르토의 결연함이 동시에 폭발합니다. 세 인물이 하나의 음악 위에서 전혀 다른 감정을 노래하며 격돌하는 이 장면은 도니체티 오페라의 백미로 꼽힙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마음이 하나의 선율로 어우러지는 순간이야말로 오페라만이 선사하는 전율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벨칸토 오페라 사상 가장 어려운 결말 중 하나로 꼽힙니다. 엘리자베타의 피날레 아리아에서 소프라노는 높은 A음을 여섯 번이나 터뜨려야 하고, B♭과 B내추럴도 소화해야 합니다. 일부는 여기에 하이 D를 덧붙이기도 하는데, 한 세대에 이 곡을 완벽히 부르는 소프라노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소품의 힘 – 반지와 스카프
이 오페라에서 반지와 스카프는 각각 생명과 사랑의 증표이자 파멸의 도화선입니다. 반지는 로베르토를 살릴 기회였지만 끝내 엇갈리고, 스카프는 노팅엄에게 배신을 폭로하는 증거가 됩니다. 이처럼 사소한 두 물건이 네 인물의 운명을 좌우하며 관객을 극으로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주요 아리아 & 추천 영상
장면 순서대로 핵심 곡을 골라 처음 듣는 분도 줄거리를 놓칠 걱정이 없습니다. 곡마다 어떤 상황에서 왜 노래하는지, 감상 포인트는 무엇인지 짧게 짚어드립니다.
1. “All’afflitto è dolce il pianto” – 사라의 로만차 (제1막)
사라는 남편의 집에서 로베르토를 향한 마음을 숨긴 채 책을 읽다가 멈춥니다. 들키면 모두가 다칠 수 있기에, 그녀는 홀로 감정을 억누를 뿐입니다. 뒤이어 흐르는 긴 선율은 차마 터뜨리지 못한 말이 눈물이 되어 흐르는 듯합니다.
🎵 첫 번째 추천: 도니체티 《로베르토 데브뢰》 제1막 — 위의 플레이어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 “Nascondi, frena i palpiti” – 엘리자베타와 로베르토의 이중창 (제1막)
여왕이 로베르토의 마음을 떠보지만, 그는 끝까지 사라를 향한 사랑을 감춥니다. 같은 무대에서 서로 다른 답을 하는 두 사람 때문에 긴장감이 치솟습니다. 비슷한 선율을 노래할 때조차 엇갈리는 시선과 말뜻은 이들의 위태로운 관계를 암시합니다.
3. “Da che tornasti, ahi misera” – 사라와 로베르토의 이별 이중창 (제1막)
함께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사라와 로베르토는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살아남으려면 헤어져야만 합니다. “마지막 작별” 구절이 반복되며 선율이 고조될 때, 포기하는 심정과 떨치지 못한 미련이 뒤섞여 폭발합니다.
4. “Come uno spirto angelico… Bagnato il sen di lagrime” – 로베르토의 감옥 아리아 (제3막)
사형을 앞둔 로베르토는 감옥에서 사라의 이름을 되뇝니다. 이미 늦었음을 알지만 그의 마음만은 변치 않습니다. 화려하게 고조되는 대신 길게 이어지는 선율은 체념 어린 애틋함을 노래합니다.
5. “Vivi, ingrato, a lei d’accanto… Quel sangue versato” – 엘리자베타의 피날레 (제3막)
로베르토의 처형 소식을 들은 엘리자베타는 왕좌에 앉아 무너지듯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제 손으로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과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옵니다.
낮은 음에서 고음으로 여러 번 치솟는 이 곡은 듣는 이를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입니다. 음이 솟구치는 순간은 터져 나오는 분노를, 그 직후는 밀려오는 후회를 표현합니다. 이 격렬한 감정의 교차가 하나의 장면을 눈앞에 선명하게 그립니다.
보너스: 전곡 감상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잡고 싶다면 에디타 그루베로바의 1990년 실황 영상이 제격입니다. 워낙 장면 전환이 빨라 헷갈리기 쉬운 인물 관계가 전막 영상을 통해 한눈에 정리됩니다. 특히 3막으로 갈수록 미묘하게 달라지는 여왕의 표정과 호흡을 놓치지 마세요.
대표 음반과 영상물

이 작품의 진가를 알려줄 레퍼런스 레코딩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 비벌리 실스 / 찰스 매케라스 (1969, DG) – 실스의 전성기 스튜디오 녹음. 로열 필하모닉과 앰브로시안 오페라 합창단이 함께했습니다. 벨칸토 부흥 운동의 역사적 기록이자, 이 오페라의 최초 완전 스튜디오 녹음입니다.
- 에디타 그루베로바 / 프리드리히 하이더 (2005, DG DVD) –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뮌헨 실황. 그루베로바의 정밀한 기교와 드라마가 돋보이는 영상물입니다. 그루베로바는 1994년부터 이 역할을 레퍼토리로 삼아 수십 년간 공연했습니다.
- 손드라 라드바노프스키 / 마우리치오 베니니 (2016, Met Opera on Demand) – 엘리나 가란차(사라), 매튜 폴렌자니(로베르토), 마리우시 크비에치엔(노팅엄)이 함께한 호화 캐스팅. 데이비드 맥비카 연출. 메트에서 이 작품이 공연된 것은 이때가 최초였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한 한 줄 요약
사랑을 숨긴 편지와 뒤늦게 도착한 반지 탓에 여왕은 사랑하는 이의 처형을 끝내 막지 못합니다.
이 작품의 비극은 거대한 전쟁이 아닌, 전달되지 못한 물건 하나에서 비롯됩니다. 음악 역시 웅장한 합창보다 한 인물이 멈칫하는 순간에 집중할 때 이야기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다음에 볼 작품
〈로베르토 데브뢰〉를 재밌게 보셨다면 튜더 3부작의 나머지 두 편도 놓치지 마세요.
- 〈안나 볼레나〉(Anna Bolena, 1830) –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비극.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가 주인공입니다. 무고한 죄로 처형당하는 왕비의 마지막 장면이 압도적입니다.
- 〈마리아 스투아르다〉(Maria Stuarda, 1835) –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와 엘리자베스 1세의 대결. 두 여왕이 직접 맞서는 장면에서 메리가 엘리자베스에게 “비천한 사생아(Figlia impura di Bolena)”라고 외치는 장면은, 오페라 역사상 가장 강렬한 대결 구도 중 하나입니다.
도니체티의 세 작품은 튜더 왕조의 비극을 음악으로 엮어 한 여왕의 생애를 완성합니다. 어머니(앤 불린)의 처형, 라이벌(메리 스튜어트)과의 대결, 사랑한 남자의 죽음이 바로 그 비극입니다.
도니체티 벨칸토의 진가는 〈로베르토 데브뢰〉에서 드러납니다. 이 작품은 인물의 잘못된 선택이 부른 비극적 결과를 기교가 아닌, 노래의 호흡과 음높이 변화로 끝까지 밀어붙여 드라마를 완성합니다.